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D-3선인장 언덕
파티를 즐기는 귀족들의 대화에 좀처럼 끼지 못하던 하이디는 막무가내로 켈시에게 말을 걸었고, 결국 둘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내는 데 성공하게 된다. 사실, 하이디에겐 특별한 임무가 있었는데……
아, 켈시 수도사님. 드디어 오셨군요. 엇, 이 차림은……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수도원 창고에서 겨우 이런 옷밖에 못 찾았네요. 초대를 너무 갑작스럽게 받는 바람에, 적절한 예복을 찾지 못했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린 것 같아 대단히 송구합니다.
호오, 심려라뇨! 오히려 좋습니다. 지금 차림은…… 무척 카리스마 넘치는군요.
하이디,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이리 와보렴. 이분은 켈시 수도사님이란다. 인사드리고 어서 안으로 들어가거라.
……
하이디?
하이디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어…… 음, 그러니까…… 전 하이디라고 합니다……
예, 너무 예쁜 이름이네요.
……당신이 켈시 수도사님이신가요? 아저씨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영광이로군요.
……
켈시 수도사님, 톰슨 씨를 기억하시나요? 예, 이쪽의 하이디 톰슨이 바로 그 괴팍한 친구의 딸이랍니다.
그렇군요, 아버님께서는 존경스러운 분이십니다.
자! 안으로 드시죠, 수도사님.
초대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빈센트 님.
참, 백작님께서 런디니움에 다녀오셨다는 이야기 들으셨나요? 혹시 그곳에 가보신 적 있나요?
말도 마십시오. 그곳에 가려고 짐을 잔뜩 싸뒀는데, 재앙정보전달자가 길이 폐쇄됐다며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에 허겁지겁 돌아왔다가 크게 앓았지 뭡니까.
어머, 고생하셨겠네요.
오늘 대시인께서 오시려나? 개인적으로 몇 개 써온 작품이 있어서 감상을 부탁드리고 싶은데……
안 그러는 게 좋을 겁니다. 톰슨 씨가 백작님 앞에서 소위 '사상가'들의 원고를 얼마나 찢으셨는지 잊으신 겁니까?
앗, 그런 일이 있었죠. 톰슨 씨는 정말 매정한 분이에요, “사상 충돌에 자비는 없다”라고 하셨잖아요.
자아도취는 볼썽사나울 뿐이죠.
어머, 그래도 그런 점이 또 매력적이지 않나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하며……
한때 톰슨 씨의 그런 점을 동경했다는 건 인정합니다만, 백작님 앞에서 일부러 고개를 빳빳이 쳐드는 그 오만함은 좀……
톰슨 씨가 일부러 그랬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저희가 존경해 마지않는 백작님 앞에서 말입니다. 작위나 신분을 떠나서, 백작님께서 그동안 영지를 얼마나 잘 다스려왔는지 모두 잘 알고 계시잖아요.
토룬은 백작님의 영지는 아니지만, 사실 모두 다 같이 다스리고는 있지만, 이 모든 게 다 백작님이 솔선수범하신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정말이지 존경스럽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백작님께선 런디니움 쪽으로부터 초대를 여러 번 받으셨답니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변경에 있는 이런 촌 동네에 그런 일이 어디 흔하던가요?
호오, 역시 귀족다운 발상이로군요.
어머머, 이야기가 너무 진지해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우리 모두 빅토리아의 자손들 아닌가요?
허, 자손이요? 말도 안 되는 교수형을 치른 뒤로는 우리가 누구의 자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폐하께서 떠난 것은 우리 모두 안타깝게 여기고 있지만, 이제는 여기서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까?
제 말이요, 오늘처럼 즐거운 날에 그런 끔찍한 이야기는 그만 하세요. 어머, 백작님이 오셨네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척 흥미롭더군요. 리차드 씨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백작님의 실력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죠……
맞다, 백작님, 런디니움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시겠어요? 어떤 분들을 만나셨나요? 전설의 대공작님도 뵈셨나요?
자자, 모두 진정하세요. 파티는 이제 시작입니다. 잊지 않으셨죠? 오늘은 축배를 들어야 하는 날입니다.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 싶은 두 명의 특별 손님이 있습니다.
켈시 수도사님, 이쪽으로 오시죠.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렇게 뵙게 되어서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어머! 이렇게 멋진 분이…… 숙녀였나요? 호호, 아쉽네요……
아쉬울 것 하나 없는데요? 반갑습니다, 켈시 수도사님.
아, 켈시 수도사님! 백작님께서 이야기하시는 걸 들은 적 있는 것 같습니다. 백작 부인을 도와주신 일을 계기로, 백작님께서 아끼시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백작 부인께는 꽤 힘든 일이었죠.
어디 출신이신가요? 산크타 이외의 라테라노 수도사는 좀처럼 보지 못했는데. 그건 그렇고…… 어쩜 이렇게 매력적이세요?
아름다운 숙녀분, 어디서 오셨습니까?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어머, 제가 먼저 물었잖아요? 끼어들지 말아주시겠어요?
백작님 말씀으로는 뛰어난 인재라고 하던데, 철학이나 예술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 궁금하군요.
과찬이십니다, 우연히 백작 부인을 돕다가 백작님의 눈에 든 것뿐인걸요.
호오, 백작님과 잘 아는 사이라면 톰슨 씨도 잘 아시겠군요?
그럼요, 톰슨 씨는 토룬에서도 유명한 문학가이시죠. 백작님을 통해 종종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그거 정말 기쁜 소식이네요. 이봐, 내가 가져온 와인을 내오거라. 백작님, 그리고 여기 계신 수도사님과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파티를 독점하려는 건 아니겠죠?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얘기를 하지 않을래요? 이를테면 런디니움의 패션쇼 같은……
저는 뭐든 좋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쉬게만 해준다면야. 덤으로 견문도 넓힐 수 있고요.
너무 게으르신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않았으면 사업 규모가 지금보다 2배는 더 커졌을 텐데요.
맙소사, 와이너리 세 채로는 부족하다는 건가요?
참, 손님이 두 분 계시다고 했는데, 여기 계신 분은……
안녕하세요! 모두 잘 지내셨나요?
하이디?! 네가 여긴 어쩐 일이니?
꼬맹이 하이디가 오늘 근사하게 차려입었군그래…… 다른 건 몰라도, 톰슨이 자식 하나는 잘 키웠구먼.
하이디는 아직 미성년자니, 술잔은 멀리 치워주시죠. 이봐, 하이디에게 크림소다 한 잔 가져다주겠나.
어린애 취급하지 마, 빈센트 아저씨.
하지만 넌 술을 마실 줄 모르지 않니? 네 아버지가 특별히 당부했단다. 네 나이에는 말이지……
하아아……
알았다, 알았어! 소다 대신 진저비어를 가져다주마.
그렇게까지 해줄 거 없거든!
하하! 꼬마 하이디가 빨리 크고 싶구나.
딸이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는 없을걸요. 나 때는 말이죠, 날마다 보석 살 생각만 하느라 아버지한테 혼나기만 했거든요.
술은 못 마셔도, 파티에 참가하는 건 괜찮죠? 으음…… 저 여기 앉을래요!
영광입니다, 하이디 씨. 제가 모자를 들어드리죠.
아…… 괘, 괜찮아요. 그냥 쓰고 있으면 돼요……
하이디, 오늘 몰래 빠져나온 몸이란 걸 벌써 잊은 거니? 조금 있다가 그만 올라가서 자려무나.
으윽……
그렇게 입으니 네 어머니를 꼭 닮았구나, 얘야.
하지만 지금은……
하아……!!
……켈시 수도사님도 제가 어린애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신에겐 별로 상관없지 않나요?
제가 한잔 따라드리죠, 진저비어로요.
……
고, 고마워요……
마음에 드니?
……꽤 맛있는데.
어머? 진저비어면 알코올이 없을 텐데 왜 얼굴이 빨개진 거지?
낯가림이 심한 게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요?
자~ 모두들 오셨으니 파티를 정식으로 시작해 볼까요!
……
맞는 말씀입니다! 라이타니엔의 예술이 뛰어나지만, 그것 하나 믿고 잘난 체하는 꼴이라니! 우리의 자본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라이타니엔…… 거긴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아요…… 전 위치킹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어요. 그곳에 여행 갈 준비를 하려는데, 쌍둥이 여황제가 위치킹을 해치울 줄 누가 알았겠어요!
위치킹이 무서운 줄 알면서도 여행을 가다니……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제왕과 달리, 위치킹은 50세 가까이 되어서야 황제가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라이타니엔을 통치했습니다.
의심할 것도 없이 위치킹은 대륙에서 가장 강한 캐스터죠, 스스로 괴물이 된……
그 끔찍한 이야기에 묘사된 것처럼, 뿔이 비틀려 있고, 기이한 힘을 내뿜고 있다더군요……
으음, 신문에서 위치킹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딸꾹, 미안합니다! 술맛이 참 좋네…… 대신 쌍둥이 여황의 사진은 본 적 있어요. 한 명은 금빛이 번쩍이고, 나머지 한 명은 시커멓더라고요.
……
라이타니엔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혼란한 곳이죠. 위치킹이 탑에서 내려오는 경우는 무척 드물어요. 언제나 라이타니엔을 내려보죠. 왕이나 대신을 접견할 때도 탑 꼭대기에서 그림자만 슬쩍 비출 뿐이고요.
그런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지면을 밟았을 때는 비참한 최후가 되었죠. 쌍둥이 여황에게 양 뿔을 잘린 모습은 탄식이 나올 만큼 참담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다 알 순 없지만 제가 알기론, 저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영웅께서도 위치킹의 실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더군요.
'여황의 목소리'가 기사들의 호위 속에 빅토리아에 도착했을 때, 정신없이 싸우던 여러 공작들이 싸움을 잠시 멈춘 채 예우한 이유도 여기 있답니다.
으음, 런디니움에도 가본 적 있으신가 봅니다?
저는 그곳에서 왔습니다. 그곳의 산크타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수도사가 됐던 거죠.
하하! 켈시 수도사님, 말씀드렸다시피 모두 제 소중한 친구들이랍니다. 모두 켈시 수도사님에게 관심이 많나 보군요.
사실 저한테는 당신과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는데, 힘들게 번 돈을 쓸 궁리만 하는 통에…… 당신의 반만 닮아도 소원이 없겠군요.
오늘 이렇게 알게 돼서 정말 반가워요. 그나저나 혹시, 아직 싱글이신가요?
수도사님!
크흠! 하이디, 네가 함부로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올라가서 그만 자도록 하렴.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볼까요, 백작님? 요새 아이들은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른스럽답니다.
흠.
……켈시 수도사님…… 혹시, 우르수스에 가보신 적 있나요?
아, 역모와 폭력으로 점철된 땅 말이로군요.
유학 중에 디에티 그라이퍼부르크에서 잠시 있었죠. 우르수스에 관심이 있나요?
네!
아빠가 책을 몇 권 보여주셨는데, 우르수스의 작가가 쓴 책이 있었어요……
우르수스의 예술에는 딱 두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중의 환심을 사는 예술이거나, 영원하고 위대한, 진정한 의미의 예술.
톰슨 씨가 칭찬할 정도라면 아무래도 후자겠죠?
이런, 톰슨 씨를 맹신하는 것 같군요.
아빠는 그분을 높게 평가했어요, 직접 뵙고 싶다며 디에티 그라이퍼부르크에 갈 계획까지 세웠죠. 하지만 사업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가, 올해는 또 지병이 도져서 뜻을 이루지 못했고요.
아버님 건강이 안 좋으신 건가요?
……네, 무릎을 다치셨는데 수술을 미루다가 병세가 더 악화되고 말았어요.
하아,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작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만신창이로 돌아왔더군요. 그저 강도를 만나 절벽에서 뛰어내렸다면서…… 그 외엔 아무 말도 안 하지 뭡니까!
……우르수스에 가고 싶나요, 하이디 씨?
하이디, 절대 안 돼! 우르수스 전임 황제의 사망과 역모로 지금 얼마나 혼란스러운데…… 설령 그곳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해도 그건 몇 년 후에나 가능할 거다!
그냥 궁금한 것뿐이야! 켈시 수도사님은 우르수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까요?
우르수스의 제6군단이, 한 병의 보드카 때문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아십니까?
믿기지 않는 이야기로군요.
처음 시작과 달리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 결론은 자주 있으니까요. 우리 모두 과정에 익숙해 있지 않나요?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사태의 발단은 군 통제 구역에서 '세금'을 거두던 병사가 실수로 귀족을 다치게 하면서 시작되었죠.
사건은 점점 크게 번졌어요. 당시 제6군단은 옛 귀족들에게 뿌리 깊게 잠식된 부패한 조직이었고, 그에 반해 제5군단은 젊은 황제와 새로운 제국 의회에 무조건 복종하는 상태였죠.
주도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제5군단이 이 사건을 이용해 제6군단을 비난했으며, 결국 두 이동도시의 중간 지점에서 두 군단이 교전을 벌였어요.
소위 '대반란'이 일어나게 된 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존재하지만, 제6군단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는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된 건가요?
……그렇게 간단했다면, 대반란이라고 부를 수 없겠죠.
우르수스 내륙까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채 변경만 지키던 제4군단이 갑자기 제국 의회에 충성을 표하면서, 제6군단이란 '반역자'들로부터 등을 돌린 거예요.
미리 준비해 둔 몇몇 희생양을 처형하고 나니 옛 귀족들에게 남은 거라곤 제6군단과 제8군단이라는 카드가 전부였죠.
그리고 이듬해 겨울, 제8군단과 배후의 귀족들도 황제에게 항복했어요.
그럼, 이제 고립된 제6군단만 남았는데,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는 다들 짐작이 가시겠죠.
아시다시피,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단순해요. 만취한 병사가 보드카 술병으로 젊은 귀족을 다치게 한 게 전부죠.
……흥미로운 이야기이로군요, 켈시 수도사님. 이 이야기는 아마 진상과 크게 다르지 않겠죠.
하이디 씨, “이것이 우르수스다”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대륙의 모든 문명은 자신이 직접 확인해야 하니까요. 높이 평가할 부분도, 그리고 반성해야 할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하이디 씨는 동경하는 우르수스에서 무엇을 봤나요?
한가한 농장? 영웅호걸, 아니면 디에티 그라이퍼부르크 극장의 멋진 공연? 제가 봤던 건 대반란의 여파이자 멸망 직전의 시대였습니다.
……빅토리아에도 그런 시대가 찾아올까요?
그건 장담할 수 없겠군요…… 하이디 씨.
켈시 수도사님께서 들려주신 우르수스 이야기에 겁이 난 거냐, 하이디?
우르수스를 모욕하려는 건 아니지만, 우르수스 제국은 확실히 미개함과 무질서로 가득한 나라야.
하지만 지금의 런디니움도……
꼭 그렇지는 않아! 그 사건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빅토리아가 한순간도 흔들린 적이 있었느냐?
자자, 이야기는 이쯤 하시죠. 그나저나 런디니움 여행은 어땠습니까? 그 이야기가 가장 궁금하군요.
어떤 대귀족들을 만나셨나요?
영광스럽게도 여정 중에 노르망디 공작께서 만찬을 함께 하고 싶다며 저를 기함으로 초대해주셨답니다……
예? 그 이야기를 왜 이제야 말해 주시는 겁니까!
하지만 노르망디 공작님은…… 줄곧 라이타니엔을 증오하셨잖아요? '여황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사절과도 충돌이 있었다고 하던데……
아뇨, 공작님의 시종이 이야기해준 대로라면 그날 밤, 공작님께선 아름답고 우아한 사절들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호오, '공작님'다운 모습이로군요.
우르수스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대공이 수십, 수백…… 수백 명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 수가 적진 않죠. 솔직히 말해서 능력도 없고 말입니다.
오만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런디니움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게 말할 겁니다.
노르망디 공작님이라면 혼자서도 사리사욕에 눈이 먼 라이타니엔의 급진 세력을 수십 년 동안 잠재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더구나 저희에겐 대공작님만 계시는 게 아니니……
……
하이디, 피곤하니?
응? 아니…… 켈시 수도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고 있었어. 켈시 수도사님과 둘만 이야기해도 될까?
흐음, 런디니움에 관한 이야기에 켈시 씨가 없으면 따분할 것 같은데.
과찬이십니다.
아, 잠시만요. 바론 남작님이 절 찾으시는 것 같은데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이야기는 조금 이따 다시 나누시죠.
저 때문에 지루하셨나요, 하이디 씨?
에? 아…… 아뇨, 괜찮아요.
……
네…… 어, 그러니까 문학 작품이나 밀 수확에 대해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루한 타국의 정치 말고 말이죠?
핫! 하.하……
그것도 이번 파티를 연 의미라고 할 수 있죠.
……제가 보기엔 수도사님도 지루한 것 같은데, 아닌가요?
수도사님은 더 많은 걸 알고 계시잖아요. 빈센트 아저씨 곁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사람들 모두 눈에 차지 않으시는 거 아니었나요?
절 오해하시는 것 같군요……
후후, 켈시 수도사님의 말이 맞아요. 오늘 밤에야 처음 알게 됐는걸요.
편하게 켈시라고 불러주시죠.
그, 그럼 서로 편하게 부르도록 할까요…… 켈시, 저랑 같이 좀 걸으실래요?
조금 있다가 빈센트 아저씨가 절 다락방으로 쫓아낼 거예요. 하지만 일찍 자고 싶진 않네요.
눈발이 점점 굵어지는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괜찮아, 같이 한 바퀴 돌고 올까?
와아, 눈이 잔뜩 와요!
요 근래 이 정도 함박눈은 보지 못했는데……
……저는 눈이 좋아요, 켈시. 내 고향도 좋고요.
……알아요.
하아…… 춥네요.
모두들 따뜻한 벽난로 곁에 모여있겠죠?
그렇겠지.
……
지금 여기에는 우리 둘뿐이에요, 켈시…… 헤헤, 켈시.
켈시랑 단둘이 있기란 참 어렵네요.
넌 아직 어려…… 하이디.
너의 아버지가 너를 이렇게 쉽게 말려들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제가 그렇게 하고 싶어요, 켈시. 아이처럼 온실 속에 숨어서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뭔가를 하고 싶어요.
……겨울이 오면 눈보라를 피할 수 있는 빅토리아의 떡갈나무가 과연 있을까요? 기왕이면 미리 대비하는 편이 좋겠죠.
아버지를 많이 닮았구나.
……칭찬인 건가요?
물론이지.
……헤헤~ 앗, 이 근처에는 누구도 오지 않을 테니까……
지금이라면 편지를 전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
네 아버지께서 선발한 정보원은 언제나 정확했어. 빅토리아 최고의 전달자는 물론, 노동자와 각계의 뜻있는 분들이었지…… 이번에는 아니지만.
무슨 일 있니?
아직 젊었던 하이디는, 그 천진난만한 발걸음을 멈추었다.
켈시의 말이 옳았다. 혼란이 닥쳐오기 전에, 젊은 세대야말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한다.
……편지는 모두 두 통이에요.
빅토리아로부터 한 통, 나머지 한 통은 '카즈델'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