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불타버린 엘레지여

EA-4과거의 스텝

사이드 스토리작전 전2025-08-28

쿨란은 조각상을 끌고 광장으로 가 사람들의 이성을 되찾아 주려 하지만, 분노한 군중들 사이에서 사망한다. 그 후, 보랏빛 불꽃이 번지며 에블라나가 나타난다…… 결말이 없는 첫 번째 이야기는 이곳에서 막을 내렸고, 이제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네크라스


수천 년 전,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면 타라의 선조들도 광야 곳곳에 모닥불을 피우곤 했다.

당시의 그들은 붉은 용에 기대 잠들었다. 뜨겁게 타오르던 꿈은 모래바람에 깎여 거칠었지만, 여전히 서로를 따뜻하게 해줄 만큼 충분했다.

그들이 깨어날 때까지도 모닥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것은 붉은 용이 잠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모닥불을 보며 고향, 술 그리고 자유의 꿈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붉은 용은 잠시나마 피로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사윈이 열리는 날이다. 사람들은 폐허 근처에서 땔감을 주워 모닥불을 피웠지만, 과거의 세월, 여유롭던 시절, 영원할 것 같던 시간은 이미 잊힌 지 오래였다.


격앙된 주민

불 위로 손 올려.

초조한 주민

내 허리춤의 램프 색깔을 봐. 난 타라인이야, 붉은 용의 축복을 받았어.

격앙된 주민

스파이가 램프의 색을 위조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어?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초조한 주민

붉은……

초조한 주민

붉은 용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초조한 주민

으…… 음…… 그렇게 아프진 않구나.

격앙된 주민

정말 안 아파?

초조한 주민

봐, 화상 자국도 별로 심하지 않아.

격앙된 주민

그렇다면 넌 빅토리아의 스파이가 아니겠군. 주변에 아직 검사하지 않은 사람이 또 있나?


말 없는 주민

……

초조한 주민

그러고 보니, 너, 검사했어?

말 없는 주민

……

초조한 주민

그 더러운 매듭 그만 만지작대고 대답해! 따라와!

초조한 주민

따라오라니까! 그 매듭 내려놓고……

초조한 주민

날…… 날 쳤어?!

말 없는 주민

감히…… 매듭을……

초조한 주민

알았어, 매듭은 뺏지 않을 테니 저기 가서, 네가 빅토리아의 스파이인지 확인해 보자고!


말 없는 주민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모닥불 쪽으로 걸어갔다.

광장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혼란의 절반은 의심, 증오 그리고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절망의 눈빛, 그리고 숨 막히는 침묵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무언가 바닥에 끌리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이내 모든 소음과 혼란을 집어삼켰다.

모두가 똑똑히 들었다, 누군가 거대한 물체를 질질 끌며 서서히 다가오는 소리를.

[CG: 59_i04]

순간, 주변의 모든 소음이 사라졌고 진동하는 쇳소리와 떨리는 톱니바퀴의 소리만 남았다.

축축하고 옅게 깔린 안개 속에서, 차갑고 거대한 조각상이 나타났다.

영웅이 빚어낸 조각상,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있던 완성되지 않은 붉은 용 조각상은 타라에게 바치는 선물이었다. 조각상은 저무는 태양의 강렬한 빛을 입고 있었고, 거대한 형체는 하늘을 가려버릴 것만 같았다.

초조한 주민

붉은 용 조각상이…… 살아난 건가?

격앙된 주민

아니야, 저건…… 쿨란?!

초조한 주민

쿨란, 너도 빅토리아인 색출을 도우러 온 거야?

격앙된 주민

우선 너도 결백을 증명해야 해!

초조한 주민

쿨란, 빨리 와. 네가 빅토리아 사람이 아니라면 불에 데도 별로 고통스럽지 않을 거야!

격앙된 주민

내 말 듣고 있어?! 어서!

초조한 주민

잠깐만……

초조한 주민

왜, 왜 혼자서 저 큰 조각상을 끌고 온 거야?!

사람들은 그제야 그의 팔뚝에 칭칭 감긴 쇠사슬을 보았다. 쿨란은 팔에 쇠사슬을 칭칭 감은 채, 넓은 어깨로만 조각상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영웅은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어깨에서 붉은 피가 흘렀고, 근육은 찢어질 것 같았으며, 뼈 마디마디에서 고통의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계속 나아갈 뿐이었다.

젊은 영웅은 조각상 앞에서 걷고 있었다. 그 거대한 존재가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저 한 걸음, 또 한 걸음 묵직하고 침착하게, 아무도 막고 있지 않은 곳으로 나아갔다.


영웅은 광장 한가운데에 조각상을 내려놓고, 힘겹게 뒤를 돌아 앞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거대한 쇳덩어리는 차가운 아름다움을 풍기며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자세로 굳어 있었다. 마치 조각상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태초부터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처럼.


쿨란

다들, 그만해.

쿨란

더 많은 동포를 죽이기 전에, 그만 멈춰.

찰나의 정적 속,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증오와 의심은 여전했고, 좀비처럼 무력하게 만드는 고통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앞에 있는 자는 영웅이었다. 쿨란은 나 시어셔를 지켰다. 그는 축복과 저주의 무게를 짊어지고 이곳까지 왔다. 그의 뒤로 보이는 조각상은 그가 내뱉는 말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격앙된 주민

누가 동포를 죽였다는 거야?

쿨란

불로도 스파이를 찾아내지 못하면, 다음은 어쩌려고?

격앙된 주민

……

네모스

쿨란 씨가 정말 여기까지 조각상을 끌고 왔네요……

네모스

어쩌죠? 쿨란 씨를…… 막아야 할까요?

쿨란

식량도 되찾고, 전쟁도 끝났잖아?

쿨란

그래, 정말 스파이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왜 온 도시의 주민들이 비열한 배신자 하나 때문에 이곳에 모여 서로를 다치게 해야 하지?

로흐시니

일단 끝까지…… 들어보자.

쿨란

다시 한번 말하지, 전쟁은 끝났어.

쿨란

전쟁이 막 끝났을 때, 내가 생각한 일은 아주 간단해. 나보다 뛰어난 대장장이가 나타나면, 그 장인의 밑에서 기술을 배우는 것이었어. 적어도 내 손으로 만든 것만큼은 직접 고치자는 생각이었지.

쿨란

하지만 대장장이는……

쿨란

나타나지 않았어. 나 역시 기술을 배우지 못했지. 게다가 모두의 생필품을 죄다 조각상을 만드는데 써버렸어.

쿨란

그러지 말아야 했어. 지금 나 시어셔에는 모든 것이 부족해. 빈 그릇이라도 있으면 빗물이라도 받을 수 있잖아. 조각상을 만드는 재료로 쓰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보다 훨씬 나아, 훨씬.

쿨란

그리고 식량 문제, 사실 정말 마음을 졸이고 있었어. 도시에 식량이 부족해져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까 봐 걱정했지. 다행히, 붉은 용의 가호 덕인지 아니면 어딘가의 풍작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식량이 돌아왔어.

쿨란

살아만 있다면 우리는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 거야, 내 말이 틀려?

쿨란

하지만 테오는…… 이제 없어.

격앙된 주민

아직도 그 빅토리아 녀석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쿨란

맞아, 난 테오가 불쌍해. 테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를 원망했어, 나 자신까지도 말이야.

격앙된 주민

빅토리아인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는 자네가 더 잘 알잖아!

쿨란

빅토리아인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테오를 보호했고, 아이를 데리고 떠나달라며 내게 애원했어.

격앙된 주민

……

쿨란

난 모두가 원망스러워. 테오의 죽음을 외면하고 방관한 자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복수하고 싶은 생각도 들어.

쿨란

하지만 어쨌든 복수에는 명분이 있어야 하잖아? 그렇다면 우리의 복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거지?

격앙된 주민

빼앗으면 돼. 빅토리아인이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쿨란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도끼마저 녹여버린 나 시어셔가 과연 빅토리아의 곡식 한 톨이라도 빼앗아 올 수 있을까?

말 없는 주민

놈들에게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해줘야 해.

쿨란

맞아. 내가 너희들에게 골목에서 죽는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처럼.

쿨란

동포들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희생했어.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또 목숨을 내던질 생각이야?

격앙된 주민

그러면, 그 녀석들을 사랑하기라도 하란 거야? 우리가 수확했던 것을 빼앗고, 우리의 가족을 죽였던 녀석들을?

쿨란

아니, 적을 사랑하라는 게 아니야.

쿨란

난 단지 너희들이 생존자들을……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했으면 해.

쿨란

게다가, 난 누굴 사랑하라고 강요할 생각도 없어. 그냥 물어보고 싶을 뿐이야.

쿨란

내일이 되고, 사윈이 끝나고, 전쟁의 그림자가 모두 걷히고 나면…… 너희는 뭘 하고 싶어?

쿨란

난 원래 조각상을 완성하고 그 위에 이름을 새기려고 했었어. 하지만 지금은 뛰어난 대장장이를 찾아 의족을 수리하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

침묵하는 사람들

……

격앙된 주민

어이 쿨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이 많은지 모르겠네. 난 내일이 어쩌고 전쟁이 어쩌고 하는 거엔 관심 없어, 빅토리아인이 죽기만 하면 돼.

격앙된 주민

네가 빅토리아인을 대변하겠다면, 너도 죽이겠어.

쿨란

……

쿨란

좋아.

쿨란은 조각상을 만든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며 거대한 용의 머리를 겨냥했다.

그러나 자신의 피와 땀이 담긴 조각상의 머리를 내려치려는 순간, 쿨란은 주저했고, 결국 망치를 내려치지 못했다.

쿨란의 행동이 일종의 의식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그가 뭘 하려는 건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쿨란의 행위가 의식이 아니라 조각상을 부수려 한다는 것을 알아채자, 가장 좀비 같았던 사람조차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고, 모든 사람이 쿨란을 에워쌌다.

네모스

쿨란 씨, 그만하세요!

네모스의 비명은 군중들의 고함에 묻혔지만, 쿨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로흐시니는 쿨란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분노에 찬 군중에 가로막혔다. 결국 로흐시니는 입술을 깨물고 불꽃을 이용해 사람들을 쫓아냈고, 동시에 큰 소리로 주의를 끌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사람들의 의식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의식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쿨란

내가 이 조각상을 부수려는 건, 빼앗긴 너희들의 일상을 되찾아 주기 위해서야.

격분하는 군중

감히 그걸 부수겠다고?!

쿨란

난 이 조각상의 모든 부위를 무엇으로 주조했는지 기억하고 있어. 등뼈는 칼과 도끼로, 늑골은 식기와 그릇으로, 머리는 책상과 의자로 다시 주조해 너희에게 돌려줄 거야.

격분하는 군중

이 배신자 자식! 어떻게 너 같은 영웅이 우리를 배반할 수 있지?!

쿨란

누군가의 삶을 차마 빼앗지 못하는 것이 배신이라면, 난 애초부터 영웅이 아니라 배신자였다.

격분하는 군중

쓸데없는 궤변 늘어놓지 마!

쿨란

궤변이라고?

쿨란

이 쿨란이 어떤 인간인지 알려주지. 쿨란은 영웅이 아니야, 그저 명성을 탐한 사기꾼일 뿐이었어.

쿨란

그는 검은 숲에서 빅토리아 정찰병을 죽였다고 했지. 하지만 사실 빅토리아인을 마주친 곳은 그곳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곳이었어……

쿨란

게다가, 그때 만난 빅토리아인은 정찰병도 아니었어. 어떤 군대에 무참히 짓밟힌 불쌍한 카라반이었을 뿐이야.

쿨란

그는 어떻게든 그 사람들을 구하려 했지만, 결국 한 빅토리아인의 아이밖에 지켜내지 못했고, 굉장히 혼란스러워했어.

쿨란

어쩔 수 없던 상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허영심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그는 결국 빅토리아인들의 목을 벴고, 동포들에게는 그 사람들이 정찰병이었다 말했지.

쿨란

그렇게 그는 영웅이 되었고, 도시에서 가장 명망 높은 시민이 되었어. 그리고 이 명성을 이용하면 주민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쿨란

그리고 그 아이를 키우는 건 영웅이 베푼 작은 자비가 되었지.

격분하는 군중

뭐라고?!

쿨란

이 불쌍한 사기꾼조차도 자신이 대장장이라는 사실은 잊지 않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뭐라도 배워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

쿨란

하지만 너희들은……

쿨란

너희는 어떻지?

다정한 주민

너…… 너는 쿨란이 아니야! 넌 쿨란의 행세를 하는 사기꾼이야!

쿨란

흠……

격앙된 주민

맞아, 너는 쿨란이 아니야! 쿨란은 우리의 영웅이야, 빅토리아 정찰병이 와도 끄떡없는 강인한 전사! 이 자식, 넌 누구냐!

쿨란

하아……

쿨란

난 공방에서 이곳까지 조각상을 끌고 왔어……

쿨란

너희가 보기에,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 같아?

마지막 말을 마친 쿨란의 입과 코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쿨란은 따뜻하면서도 간절한 눈빛으로 주위의 동포들을 바라봤고, 그들의 얼굴에 증오가 아닌 다른 감정이 드리워져 있길 바랐다.

그러나 그에게는 보랏빛 불꽃만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 불꽃 뒤편의 얼굴들은 죄다 흐릿해 보였고, 마치 아주 오래전, 그가 어느 유적지 밖에서 마주쳤던 안식을 얻지 못한 죽은 자와 같았다.

쿨란은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쿨란

쿨럭, 커헉!

쿨란은 광장의 한쪽 모퉁이에서 작은 실루엣을 보았다.

그가 미처 찾지 못한 테오의 시신이 그 순간 선명한 보랏빛 불꽃을 두른 채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쿨란

테오? 어째서 너마저?!

쿨란

쿨럭……

쿨란

다 헛수고였어…… 헛수고였어……

쿨란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고, 망치를 거세게 휘둘렀다.

모두가 숨죽인 채 그를 바라봤다. 그 망치가 자기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건 아닐까 두려워했지만,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쿨란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거대한 용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마치 누군가를 위한 조종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영웅은 거대한 용 앞에서 쓰러졌고, 군중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망연자실해 있었다.

로흐시니의 목소리가 마침내 울려 퍼졌다. 그녀의 불꽃은 타오르는 석양처럼 강렬했지만,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조각상과 조각상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쿨란이 순식간에 하늘을 집어삼킬 듯한 보랏빛 불꽃에 휩싸였고, 군중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불길 속에서 쿨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거대한 조각상 역시 날개를 펼치며 꿈틀거렸다.

마침내 쿨란은 완전히 일어섰고 붉은 용의 조각상은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오래도록 자신을 위해 준비된, 텅 빈 광장 정중앙의 빈 대좌로 날아갔다……


사람들은 조용히 그 모든 광경을 지켜봤다. 마치 매우 놀란 것 같기도, 경외심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요새 쪽에서 희미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에블라나

이런, 유감이야, 한발 늦었네. 도시에 남은 유일한 영웅이었는데.

에블라나

자, 나 시어셔 주민들이여, 너희들의 영웅이 조각상을 위해 희생했다……

에블라나

밤은 찾아왔고, 너희들이 아직도 붉은 용의 뜻을 따른다면……

에블라나

곧 통행금지 시간이니 다들 집으로 돌아가라.


신비한 여인

“쿨란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거대한 용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마치 누군가를 위한 조종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신비한 여인

쿨란을 정말 좋아하나 보네. 매우 비극적인 결말이긴 해도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낸' 걸 보면 말이야.

작가

과찬이에요.

작가

전 그 대장장이와 겨우 몇 번 만났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는 도시가 혼란에 휩싸이고 나서 제일 처음으로 희생된 사람이죠, 테오를 제외하면요.

신비한 여인

사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어. 어둠 속으로 들어갔던 더블린의 몸에도 네가 말했던 '보랏빛 불꽃'이 있었을까?

작가

죄송하지만 그건 대답할 수 없어요.

신비한 여인

너의 이야기 속 논리대로라면, 더블린에겐 불꽃이 없었을 거야. 부패, 밀수, 권력 남용…… 그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꽤 많은 구상을 했잖아.

작가

……

작가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니, 이제 이야기의 결말을 완성할 수 있겠네요.

신비한 여인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은 이뿐만이 아니야. 너도 그랬잖아, 첫 번째 희생자일 뿐이라고.

신비한 여인

그래도 기어코 여기서 끝을 내겠다면……

붉은 용은 죽음의 불꽃에 물든 자들은 구원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붉은 용은 선언했다. 이곳은 곧 죽음의 땅이 될 것이며, 남은 자들은 자신의 추종자가 되어 자신을 따라 죽음을 향한 여정을 시작할 것이라고.

좀비 같은 사람들은 이미 의사 표현을 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날 밤, 불길이 하늘까지 치솟으며 넓은 들판을 환히 비췄다. 그 후로 붉은 용과 그녀를 따르는 추종자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가

어……

신비한 여인

왜 그래?

작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제 그만 가시죠.

신비한 여인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은 것 같은데.

작가

……

작가

그 후로 정말 붉은 용을 본 사람은 없나요?

작가는 술집 구석에 있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게시판 쪽을 바라봤다. 그곳엔 오늘 자 신문이 있었고, 헤드라인에는 '리더'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제목은 이러했다. 리더는 오크 그로브 카운티의 어떤 의식에 참석 중이다.

작가

게다가, '자신을 따라 죽음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자'라니…… 붉은 용이 언제 그런 일을 했죠?

신비한 여인

이야기를 쓰는 건 작가의 자유야.

작가

자유.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자유라고 해서 마음대로 쓰고 가볍게 넘겨버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신비한 여인

왜 안 되지?

작가

저도, 당신도 타라인이니까요. 이야기가 아무리 왜곡되어도 이 이야기가 투영하고 있는 건 우리예요.

신비한 여인

스스로가 타라인이라는 걸 인정하는 건가?

작가

셰이머스 윌리엄스라는 시인의 글을 처음 읽었던 그 순간부터 전 항상 타라인이었어요.

작가

제가 타라인이 아니라면, 왜 캐스트샤이어 카운티 문학 살롱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타라로 돌아와서……

작가

……

“스스로가 타라인이라는 걸 인정하는 건가?”

작가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이내 불안을 떨쳐냈다.

작가는 다시 게시판을 쳐다봤다. 신문은 사실을 보도할 뿐이다. 비록 일부가 편집된 것이라 해도 사실임에는 변함이 없다.

작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당신을 보낸 건 누구인가요?

신비한 여인

난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았어. 네가 말한 대로 난 너의 이야기와 '진실 맞추기'에 흥미를 느끼는 독서가일 뿐이야.

작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신비한 여인

참 난감한 질문이네. 누군가 날 이곳에 보냈다는 걸 입증하는 건 아주 쉬워. 하지만 애초에 그런 사람이 없다는 건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작가

……

작가는 다시 술을 한 모금 들이켰고 절망스러운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는 당분간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있었다. 충분히 영리하게 행동한다면……

작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당신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이건 그냥 이야기일 뿐인데, 제가 예민하게 군 것 같네요. 죄송해요.

신비한 여인

그리고, 네가 끝맺지 않은 이야기들도 아직 꽤 많이 남아 있잖아.

신비한 여인

그 이야기들을 하나로 연결하면, 그때의 나 시어셔와 네가 기억하는 타라에 어울리는 결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신비한 여인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거울 속 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래?

작가

거울 속 춤…… 말인가요?

아니다, 이건 영리함의 문제가 아니다.

충분히 신중을 기하면 된다. 불꽃에 비친 이야기의 그림자를 휘감고 형태를 바꿀 수 있다면,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