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림자
일행은 우호적인 숲지대 부족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그날 밤 마젤란은 자신이 그림자에게 사냥당하는 꿈을 꾼다. 산탈라는 부족을 도와 부족 나무를 깨우는 의식을 열었고, 부족과 동행하는 부족 나무는 마젤란에게 익숙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들이마시고……
스으으읍……
내뱉고……
후우우우……
자, 이거 먹어봐.
으…… 너무 셔……
그래도 맛없진 않지? 익숙해지면 괜찮아.
그리고, 이것도.
으음…… 음? 이 과일은 속이 비었네?
뭔가 거품 같지?
응…… 확실히.
현지인들은 이걸 '버블'이라고 불러. 먹어도 아무 느낌은 없지만, 산에서는 필수품이야.
이제 좀 나아졌어? 머리가 안 아프지?
응…… 이제 괜찮아졌어. 이 과일은 고산병 약보다 더 효과가 좋네.
어떤 원리인지 알아?
몰라, 먹어서 나아지면 된 거 아니야?
그럼 안 되지. 잘 메모해 놓고 샘플도 좀 가져가야 해. 그러면 의약을 연구하는 동료들이 분명 관심 가질걸.
약은 챙겼어?
고산병 약? 챙겼어요.
주요 성분을 한 번 살펴보는 게 좋을 거야.
(배낭을 뒤적인다)
찾았다!
주요 성분은…… 야생 사워베리랑 버블넛 추출물…… 설마?!
사미와 컬럼비아의 주요 무역품 중 하나가 바로 의약 제품 원료야.
내가 알기론 컬럼비아 회사들이 그 의약 성분을 인공적으로 제조해 내거나, 컬럼비아 현지에서 원재료를 재배할 수 있게 되면, 바로 무역 상대를 잘라버린다던데?
하지만 아쉽게도 그 방식은 사미에서 통하지 않아.
컬럼비아가 재배 환경을 재현할 수 없어서?
아니, 컬럼비아라면 당연히 재현하겠지. 하지만 환경을 재현한다 해도 자라나는 식물에는 차이가 있어.
이유는 아주 간단해.
(사미어) 왜냐하면 모든 게 사미가 내려준 선물이니까.
(사미어) 모든 게 사미가 내려준 선물이니까.
(어눌한 사미어) 모든 게…… 사미가 내려준…… 선물?
언어 습득이 정말 빠르네. 우리가 막 만났을 때만 해도, 사미에 관한 걸 물어보고 싶으면 시몬이 항상 번역해줘야 했는데.
에헤헤~
네 컬럼비아어도 정말 훌륭한걸.
그건, 아르게스가 아는 게 많아서 그래. 덕분에 나도 조금 영향을 받았고.
숲의 경계가 보여. 이제 산지인들도 더는 쫓아오지 않겠지.
후우, 이제야 맛있는 것 좀 먹겠네.
숲에 맛있는 게 있어?
산에 고기는 있어도, 먹을 만한 과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숲은 달라. 먹고 싶은 게 다 있어.
오오.
(노트에 기록한다) “숲의 산물은 풍부하다……”
티폰, 이 주변에 마을이 있어?
있어, 게다가 나무를 가진 부족이야.
그럼 여기서 오랫동안 평온하게 지냈다는 거네.
나무를 가진 부족?
숲의 부족들은 모두 자기 부족의 나무가 있어.
……부족 나무가 없다는 건 아직 젊은 부족이거나, 아니면 부족 나무를 잃었다는 거야. 어느 쪽이든 비웃음을 사는 건 똑같지만.
그 사람들이랑 교류는 돼?
내 기억엔 비교적 온화한 편이었어.
어쨌든 숲에 사는 사람들은 산에 사는 사람보다 더 친절하고 우호적이야.
어, 진짜?
당연하지. 산지대 전사들은 일 년 내내 북쪽의 괴물들이랑, 적대적인 우르수스를 상대해야 하니까, 성격이 사나운 게 오히려 정상이지.
하지만, 전선을 떠나 고향에 돌아오면 다들 얼굴이 마냥 차갑지만은 않아.
그건 참 다행이다……
그래서, 사미인들은 보통 어떻게 구분해?
쉽게 말하자면, 최북단 산지대 사람들은 산지인, 중앙의 숲지대나 그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숲지인, 최남단 늪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늪지인이라고 불러.
그렇다면 티폰은 어느 쪽이야?
나? 난 그냥 사냥꾼이야.
사냥꾼? 하지만 방금 말한 구분법으로 치면, 너는 산에서 자란 사람이잖아?
어, 그게…… 난 살카즈라서 정해진 거주지나 부족은 없어. 그러니까 당연히 그 방법으로 구분이 안 되지.
그럼 시몬 언니는?
시몬…… 음, 시몬은……
난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이지.
로도스 아일랜드? 그건 또 뭐야?
로도스 아일랜드도 카테고리가 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자, 도착했어.
우와……
이 나무…… 마치 수직 이동도시 같네!
나, 나 살면서 이런 건 처음 봐……
……일단 사진부터 찍어야겠다.
여긴 전에 왔을 때랑 별로 달라진 게 없네. 그런데……
왜 다들 밖에서 물건을 옮기고 있지?
(사미어) 어서 오세요, 벗들이여.
(사미어)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거목의 시종이여. 저희는 북쪽에서 왔습니다만, 하룻밤 신세 져도 괜찮겠습니까?
(사미어) 그럼요, 존경하는 샤먼이여. 우리는 기꺼이 친구를 대접합니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당신들의 방문만으로도 축제를 열 수 있겠습니다만……
(사미어) 유감스럽게도, 보시다시피 저희는 지금 이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오랫동안 살았던 이 땅을 떠나야 합니다.
(사미어) 오늘 밤은 빈방이 많을 테니, 원하는 방을 골라 쉬면 되겠습니다. 거목도 허락할 것입니다.
(사미어) 거목과 당신의 부족에 감사드립니다.
(사미어) 천만에요, 어서 들어오세요.
(사미어) 친애하는 샤먼이여, 이따 시간이 되시면 부디 나무 꼭대기에 있는 조당으로 와주십시오. 당신의 지혜를 빌리고 싶습니다.
(고개를 끄덕인다)
허락은 받았으니 하룻밤을 지낼 수 있겠네. 일단은…… 저기 가지랑 가까운 방으로 할까?
하하…… 드디어 방에서 쉴 수 있구나……
그게 그렇게 중요해?
방에서 자야 안심이 되지. 밖에서는 불안해.
그래? ……되게 까다롭네.
까다로운 게 아니라, 아무튼……
방습 매트…… 침낭…… 좋았어!
풉.
왜?
응? 아무것도 아냐. 잠 한번 자는데 그렇게 난리를 피우는 게 웃겨서.
이왕 자는 거 편하게 자야지.
한 번 누워 볼래?
나? 난 그런 거 필요 없어. 로브에 몸을 감싸면 어디서든 잘 수 있어.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잠깐 누워 봐. 누워 보면 알 수 있어. 엄청 기분이 좋거든.
그래?
잠깐 눕는다고 살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알았어, 그럼……
읏샤……
들어가기만 하면 되니까, 지퍼는 안 잠글게.
음, 부드럽다. 짐승 가죽 같아…… 아니, 그것보다도 더 가벼운 것 같네……
으음……
……
여기, 저녁밥이야.
와, 고마워요. 티폰 음식은 이쪽에 둘게요.
티폰은?
……
시험 삼아 침낭에 들어가게 했더니, 바로 잠들어 버렸네요.
……그렇구나.
나는 여기 샤먼이랑 잠깐 얘기하고 올게.
외출하고 싶으면 티폰이랑 함께 가는 게 좋을 거야.
숲지인들이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지만, 그래도 규칙을 위반하면 화를 낼 수도 있으니까.
네, 알았어요.
그럼 다녀와요, 시몬 언니!
음…… 티폰, 티폰?
……
엄청 피곤했나 보네.
그럼 난 입구 쪽에서 사진이라도 몇 장 찍을까……
음냐……
(사미어) 용무가 무엇입니까, 시종이여.
(사미어) 아, 다행이다. 드디어 와주셨군요.
(사미어) 아시다시피 저희는 지금 이주를 준비하고 있는데……
(사미어) 저희가 산지에서 오는 길에 성가신 일을 좀 겪긴 했습니다만, 혹시 그것과 관련된 것일까요?
(사미어) 네, 맞습니다.
(사미어) 아직까지 화를 입은 이는 없지만, 불길한 징조가 여럿 발견되어, 부족 사람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사미어)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겁니다.
(사미어) '코로나', '흐레이드'.
(사미어) 사미의 의지는 명확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 부족은 여길 떠나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 합니다.
(사미어) 알겠습니다.
(사미어) 그렇다면 저를 부르신 이유는……?
(사미어) 이걸 봐주십시오.
(사미어) 아니요, 안 됩니다. 이건 당신 부족의 계보잖습니까?
(사미어) 저는 외부자입니다.
(사미어) 알고 있습니다, 친구여.
(사미어) 저는 어려서부터 이 숲에서 살아왔습니다. 저의 부친, 조부, 조상들도 그랬고요.
(사미어) 하지만 저희가 너무 오랫동안 편안하게 살아서 그런지, 이 계보는 오히려 어떠한 상징, 혹은 전승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미어) 이걸 열어 읽으려고 했을 때, 모든 말이 이해되지 않더군요.
(사미어) 제가 가족과 얘기하고 조상들과도 교류하면서, 모든 기호의 뜻을 이해하려고 시도했습니다만……
(사미어) 늘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미어) 당신도 샤먼이죠?
(사미어) 과거에는요.
(사미어) 과거에 샤먼이었다면, 당신의 지혜는 반드시 우리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벗이여.
(사미어) 한번 보십시오, 당신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
……
하암!
침낭이 확실히 편안하긴 하네……
마젤란!
어라…… 어디 갔지?
밖에 뭔가 시끄러운데……
뭐…… '이방인'…… '부족 나무를 만져'?!
이런, 틀림없이 그 바보짓이야!
……
……말해 봐.
미안해! 샘플 채취가 금지된 건 알고 있었는데, 만지는 것조차 안 될 줄은 정말 몰랐어!
하아……
부족 나무는 부족 중에서도 가장 연장자고 가장 존경받는 존재야. 보통 이방인은 나무에 있는 방에 묵을 기회조차도 없어.
너희는 시도 때도 없이 뭐 기념비라던가, 아니면…… 가장 장수했거나 가장 지혜로운 존재를 함부로 만지고 그래?
음…… 대통령 같은 거?
대통령? 그래. 만약 네가 너희 대통령을 만지려고 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땠을까?
아마 만지기도 전에 경호원에게 제압당했을걸……
거봐, 대충 그런 느낌이야.
그나마 여기 사람들이 온화한 편이라 뒤에서 몇 마디 욕하는 정도겠지만, 험악한 부족이었다면 넌 이미 도끼로 두 동강이 났을걸.
미안해……
시몬도 분명 외출할 때 꼭 나를 데려가라고 했는데, 그새 잊었어?
난 그냥 사진만 찍고 싶었는데, 나무 씨의 재질이 너무나도 특별해서 가까이에서 보려다가, 그만……
잠깐, 너 시몬 언니의 말을 듣고 있었어? 자고 있던 거 아니야?
난 자고 있어도 들을 건 다 들어.
그, 그런데 아까 불렀을 땐 왜 일어나지 않았어?
그야, 자고 있었으니까.
윽……
아무튼, 교훈이 됐으면 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 맛있는 과일이라도 먹을래?
여기 있어?
방금 봤는데 숲에 많아.
가자, 시몬 몫까지 해서 많이 따오자. 내일 길에서 먹어도 되고.
응, 좋아!
다녀왔어?
음!
신선한 과일 따왔는데, 시몬도 먹을래?
음음음?
이제 잘 시간이야.
음.
마젤란.
음?
티폰, 얘한테 뭘 먹인 거야?
나 아니야. 이 바보가 과일을 따더니 독이 있냐고 물어보길래, 없다고 했더니 바로 입에 집어넣더라.
벙어리밤을?
음.
그럼 얼른 자자.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음……
잘 자.
잘 자, 시몬.
음음음음음음.
음음!
왜 그래?
음.
침낭은 네가 써, 난 됐어.
좋은 꿈 꿔.
마젤란은 포근한 침낭과 귓가에서 들리는 두 사람의 규칙적인 호흡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것은 조용하고 기분 좋은 편안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이 숲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식물은 허리까지 자랐고 나뭇가지가 달빛마저 가려 주변은 온통 칠흑이었다.
갈증을 느낀 그녀는 물소리를 따라 개울가에 도착했고, 머리를 숙여 개울의 물을 핥았다.
모든 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을 때, 그녀는 아무런 이상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물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한 마리의 무스비스트였다.
찍찍.
밤은 깊었고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으며, 마젤란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그녀는 황급히 몸을 굽혀 풀숲을 헤쳐지나, 분비물로 표시된 둥지가 있는 나무에 기어올랐다.
찍찍!
그곳은 안전한 장소였고 거기엔 그녀의 동족과 가족이 있었다. 그녀는 나뭇가지에 앉아 울음소리를 냈고,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잠시 망설였던 그녀는 나무줄기에 뛰어올라 둥지에 돌아갔다.
둥지 안에서, 그녀의 어머니는 그림자 속에서 단잠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 품에 기대어 이 밤을 지내고 싶었으나, 두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이 불완전한 짐승의 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둥지는 넓고 어두웠으며, 안에서는 무언가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집에 돌아오기를.
그녀가 무방비 상태가 되기를.
그녀가 공포에 지배되기를.
......
그리고 무언가가 그녀의 목덜미에 닿았다……
!
으으…… 음……
……
조금 전 악몽에 괴로움을 느낀 마젤란은 밖에서 바람 좀 쐬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다시 들어와 쉬려고 했다.
하지만 문을 나선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정말 꿈에서 깨어난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거대한 그림자의 형체가 이 공간 속에서 거닐고 있었다.
사람 같기도 나무 같기도 한 이 거대한 그림자는 천천히, 하지만 안정된 걸음으로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달조차도 그 그림자에 가려져 달빛을 땅에 드리우지 못했다.
이게…… 뭐지?
빨리…… 사진을……
찰칵……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마젤란이 찍은 사진에 그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았고, 대신 달빛이 대지에 쏟아지고 있었다. 모든 게 너무나 정상이었다.
하지만 마젤란의 눈에 비친 그림자는 여전히 이동하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마젤란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녀는 방에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을 청해야 할지……
아니면 방에서 장비를 챙겨, 기록을 남길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이 초자연 현상을 측정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고민에 빠진 순간, 거대한 그림자는 갑자기 그녀를 스쳐 지나갔고, 마젤란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그녀의 목덜미에 닿았다……
너 여기서 뭐 해?
꺄악!
진정해, 마젤란, 진정해. 내가 있으면, 아무도 널 다치게 할 수 없을 거야.
후우…… 후우…… 아…… 하아……
서두르지 말고, 일단 진정부터 해.
응……
여기 앉아서 물이라도 좀 마셔. 저기 저 덩치 큰 놈은 신경 안 써도 돼. 저건 그림자일 뿐이야.
후우…… 후우……
좀 나아졌어?
응, 고마워, 아까는 하마터면 간이 떨어질 뻔했어.
그래도 너는 생각했던 것보단 강하네. 모두가 다 깨어날 정도의 비명을 지를 줄 알았는데.
그랬다면 당장 이 마을에서 쫓겨나겠지?
아니야, 그렇지도 않아. 사미인은 그렇게 속 좁은 사람들이 아니거든.
……악몽이라도 꿨어?
응.
어디 보자…… 둥지에 돌아간 어린 짐승이 해골을 발견했는데, 그 해골에 잡아먹히는 꿈이지?
설마 너도 같은 꿈을 꿨어?
응, 오후에 침낭에서 잘 때.
미안……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편안하고 아늑한 환경에서 쉬고 있을 때면 그게 찾아와.
환영받지 못하는 친구랄까.
사미는 이게 문제야. 꿈속에서도 사냥하는 자와 사냥당하는 자의 순환이 멈추질 않아.
게다가 대부분 사람들은 꿈속에서 사냥감밖에 될 수 없지……
그럼 우리가 사냥꾼도 될 수 있다는 거야?
그것보다, 규칙 그 자체가 될 생각은 안 해봤어?
그건 좀 무리 아닐까……
글쎄.
어쩌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우리가 더 성장하면……
다시는 이 커다란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 때.
마젤란, 저 녀석을 한 번 만져봐.
엥?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넌 탐험가잖아, 뭘 무서워하는 거야?
나는 먼저 계획을 세우고 출발하는 타입이야. 그런데 저건, 도대체 뭘 준비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단 말이야!
앗, 다, 당기지 마……
으아악, 나무 밟았어!
잔가지는 밟아도 돼.
게다가 아무도 못 봤잖아.
읏차.
여기 자리 괜찮은데, 여기 앉자.
너,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가까이 안 가면 어떻게 만지려고?
저, 정말로…… 만지게?
그냥 그림자야, 마젤란. 두려워할 필요 없어.
어쩌면 그냥 단순한 그림자, 아직은 매우 매우 옅은 그림자일지도 몰라.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도 성장할 것이고, 더 많은 힘을 얻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우리도 이런 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지.
게다가 그 잡아먹히는 꿈에서 난 가끔 어떤 목소리가 들려.
“무언가에 위협받고 있다면 즉시 반격하라.”
“그걸 이겨내면 두려움도 이길 수 있을 것이고, 도망치면 영원히 그걸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자.
하지만……
장막처럼 펼쳐진 눈앞의 그림자를 보며 마젤란의 마음속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꿈속 환상의 잔혹함과 압박감이 여전히 그녀의 마음속을 맴돌았다.
그녀의 직감은 모험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래, 천천히 해도 돼, 괜찮아.
나도 같이 만질게.
티폰은 손바닥을 마젤란의 손등에 살짝 대고 천천히 밀었다.
그러다 손바닥에서 저항이 느껴지자, 티폰은 힘을 쓰지 않고 마젤란의 손을 피해 곧장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손을 그림자 속에 담근 뒤, 다시 빼내 마젤란의 손등에 얹었다.
봐, 별거 없잖아.
응, 나도 한 번 해볼게……
마젤란은 조금씩 조금씩 앞을 향해 손을 뻗었고, 이내 손가락 끝이 그림자에 들어갔다.
원래는 손가락이 차갑거나, 아니면 무언가에 잡아당기거나 물릴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처음에는 손톱, 그다음엔 손가락, 그리고 손바닥 전체까지.
그림자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빛과 그림자의 변화 외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티폰이 말했던 것처럼.
이건 그냥 그림자였다.
어때, 내 말이 맞지?
정말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네.
음……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또 과학적인 원리에 집착하는 거야?
이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흐음.
그렇다면, 왜 엄마가 낳은 사람은 너나 나여야 했을까? 다른 사람이 아니고.
네 말대로면 이것도 '이유 없는 일'이 아니야?
그, 그건……
……
남부인들은 매사에 이유 붙이는 걸 좋아하는구나.
하지만 나에게는 언제 어디서 마주할지 모르는 미지가 더 중요해.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더라도.
두렵지…… 않아?
너는? 빙원에서 눈보라를 마주하거나, 산에서 눈사태를 만나거나, 아니면 홀로 짐승 무리를 상대할 때 안 두려워?
두렵지…… 그래도 난, 살아남을 거야.
두렵더라도 살아남는다…… 넌 이미 가장 어려운 걸 해냈어.
그런데 또 두려울 게 뭐 있어?
설령 눈앞의 이 그림자가 실체 있는 괴물이 된다 해도, 넌 두렵지 않을걸.
실체가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림자는 다르지.
실체가 있으면 약점도 있기 마련이야.
잠복하고, 관찰하고, 약점을 찾을 때까지 살아남아 공격하는 거야. 사냥꾼들은 다 그래.
넌 탐험가니까 반쯤은 사냥꾼이라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이런 것도 분명 대처할 수 있을 거야.
영원히 불변하는 건 없어. 어쩌면 네가 두려워했던 것들이, 나중에 너를 두려워할지도 모르잖아.
됐어, 그만 생각해. 내일도 서둘러야 하니까.
아 맞다, 이거.
어때? 자기 전에 먹어.
아니야, 자기 전에 과일 먹으면 충치 생겨.
음, 그래, 알았어.
잘 자.
티폰도.
마젤란은 고개를 돌려 다시 그 배회하는 그림자와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는 더 이상 두렵거나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그림자는 마치 어쩔 줄 모르는 여행자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태양이 떠오르면 다시 집에 돌아가 곤히 잠들겠지.
찰칵……
마젤란은 다시 한번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역시 사진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사진에 메모를 남겼다.
'고독 씨'.
결국 모든 게 다시 정적으로 돌아갔다.
방황하는 그림자만을 남기고……
날이 밝을 때까지.
이제 슬슬 시간이 됐네.
그나저나, 이건 대체 무슨 의식이지?
오오, 시작한다!
(노트에 기록한다) “사미인의 의식은 거목을 둘러싸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무래도 거목에 작별을 고하기 위함이……”
10분 후
으음……
“춤은 상당히 독특하지만, 규칙이 없고 각자 자유롭게 춘다.”
“마치 축제 같다.”
30분 후
(하암)
시몬은, 아직 안 왔어?
아, 언니는 거목 밑에서 샤먼이랑 얘기하는 중이야.
궁금하면 망원경을 빌려줄까?
그런 거 필요 없어. 내 눈으로 충분해.
티폰, 이건 무슨 의식이야? 얼마나 더 걸려? 네가 안 왔으면 난 아마 보다가 잠들었을걸.
난 사미에 사는 살카즈지, 사미의 엘라피아가 아니야. 너보다 그렇게 많이 알지는 않아.
얼마나 더 걸릴지는, 글쎄, 전에 고개만 끄덕이고 끝내는 샤먼도 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끝나지 않는 의식도 본 적이 있어.
그건 그렇고, 이것 좀 봐. 아까 숲에서 찾았어!
이건…… 눈덩이?
암마의 사랑이잖아! 마젤란, 이건 암마의 사랑이야!
암마라면, 할머니?
기억력 좋네.
너희 말로 표현하면 확실히 '할머니의 사랑'이라고 할 수는 있겠네.
이건 사미인들이 가장 원하는 가호 같은 거야. 사미의 수많은 자비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것이지.
너한테 줄게, 주머니에 넣어두면 돼.
아까 이건 사미인들이 가장 원하는 거라면서? 네가 찾았으니까 난 받을 수 없지.
난 가질 자격이 없어. 이 녀석의 가치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암마는 탐욕스러운 녀석을 싫어해.
하지만 너는 암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순수한 것과 거의 다를 바 없어. 게다가 너는 진지한 영혼도 있고. 그래서 네가 가장 받을 자격이 있다고 봐.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 존재 자체를 잊어버려. 받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렇구나…… 그럼, 뭔가 보답을 해야겠네.
잠시만……
자, 이거 줄게. 태풍아.
방금 뭐라고?
……뭐, 됐다. 그런데 이게 뭐야?
조명탄이야. 뚜껑을 열고 위에 있는 끈을 당기면 큰 소리와 함께 빛이 나지. 너는 사냥꾼이니까 분명 어떤 상황에서 써야 할지 알 거야.
꽤 쓸 만해 보이는데, 다음에 한번 써 볼게.
어, 마젤란, 춤이 끝났다. 기록해야 하잖아? 빨리 적어!
어? 아! 응!
(노트에 기록한다) “40분 동안 이어진 규칙이 없는 축제는 끝났고, 의식은 다음 단계로 접어들었다.”
“샤먼은 부족 사람들에게 나무 조각을 보여준다.”
“격앙된 어조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이어서 샤먼이 지팡이를 치켜들고 거목을 향해 뿔피리를 불며 무언가 외우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좌하던 다른 샤먼도 함께 부르고 있는 것 같다.”
티폰, 저 샤먼이 뭐라고 말하는지 좀 알려줄래?
음……
나도 몰라.
말투는 익숙하지만, 평소 얘기할 때 쓰는 말은 아니야.
(기록) “모종의 제사 용어 같음.”
짧은 말을 계속 반복해.
“반복……”
“감정은 북받쳐 오르고,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뭐, 뭐지?
지진인가? 티폰, 어디로 대피하면 돼?!
아니야…… 마젤란……
봐, 나무가……
(살카즈어) 뭐야 이건.
음……?
……!
거목은 땅에서 뿌리를 뽑더니 천천히 일어섰다.
굉음이 하늘 높이 울려 퍼져 사람들의 고함과 함성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숲을 넘어 점점 상승하더니, 한편으로는 균형을 잡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뿌리를 하나로 뭉쳐 난생처음 보는…… 인간의 말로 하자면 운동 기관 비슷한 걸 형성하고 있었다.
나뭇잎이 줄기에서 우수수 떨어졌지만, 사미인들은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더 흥분에 찬 모습이었다.
확실히, 세월과 역사, 그리고 기억을 짊어진 선령의 나무가 땅을 박차고 일어나는 모습보다 더 사람을 흥분케 하는 일이 어디 있으랴.
(사미어) 축하합니다, 시종이여. 의식이 성공한 것 같군요.
(사미어) 조상들이 남긴 거목과 동행한다는 말은 그저 동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사미어) 정말 고맙습니다, 산탈라 나무의 후예여. 당신의 도움과 해독이 없었다면, 이 각성 의식도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미어) 거목이 눈을 떴지만, 방향과 행동에 관한 진언은 아직 없습니다. 계보의 내용을 계속 연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미어) 이토록 눈에 띄는 체구를 북방의 재이가 놓칠 리 없죠.
(사미어) 최근 들어 재이의 활동이 빈번해지고 있으니, 사미가 함께 거목을 지켜줄 수 있도록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미어) 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사미어) 그리고 가능한 빨리 남쪽으로 향해, 거목이 다시 뿌리내리게 해주세요. 재이와 얽히지 않도록.
(사미어) 알겠습니다. 음…… 계보에는……
……
(사미어) 그럼, 저와 동료들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부디 사미가 당신의 부족에 좋은 터전을 찾아주고, 다시는 이주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인도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사미어) 아, 벌써 가십니까?
(사미어) 배웅은 필요 없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으실 텐데.
(사미어) 그렇다면 당신들의 앞길이 순탄하길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고귀한 친구여…… 아하…… 그렇군, 거목을 걷게 하려면……
(사미어) 그럼.
보고해라.
(우르수스 전달자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계획대로 사미에 들어왔습니다. '리에바파울'과 '블랙마크'에게 위치를 전달 바랍니다.
흥……
시몬 언니, 시몬 언니!
응, 다녀왔어.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
이제 출발해야지.
아, 미안, 늦었네.
괜찮아요, 어서 가요!
시몬 언니, 나중에 그 의식에서 뭐라고 했는지 꼭 알려줘야 해요. 제 연구에 굉장히 중요하니까요!
그럼 걸으면서 얘기할까?
좋아요.
왜 그래?
아, 잠깐이면 돼요!
찰칵……
출발 전, 마젤란은 몸을 일으켜 세워 우뚝 선 거목을 사진에 담았다.
그녀는 이 태양을 거의 다 가려버린 거물이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깊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이 순간을 노트에 기록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따라 사미 남부를 향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