EA-6길을 잃은 자
도시에서 많은 사람이 죽게 되고, 원한의 불이 완전히 타오르게 된다. 로흐시니는 장례식에 온 브리지드와 함께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유적지에서는 영혼수호자와 모란이 타라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술집에서는 신비한 여인이 이야기를 이어서 들려준다.
등장 오퍼레이터: 브리지드, 리드 더 플레임 섀도우
여기까지만 바래다줘도 돼, 영혼수호자들의 마을에 다 왔어.
날 깨운 건 네 언니다. 내가 성가시다면 네 불로 날 다시 잠들게 해.
……
리드!
멀지 않은 곳에서 금발의 페로가 버든비스트 등에서 뛰어내려 붉은 용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페로의 뒤에 있는 건, 버든비스트가 끄는 조잡하게 만들어진 나무 수레였다. 수레에는 기다란 나무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브리지드?
네가 왜 여기에? 그리고 저 수레는……
……관?!
……
맞아, 관이야. 네모스가 이 관들을 들고 영혼수호자를 찾아가 보라고 했어. 다들 아직도 유적지에 있어?
근데, 붉은 용, 옆에 누가 있어? 익숙한 탄내가 나. 방금 대화하는 소리도 들은 것 같고……
훗.
아니, 나 혼자야.
이건……
죽은 사람이야.
설령 네가 손을 잡는다 한들, 아마 전력으로 네 손을 뿌리칠 거야. 그리고 상상 속의 원수, 아니면 이 사람들에게 갈기갈기 찢겨버린 불운한 녀석을 이빨로 물어뜯으려 하겠지.
그리고 테오 말인데, 네모스가 테오를 찾긴 했지만, 테오는……
……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흘러간 것 같아. 사윈의 밤이 다가오면서 모닥불의 불길이 절정에 치달으려 하는 것처럼……
붉은 용은 고개를 들어 나 시어셔 쪽을 바라봤다. 먼 거리였지만, 보랏빛 불꽃이 희미하게 타오르며 만들어내는 형체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이대로라면 도시에 있는 관도 부족해질지 몰라.
브리지드 씨가 무사히 도시 밖에 도착해야 할 텐데…… 숲의 안개가 심하지 않기를. 그러면 샛길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텐데……
젠장, 쓰지 않은 무기가 아직 쿨란 씨의 집에 있네. 절대 들켜선 안 돼.
이건…… 남은 연료인가…… 아니면 폭발물? 로흐시니 전하가 돌아오신다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아냐, 그렇지 않아. 요새 안의 사람들은 전부 보랏빛 불꽃에 물들었고, 탐욕스러운 붉은 용은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어……
이건 마치…… 로흐시니 전하가 돌아오면, 마지막 결판을 내려는 것처럼.
아니면…… 함정인가?
누구냐?!
……로리 씨? 여긴 무슨 일이죠?
네모스…… 였구나.
네. 맞아요. 쿨란 씨 유품을 정리하던 중이었어요. 별일 없으면 이만 돌아……
배신자.
미쳤어요?!
아, 그렇죠. 당신은 미쳤죠. 우리 모두 미쳤으니까.
배신자……
그래도…… 차마 죽이지는 못하겠네요. 다들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지만.
하, 하하……
일단 이 사람을 집에 데려다 놓자, 괜히 사람들의 눈에 띄면 안 되니까……
후우……
네모스?
벼, 별일 없으면 난 가볼게.
손에 든 건 뭐죠?
별거 아냐, 그럼 이만.
그건 닐스 씨가 엠마 씨에게 준 목걸이 아닌가요?
난…… 난 빵을 나눠줬어! 지금 같은 때에는 목걸이보다 빵이 훨씬 중요하잖아! 그리고 이건 엠마가 원해서 나한테 준 거야!
직접 줬다고요? 그건 엠마 씨가 늘 걸고 다니는 거잖……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네모스? 도시 안의 더블린은 전부 사라진 줄 알았는데, 넌 아직 있었구나!
……
너도 이제 가만히 서서 말도 못 하고, 걸어 다니지도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리는 거야?
곧 그렇게 되겠죠.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사람들 얘기를 꺼냈죠?
오늘 밤이면 사윈이 시작되잖아. 사라진 사람들의 집을 둘러봤는데, 괜찮은 물건들이 꽤 많더라고. 저녁 연회에 쓰면 딱 좋겠어!
……사윈? 연회요?
쿨란의 일은…… 음, 어쨌든 그때 쿨란은 이미 가망이 없었던지라 나도……
아무튼 그 얘기는 그만하자. 이것 봐, 이렇게나 많이 찾았어. 이 정도면 다들 충분히 나눠 먹을 수 있을 거야!
눈앞의 주민은 네모스에게 손에 든 자루를 열어 보였다. 안에는 이미 덩어리져 굳어버린 치스티밀크 1병, 싹이 길게 돋아난 감자 몇 알 그리고 살점조차 얼마 붙어있지 않은 뼈 몇 조각이 들어있었다.
네모스, 쿨란, 다들 두고 봐. 우린 반드시 최고의 사윈을 보낼 수 있을 거야……
주민의 모습이 골목길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가 되어서야 네모스는 이 사람이 나 시어셔 주변에 살던 마을 주민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2년 전, 빅토리아인들이 더블린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그녀의 아버지를 끌고 간 바로 그날, 그녀는 추수가 끝나고 풍년을 기념하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도시가 혼란스럽다는 건 로흐시니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건 그녀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지금 반드시 돌아가야 해.
기다려, 이 사람들을 영혼수호자에게 데려다준 뒤에 너와 함께 돌아가겠어.
브리지드, 확실해?
지금 도시는 무척 위험해, 내가 실패한다면 그곳에서…… 아무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커.
맞아, 하지만 나도 가야겠어.
왜?
예전엔 그렇지 않았으니까.
예전의 주민들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부족했지만, 편지를 배달하러 가면 항상 물이라도 대접해 주곤 했어.
나를 이방인처럼 대하긴 했어도 내가 유목민에 관한 전설을 들려줄 때면 자리를 뜨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줬다고.
그땐 지금과 달랐어…… 서로 싸우고, 물어뜯고, 마치 꼭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좀비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지.
도시가 이대로 몰락한다면 유목민들이 편지를 배송해 줄 사람도 없어지잖아?
모란?
……
나 시어셔에서 온 두 번째 시신이 도착했어, 난 이제 준비하러 갈게.
이대로라면 곧 세 번째, 네 번째 유해가 도착하겠네요……
정말 이대로 지켜만 봐야 하나요?
전에도 말했잖아, 영혼수호자들은 중립을 유지하고, 선택도 하지 않는다고.
나 시어셔인들은 타라인이 아닌가요? 왜 타라의 도시가 빠르게 몰락해 가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하는 거죠?
알고 있어. 너희는 붉은 용과 함께 돌아왔지. 그리고 붉은 용이 돌아가서 라브리타흐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건 아닐지 걱정하고 있어.
그런데, 라브리타흐를 파국으로 몰아넣은 건 바로 우리야.
당신……
우리의 선조는 타라 왕성에서 제사 의식을 주관하던 제사장이었어.
라브리타흐를 왕성으로 들어오게 하는 일에 대해서 아일릴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선조들은 라브리타흐의 간곡함에 감동해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했어.
……
라브리타흐가 죽고 일주일이 지난 뒤, 선조들이 그를 위한 환화 의식을 치른 후에야 타라의 들판에 번지던 죽음의 불꽃을 막을 수 있었지.
선조들은 고통스러웠던 교훈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스스로 왕성을 떠나 라브리타흐가 머물던 목장으로 거처를 옮긴 후, 자발적인 유배 생활을 시작했어. 영혼수호자는 그때부터 있었던 거지.
……죄송해요.
하지만 리드 씨는 라브리타흐가 아니에요. 역사도 늘 반복되는 건 아니죠.
역사가 정말 반복되기만 한다면, 리드 씨는 진작 나 시어셔의 요새에서 죽었을 거예요.
게다가 오만했던 리더, 리드 씨의 언니도 타라를 빅토리아로부터 해방하지 않았던가요?
사람들의 운명은 대개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언제나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법이죠.
“사람들의 운명은 대개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언제나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법이죠.”
……
이 문장을 책 띠지에 인쇄해서 베스트셀러 홍보 문구로 쓰면 딱이겠네.
물론, 네가 이 이야기의 끝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게 전제겠지만.
이야기로 이득을 취할 생각은 없어요.
돈이 아니더라도 상당한 명성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이 이야기의 배경…… 일어난 장소…… 이 모든 건…… 이미 정해져 있어요. 이건 제가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래서, 다음은 뭐죠?
그건 내가 묻고 싶어. 다음은 어떻게 돼? 로흐시니는 돌아갔어?
그 시점부터, 제가 보고 믿고 말한 것들이 전부 뒤엉켜 버렸어요. 그래서 이야기의 끝을 맺지 못한 거죠.
할 수 있다면 당신이 완성해 주세요. 거울 속의 누군가와 붉은 용의 춤 이야기에 당신이 원하는 결말을 만들어 주세요.
호오? 내가 써도 돼?
물론이에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시죠……
작가는 절반 이상 비운 맥주잔을 가볍게 흔들며, 맞은편에 앉은 여성과 잔을 가볍게 부딪쳤다.
작가는 다시 한번 쓰디쓴 술을 넘기며 절대 찾아오지 않을 달콤한 끝맛을 기다렸다.
혹시 내가 뭐라도 잘못했나? 갑자기 너무 예의를 차리는 것 같네. 내 질문이 너무 시의적절하지 않았던 거려나?
아니에요. 하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히 해두죠.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들은 전부 별 의미 없는 잡담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나요?
맞은편의 여성은 꼿꼿하게 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가는 어둠 속에서 여자가 미소를 띠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애썼다.
뭘 기다리고 계시나요? 제 술잔은 거의 다 비어가는군요.
나도 너와 같은 문제에 빠졌어.
네가 가진 소재와 이야기가 이게 다라면, 내가 붉은 용의 마지막 운명을 완성할 수 있을까?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완전히 날조된 결말을 억지로 만들어 붙이고 싶진 않거든요. 설령 이 이야기가 결말 없는 이야기로 남게 되더라도 말이죠.
당신도 더는 떠오르는 게 없다면,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돌아가시죠.
모르는 건지,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알았던 적도, 본 적도 없는 척을 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네.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죠?
너는 '결말을 잃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지나친 '창작' 때문에 네 눈이 흐려진 거겠지. 처음부터 다시 짚어 줄까?
재물로 사람들을 유혹한 어둠.
조각상을 혼자서 광장까지 끌고 간 쿨란.
또 숲의 검은 안개와 관련된 모든 사건. 거부당한 브리지드, 홀로 도시에 돌아온 식량 수레, 길을 잃은 로흐시니, 도시의 교관, 에블라나.
이런 '창작'의 소재들 때문에 머릿속이 혼란스럽다면, 이제 그 혼란을 바로잡고 결말을 낼 책임은 나에게 있겠네.
이번엔,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을 들려줄게, 어때?
……
말이 없다면 묵인하는 걸로 할게.
내가 들려줄 이야기가 네가 만족할 만한 결말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