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창백한 바다에 매달려
검술을 찾아 무덤을 파헤치던 쏜즈는 시체 도둑으로 몰리게 된다. 파스콸라 또한 도둑질로 붙잡혀 둘이 나란히 교수대에 올라선다. 이때, 강도들이 형장으로 쳐들어와 두 사람을 구한다.
어라, 파스콸라 드디어 왔구나. 소금 사막에서 죽은 줄 알았어.
후우……
하얗게 질린 얼굴 좀 봐. 오늘 길에 무슨 일 있었어?
조용히 해, 티치…… 문이나 빨리 열어.
들어오려고? 캡틴이 갖고 오라는 건 가져왔어?
당연하지. 나침반뿐만이 아니야. 어마어마한 것들을 찾았어.
후아나가 줄곧 찾던 연금술사에 대한 단서도 잡았어.
이제는 좀 들여보내 줄래, 티치?
당연하지, 괴도 파스콸라 씨. 왕림해 주셔서 이 누추한 곳도 빛이나네.
돛을 올려라 헤이, 닻을 내려라 헤이♪
광풍이 우리의 옷깃을 찢어버리고♪
폭우가 우리의 술기운을 깨워주네♪
준비! 출발! 항구에 배들이 수없이 많구나! ♪
……
날이 밝으면 우리는 곧장 바다로 향해♪……
으억…… 자넨 뭔가?! 남의 집 앞에서 왜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게야?!
저기, 이 골목은…… 아저씨 집이야?
이보게 젊은이, 자네가 머리에 이고 있는 그 판지가 내 침대일세……
미안하군. 쓰레기통 옆에 있길래 주인이 없는 줄 알았어.
당신 집에서 잠시 비를 피해도 될까? 날이 개면 바로 떠나지.
지난 두 달 동안 이 동네는 비가 한 방울도 안 내렸는데.
비가 내린다고 해도 일단 내 침대부터 내놓는 게 어떻나? 흠, 이건 내 베갠데, 가져가게.
……고마워.
여긴 왜 온 겐가, 에기르인?
이곳에서 전해진다는 검술을 찾으러 왔어. 들리는 바에 의하면 최초로 그 검술을 만든…… 크흠……
몇 달 전, '풍랑에 맞설 수 있다'는 특별한 검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걸 배우러 왔지.
간도 크군. 재판소의 사람들이 아직도 해적들을 경계한다는 걸 모르나?
난 해적에는 관심 없어. 그저 내 검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뿐이지.
검은 사람을 베기 위한 거지 물을 베기 위한 것이 아닐세. 하물며 배워서 뭐 하려는 겐가? 바다로 나가려고?
……
아저씨, 질문이 너무 많아.
에휴……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믿는 사람이 있긴 했지. 반년만 더 일찍 왔더라면 그자에게 데려다줄 수 있었을 텐데.
그자는 당시에 해적들에게 조금 배우더니만, 하루가 멀다고 자신이 큰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떠들어 댔지. 하지만 결국은 나처럼 마을로 돌아와 조용히 죽을 날을 기다리게 되지 않았던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은 없었나?
일기 같은 거 말인가? 몽땅 다 무덤에 넣고 묻었다네. 자네가 직접 파보던지.
누군가 자신의 검술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걸 안다면, 그자는 분명 기쁜 나머지 무덤에서 튀어나오려고 할 거야.
……
이시드로는 한쪽에 삽을 세워두고 관뚜껑을 연 다음 그 안에 떨어진 소금 알갱이를 털어냈다. 그러자 혈색이 좋은 시신이 드러났다.
시신의 호주머니에는 책이 삐져나와 있었다.
이시드로는 조심히 책을 꺼냈다. 소금기로 인해 부스러지기 쉬워진 종이 조각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게 그 사람이 말한 일기인가?
너덜너덜해서 아무것도 못 알아보겠어.
켁켁켁…… 풉……퉤퉤!
……찢어진 종이조각이 입안으로 들어왔어. 짜군.
다른 곳으로 가서 다시 찾아보자.
다른 곳? 이 극악무도한 도굴범, 식인범 같으니. 또 어디로 가서 악행을 저지르려고?
도굴범? 식인범??
네가 수상쩍게 무덤을 파헤치는 것을 봤다. 나한테 제대로 걸렸어.
거기 당신, 제대로 설명하지.
“거기 당신”……? 내가 누군지도 못 알아보다니!
이 지역 유명인사인가?
재판소 선교사는 평소에 마을 입구에서 모든 방문객의 통행증을 확인하는 업무를 맡고 있지.
나를 모른다면, 이 마을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지?
그건……
이 녀석을 잡아라!
꽃잎은 이 정도로 빻으면 되나……
아뇨라 선생!!
아, 아! 그 정도면 됐어. 조금만 더 빻은 다음 기름을 넣고 섞어주면 돼.
손은 왜 떨고 있어?
눈이 침침한가 보군, 선생.
침이 어쨌다고?
눈이 침침하다고 하지 않았나!
침은 뱉으면 안 되지…… 꽃잎은 더 넣을 필요 없어. 손 떠는 것 좀 봐…… 또 몰래 술 마셨지?
당신은 마을의 심사관이야. 술은 마시면 안 되지. 술은 사람을 해치는 흉물이야. 자네가 직접 전파한 교리 아닌가?
술을 유통하는 카라반 대표와의 비즈니스 미팅에서 술 몇 잔 하는 건, 마을의 새로운 활로를 위해서야.
선생, 그 과부는 상태가 어떻지?
누구……? 좀 더 크게 말해 봐!
늙은 도공을 먼저 떠나보낸 과부 말이네! 곧 도공의 아이를 낳는다면서!
야외를 나간다고? 아이고, 날씨도 안 좋은데.
아니!
과부 말이야!!
곧 아이를 낳는다던!!!
실버 님!
으악……! 깜짝이야. 들어오기 전에 노크하라고 하지 않았나?
심사관님께서 소리를 지르시길래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았습니다!
아무 일도 없네……
그,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마을 동쪽의 묘지에서 어떤…… 어떤 미치광이를 잡았습니다. 마을 주민의 시체를 훔치는 모욕적인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뭐?!
이게 무슨…… 먹거리만 충분하면 그때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재현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실버 님. 송구스럽지만, 배불리 먹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해 심사관님께서 신성한 율법을 들여와 사람들에게 씌어있던 죄악들을 씻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금지령도 모두 철회되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포교를 들은 지도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죄악이 다시 생겨나는 것도 필연적일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나?
그러니 극악무도한, 마을을 모욕한 자가 이곳에서 죄악의 씨를 뿌리게 두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형벌을 준비하게.
팔로는요? 팔로와 그 극악무도한 자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본 사람이 있습니다……
……필요 없네. 팔로가 젊은 시절 해적들과 접촉한 적은 있지만, 나쁜 짓을 저지를 만큼의 배짱은 없어.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지 않나.
심사관님…… 적어도 감시라도 해야 합니다.
나중에 얘기하지……
무덤을 팠다니…… 설마, 그자가 설마……?
죄악이야, 죄악이야! 이 아론 마을은 더 이상 청정한 곳이 아니야…… 재난이 또다시 닥쳤어……
선교사님, 심사관님! 그를 죽여 죄를 벌하시어 그때와 같은 재난이 닥치지 않게 하십시오!
(버둥버둥)
얌전히 있어!
이시드로 씨, 간밤에 묘지에서 우리 마을 주민의 시체를 훔치려던 것이 사실인가?
묘지에 간 건 부정하지 않겠어. 하지만 그건……
뭐?!
파스콸라?
이시드로, 네가 이런 인간인 줄은 몰랐어. 훔칠 것이 따로 있지, 시체를 훔쳐?
구역질 나.
미리 말해두겠는데, 족쇄는 네 목에도 채워져 있어. 파스콸라.
조용히 해! 다음 재판은 너다!
넌 왜 여기 있지?
나…… 나야, 개 버릇 남 못 줘서 그렇지 뭐.
뭐라고, 걔가 형장에 있다고?!
내 탓이 아니야. 그 계집애가 못된 버릇 못 버리고 밖으로 나서자마자 화려한 차림의 사람을 몰래 쫓아갔다고.
그런데 하필 상대는 실버 심사관이었고.
녀석 솜씨였으면 심사관이라 해도 발각되지 않았을 텐데.
심사관에게 들키지는 않았지만, 심사관에게 업무 보고를 하러 온 무도 선교사한테 덜미가 잡혔지.
녀석이 말한 그 연금술사는?
위치는 이미 파악했어.
그럼 됐어.
지금 파스콸라랑 함께 곧 교수대로 올라갈 거야.
……
형장에 무도 선교사가 총 몇 명이지?
12명.
……너까지 합치면 충분하겠네. 가자.
모두에게 알린다. 마을의 법률에 따라 우리는 이 죄인 2명을 교수형에 처할 것이다. 모두 이를 본보기 삼고, 부정한 죄악이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를 바란다.
시간이 되었으니 형을 집행하겠다.
전혀 두렵지 않은 것 같은데?
걱정 마.
살 방법이 있나 보지?
지금은 없지만 때가 되면 생길 거야.
소녀는 고개를 돌려 교수대 쪽을 보았다. 무도 선교사가 한 명이 장치를 작동시키려 했다.
(손을 휘두른다)
악…… 내 손!
가, 강도들이다!
세상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벌을 받는 것일까, 난 또 어떻게 속죄해야 하나……
기습이다! 마을 주민들을 보호해라! 실버 님을 엄호해서 이곳을 빠져나가라!
난 괜찮네! 주민들을 우선 대피시키게!
어물쩍거리지 말고 앞으로 밀고 나가! 저 재수 없는 두 녀석을 죽게 둬선 안 돼!
돌격……!!
저 강도들은 동료를 구하러 왔다!
대열을 정비하고 저들을 막아라!
죽여라!
윽……
네 놈들, 대놓고 마을을 약탈하려는 거냐?!
하비에르, 우리가 여기서 저놈들을 막을 테니 어서 가서 파스콸라와 저 애송이를 구해!
고마워.
저놈들 뜻대로 되게 놔두지 마라!
네!
깔끔하게 처리해, 너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베어라!
알겠어!
윽……
어서, 둘을 풀어줘!
알겠다!
헤헤, 드디어 왔구나. 빨리 이 족쇄를 풀어줘, 조여서 손이 아프다고.
으악! 내 손목! 이게 사람을 구하는 태도야?
흥. 난 진작부터 캡틴에게, 네 녀석은 귀찮은 일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는다고 했었지.
쳇, 그래도 날 구하러 왔으면서.
그리고 너. 가자, 애송이.
칼 좀 빌려주겠나?
훗, 받아라.
이 녀석, 도망칠 생각 마라!
내가 가만히 앉아 죽길 기다릴 거란 기대는 하지 마.
뛰어난 검술이야!
고맙군.
이봐! 지금 누굴 칭찬하고 있을 때야? 여길 어떻게 벗어나려고?
입 닫고 티치를 따라가. 마을 밖으로 나가는 샛길을 알고 있어.
샛길? 그럼, 뭐……
모두 이쪽으로!
놈들이 남쪽으로 도망친다!
남쪽……? 그쪽은 낭떠러지야, 뭘 어쩌려는 거지?
허억…… 후…… 너희 미쳤구나. 샛길이 어디 있다는 거야? 벼랑 끝이잖아?!
뛰어내리면 되잖아.
저기, 하비에르. 쟤 지금 농담하는 거지?
더 빨리 달려! 아니면 멀리 못 뛰니까.
뭐어?
(묵묵히 더 빨리 달린다)
설마 같이 뛰어내리려는 건 아니겠지?
다른 길이 있어?
이봐,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곧 벼랑 끝이야. 하나, 둘, 셋…… 뛰어!
결연한 뒷모습은 절벽 아래로 떨어졌고, 돌멩이도 함께 딸려 굴러떨어졌다. 한참 지난 후에야 바닥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파스콸라는 사람들과 돌멩이가 벼랑 끝에서 사라지는 걸 봤고,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윽……
앞은 막다른 곳이야. 놈들은 못 도망가! 빨리 쫓아라!
빨리 뛰어. 안 그러면 놈들에게 잡힐 거야!
파스콸라는 낭떠러지를 한번 보고, 쫓아오는 무도 선교사를 다시 쳐다봤다.
못해……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못 뛰어!
귀찮은 녀석이네.
뭐야, 야, 너 뭐 하는 거야?!
이시드로는 소녀를 옆구리에 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단호하게 고개를 돌려 비명을 계속 질러대는 소녀를 데리고 뛰어내렸다.
꺄아아아악!
린수 똥 덩어리 같은 자식, 절대 용서 안 할 거야아아아아!
아아아아아!
당황해하는 사이 파스콸라는 예상했던 딱딱한 바닥이 아닌 푹신푹신한 곳으로 떨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눈을 떠보니 그녀는 큰 천에 걸려 있었다.
응……?
이제 안전해. 녀석들이 돛으로 우릴 받아줬어.
엇? 낭떠러지 아래에…… 배가 있었네?
주변을 둘러봤다. 파스콸라는 커다란 뼈가 선체를 지탱하고, 천과 린수 가죽으로 이은 돛들이 햇볕을 막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정밀한 전달 구조를 통해 뜨거운 바람이 선체 아래를 가로질러 복잡한 보행 구조를 구동시켰고, 배는 확고하고 힘차게 소금땅 위를 내디뎠다.
겨우 그 정도 배짱으로 본인을 괴도라고 자칭한 건가, 파스콸라 아가씨?
도둑에겐 치밀한 계획과 신중한 사고가 필요해. 무모함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티치, 그 여자애랑 말씨름하지 말고, 얼른 옷 갈아입고 좀 도와줘. 조타수가 다쳤어, 네가 대신해.
마침 잘됐네. 나도 이 옷이 너무 어색했거든.
후아…… 후아……
응? 너 등에 뭘 메고 있지?
음식이랑 물!
아까 놈들의 식량 창고를 발견했거든. 그래서 좀 챙겼지!
거길 빠져나오면서 불도 함께 질렀어, 하하! 지금 불을 끄느라 정신없어서 우리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걸.
오호…… 이 자식, 한 건 했군.
다들 조금만 힘을 더 내라! 내일 저녁이면 우린 집에 도착한다!
애송이, 난간에 올라서 뭘 보는 거야? 창백한 바다는 처음이야?
이 배는…… 정말 특이해. 대부분 나무와 뼈로 이루어졌으니…… 일반적인 육지 함선보다 훨씬 가볍겠지.
물론이야. 이곳 소금 사막을 횡단할 수 있는 건 오직 우리의 소금배뿐이야. 저 밖의 육중한 고철 덩어리는 사막으로 들어오면 빠져버리지.
정말 신기하군.
넌 하나도 안 무서운가 보네? 마을에서 사람들이 우릴 뭐라고 부르는지 못 들었어?
너희를 '강도'라고 하더군.
입 밖으로 내뱉다니 간이 정말 크네.
교수대에서 날 구해준 사람들 역시 너희들이지, 아닌가?
왜 우리를 따라 도망쳤지? 이렇게 되면 마을 사람들 눈에는 너 역시 강도나 마찬가지야.
……혹시 '풍랑에 맞설 수 있다'는 검술을 아는 자가 있을까?
무슨 검술? 지금 나랑 장난해?
아는 녀석은 없는 건가?
들어본 적 없는데.
너희들 배는 어디에 정박하지?
떠나려고? 그렇게는 안 될 거야. 넌 우리와 함께 마을로 가야 돼.
……미안하지만, 난 그럴 생각 없어.
네 생각은 중요치 않아, 애송이.
그런 말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난 내 생명의 은인에게 칼을 겨누고 싶지 않거든.
네 검술이 뛰어난 건 알지만……
윽……
경계심이 조금 부족한 모양이야.
헤헤, 몇 년이나 도둑질을 하면서, 내 기척을 눈치챈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
이 최면 가스로, 푹 잘 수 있겠지.
파스콸라, 너무 들떠있지 마. 캡틴이 찾던 나침반은 어디 있어? 널 구해내려고 우리가 꽤 고생을 많이 했거든, 실망시키지 마.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내가 가져온 건 나침반뿐만이 아니야.
(입을 삐죽거리며) 이 형씨도 말이지, 안 그래?
이 녀석까지 친다면, 그 정도 노력으로는 부족해. 좀 더 써야 하지 않겠어?
설마 네가 계속 말하던 그 연금술사가 이 녀석이라고? 도착해서 캡틴이 저놈의 신분을 확인하고 다시 논의하지.
상관없어. 내 주머니에 들어와야 할 물건은 언젠가 들어오게 되기 마련이니까.
흥.
주방이 어디 있지? 방금 죽다 살아났더니 뭘 좀 먹어야겠어.
2층 선미로 가봐.
친절한 답변 고마워!
으악……!
으아아아아……!!
난 상처에 박힌 가시를 뽑으려는 거지, 자네 다리를 절단하려는 것이 아니야.
이런 가시투성이 칼을 만들다니, 악랄하기도 하지…… 좋아, 지혈됐다.
윽……
좀 참게. 아뇨라 선생을 불러오라 했으니. 나중에 진찰받으라고.
걱정하지 말게. 괜찮아 보이는군. 잘 챙겨 먹으면 금방 회복될 거야.
심사관님. 식량 창고에 난 불을 막 껐습니다만, 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식량에 관한 문제는 내가 방법을 마련해 보겠네.
선생은? 그 사람은 다리가 불편하니 자네가 부축해 와야 할 텐데?
선생님은 이제 안 계십니다.
그럼 어디에…… 뭐라고? 어떻게 된 건가?!
강도들에게 밀쳐져 후두부를 강타당했습니다……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알겠네.
실버 님…… 당신은……?
아팠겠군…… 미안하다…… 조금만 참도록.
곧 나와요, 실버 님. 과부가 곧 아이를 낳습니다!
그 강도들 때문에 놀랐을 수도 있는데, 의사한테 먼저 좀 봐달라고 할 수 없을까요……
……의사 선생님은요?
그만 묻게나. 내가 직접 갈 테니.
그렇게 흔들지 말게. 이제는 깨어날 수 없으니.
심사관님, 저…… 산모가…… 아기가……
아기도 마찬가지군.
심사관님……
선교사, 시체를 잘 지키게. 내일 아침에 장례를 치르도록.
네.
버든비스트를 준비하게. 장례식이 끝나면 자네는 곧바로 아뇨라의 아들을 찾아 무슨 수를 쓰든 마을로 돌아오게 하도록.
마을에 의사는 무조건 있어야 하니.
심사관님, 아뇨라 선생에게 의술을 배우지 않으셨던가요?
연고 만들기를 막 배운 수준으론 의사가 될 수 없네.
의사였다면 이 여인과 아이도 죽지 않았겠지.
가서 볼 일 보도록.
굳게 닫힌 창문을 통해, 아론 마을 사람들은 짙은 안개가 낀 거리에 옅은 분홍빛 등불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실버는 언제 날이 어두워졌는지 몰랐다. 아침 해를 맞아 처형 의식을 위한 옷매무새를 다듬은 것이 방금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도적과 모독자의 피가 아닌, 주민들의 피였다.
……
……
아무런 징조도 없이, 거리 건너편에서 실버는 또 다른 옅은 분홍빛 등불이 스치는 것을 보았다.
마르고 키가 큰 남자의 복부는 피로 가득했고 구멍이 뚫려 있었다. 실버는 그 구멍을 통해 먼 곳을 볼 수 있었다.
남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를 향해 왔다.
거기 자네, 도움이 필요한가?
상처가 아주 심각해 보이는군.
멀쩡합니다, 심사관 님. 당신의 안색이야 말로 좋지 않군요……
저는 새로 온 집행관입니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
윽……
거꾸로 매달린 채로도 푹 잘 줄은 몰랐네, 꼬맹아.
자주 해봤거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네가 살 오두막은 고쳐놨어. 하비에르에게 고마워하라고. 네가 파 놓은 통로를 메운다고 밤에 한숨도 못 잤거든.
날 놓아주면 너희도 귀찮은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잖아.
고집불통이네 정말. 나침반을 수리하면 넌 자유야.
연금술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몇 번을 되물어도 내 대답은 같아.
……
오두막으로 돌려보내. 앞으로 쟤 식사에서 빵은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