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7망각 불가
관객들은 뿔뿔이 도망쳤으며, 킬러들의 전장 역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모두 저마다의 기억 속 과거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소라, 괜찮아?
응, 괜찮아.
텍사스 찾으러 갈 거야?
……아까 우연히 마주쳤는데 나보고 기다리라고 했어.
그럼 우선 피하자, 지금 다른 곳은 아주 다 엉망진창이 됐다.
너희, 텍사스를 잃고 싶은 게 아니라면 쫓아가는 게 좋을 거야.
라플란드……
……
라플란드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런 애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추측하는 것보다 차라리 걔네들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편해.
걔네가 한 말을 모두 진짜라고 믿어야지만, 그 말이 그리고 그 행동이 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알아볼 수 있거든.
왜?
알잖아, 저 방에 있는 게 누군지.
조반나 로사티.
이 땅에서 텍사스를 시라쿠사에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나 베르나르도도, 시칠리아 부인도 아니야.
바로 조반나지.
첼리니아, 키가 많이 컸네.
시간도 꽤 지났으니, 당연히 좀 컸겠지.
참, 네 용문 친구들을 만나서 네 얘기도 들었어. 널 많이 걱정하고 있더라.
……걔들이 올 줄은 몰랐어.
너랑은 전혀 다른 애들이던데. 네 성격에 그렇게 발랄한 친구들을 사귈 줄은 몰랐네.
너도 그렇지 않나?
네가 정말 날 친구로 생각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편지 한 통 안 보냈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
됐어, 너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었겠지.
넌?
나?
……사실 별로 얘기할 건 없어.
너무 갑작스럽게 숙청이 시작돼서, 컬럼비아의 모든 패밀리는 두려움에 빠졌었어.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내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한 거고.
그 뒤에 시칠리아 부인과 대화를 통해 무사히 상황을 종료시켰다고 볼 수 있지.
그게 다야.
참 쉽게 말하네.
……그럼 내가 너한테 하소연이라도 해야 하나?
하지만 내 곁에는 오랫동안 하소연할만한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모든 심정을 대본에 쓰기로 한 건가.
하하, 티 났어? 맞아, 《텍사스의 죽음》은 내 야심작이야.
일부 디테일은 너밖에 모르니까.
내 기억력도 아직은 괜찮은가 봐.
그런데 네 '죽음'과 관련된 제3막은 계속 못 쓰겠더라.
뭐, 이제는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
훗.
사실 대본을 쓴 데는 한 가지 다른 목적이 있긴 했어. 베르나르도는 패밀리의 일을 아들에게 맡기고, 본인은 델 알바 극단에서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었거든. 물론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난 그 사람과 접촉할 기회를 찾고 있었어. 너도 알다시피 이런 일을 하는 패밀리 사람은 별로 없잖아.
그런데 가장 심한 짓을 벌인 게 바로 그자더라.
본인 세대에서 벨로네 패밀리를 이렇게까지 성장시킨 사람은 역시 남들과는 다른가 봐.
그 사람은 진심으로 시칠리아 부인과 힘겨루기를 할 생각이야.
넌 별로 긴장한 것 같지 않은데.
만약 베르나르도가 로사티에 대항하기 위해 너를 비장의 카드로 내세운 거라면, 그건 그 인간이 심하게 착각한 거야.
잘 왔어, 첼리니아.
너랑 벨로네 사이에 뭐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어.
나랑 함께하자.
우리 둘이 함께라면 시라쿠사에서 큰일을 할 수 있어.
네가 살바도레의 손녀라서가 아니야.
나는 너, 첼리니아가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야.
다시 함께 새로 시작할 수 있어, 첼리니아.
……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궁금하댔지?
조반나, 난 운이 좋아서 그 숙청에서 살아남은 게 아니야.
이 무대에서 이 뮤지컬을 연기했으니…… 넌 7년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
7년 전…… 텍사스 씨의 아버지 주세페는 자기 아버지인…… 살바도레를 살해하고, 텍사스 패밀리는 시라쿠사의 지배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했어.
그게 시칠리아 부인의 분노를 샀고, 그녀는 열두 패밀리로 구성된 정예병을 컬럼비아로 보내 텍사스 패밀리를 숙청했지.
너도 그 정예병 중 하나였을 거야, 그렇지?
너 똑똑하구나.
그때 첼리니아 텍사스는 눈부신 이름이었어. 컬럼비아 출신이지만 시라쿠사인은 그 아이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지.
예전부터 쭉…… 텍사스를 이기고 싶었던 거야?
걔를 이긴다고?
아니, 그런 게 아니야.
텍사스가 살루초에 맡겨져 있는 동안, 우리는 수도 없이 겨뤘었어.
이긴 적도 있고, 진 적도 있어.
텍사스를 이기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그 뒤의 모든 일을 벌인 게 아니야.
그럼……
넌 걔를 많이 걱정하는구나.
안타깝지만, 이것도 이야기의 포인트가 아니야.
그럼 적어도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줘.
난 그 숙청에 참여했어.
난 텍사스가 자기 패밀리를 위해 나와 죽도록 싸우는 장면을 수도 없이 상상했어. 하나같이 사람 피를 들끓게 하더라.
하지만 그날, 그 장면은 내 모든 상상을 뛰어넘었어.
……당신도 킬러였군요, 단브론 씨.
그래.
……
라비니아 씨. 7년 전, 나는 텍사스 숙청 부대에 있었어.
나는 미리 그 도시에 세차공으로 위장 잠입해서, 텍사스 패밀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지.
그리고 그날 시라쿠사에서 부대가 도착했어.
공교롭게도 컬럼비아인 한 무리가 나를 찾아왔더군.
컬럼비아 패밀리 사람들은 모두 경박하고 건방진 녀석들뿐이었어.
원래대로라면 손쉽게 처리했겠지만, 무리 중에 특별한 사람이 하나 있었어.
내가 아는 사람이었어. 그 여자도 텍사스였지만, 다들 그 여자는 시라쿠사인 같다고 했지.
……첼리니아군요.
때때로 당신을 보고 있으면 그 여자가 생각나.
그 사람도 저처럼 킬러에게 이상을 말할 정도로 어리석은 자였나요?
……아니.
라비니아 씨.
나는 단 한 번도 당신의 이상을 비웃은 적 없어. 나는 그저…… 신기했을 뿐이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아름다운 동화를 듣는 것 같았거든.
당신의 이상은 너무 아름다워서, 그 이야기가 있어야지만 편히 잠들 수 있을 정도였어.
어쨌든 그날, 그 여자와 마주쳤을 때 나는 이미 손 쓸 준비를 마쳤었지.
분명, 그 여자도 내가 위장 중이란 걸 알아챘을 테니까.
그런데……
그 여자는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지.
관객들은 사방으로 도망친 지 오래였고, 킬러들의 전장 역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아수라장이었던 극장은 지금 텅 비었다.
라플란드는 얘기를 하면서 무대 위에서 사뿐사뿐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텍사스 패밀리 사람은 거의 다 몰살된 상태였어.
그런데 첼리니아는?
유일하게 첼리니아만 보이지 않았었어.
우린 그 누구 하나 놓치면 안 됐고, 게다가 첼리니아는 장녀잖아. 그래서 모두가 그 흔적을 찾아다녔지.
그리고 그때 큰불이 났어.
맹렬한 불길이 텍사스 패밀리의 저택을 감쌌어. 마치 이 패밀리의 존재를 모조리 삼켜버리려는 듯이 말이야.
그리고 그 입구에는 그 큰 불꽃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서 있었어.
바로 내 눈앞에.
첼리니아는 천천히 몸을 돌려서 나한테 다가왔어.
그 순간 난 깨달았지.
텍사스 패밀리의 몰락 앞에서 그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했던 거야.
하지만 누가 첼리니아를 탓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죽였잖아. 첼리니아는 공범이 되기 싫었던 것뿐.
첼리니아를 탓할 자격이 있는 건 자신뿐이야.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어.
그때 내가 첼리니아의 눈에서 본 건……
싫증이었어.
첼리니아의 일은…… 살루초 패밀리나 내게 있어서 비밀까지도 아니야.
그때 살루초 패밀리의 부대를 이끈 게 바로 라플란드 아가씨였으니까.
라플란드 아가씨가 제명된 이유는, 첼리니아를 쫓기 위해 독단적으로 움직였고, 그로 인해 반격당하면서 패밀리가 막심한 인원 피해를 봤기 때문이지.
난……
난 도망치지 않는다, 눈길도 돌리지 않는다.
라비니아는 지금까지 줄곧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길에 널브러진 시체를 봐, 저 멀리서 싸우는 소리를 들어봐, 라비니아 씨.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게 뭐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첼리니아와 똑같이 하라는 거야.
도망쳐.
멀리 도망칠수록 좋아.
나중에 어떻게든 과거에 의해 붙잡힌다고 해도, 적어도 잠깐의 편안함은 얻을 수 있으니까.
아니면…… 당신은 죽게 될 거야.
하지만 전……
역시 도망치지 않을 겁니다.
첼리니아의 과거가 그녀의 문을 두드린 거지.
처음엔 걔도 원치 않았을 거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문밖으로 나왔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쩌면 외면했던 과거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느꼈을지도 몰라.
첼리니아에게 있어 용문의 생활은 그저 멀리 외출한 것뿐이야.
……그리고 지금, 과거에 텍사스 씨의 패밀리와 가장 깊게 연결된 사람이 텍사스 씨 앞에 있는 거네.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지?
후훗.
……그게 정말이라면 난 텍사스 씨의 선택을 존중할 거야.
너희가 가장 친한 동료인데도?
가장 친한 동료니까.
맞다.
뭐…… 시라쿠사의 피자가 삼키기 어려울 정도로 맛없어지지 않는 한은 말이지.
할아버지는 과거를 잊지 못하는 분이셨어. 날 시라쿠사에 보낸 것도 뿌리를 잊지 말라는 뜻이었고.
난 시라쿠사에서 한동안 지냈어.
그때 많은 사람들이 나보고 시라쿠사인 같다고 하더라.
하지만 나한테는 그저 내가 계속해오던 일을 했을 뿐이었지.
컬럼비아와 시라쿠사에서의 내 생활 방식은 다를 게 없었거든.
시라쿠사에서 본 것도 컬럼비아에서 본 것과 별 차이가 없었고.
넌 텍사스 패밀리의 이야기를 훤히 알고 있지만, 난 그 장면을 직접 목격했어.
삶은 연극이 아니야. 거기에 영웅이나 악역의 이야기 같은 건 하나도 없었어. 그건 그저 떳떳하지 못한 살해 현장이었지.
아버지는 블랙스틸에서 모조총을 구해 왔지만, 발사할 때 터지면서 자신도 다쳤어.
할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지셨고 아버지는 다친 손으로 칼을 꺼냈어. 물론 첫 공격은 빗나갔지만.
난 문 앞에서 모든 걸 들었어. 쉰 목소리로 퍼붓는 저주, 고통스러운 신음……
한참이 지나서야 잠잠해졌어.
그 순간 난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졌어.
그래서 떠나기로 선택한 거야.
그래서, 용문이야말로 네가 돌아갈 곳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나도 확실히는 모르겠어.
하지만 적어도 난 용문에서 즐거웠어.
……
넌 예전이랑 똑같구나. 언제나 솔직하네.
……
음, 내가 넘겨짚었나 보네.
난 네가 나한테 도움을 청하러 온 줄 알았거든.
아니면 적어도 나랑 그동안 못한 이야기를 하러 온 줄 알았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 넌 우리가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려고 온 거였구나……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첼리니아?
멋대로 찾아와서 살아있다며 나를 기쁘게 하고.
또 네 멋대로 내 희망을 꺼버리기까지 하고.
미안해, 조반나.
난 시라쿠사인도, 컬럼비아인도 되고 싶지 않아.
난 그냥 첼리니아 텍사스야.
마지막 기회야, 첼리니아.
그 문으로 나가면 넌 나와 로사티의 적이야.
넌 로사티의 걸림돌이 될 거고, 난 로사티 패밀리의 보스로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앞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제거할 거야.
날 그렇게 만들지 마.
……
조반나, 우리는 과거에 너무 집착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