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8과거와의 작별
제시카는 멀리서 점점 더 많은 블랙스틸 차량 행렬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며, 온 하늘에 흩날리는 눈송이를 향해 총성을 울린다. 우드로도 블랙스틸 본함에서 클리프를 향해 뒤늦은 총알을 쏘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제시카, 리스캄, 프란카, 제시카 더 리버레이티드
……현재 상황은?
제시카 씨의 행방을 파악했습니다만…… 명령 때문에 용병들의 행동에 제약이 있습니다. 그래도 시간을 계산해 보면 아마 제시카 씨의 탄환은 거의 다 떨어졌을 겁니다.
틸라 쪽은?
헬레나 씨와 광부가 돈을 갖고 에너지 타워로 들어갔는데…… 두 사람 모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데 사라졌다고? 다른 출구가 있는 게 분명하니, 틸라한테 계속 찾아보라고 해.
네.
우디는? 떠났나?
우드로 씨는…… 섹터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기존의 도주 계획을 포기한 것 같아요.
처음에 틸라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우드로 씨는 원래 모든 일이 끝난 뒤에 그 광부와 함께 산속으로 숨으려고 했거든요.
우디가 어디로 간 거지……
우드로 씨는……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
사람을 보내 막을까요?
됐어, 오라고 해. 우디가 오겠다고 고집부리면 아무도 못 막으니까.
리스캄, 앞쪽에 장애물이 불타고 있어서 차로는 들어갈 수가 없어. 내려서 걸어가야 해.
저것들은…… 블랙스틸의 차량인가?
우드로 씨일까…… 아니면, 제시카일까……
적어도 아까 에너지 타워가 폭발할 때, 모든 사람이 안에 있었던 건 아니라는 거네.
잠깐, 리스캄…… 위에서 소식이 왔어.
각 팀은 잘 들어라. 현재 상황을 말해주겠다. 아까 있었던 폭발 사고로 목표 엔지니어는 생사를 알 수 없고, 목표 헬레나는 실종되었다……
세상에……
위에서 지령이 내려왔다. 목표 우드로는 포기하고 목표 제시카를 체포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목표는 채굴 공장 동쪽의 버려진 골목에 있고, 대량의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
……리스캄, 우리는…… 어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다른 팀보다 우리가 채굴 공장을 더 잘 알잖아. 가장…… 빠른 속도로 제시카한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내가 예상한 것보다 빨리 왔군…… 우디.
오는 동안 모든 건물이 텅 비어 있다 보니, 널 찾아올 수밖에 없더군.
지금 날 탓하는 건가?
그러면 안 되나? 사람은 무슨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아서 죄를 짊어질 때도 있지.
그렇다면 몇십 년 전에 넌 총을 쐈어야 했어, 우디.
하지만 넌 도망쳤지, 왜 그랬지?
오랫동안 침묵하던 내 교감 능력이 드디어 내 곁에 또다시 산크타가 나타난 걸 감지했거든. 바로 너 말이야.
그때 난 형편없었어. 나랑 교감하는 건 별로 좋지 않았을 텐데, 우디.
어쩔 수 없어, 산크타의 천성이니까…… 우리는 늘 모든 걸 공유하거든.
네 머릿속에서 교감된 것과 비교하면,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
정말 잔인하군, 우디. 그렇게 날 증오하면서도, 내 고통이 널 즐겁게 할 수 없다니.
보고, 제시카 발견, 좌표 공유 완료.
목표는 채굴 공장 바깥으로 이동하고 있어. 중형 에너지포와 반자동 소총…… 그리고 모델을 알 수 없는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
혼자 그 많은 걸 짊어지고 있다고?
아, 참, 필요할 때 포탑으로 변할 수 있는 무거운 방패도 메고 있어.
진짜 대단하네. 우리 아가씨가 세월이 지나면서 꽤……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된 것 같아.
제시카는 어때? 공격적이야? 막다른 길에 몰린 강도는 쉽게 놀라고, 사소한 거 하나에도 길길이 날뛰잖아.
음…… 꽤 평온해 보여.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앞으로 나아가고만 있어.
골목에서 여자아이가 눈보라를 헤치고 무기를 짊어진 채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길 양쪽의 무너진 벽이 옆으로 느릿느릿 멀어지고 있었다.
갈림길에 도착한 여자아이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 옷깃을 여미고는 바람을 거슬러야 갈 수 있는 길로 방향을 바꿨다.
포로수용소 안의 시간은 멈춰있었지만, 바깥에서는 전쟁이 계속됐어.
맞아, 우디. 너랑 그 녀석이 포로로 잡힌 뒤에, 나는 더 많은 사람을 데리고 더 넓은 전장으로 향했어.
1월에는 포화 속에 강을 건넜고, 8월에는 또 뜨거운 사막을 지키며 한 발짝도 물러날 수 없었지.
승리할 때는 적군의 시체를 밟으며 전진했고, 패배할 때는 아군의 시체를 밟으며 후퇴했어.
그리고 더 상황이 나빴을 땐, 하나를 지키기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시켜야 했지.
네가 나와 그 녀석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군.
맞아, 난 수도 없이 그렇게 했어. 너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랬지.
이게 바로 전쟁이 내 앞에 놓아둔 것이야.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 거스를 수 없는 규칙이었어.
그럼에도 넌 선택했어.
어쩔 수 없지. 선택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한 일 모두 물거품이 되고 참패하고 말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규칙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거야.
……
한때는 너무나도 존경했던 사람이, 전쟁의 규칙과 논리 때문에 딴사람이 된 모습을 보는 건 정말 슬픈 일이군.
네가 원래 어땠는지 기억하나? 독립전쟁을 겪지 않았을 때의 모습 말이야.
늘 경전을 들고 사방을 유람하며, 손에 든 총으로 모든 불공평과 분쟁을 끝내겠다고 맹세했었지. 기억나나?
당연하지, 우디. 내 모습뿐만 아니라, 네 모습은 더 잘 기억하고 있어.
예전에 넌 늘 펜을 들고 다니며, 언젠가 성당의 돔 천장에 본인 작품을 남기는 날이 오기를 바랐지.
그동안 펜을 잡은 적은 있나, 우디?
……아니, 손가락 네 개를 다시 이어 붙였거든.
목표가 왼쪽으로 갔다. 속도가 빠르지 않으니 근처 팀원은 체포할 준비해.
이 좌표는…… 바로 앞쪽이야, 서둘러…… 리스캄.
후우…… 자, 잠깐만.
골목을 돌아 두 사람은 발걸음을 멈췄다. 여자아이의 쓸쓸한 뒷모습이 갑자기 두 사람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제시카……
부르는 소리를 들은 여자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찾아온 사람을 보고 반가워하는 기색을 보였으나, 그것도 잠시,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티, 팀장님…… 두 분도 오셨네요?
응, 네 좌표를 받고 전력을 다해 달려왔어……
정말 죄송해요, 팀장님…… 이번에 제가 친 사고는 진짜 수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난 결국 너의 탈퇴 신청을 승인했어.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난 네 팀장이 아니야, 제시카.
그렇네요…… 하긴, 두 사람은 지금 절 체포하러 온 거겠군요.
아니…… 우리는 친구로서 온 거야.
오는 길에 통신을 받았는데, 에너지 타워 폭발 사고로 리온 씨가…… 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네가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어 할 것 같아서.
네…… 알고 있어요. 폭발하기 전까지 전 리온 씨와 통화하고 있었거든요……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괜찮아, 제시카?
저는……
안 괜찮아요, 최악이에요.
그쪽으로 가서 안아줄까?
아니요…… 다가오지 마세요. 할 말이 있으면 그냥 이렇게 하세요…… 이 거리에서도 잘 들리거든요.
제시카……
거기 가만히 있어요, 프란카 씨.
허둥대는 사이, 제시카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다가오려던 프란카를 막았다.
지금…… 나한테 총을 겨눈 거야, 제시카?
죄, 죄송해요…… 저, 저는 그냥…… 프란카 씨, 이러지 마세요…… 그냥 저 혼자 두세요.
제시카……
프란카, 내가 얘기할게……
어디 가고 싶은 데는 없어, 제시카?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말이야.
어디로 갈 수 있겠어요……? 드론이 계속 절 쫓아오는데. 두 분은 절 찾지 말아야 했어요…… 돌아가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요.
난 상관없어…… 설명할 말이 없으면 없으라지, 뭐. 우리가 함께한다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하지만 전 무서워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뭐가 무서운데?
그 깨끗한 온수가 너무 포근하고 아름다울까 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차량 헤드라이트가 제시카를 비추었고, 여러 개의 거대한 빛의 고리가 여자아이를 그 안에 가두었다.
여자아이의 눈은 이렇게 강렬한 빛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 손으로 총을 쥐고, 다른 한 팔로 눈을 가렸다.
잠시 후에 여자아이는 적응된 듯 팔을 내렸고, 반쯤 감은 눈으로 멀리서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차량 행렬을 바라보았다.
우디, 그동안 어떻게 지냈지?
수십 년 동안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개척지에서 지내면서 홀로 버든비스트 무리를 데리고 사방을 돌아다녔지.
왜 신성한 도시에 돌아가지 않은 건가?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넌 왜 안 돌아갔는데?
난 용병이라서 라테라노에는 내 자리가 없어. 넌 왜 돌아가기 싫었는데?
하……
라테라노로 돌아가면, 어떤 힘들었던 일이든 다 잊히지 않겠어?
포로수용소의 사람은 대부분 죽었고, 그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 명 안 돼. 누군가는 기억해야 하니까.
하지만 넌 여기로 와서 네가 거부하던 평온한 삶을 살았어. 늘 똑같이 반복되는 삶 말이야.
하지만 난 잊지 않았어. 지금까지도 계속 기억하고 있다고.
언젠가 네가 옛일로 날 찾아올 줄은 알고 있었어.
그날이 이렇게 늦게 올 줄은 몰랐지만.
목표는 포위됐다. 반복한다, 목표는 포위됐다.
제시카 씨, 손에 든 무기를 버려. 이제 다 끝났어.
주위를 살펴봐, 당신은 아무 데도 갈 수 없어. 오늘 일은 다 끝났거든. 조금 있으면 눈발이 더 거세질 거야…… 제기랄, 오늘은 원래 일찍 퇴근해서 이불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미안하다고 하고 싶지만, 오늘은 너무 많이 해서, 더 해봤자…… 그저 의미 없는 말로 들릴 거예요.
당신은 무사할 거야. 일이 커지기는 했지만, 당신에게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아.
난 입사하자마자 당신의 이름을 들었어, 제시카 씨. 다들 당신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하더군, 당신 집안의 변호사가 오늘 여기 있는 용병보다 더 많다면서.
……훨씬 더 많을 거예요.
봐, 당신도 알잖아. 당신한테 최악의 결말이라 해 봤자 2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는 것뿐이야. 석방되면 다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테고.
확성기 좀 내려놓지그래? 이 정도 거리에서는 안 써도 되잖아.
어허, 기껏 가져왔더니.
부탁이니까 입 좀 다물어.
너한테 제시카 씨를 설득할 더 좋은 말이 있다면 기꺼이 입을 다물어 줄게.
괜찮아요, 리스캄 씨. 그렇게 절 감싸주지 않아도 돼요. 다들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도 잘 알거든요.
맞아요, 전 어려서부터 뭘 하든 결과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어차피 무슨 짓을 하든 집에서 뒤를 봐줄 테니, 때론 멋대로 굴기도 했죠.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지 않았어요…… 무슨 일이든 다 대가가 있었어요. 경솔하게 결정을 내렸으면 그에 대한 뒷감당도 책임져야 해요.
제시카…… 난 네가 팀을 떠날 때 이 모든 걸 이미 다 생각했을 줄 알았어.
아니요, 리스캄 씨. 오늘 밤 일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7년 전, 배런 기지에 와서 대문으로 들어갔을 때를 말하는 거예요.
그때 전 장비 및 응용기술부에서 장비 테스터가 되고 싶었을 뿐이에요. 언젠가 진짜 전장에서 무기를 들고 다른 사람을 겨냥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요.
그래요, 문제는 바로 그거였어요. 사람들은 늘 쉽게 무기를 들어 올리지만, 그 뒤에 치러야 하는 대가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 작은 총은요, 제가 두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고,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방아쇠를 당길 수 있어요. 총 쏘는 법을 배우는 데 한 달이 채 안 걸렸어요.
더 무서운 건…… 이걸로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데 1초밖에 필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1초를 잊으려면 평생이 걸려요.
보세요, 이게 바로 그때의 저예요. 참 어리석었어요. 총을 손에 들기 전에, 훗날 이것으로 무엇을 겨냥하게 될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첫 번째 총알은 이미 발사되었어요.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릴 거예요.
그럼 제시카 씨, 지금은 알게 된 거야?
한순간도 내리지 않고 계속 총을 들고 있잖아.
너무 거만하군. 내가 언제 옛일 때문에 널 찾아왔다고 했지?
설마 우리의 지난 원한을 끝내기 위해 내가 총알을 들고 찾아왔다고 생각한 건가?
과거에 갇혀있는 사람은 너잖아, 우디?
아니,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너야.
아흔이 넘도록 용병을 하고 있잖아. 전장 밖의 생활에 적응할 수는 있겠나?
우디, 내가 전장을 떠나지 않는 건 전쟁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야.
컬럼비아의 전쟁은 진작 끝났어.
컬럼비아의 전쟁은 끝났지만 볼리바르의 전쟁이 시작되었어. 지금 빅토리아 전쟁의 불꽃은 잠시 수습되었지만, 그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아……
우디, 전쟁은 계속 존재하고 있어. 그저 잠시 멈추는 것일 뿐, 다시 일어난다고.
그럼 넌 왜 전장에 남아 있지? 계속 전쟁의 세례를 받고 싶은 건가?
전쟁을 끝낼 수 없다면, 나도 차선책으로 그 스위치를 내 손에 쥐려고 시도할 수밖에.
이것 또한 내가 블랙스틸 용병 회사를 세운 이유야.
정말 통제할 수 있겠나?
수도 없이 시도했고 참혹한 대가를 치렀지만 결국 해냈어.
그럴 가치는 있었고?
단 몇 초만 멈추게 해도 너 같은 많은 사람들이 다시 펜을 잡게 하기엔 충분해.
그렇다면 여기서 하는 작전은 왜 몇 초도 멈출 수 없었던 거지?
몇 초만 멈췄어도 나 같은 수많은 사람이 숨 돌릴 기회가 있었을 거야. 그렇게 허겁지겁 개척지로 쫓겨나지 않아도 됐다고.
데이비스 타운은 전장이 아니니까.
내려놓을 수 없어요. 왜냐하면…… 이건 제가 가진 것 중에서 힘을 가진 유일한 물건이니까요.
그동안 전 제가 색이 없는 기호 같다고 느꼈어요……
그 기호가 대표하는 부와 가문, 세력은 제가 해결하려고 애쓰는 문제 앞에서…… 어떠한 의미도 없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적어도 들고 있는 이것에 의지해…… 저는 임무를 끝냈고 목표를 달성했죠.
적어도 이걸 들고 있는 전 아무 쓸모 없는 기호가 아니에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팀장님……?
제시카, 5년이야. 5년 동안 한 번이라도 내가 그때 왜 널 조수로 선택했는지 깨달은 적 있었어?
거긴 블랙스틸 월드와이드야…… 온갖 대단한 녀석들이 있는 곳이라고, 제시카. 하지만 내가 널 선택한 건 네 손에 든 총이 아니라, 네 눈물 때문이었어.
눈물이라니…… 팀장님, 하지만 나약한 눈물로는 제 뒤에 서 있는 사람을 지킬 수 없잖아요……
눈물은 절대 나약한 게 아니야, 제시카. B.P.R.S의 일은 더럽고 힘들고 위험해. 단지 돈을 위해 이 일을 하는 사람은 없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녀석만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낯선 곳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을 수 있는 거야.
팀장님…… 제가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팀장님이 절 팀으로 데려왔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알아준 거라서 계속 기억하고 있어요.
팀장님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면, 전 물불 가리지 않고, 그 무엇이라도 기꺼이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네가 가야 할 길이 아니야…… 왜냐면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야.
제시카, 네가 정말 하고 싶고 널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해. 다른 사람의 인정 따윈 필요 없어. 그저 네 마음에서 인정할 수 있으면 돼.
팀장님, 저 지금…… 마음껏 울고 싶어요……
그럼 울어. 눈물 흘려도 돼.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우디, 네 광륜이 계속 깜빡이고 있군.
맞아, 제대로 봤어. 난 널 정말로 죽이고 싶거든.
넌 계속 전쟁은 끝낼 수 없고, 오직 통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틀렸어. 전쟁은 끝낼 수 있어. 다만 네가 그럴 능력이 없을 뿐이지.
전쟁은 그로 인해 수많은 피해를 보았지만, 여전히 잡초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끝내는 거야.
그리고 전쟁의 불길에 타올랐던 곳은,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원래 생활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무수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복원되지.
넌 전장에서 죽었어야 했어. 그게 지금처럼 입만 열면 전쟁 타령이나 하는 미치광이가 되는 것보다 나았을 테니까.
원래는 그저 네게 총알을 돌려주려고 했는데, 지금은 정말로 널 죽이고 싶군.
한차례의 광풍이 노인의 모자를 말아 올리더니 높은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하지만 노인은 그것을 쳐다볼 겨를도 없었고, 주우러 가기도 귀찮았다.
그의 눈빛은 온통 맞은 편에 있는 남자에게 쏠렸다. 눈도 깜빡하지 않고, 뺨부터 목까지 근육이 긴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노인의 머리 위에서는, 광륜이 미친 듯이 깜빡이고 있었다.
맞은 편에 있는 남자는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이제야 막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노인의 말을 구분해 낸 것처럼.
그렇다면 우디, 네가 죽이려는 사람이 누군지는 정확히 알고 있나?
적, 자신을 배신한 친구, 아니면 그냥 미치광이?
다 아니야. 그저 오만하기 짝이 없는 놈이지.
그놈의 눈에는 뭐든지 저울에 올려 비교할 수 있고, 목표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대가로 희생할 수 있어.
……그렇다면 넌? 넌 어떤 입장으로 그 사람에게 총알을 쏘려는 거지?
평범한 사람.
너의 그 깔보는 듯한 시선 속에서 모든 것을 잃고 분노만이 남은 평범한 사람이지.
아주 좋군.
왜 웃는 거지?
펜을 잡고 싶어 하던 손가락은 결국 방아쇠를 당기게 됐고, 경전을 들고 싶어 하던 두 손은 결국 피로 물들었으니까.
운명은 참 사람을 농락하기 좋아하는 것 같아.
바람이 클리프의 외투로 불어 들어와 허리춤의 총과 총을 향한 손이 드러났다.
흩날리는 눈송이 속에서 그는 똑같은 동작을 하는 우드로를 보았다.
클리프는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전에 라테라노에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밤바람이 우드로의 모자를 날려버렸고, 공중에 떠서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았었다.
순식간에 오랜 세월이 흘러 바람 속의 모자가 마침내 땅으로 떨어졌다.
제 눈물을…… 여러분은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요?
……
그 사람들? 누구를 말하는 거지?
제시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황량하고 쇠퇴한 공업단지를 바라보았다. 한 차례 폭발을 겪은 그곳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예전에 저기가 어땠는지 아나요?
몰라.
전 알아요……
에너지 타워는 이곳의 주민들에게 계속해서 온기를 주기 위해 끊임없이 타올랐어요.
저 레스토랑은 밤새 영업했는데, 사람들이 테이블 옆에 둘러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신나게 노래를 불렀어요.
이곳의 겨울은 길고 추워요. 하지만 여기 살던 모든 사람은 자신의 노력과 성실함으로 빛을 냈죠.
그 찬란하고 뜨거운 빛이 이곳의 구석구석을 채워서, 겨울밤의 추위와 어둠을 몰아냈어요.
사람들은 자신의 왁자지껄한 일상생활을 뜨거운 피로 만들어서, 겨울날 얼어붙은 이 섹터에 생명과 활력을 불어넣었어요.
그 사람들은 앞길에 희망이 없어도 끝까지 걸어갔어요.
그 사람들은 삶의 모진 고통으로 목이 휘청거려도 눈보라를 무릅쓰고 계속 살아갔어요.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려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었어요.
제 눈물은…… 그 사람들의 슬픔을 대신할 수 없어요.
여자아이는 총을 들어 스코프를 통해 다양한 얼굴을 보았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했고, 누군가는 멍하니 있거나 어리둥절해했다. 또 누군가는 속으로 몰래 웃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얼굴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여자아이의 눈에 빠르게 들어왔다가 또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잠시도 여자아이의 마음속에 머물지 않았다.
여자아이의 머릿속에 다른 얼굴이 떠올랐다.
텐트 안에서 기도하던 여자아이.
눈밭에서 미친 듯이 뛰던 여자.
어둠 속에서 총을 뽑았던 노인.
화염 속에서 떠나간 남자.
하지만 제 총은 그 사람들의 슬픔을 위해 울릴 거예요.
여자아이는 손목을 높이 들어 먼 하늘을 가리켰다. 그리고 연속으로 총을 쏴서 모든 총알을 다 써버렸다.
온 하늘에 흩날리는 눈송이와 함께 탄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잔열이, 쌓인 눈을 녹여 눈구덩이를 만들었다.
총소리는 공중에서 한참 메아리쳤다. 주위가 다시 조용해지기 전에, 여자아이의 두 귀에 가느다란 미세한 울림이 느껴졌다.
그건 본인의 눈물이 땅을 내려치는 소리였다.
후우……
윽……
네가 졌어……
미안해, 우디. 난 전쟁을 선택했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쟁을 말이야.
그래서…… 내 인생은 뒤돌아볼 수 없는 총알, 멈출 수 없는 폭발, 영원히 끊임없는 공격과 수비와 같아.
난 전쟁을 끝낼 수 없어. 하지만 우디, 넌 날 끝낼 수 있어.
마지막까지 싸운 병사가 쓰러져야, 비로소 전쟁을 끝낼 수 있지.
루퍼트……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군.
정말 고마워, 우디. 그 이름을 다시 불러줘서. 너 말고는 아무도 모르거든.
잘 가라……
클리프는 두 눈을 감고 총알이 자기 이마를 찢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 전에 벨 소리가 먼저 울렸다.
주머니에서 통신기를 꺼내 본 클리프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누구야?
군부 쪽 사람.
신경 쓸 거 없어, 우디. 계속해.
……볼리바르, 아니면 빅토리아?
상관하지 마, 우디.
그것도 아니면 컬럼비아?
어서 해!
또 전쟁이 시작되려는 거군, 그렇지?
……어디까지 영향이 미치지?
전조일 뿐이야.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어.
이리 내.
우디, 여기 있는 많은 것들은 나에게 사소한 일상일 뿐이지만, 너한테는……
또 다른 악몽일 거야.
……꺼내.
굳이 보겠다면 마음대로 해.
……
……네가 죽으면 여기 있는 일은 누가 맡지?
누군가는 맡겠지.
……그건 안 돼.
너 같은 사람이 또 생겨서는 안 된다고.
우드로는 통신기를 바닥에 내던지고 총구를 기울여 그것을 쏘아 벌집으로 만들었다.
……
난 널 죽일 수 없어.
이 죄는 네가 책임져야 해.
우드로는 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두 손을 들었다.
그의 뒤로 총소리를 들은 용병이 끊임없이 몰려왔고,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우드로를 포위했다.
하늘에서 이 밤의 마지막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절 잡아가세요, 여러분. 전 준비됐어요.
총을 다시 허리춤에 찬 여자아이는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손 뒤로 해.
……생각했던 것보다 수갑이 차갑지 않네요.
내가 한참 동안 쥐고 있었으니까.
고마워요……
떠나기 전에 잠깐 얘기해도 될까?
안 그래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제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아니야…… 너보다 먼저 계속 그런 말을 하던 녀석이 있었거든.
……
그 녀석은 분명 좋아할 거야…… 본인이 한 말을 당신이 기억해 줘서.
아…… 당신도 그 사람을 아는군요……
아주 좋은 녀석이었어. 한번 만나면 잊을 수 없는…… 잘 가, 제시카 씨.
용병은 가볍게 여자아이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아침 햇살 속에 먼지를 일으키며 떠났다.
태양 아래에서 날리는 먼지를 바라보며 제시카는 갑자기 밤이 다 지나갔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젯밤에 펑펑 내리던 눈도 어느샌가 조용히 멈췄다.
♪그녀는 두 팔 벌려 나를 안아주었네♪
♪그때부터 그녀의 두 팔 사이엔 내 집과 꿈으로 가득하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