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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살인사건

미니 스토리브릿지2026-08-13

카시미어 상인이 뉴 볼시니에서 개최한 와인 챔피언십에 초대받은 레온투초는, 드미트리가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뜻밖에도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걸 목격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리프레사, 벨로네


감비노

방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

카포네

여긴 길거리잖아, 소리가 안 나는 게 이상하지.

카포네

그보다 나는 이 냄새가 더 신경 쓰이는데.

감비노

물건은 다 포장해서 지하 저장고에 뒀으니, 냄새가 안 나야 정상인데……

감비노

쩝, 포장이 뜯긴 게 있으면 진짜 한번 맛보고 싶은데.

카포네

꿈 깨. 오늘 온 건 전부 다 최고급이래.

카포네

냄새를 맡으니까 일하기 싫어지네.

감비노

그냥 일하기 싫은 거야, 아니면 여기서 일하는 게 싫은 거야?

카포네

뭐가 달라?

카포네

어차피 밤에도 이 거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살펴야 하잖아. 말썽부리는 놈이 없길 바라면서 말이야.

카포네

어젯밤에 박았을 때 생긴 빨간 페인트가 도저히 안 지워지더라고. 오늘 보수를 받으면, 차를 다시 도색해야겠다.

감비노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내 몫은 저축해둘 거니까. 앞으로 회사에 사람을 더 고용해야 하거든.

카포네

……

감비노

뭘 그렇게 봐?

카포네

뉴 볼시니는 정말 신기한 도시란 말이지. 너 같은 시칠리안도 짠돌이로 만들다니. 카시미어인이 주는 게 안토니오보다 훨씬 많지 않아?

감비노

택시 회사를 운영하는 데 돈이 그렇게 많이 들은 줄 누가 알았겠냐.

카포네

그나저나, 이렇게 거리랑 회의장 순찰이나 하는 일은 정말 택시 운전보다도 지루한걸.

카포네

애초에, 한량이나 멍청이들이 만든 '와인 챔피언십'이라는 대회까지 굳이 와서 훼방을 놓을 녀석이 있을까 싶어.

감비노

됐어. 여긴 다 돌았으니까 극장으로 돌아가자.

감비노

그런데, 카시미어인이 행사 보안 같은 일을 왜 우리한테 맡긴 거지?

카포네

누가 알겠냐. 우리를 추천해 준 좋은 사람이 있었나 보지.


차레크

여러분, 잠시 주목해 주시겠습니까.

모든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비추려는 듯 지나치게 밝은 조명 아래, 양복 차림의 한 상인이 무대 중앙에 서서 손에 든 와인잔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맑은 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주변 내빈들의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차레크

오늘 밤, 여러분이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는 건 와인과 음악, 그리고 충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차레크

하지만 그 전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와인 챔피언십을 개최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의미 있는 일이라는 점을요.

차레크

뉴 볼시니는 질서와 규칙을 중요시하는 도시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와인 챔피언십을 이곳에서 개최하기를 결정한 그 순간부터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차레크

와인이 만들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차레크

그리고 시간은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박수 소리가 그친 뒤, 카시미어 상인은 말을 이어갔다. 그는 와인의 연도, 양조 공정, 그리고 도시 간 협력과 물류 시스템까지 물 흐르듯 언급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웠다.

차레크

물론 뉴 볼시니 시청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이 와인 챔피언십도 이렇게 빨리 여러분을 찾아뵙지 못했을 겁니다.

차레크

시장님, 시장님과 협력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레온투초

이 도시의 규칙을 준수한다면, 뉴 볼시니는 시라쿠사 외부로부터의 협력도 반갑게 생각해.

레온투초

정당한 사업이기만 하다면, 허들은 없을 거야.

차레크

하하, 물론이지요.

차레크

시장님, 제가 아첨하는 게 아니라……

차레크

뉴 볼시니에서 저는 패밀리의 돌발적인 개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고, 협상이 끝난 뒤 그 이면에 '숨은 뜻'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차레크

이런 명료함은 상인에게 아주 귀한 것이지요.

레온투초

뉴 볼시니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는 것 같군.

차레크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최고의 와인과 최고의 협력을 모두 여기에 맡기기로 결정한 겁니다.

레온투초

그렇다면 정말 영광이군.

내빈의 목소리

벌써 한참이나 기다렸는데, 대회는 언제 시작하죠?

내빈의 목소리

그래요, 카시미어 와인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고 싶은데요!

때아닌 소리가 군중 속에서 들려왔다가 다시 군중 속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밝은 조명 아래에 선 카시미어 상인의 얼굴에는 별다른 불쾌감이 보이지 않았다.

차레크

하하, 제가 말이 좀 많았나 봅니다. 내빈 여러분을 오래 기다리시게 했군요.

차레크

그럼, 이제 뉴 볼시니 유명 악단의 챔피언십 결승 오프닝 무대를 감상하시죠!

조명이 꺼지자, 카시미어 상인은 레온투초와 함께 무대에서 내려가 가까운 구석에서 이어질 공연을 기다렸다.

그러나 레온투초는 무대 쪽을 보지 않았다. 눈부신 불빛이 꺼지자, 오히려 그는 자신 앞으로 여유롭게 다가온 인물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드미트리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부하가 이런 자리엔 익숙하지 않아서, 다소 흥분한 모양이군요.

레온투초

괜찮아. 하지만 앞으로 뉴 볼시니에선 비슷한 자리가 더 많아지게 될 거야.

드미트리

그러면, 익숙해지도록 빨리 가르쳐야겠군요.

차레크

이 분은?

레온투초

이곳의 주류 판매업자 드미트리. 이쪽도 이번 대회에 참가했어.

차레크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살루초 와이너리의 주인 되시죠? 젊은 분이 정말 유능하십니다.

드미트리

반갑습니다. 다만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드미트리

오늘 저녁 와인 챔피언십에는 다들 맛을 기대하고 온 거겠죠?

차레크

하하, 물론이지요.

차레크

와인의 좋고 나쁨은 결국 혀가 판단하는 거니까요.

드미트리

그렇다면 됐습니다.

드미트리

하마터면 누구의 뒷배경이 더 깨끗한지, 누구의 스토리가 더 재밌는지 겨루는 대회인 줄로 착각할 뻔했거든요.

차레크

하하, 스토리도 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와인이 입맛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스토리라도 오래 버티긴 어려울 겁니다.

드미트리

맞는 말씀입니다. 결국 우승하는 와인은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와인이어야 하죠.

레온투초

네 와이너리의 와인은 결승에 오르지 못했는데, 별로 실망하지 않은 것처럼 들리네?

드미트리

시장님, 농담도 잘하십니다.

레온투초

이제는 번듯한 상인처럼 보이네.

드미트리

이렇게 되길 바라셨던 거 아닌가요?

레온투초

……

드미트리

카시미어인은 '페어플레이'에 항상 자신만만하다고 들었는데, 마침 오늘 밤 확인할 수 있겠군요.

드미트리

그리고, 진짜 결과는 곧 드러날 겁니다.

차레크

하하, 그러니 더 기대가 되는군요. 무엇보다 우리가 뉴 볼시니에 온 이유는……

차레크

낡은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도시에서, 공정한 경쟁을 지켜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니까요.


감비노

방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

카포네

방금 극장 입구에서도 똑같이 물어봤잖아.

카포네

지하 저장고에서 무슨 소리가 나겠어. 누가 와인을 훔치러 왔다면 모를까.

감비노

대회용 와인은 우리 앞에 있는 이것들뿐이지?

카포네

응. 대회가 끝나면 내빈들은 이번 대회에 출품한 와인을 마실 수 있다고 들었는데,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굳이 지금 와인을 훔쳐 마시러 오진 않겠지?

감비노

그러면 우리도 마셔볼 수 있다는 건가?

카포네

당연히 안 되지.

감비노

쳇, 맥 빠지네.

카포네

전부터 계속 맛보고 싶다며? 지금 한 잔 따라 마셔도 고발하진 않을게.

그 말이 끝나자마자 모퉁이의 선반 사이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카프리니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선반 사이 통로를 지나 위로 향하는 계단을 통해 지하 저장고를 나갔다.

카포네

……

감비노

……

카포네

벌써 나갔네.

감비노

방금 우리가 한 말은 못 들었겠지……

카포네

멀리 떨어져 있으니, 보지도 못했을 거야. 저런 뿔을 가졌다면 십중팔구 아마 카프리니겠지. 악단 사람인 것 같은데.

감비노

악단 사람이 왜 지금 여기에 온 거지? 곧 공연 아닌가……

카포네

공연 전에 긴장 풀려는 거겠지. 너도 총 잡고 있을 때 손톱으로 안전장치를 긁잖아?

감비노

웃기지 마, 언제적 얘기를 지껄여……

다급한 발소리에 감비노는 곧장 입을 다물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또 다른 카프리니가 앞서 나간 단원의 발소리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지하 저장고를 나갔다.

카포네와 감비노 모두 금발 소녀의 얼굴에 가득한 의혹을 똑똑히 목격했다.

감비노

……

감비노

방금 건 악단 단장의 딸이야. 출입 카드도 쟤가 나한테 건네줬는데.

카포네

시라쿠사에서 이렇게 많은 카프리니를 본 게 대체 언제였더라?

감비노

그 악단 단원들은 다 라이타니엔에서 온 거래.

카포네

그게 뭐? '시칠리안'이랑 같다고 말하려는 거야?

감비노

아니. 그냥 뉴 볼시니에 다양한 사람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쿠란타도 있고, 카프리니도 있고. 언젠가 길에서 에기르를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

카포네

나는 괴상하게 생긴 승객이나 좀 줄었으면 좋겠다.

카포네

가자, 지하 저장고 한 바퀴 더 둘러보러. 아마 위에서 공연이 곧 시작될 거야.


악단이 등장하자, 극장 안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먼저 현악기의 온화하고 절제된 음색이 울려 퍼졌고, 뒤이어 목관 악기가 가세했다. 화려한 선율은 아니었지만, 음표들이 딱 알맞게 펼쳐졌다.

극장 안의 내빈들은 잔을 들고 음악에 맞춰 천천히 몸을 흔들었다. 레온투초는 앞줄에 앉아 있었고, 옆에 있던 드미트리가 웨이터가 내민 와인을 재차 거절하는 모습을 보았다.

레온투초

와인 파티에서 와인을 거절하는 손님은 드문데.

드미트리

그냥 카시미어 와인의 향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레온투초

그러고 보니 너, 내 예상보다 일찍 왔더군.

드미트리

초대를 받았으니, 마지막에야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죠. 그러면 제가 아직 옛날 습관을 못 버린 것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드미트리

시장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레온투초

네 입에서 '옛날 습관'이라는 말이 나오니까, 스스로 성장했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드미트리

그러면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아시다시피, 제가 뼈 있는 말을 잘 못 알아듣거든요.

레온투초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무대에서 눈을 떼고 드미트리의 넥타이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은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거였다. 지금 드미트리가 보여주는 공적인 태도에 진심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 레온투초는 알 수 없었다.

레온투초

오늘은 확실히 상인처럼 보이네, 드미트리.

드미트리

바라시던 대로 된 것 아닙니까?

레온투초

바라던 대로 된 건 많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이 되는 건 아니거든.

드미트리

그러면 지금의 뉴 볼시니는요? 원하시던 모습입니까? 이 도시와 이 도시를 누비는 사람들을 보고, 안심하실 수 있습니까?

레온투초

뉴 볼시니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어.

드미트리

여전하시네요. 입으로는 질서를 말하면서도, 눈으로는 사람을 주시하죠…… 자, 저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아요. 왜요, 제가 뭐라도 가지고 갈까 봐 겁나십니까?

레온투초

네가 이 도시를 네 책상처럼 여길까 봐 걱정하는 거지. 제멋대로 뒤집어엎으면, 그 위에 있는 모든 것도 휩쓸려 넘어질 테니까.

드미트리

그러면 계속 주시하고 계시죠, 레온. 당신이 보고 있는 한, 저는 실수하지 않으니까요.

두 사람의 곁에 있는 카시미어 상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연주가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가볍게 손뼉을 쳐서 웨이터에게 다음 단계를 준비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차레크

여러분, 제가 뉴 볼시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곳에서는 언제 손뼉을 쳐야 할지, 언제 소리를 죽여야 할지 누구나 알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차레크

이건 정말 드문 일이지요.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조용히 해야 할 때 시끄럽게 굴고, 소리가 필요할 때 침묵한답니다.

차레크

악단의 멋진 공연에 감사드립니다. 음악이 끝났으니, 오늘 밤의 대회를 증명해 줄 우리의 특별 심사 위원을 모시겠습니다.

차레크

라이타니엔에서 오신 음악가이자 이 도시의 손님이기도 하신, 파올라 씨입니다.

차레크

주류 업체 소속도 아니고, 패밀리 소속도 아니니, 파올라 씨보다 더 적합한 후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대 위의 지휘자가 우아하게 사방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무대 앞에 준비된 와인 테이블로 걸어갔다.

파올라

여러분, 안녕하세요.

파올라

저는 지휘나 연주를 할 줄 알지, 칭찬이나 예쁜 소개말은 잘 못합니다. 하지만 이번 결승의 심사 위원이 된 이상, 약속드리죠……

파올라

반드시 정성껏 음미하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차레크

하하, 이게 바로 제가 파올라 씨를 모신 이유입니다.

차레크

예쁜 말? 아니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솔직한 평가입니다.

그는 손을 들어 웨이터에게 3개의 디캔터에 담긴 와인을 순서대로 다른 잔에 따르라고 신호했다.

차레크

그럼, 시작하지요.

차레크

오늘 밤 결승에 오른 3가지 와인은 각기 다른 와이너리, 다른 자연환경, 그리고 다른 '야심'에서 빚어진 것들입니다.

차레크

규칙은 간단합니다. 라벨도 보지 않고, 스토리도 듣지 않고, 오로지 맛으로만 평가합니다. 파올라 씨, 시작해 주십시오.

훤칠한 키의 음악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지한 모습으로 잔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향을 맡고, 입안에 머금었다가, 삼키고, 멈췄다.

파올라

첫 번째 와인은…… 참으로 빈틈없는 맛이군요.

파올라

향이 그리 강하지 않고, 입안에 닿는 느낌도 부드러워요. 과일 풍미가 가장 먼저 느껴지지만, 금방 가라앉습니다.

파올라

흠잡을 데 없이 세심하게 만들어졌다는 게 느껴지네요. 어느 맛 하나 과하게 튀지 않고, 전체적으로 매우 조화롭다는 인상을 줍니다.

파올라

손님께 안심하고 내드릴 수 있는 와인입니다.

파올라

두 번째 와인은, 훗, 꼭 뉴 볼시니 사람 같네요.

파올라

입안에 머금으면 바로 알코올이 느껴지지만, 불쾌하지도 날카롭지도 않습니다.

파올라

첫맛은 약간 자극적이고 산미 또한 직설적으로 다가오네요. 남의 말을 듣기도 전에 자기주장부터 내세우는 타입 같습니다.

그리고 파올라는 세 번째 와인을 그 어느 때보다 천천히 음미했다. 입안에 머금고도 곧장 삼키지 않고, 한동안 혀끝에 머무르게 했다.

파올라

세 번째 와인……

파올라

첫맛은 절제되어 있으나, 맛의 레이어가 뚜렷하게 느껴지는군요. 이건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와인이 아니라……

파올라

마치…… 마음에 안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누구에게도 아부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타입 같군요.

파올라

정말 뚝심 있는 와인이에요. 저도 이런 뚝심을 좋아합니다만.

카시미어 상인이 객석의 내빈들을 향해 돌아서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이미 승자의 단상에 올라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차레크

그렇다면, 파올라 씨, 이 3가지 와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와인 하나를 골라 주신다면……

파올라

물론 이 세 번째 와인입니다.

카시미어 상인은 물 흐르듯 세 번째 잔 뒤에 있는 와인병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한결 들떠 있었지만, 품위를 고려한 절제만큼은 여전했다.

차레크

여러분, 답이 나온 것 같습니다.

차레크

이 와인은……

드미트리

먼저 병을 잘 확인하고 이름을 읽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드미트리

안 그러면 읽고 나서 민망해질 테니까요.

차레크

네……?

카시미어 상인은 멈칫하더니, 아주 천천히 병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라벨을 본 순간, 얼굴에 띤 미소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건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그는 재빨리 미소를 되찾아 얼굴에 걸었다.

차레크

……오늘 밤 첫 번째 깜짝 선물이 예상보다 더 일찍 왔군요.

드미트리

말씀하신 대로, 스토리가 아닌 와인의 품질만으로 가렸으니까요.

차레크

결승 명단에 없었던 와인이 어떻게 이 자리에 있어야 할 '골든 플레인'을 대신하게 된 건지는 의아합니다만?

드미트리

아, 그렇습니까? 카시미어의 그 빈틈없는 상업 시스템에도 등록 누락과 같은 초보적인 실수가 생기는 모양이군요.

차레크

하하, 맞습니다. 확실히 초보적인 실수죠!

차레크

여러분, 살루초 와이너리를 축하합시다!

차레크

드미트리 씨, 당신의 와인은 이 자리에서 가장 까다로우면서도 가장 객관적인 혀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드미트리

감사합니다.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페어플레이'라는 게 실재하는 걸로 보이는군요.

드미트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요.

차레크

하하, 물론 좋은 일입니다.

차레크

승자가 미리 정해져 있다면 사업이 참 따분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뉴 볼시니에 온 것도 바로 그런 따분한 장사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차레크

그럼, 현지 와이너리의 승리를 축하하며, 그리고 이 도시를 위해서 건배합시다!

드미트리

건배.

웨이터가 내빈들의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한층 더 힘찬 박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 안에는 레온투초의 박수 소리도 있었다.

드미트리

저를 위해 건배하지 않겠습니까, 레온?

레온투초

알다시피, 나는 너보다 혀가 둔하잖아. 건배하기 전에 방금 우승한 그 와인을 먼저 좀 소개해 주지 않겠어?

드미트리

훗…… 원하신다면 기꺼이.

드미트리

진지한 설명이 필요한 와인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놀라게 하지도, 첫 모금에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도 않죠.

드미트리

이 와인은…… 안주가 다 떨어지고 나눌 얘기도 거의 다 나눈 뒤, 그래도 시간을 조금 더 함께 보내고 싶을 때 어울리는 와인입니다.

드미트리

대화가 끊기는 걸 막아주는 마지막 보험 같은 거랄까요…… 분명 지난날을 떠올리게 해서, 협의를 더 수월하게 이끌어 주기도 할 겁니다.

드미트리

만약 이게 당신이 원하던 와인이라고 느껴졌다면, 이 와인은 이미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레온투초

……야심이 상당한 와인이군.

드미트리

물론이죠. 파올라 씨께서 방금 말씀하신 대로, 당신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와인이니까요.

레온투초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라는데, 내가 좋니 싫으니 왈가왈부할 권리 따윈 없겠지.

드미트리는 웃기만 하고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잔을 들어 레온투초의 잔에 가볍게 부딪혔다.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무대 한구석에서 아주 작고 갑작스러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파올라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와인잔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살짝 흔들렸고, 잔 속의 와인이 잔의 벽을 타고 불규칙한 자국을 남겼다.

파올라

……죄송합니다.

파올라

콜록, 콜록콜록……!

그녀는 말을 이으려는 것 같기도 했고, 그저 무의식적으로 숨을 고르려는 것 같기도 했다. 두 번째 기침은 더 급하게 밀려왔고, 그녀가 소리를 힘껏 눌러 삼켰음에도 완전히 덮을 수 없었다.

줄곧 곁을 지키던 금발 소녀가 그녀의 바뀐 안색을 가장 먼저 포착했다. 파올라는 손을 뻗어 테이블 끝을 움켜잡으려 했지만, 끝내 몸을 가누지 못했다.

잔이 손에서 미끄러져 카펫 위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기울더니, 이내 풀썩 쓰러졌다.

누군가는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으며, 누군가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웨이터가 달려왔을 때, 그녀는 이미 숨이 끊어진 채 테이블 옆에 쓰러져 있었다. 불빛 아래에서 그녀의 입술은 기이한 빛을 띠고 있었다.

금발 소녀는 황망하게 '엄마'와 '누가 좀 도와줘' 같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냈다.

그 순간, 드미트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가셨다. 카시미어 상인은 방금과 같은 자세로 자리에 서 있었지만,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잠깐의 혼란이 지나간 뒤, 극장 안은 현실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요 속으로 가라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정', '체면', '승리'를 위해 잔을 들어 올리던 자리였다.

하지만 이제 테이블 위의 와인잔에 손을 뻗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장과 시청 관계자들이 자리한 덕분에 사태는 빠르게 수습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가가야 할지, 자리를 떠야 할지 몰라 그저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레온투초

다들 진정해.

레온투초

의료진이 오고 있어. 정황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현장 경호 인력에 협조하고, 무단 행동은 삼가길 바란다.

차레크

시장님, 그리고 내빈 여러분, 이 점만큼은 분명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오늘 밤 출품된 와인은 모두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쳤습니다.

차레크

물론, 저희 중 누구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죠.

차레크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근거 없는 추측이 퍼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옆에 선 레온투초는 즉시 말을 이어받지 않았다. 그는 웨이터가 임시로 격리해 둔 테이블 쪽을 한 번 훑고는, 이어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드미트리는 말이 없었다. 그는 다가서지도 물러서지도 않고, 그저 손에 쥐고 있던 잔을 테이블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잔 바닥이 테이블에 닿으며 작은 소리를 냈다.

그 틈을 타서 카시미어 상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차레크

방금 시음 단계에서, 확실히 예상 밖의 일이 있기는 했습니다.

차레크

와인병의 라벨이 등록된 내용과 일치하지 않았죠.

차레크

그게 곧 악의를 품었다는 의미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하니만큼, 절차상의 모든 불일치가 명확히 해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물결처럼 자연스레 드미트리에게로 모여들었다.

드미트리

제 해명을 기대하시는 거라면, 아마 실망하실 겁니다.

드미트리

저도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과 똑같이, 이 일이 몹시 뜻밖이고 경악스럽습니다.

드미트리

방금 그 와인에 관해서라면, 저는 그 와인의 맛과 그 와인이 이 극장에 제때 들어오도록 하는 일만 책임졌습니다.

드미트리

그 외의 일에는 제가 손대지 않았습니다.

차레크

당신은 젊고 유능한 와이너리의 주인이자, 패밀리의 보스이지 않습니까? 직접 손대지 않아도 기꺼이 대신해줄 사람이 줄을 서 있겠지요.

차레크

여러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파올라 씨는 어찌 된 영문인지 무대 위에 올라와 있던 살루초 와이너리의 와인을 한 번 더 마신 직후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차레크

파올라 씨가 당신과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런 꼴을 당해야 합니까?

차레크

제 대회에서 당신의 와인을 1등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서, 이 사태를 이용해 제 사업까지 망치려는 겁니까?

차레크

어쩌면 당신 같은 패밀리의 거물들에게는 다른 꿍꿍이가 있거나, 서로 알력 다툼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우리 같은 일반인들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나요?

레온투초

……차레크 씨.

레온투초

아직 결론을 내리기엔 일러. 뉴 볼시니에는 자체적인 절차가 있고, 그 절차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거다.

레온투초

공공장소에서 발생한 사건이니만큼, 경찰이 개입할 거야.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떤 개인이나 상회에도 낙인을 찍어서는 안 돼.

차레크

물론입니다, 당연하죠.

차레크

저희도 어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우리 카시미어의 와인 뿐만 아니라, 뉴 볼시니 현지 와인까지 불신하게 될 테니까요.

차레크

시장님, 제 와인 챔피언십에서, 아니 어떤 연회에서도 사람이 죽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차레크

훗날 골목 어딘가에서, 저는 카시미어인이 개최한 와인 챔피언십이 패밀리의 알력 다툼에 휘말렸다는 소문이 들리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차레크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 카시미어인…… 그리고 라이타니엔, 컬럼비아, 나아가 더 먼 지역의 상인들이……

차레크

시장님의 어떤 약속을 믿고 뉴 볼시니에 온 것인지를요.

레온투초

……

카시미어 상인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대회의 기록을 위해 초청된 장내의 기자들과 사진 기사들은 하나같이 그 말을 들은 눈치였다.

플래시가 터지는 빈도가 조금 전보다 눈에 띄게 잦아졌다.

드미트리는 쏟아지는 플래시를 받으며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드미트리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면, 피하지 않겠습니다.

드미트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을 겁니다.

레온투초

……드미트리! 정황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무단 행동을 삼가라고 했을 텐데.

드미트리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제 혐의가 가장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니 저는 경찰이 철저하게 수사할 수 있도록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겠습니다.

드미트리

시장님도 말씀하신 절차대로 일이 진행되도록 해주세요.

레온투초

……

레온투초

……알겠어.

레온투초

준비해 두지.

차레크

시청 경찰이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번거롭게 할 필요 없이, 제가 고용한 경호원들이 벨로네 씨를 집으로 '호송'해 드리면 되겠네요.

[CG: 071_mini01]

레온투초는 붉은 머리 루포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얼굴에서 뭐라도 읽어내려 했다.

잔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사라졌던 드미트리의 미소가 다시 어렴풋이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미소일 뿐이었다. 레온투초는 그것을 “당신을 곤란하게 하지 않겠습니다.”로 읽어야 할지, “당신이 해결하리라 믿습니다.”로 읽어야 할지, 아니면 “이미 손을 써두었습니다.”로 읽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CG: 071_mini01]

레온투초가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드미트리는 카포네와 감비노 사이에 끼인 채 레온투초의 곁을 스쳐 극장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아주 짧은 순간 마주쳤다가 이내 엇갈렸다.

기자들의 플래시가 드미트리의 얼굴 위로 쉴 새 없이 번쩍였다.

레온투초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표정을 가다듬은 다음, 이 기회를 틈타 더 많은 이득을 취하고자 압박을 가하는 외국인을 다시 마주했다.


카포네

너 방금 뭐라고 했지?

카포네

“벨로네 씨, 조금 전에는 실례했습니다. 아프지는 않으셨죠?”

카포네

웃음을 참느라 죽는 줄 알았어.

감비노

어쨌든 지금 뉴 볼시니에서 그는 살루초 패밀리의 실권자고, 벨로네 패밀리의 새 보스니까, 좀 예우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

감비노

게다가 방금 우리한테 팁도 줬잖아…… '팁'치고는 엄청 두둑했지만.

카포네

패밀리 보스라는 양반도 외국 자본가한테는 똑같이 당하는구먼.

감비노

너 설마 카시미어인이 손을 쓴 거라고 생각해?

감비노

난 오히려 그 바텐더 녀석이 일부러 상황을 이 지경으로 몰고 갔다는 생각이 드는데? 너도 봤잖아, 극장을 나설 때 그 자식의 그 여유로웠던 태도를.

감비노

패밀리 출신 녀석들이 가장 잘하고, 가장 익숙한 게 이런 속고 속이는 짓거리 아니겠어?

카포네

알 게 뭐야, 나는 신경 안 써.

카포네

여기는 시칠리아가 아니고 뉴 볼시니야. 너나 나나 패밀리 보스가 얼마나 꼴사납게 나가떨어지는지 실컷 봐왔잖아.

감비노

그나저나, 방금 드미트리를 호송할 때, 행사장 안에서 사진 찍던 기자들이 내 등에 있는 택시 회사 홍보 문구도 찍었으려나?

카포네

내일 아침에 신문 사서 확인해 봐.

카포네

어쩌면 '시칠리아'라는 글자만 찍혔을지도 모르지. 그럼 재밌겠는데.

감비노

……

카포네

뭐야, 삐졌어? 삐졌으면 그만할게.

감비노

……그게 아니라, 그냥 문득 든 생각인데, 어쩌면 뉴 볼시니도 결국은 시라쿠사의 도시 아닐까 싶어서.

감비노

뭔가 바뀐 게 있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감비노

아니면, 줄곧 변하지 않았던 것들이 이 새로운 세상에 들어와서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