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나무 그늘 속에 잠들다

자연의 계시

미니 스토리브릿지2024-02-27

티폰은 마젤란에게 사냥꾼의 지식을 알려 주고, 사미의 영원한 사냥 법칙도 알려 준다. 이후 일행은 데몬에게 중상을 입은 록혼비스트를 발견하게 되고, 동행하던 샤먼 견습생이 이를 처리했지만, 더 이상 자연의 먹이가 될 수 없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마젤란, 티폰, 산탈라

???

스으으으……

???

후우우우……


마젤란

스으으으……

산탈라

호흡기 벗어도 돼. 여긴 포자가 없거든.

마젤란

앗, 네.

마젤란

음, 하아……

마젤란

꺄앗, 버섯이 너무 무서운데.

티폰

마젤, 내가 경고했잖아. 만지지 마, 만지지 마, 아무거나 만지지 말라고.

티폰

말 안 듣더니, 거봐, 쌤통이다.

마젤란

그, 그……

티폰

나에게 맡긴 그 빈 상자? 안에다 버섯 넣어놓고 밀봉했어. 자.

마젤란

그래, 그거. 고, 고마워.

마젤란

하, 하아……

마젤란

설마 포자 농도가 이렇게나 높을 줄이야. 호, 호흡계통마저 마비됐어.

티폰

이 버섯은 육식이야. 고기는 어떻게 구할 것 같아?

마젤란

윽……

마젤란

그런데 왜 너는 멀쩡한 거야……?

티폰

나는 사냥꾼이잖아, 당연히 대처법을 알지.

티폰

어디 가서 버섯 늪에서 죽었다고 알려지면, 개망신이라고.

산탈라

(사미어) 티폰, 공물.

티폰

(사미어) 공물…… 벌써 도착했어?

티폰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티폰

음…… 확실히.

마젤란

둘 다 어디 가? 같이 가!

마젤란

'공물'은 또 뭐야, 설마 나는 아니지?

티폰

당연히 아니지, 바보야.

티폰

여긴 사미의 심장, 원초의 숲이야.

산탈라

우리가 왔던 곳, 그리고 가는 곳.

티폰

음식을 공물로 바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마젤란

안 바치면 나쁜 일이라도 생기는 거야?

티폰

글쎄, 그러길 바라니?

마젤란

아, 아니.

마젤란

그럼 건빵이라도 괜찮을까?

티폰

글쎄.

산탈라

잘 으깨서 바닥에 뿌리면 돼.

마젤란

앗, 네!

산탈라

(사미어) 대지여, 저희가 당신의 몸을 지나가려 합니다.

산탈라

(사미어) 이 공물을 당신께 바치오니, 저희가 피를 흘리지도, 사냥당하는 일도 없도록 부디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

(사미어) 사미는 허락했습니다, 여러분.

???

(사미어) 그대들의 성의 덕분에 사미는 배불리 먹게 될 것입니다.

산탈라

그 표현은…… 조금 경박스럽지 않을까? 젊은 샤먼.

산탈라

……아니, 샤먼 견습생이라고 해야 하나.

???

공식 석상도 아닌데 굳이 격식을 따질 필요는 없죠, 산탈라 나무의 후예 씨. 사미도 아마 넘어가 주실 겁니다.

???

음…… 어라?

???

샤먼, 사냥꾼에, 그리고 이방인? 사미에선 굉장히 보기 드문 조합인데요.

???

설마 여러분은 이곳에 생활 체험을 하러 온 건 아니겠죠?

산탈라

급하게 남쪽으로 가느라, 돌아갈 여유가 없어서 원초의 땅을 지나갈 뿐이야.

???

아하, 그렇군요. 스승님도 자주 그러셨죠.

???

하지만 이번은 달라요. 스승님은 저를 여기에 두고 가셨어요. '사미의 의지'인지 뭔지 하는 걸 깨달으라면서요.

???

벌써 며칠째 여기 있었지만, 매일 이 숲에서만 돌아다닐 뿐, 계시나 의지 같은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

당신이라면 아마 잘 아실 테죠, 나무의 후예 씨.

산탈라

산탈라라고 부르면 돼.

???

그럼, 산탈라 씨, 그거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스승님은 우리가 여기서 대체 뭘 가져가길 바라는 거죠?

산탈라

나도 잘 몰라, 오크 나무의 아이여. 전에는 참배하러만 왔을 뿐, 내 시련은 여기에 있지 않아.

???

그래요? 참 아쉽군요.

산탈라

앞길은 험난해. 서둘러야 하니까, 이만.

???

음……

???

잠깐만요!

???

저도 같이 가게 해주세요.

???

마침 제가 휴식하기 좋은 나무, 깨끗한 개울, 그리고 안전한 짐승의 길도 알고 있습니다.

???

'나무 길잡이'로서, 그러니까, 음…… 가이드로서!

???

여기에 저보다 가이드에 더 적합한 사람은 없어요!

???

그러니까 저도 데려가 줘요, 산탈라 씨. 아니면 너무 심심해서 나무가 될 것 같단 말이에요.

???

어때요, 존경하는 샤먼 씨?

???

그리고 거기, 사냥꾼 씨랑 우리 이방인 씨도요, 네?

마젤란

나는 딱히 상관없는데……

???

그럼 다들 동의한 거죠?

???

자, 그럼 출발하시죠. 원초의 숲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티폰

……

산탈라

흥……

산탈라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오크 나무의 아이.

???

네? 무슨 질문이요?

산탈라

너를 뭐라고 부르면 될까?

???

저요? 으음……

오크컵

사미 이름은 기억하기 힘들고…… 스승님은 평소에 저를 오크컵이라 부르니, 여러분도 그렇게 불러주세요.

티폰

……

마젤란

음, 혹시 그 별명의 유래를 물어봐도 될까?

오크컵

스승님은 좀 제멋대로여서, 가끔 술에 취하면 제 뿔에 술을 따라 드시거든요.

마젤란

아하……


마젤란

뭔가 시선이 느껴지지 않아……?

마젤란

신령이려나……

티폰

고기 먹는 큰놈이야. 나무 위에 하나, 시몬 뒤 수풀에 하나, 왼쪽 나무 뒤에도 하나.

마젤란

아, 그럼 됐어.

마젤란

오는 길에 이상한 것들을 너무 많이 봐서, 육식동물 정도야 이젠 놀랍지도 않아……

마젤란

무기라도 꺼낼까?

티폰

신경 쓰지 마. 배고파서 우릴 공격할 정도로 이성을 잃진 않았으니까.

티폰

저 녀석들보다, 우리가 저녁으로 뭘 먹……!

마젤란

어? 조심!

산탈라

도와줄까?

티폰

아니, 끝났어.

멀지 않은 곳, 터스크비스트 한 마리가 바닥에 엎드린 채로 티폰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뚜렷한 상처가 녀석의 뺨부터 팔뚝까지 이어져 있었다.

티폰

굶주림에 미친 녀석이 있긴 하구나. 유감스럽게도 넌 사냥감을 잘못 골랐어.

티폰

가, 네 고기는 맛없거든.

녀석은 물러날 뜻이 없는 듯 자세를 낮추더니, 이내 그늘로 몸을 숨기고 다시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팡!

갑자기 녀석의 눈앞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오더니, 녀석은 겁을 먹은 듯 순식간에 그늘에서 튀어나와 땅에 피를 흘리며 멀리 도망쳤다.

마젤란

티폰, 방금 손가락으로 뭔가를 튕기지 않았어?

티폰

응, 저런 큰놈을 쫓아내는 데 쓰는 거야.

마젤란

음…… 잎사귀로?

티폰

잎사귀로 공기를 감싸고 총알 모양이 될 때까지 계속 말면 돼.

마젤란

(노트에 기록한다)

마젤란

하지만, 잎사귀로 공기를 어떻게 말아?

티폰

묻지 마, 나도 가르쳐 본 적이 있는데 아무도 못 따라 하더라.

마젤란

……!

티폰

진정해, 운이 없게 목덜미를 물어뜯긴 혼비스트일 뿐이야. 아까 그 녀석일 수도 있고, 다른 녀석일 수도 있어.

마젤란

그렇구나.

오크컵

아무래도 이 이방인 씨는 이미 우리 땅에 익숙해진 모양이네요.

티폰

몇 주만 더 있으면 이 녀석은 완전한 사미인이 될걸.

마젤란

아하하……

오크컵

아하, 사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이방인이라, 대단하네요.

오크컵

예전에 제가 순례할 때, 멋대로 다니다가 길을 잃은 컬럼비아 여행자들에게 가이드를 해준 적이 있었거든요.

오크컵

몇몇 남녀들이 육식동물이 사냥하는 걸 보더니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데,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잔혹하다고, 너무 비문명적이라 하더라고요.

오크컵

하아, 저도 뭐 시골 촌뜨기라 문명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이 돈을 들여서까지 사미에 온 이유는 바로 그런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걸 보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오크컵

심지어 어떤 사람은 육식동물을 막으려 하다가 하마터면 자신이 먹혀버릴 뻔했어요.

오크컵

차림새를 보면 나름 신분 있고 지위 높은 사람들 같았는데, 안타깝게도 옷이랑 어울리지는 않았죠.

마젤란

너 컬럼비아어를 정말 잘하는구나.

오크컵

(우르수스어) 다른 언어도 할 수 있어요! 저는 수다쟁이라서 사람만 만나면 못 참겠더라고요.

오크컵

공교롭게도, 제 스승님도 좀 괴팍한 영감인지라 저에게 그런 걸 잘 알려주세요.

마젤란

(어눌한 사미어) 언어를…… 조금…… 아아, 그래, 확실히 맞아.

오크컵

아, 하지만 제가 남부인들과 편하게 교류하는 걸 보면, 부족 사람들이 좋아하진 않을 거예요, 헤헤. 저번에는 정기적으로 우리 부족 시장에 들르는 우르수스 카라반이……

산탈라

(여기 돌아오는 게 얼마 만이지……)

산탈라

(자연의 숨결이 아직도 울리고 있구나……)

산탈라

(암마는 아직도 이 숲을 지키고 있을까……)

산탈라

(이상하네.)

산탈라

(암마의 영향은 아직 있는데…… 저것들은 이미 와 있어.)

산탈라

(우르수스의 '블랙마크'……)

마젤란

시몬 언니, 무슨 일 있나요?

산탈라

아무것도 아니야.

산탈라

그 가이드가 오늘 밤 묵을 곳은 찾았어?

마젤란

네, 찾았대요. 바로 저 앞의 나무예요.

마젤란

컵 씨 말로는 나무 안이 텅 비어서, 우리 넷이 쉬기에 충분할 거래요.

마젤란

속이 빈 나무는 처음인데.

산탈라

금방 어떤 건지 알게 될 거야.


마젤란

우와, 이 정도면 대여섯 명은 들어가고도 남겠는데?!

오크컵

최대 열 명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근처에서 가장 큰 나무니까요.

마젤란

티폰은?

오크컵

그 사냥꾼 씨 말인가요? 간식용으로 무스비스트가 모아둔 나무 열매를 찾으러 갔어요.

산탈라

먼저 쉬고 있어. 난 주변에 방호 조치를 하고 올게.

오크컵

이 나무는 이미 축복을 받은 나무고, 부적도 걸려있는데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산탈라

……

오크컵

하아…… 뭔가 되게 진지한 사람 같네요.

마젤란

시몬 언니는 원래 저래. 언니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나 벌써 눈밭에서 서너 번도 얼어 죽었을걸.

오크컵

시몬? 음…… 시몬…… 산탈라 나무……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마젤란

시몬 언니가 사미에서 유명해?

오크컵

어…… 아니, 그렇진 않아요. 제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오크컵

순례 중에 직접 터득하지 못한 지식은 항상 기억하기 어렵네요.

오크컵

아마 다른 누구와 착각했겠죠.

마젤란

그렇구나.

마젤란

(노트를 펼친다)

마젤란

컵 씨,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면 내가 몇 가지 질문해도 될까?

오크컵

네, 얼마든지요.

마젤란

저번에 큰 나무 밑에서 나무껍질을 두 개 주웠는데, 위에 무슨 기호가 그려져 있었어.

마젤란

그 기호들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

오크컵

그건 암호문이에요. 사미는 그걸로 정보를 전달하죠.

오크컵

미래일 수도 있고, 과거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자연 자체의 감정일 수도 있고요.

오크컵

같은 기호라고 해도, 시간이나 사람에 따라 사미가 전하고 싶은 뜻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죠.

오크컵

잠깐 봐도 될까요?

마젤란

응, 여기.

오크컵

이건…… 고목의 껍질……

오크컵

'제사장'…… '기쁨'……

오크컵

아마도 부족 나무가 자신을 섬기는 샤먼에게 주는 암호문인 것 같네요. 자, 돌려줄게요.

마젤란

아하.

마젤란

'제사장'과 '샤먼'은 다른 거야?

오크컵

제사장은 수석 샤먼, 혹은 최고의 샤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가장 연장자여야 하는 건 아니지만, 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권위가 가장 높아요. 그 지역의 리더와 같은 존재죠.

오크컵

저의 스승님도 제사장입니다.

마젤란

제사장…… 그럼 컵 씨도 나중에 제사장이 되는 거야?

오크컵

저는 별로 되고 싶지 않아요. 귀찮은 데다 부족 사람들도 돌봐야 하고, 여러 문제도 해결해야 하니까요…… 될 사람은 되라고 하죠.

마젤란

그럼…… 이미 샤먼인 건가?

오크컵

그것도 아닙니다. 음, 견습생 정도랄까요. 사미가 뭘 원하는지, 제게 뭘 바라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오크컵

그래서 스승님이 저를 여기로 보내 무슨 '사미의 의지'를 깨달으라고 한 거죠.

마젤란

그럼 깨달았어?

오크컵

아니요.

오크컵

잎사귀도 평소처럼 떨어지고, 개울물도 평소대로 흐르는데, 어딜 가든 똑같아요. 특별히 달라진 건 못 느꼈습니다.

오크컵

나중에 스승님이 돌아오시면 불만을 좀 호소해야겠어요.

마젤란

시몬 언니, 어서 와요!

오크컵

제가 좀 보고 와도 될까요?

오크컵

이거 참 대단하군요. 땅에 있는 서리만으로도 이런 걸 할 수 있다니.

오크컵

아, 그러고 보니, 그 고목을 섬기는 사람은 눈보라를 조종해 손가락 끝에서 자유롭게 춤추게 한다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산탈라

고목은 시종이 없어. 나 같은 추방자는 필요하지도 않을 거고.

오크컵

말하고 싶지 않다면 저도 더 이상 묻지 않을게요.

마젤란

고목과…… 부족 나무는 다른가?

오크컵

사미에서 고목이라 부를 수 있는 나무는 그 나무밖에 없습니다.

오크컵

그는 항상 '현재'와 '미래'의 사자와 함께 나타나며, '과거'의 상징이기도 하죠.

오크컵

삼위일체이자, 사미를 초월한 존재입니다.

마젤란

과거라……

오크컵

당신의 옷차림은, 탐험가 같은데요.

마젤란

탐험가 맞아.

오크컵

그런데 제가 봤을 땐 탐험가보다는……

오크컵

그걸 뭐라고 하죠?

오크컵

민속학자……?

마젤란

내가 모르는 곳에 왔으니까, 탐험가로서 많이 배워두면 손해 볼 거야 없지.

오크컵

그럼, 인연이 닿으면 다음엔 제가 사미인들의 읽을거리를 좀 가져다 드릴게요, 탐험가 씨.

마젤란

좋아!

마젤란

문제는 극한 환경에서 탐험가의 짐은 엄격하게 무게 제한이 돼 있어…… 음, 아마도 《컬럼비아 백과사전》 두 권 정도밖에 넣을 수 없을걸.

마젤란

대충 크기는 이 정도, 두께는 이 정도…… 그리고 양장본이야.

오크컵

하아, 컬럼비아인의 개념은 이해가 잘 안 가네요. 아무튼, 배낭을 제가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마젤란

아, 이건 하나로 묶어서 짊어지고 있으니까. 잠시만.

마젤란

읏차.

마젤란

모두 바닥에 놨어.

오크컵

음…… 아마 별문제 없을 겁니다.

오크컵

사미인의 책 두 개면 대충 이 정도 무게일 거예요.

마젤란

그…… 어떤 책인데?

오크컵

전설집이라든가, 부족 역사라든가.

오크컵

뭐, 부족 역사 전집이라면 여러 개 방을 나무판자로 가득 채울 정도의 양이니까, 그건 드리지 않겠습니다.

마젤란

내, 내가 사이클롭스 동굴에서 본 종이책이 사미인들이 평소에 읽는 거라 생각했는데……

티폰

마젤!

마젤란

아, 어서 와.

티폰

전에 줬던 조명탄, 더 있어?

마젤란

있긴 한데, 왜?

티폰

방금 나무 열매 모으러 갔을 때 써봤는데, 효과가 잎사귀탄보다 더 좋더라.

마젤란

또 터스크비스트를 만났어?

티폰

숲에서 혼자 있으면 굶주린 맹수를 만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티폰

아무튼, 더 있어?

마젤란

응, 반 묶음 남았는데 얼마나 필요해?

티폰

우선 두 개만 줘.

티폰

봐, 이건 무스비스트가 숨겨 둔 나무 열매야. 넌 까탈스러우니까 개울물에 깨끗이 씻어 왔어.

마젤란

고마워, 헤헤!

티폰

시몬, 오크컵, 너희도 같이 와 먹어. 오늘은 일찍 쉬자. 출발할 때 고기를 노리는 맹수들이 입구를 막는 건 싫으니까.

산탈라

오늘 밤은 내가 망을 볼게.

티폰

오늘은 내 차례야, 너는 그저께였잖아.

산탈라

여긴 안전한 편이기도 하고, 적당히 눈 붙여가면서 쉴 테니까 괜찮아. 기분 전환할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줘.

티폰

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뭐.

티폰

(작은 목소리로) 밤에 조심해, 숲에 데몬이 있으니까.

산탈라

알았어.

마젤란

시몬 언니, 모닥불이라도 피울까요?

티폰

모닥불? 절대 안 돼!

티폰

주변의 포식자를 다 불러올 생각이야?!

마젤란

그, 그럼 등불이라도.

오크컵

모닥불이나 등불이나 별 차이 없습니다.

오크컵

잠들지 못할까 걱정된다면, 이걸 쓰세요.

오크컵

드림 캐처예요. 이게 있으면 사냥당하는 꿈을 꾸지 않고 편하게 잘 수 있어요.

마젤란

오, 고마워.

마젤란

그럼 난 먼저 잘게.

마젤란

다들 잘 자.

오크컵 말대로, 이날 밤 마젤란은 악몽에 시달리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다른 꿈을 꾸었다.

여전히 숲이고 여전히 밤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마젤란 한 사람…… 아니, 한 마리뿐이 아니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엠퍼러 같은 생물이 되었고, 그녀 곁에는……


[CG: 40_i06]

거대한 순백의 혼비스트 한 마리가 다른 사람의 꿈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것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자아냈고, 마젤란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만져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의 위용과 엄숙함에 마젤란의 손은 허공에서 멈춰버렸다.

결국, 그녀는 그것의 곁에 드러누워 함께 꿈나라에 빠져들기로 했다.

그녀는 꿈속에서 꿈을 꾸었다.

......


꿈속의 꿈에서 한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모두가 잠들어 있는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오염과 어둠으로 물든 길이 이어졌다.

하늘에서는 어느샌가 검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눈송이가 산탈라가 설치한 서리 위에 떨어지더니 이내 녹으면서 구멍이 뚫려버렸다.

그림자는 자신의 길을 뻗으며 그 구멍으로 향해 걸어갔다.

순간, 혼비스트 한 마리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혼비스트는 가볍게 뛰어오르더니 바로 사라져 버렸고, 그 그림자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땐 방금 뚫렸던 구멍은 이미 서리로 덮여 있었다.

그림자는 서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혼비스트가 사라진 방향으로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

마젤란이 깨어났을 때, 그 순백의 혼비스트는 여전히 곁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의 얼음 뿔은 이미 녹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몸, 그리고 숲 전체.

결국 마젤란은 눈에 파묻혔고, 눈꽃이 그녀의 부리에 떨어졌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마젤란은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사라질 때까지도 그녀는 그 혼비스트의 눈을 보지 못했다.


마젤란

……

티폰

오늘은 어떻게 일찍 일어났네?

마젤란

깨어나 버렸어……

이유는 단지 잠에서 깨버린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마젤란은 문득 침낭 안쪽 주머니가 축축하게 젖은 것을 느꼈다.

자기 전에 분명 주머니의 지퍼를 잠갔는데. 하지만 지금 주머니는 무언가 흘러나온 듯 지퍼가 열려 있었다.

주머니의 물건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단 하나, 사미의 기념품만 빼고.

마젤란

티폰……

티폰

왜 아침부터 죽상이야?

마젤란

암마의 사랑이, 사라지기도 해?

티폰

할머니는 많은 사람을 돌봐야 하니까, 언제까지나 네 곁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

티폰

암마의 사랑이 녹았어?

마젤란

응……

티폰

그건 좋은 일일 수도 있어.

티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암마가 큰 위협을 제거해 줬을지도 몰라.

마젤란

가능하다면 계속 간직하고 싶었는데.

티폰

그럼 하나 더 찾아 줄게. 별거 아니니까.


마젤란

이건…… 우릴 공격했던 녀석이네.

티폰

숨은 끊어졌어, 오래되진 않았고.

티폰

아마 어떤 대형 초식동물한테 밟혀 죽은 것 같아.

마젤란

초식동물이면, 아마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그런 거겠지?

티폰

아니, 이 초식동물은 일부러 포식자가 허약해졌을 때를 노렸어.

티폰

어쩌면 자신의 동포나 가족이 어렸을 때 이 포식자에게 먹혀서, 다 큰 다음 복수한 걸지도 몰라.

마젤란

동물의 복수라……

오크컵

사냥꾼은 사냥감을 죽이고, 새끼는 성장하여 복수하죠. 인간이 하는 건 동물도 당연히 다 합니다.

오크컵

우리와 동물의 차이는 당신들, 소위 '문명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아요.

오크컵

그것보다…… 사냥꾼 씨, 샤먼 씨, 이쪽으로 잠깐 와 줄 수 있을까요? 앞에 더 성가신 문제가 있습니다.


티폰

시몬, 이…… 이 록혼비스트는……

산탈라

맞아, 데몬이 낸 상처야.

산탈라

오크 나무의 아이, 일단 저 새끼부터 떼어내. 어미 피를 핥지 못하게.

오크컵

네.

오크컵

(록혼비스트의 울음소리를 흉내낸다)

부름을 들은 새끼는 부들거리며 어미 곁을 떠나 오크컵에게 달려왔다.

새끼 록혼비스트

(슬퍼하는 울음소리)

오크컵

많이 놀랐지. 괜찮아, 괜찮아, 내가 있어.

오크컵

(가볍게 새끼 록혼비스트의 이마를 핥는다)

마젤란

(카메라를 꺼낸다)

찰칵……

마젤란은 사진을 보았다.

분명 록혼비스트의 상처에서는 먹물처럼 시커멓고 광택이 도는 피가 흘러내렸지만……

사진 속 상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산탈라

이건 데몬이 직접 낸 상처가 아니야. 아마도 오염된 개체, 어떤 짐승의 껍데기에 공격당한 것 같아.

산탈라

다행히도 변이하진 않았네.

산탈라

오크 나무의 아이, 구할 수 있겠어?

오크컵

한번 해 볼게요. 마젤란 씨, 이 녀석 좀 잠깐 부탁해요.

오크컵

(록혼비스트의 울음소리를 흉내낸다)

오크컵은 새끼를 마젤란 앞에 데려다 두고, 다급히 상처 입은 어미에게 달려갔다.

마젤란

아, 안녕?

마젤란이 손을 뻗자 새끼는 기분이 좋은 듯, 머리를 마젤란의 손바닥에 대고 비벼댔다.

마젤란

헤헤~~

오크컵

(낮은 울음소리)

록혼비스트

(괴로운 울음소리)

오크컵

상황이 좋지 않네요…… 조금 더 일찍 발견했으면 구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오크컵

편히 보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크컵

사냥꾼 씨, 좀 더 옆으로 서 주세요.

오크컵

새끼가 이쪽을 보지 못하게 가려주세요.

티폰

응……

오크컵

(긴 울음소리)

록혼비스트

(처량한 울음소리)

오크컵

괜찮아, 괜찮아, 금방 끝나.

산탈라

……

오크컵

(아츠 유닛을 가볍게 흔든다)

오크컵

잘 자. 꿈속에서 너는 계속 뛰어다닐 수 있을 거야.

록혼비스트

……

오크컵

높은 산을 넘고 늪지대를 건너♪

오크컵

(아츠 유닛을 내려놓고 비수를 꺼낸다)

오크컵

암마의 비호 아래, 그녀의 숲에서 살아가리♪

오크컵

아픔도 없고, 슬픔도 없는 곳에서♪

오크컵

만물의 영혼과 함께하며……

오크컵

(비수를 록혼비스트의 목에 꽂는다)

오크컵

사미의 등에서 질주하리♪

오크컵

……

오크컵

편히 잠드시길, 대지의 영혼이여……

오크컵

후우…… (어미의 울음소리를 흉내낸다)

마젤란

아……

부름을 들은 새끼는 다급히 오크컵의 곁으로 달려왔다.

오크컵

(낮은 울음소리)

오크컵

(높은 울부짖음)

오크컵

괜찮아, 네 엄마는 너와 함께할 테니.

오크컵

그 피와…… 눈물……

오크컵

(비수로 어미의 눈가를 긋는다)

오크컵

그리고 뿔이 머물 곳은……

오크컵

(비수로 어미의 뿔을 긋는다)

오크컵

너의……

새끼는 발굽으로 오크컵의 무릎을 살짝 걷어찼다.

오크컵

발굽이야.

오크컵

(비수로 발굽에 표식을 그린다)

오크컵

됐어, 친구여, 네 삶은 이제 막 시작됐어.

새끼는 오크컵 주위를 맴돌았다. 마치 새로운 가족으로 삼고 싶은 듯했다.

오크컵

음…… 안 될 거야 없지만……

오크컵

네 엄마의 일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만이야, 괜찮지?

새끼는 대답하지 않고 오크컵에게 계속 몸을 비볐다.

산탈라

어떻게 하려고?

오크컵

저 같은 견습생이 혼자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크컵

(맑은 휘파람 소리)

오크컵

수행 같은 건 이제 됐습니다. 귀찮은 건 스승님에게 해결해 달라고 하죠.

오크컵

이쪽으로 쭉 가면 숲을 빠져나가 늪지인 마을에 도착할 수 있어요. 거기 사람들이라면 당신들을 환영해 줄 겁니다.

오크컵

저는 이 꼬마랑 여기 남아 있을게요. 일단 시체의 피를 멎게 하고, 스승님을 기다릴 거예요. 이런 시체를 포식자의 먹이로 그냥 둘 수는 없습니다.

산탈라

수관의 현자에게 안부 전해 줘.

오크컵

어, 이미 알고 계셨군요……

산탈라

우르수스의 '블랙마크'가 이번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고도 전해 줘.

오크컵

우르수스의 '블랙마크'요? 네, 기억했습니다.

오크컵

하아, 우르수스가 관련되어 있다면, 아마도 좋은 일은 아니겠죠.

티폰

식량은 충분해?

오크컵

그래도 샤먼 견습생인데, 숲 속에서 굶어 죽을 일은 없겠죠? 그럼 너무 창피하잖아요.

마젤란

이거 줄게, 컵 씨.

오크컵

음, 손전등인가요?

오크컵

저는 밤눈이 괜찮은 편이지만, 스승님은 유용하게 쓸 수 있겠네요. 고마워요.

오크컵

먼저 출발하세요, 여러분.

오크컵

부디 사미의 가호가 여러분과 함께하길.


마젤란

드디어, 숲에서 나왔네!

마젤란

오, 신호도 약간 잡힌다.

티폰

늪지인들은 너희랑 무역을 많이 하니까 당연히 너희 쇠뭉치도 많이 달겠지.

마젤란

궁금한 게 있는데, 컵 씨는 그 어미의 사체를 어떻게 처리하려는 거야?

티폰

오염된 피와 바닥을 정화하고, 상처를 제거한 뒤 시체는 그대로 둘 거야.

마젤란

땅에 묻거나 그러진 않아?

티폰

묻어 봤자 다른 동물들이 파헤쳐서 먹을 텐데, 쓸데없는 짓이야.

마젤란

사람한테도 그렇게 해?

티폰

비슷해.

티폰

오크컵 걔가 그랬잖아, 사미에서 우리는 짐승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티폰

사냥하고, 사냥당하고, 살아 있으면 먹이를 먹고, 죽으면 먹이가 되지.

티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냥감에 최소한의 자비라도 베푸는 거야. 먹기 전에 숨통을 완전히 끊어 준다든가, 이런 식으로.

티폰

이게 바로 자연의 섭리이고, 사미의 의지야.

마젤란

……

티폰

그걸 바꾸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마젤란

뭔데?

티폰

선령의 아버지, 사미 그 자체가 되는 거지.

티폰

단순히 전설일 뿐, 아무도 본 적은 없지만, 하하하.

마젤란

하아…… 놀리지 마……

???

“'블랙마크'는 확인 중이고, '리에바파울'은 곧 수상 가옥에서 거래할 거다.”

산탈라

……


또 하나의 짐승 사체, 또 하나의 피해자.

포식자는 피해자의 몸을 밟고 지나간다.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건 배를 채우거나 복수를 위함이 아닌, 순수한 살육이다.

한 마리의 혼비스트, 오염된 혼비스트. 배에는 구멍이 나 있지만, 여전히 '살아'있다.

녀석의 피, 녀석의 눈물, 녀석의 침, 모든 것이 먹물처럼 시커멓다.

포식자는 비틀거리며 짐승의 길을 걷고 있다.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서.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똑같이 요동치는 그림자가 있다.

그건 분명히 인간이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그 독특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스으으으…… 후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