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ST-2큐레이터 응접실
대위는 개관식 도중 예술 거리 사람들이 갤러리아 크리슈타와를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받게 된다. 그리고 테러리스트의 공격이 예상된다는 명목으로 행사에 참석한 관객들을 강제로 갤러리에 가둔다.
등장 오퍼레이터: 테크노
하암……
레이넬은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데 도가 텄나. 갤러리 개장 행사를 왜 늦은 시간으로 잡은 거지? 덕분에 아침까지 여기 있어야 할 판이잖아.
레이넬이 엄청난 쇼를 준비한 게 아닐까. 아니면 이렇게 밤을 새우는 계획을 세울 이유가 있겠어?
글쎄. 나는 사실 예술 거리 축제에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취소가 됐더라고. 그래서 딱히 갈 곳도 없어서 왔거든.
장난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닙니까? 우리 같은 중요한 사업 파트너에게도 개관식을 진행할 계획을 알려주지 않는다니……
역시, 갤러리를 운영하는 게 본업이라 그렇지 않겠습니까.
장난? 테라 예술계 투자자의 거의 반이 갤러리아 크리슈타와에 모였어. 혹시 이런 인사들을 우리 벙커힐 본사로 불러들일 장난을 칠 수 있다면 해보지 그래? 잘 모르면 투덜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
네……
팸플릿에 있던 카시미어인…… 이 사람이 갤러리에서 내 작품을 팔 수 있으면 좋겠는데……
여기는 라이타니엔과 달라. 작품에 담긴 이야기가 투자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어야 하지.
그런 건 자네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말했을 텐데. 머리를 염색하고 저급한 말투를 쓰고 누더기를 걸친 다음, 썩어빠진 귀족제도에 대한 반역이라 하면 대중의 흥미를 끌 수 있다고 말이야. 뭐, 네가 싫다면 딱히 더 할 말은 없어.
마지막으로 팁을 하나 주지. 반항아만큼은 아니지만 몰락한 귀족도 그럭저럭 인기가 있으니, 그걸로 투자자들을 잘 구워삶아 보라고.
행사장 내 관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개관식이 곧 시작될 예정입니다.
행사장 내 관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개관식이 곧 시작될 예정입니다.
레이넬이 갤러리 앞 광장에 설치된 단상 위로 올라왔다.
레이넬은 차분히 객석을 둘러봤다. 특히 앞자리에 앉은 관객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참석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이 모두 참석한 것을 확인하자 목을 가다듬었다.
다들 안녕하신가. 지금은…… 아침일까, 오후일까, 저녁일까. 각자의 수면 패턴에 따라 고르면 되겠군.
박수를 친 분에게도, 치지 않은 분에게도 감사를 표하지. 어쨌든 모두가 두 태양의 도시에서 이 환상적인 광경을 보기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내줬으니 말이야.
흥.
따뜻한 환영에 감사하지.
오늘, 우리는 함께 새로운 역사를 열 것이네. 언젠가 먼 미래에는 잊히겠지. 하지만 오늘 밤은 여기 오신 모든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밤이 되리라 확신하네.
말솜씨는 좋군.
볼리바르를 구하소서, 도솔레스를 구하소서 ♪
머리가 텅 빈 관광객은 돈을 퍼붓네 ♪
이 도시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 없다네 ♪
가사가 좀 진부한데. 내가 도와줄 테니 지금 시대에 더 어울리는 가사로 바꿔보자고.
연립정부를 구하소서, 코발스키를 구하소서 ♪
군부 수장과 슬럼가 재벌이 손잡고 침대에 눕네 ♪
그 괴짜가 잠에 드는 밤에 ♪
도솔레스에, 그리고 갤러리아 크리슈타와에 온 것을 환영하네.
본격적으로 개관식을 시작하기 전에, 이번 행사가 그대들에게 보여줄 새로운 시대를 소개하려 하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이들이 갤러리나 개관식을 보러 온 건 아니라고 생각하네.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 “카시미어 졸부의 망나니 아들이 벌이는 괴상한 행사로군.”
그대들은 예술보다 수익성을 중요하게 생각할 테니, 내가 이 자리에서 그대들의 호기심과 탐욕을 채워주려 하네.
자, 가지고 있는 단말기를 꺼내 하늘 높이 들어 주게.
그대들은 고상하고 세련된 취향을 가졌다 자부하더군. 예술계의 흐름을 언제나 따라잡고 있다던가.
휴대용 단말기는 어떤 물건인가? 위대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한 발명품이네. 시간을 낭비한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도시 어디에 있더라도 최신 소식을 확인할 수 있지. 이렇게 우리 모두를 이어주는 장치이네.
마치 금광이라고 할까. 나는 이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광맥에서 예술을 채굴할 생각이네. 이제 쏟아지는 금은보화로 그대들의 지갑을 가득 채울 수 있겠지.
그대들에게 소개하겠네. 세상을 뒤바꿀 발명품, 도시 간 네트워크에 혁신의 새 물결을 불러올 세기의 발명품……
가상 작품 수집 프로젝트!
음?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무슨 소리야? 바로 위층에 사는데?
아, 이름이…… 피스토? 맞나?
그래, 맞아.
다쳐서 치료받으러 간 거 아니었어?
지금 상처가 중요해? 그동안 레이넬이 우리 동네에 쳐들어와서 작품을 망치면 어쩌려고?
그렇지!
차라리 이러면 어떨까? 우리가 갤러리로 가는 거야! 가서 화끈하게 놀아주는 거지!
화끈한 거 좋지!
그래, 좋았어! 그 자식에게 질 순 없지!
가상 작품 수집 프로젝트? 우리가 투자한 돈으로 이런 거나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게. 곧 많은 예술가들이 붓과 종이에서 벗어나 단말기로 작품을 그려 도시 간 네트워크에 올리게 되겠지. 이제 그대들은 도시 간 네트워크에서 작품에 투자할 수 있는 것이네.
예를 들어, 내가 갤러리에 소장한 작품의 완벽한 복제본을 만들어 도시 간 네트워크에 올리면 그대들은 단말기로 언제 어디에서도 작품의 세세한 부분까지 감상할 수 있겠지.
이제 아무도 작품을 훔치거나 가짜를 만들 수 없을 걸세. 바로 그대들이 가상 작품의 모든 권리, 그러니까 작품의 판매, 파괴 등의 행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를……
그건 예술에 대한 모독이야!
모독이라? 내가 예술을 모독하고 있다고? 옆에 앉아 계신 뱃살이 늘어진 투자자를 보게. 모독이라면 저 사람이 전문가지.
그대들은 창작자의 의도나 메시지에 관심이 전혀 없네. 작품의 의미가 아니라 작품이 가져올 돈만 해석하려 하지. 시장의 유행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면서 말이야.
당신은 뭐가 다른데! 당신 아버지도 똑같은 짓을 했어!
내가 언제 슈테판 코발스키가 예술을 모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적이 있나?
자네 옆에 있는 그 유약해 보이는 자는 어떨까. 저 자도 결국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모독하길 바라고 있겠지. 아닌가?
정신이 나갔군.
지금 관객이랑 말다툼을 하는 것도 개관식의 일부인가?
예전부터 괴짜라고 유명한 사람이었잖아. 다들 알고 있지 않았어? 어때?
……
들은 척도 안 하네. 종일 단말기만 만지고 있고.
흥.
(작은 목소리로) 어디를 가도 다 똑같아. 위선자들 같으니.
대위는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사기 전에 음흉한 표정을 지우고 아무 관심 없다는 듯한 표정을 떠올렸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제 테라 역사상 첫 가상 작품 수집 프로젝트의 작품을 공개하겠네.
단상 아래의 관객들은 일순간 숨을 죽였다.
관객들은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레이넬이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이넬도 편안한 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레이넬도 돈을 원한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레이넬은 여느 사업가와 달랐다. 다른 사업가들은 친절한 얼굴을 하고 암묵적인 규칙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선에서 돈을 벌었지만, 레이넬은 다른 사업가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했다. 즉, 돈을 받으면서도 그들을 업신여기고 있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상관없는 일이었다. 레이넬이 돈을 원하는 이상 다른 사업가들 역시 레이넬을 골수까지 빨아먹을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목소리로) 어떻게 할까요?
(작은 목소리로) 일단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자고.
(작은 목소리로) 어떤 수집품을 꺼낼지 봐야겠어.
(작은 목소리로) 도시 간 네트워크는 새로운 분야에 투자할 만큼의 가치가 없지만, 이 정신 나간 놈이 정말 대박을 터뜨렸을 가능성도 있잖아.
(작은 목소리로) 어쨌든 우리가 노리는 것을 차지할 방법은 많아.
오늘 그대들에게 선보일 작품은 내가 도솔레스에 왔을 때 친절하고 자상한 환영을 베풀어 준 이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있네. 그 마음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제작했지. 다른 작품과 절대 비교할 수 없을 걸세.
소개하지, '왕짜증 대위'!
대, 대체 이런 게 무슨 가치가 있다고……?
정신이 완전히 나갔군! 뇌가 썩어버린 도련님 같으니!
이제 끝이야. 다 끝났어. 이게 무슨 갤러리야. 나는 왜 미술로 먹고살겠다고 한 거지……?
어, 저기. 저 가상 작품 어쩌고 하는 거…… 레이넬이 당신을 주제로 만든 작품 같은데?
나?
대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위의 시선은 손에 쥔 단말기에서 발표 화면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레이넬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때 대위와 레이넬의 시선이 마주쳤다.
마테오 대위. 우리의 즐거운 첫 만남을 기념해 선물을 하나 더 준비했네.
자네는 테라 역사상 최초의 가상 작품 수집 프로젝트 모델이 될 걸세.
앞으로 나와서 하나 골라보게. 기꺼이 무료로 제공하도록 하지.
관객들의 시선이 대위를 향했다.
대위는 레이넬에게 아무 답도 하지 않은 채 말이 없었다. 대신 단말기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기다렸던 소식이 도착한 것을 확인했다.
필요 없어, 레이넬. 너나 잘 간직하라고.
미안하지만, 모두에게 긴급히 알릴 소식이 있다.
당신, 누구야?
나는 도솔레스의 볼리바르 연립정부의 대표자다.
이 갤러리가 테러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안전을 위해 전원 내 지시에 따라주기 바란다.
현재 폭도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한다. 내 부하들을 따라 갤러리 실내로 대피하도록.
지평선 너머에서 갤러리로 다가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선명하게 보이며 그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 이쪽으로.
잠깐! 칸델라 님을 찾아서……
그럴 때가 아니야. 거기 너, 데리고 가.
예.
가지, 레이넬.
마테오. 내 개관식을 위해 이렇게 성대한 깜짝 행사를 준비했을 줄이야.
저 녀석이 좋아하는 발코니로 끌고 가. 해가 뜨는 걸 볼 수 있게 말이야. 대화는 나중에 하지.
아, 그리고 레이넬이 직접 계단을 오르게 해.
상황은?
관객들 대부분은 협박…… 아니, 지시에 따랐습니다. 갤러리아 크리슈타와 내부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저희 말에 따르지 않고,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이 일부 있습니다……
소란이라고?
일단 고분고분한 사람들부터 갤러리로 보내. 그리 남은 놈들은 목에 칼을 들이대. 그래도 소란을 피우나 보자고.
예.
예술 거리 놈들은 어떻게 됐지?
몇 분 내로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가 보낸 인원들이 선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갤러리에 도착해서 사고가 터지기만 하면 테러리스트로 몰아갈 수 있을 겁니다.
곧 동이 트겠어. 서둘러야 해.
저 모퉁이만 돌면 바로 갤러리야!
하하, 레이넬이 놀라는 꼴을 빨리 보고 싶네.
좋아! 레이넬의 갤러리를 부숴버리고 쓰레기 같은 작품들을 다 털자고!
뭐?
무슨 소리야?
뭐……? 무슨 소리라니? 아까 화끈하게 놀아보자고 했잖아.
화끈하게 놀아보자는 건, 레이넬의 개관식을 뒤엎고 예술 거리 사람들의 축제를 벌이자는 뜻이었는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어, 그게……
아, 아무튼! 먼저 가서 망을 볼게!
테크노!
어?
저 남자 말인데. 내 위층에 산다고 했는데…… 거짓말 같아.
계속 말해봐……
……
왜 그래?
행상인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저 모퉁이를 지나 보이는 갤러리의 광장을 가리킬 뿐이었다.
광장에는 단상과 좌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관객이 좌석에 두고 간 외투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명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