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ST-3수문탕
아주 먼 옛날, 쉐이 능묘에 열두 번째로 태어난 새로운 의식이 있었다. 이 미숙한 의식은 오래되고 거대한 옛 존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광활한 인간 세상에 대한 많은 의문을 품게 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능묘 안, 혼돈에 잠긴 어둠 속은 마치 시간마저 멈춘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인기척을 느꼈던 이후로,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흐른 걸까?
바로 오늘, 이곳에서 새로운 소리가 깨어났다.
여긴 어디지……?
능묘 안.
나는 누구지?
모른다.
……너는 누구지?
그것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지어준 이름이 있다.
'쉐이'.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지?
우징, 차에 타시지요.
미안하지만 부탁이 하나 있어.
저기, 길 건너편 식당에서 밥을 좀 사다 줄 수 있을까? 사는 김에 차도 함께 부탁할게.
감옥에 가더라도, 빈속으로 가긴 좀 그렇잖아.
물론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가시는 겁니까?
판결이 내려졌으니, 대리사에 계속 머물 이유는 없겠지.
그렇군요…… 오늘은 특별히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날 원망하지 않나 보네.
사건의 전말이 전부 밝혀진 마당에 원망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굳이 원망하자면, 왜 제게 진작 말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입니다.
미리 말했다면 너도 옥살이를 면치 못했을 거야.
그래도 대리사에 쓸만한 인재 몇은 남겨둬야지……
저도 선배님의 판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었습니다.
선배님께서 형량에 불복하신다면 삼법사에 재심을 요청해 보는 것도……
내가 저지른 일을 봤을 때, 10년형이 무겁다고 생각해?
하지만 선배님께서 하신 일은 모두……
그래서?
법은 법이야. '도덕적인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지.
오늘의 우징이 법에 불복한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우징이 자신들만의 '정의'를 내세우며 혼란을 초래할 것 같아?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하다니, 내가 배출해낸 소경답지 않군.
경솔했습니다……
물론 그 '법'이 모두가 인정하는 정의에 가깝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너희 같은 후대에 주어진 일이겠지.
기다릴게…… 산 위의 그 소나무는 그대로 있으니, 때가 되면 네가 그 나무를 베어 내 관을 짜 줘.
……
그러고 보니, 배웅하러 왔다면서 왜 대리사의 관복을 입지 않았지?
그만뒀습니다.
한 줄기 번쩍이는 번갯불이 눈앞을 잠시 밝힐 수는 있어도, 세상의 모든 시비와 선악, 그리고 진실을 가려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들은 아직 많습니다.
산 위의 그 소나무는 그대로 있지만, 그저 소나무에 불과할 뿐입니다. 산에 올라 그 소나무에서 무엇을 볼지는 오롯이 본인의 내면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천사부로 돌아가 당분간 수행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그것도 좋지.
뭐가 뭔지 이해도 하지 못한 채로 일을 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이니까.
선배님……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도대체 왜…… 태사 사건을 그토록 집요하게 파헤치려고 했던 겁니까?
……왜 그렇게 묻지?
이번 사건의 전후 자료를 정리하다가 발견했습니다. 이 사건에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이 고전만은 아니더군요.
고전이야 그럴 동기가 있었지만, 선배님은 대리사의 미해결 사건을 해결하라는 명을 받았을 뿐, 그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습니다.
……
우징,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위미각 식당 직원이 한사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언제든 다시 가게에 들러 달라고 했습니다.
이상하네요, 당신에게 드릴 식사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수십 년 전, 식당에서 고전을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나네. 고전은 내게 “너무 많은 색은 눈을 멀게 하고, 너무 많은 맛은 미각을 상하게 만드는 법”이라는 말을 했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어, 그건 내 좁은 시야와 무딘 미각을 꼬집는 말이었다는 것을.
눈으로는 오로지 깨끗한 진실만 보고, 입으로는 오로지 깨끗한 맛만을 느끼는 거야.
죄수복을 입은 남자는 고개를 돌려 대리사의 문패와 그 너머의 판결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측백나무 밑에 있는 녹지 않은 눈 한 줌을 그릇에 넣었고,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맛있네.
……그럼 가볼까.
너는 왜 여기 있어?
내가 저지른 잘못…… 한 번의 실수 때문에……
내게는 느껴져. 너의 고통과 분노가……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상처는 아물었고, 분노도 잦아들었네.
……왠지 피곤한 것 같다?
그렇다……
내 의식과 영혼은 이미 여러 조각으로 나뉘었다.
너처럼……
다들 어디로 갔어?
이 능묘 밖, '인간 세상'이라 불리는 곳에.
그 '인간 세상'은…… 좋은 곳이야?
그렇지 않다……
그곳에서 내가 본 건 참혹하기 그지없는 살육과 악랄한 계략, 그리고 무자비한 배신이었다!
가족에게 칼을 겨누고, 사랑했던 사람들은 철천지원수가 됐다……
내가 실패했던 건 오만했기 때문이다. 난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으니까.
네 말대로 인간 세상이 악랄하고 추악하기 짝이 없는 곳이라면……
그런데 왜 그런 곳에 가려는 거야?
그건……
누구냐.
이렇게 멀리까지 와놓고, 또 어디로 가려고?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지?
염국에서 그 난리를 쳤으면서, 내가 눈감아줄 거라고 생각했나?
너희 늙다리들은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벌써 아픔을 잊은 거 같네. 그때 너희를 흠씬 두들겨 패서 이 땅에서 쫓아냈는데, 두 번이라고 못 할 건 없지.
겨우 너 혼자서 한다는 건가? 우습군……
오, 싸우시겠다? 좋아, 덤벼.
네 뱃속에 이미 작은 세상이 들어있다는 건 알아. 좋아, 너와 그 그림쟁이 녀석 중 누가 더 대단한지 한번 보자.
패망했던 산과 물이 과연 내 불길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도발의 대가는 똑똑히 치러야 할 거다.
흥……
아냐 됐어, 이 자리에서 널 해치운다 해도 결국 또 똑같이 빚어낼 거잖아. 아무런 의미가 없겠어.
네게 물러설 명분이 필요한 거라면, 나도 기꺼이 받아주지.
너랑 말싸움하는 것도 지겨워. 네 본체를 찾아 네놈을 완벽히 처리하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그 바둑꾼 놈이 대체 뭘 걸었길래 순순히 명령에 따라주는 거야?
아니지…… 네가 아니라 '너희'라고 해야 하려나.
그 계획은 나와 무관하다, 우리에겐 같은 목표가 있을 뿐.
내가 찾는 건 능묘에 갇힌 그 몰염치한 배신자다.
네가 진심으로 복수를 원했다면, 그 분신들을 하나씩 처리하고 염국과의 전쟁에서 그것이 죽기를 기다렸어야 했어.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네가 말한 그 '동족'이라는 것도 이 땅에 거의 남아있지 않겠지…… 결국 넌 과거에 얽매여 있는 거야.
그래도 그 정도 '인간미'라도 있으니, 너희를 짐승과 동등하게 볼 수는 없겠어.
……어처구니없군.
아니…… 아니야, 네가 그 녀석과 공모한 이유는 이게 전부가 아니야.
날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 마. 염국은 수년간 감시자들을 통해 너희를 지켜봤으니까.
너희들은 아직 백조 밑에 있는 그걸 포기하지 못한 것 같네……
……
리 선생님……
아빠가…… 여기 계실까요?
단서를 쫓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군.
하…… 그와 오랜 세월 떨어져 있었다만, 이번만큼은 네 아버지에 관한 소문이 거짓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하지만 무림을 휩쓸며 고의로 사람들을 해친다는 소문 속 미치광이 무인이 다른 누군가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아빠는 대체 왜 변한 걸까요……
나도 모르겠구나……
그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더더욱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갖고 있는 법이야.
이 소리는?!
……!
와이후…… 나중에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꼭 조심해야 해.
어쩌면 지금 그를 깨울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일지도 몰라.
음……
리 선생님…… 가시죠.
후……
(그 검은 정말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단 건가……?)
(양현…… 와이틴푸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네 몫이야.)
길이가 꽤 있는 동굴 깊은 안쪽, 거대한 형체가 어렴풋이 드러났다.
묵직한 주먹으로 끊임없이 암벽을 내려쳤던 자리에는 매화꽃 같은 붉은 핏자국이 있었다. 주먹이 내리칠 때마다 동굴이 마치 무너질 듯이 크게 흔들렸다.
사람들은 그제야 그 '동굴'이 그의 주먹질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40년…… 천하제일…… 난 언제쯤……
검…… 누구에게도 줄 수…… 없어……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잃어버리고 말았어!
내 딸…… 내 딸에게 손대지 마라!
아빠……?
아빠…… 정신 차려요……
아빠!
백조가 보이는군.
이 역참, 설마 다시 돌아올 줄이야.
……뭐냐, 기어코 따라오겠다더니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건가?
여기서 희생된 자들은 모두 형제였습니다.
모두 '충의'를 위한 거였지……
웨이 님, 누군가 따라붙었습니다.
음……
조심하십시오……
뛰어난 검술입니다……
오랜만에 보니 예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성장하셨군요.
……첸 아가씨.
오랜만이야…… 웨이 옌우…… 외삼촌.
훼이지에……
난 외삼촌이 용문에서 벌인 일이 가장 어리석은 판단일 거라 생각했는데……
당신, 그리고 당신이 데려온 이 사람들…… 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야?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설마 후미즈키가…… 네게 말한 거냐?
이건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야. 그 누구와도 상관없어.
이 일도 너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맞는 말이야.
난 외삼촌의 과거에 대해 단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어. 그건 사적인 일이니까 관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지.
난 지난 몇 년 동안 수많은 곳을 다니면서 그간 본 적도 상상조차 못 했던 일들을 많이 겪었어.
그리고 이제 나도 깨달았어, 세상의 모든 갈등에는 반드시 하나의 '정의'가 존재해.
어머니…… 그리고 언니의 일…… 그 일들이 당신의 과거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거야.
……
그래서 난 직접 보고 싶어졌어. 당신을 평생 괴롭혔던 그 과거가 과연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말이야.
기억들이 떠오른 것 같다.
거대한 육체 안에서 안개를 뚫고 두 눈으로 봤던 그 장면들이.
너도 원래는 의식의 일부였으니 당연히 그 기억을 갖고 있겠지.
하지만…… 내가 본 인간 세상은 네가 말했던 것과는 다르다.
그럼 네가 본 건 대체 뭐야?
타오르는 불길.
태초의 시기, 사람들을 한데 모여 흉악한 야수에 맞서기 위해, 그리고 차디찬 밤을 밝히기 위해 불을 지폈다.
사람들은 불 주위에서 다양한 도구를 만들었고, 각양각색의 음식을 만들었다. 그들의 얼굴에 비친 감정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게 어떤 감정인지 알고 싶은데?
위험한 생각이군……
위험하다고?
너와 같은 존재들, 인간 세상에 발을 들인 분신들은 모두 너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인간 세상에 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끝없는 고통뿐이었다.
다들…… 인간이 되길 원했어?
하지만 인간이 되기 전에 알고 싶은 게 있어……
“인간이란 건 도대체 뭘까?”
난 어디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훗…… 다녀와라.
가서 '인간 세상'을 둘러보고 와라.
감정과 욕망, 사랑과 증오, 분노와 탐욕은 모두 끝없는 고통을 가져올 것이다. 그 생각이 떠오르면 혼돈이 열리게 되고, 한 번 얽히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두렵지 않나?
나는……
으아……!
휴…… 꿈이었구나……
하지만 그 꿈을 꾸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야……
다들 어디 갔지……
꼬마 주방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활짝 켠 다음, 힘껏 눈을 문질렀다.
눈앞의 주방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고, 냄비와 접시 등 조리 도구들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그는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황급히 찬장을 열고 소금, 간장, 식초를 꺼냈다.
신중하게 하나씩 맛을 본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한참이 지난 후, 그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네…… 다행이야……
똑같은 맛이야……
사람이든 짐승이든, 기억이 나든 안 나든, 별로 상관없잖아.
세상에는 다양한 맛이 있고, 찾으려던 맛도 찾은 셈이니, 이후의 일은…… 생각하지 않을래!
눈앞만 보며 살아가는 거야, 내일의 고민은 내일로 미루자…… 별것도 아닌데 뭐.
일단 가게 문부터 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