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5소방 통로
리허설 소식이 도솔레스 전체에 퍼졌고, 미워시는 Ela에게 축제 날짜를 미루도록 설득해 주길 부탁한다. 하지만 레이넬의 갤러리 개관식과 예술 거리 사람들의 축제일은 각자 미룰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
지난밤, 예술 거리에 한 쌍의 거대 목제 인형이 나타났습니다. 인형을 본 시민들은 그 엄청난 크기에 놀랐는데요.
이 아름다운 인형들은 지역 예술가가 제작했다고 합니다. 어제 인형들이 달빛 아래에서 선보인 화려한 춤사위는 리허설이었습니다.
영상 자료를 보시면 인형을 제작한 예술가가 인형을 조종해 아름답게 춤추는 모습이 보이는데요. 마치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해당 지역은 갱단과 노숙자가 많이 사는 곳으로 폭력이 동반된 범죄의 발생률이 매우 높다고 알려졌습니다. 많은 시민이 기피하는 지역이지만, 어젯밤에는 인형의 춤을 구경하려 위험을 감수하고 나온 시민이 많았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를 연결해 리허설을 직접 관람한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아이스크림 주세요.
……
사장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인형이 나타났을 때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조깅하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건물 사이로 거대한 얼굴이 나타나지 뭐야. 너무 놀라 넘어졌다니까.
하지만 용기를 내서 다가가 공연을 봤는데……
공연이 끝난 후에도 다리가 계속 떨리더라고. 이번에는 무서워서가 아니라 감동받아서 그랬지만.
그렇군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니 다리가 계속 떨렸다는 말씀이 사실인 것으로 보이네요. 다음으로 이 지역에 거주하는 예술가와 대화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어째서 인형을 이렇게 거대하게 제작했을까요? 이 인형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요?
자, 여러분. 어디에 거실 건가요?
쉿……
여러분?
오, 방금 지나간 여자분 보셨나요? 이 지역에서 유명한 분입니다. 아가씨, 잠시 시간 내주실 수 있나요?
음……?
이 공연을 주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게……
아, 됐어. 요점만 말해. 바쁘니까.
그러죠. 두 인형을 제작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요?
이 지역에 시민들의 관심을 이끌려는 노력으로 보면 될까요?
흠, 몇 년 전에 우리 동네에 불이 나서 건물 두 채가 무너졌어. 그때는 아무도 관심 없던데.
불이요……?
(작은 목소리로) 역시…… 기억하는 사람이 없네.
이 인형 공연은 그 화재를 잊지 않으려고 만든 거야. 그리고 그날 우리 곁을 떠난 친구들을 추모하는 거야. 그래서 그 화재가 발생한 날에 예술 축제를 열기로 한 거고.
하지만 갤러리아 크리슈타와도 그날 개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혹시 개관식이 부담스럽지는 않습니까?
리허설 전에는 조금 부담됐을지도. 근데 이제는 별로 안 그래.
예술 축제 개막일에는 훨씬 더 대단해질 거야. 미술관 개관식 따위로는 우리 공연과 경쟁할 수 없을걸.
개관식을 얼마나 화려하게 꾸미든 간에 결국 전해지는 건 단 한 가지뿐……
레이넬은 고작 장사꾼이라는 거지.
미워시, TV는 왜 껐나? 보고 있었는데.
주무셔야죠.
자기 싫네. 하나도 안 졸리단 말일세.
주무십시오.
미워시…… 왜 그렇게 인상을 쓰는 거지? 자네도 기쁘지 않나?
주무셔야 합니다, 레이넬 님.
10년이 넘게 걸렸어. 내가 받아야 했을 생일 선물이 드디어 나에게 돌아와서 정말 기쁘단 말이네.
그런가요? 지금 레이넬 님의 꼴을 보시지요. 말로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전혀 못 믿겠습니다.
저 오르골은 원래부터 내 것이었네…… 어머니가 내 생일 선물로 주시겠다고 하셨단 말이지.
하지만 그 늙은이는 불만이었지. 어머니가 무슨 생각으로 돈이 하나도 안 되는 작품을 만드는지 이해를 못 했어.
그 늙은이에게 어머니는 천재였고, 스타였네. 어머니의 작품은 전시회에서 비싼 가격에 팔렸어야만 했고, 대중이 모르게 어린아이의 침대맡에 놓이는 걸 용납할 수 없었지.
하지만 레이넬 님에게 돌아왔죠. 오래 걸렸지만 제 주인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마음에 쏙 들어. 이제 본모습은 거의 안 남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쏙 드는군.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겠나, 미워시? 내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실까?
레이넬 님이 선물한 것들은 빠짐없이 간직하셨으니까요.
……
왜 말이 없으신가요?
……이제 좀 잠이 오는 것 같군, 미워시.
TV에 나왔던데. 방송에 나가서 그렇게 과시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야.
그렇지만 거대한 인형을 만드는 건 영감 생각이었잖아. 과시하기 싫었으면 미리 생각해 놨어야지.
하아. 테크노, 방금 정부에서 편지가 왔어.
예술 축제가 잘 되면 라이타니엔의 문화교류 대표단이 우리 인형 공연을 보러 온다는군.
그럼……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거야?
그보다는 정부의 개노릇이나 하게 될 수도 있지.
군인, 상인, 정치인…… 이 땅을 노리는 사람들은 널렸어. 이렇게 갑자기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았으니, 앞으로 부담도 커지겠지.
이 일 덕분에 내가 얼마나 무능한지 깨달았어.
그런 말 하지 마. 영감이 오기 전에는 이 동네가 하루 종일 불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어. 신고할 생각도 안 했을걸.
영감이 이곳에 와준 덕분에 우리가 지난 몇 년간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거야. 우리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다들 알고 있어.
영감이 한 모든 일 덕분에 우리가 양지에서 활동할 수 있잖아. 그치?
이제 꿈에 한 발 더 가까워졌어. 뭐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는 거야?
……
좀 더 생각해 볼게, 테크노……
하지만 모두를 아무런 보호 수단도 없이 태양 아래서 걸어가게 할 순 없어.
미워시 씨와 레이넬 씨는 예술 거리의 인형 공연을 보셨나요?
갤러리아 크리슈타와의 개관식을 예술 거리의 축제와 같은 날로 잡으셨죠. 그런데 예술 축제 리허설이 대성공을 거두며 갤러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뺏겼습니다.
혹시 부담되는지요?
비켜 주시겠습니까.
미워시 씨! 질문에 답해주세요!
죄송하지만 오늘은 질문을 받지 않겠습니다.
미워시 씨, 부담감 때문에 답변을 거부하시는 건가요?
물러서십시오.
미워시 씨!
Ela 씨는 도착했나?
네. 전시홀에서 기다리십니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아무도 방해 못 하게 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Ela 씨,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밖에 기자들이 모여들어서 들어오기도 어렵더군요.
미워시 씨. 급하게 부르신 용건이 뭐지?
예술 거리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나 보군요.
응, 그렇지.
쾌활한 사람들이야.
병을 앓는 사람도 있지만 창작에 대한 의지는 그 누구보다 강해.
자신을 예술가라고 부르는 사람은 수두룩하게 봐왔어. 하지만 그 동네 사람들은 예술 자체를 사랑하더라고.
레이넬 님은 어떻습니까?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시죠?
레이넬 씨는…… 확실히 재미있는 사람이야.
그게 다인가요?
안타깝게도 레이넬 씨에게선 거리 사람들과 똑같은 게 보이지 않았어.
예전에 슈테판 님의 그림을 보고 불편하셨다고 하셨죠. 직접 만나본 적이 없으셔서 모르시겠지만, 그분을 만나신다면 그림으로 보는 것보다 수백 배는 더한 불편함을 느꼈을 겁니다.
슈테판 님이 아니었다면 레이넬 님이 그런 분이 되셨을지도 모르죠.
슈테판 님은 카시미어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은 인신공격이나 협박을 일삼고 자금으로 압박까지 하는 사람이었죠.
예술가들이 얌전히 복종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레이넬 님의 어머님께서도 같은 취급을 받으셨죠.
예술가가 당연히 견뎌야 할 고통이 아닌 것 같은데. 괴로운 결혼이었겠네.
맞습니다. 레이넬 님의 어머님께서는 항의의 뜻을 전하고자 본인의 작품을 망치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뒤 그 손상된 초상화가 깊은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며 어마어마한 값에 낙찰되었죠.
슈테판을 떠났어야 했어.
그분은 그러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뿐인 자식을 그 오만한 놈 곁에 두고 떠나시지 못했습니다. 특히 자신과 매우 닮은 아이를 두고서는 더욱.
(깊은 한숨)
미워시 씨. 하필 이런 때에 레이넬 씨에 대한 동정을 유발하는 이유가 뭐야?
정말 예리하시군요. 마치 목에 칼이 들어온 기분입니다.
갤러리아 크리슈타와의 개관식은 레이넬 님의 어머님의 기일에 맞춘 겁니다. 레이넬 님에게 정말 특별한 날이지요.
Ela 씨의 팀이 레이넬 님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아주 잠시만 시간을 벌어주시면 됩니다. 두 행사의 날짜가 겹치지 않도록, 하루만 미뤄져도 괜찮습니다.
……
미안해, 미워시 씨. 도울 수 없어.
뉴스를 봤으면 알 텐데. 그날은 예술 거리의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날이야.
Ela 씨…… 뭐라도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조언이니까요.
그 인형 공연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훌륭한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갤러리의 개관식이 진행되면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테니까요.
일어나셨군요.
나갔다 온 건가?
예. Ela 씨를 만나고 왔습니다.
뭐라고 하던가?
거절했습니다.
역시 그랬군.
왜 이곳에서 만나라고 하신 건지요?
만약 Ela 양이 인형 공연을 맡게 된다면 분명 성공할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그 동네가 꿈꾸는 대로 볼리바르를 대표하는 공연을 할 날이 올 수도 있고.
하지만 그날은 아니겠죠.
어쩐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 지경이야.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데……
솔직히, 날짜 문제만 아니었다면 직접 보러 가고 싶었거든. 아래층에서 미술상이라는 작자들이 퍼가는 쓰레기와 비교하자면……
나는 예술 거리가 창조한 작품에 더 눈이 가네.
이렇게 작품을 칭찬하시는 건 정말 오랜만이군요.
뭐, 그렇지. 다만 안타까울 뿐이야……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불러오는 파장이 아무리 크더라도 위대한 죽음과는 비교할 수는 없겠지.
마지막 폭발물까지 모두 설치했습니다. 개관식에 차질이 없도록 내일 최종 점검을 하겠습니다.
자네에게는 항상 감사하고 있네, 미워시.
……
감사 인사는 됐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레이넬 님? 방금 파괴를 이야기할 때, 레이넬 님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전에 창조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을 때와 비슷하게 말이죠.
비슷할 뿐이지.
하지만 제게는 충분합니다.
누구지……? 왜 하필이면 지금.
괜찮습니다. 제가 받겠습니다.
무슨 전화 한 통이 이렇게 오래 걸리나?
(입 모양으로) 입을 다물질 않는군요!
(입 모양으로) 누구인가?
(입 모양으로) 대위입니다!
(입 모양으로) 무슨 일이라지?
(입 모양으로) 뭐겠습니까? 예술 거리 얘기죠!
아, 됐네. 전화기 이리 주게.
여보세요. 마테오 군? 내가 좀 바빠서 말이야. 용건이 있다면 나중에 이야기하지.
레이넬은 주저 없이 전화를 끊고 전화선을 뽑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