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1주의사항
레토의 처지를 알게 된 자작은 크게 감동한다. '회색 모자'는 열차 내에서 조사 작전을 펼치다가 데겐블레허와 마주쳤고, 열차에 어떠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 굳히게 된다.
기억나는 건 끝없이 펼쳐진 흰 눈이었다.
어릴 적, 나는 나무로 만든 작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방 안에는 벽난로가 타닥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창밖에는 밤새 눈이 펑펑 내렸다.
바람 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렸고, 누군가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나를 재웠다.
나는 포근한 편안함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난 그곳이 우르수스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곳이 우르수스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건 쉐라그의 바람.
그리고 쉐라그의 눈이었다.
그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었다.
그러니까…… 로잘린드 님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쉐라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가요?
맞아. 엄마는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해준 적이 없었거든. 처음엔 장난치는 줄 알았다니까!
어렸을 때의 일은 거의 기억나지 않아. 그냥 온통 눈이었던 것만 기억날 뿐이지…… 하지만 우르수스도 곳곳이 눈투성이잖아!
누가 구분이나 하겠냐고.
음, 그러고 보니 확실히 비슷한 점이 있긴 하군요.
하지만 제 기억엔 우르수스가 쉐라그보다 추웠습니다.
어…… 맞아. 우르수스가 더 춥긴 하지.
아저씨도 우르수스에 가본 적 있어?
하하, 벌써 몇 년이나 됐죠.
그때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한 게 정말 아쉬울 뿐입니다!
다음에 갈 일 있으면, 내가 가이드를 해 줄게.
우르수스는 다른 건 몰라도 디에티 그라이퍼부르크의 경치가 일품이거든.
정말 감사합니다. 음, 아무래도 두꺼운 옷을 입어야겠군요.
우르수스에 가기 전에, 우선은 제가 먼저 로잘린드 님의 가이드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일단 먼저 이 열차의 목적지에 있는 새로 지어진 동상, 쉐라간드 동상에 대해 말씀해 드리죠.
그건 은심호의 중앙에 있는 섬에 세워져 있죠. 눈에 매우 잘 띕니다. 역에서 나오면 바로 보일 정도입니다.
물론 로잘린드 님에게 쉐라간드 동상이 중요하지는 않겠죠……
아무래도 쉐라그엔 관광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 테니까요.
맞아.
그래도 먼저 엄마 대신 쉐라간드 동상을 보려고. 엄마가…… 전에 말해줬던 동상이거든.
보고 난 후에 은심호 근처에 있는 산으로 갈 거야.
이 상자 안에 든 걸 그 산 정상까지 가져가야 하거든.
그 안에 들어있는 건 뭔가요?
나도 몰라. 엄마도 말해 주지 않았거든.
이거를 그 산에 버리라고만 했을 뿐이야. 엄마는 그거면 만족할 거라고 했지.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홀로 이것에 온 거였군요……
깊은 효심, 착한 마음씨,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아, 그 정도로 거창한 건 아니야.
자,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이걸 산에 버린 이후의 계획 말이야?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 여기저기 돌아다니겠지.
……
어쩌면…… 아빠를 찾으러 갈 수도 있고.
아버지가 아직 쉐라그에 계시는 건가요?
사람을 찾는 일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하지만 난 아빠 이름을 몰라. 얼굴도 기억이 안 나고.
그래도 엄마는 아빠더러 엄청난 미남이라고 했지만.
아하, 미남이시군요.
맞아! 당시에 쉐라그에서 이름난 미남이라고 들었어. 꽤 유명했던 것 같아.
아, 그리고 내 눈이 아빠를 똑 닮았대.
쉐라그에서 유명했다고요? 그것도 미남으로? 흐음……
생각나는 사람 있어?
음……
만약 그분께서 로잘린드 님 또래의 딸이 있으시다면, 그건 빅토리아에서 유학할 때일 텐데…… 음……
아,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때의 우르수스는 혹시……
무슨 소리야?
아, 하하. 조금만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빠를 찾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네.
가슴 뭉클한 부녀의 만남인가요?
쳇.
그건 아니야.
10년 넘게 모습도 보이지 않은 망할 인간이,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나 보고 싶을 뿐이야.
최신형 '성녀호' 열차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 열차는 정상 운행 중이며, 양측 창문으로 쉐라그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운행 중인 열차 내에서 쉐라그 특산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쉐라그의 특산품인 치즈 간식과 인기 있는 버든비스트 랜덤 박스를 판매 중이며, 카란 무역회사에서 출시한 높은 산의 눈으로 만든 고급 생수를 한정 판매합니다. 말 그대로 산지 직송, 성녀가 엄선한 제품, 품질은 반드시 보장합니다!
구매를 원하는 승객께서는 자유롭게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실례하지.
아, 네. 어떤 걸 드릴까요?
아니, 상품을 보려는 건 아닌데……
일반 상품은 괜찮으신가요? 그렇다면 이 눈으로 만든 고급 생수는 어떠신가요?
이 제품은 삼족 의회에서 지정한 물이어서, 성녀님도 매우 좋아하세요. 게다가 저희 차량에는 물량이 많지 않아서요. 지금 구매하시면 단돈 4프랑입니다!
윽…… 4프랑? 레스토랑에서 한 턱 쏴도 될 금액이잖아!
좀 비싸긴 하지만, 이 포장을 보세요. 맑은 느낌의 포장이 손님이랑 정말 잘 어울리네요!
……필요 없어.
그냥…… 이 랜덤 박스로 하지.
감사합니다!
다음 역까지 얼마나 남았지?
이 열차는 직행이라서, 다음 역은 종착역인 은심호입니다. 중간 역은 없습니다.
도착까지는 2시간 남았습니다!
중간에 내려서 주변 경관을 더 감상하고 싶으시다면, 저희 노선에 모든 역마다 서는 열차도 있으니 그 열차를 이용해 주세요!
감사를 표하지.
천만에요.
(……)
(랜덤 박스? 이게 그렇게 인기 있나?)
(아무리 봐도 별 의미가 없는 장식품일 뿐인 것 같은데.)
(……앞으로 2시간이면 시간은 충분해.)
(이제…… 음?)
……
파울비스트?
(매섭게 쪼아댄다)
뭐야……?!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사방에서 공격한다)
꽥…… 꽤액……!
앗, 내 파울비스트! 어쩌다 뛰쳐나온 거지?!
어디야? 도와줄게!
나도 도울게!
엄마, 나도 파울비스트 잡을래!
(……이런.)
앗, 아저씨! 어디 가는 거야?
……
아저씨도 같이 도와줘!
파울비스트 잡는 거 재밌거든!
……
(……후우.)
(조그만 파울비스트에 어린아이까지 있으니 무시무시하군.)
(쉐라그는 정말 만만치 않은 곳이야.)
(그래도 그 덕에 객실을 살펴볼 합당한 이유를 얻었어.)
실례하지. 혹시 탈출한 파울비스트를 보았나?
못 본 건가? 알았다. 실례했군
(이상 없음.)
(앞쪽 객실에 수상한 점은 없어. 이제 남은 건 맨 뒤에 있는 객실뿐이야.)
(이번에도 또 헛걸음인가 본데.)
실례하지……
……혹시 찾게 되면, 지난 10년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이거 봐 봐. 여기에 오기 전에 나탈리야와 안나에게 부탁했어…… 내 친구들인데, 나 대신 전부 계산해달라고 했거든.
생활비, 교육비, 의료비, 아 그리고 나탈리야가 특별히 제기한 정서적 부재에 대한 보상까지 전부 포함했지.
아무리 잘생겼어도 소용없어! 얼굴로 밥 먹는 것도 아니잖아!
하하하, 정서적 부재에 대한 보상이라. 괜찮네요. 정말 괜찮네요. 응원하겠습니다!
음? 누구시죠? 들어……
오시죠……
……
……
……실례하지, 탈출한 파울비스트를 못 봤나?
파울비스트? 아, 아까 보긴 했는데……
아, 맞아요! 확실히 봤습니다!
자 선생님, 잠시만 이리로. 나가서 파울비스트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시죠!
에? 자세하게 얘기할 필요까진 없잖아. 저기……
뭐야, 이상한데.
……
음…… 빅토리아인가. 부디 별일 없으면 좋겠는데……
자, 이제 파울비스트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어떤 파울비스트이길래 '회색 모자'가 직접 찾아왔는지 궁금하군요.
자작님께서 탑승하고 계실 줄이야.
아, 그쯤 하시죠.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언제부터 '회색 모자'가 관광에 관심이 생겼는지 모르겠군요. 혹시…… 조기 퇴직 신청이 승인되기라도 한 건가요?
……
아무래도 아닌 것 같군요.
자작님, 그렇게 떠볼 필요는 없어.
소문을 하나 듣게 되어서, 관례대로 조사 중이었을 뿐이야.
그 말은 쉽게 믿을 수 없겠는데요.
당신과 나 둘 다, 모두 공작님의 근심을 나누는 사이이니, 서로 더 믿어야 하지 않겠어?
그나저나 자작님께서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아까 같이 있던 여성은…… 우르수스 사람인가?
왠지 낯이 익은 여성인데 말이지.
'회색 모자'……
이 말은 꼭 해야겠군요. 여자분께 그런 식으로 작업을 거는 건 너무 구식입니다.
……그게 아니야.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고해줘서 고맙군.
그리고 전 당연히 관광을 위해 이곳에 온 겁니다.
흠, 그래?
흐음, 말투에 신경쓰시는 게 좋을 겁니다. '서로 더 믿어야' 한다지 않았나요?
이틀 후에 쉐라간드 동상의 낙성식이 있습니다. 초대장을 받았으니 미리 둘러보는 게 당연하죠.
그날 가져가려고 작은 성녀 조각상 두 개도 샀는데 말이죠, 꽤 잘 만들었더군요.
자, 대화는 여기까지 하죠. 여기에…… '파울비스트' 같은 건 없습니다.
가서 하던 일을 계속해 주시죠. '회색 모자'.
당신도 말이야, 자작님.
이곳에 온 이유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군.
(여기가 마지막 객실이야. 다른 이상은 없어.)
(크레이개번 자작과 같이 있던 그 여자아이 말고는……)
(자작 곁에 나타난…… 그 여자아이는 정체가 뭐지? 돌아가서 확인해 봐야겠군.)
(하지만 지금은 이 객실 먼저……)
저기……
……
음?
실례했군.
……
휴……
마, 말도 안 돼.
정보에 따르면 저자는 산속에서 신병 훈련을 하는 중이라 여기에 나타날 리가 없는데.
설마 아니겠지……
무슨 일이지?
용건이 있으면 말로 해. 문을 여는 게 그렇게 재밌어?
……
(……?!)
(정말로 저 여자가……?! 실버애쉬 가문 소속 어둠의 기사……)
(손에 혈흔이 있던데, 누구랑 싸운 거지?)
(……골치 아프겠군.)
(그래도 이건 정보가 틀리지 않았다는 뜻이야. 이 노선의 열차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어.)
……
아니, 그 전에 먼저……
데겐블레허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정보원들은……
아, 이 녀석들인가.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하다니. 나중에 군사 법정에서 진술할 각오나 하라고.
정보원이라 했나?
그 녀석들을 탓하진 말라고. 날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그 녀석들을 대변해 주다니, 감사를 표하지.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말해.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설마 아직 이유를 생각해 내지 못한 건가?
'회색 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