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은심호 열차

RS-6재발권!

사이드 스토리작전 후2024-06-21

부모 사이에서 묻어뒀던 과거가 마침내 밝혀지게 되고, 레토는 아버지를 심판한다. 데겐블레허는 계속 호수 중앙 섬으로 향하는 '회색 모자'의 뒤를 바싹 따르고, 키야르는 성녀와 사람들을 떠나보낸 뒤 자진해서 남는다.

등장 오퍼레이터: 레토, 프라마닉스


이건 20여 년 전의 일이다.

그해 겨울은 여느 해보다 더 추웠던 기억이 난다. 눈은 끝도 없이 내렸고, 사람을 날려 보내기라도 할듯한 거센 바람이 계속 불었다.

그런 날씨에 외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집안에 틀어박혀 밤낮으로 난롯불을 끄지 않았고, 언제든지 따뜻하게 한 모금 마실 수 있도록 난로 위에 따뜻한 차를 올려놓았다.

버든비스트의 우리도 겨울이 오기 전에 모두 두껍게 보수 작업을 했기에, 버든비스트들은 모두 한데 모여 몸을 움츠리고 하루 종일 졸고 있었다.

그때의 쉐라그는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하루를 겨우 지내고 난 다음 날도 여전히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일 뿐이었다.

당시 아직 젊었던 나는 그런 나날들을 견딜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사냥을 하기 위해 몰래 몇몇 사람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눈발이 너무 세서 사냥감은 찾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과 흩어지기까지 한 나는 오기 하나로 계속해서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나는 타티야나를 만났다.


아크토즈

에휴, 이 망할 놈의 날씨!

아크토즈

짐승의 털조차도 안 보이는군,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듣겠는데……

아크토즈

음?

아크토즈

무슨 소리지……

아크토즈

핫, 누구냐!

아크토즈

허튼수작은 부리지 마라! 자신 있으면 어디……

아크토즈

으악!

아크토즈의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 머리 위의 나뭇가지에서 눈덩이가 떨어지며 그의 머리를 맞췄다.

여성의 맑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

하하하, 맞췄다~

???

후후, 난 여기 있다고.

???

바보, 피할 줄 모르는 거야?

아크토즈

너, 너……!

???

내가 왜?

???

너 재밌다. 이런 날씨에 어떻게 산에 올라와 사냥할 생각을 할 수 있니?

???

도련님, 잘생긴 얼굴을 봐서 충고 하나 해 줄게.

???

빨리 집에 가.


아크토즈는 머리를 들었다.

눈보라가 차츰 잦아들었고, 밝은 햇살이 눈앞의 나뭇가지가 뒤엉켜 있는 연리지 나무를 비추며 아크토즈의 얼굴에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흩날리는 눈 사이로 한 여자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여자의 움직임에 따라 작은 눈송이가 흩날렸다. 젊은 타티야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고, 나무 아래에 있는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아크토즈는 갑자기 눈가가 건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작 익숙해졌을 눈의 색이 이 순간만큼은 너무 눈부셨다.

그날의 햇살은 유난히도 밝았다.


시우루스

성녀님, 보세요!

시우루스

이 쉐라간드 동상은 우리 브라운테일 가문이 책임지고 세웠습니다. 높이는 약 30미터, 동상 전체가 매우 단단한 재료로 되어있죠. 앞으로 적어도 수백 년은 파손되지 않을 거예요.

시우루스

동상의 형태는 전문 장인과 자발적으로 지원한 수백 명의 독실한 신도들이 함께 의논하여 만든 것으로, 분명 쉐라간드 님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최대한 잘 살렸을 겁니다!

시우루스

중간에 쉐라간드 님을 사람의 모양으로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한바탕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죠…… 심지어, 성격이 거친 아크토즈는 사람들과 때리고 싸울 뻔도 했어요……

시우루스

하지만 장담할 수 있어요! 앞으로 이 동상은 쉐라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관광 명소가 될 거예요!

엔야

네, 여러분 모두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엔야

크흠…… 이 쉐라간드 동상은 쉐라그가 대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상징물이에요. 이 모습은 모두 여러분이 해주신 노력의 산물입니다.

엔야

쉐라간드 님도 분명 매우 마음에 들어 하실 거예요.

엔야

시우루스 부인, 특히 당신의 언니분께 말이죠.

엔야

두 분께서 동상을 만들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들었습니다. 한 시도 이곳을 떠나지 않으셨다고 하더군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시우루스

흠, 흠흠……

시우루스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걸요. 고생이라고 말할 수 없죠.

시우루스

어차피 억지로 공부하는 것보단 훨씬 쉬우니까요……

엔야

공부?

시우루스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시우루스

크흠, 그렇다면 성녀님,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죠.

시우루스

저를 따라오세요!

키야르

성녀님, 내일 준비 작업은 다 끝났어. 이제 성산으로 돌아가야 해.

엔야

키야르 씨, 잔소리가 늘어난 것 같네요.

엔야

모처럼 산을 내려온 건데, 조금 더 있게 해주세요.

엔야

아니면, 혹시 키야르 씨도 장로님들처럼 저에게 성녀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훈계하실 생각인가요?

키야르

굳이 미움을 살 말은 하지 않아.

키야르

성녀로서의 위엄이 점점 커지는 것 같네, 이젠 하산하는 걸 아무도 통제할 수 없게 됐잖아.

키야르

어젠 직접 산을 내려와 엔시오데스도 만났고. 예전 같으면 장로님들이 진즉에 벌떡 일어나서 반대했을 텐데 말이지.

엔야

그분들은 성녀인 제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아닐까 걱정돼서 그러시는 것뿐이에요.

엔야

하지만 키야르 씨, 통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전 더더욱…… 그럴 수 없어요.

엔야

쉐라그 백성들, 다른 사람들에게 저는 어느 한 특정 세력 또는 특정 가문에게 편파적이면 안 되죠. 제가 대표하는 건 언제나 쉐라그 전체여야만 해요.

키야르

성녀님……

엔야

저와 엔시오데스는 여러 방면에서 견해적인 충돌도 없었고, 쉐라그의 문제에 대해서도 대부분 합의하에 해결할 수 있었지만……

엔야

그렇다고 해서 다시 친해질 수 있다는 건 아니에요. 하물며 남매 같은 사이로 돌아가는 건 더더욱 안 되죠.

엔야

전 그럴 수 없어요. 물론 엔시오데스도 그렇겠죠.

엔야

그중엔…… 제 개인적인 감정 문제도 있지만, 감정 문제뿐만은 아니에요.

엔야

그래서 말인데요, 키야르 씨. 어제 저녁 식사를 준비해 줘서 고마워요.

엔야

하지만,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키야르

엔야……

키야르

엔야, 계속 이대로 지내도 정말 괜찮겠어?

키야르

지금 네가 쉐라그를 대표하는 건 맞지만, 많은 사람은 카란 무역회사밖에 몰라. 실버애쉬 가문은 이미 쉐라그의 각 방면에 손을 대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더 세력이 확장되겠지……

엔야

……

엔야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

엔야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은 쉐라그를 빠르게 발전시키는 거예요. 물론 어떤 일은 어쩔 수 없기에, 그냥 눈감아줄 뿐이죠.

엔야

어쨌든, 우리에게는 카란 무역회사 같은 존재가 필요하니까요.

엔야

그리고 엔시오데스도 자신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저도 일단은 받아들일 수 있어요……

키야르

하지만, 계속 이대로 나아가면 아주 위험할 텐데?

엔야

그래서, 저도 저만의 준비를 해 뒀죠.

키야르

음, 요 몇 년 동안 네가 주관해서 새로 지은 학당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만주원 내부의 개혁을 말하는 거야?

엔야

후훗.

엔야

덕분에 우리에게 지혜로운 동포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엔야

성녀 한 사람, 혹은 실버애쉬 가문의 목소리만 있는 쉐라그보다는 더 많은 목소리가 있는 쉐라그, 모든 쉐라그인의 쉐라그가 더 좋지 않을까요?

엔야

마치 기도처럼 말이에요. 전에 속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소원을 입 밖으로 말하면 어쩌면 쉐라간드가 정말로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죠?

엔야

저는 더 많은 사람이 쉐라그에 대한 그들의 바람을 말할 기회를 갖기를 바라고 있어요.

엔야

이게 바로 제가 쉐라간드께 이뤄달라고 기도하는 소원이죠.

키야르

……음, 아주 훌륭한 소원이야.

키야르

쉐라간드도 분명 들을 수 있을 거야.

엔야

그렇다면 정말 좋겠네요.

엔야

도와주실 거죠, 키야르 씨?

키야르

물론이지, 약속했잖아.

키야르

난 네 시녀장이야.

엔야

고마워요, 키야르 씨.

키야르

만약 정말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으면……

키야르

……어?

키야르

……

키야르

어머, 이쪽으로 오고 있는데?

엔야

키야르 씨?

엔야

누가 오고 있나요?

키야르

응, 그것도 기세등등하게.

키야르

속도가 아주 빨라…… 완전 이쪽으로 오고 있는데. 음…… 당장이라도 한판 붙을 기세야.

엔야

쉐라간드 동상 근처에서 싸움을 벌이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키야르

내 말이.

키야르

아무튼, 성녀님은 일단 좀 피해 있어. 시우루스 부인 쪽에도 사람을 보내서 알리고.

키야르

너나 다른 사람이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엔야

알았어요.

엔야

그럼, 키야르 씨는요?

키야르

나는 남을 거야.

키야르

만약 사고…… 어, 만약 사고가 나서 쉐라간드 동상이 부서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키야르

여긴 내가 남아서, 쉐라간드 동상에 절대 '큰일'이 생기지 않게끔 할게!

엔야

……

엔야

키야르 씨……

엔야

잠깐만요, 당신 설마……

키야르

……!

키야르

어머, 다가오고 있네! 일단 여기까지 하자. 우선 가서 지켜보고 있을게!

엔야

저기 잠깐! 키야르 씨!

엔야

……가버렸네.

엔야

……

엔야

키야르 씨가 기회를 틈타 쉐라간드 동상에 무슨 일을 벌일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엔야

이 동상의 얼굴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레토

이쪽은 나무가 많지 않으니까 나아가기 쉬워.

레토

조심해라, 저 앞은 깊어.

레토

……그리고, 네가…… 정말 내 아빠야?

레토

근데 있지, 엄마 말로는……

아크토즈

타티야나가 내 얘기를 한 거냐?!

아크토즈

타, 타티야나가 너에게 뭐라고 했지?

레토

거의 얘기하지 않았어. 어른이 되기 전까진 난 아빠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냈으니까. 난 아빠가 죽은 줄 알았지.

레토

그래서 엄마는 아빠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어. 심지어 내가 무언가를 기억하게 될 나이가 되고 나서는 쉐라그에 대한 얘기도 거의 하지 않았지.

레토

그동안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지내왔어. 난 전혀……

아크토즈

그런 건가……

아크토즈

하긴. 녀석은…… 녀석은 계속 날 원망했을 거야.

아크토즈

원망하는 게 당연해! 그건 내 잘못이었으니까, 그냥 원망하면 돼, 계속.

아크토즈

아무래도 내가 없는 동안에도 타티야나는 잘 지냈던 모양이구나……

레토

……

레토

이곳에 오기 전에, 엄마가 말해줬어. 쉐라그의 눈은 우르수스와 달라서 산도 산기슭도 다른 모습일 거라고.

레토

그리고 엄마는……

레토

그리고 쉐라그는 내 고향이라고 했지. 우르수스에서 자랐지만 쉐라그에서 태어났다고 했어.

아크토즈

타티야나……

아크토즈

확실히 타티야나가 할법한 말이야. 타티야나는 산꼭대기의 눈을 매우 좋아했지…… 산 위의 눈과 산 아래의 눈은 다른 것 같다고 늘 말했었거든.

아크토즈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렇게 감성적이지 못했던 사람이라,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

레토

하하,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레토

하지만, 엄마는 내게 어렸을 때의 일이 모두 기억나지 않을 순 있지만, 그때의 경험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

레토

사람은 과거에 겪었던 모든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거라고 했지.

레토

설령 잊어버렸다 해도 그로 인한 영향은 계속 있을 거라고 했어.

레토

지금의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에, 태어난 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에 감사해야 한다고 했어. 그 사이에 있었던 사소했던 일 하나까지도 모두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지. 모든 것이 로잘린드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일부라고 했어.

레토

그리고, 엄마는 이곳에 올 수 없게 됐지만 내 일부는 쉐라그에서 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했지.

레토

그런 엄마의 말 때문에 내가 이곳에 온 거고.

아크토즈

타티야나……

아크토즈

……

아크토즈

그때 난 네 어머니와 이곳에서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끌렸지. 만난 후부터 사랑하기까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아크토즈

난 타티야나를 아내로 맞이했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지. 이런 강렬한 갈망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어.

아크토즈

하지만 당시의 쉐라그에선, 쉽지 않은 일이었지.

레토

왜?

레토

좋아하면 같이 있으면 되잖아.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아크토즈

그래…… 그건 분명 가장 단순하고, 쉬운 일이어야 했지.

아크토즈

하지만 로잘린드, 너는 쉐라그에 대해 잘 몰라. 적어도 20년 전의 쉐라그에 대해선 잘 모르지.

아크토즈

그때의 쉐라그는 평온한 삶에 안주하며 외부와 거의 왕래하지 않았어.

아크토즈

쉐라그엔 재앙이 없었다. 모든 사람은 이 모든 것이 쉐라간드의 보호 덕이라 믿었지. 재앙이 끊이질 않는 바깥세상과 달리 쉐라그를 유일한 낙원이라 믿고 있었어.

아크토즈

그때의 난 쉐라그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고 늘 믿어왔지.

아크토즈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우린 폐쇄적, 맹목적이었던 거였어…… 이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야.

아크토즈

당시 고향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방목하고, 쉐라간드에게 기도를 드리면서 살았어.

아크토즈

거리에선 외부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외부인에 대한 태도도 사실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지.

레토

……

레토

그래서 엄마가……

아크토즈

네 어머니의 성격은 네가 제일 잘 알겠지.

아크토즈

타티야나의 성격은 열정적이었고, 시원시원했어. 게다가 사람의 눈길을 끄는 걸 좋아했고, 자신이 다르다는 걸 절대 숨기지 않았어.

아크토즈

그런 그녀에게 나는 완전히 반해버렸지.

아크토즈

하지만, 그건 당시의 쉐라그에 있어선 너무나도 이색적이었던 것이었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거야.

레토

쳇.

레토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설마 그런 이유 때문에 망설여져서 다른 나라의 여자와 결혼하지 못했다는 거야?

레토

잠깐, 그렇다면 나는? 엄마랑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날 낳았다는 거야?!

레토

어이, 수염 아저씨. 이게 농담이라면 조심해야 할 거야.

아크토즈

잠깐, 로잘린드! 흥분하지 마라…… 그런 게 아니야!

아크토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내려놔! 내려놓으라고!

레토

그렇다면 어떻게 된 건데?

아크토즈

난 당연히, 콜록, 당연히 네 어머니와 결혼했다!

아크토즈

반대가 매우 심하긴 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어. 당시 실버애쉬 가문의 가주가 외국인 부인을 아내로 맞이했거든.

아크토즈

당시 페일로쉬 가문의 입장에서 보면, 가문이 꽤 난처해질 수도 있었겠지. 그래도 나는 방법을 찾아 페일로쉬 가문의 가주였던 아버지를 설득했어.

아크토즈

로잘린드, 너도 이미 만났겠지. 어제 아버지가 너를 데려왔을 때에는 너무 취해있던 터라 너를 알아보지 못했었지만.

레토

……그 말은…… 그 할아버지가……

레토

내 할아버지라는 거야?!

아크토즈

그래, 맞아.

아크토즈

그때의 아버지는 내 결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딱히 방해도 하지 않았어. 그 일은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

아크토즈

하지만 타티야나와의 결혼식에 많은 사람을 초대하진 못했어, 난 그게 정말 아쉬웠지.

아크토즈

근데 오히려 타티야나가 나를 설득하더군. 자신은 그런 형식적인 것에 개의치 않는다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끝까지 굳건하게 나아갈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

아크토즈

그리고, 그 후에 네가 생긴 거야.

아크토즈

너희와 함께했던 그 몇 년간은, 내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어.

레토

……

아크토즈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지. 네가 태어난 후 얼마 안 되어 실버애쉬 부부에게 사고가 생긴 거야.

아크토즈

당시의 쉐라그에는 실버애쉬 부부가 주장하는 개혁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운 상황이었어. 그 때문에 실버애쉬를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

아크토즈

물론,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세 가문의 가주에게 도전하진 못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여자를 몰래 공격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어.

아크토즈

실버애쉬 부부를 죽게 만든 그 사고는…… 말로는 사고라고 하지만…… 사실 그런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어.

레토

……잘은 모르지만, 페일로쉬 가문은 보수파라고 박사가 말했던 기억이 나.

레토

그래서,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엔 페일로쉬 가문도 포함됐다는 거네?

아크토즈

……그래.

아크토즈

네게 뭔가 대단한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로잘린드, 너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아크토즈

실버애쉬를 제압하는 것은 당시의 페일로쉬 가문에 있어서 득이 되는 일이었고. 그런 결정은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

아크토즈

그래서…… 페일로쉬는 쉐라간드의 가장 독실한 신자이자 호위가 되었고, 브라운테일은 늘 현명한 결단을 내리는 영리한 추종자가 되었어.

아크토즈

그리고, 실버애쉬는 신앙을 파괴하고, 쉐라그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하는 악당이 되었던 거다.

아크토즈

당시 세 가문은 이렇게 정의되었고, 이게 바로 당시 쉐라그의 실제 상황이었어.

아크토즈

그리고 나는 페일로쉬 가문의 차기 가주였기에 가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할 수는 없었지.

아크토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레토

……그래서 나와 엄마를 포기했구나.

아크토즈

아니야!

아크토즈

나는 너를 포기한 적 없다. 타티야나는 더더욱 포기할 수 없었고!

아크토즈

하지만, 사람들이 한 차례의 '사고'에 만족했을까?!

아크토즈

실버애쉬 부부는 이미 죽었고, 나는…… 우르수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다.

아크토즈

놈들은 타티야나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쉐라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상관하지 않았어.

아크토즈

당시 상황 속, 사람들의 눈에 비친 타타야나는 우르수스 여자, 배척해야 할 대상, 쉐라그를 파괴하려는 외국인이었지.

아크토즈

로잘린드, 나는 많은 피를 흘렸던 전사다. 난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어.

아크토즈

하지만 그때, 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크토즈

나는 처음으로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지.

아크토즈

나는 두려웠다……

레토

……

레토

…………

아크토즈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너희 모녀가 쉐라그를 멀리 떠나게 하는 거였다.

아크토즈

설령 헤어진다고 해도, 나중에 다시는 볼 수 없다고 해도, 다시는 너희 곁을 지킬 수 없다고 해도.

아크토즈

적어도 나는 너희 모녀가 어디선가 정상적이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크토즈

그렇게 된다면, 어느 날 타티야나와 네가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아니면 내 곁에서 불상사를 겪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아크토즈

그렇게 되면 내 곁에 '사고'라는 두 글자를 남기지 않아도 되니까……

레토

……너……

아크토즈

이게 바로 나와 타티야나의 과거다.

아크토즈

로잘린드, 난 너희 모녀에게 너무 많은 걸 빚졌어. 그건 이 아크토즈도 절대 부인하지 않는 사실이다.

무기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눈밭에 떨어졌다.

이어서 아크토즈는 자신의 도끼를 딸 앞에 던졌다.

차가운 도끼날에 비친 햇볕이 거울처럼 부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아크토즈

네가 나를 원망하든, 미워하든 난 모두 받아들일 생각이다.

아크토즈

욕설을 퍼부어도 분이 다 풀리지 않는다면 이 도끼를 내게 휘둘러라, 피하지 않을 테니까.

아크토즈

하지만 그다음, 다음에는…… 내게 기회를 한 번 더 줄 수 없을까, 로잘린드?

레토

……

아크토즈

너…… 너를 난처하게 하고 싶진 않아!

아크토즈

나는 그저 여전히 너희 모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아크토즈

너와 네 어머니에 대한 내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 없으니까.

아크토즈

그래서……

아크토즈

만약 네가 원한다면, 로잘린드……

아크토즈

다시 한번 아빠라고 불러줄 수 있을까?

레토

……

레토

아빠라고…… 불러 달라고……?

레토

……

레토

난……

아크토즈

로잘린드……

레토

웃기지 마! 꿈 깨시지!

[CG: 45_i09]
아크토즈

……?

아크토즈

로, 로잘린드?

레토

한참 동안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더니,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이 이거였어?!

레토

지금 장난해?

레토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 도끼는 왜 내 앞에 던진 거야? 내가 널 베어버리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런 거야?

아크토즈

그, 그런 뜻이 아니라……!

레토

네 의도가 뭐였든 상관없어!

레토

말은 그럴싸하게 했네. 아내로 맞이했다느니,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다느니.

레토

참나, 내가 바보인 줄 알아?

레토

네 말을 들어보니까, 그때 엄마가 어떤 처지였는지 상상이 돼.

레토

넌 엄마를 혼자 내버려뒀잖아. 그리고 사람들의 적개심이 가득한 환경 속에서 몇 년 동안이나 내버려뒀지, 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게까지 했어.

레토

하지만 엄마는 위험에 놓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어. 어쩌면 목숨의 위협을 받았을 수도 있었겠지! 근데 그렇게 해서 얻은 게 떠나야 한다는 결과였던 거야?

레토

우르수스인 혼자서 왜 쉐라그에서 이런 취급을 받고, 견뎌야 했는지, 넌 생각해 본 적 있어?!

아크토즈

난……

레토

엄마는 탐험과 새로운 것들을 좋아했어, 그래서 여러 장소에 가는 것을 좋아했지.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이었어.

레토

엄마는 친구를 사귀기 좋아했고, 쇼핑과 각지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좋아했어.

레토

근데 네가 말한 20년 전의 쉐라그가 어떤 면에서 엄마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해?

레토

조금이라도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어?!

레토

네 이야기에 나온 엄마에게 있는 건 너 하나뿐이었어!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고!

레토

넌 엄마가 열정적이고 사람의 눈길을 끄는 걸 좋아했다고 했지. 근데 있잖아, 네가 방금 말한 내용 속에는 타티야나 예브게니예브나 라리나의 모습이 전혀 없어!

레토

아내와 딸이 곁에 있어서 행복했다고?

레토

하……

레토

대단하네, 아직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아크토즈

타티야나……

아크토즈

나는, 나는……

레토

이제 와서 울어봤자 이미 늦었어.

레토

우리가 우르수스에서 어떤 나날을 보냈는지 알기나 해?

레토

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 그거로 만족한다고?

레토

헛소리는 집어치워!

레토

날 홀로 키우는 엄마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얘기들이 오고 갔는지 네가 알기나 해?

레토

당연히 모르겠지.

레토

난 어려서부터 아빠가 없었어. 아빠가 없는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환영'받는지 알아?

아크토즈

누가 널 괴롭혔던 거냐! 감히 어떤 녀석이……!

레토

이제 와서 아빠 노릇이야? 집어치워.

레토

괴롭혔다고? 전혀.

레토

하지만 그건 너랑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야. 나 혼자서, 이 주먹으로 헤쳐 나갔어. 차라리 동장군이 너보다 더 큰 도움이 됐지.

레토

있잖아, 난 어려서부터 아빠가 없었던 탓에 나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입으로만 떠드는 녀석들은 주먹을 사용해 입을 다물게 만들 수밖에 없었지.

레토

내가 어려서 얼마나 싸워댔는지 네가 알기나 할까? 하하, 당연히 전혀 모르겠지!

아크토즈

로잘린드……! 나는……

레토

지금 그따위 말을 해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레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네가 여태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떤 막대한 책임이 있었는진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레토

이미 십여 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앞으로도 나타날 필요가 없다는 거지.

레토

내게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 아빠라는 사람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지.

레토

하지만 이젠 필요 없어졌어.

레토

내가 용서해 줬으면 좋겠다고?

레토

혹시 내가 너랑 엄마 사이에서 다리라도 되어줄 줄 알았어? 엄마가 너를 용서할 수 있게?

레토

허튼 생각 마!

아크토즈

아니! 너희에게 용서를 바란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크토즈

하지만 난, 너희 모녀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어……

아크토즈

……아니, 잠깐만.

아크토즈

로잘린드, 방금 뭐라고 했지? 네 엄마가…… 날 용서한다고?

아크토즈

하, 하지만 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게……?!

레토

지금 우리 엄마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레토

누구 맘대로 우리 엄마가 죽었다는 거야, 어?

아크토즈

아니 근데, 타티야나의 유물을 갖고 왔다고……

레토

응 맞아. '유물'인데……

레토

……'유물'?

레토

음, 잠깐만. 잠깐 찾아볼게.

레토

……

레토

아, 그게 있지, 내 말은 엄마의 신물, 그러니까 증표를 갖고 왔다는 얘기였는데……

레토

쳇, 쉐라그어는 너무 어렵다니까. 발음이 조금 서툴러서 그렇지 완전히 틀린 건 아니잖아……

아크토즈

타티니야가 아직 살아있다는 거냐? 자, 잘 지내고 있어?

레토

엄마는 잘 지내고 있어. 그저 출발하기 전에 다리가 부러져서 나 혼자 왔을 뿐이야.

레토

하지만, 몇 년 전 체르노보그 사건으로…… 흠, 아냐 됐어. 말해도 모를 거야.

레토

아무튼, 몇 년 전 난 사고를 당했고, 엄마가 나를 찾기 위해 재앙 구역에 갔는데…… 나는 운 좋게 로도스 아일랜드에게 구조되었지만, 엄마는 광석병에 걸려 버렸어.

아크토즈

그럴 수가……

아크토즈

그렇다면 지금 너희는 어디서 살고 있는 거지? 로도스 아일랜드…… 그래! 로도스 아일랜드는 광석병을 치료할 수 있지! 지금 너희는 그곳에 있는 거냐? 그곳 사람들은 너희를 잘 대해주고 있고?

아크토즈

그곳의 박사라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래, 지금 바로 박사한테 연락을……!

레토

뭐라는 거야, 박사를 더 잘 아는 건 나야.

레토

뭐 됐어, 이 얘기는 나중에 하자. 생각만 하면 화가 치솟으니까.

레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찾는 거잖아? 빅토리아 사람들이 함부로 막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두는 건 너희들에게 안 좋은 상황인 거지?

레토

사실 방금 방법을 찾았어. 말하려고 했는데 너 때문에 말이 끊겼을 뿐이야.

아크토즈

뭐라고? 어디서 탈출할 수 있다는 거야?

레토

저쪽이야.

레토

저기 가서 서봐.

아크토즈

하지만 로잘린드, 저긴 벼랑뿐인데……

레토

음? 그건 나도 알아.

레토는 자신이 아버지라고 밝힌 남자의 등 뒤에 서더니, 서슴없이 남자의 등을 걷어찼다.

무방비 상태였던 아크토즈는 레토에게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낼 틈도 없이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다.

아크토즈

으아아악……!

아크토즈

로잘린드, 조심해라…… 여기에…… 크헉!

레토

목소리 정말 크네.

레토

소리 좀 그만 질러, 누가 보면 내가 너한테 뭐라도 하려는 줄 알겠어……

레토

진즉 봐뒀어, 여긴 그렇게 높지 않아. 게다가 밑은 전부 눈이지, 뛰어내려도 아무런 문제 없어.

레토

쉐라그인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눈 다이빙도 모르는 건가?

레토

아.

레토

아 맞다.

레토

저기, 전혀 미남은 아닌 수염 아저씨.

레토

지난 십여 년 동안의 양육비 정산하는 거 잊지 마. 나중에 네 집으로 청구서를 보낼 거야.

레토

……

레토

하…… 이제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네.

레토

그러면, 응……

레토

만일에 대비해서, 아무래도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박사에게 얘기해야겠어!

레토

하아, 분명 관광하러 온 거였는데 지금 이게 뭐 하는 건지.

레토

아, 연결됐다.

레토

박사?

레토

아 그쪽도 이제 거의 다 도착했다고?

레토

응, 여긴 별일 없어. 근데 말해야 할 게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