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의 비결
최우수 영업사원 토시아는 그랜드 나이트 영지의 분쟁을 피해 뉴 볼시니로 옮겨오고, 이곳에서 자신의 영업 방식과 영업 목표를 새롭게 검토하기 시작한다.
베티나, 미안해. 아저씨도 도와주고 싶은데…… 너도 알다시피 나도 그냥 구멍가게 주인이라.
저번에 너한테서 들여온 와인 몇 병이 아직도 먼지 쌓인 채 그대로 있단다. 아니면 길모퉁이에 있는 가게에 가서 한번 물어보는 게 어때?
네, 그럴게요. 고맙습니다, 폴 아저씨!
……사실 길모퉁이에 있는 그 가게에도 물어봤었는데, 다들 '필요 없어'라 말했어.
일단 물건부터 치우자. 여기에 서 있으면 폴 아저씨의 장사에 방해가 될 테니까.
읏차…… 으아아앗?!
조심해!
큰일 날 뻔했네…… 자, 똑바로 들어.
고, 고마워요, 언니.
진짜 무겁네. 너같이 꼬맹이가 이걸 어떻게 든다고.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어라, '베르디'잖아.
이걸 아세요?
이건 우리 할아버지가 일하는 베르디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이에요. 우리 와이너리는 역사가 수십 년이나 돼요! 언니, 한 병 구매해서 드셔보실래요?
……그랬구나.
너, 이름이 베티나지?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하자.
나는 토시아라고 해. 자, 이건 내 명함이야.
명함이라니, 우와, 정말 멋진데요! 하지만 죄송해요, 베티나는 명함이 없어서…… 어?
카시미어 골든 플레인 와이너리, 뉴 볼시니 지사…… 영업 담당?
뭐, 곧 있으면 '시니어 어카운트 매니저'가 되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됐어. 아쉽게도 우리는 경쟁 상대니까, 네 와인은 구매하지 않을 거야.
이제 좀 비켜줄래? 베티나…… 나는 폴 씨랑 미팅이 있거든.
뉴 볼시니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큰 거래를 몇 건이나 성사시켰군. 정말 대단해!
자, 토시아, 오늘은 우리 최우수 영업사원을 위해 뒤늦게나마 환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뭘 이렇게까지 해줘, 삼촌!
삼촌도 요즘 계속 와인 챔피언십을 준비하느라 바빴잖아. 내가 와서 폐를 끼친 건 아닌지 걱정이야.
폐는 무슨! 너같이 경험 많은 영업사원이 우리 '골든 플레인'에 합류해 줬으니, 내가 오히려 횡재한 거지.
그나저나, 크시비 도메크 백화점에서 잘나가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어쩌다 지금 같은 시기에 뉴 볼시니로 올 생각을 했어?
그게…… 말하자면 길어.
설마 최근 그랜드 나이트 영지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 '실버랜스 페가수스 부정부패 사건'과 관련이 있는 건가?
차레크가 목소리를 낮췄음에도 토시아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삼촌이 어떻게 그걸……
얼마 전, 상업연합회가 크시비 도메크 백화점에서 너희 쪽 담당자 한 명을 연행했다고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너희 부서 책임자였더라고.
……역시 삼촌한테는 숨길 수 없네. 내게는 은인 같은 분이셨어. 그런데…… 그분 친척 중에 실버랜스 페가수스가 있거든.
원래는 영예로운 일이었는데, 상업연합회가 괴롭히기 시작하면서…… 상업연합회는 감정회 사람들을 직접 건드리기 어려울 때 주변인들을 '연행 조사'하더라고.
사건이 갈수록 커지면서, 억울하게 연루되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어. 누가 봐도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한테도 이것저것 죄명을 씌우고 있으니……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잘못 휘말리기라도 하면, 상업연합회 같은 거물과 무슨 수로 맞서겠어?
그래서 차라리 나와서 새 출발하자 싶었지……
토시아, 우리 '골든 플레인'이 뉴 볼시니에서 이 정도 규모까지 클 수 있었던 건 상업연합회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위에 계신 분들이 성장과 확장을 도모하는 건 우리 같은 상인들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삼촌 말이 맞아.
여기 온 이상, 그랜드 나이트 영지 일은 그만 잊어버려.
그리고 지금처럼 뚝심 있게 열심히 일해. 나중에 삼촌 사업이 더 커지면, 네 몫도 더 커지지 않겠어?
……고마워, 삼촌.
넌 영리한 아이니까, 내가 더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요리는 이미 시켰는데, 네가 뭘 마실지 모르겠네.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사실 나 술은 잘 못하거든.
어디 보자……
참, 여기 그 갈색 탄산수 있어? 시라쿠사 현지 브랜드인데, 약간 씁쓸하면서 오렌지 맛이 나는 거 말이야.
혹시 '키노토' 말씀이십니까? 죄송하지만, 저희 가게에는 없습니다.
그런 구닥다리 음료를 네가 어떻게 알지? 우리 회사 음료가 들어오고 나서, 현지 브랜드들은 거의 다 밀려났는데.
아…… 정말?
토시아, 우리 회사 슬로건을 잊었니? “뉴 볼시니, 새로운 삶.” 레트로니 향수니 하는 건 라이타니엔 놈들에게나 맡겨 두라고.
자, 우리 회사 무알코올 탄산수 한 잔 어때?
아하하, 그래! 삼촌 말대로 할게.
그래야지. 참,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군. 오늘 이것도 좀 봐줬으면 해.
이건…… 상품 진열 계약서?
갓 잡은 초안이다. 정식 시행하기 전에 우리 영업왕의 의견도 좀 들어보고 싶어서.
기준도 명확하고, 보상도 후하니…… 거절할 소매상이 거의 없겠는걸.
하지만 이걸 수락하면, 현지 소매상은 계약 기간 동안 우리 상품만 진열해야 하잖아.
이런 노골적인 독점 조항은 현지 법규에 저촉되지 않을까?
어쨌든 《신도시 관리법》에서는 금하지 않았으니까.
머릿속에 이상과 신념만 가득한 루포 녀석들은 그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할 거다.
차레크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실제로 발로 뛰며 그 소매업체들과 협상하는 건 너희 같은 일선 직원들이잖니. 토시아, 네 활약을 기대하마.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무알코올 탄산수 나왔습니다.
자, 뉴 볼시니를 위해, 새로운 삶을 위해, 건배할까?
……물론이지, 삼촌.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게.
건배!
후…… 이제야 좀 배가 차네!
'셰프 특선 만찬'은 무슨, 양은 쥐꼬리만 하면서 따지는 건 더럽게 많고.
마지막 피자 조각을 입에 넣은 토시아는 손에 남은 부스러기를 털고 저녁 바람을 맞으며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형형색색의 광고판들이 환하게 비춘 거리는 흡사 대낮을 방불케 했다. 그 야경은 감탄을 자아낼 만했지만, 토시아가 소문으로만 전해 들었던 시라쿠사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상품 진열 계약서라니, '독점 입점 계약서'란 이름이 더 어울리겠구만.
이걸로 또 직장을 잃거나 파산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오겠지? 낮에 본 꼬맹이도, 계약이 시행되고 나면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녀 봤자 와인을 팔지 못할 거잖아……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큰 비즈니스 기회가 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도, 빅토리아인이나 컬럼비아인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을 테니까……
어?
어? 낮에 본 언니네요.
너였구나. 어떻게, 와인을 한 병이라도 팔……
지는 못했네.
네……
토시아 언니, 언니는 영업을 잘하시죠? 그렇다면 부탁이……
안 돼.
어? 아직 다 말하지도 않았는데요……
나한테 한 수 가르쳐 달라는 거 아니야? 표정만 봐도 무슨 말 하려는지 뻔해. 안 돼, 꿈도 꾸지 마.
왜요?
소녀의 얼굴에 드러난 또렷한 낙담과 의문에 토시아는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베티나, 너 몇 살이야?
다음 주면 10살이에요.
10살…… 알겠어, 그럼 확실히 말할게.
네 나이에 생계를 위해 나온 건 분명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겠지. 나도 다른 상황이었다면 기꺼이 도와줬을 거야.
사실 나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온 거니까. 인정을 베푸는 것도 투자라면 투자고, 밑지는 장사가 아니거든.
하지만 문제는, 뉴 볼시니엔 사람이 적고, 한 사람이 하루에 마실 수 있는 와인의 양은 정해져 있다는 거야.
너는 '베르디'를 팔고, 나는 '골든 플레인'을 팔지. 그러니까, 우리는 경쟁 상대야. 적이라고.
물론, 세상에는 그래도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너같이 가엾은 꼬마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겠지…… 근데 나는 달라.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여자니까!
장사판은 전쟁터야. 적을 돕는 건 나 자신을 배신하는 거라고!
나는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사람이야. 상대가 꼬마라고 해서 함부로 정 베풀 생각은 추호도 없어! 알겠어?
알겠어요……
좋아! 그럼 계속 열심히 해. 나는 이만 갈게.
……내가 너무 심했나?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 양심 없는 삼촌은 보장도 없는 약속 하나 달랑 내걸고 날 부려 먹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니까.
여기서 자리 잡으려면, 남의 일에 신경 쓸 여유 같은 건 없어……
근데…… 설마 울진 않겠지? 한 번만 돌아볼까, 딱 한 번만……
흐윽……
(고개를 떨구고 무척 슬픈 기색을 하고 있다)
(다리 난간을 붙잡는다)
(난간 위에 올라선다)
(뛰어내리려고 한다……)
으아아아아아, 잠깐잠깐, 극단적인 생각 하지 마~~~!!!
꺄아악?!
엄청 위험했잖아. 내가 재빨랐기 망정이지……
요즘 애들은 멘탈이 왜 이렇게 약해! 알았어, 알았다고, 가르쳐 주면 되잖아?
정말이지, 나는 예전에 실적도 못 내고, 집도 없이 다리 밑에 살면서, 패스트푸드점의 남은 감자튀김 주워 먹어도 이런 극단적인 생각은 안 했는데!
넌 아직 어리잖아, 앞날이 얼마나 긴데!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어.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나아질 거라고 미……
믿어야……
그 표정, 뭐야?
토시아 언니, 뭔가 오해하신 거 아니에요? 저는 빵이를 구하려던 거였는데요……
……무슨 빵?
저기, 저 난간 밖에요. 빵이가 너무 장난꾸러기라, 저기까지 들어갔어요……
멍!
그럼 아까 그건……
아하핫, 뭐야! 그럼 아까처럼 필사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없었네! 다행이다~!
아니, 그래도 강아지 하나 구하자고 난간을 넘으면 안 되지! 얼마나 위험한데!
하지만 손이 안 닿아요……
……
에이 진짜, 비켜봐 내가 할게! ……빵이야, 물면 안 돼!
정말 고맙구나, 베티나! 네가 이 아이를 데려와 주지 않았으면 정말 어쩔 뻔했는지……
그럼 우리는 먼저 갈게. 빵이야, 베티나 언니한테 인사해야지.
네, 비앙카 언니 안녕히 가세요. 빵이도 잘 가!
……음? 잠깐잠깐, 너 왜 방금 사람한테 아무것도 안 물어봐?
뭘요?
와인 구매하지 않겠냐고 물어봐야지. 인맥 영업이 고비용 저효율이긴 하지만, 하나라도 파는 게 아무것도 못 파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 '빵이'를 찾아줬으니까, 와인 한 병 구매해달라고 할 수 있었잖아?
네?
……설마 그냥 순수하게 좋은 일 한 거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내가 오해한 건가? 사실은 집에 딱히 급한 사정도 없고, 팔리든 안 팔리든 그다지 상관없는 거야?
아니에요, 어떻게 상관없겠어요! 꼭 팔아야 해요. 할아버지가 요즘 갈수록 판매량이 떨어진다고, 이번 달에도 팔지 못하면 와이너리를 이어갈 수 없다고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해요? 토시아 언니, 아까 가르쳐 주겠다고 하셨잖아요.
뭐? 내가 언제 가르쳐 주겠다고……
요즘 애들은 멘탈이 왜 이렇게 약해! 알았어, 알았다고, 가르쳐 주면 되잖아?
끙, 진짜 말했네. 근데 그건 아까 네가 뛰어내릴까 봐…… 크흠.
말을 바꾸겠다는 게 아니라, 네가 파는 물건을 좀 봐. '베르디'잖아. 요즘 제일 안 팔리는 게 바로 이런 싸구려 현지 와인이거든.
노후화된 설비, 허술한 원가 관리, 뒤떨어진 홍보 방식…… '골든 플레인'이 가격은 반값에 품질이 더 좋은데, 누가 '베르디'를 사겠어?
네 할아버지가 일하는 와이너리가 망하는 건 시간문제야. 하루빨리 다른 일을 알아보시는 편이 좋을 거야.
하지만 와이너리의 어른들이 그랬어요. “팔리지 않는 물건은 없다. 팔지 못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저도 '베르디'가 팔기 어렵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토시아 언니도 못 팔 정도인가요?
……
아까는 교묘하게 흥미를 끌더니, 이번엔 도발 작전이야? 제법인데.
흥미를…… 끌어요?
흐흥, 그래도 난 그런 수법에 안 넘어가.
굳이 이런 일에 끼어들어서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크시비 도메크 백화점의 전년도 우수 사원이자 '골든 플레인'의 미래 영업왕이야. 내가 못 파는 물건이 있을 리가 없지……
그래, 내가 못 파는 물건은 없어! 좋아,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내가 한 수 가르쳐 줄게!
이 영업왕의 지도를 받으면, 몇 병이 뭐야? 열 상자도 거뜬하다고!
……설명해 봐, 왜 한 병도 못 팔았어?
죄송해요. 토시아 언니가 시간 내서 가르쳐 주셨는데, 저는…… 흐윽.
하루 정도 쉬는 건 별일 아니야. 어차피 2등이랑 격차를 크게 벌려 놨고, 지금 적당히 해야 다음 달 실적을 끌어올릴 여지도 생기거든……
그것보단 내 제자가 이런 실적이라는 게 더 문제야! 너 진짜 내가 가르쳐 준 방법대로 한 거 맞아?
토시아 언니가 가르쳐 주신 말들은 열심히 외웠어요. 그런데……
그런데?
“바디감이 풍성하고, 절묘한 균형감과 생동감이 있다.”라는 말 같은 거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걸 어떻게 아는 척하고 남한테 얘기해요?
그리고 우리 와인이 “역사가 가장 오래된 생산지에서 왔다.”라고 말하는 것도…… 우리 와이너리는 우리 포도밭에서 나는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데,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오해하잖아요?
할아버지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야 서로 믿을 수 있고, 서로 만족하는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고요. 그래서 저는…… 저는……
……하, 내 이럴 줄 알았어.
잘 들어. 그런 방식은 진작에 구식이 됐어.
내가 진심으로 대한다고 해서 상대도 항상 진심인 건 아니야. 남을 쉽게 믿는 바보는 알거지가 될 때까지 사기나 당하고, 착실한 멍청이가 몸 갈아 넣으며 일해봤자 자기 몸부터 망가뜨리게 될 뿐이라고.
정말 벼랑 끝에 몰리고 나서야, 손 내밀어 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되지. 이해득실 앞에서 진심은 아무런 값어치도 없어.
생존의 희망은 남한테 기대서 이룰 수는 없는 거야. 뒤처지지 않으려면 좀 더 약삭빨라야 해, 알겠어?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옷자락을 비틀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보자, 토시아는 목소리를 조금 부드럽게 낮췄다.
그리고 진짜 누굴 속이라는 건 아니야. 그냥 조금 포장을 하라는 거지.
포장이요?
그래. 이렇게 예쁜 리본을 묶고, 선물 상자에 넣어서……
좋아! 이제야 좀 그럴듯해 보이네.
……크흠! 이미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뉴 볼시니의 주류 진열대에는 엄청난 변화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와인 종류가 몇 개 되지 않았죠. 하지만 지금은 빅토리아의 피노 누아, 컬럼비아의 카베르네 소비뇽, 볼리바르의 스위트 로제 와인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건 틀림없는 기적이죠. 그런데, 잔을 들어 올릴 때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으셨나요?
이 기적들은 엄격한 생산 기준에서 태어나 컨테이너에 실려 사방으로 팔려 나갑니다. 적절한 가격과 안정적인 품질을 갖추고 있지만, 자신의 영혼만큼은 빠져 있죠.
와인이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처럼 개성이 없어서는 안 되죠! 이제 그 천편일률적인 공산품들은 진열대에 돌려놓고, 제 손에 들린 이 최고급 골든 라벨의 산지오베제를 보십시오!
시라쿠사 현지 와이너리에서 수십 년간 장인의 솜씨로 빚어낸 와인! 독특한 풍미, 기나긴 여운! 한 모금이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고, 두 모금이면 기운이 절로……
한 병 주세요. 이 정도면 되나요?
엥?
어?
와인 팔고 있는 거 아닌가요? 시간 없으니 빨리 주세요. 후우…… 지금 내 모습이 어때 보이나요?
어, 괜찮아 보이시는데요…… 혹시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요. 그분들도 뉴 볼시니에 계실 줄은 몰라서, 아무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지 뭐예요. 당신들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군요.
고마워요, 두 아가씨. 장사 번창하길 바랄게요.
잠깐만요…… 벌써 가버렸네.
흠…… 그냥 예시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진짜 덥석 사 가는 호구가 있을 줄이야. 이 와인을 모르는 걸 보면 아마 외지 사람인가 봐?
그 아저씨, '베르디'를 몇 병이나 더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주고 갔어요……
그러니까 잘 된 거지! 드디어 한 병 팔았으니까, 하이파이브 한 번 할래?
하지만……
아, 왜 울상이야? 팔았으면 됐지. 뭔가 오해가 있었다고 해도, 그건 물건 볼 줄 모르는 사람 탓이니까……
……
……
그나저나, 그 사람 꽤 긴장한 것처럼 보이던데, 가려는 곳이 꽤 중요한 자리라는 뜻 아닐까?
꼬맹아, 하나만 물어볼게. 시라쿠사에서 그런 자리에 싸구려 와인을 사 들고 가면…… 어떻게 돼?
……이번 일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돈은 돌려드릴 테니 다른 선물을 구하세요. 이건 고급 와인이 아니라……
이건 '베르디'잖아요? 저를 허겁지겁 쫓아온 게 이것 때문이었나요?
설마 알고 계셨어요?
이렇게 오래 마신 와인을 모를 리가 있겠나요? 저는 소렌토 출신입니다만, 오래전에 집안과 사이가 틀어져서 홧김에 컬럼비아로 떠나버렸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젠 시라쿠사 말도 좀 어눌해졌어요.
알고 계셨으면서 왜……?
하하! 값비싼 수입 와인을 사 갔다가는 도리어 우리 집 영감한테 쫓겨날 거예요.
찾아뵙는 분이 가족분이세요?
이쪽으로 이사 온 줄 모르고 있었는데, 아까 길에서 봤을 때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지 뭐예요.
……예전엔 정말 큰 일이라 여겼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 별일도 아니었죠.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 한번 안 하고 살았으니, 이제는 다시 얼굴을 봐야죠.
우리 집은 넉넉하지 않아서, 식탁에 오를 와인이라고는 '베르디'가 전부였어요. 아버지가 아무리 마셔도 질려 하지 않으셨던 와인이 있다면…… 이 와인을 봐서라도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니 오해가 있을 것도 없어요. 절묘한 시기에 나타난, 정성스럽게 포장된, 하지만 더없이 평범한 '베르디' 한 병, 이게 바로 제게 필요했던 것이니, 기꺼이 그 값을 치른 것뿐이죠.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행운을 빈다는 말 한마디 얹어주지 않겠어요?
……물론이죠! 행운을 빌어요!
내가 직접 판 걸 되찾으러 달려가는 날이 올 줄이야…… 그렇게 좋아? 이제 기분 좀 풀렸어?
네! 할아버지가 아시면 분명 “좋은 거래를 했구나”라고 칭찬하실 거예요.
그럼, 이제 하이파이브 할까?
예!
하지만 너무 우쭐대지는 마. 이제 겨우 한 병 팔린 것뿐이고, 이런 행운이 늘 따르는 건 아니니까……
저기, 혹시 네가 베티나니?
맞아요. 오빠는 누구세요?
비앙카 씨한테 소개를 받아서, 널 찾고 있었어. 네가 시라쿠사 전통 와인을 판매하고 있다면서?
빅토리아에 시라쿠사 레스토랑을 오픈할 계획이거든. 와인이 괜찮다면 조금 더 들여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와인 소개 좀 부탁해도 될까?
음, 그러니까……
큰 고객이잖아! 자, 멍하니 있지 말고, 제대로 팔아야지! 내가 가르쳐준 걸 활용해서……
아니다.
토시아 언니?
됐어, 꼬맹아. 너는…… 이제 졸업이야.
내가 가르쳐 준 건 다 잊어버리고, 네 방식대로 해.
토시아는 소녀와 청년이 길가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늘 하듯 이해득실을 계산했다.
시라쿠사 레스토랑이라…… 시라쿠사 현지 와인을 들여놓아야 한다고 해도, '베르디'보다는 고급인 와인을 들여놓아야 이윤을 남기기 더 좋을 텐데. 뭐, 본인의 생각이 더 중요하지.
장기 계약이라도 땄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래봤자 새 발의 피일 테지. 앞으로 이 브랜드는 파산이나 인수합병을 피하기 어려울 거야……
음?
멀지 않은 곳에서 대화가 일단락된 듯했다. 소녀가 얼굴에 환한 웃음꽃을 피운 채 폴짝폴짝 뛰며 토시아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꽤 잘 풀린 모양이네.
……됐다. 적어도 지금은 베티나가 행복하면 그만이야.
일주일 후
로저 씨와 얘기해 보니, 사장님의 의견에 동의하시면서도 들어갈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망설이고 계시고, 숨은 위험도 걱정하시는 눈치였습니다……
급할 것 없어. 지금 감정회 쪽에서 별다른 움직임은 없지만, 그렇다고 일이 상업연합회의 계획대로 흘러간다는 뜻은 아니니까.
우리가 지금 상업연합회를 등에 업고 있지만…… 나름의 준비는 해둬야지.
그 두 거물 중 한쪽에서만 꿀이 떨어져도 우리에게는 더없이 풍성한 잔칫상이 될 거야.
그때 숟가락 얹으려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겠지. 미리 준비를 잘 해두고, 가장 완벽한 파도가 올 때만을 기다리면 돼……
어이쿠, 이것 봐라! 우리의 새 영업왕이 드디어 왔군.
영업부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봤다. 현지 유통사들과 상품 진열 계약을 꽤 많이 맺었더구나. 안 그래도 축하 자리를 한 번 더 마련할 생각이었다!
고마워. 삼촌 말대로, 협상할 때 별다른 저항은 없었어.
어제 바로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네게 선약이 있다고 비서한테 들어서 말이야.
며칠 전에 우연히 이 동네 아이를 알게 됐는데, 그 아이가 집에 초대해 줬거든. 삼촌이 신경 써줬는데, 미안해……
사과할 필요 없어. 오히려 잘했다. 뉴 볼시니에서 우리는 어디까지나 외지인이니까, 시라쿠사인을 잘 사귀고 이해해 둬야 놈들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낼 수 있지 않겠니.
우리 조카에게 나름의 비결이 있었구먼. 너는 늘 무엇을 위해 그 일을 하는지를 알지. 그게 바로 내가 제일 높게 평가하는 점이다.
자, 건배!
……
삼촌, 오해야. 그 꼬맹이 집에 간 건 뭘 알아보러 간 게 아니라, 그냥 생일 축하 노래 불러주러 간 거였어.
아, 그래?
고급 와인이 담긴 잔이 허공에 머물렀고, 식탁 맞은편의 소녀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형편은 그저 그렇더라고. 가구며 살림이며 전부 시골에서 가져온 것들 그대로였어. 삼촌 말을 빌리자면, 우리의 “뉴 볼시니, 새로운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집이었지.
그래도 거기서 좋은 소식을 하나 알게 됐어. 봐.
토시아가 유리병에 든 탄산수를 꺼내 새하얀 비단 식탁보 위에 올려놓자, 차레크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 녀석이, 레스토랑에 밥 먹으러 오면서 음료를 직접 가져왔어?
이게 내가 지난번에 물어봤던 '키노토'야. 걔네 가족이 아직 이걸 파는 잡화점이 있다고 알려줬거든.
삼촌이 기억할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아빠가 예전에 시라쿠사 출장을 자주 다녔잖아. 돌아올 때마다 항상 과자나 장난감을 사다 줬어.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게 바로 이 음료였어. 매번 몇 병씩 더 챙겨 오라고 떼를 썼지…… 하하, 지금 생각해 보니 꽤 무거웠겠네.
물론, 그 뒷일은 삼촌도 아는 대로야. 아빠가 직장을 잃는 바람에 음료도 마실 수 없게 됐지.
소녀가 병뚜껑을 열자, 갈색 유리병 안에서 기포가 경쾌하게 지글거렸다.
이걸 한 번 더 맛보고 싶었어. 그리고 이제는 이런 '낡은 것'들이 진짜로 사라지면, 그것도 꽤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거든.
건배하자, 삼촌.
소녀가 탄산수병을 들어 와인잔 가장자리에 살짝 부딪쳤다.
……사실 지난번 무알코올 탄산수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았어.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말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