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잃은 검객
마을에서 검을 잃어버린 검객은 마음이 잘 맞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지만, 그 '마음이 잘 맞는 여인'이 바로 린 칭옌이 쫓고 있던 비급을 훔친 범인이었다. 여인의 창기는 한 줄기 벼락과 함께 흩어지게 되고, 검객은 애초부터 검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등장 오퍼레이터: 레이즈 더 썬더브링어
손님, 벌써 이틀째입니다.
알고 있어.
기다리시는 분이 약속을 어긴 겁니까?
무슨 일이 생겨서 지체된 것일지도 모르지.
손님께서 기다리는 건 괜찮지만, 저희도 문을 닫아야 해서요.
내가 괜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곧 나가도록 하지.
그래도 난 문 앞에서 기다려야 해…… 어쨌든 그녀와 약속한 곳은 여기니까.
아니요, 걱정 말고 앉아 계십시오! 설마 제가 그런 뜻으로 말했겠습니까? 우리 사이의 우정이 고작 그 정도로 얇진 않을 텐데요.
손님을 처음 뵀을 때만 해도 전 그저 일개 점원이었는데, 어느덧 제가 이 찻집의 주인장이 되었군요.
그러고 보니 손님도 참 특이하십니다. 검객이, 해마다…… 이런, 또 까먹었군요. 손님은 강제 사람이었던가요, 옥문 사람이었던가요?
거처 없이 떠돌 뿐, 발길 닿는 곳이 나의 집인 것 아니겠나.
그래도 손님께서는 매년 가을 이맘때쯤이면 꼭 이 작은 마을의 이 찻집에 와서 그분을 뵙지 않습니까…… 올해가 몇 년째인가요?
7년째.
7년이라…… 하지만 두 분께선 만나도 매번 차를 마시며 이야기만 나눌 뿐이죠.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심지어 그분의 이름조차 모르지 않습니까?
서로 묻지 않기로 약속했어.
거참 희한한 일이군요……
손님께서 기다리시는 그분은 대체 어떤 분입니까?
나도 몰라……
난 평생 수많은 사람을 만났어. 선한 자, 어리석은 자, 간사한 자, 악한 자…… 많이 만나보고 나니까, 문득 사람이란 게 그리 어려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유독 그녀만은, 도무지 모르겠어.
……아가씨, 그쪽의 검 때문에 내 찻잔이 엎어졌어.
가게가 좁으니, 검은 잘 들고 다니는 게 좋겠어.
그깟 차 한 잔, 내가 배상하지.
덤으로 술도 한 병 살게. 친구를 사귀는 셈 치고.
친구가 됐으니, 이제 내게 검술을 가르쳐줘.
내가? 하하하……
사람 잘못 본 거 같은데. 나는 검객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상인이야. 석성으로 물건을 나르던 중 우연히 이 마을에 들려 차를 마시며 쉬고 있을 뿐이고.
무엇보다, 지금 내겐 검도 없잖아? 검이 없는 검객을 본 적이 있나?
시치미 떼지 마. 허락할 때까지 절대 보내주지 않을 거야.
저기, 아가씨, 멀쩡한 탁자는 왜 쪼갠 겁니까? 다른 손님들이 모두 놀라 도망갔잖아요.
닥쳐.
망가진 물건은 내가 변상하면 되잖아. 친우와 이야기하는 걸 방해하지 마.
계속 시끄럽게 굴면 너도 쪼개 버린다.
예, 예……
……아가씨, 이건 너무 막무가내 아닌가.
막무가내? 강호는 자유롭게, 마음이 가는 대로 돌아다니는 게 훨씬 더 재미있지.
하지만, 그에 걸맞은 실력도 있어야 하지.
당신의 검술이 뛰어나다는 걸 알아. 그러니까 검술을 가르쳐줘.
하아……
검술을 배우고 싶은 건 알겠지만, 아무래도 한발 늦은 것 같군.
난 이제 검을 갖고 있지 않아……
……검이 사라진 그날부터 나는 강호의 일에서 아예 손을 떼겠다고 맹세했어.
검을 잃어버렸다고?
그래.
언제?
어젯밤에.
이 마을에 막 도착하고 나서, 하룻밤을 보내고 보니 검이 사라졌더군.
그래, 그냥 사라져 버렸어. 도둑도 아니야. 내 물건을 훔쳐 갈 수 있는 도둑은 없어.
어떤 검이길래?
좋은 검이야.
오랫동안 나와 함께했던 녀석이야. 그 검이 없었다면, 난 그렇게 많은 장사를 해내지도 못했을 테고, 강호에서 명성을 얻지도 못했을 거야.
그렇게나 중요한 물건인데, 찾지 않고 뭐해?
아니, 오히려 찾으면 안 돼.
어째서?
난 오랫동안 그 검을 쓰고, 닦고, 또 쓰고, 악몽에 시달리고, 깨어나는 것을 반복했어…… 마치 그것 외에는 내 삶에 할 일이 없었던 것처럼.
검은 자신이 묻힌 피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 방금 내내 생각했어. 검을 잃어버린 게 어쩌면 하늘이 내린 경고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 검에서, 그리고 그 검이 내게 준 신분에서 벗어나고 싶어. 다른 사람이 되든, 어디 한적한 곳에서 홀로 여생을 보내든, 이대로 강호를 떠나 이전의 삶을 정리하고 싶어.
그러니 아가씨, 나는 검술을 가르칠 수 없어.
우리가 이 작은 찻집에서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괜한 참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가씨께 충고 하나 하고 싶어…… 검술을 배우지 마. 강호에 발을 들이지도 말고.
아니, 당신은 그 검을 버릴 수 없어.
어째서?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까.
당신은 원한과 복수의 살육에 지쳤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의 마음 한구석에는 자유롭고 솔직했던 그 시절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어.
당신은 그저 손을 뗄만한 명분을 찾고 있을 뿐이고, 마침 검을 잃어버린 걸 구실로 삼고 있을 뿐이야.
아가씨, 마치 나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하는데……
내기라도 할까? 내년 이맘때쯤, 우리는 다시 이 찻집에서 만날 거야.
당신은 원하는 대로 1년 동안 검을 잡지 않아도 돼.
만약 그런 삶이 정말 즐겁다고 생각된다면, 나도 더 이상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게. 검술을 가르쳐 줄 필요도 없어.
하지만 당신이 가르치든 말든, 난 스스로 검술을 익힐 수 있어.
하하하…… 좋아, 약속하지.
검술을 가르치든 아니든, 다음에 만날 때는 내가 술을 대접하지.
이듬해
아가씨, 벌써 도착했군…… 그런데 왜 안 들어가고 있지?
밖이 더 넓으니까.
응?
지난 1년 동안, 나는 매일같이 검술을 연마해 많은 초식을 배웠어. 내가 검술을 보여줄 테니, 어디 한 번 봐줘.
가르칠 필요 없이. 그냥 봐주기만 하면 돼.
하하…… 그래, 알았어.
그래, 시작해 봐.
후우…… 끝났어, 고마워.
뭐가 고맙다는 거지?
당신 같은 고수가 곁에 없었다면, 어떤 초식을 개선해야 하고, 또 어떤 초식을 다시 배워야 할지 모르잖아.
가르칠 필요도 없고, 말도 할 필요 없어. 그냥 당신의 반응을 살피기만 하면 되니까.
어떤 초식이 정교하고, 어떤 초식이 서투른지, 당신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거든.
당신은 더 이상 검을 안 들고 싶다고 했지만, 못 봤던 검술을 막상 보니까, 마치 술을 본 술꾼과도 같았어. 전혀 숨기지를 못해.
그런 심성으로 강호를 누볐다간, 손해 볼 게 뻔해.
하하하하, 아가씨 말이 맞아.
흥미롭군…… 쓰읍……
자…… 약이야.
당신이라면 계속 참을 줄 알았는데.
웃다가 상처가 벌어져서, 순간 참을 수 없더군.
어쩌다가 다쳤어?
여기 오기 전에, 강제에서 손님에게 마지막 화물을 전달했는데, 강제를 떠날 때 한 무리 사람들이 가로막더군.
원수인가?
맞아.
몇 년 전에 어떤 일을 맡았어……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때 내 검에 쓰러졌던 사람은 마냥 돈에 미친 녀석이 아니더군,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도 많았어.
그들은 그 사람의 가족도 친구도 아니지만, 복수할 만한 이유는 충분했지.
아무래도 나를 오랫동안 노리고 있었던 것 같아. 내가 검을 잃었고, 오랫동안 무공을 쓰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나를 찾아왔으니까.
……고생 끝에 겨우 빠져나와 아가씨를 만날 수 있었어.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원수가 찾아왔어?
기억이 안 나.
그때마다 계속 도망쳤어?
안 그러면 죽으니까.
내 말은, 검을 쓰지 않더라도 그 녀석들을 쉽게 상대할 수 있잖아.
복수는 끝이 없어. 원수를 다 죽여도, 또 다른 원수가 나타나니까. 복수로는 원한의 굴레를 절대 끊을 수 없어.
원한만 점점 더 깊어질 뿐.
그게 뭐 어쨌는데?
강호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니야? 은혜는 은혜대로 갚고, 원한은 원한대로 갚고, 원망도 후회도 하지 않는 거잖아. 그리고 언젠가 검이 무뎌진 뒤,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에게 당하면, 그대로 죽으면 그만이고.
당신은 세상의 악랄함도, 강호의 위풍도 다 겪어봤잖아. 그런 삶이 뭐가 나빠?
지금처럼 은거하고 숨죽이고 사는 게 당신의 바람인가?
그래도 검을 잃어버린 게 하늘이 내린 경고라고 생각해.
(말없이 입을 삐죽거린다)
두 분,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차는 이미 우려놓았습니다. 이러다 차가 식겠습니다.
됐어, 그만 가도 돼.
하지만, 난 이제 막 도착했는데……
지난 1년 동안 내 검술은 많이 늘었지만, 당신은 여전히 검을 내려놓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고 있어. 작년의 내기는 내가 이겼어.
그러니까 내년에 다시 만나자.
……알았어.
3년째
아직 살아 있네.
지난 1년은 어땠어? 딱히 상처는 없어 보이네. 원수가 줄었나, 아니면 도망치는 속도가 빨라졌나?
4년째
'각주구검'? 하하하하…… 세상에 아직도 그런 얼빠진 사람이 있다니.
그러고 보니, 난 아직도 배를 본 적이 없네. 사나운 강물도, 소용돌이치는 바다도 본 적이 없고.
'하늘에 닿는 푸른 연잎'이라니…… 도대체 어떤 풍경일까?
……
5년째
내년에 다시 만나자.
……
6년째
……
어이!
아, 왔구나.
당신 등 뒤에서 두 치도 안 되는 거리까지 다가왔는데도 알아채지 못하다니…… 만약 내가 당신을 죽이려 했다면, 당신은 이미 끝났어.
지금 해도 늦지 않아.
흥, 방금까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던 주제에…… 어디 뭘 숨기고 있는지 보여줘 봐!
안 돼……
포고문, 현상, 지명수배……
'도혼검'…… 이게 당신과 당신 검의 이름이야?
그래.
입으로는 검에서 벗어나고 싶다느니, 조금씩 강호에서 물러나겠다느니 말하면서, 결국 또 죄를 짓고 말았어?
내가 아니야, '도혼검'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지난 몇 달 동안, 오랫동안 잠적했던 '도혼검'이 다시 강호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어. 강제, 낭이, 상촉, 용문…… 그 녀석이 여러 이동도시에 흔적을 남겼어……
아니면, 살인을 저질렀거나.
작년에도 너한테 말했지만, 몇몇 약초 산지의 수확이 좋지 않아서, 올해는 몇몇 단골손님들에게 빌린 돈을 최대한 빨리 갚느라고 정신이 없었어……
그러니까, 누군가 당신의 이름으로 악행을 저질렀거나, 아니면 직접 당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는 거야?
어째서?
강호에 몸을 담은 지 20여 년, 나는 의로운 일도 많이 했고, 어두운 일도 많이 했어. 나와 관련된 수배령과 현상금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순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자들이 세상의 이목을 끌고 싶든, 자신의 진짜 목적을 감추고 싶든…… '도혼검'이라는 이름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는 거야.
……
그 말은, '도혼검'은 절대 강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거네?
정말 웃기지, 안 그래?
신경 쓰여?
내 검이 사라진 지도 벌써 6년, 이건 강호를 멀리하라는 하늘의 경고였어…… 거의, 거의 성공할 뻔했는데.
처음 강호에 발을 들였을 때는, 그저 검 하나로 먹고살면서 조금이나마 선한 일을 하고 싶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더라고.
오늘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어. 강호는 소용돌이야, 거대한 소용돌이.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애초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것뿐.
많이 괴롭구나……
당신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야.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네.
……내 이야기는 그만하고, 아가씨 이야기나 좀 해 봐.
나?
……방금 내게 접근했을 때, 확실히 나를 죽일 수 있었지.
지난 몇 년 동안, 아가씨의 무공은 눈에 띄게 성장했어.
비급도 스승도 없이, 이 작은 마을에서 검술을 연습할 상대조차 없는 상황에서, 오직 자신의 재능만으로 그 경지에 오른 거야……
게다가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지. 마음의 수련 또한 평범한 사람을 훨씬 뛰어넘었어.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내 경험만 믿고 아가씨에게 검술을 배우지 말라고 경솔하게 말했는데, 지금 보면……
아가씨는 진짜 천재일지도 몰라. 아니, 처음부터 강호에 속해 있던 사람이었을지도 몰라.
이제 이 작은 마을을 떠나, 저 바깥세상으로 나아가야 해.
그 말이 맞아.
그건 언젠가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야.
아가씨……
왜?
솔직히, 지금의 실력이라면 강호 전체를 통틀어도 아가씨를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고수는 많지 않아. 진심으로 떠날 생각이라면, 빠를수록 좋아.
우리가 만난 것도 인연이니, 아가씨가 원한다면 내가 선물을 하나 주지…… '도혼검'이라는 이름을 주겠어.
아가씨가 도혼검의 제자라 해도 좋고, 본인이라 자처해도 상관없어. 심지어 내가 증거로 될만한 증표도 줄 수 있어…… 강호는 위험한 곳이니까, 이거라도 있으면 훨씬 편할 거야.
아가씨, 이제 떠나. 매년 한 번씩 만나기로 한 약속은, 이제 여기까지야.
아직은 때가 아니야.
뭐?
아직 이 마을에서 나갈 방법을 찾지 못했어…… 하지만 곧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
소용돌이에 빠진 건 당신뿐이 아니야…… 내년에 다시 만나자.
또 두 시진이나 지났군요. 약속 시간은 이미 지나지 않았습니까?
……그 아가씨는 약속을 어긴 적이 없어.
안 가실 겁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릴게.
어휴……
손님, 이제 그만 기다리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까부터 계속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던데. 주인장, 뭔가 알고 있으면 그냥 알려줘.
당신이 기다리는 그 아가씨 말입니다만, 지금 여러 살인 사건의 범인입니다.
어쨌든 그 아가씨 때문에 마을이 엉망이 됐습니다. 시퍼런 대낮에도 사람들이 문밖을 못 나간다니깐요. 저희 찻집도 손님이 뜸한 걸 눈치채지 못했습니까?
얼마 전, 천사부에서 온 한 천사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지금 전력을 다해 그 아가씨를 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가씨는 아마 오지 못할 겁니다.
항상 혼자 다니고, 성격도 괴팍하긴 하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 텐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소문에 따르면, 그 아가씨가 절세 비급을 놓고 다투고 있다 하더군요. 아마 무공을 더욱 향상시키거나, 다른 목적이 있어서겠죠. 구체적인 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실은, 나도 줄곧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있어.
말씀하십시오.
그녀가 들고 있던 검, 예사롭지 않던데.
내가 알기로는, 이 마을에 무공을 익힌 사람이 없어.
세상과 동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가씨가, 어떻게 검술이나 강호를 알게 됐고, 또 왜 그렇게 집착하게 됐을까?
네? 나고 자랐다니요?
아니에요, 그 아가씨는 이 마을 사람이 아닙니다. 어느 날 이 마을에 갑자기 나타났고, 출신이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인장, 혹시 그게 언제 적 일인지 기억하고 있나?
어디 보자…… 아마 손님께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랑 얼추 비슷한 거 같습니다.
……그 시기라면, 내가 막 검을 잃어버렸을 때인데.
도, 도대체 어떻게 된……
……!
네가 린 칭옌인가? 왜 이렇게 끈질기게 쫓아 와?
사악한 존재가 악행을 저질렀으니, 마땅히 머리를 숙이고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네가 뭘 알아!
확실히 저도 궁금한 게 많습니다. 종사님의 《무공전》이 어째서 여기에 나타난 건지, 그리고 당신이 그것을 취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하지만 당신을 잡지 못하는 한, 당신은 제 의문에 대답해 주지 않겠죠.
쓸데없는 소리 말고, 덤벼.
약속을 어겼군.
당신은 이미 떠난 줄 알았는데.
……
설마, '도혼검' 정수?
내가 천사부와 관련된 일을 한 기억은 없는데.
천사부의 린 칭옌입니다. 대리사에 재직 중일 때, 당신의 서류를 읽은 적이 있었죠. 상당히 두껍더군요. 몇 년 전, 강호에서 갑자기 소식이 끊겼는데, 설마 이런 곳에 숨어있을 줄이야.
돌고 돌아 내 정체를 아는 대리사 관리를 만날 줄은 몰랐군. 말로는 손을 뗀다고 했지만, 결국 우스갯소리가 되어버린 건가.
두 사람, 손을 잡은 겁니까?
방금 못 들었어? 손 뗐다고 하잖아, 그것도 7년이나.
저 사람은 이 비급이나 이번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하지만 당신을 감싸고 있군요.
나를 감싼다고? 그럴 필요 없는데.
……
아가씨……
비켜, 나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어.
검객은 물러서지 않았다.
당신은 간신히 자신의 검과 그 검이 가져다준 신분에서 벗어나, 장장 7년에 걸쳐 예전의 삶을 끊어냈잖아. 이대로 헛되이 할 필요는 없어……
우리는 우연히 만난 사이일 뿐이야.
처음 만났을 때, 아가씨가 말했지…… 난 그 검을 버릴 수 없을 거라고.
근데, 그 검은 줄곧 내 곁에 있었어.
뭐?
나는 이 마을에서 검을 잃어버렸고, 이후 곧바로 너를 만나게 됐어. 너는 마치 태생적으로 검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고, 심지어 내 반응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검술에 정진할 수 있었지……
당연하겠지, 우리는 줄곧 함께했으니까!
다만,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네가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어……
하하, 바보구나. 이제야 깨닫다니.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기네. 작년에 우리가 만났을 때, 당신은 '도혼검'이라는 이름을 내게 주려고 했어…… '도혼검'은 바로 나인데 말이야.
……
이 마을은 정말 이상해. 마치 공기에 무슨 신비한 힘이 깃들기라도 한 것처럼, 그 힘의 영향을 받아 기물들에 의식이 생기고, 창괴로 변하지.
주전자, 부채, 돌멩이…… 길을 걷는 사람 중, 열에 넷은 아마 이런 기물들이 변한 걸 거야.
당신과는 언제 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이 생긴 이후로 난 계속 이 모습이었어.
난 계속 당신을 찾아다녔고, 결국 그 찻집에서 당신을 발견했어. 당신은 한가하게 차나 마시고 있었지, 초조한 기색은 없었어. 그래서 내가 일부러 다가가 주의를 끌었던 거야. 그런데 당신이 한 말은……
내 검이 사라졌어. 어쩌면 이건 하늘이 내린 경고일지도 몰라.
아가씨, 아니, 도혼검, 아니지,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우물쭈물하는 건 그쯤 하시지.
손에 피를 잔뜩 묻힌 검객의 개과천선, 당신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야. 저기 저 인상 쓰고 있는 천사에게 들려주면, '이보다 더 큰 선행은 없다'고 감탄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때 문득 깨달은 게 있어……
당신은 이 강호에 질려버린 거야. 난 당신과 함께 걸었고, 함께 봤지만…… 내가 진정으로 겪어본 적은 없었어.
그래서 나는 검술을 연마하고 검객이 되고 싶었어. 이 넓은 강호를 직접 겪어보고 싶었어…… 나 자신의 이름으로.
……하지만 기물이 변한 창괴는 영원히 이 마을을 떠날 수 없어.
이미 여러 번 시도해 봤어. 동쪽의 강, 서쪽의 다리…… 마을 주변에는 마치 창괴만을 위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는 것 같았어!
어쩐지 그때 내게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하더니만……
……역시.
당신이 《무공전》을 빼앗은 건, 종사님의 공법에서 방법을 찾아 그 '장벽'을 돌파하기 위함이었군요.
음, 그런데 이상한 건, 당신은 종사님의 정체도 모르는데, 어째서 종사님의 비급에 그런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 거죠? 아무래도 누군가 창괴의 마음을 이용해 사건을 일으키려는 것 같군요.
천사 나리, 추리는 끝나셨나?
끝났습니다.
당신이 창괴일 거라고 추측은 해봤지만, 설마 '도혼검' 정수와 이런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랐네요…… 하지만 그건 당신의 죄를 판단할 때의 근거가 되진 않습니다.
당신은 그 비급을 얻기 위해 여러 사건을 일으켰으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뇌법에 몸과 영혼이 소멸하기 전에, 순순히 잡히시죠.
순순히 잡히라고?
비급은 내 손에 있어. 곧 그 속의 비밀을 밝히고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거야…… 난 이걸 위해 무려 7년이나 노력했다고!
주인도 없고, 검집도 없는 검을 누가 막을 수 있겠어?
날 막으려면, 날 부러트려!
그렇다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힘을 움직이면, 천뢰가 저절로 찾아올지니.
린 칭옌의 목소리는 작았으나, 마치 온 세상이 천사의 호령에 응답하는 듯했다. 방금 전까지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먹구름이 드리우며 눈 부신 번개가 그녀의 손바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린 천사, 사태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 녀석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이 녀석은 내 검이야. 나, 나도 함께 책임을 지겠다……
저리 꺼져!
어리석군요!
자유를 갈망하는 저분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 창괴는 검의 화신, 아마 본인도 사악한 기운을 쉽게 통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분의 소원이 간절할수록, 저는 더더욱 놓아줄 수 없습니다. 밖으로 나가 무고한 사람을 해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당신……
검을 잃은 것을 계시로 삼아, 과거를 청산하고 강호에서 물러나겠다고 맹세한 건 좋은 일입니다. 근데 벌써 7년이나 손을 뗀 상태였군요.
원한이란 마치 골짜기에 쌓이는 눈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법입니다. 그래도 마음을 굳게 먹는다면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저분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은 정말로 마음속으로 검을 내려놓았습니까?
……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어요. 대리사 소경으로서든, 천사부 후계자로서든…… 이 벼락은 떨어져야 할 때 떨어질 뿐입니다!
……
먹구름과 낙뢰가 사라지고 검을 지닌 여자의 모습도 사라지면서, 천지는 다시 맑아졌다.
그리고 그 여자가 서 있던 자리에는 소박하게 제본된 책 한 권이 놓여있었고, 바람이 불자 책의 표지가 펼쳐졌다.
《무공전》.
(이 《무공전》을 옥문에서 훔쳐낸 사람도 이 마을에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자는 대체 무얼 하려는 걸까……)
(아직 아무런 단서도 없으니, 우선 《무공전》을 회수……)
하하하, 여기에 있군!
드디어 찾았다!
……와이틴푸이?
……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엔 검객 혼자만 남았다.
그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세상에, 이 소동은 대체…… 손님, 왜 그러십니까?
내가……
내 검을 버렸어.
이만, 가야겠어……
매년 한 번씩 만나는 것도…… 오늘로 끝이야.
저기요, 잠시만요.
너, 너는……
왜 그러시죠, 혹시 저를 아시나요?
그게……
길을 잃어버려서요,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건지 모르겠는데, 여기서 한참을 헤맨 것 같아요. 그러다 마침 당신이 지나가길래 길을 좀 여쭤보려고요.
(린 천사가 한 말이 이 뜻이었구나……)
당신은 정말로 마음속으로 검을 내려놓았습니까?
……
대답할 수 없어.
하지만 린 천사, 넌 정말 매정한 사람이군.
매정하다고요?
아직도 그녀를 대신해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까?
1년에 1번씩, 벌써 7년째야. 난 여태까지 내가 그 녀석을 달래주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녀석이 나를 달래주고 있었던 거야.
인정하지,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야. 난 검을 버렸음에도 몇 번이고 다시 주워들었지.
내게 어떤 미련이 남은 건지, 아니면 내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건지는 몰라…… 어쩌면 이게 내가 앞으로 알아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지. 어느 외진 마을에서든, 아니면 대리사 감옥에서든.
녀석이 이 마을에 입힌 손해는 내가 모두 배상하겠다. 그리고 자수하지. 하지만 그 전에, 부탁이 있어……
……
(광기에 차 중얼거린다)
보세요…… 이젠 더 이상 당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요.
저분은 최근까지도 비급을 빼앗기 위해 자주 무공을 사용했습니다, 천뢰가 아니었다 해도 언젠가 흉포함에 사로잡혔겠죠.
설령 뇌법으로 운 좋게 저분의 창기를 제거한다 한들, 진정한 '인간'으로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거예요.
살아있는 것은 고통도 많고 생각하는 것도 많지만, 기물의 화신인 창괴는 기물이라는 한계 때문에 대부분 마음이 단순합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 진정으로 녹아드는 것은 우리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이 세상에 데려오는 것이 과연 호의인지 잔인함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린 칭옌, 이번 사건이 정리되면 너부터 천사부에 죄를 고해야겠네……)
어떻게……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어요. 대리사 소경으로서든, 천사부 후계자로서든…… 이 벼락은 떨어져야 할 때 떨어질 뿐입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
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기억이라뇨? 무슨 말씀인가요?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이 길로 되돌아가면 작은 마을이 있어. 반나절 정도 가다 보면 치도가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 상촉, 대황성, 낭이 등 이동도시로 갈 수 있어……
당신은 어디로 가시나요?
너는 어디로 가고 싶어?
앞으로요.
비록 제 몸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씀하신 곳에 가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당분간 나랑 동행하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