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ST-2아이리스
조금씩 지는 석양은 남자의 머리 위에 있는 광륜과 겹쳐, 마치 왕관을 쓴 것처럼 보였다. 소녀는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어머니가 신중하게 말해줬던 그 단어가 떠올랐다…… '순교자'.
이번에 휴가라고 생각하고 라테라노에 온 건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유카탄, 쉐라그도 신앙이 있는 작은 나라인데…… 라테라노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라테라노의 영향력은 정말 넓으니까…… 만국 전달자도 라테라노 교황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일이잖아.
쉐라그는 그럴 만한 기반이 없지.
하…… 그놈의 영향력. 쉐라그를 떠나고 보니까 알겠어. 영향력이란 건 정말 골치 아픈 거네.
지금 생각해 보면 엔시오데스가 홀로 몇몇 이웃 나라들을 상대했던 것도 정말 대단하긴 해.
지금은 성녀님의 영향력도 점차 강해지고 있어…… 우리도 우리만의 장점이 있는 거지.
음…… 그런데 라테라노 교황이 말한 게 정말 실현이 가능할까?
……글쎄.
각 나라가 더 긴밀한 사이가 되면 이 땅이 어떻게 될지 상상이 안 돼…… 아무래도 꿈처럼 들리는데. 좋은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날의 기적과…… 교황의 연설까지,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건 확실해.
라테라노는 정말 신의 보살핌을 받은 도시…… 일까?
에젤 군, 너희 산크타들은 최근 있었던 일을 어떻게 생각해?
네? 아…… 네, 엄청난 충격이죠……
그렇겠지. 그 종은 몇천 년 동안 울린 적이 없다면서.
그럼 라테라노는 어떻게 될까?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라테라노인에 대한 저의 이해로는…… 아니요, 아마 어디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후세 역사에 영향 줄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도……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는 아마 실감이 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언젠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겠죠.
……상당히 책임감이 있네.
됐어, 여기까지 바래다주면 돼. 픽업 차량이 데리러 올 거야.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벨리브 추기경이 마침 근처 병원에 있어서 바로 보고하러 가면 되니까요.
아, 그 추기경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꼭 감사하다고 전해줘.
“당신께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라고 추기경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조금의 빈틈도 없네……
맞다, 에젤 군. 나랑 남편 사진 좀 찍어줘.
알겠습니다.
이걸로 괜찮겠습니까?
사진 잘 찍네, 에젤 군.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피아메타, 발걸음이 유달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
왜?
교황이 저런 얘기를 해서 부담스럽지 않아?
그래서?
그래서 직업을 바꿔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야. 너무 책임감이 있는 일은 나한테 어울리지 않으니까.
네가 날 대신하면 딱이겠네.
꿈 깨.
두 분, 안녕하세요.
에젤, 오랜만이야.
2주도 지나지 않았는데요……
지금…… 임무 중이야?
벨리브 추기경이 지시한 일이 있어서, 지금 보고하러 가려던 참입니다.
제가 라테라노에서 하는 마지막 임무입니다.
좋겠다, 에젤. 나가서 보면 알 거야, 라테라노가 얼마나 따분한 곳이지.
밖에는 맛있는 디저트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우리 삶의 의미는 즐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잖아?
벨리브를 찾아간다고? 지금 어디 있는데?
스테보누스 구역 센트럴 병원입니다.
……
가자, 에젤. 우리도 같은 방향이야.
결정했나요?
응, 결정했어.
좀 더 고민할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야…… 다들 한 걸음 내디뎠는데, 나도 제자리에 머물 순 없잖아.
그럼 더 묻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동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니까요.
지금 이 시국에, 당신 같은 인재가 합류하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일입니다.
여기 있을 줄 알았어, 벨리브.
당신들이 왜……
오는 길에 에젤을 만났거든.
쉐라그의 두 사절을 목적지까지 모셔다드렸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에 오라고 한 건 다른 용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
……네.
그럼, 르무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그래, 다음 주에 봐.
르무엔, 제7청에 가기로 한 거야?
이미 교황청 쪽 일을 하고 있으니까.
……회의 끝나자마자 제7청으로 가면 고생이 많을 텐데.
제7청은 나한테 안 맞을 것 같아?
그렇긴 한데……
너희도 각자 갈 길을 정했잖아.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생각해 봐야지.
아까도 피아메타한테, 만국 전달자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어.
왜, 귀찮아서?
그 영감탱이 말이야…… 미래가 점점 더 귀찮아질 게 뻔히 보이거든.
도망 못 가, 모스티마. 너는 내가 직접 관리할 거거든.
앗.
우선 부탁이 하나 있는데, 이 편지를 엘에게 전해줘.
……거절해도 될까?
안 돼.
그리고 반드시 네 손으로 직접 전해.
더 그만두고 싶어지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독하네, 피아메타.
어차피 넌 포기하지 않을 거잖아.
그렇게나 확신하는 거야?
너한테 이 일이 필요 없는 것처럼 굴지 마.
너도 답을 찾고 있는 것 아니야?
난 안도아인이 아니야……
그렇다고 한 적 없어.
그래도 넌 선택할 거잖아, 안 그래? 네가 누군지에 대해서.
이런 질문에 대답하려면…… 누구나 기나긴 길을 걸어야 해.
……
어머, 모스티마, 이해받는 기분이 어때? 광륜이 없어도 널 이해할 수 있나 봐?
……그럼 이건 내 길이니까 넌 따라와서는 안 돼, 피아메타.
잘난 척은. 누가 널 따라간대? 공교롭게도 방향이 같은 것뿐이야.
그 녀석 총도 나한테 있는데.
자신이 산크타라고 생각하면, 언젠가는 이 총을 가지러 오겠지.
그때가 되면 본인이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그때가 되면 너도 날 도와야 돼.
……알았어.
말이 나온 김에, 일전에 도시에서 잡힌 아스트레이들은 모두 풀려났어.
……교황님 뜻인가?
그래.
교황님의 자비는 나랑 상관없어.
……정말 피아메타답네.
그리고, 너는 제5청의 절차를 통해 공증소의 협의로 로도스 아일랜드에 소속시킬 거야.
엇, 모스티마랑 르무엘이 겸직하고 있는 그 제약회사……?
왜?
벨리브가 그 회사와 더 긴밀하게 협력하길 바라니까. 후보로는 네가 딱이야.
게다가 내가 알기로 우리와 그 회사의 협력관계는 나쁘지 않아. 네게 많은 지원을 해 줄 수 있을걸.
알았어.
그리고 피아메타, 더 좋은 소식이 있어!
지금 무려 세 개의 코드네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다음 임무의 코드네임으로 쓸 수 있거든.
……솔직히, 이제는 네가 우리를 담당하는 데 그런 규칙은 좀 빼줄 수 없을까?
그때는 모스티마를 감시하는 명확한 직급이 없어서, 임시로 지은 이름인데……
매달 직급명이 바뀌는 것도 이젠 지겨워!
미광의 야경꾼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거 아니었어? 윗선의 센스가 드디어 좀 나아졌다고 했잖아.
넌 조용히 해.
아, 이 꽃 참 예쁘다.
그렇긴 한데…… 이제는 네 직급명이 바뀌는 것도 이미 규칙이 됐잖아. 그냥 받아들여……
'공허의 미식가', '광야의 조종사', '여명의 파괴자' 중에 하나 골라.
……'여명의 파괴자'.
피아메타, 네 취향도 참 파악하기 쉽다.
입 다물어!
스읍……
이제 정신이 듭니까?
……요즘 진짜 재수가 없는 것 같네.
왜요, 누워있는 게 좋지 않나요?
됐어, 못 들은 걸로 해.
엇? 에젤 군도 있었네?
제가 불렀습니다. 라테라노를 배신할 뻔한 사람의 결말이 어떤지 보여주려고요.
윽……
이런 식으로 젊은이를 괴롭히지 마, 벨리브.
저도 젊은이랍니다.
이런, 미안.
당신은 이제 만국 전달자가 아닙니다.
그게 대가라면……
하지만 당신은 아직 제 부하입니다.
그건 대가가 좀 큰데.
오렌, 당신은 저한테 큰소리까지 쳤잖습니까. 그럼 빅토리아에서 뭘 배웠는지 어디 보여주시죠.
……내 방식대로 일 처리를 하라는 말로 이해해도 될까?
지금이라면, 당신의 예전 그 질문에 대답해 드리죠.
오렌, 저는 고상한 사람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상한 사람을 위해 힘쓰는 건 싫지 않습니다.
그건…… 나도 반대하지 않아.
이것도 제가 들으라고 하는 말입니까, 추기경님?
물론입니다.
당신과 체첼리아가 얻은 기회를 소중히 여기세요. 체첼리아가 라테라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제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고요.
추기경님은…… 체첼리아가 라테라노에 다시 돌아오길 원하지 않으십니까?
원하지 않았다면 왜 시간을 들여 호적까지 만들어 줬겠습니까?
다만, 하아, 동정이 아니라 더 중요한 건…… 체첼리아에게 다른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치를 위해 저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고요.
……
날 믿어, 에젤 군. 저렇게 솔직한 대답은 너한테 무조건 이득이야.
알겠습니다.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한테 라테라노의 성의를 표시한 것뿐이니까요.
만약, 당신과 체첼리아가 여행에 싫증을 느꼈다면…… 언제든지 라테라노에 돌아와도 좋습니다.
라테라노는 당신들을 위해 기꺼이 문을 열어둘 테니까요.
들어오세요.
페데리코 선배님?
추기경 벨리브, 이건 전 만국 전달자 오렌 아르지올라스의 최근 2년간 외출 기록입니다.
수고했습니다, 집행자 페데리코.
윽……
혹시 모르니까요.
지금까지의 정보에 따르면 집행자 리켈레가 공범자일 것으로 추측됩니다만, 리켈레를 호출하시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는 분명 “옛 동창에게 속았다”라고 할 테니까요. 그렇죠, 오렌?
……무서운 여자네.
리켈레는 추궁하지 않을 겁니다…… 당분간은.
하지만, 나중에 당신을 통해 그와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괜찮겠죠?
그럼, 당연하지.
현재 두 사람에 대한 처분은 이렇습니다, 집행자 페데리코.
……
잠깐, 페데리코.
무슨 일이시죠?
나중에 든 생각인데, 노트에 적힌 몇 마디 말로 그 살카즈가 만난 여자가 페오리아라는 걸 파악했잖아.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왜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거지?
도대체 누굴 찾고 있는 거야?
……아르투리아요.
아르투리아…… 뭐? 아르투리아?
그 지명 수배자 아르투리아?
……페데리코, 너랑 아르투리아는 무슨 사이지?
제 먼 친척입니다.
……하, 하하하하하!
솔직히 말해서, 페데리코.
지금 내가 몸만 멀쩡했다면, 널 데리고 술이나 마시러 가고 싶어.
제게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아니, 너는 시간을 내게 될 거야. 왜냐하면, 내가 마침 몇 년 전에…… 안도아인보다 훨씬 더 유명한 그 지명 수배자 아르투리아를 만났으니까.
……
잠깐! 진정해! 벨리브!!
내가 아르투리아를 찾아간 게 아니야! 우연히 마주친 거라고!
솔직히 나는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경험은 나조차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
어디서 그녀를 만났습니까?
3년 전, 라이타니엔.
에젤 오빠!
체첼리아!
리켈레 선배님……
절차는 다 끝났어. 체첼리아는 이제 자유롭게 라테라노를 떠날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리켈레 선배님.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뭐.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고 있겠지?
네…… 우선 페데리코 선배와 합류하고, 협력 협의를 통해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회사에 소속될 겁니다. 밖에 오래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훨씬 편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응, 알면 됐어. 연락은 내가 해놨어.
하지만 넌 여전히 공증소의 집행자야. 돌아오기 곤란할 땐 임무도 로도스 아일랜드를 통해 전달될 거야.
너와 체첼리아의 여정이 아주 순조로울 거란 예감이 들어. 너희가 찾는 사람을 금방 찾을지도 몰라.
내 예감은 틀린 적이 없거든.
……감사합니다?
그럼 난 이만 갈게. 안녕, 체첼리아.
안녕, 리켈레 오빠.
에취!
후우…… 뭐지, 이 불길한 예감은.
리켈레 선배도 참 독특한 사람이네요.
어, 잠깐. 어떻게 우리가 사람을 찾고 있는걸……
에젤 오빠,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체첼리아.
아직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
소녀는 젊은 산크타의 손을 놓고 꽃밭 가운데로 걸어갔다.
(엄마, 나 라테라노를 떠날 거야.)
(하지만 도망치는 게 아니야.)
(나는 아빠를 찾으러 가는 거야. 엄마의 말을 꼭 전할게.)
(내 눈으로 바깥세상을 보고…… 카즈델을 찾을 거야.)
(엄마, 나는 행복해. 예전에도, 지금도……)
(나를 지켜봐 줘.)
수도사 언니, 하얀 꽃 한 송이만 따도 될까?
그럼.
고마워!
체첼리아, 그 꽃을 가져가려고요?
응.
생화는 오래 보관하기 어려운데…… 제가 표본으로 만들어줄까요?
응, 나한테도 가르쳐 줘. 나도 배우고 싶어.
고마워, 에젤 오빠.
……음?
체첼리아, 고마워야 할 사람은 저예요.
어…… 저건……?
파티아, 정말 나랑 같이 갈 거니?
당연하죠.
사실 난 네가 라테라노에 남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라테라노에 내 목표는 없는걸.
……?
왜 그래, 파티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미안.
단지…… 당신…… 웃은 거야?
아니, 내 말은 평소 얘기가 아니라…… 그래도, 왠지 평소와는 다른데?
단지……
오랫동안 나는, 우리가 황야를 쓸쓸히 걷고 있다고 생각했지…… 이건 나의 미숙함과 자만심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파티아, 그날, 그 노인의 연설을 들었어?
……정신을 차렸을 때, 마침 뒷부분을 들었어. 온 도시에 방송이 나와서…… 아주 시끄러웠거든.
이반젤리스타는 희생과 결속의 미덕을 가진 성도야…… 어쩌면 앞서 그 이름을 사용한 열 명의 다른 교황들보다 더 멀리 갈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참 장대하지만 깨지기 쉬운 미래야.
그래도 난 축복을 빌고 싶어……
……그날 대체 뭘 알게 된 거야?
그건 중요하지 않아, 파티아. 별로 중요하지 않지.
설령 길의 끝에 포상이 없더라도, 전진하는 것 자체가 불을 밝히는 것이야. 그러니까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우리가 한 모든 것이 은혜를 거래하거나 동정을 얻기 위한 게 아니야. 우리가 자신이 굳게 믿는 것에 의지해 길을 걷는 이유는……
이게 유일하게 존엄 있는 삶이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을까?
선도자님, 해가 지기 전에 출발해야 합니다.
가자, 형제자매들이여.
혼혈 소녀는 앞장선 남자가 걸음을 내딛는 걸 보았다.
조금씩 지는 석양은 남자의 머리 위에 있는 광륜과 겹쳐, 마치 왕관을 쓴 것처럼 보였다.
소녀는 어렸을 때 들은 성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신중하게 말해줬던 그 단어가 떠올랐다.
소녀는 그 단어의 정확한 뜻이나 숨겨진 상징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 단어는 그저 갑자기 떠올랐고 멀리 보이는 그 모습에 내려졌을 뿐이다.
'순교자'.
체첼리아, 뭘 보고 있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석양이 너무 예뻐.
소녀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꽃밭, 성당, 멀리 있는 시계탑과 성상.
그리고는 젊은 산크타의 손을 꼭 잡았고, 두 사람은 멀리 떠났다.
소녀의 발걸음은 느렸지만, 뒤돌아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