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숙명

귀신에 묻지 않으리

미니 스토리브릿지2023-08-22

예상치 못한 토석류가 마을 밖 치도를 파괴했고, 현장에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가 나온다. 참혹한 사고 앞에서 마을 사람들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치우바이, 사가


눈앞의 거대한 산을 사라지게 할 방법 없을까?

마을 사람들은 대대손손 여기서 산과 맞서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야생 과일은 떫은 데다 독이 있고, 맹수들은 교활하고 흉악해 조금만 방심해도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그 외에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바위나 흙에 내린 빗물은 산기슭에 닿을 무렵 이미 흙탕물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외에 목을 축일 수 있는 물은 없었다.

남자는 돌을 날카롭게 갈았고, 또 덩굴을 뜯어내 그 돌을 나무 막대기에 묶었다.

그렇게 그에게는 괭이가 생겼다.

그는 산기슭에서 비교적 습기가 많고 평탄한 땅을 찾아 그 괭이로 고랑을 일궈 채취해 온 씨앗을 뿌렸다.

그렇게 그에게는 밭이 생겼다.

그러나 밭 하나로는 모두를 먹여 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만 길 높이의 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정상에는 구름이 흐르고 가로는 백 리나 되어 끝까지 눈이 닿지 않을 정도였다. 구불구불하고 또 얼마나 험준한지!

바람이 불어오지도 않고 사람이 나갈 수도 없다. 눈앞의 산은 살길을 가로막아 버렸다.

이 괭이로 어떻게든 산을 파볼까.

그 이후로 남자는 산기슭에 눌러앉았다. 괭이로 파고 키에 담고, 눈을 뜨면 산을 팠고 지치면 잠들었다.

반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산에는 그저 얕은 흉터가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손에 든 야생 과일과 흙탕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산을 파는 대열에 합류했다. 괭이도 점점 많아졌고 밭도 점점 많아졌다.

돌을 파내 밭을 일구고,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밤낮으로 끊이질 않았다.

???

너, 얼마나 계속 파 온 것이냐?

산을 파는 사람

3년? 5년? 기억이 안 나는걸……

???

너, 얼마나 더 팔 것이냐?

산을 파는 사람

더는 팔 수 없을 때까지.

???

참으로 어리석구나! 괭이가 아무리 날카로운들 단단하고 두꺼운 암반을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키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이 드넓은 흙을 또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

네가 목숨을 바친다고 이 산을 다 파헤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산을 파는 사람

그런 건 상관없어.

산을 파는 사람

내가 못 파면 마을 사람들이 있고 내 자식들이 있어. 마을 사람과 자식들이 못 파면 그 자식들도 있고……

산을 파는 사람

산은 변하지 않겠지만 이 산에 맞서는 사람은 끝도 없이 늘어날 거야.

산을 파는 사람

게다가 산을 다 팔 필요도 없어. 단 하루라도 더 파면 우리는 밭 하나를 더 개척해서 아이 한 명을 더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까.

???

너, 멈출 생각은 없는 것이냐?

산을 파는 사람

멈추면 이 산에 굴복하는 거나 다름없지.

???

인간, 왜 굳이 산에 맞서려는 것이냐?!

산을 파는 사람

그렇다면 이 산은 왜 여기를 가로막고 있는 거지?! 인간에게 먼저 등을 돌린 건 이 천지가 아닌가.

산을 파는 사람

더 이상 설교하지 마라. 어서 돌아가. 나는 일을 계속할 테니.

???

......

???

이 얼마나 말이 안 통하고, 얼마나 시끄러운 무리인가!

???

너희는 이미 내 꼬리에서 5년 3개월하고도 7일 동안 시끄럽게 굴었다……

???

됐다, 됐어. 너희가 멈추지 않을 거면 내가 떠나마……

거대한 산이 갑자기 사라졌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하루 동안 힘들게 일한 남자는 키를 베고 꿈을 꾸며 단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앞에는 처음 보는 광활한 땅이 펼쳐졌고 드문드문 남은 돌멩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커다란 산이 정말 존재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은 남자의 부지런함과 정성에 감동한 신이 산을 옮겨준 거라고 했다.


며칠 전

구경나온 촌민

왔어, 족장님이 왔어.

노족장

……

보고하는 촌민

어제 밤새 폭우가 내렸잖아요. 시멘트 재료가 빗물에 망가졌을까 봐 걱정돼서 아침 일찍이 확인해 보러 왔더니, 치도는 이미 토석류에 휩쓸려 무너졌더라고요……

보고하는 촌민

이 아이가 옆에 누워있던데, 제가 갔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어요.

노족장

……

보고하는 촌민

족장님? 족장님! 왜 그러세요?

노족장

어떻게…… 어째서 여기에 사람이……

보고하는 촌민

아마도 한밤중에 치도를 따라 걷다가 마침 산사태를 만난 것 같습니다……

보고하는 촌민

마을 사람들에게 다 물어봤는데 이 아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근처 다른 마을도 마찬가지고.

구경나온 촌민

옷차림을 보니 이 산의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어린아이가 이 외진 산에 뭐 하러 왔을까요?

구경나온 촌민

족장님, 말씀 좀 하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다들 족장님 말씀만 기다리고 있어요.

노족장

이 아이는……

노족장

몸에 신분을 증명할 만한 물건이라도 있나?

보고하는 촌민

없어요…… 아마 토석류에 휩쓸려 버린 거 같아요……

노족장

손에 든 건 뭐지?

보고하는 촌민

아이고, 너무 꽉 잡고 있는데…… 뭔가 플라스틱 박스 같네요. 꽤 무거워요.

보고하는 촌민

보세요. 뚜껑이 움직이는데 열어보면 거울도 있어요. 어디에 쓰는 건지……

노족장

이건…… 카메라인가?

노족장

우선 망가지지 않게 잘 보관하게.

노족장

관청에서 조사원이 오면 넘겨주도록 해…… 아이의 신원이 밝혀지면 가족에게 알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구경나온 촌민

……

구경나온 촌민

족장님, 바, 바로 신고하시게요?

노족장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당연하지…… 게다가 마을 밖 치도 보수 공사를 우리가 맡았잖나. 지금 치도가 망가졌으니 그것도 서둘러 보고해야 해.

노족장

나머지는…… 하아, 관청에서 사람이 오면 내가 함께 설명하겠네.

구경나온 촌민

거짓말하자는 게 아니라요…… 족장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구경나온 촌민

산사태로 치도가 무너지고 아이가 목숨을 잃은 게…… 혹시 아이가 서둘러 치도를 수리하려다 일어난 사고라 할 수 있다면……

노족장

그게 무슨 뜻인가?

보고하는 촌민

족장님, 이 아이 모습을 보세요……

보고하는 촌민

사냥꾼네 아들이 아직 마을에 있었다면 그 아이와 비슷한 또래 아닙니까?

노족장

……!


노인은 소매를 움켜쥐고 조각상 앞에 놓인 제사상을 깨끗이 닦았다. 그리고 신선하지 않은 과일과 곰팡이가 핀 밀 종자를 올려놨다.

조각상 앞에 엎드린 노인은 고개도 들지 않았고 말도 없었다. 긴 시간 동안 계속 그 자세를 유지했다.

한 사람, 하나의 조각상, 그리고 황폐해진 절에는 한산한 공기가 감돌았다.

노족장

이 열매는 작년 입동할 때 지하에 저장해 둔 과일입니다. 변변치 않지만, 아쉬운 대로 참아 주십시오…… 3월도 거의 다 지났는데 마을의 나무들에 아직 싹이 나지 않았군요. 올해도 과일은 얼마 열리지 않을 건가 봅니다.

노족장

이 씨앗을 보십시오. 2년 전에 큰 가뭄이 와서 얼마 저장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입춘 뒤로 연달아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그마저도 곰팡이가 피고 말았습니다……

노족장

드디어 날이 갠다 싶었는데 춘분이 거의 다 지나갑니다. 시기는 늦었지만, 그래도 서둘러 파종하라 재촉해 뒀습니다.

노족장

조상님…… 저희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노족장

황무지에 길을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치도는 큰 공사라 공부에서 치도 건설 노동자에게 아주 후하게 대우해 줍니다. 또 순직한 자에게 주는 보상금도 아주 넉넉하고요.

노족장

백만이 넘는 큰돈이면 마을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노족장

우선 도랑 전체를 개축하고 전달자에게 부탁해 이동도시에서 새로운 관개 시설을 구매할 겁니다. 그럼 우물을 더 만들어서 물을 저장할 수 있겠죠……

노족장

만약 돈이 남으면 최고 품질의 씨앗을 사고 비축 식량도 살 수 있을 겁니다.

노족장

마을에는 벌써 몇 분기째 저장된 식량이 없습니다. 요 몇 년간 수확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릿고개라도 오면……

노족장

하아, 약속한 보조금은 아직 받지도 못했고…… 모선 마을은 정말 돈이 필요합니다.

노족장

그래서 전 그 아이의 시신과 방돌쇠의 이름을 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족장

3년이 지났습니다. 사냥꾼도 저도 아무 말 안 했지만, 다들 마음속으로는 그 아이가 황무지에서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노족장

조상님, 이건 정말 최악의 방법이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방법입니다.

노족장

제가……

노족장

제가 하는 모든 일은 다 마을을 위한 겁니다……

노족장

정말이지……

노족장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노족장

이 말은 조상님께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니면 제 마음이……

노족장

당신의 후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제가 몇십 년 동안 족장을 했지만, 사람들의 생활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3년 동안 조상님이 계시는 곳도 미처 수리를 못 끝냈습니다.

노족장

제게는 조상님처럼 산 하나를 파헤쳐서 백 명이 넘는 사람이 편히 지낼 곳을 줄 능력이 없습니다.

노족장

저도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더는 밭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아직 움직일 수 있고, 말할 수 있을 때 모두를 위해 살길을 마련해 놔야 합니다.

노족장

조상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부디 후손들을, 이 마을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부디 만사가 잘 풀리도록 도와주십시오……


???

......

???

주지 스님, 속세와 그림 속 풍경은 대체 어떻게 다릅니까?

[CG: 35_mini01]

객승이 눈을 떴다.

그녀는 조상의 상에 등을 기대어 주름진 승복 자락을 깔고 앉아 있었다. 곁에 있는 그릇에는 깨끗한 물이 반쯤 담겨 있었다.

그녀는 막 좌선을 끝낸 것 같기도, 막 잠에서 깬 것 같기도 했다.

사가

시주, 음식과 물은 감사히 받도록 하겠소……

사가

시주는 조각상일 뿐이지만, 주지 스님께서는 '인연에는 구별이 없다'고 했소. 그래서 소승이 멋대로 '시주'라 부르는 것이오.

사가

어젯밤에 비가 억수로 쏟아진 데다 소승이 피곤하고 허기지어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소. 그래서 시주의 등을 빌려 잠깐 쉬고 있었던 것뿐이오. 일부러 엿들은 게 아니오.

사가

다만……

사가

모든 곳에 파산 마을처럼 큰 종이 걸려있는 건 아니지만, 어디나 종을 울릴 사람이 필요한 것 같구려……


밥 주러 온 촌민

입 좀 열어 봐, 돌쇠야.

방돌쇠

……

밥 주러 온 촌민

안심해, 독은 없으니까.

밥 주러 온 촌민

이건 마라 샌드비스트야…… 네 아버지가 특별히 가져온 거다. 우리도 고기 못 먹은 지 오래됐어. 네 아버지는 자기도 먹기 아까워하면서, 네가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니까 맵게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

밥 주러 온 촌민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첫 끼니를 이렇게 때우다니. 하아……

방돌쇠

퉤.

밥 주러 온 촌민

조금이라도 먹어. 굶어봤자 너만 고생이야.

밥 주러 온 촌민

게다가 우리는 네가 진짜 죽길 바라는 게 아니야.

방돌쇠

이렇게 대하느니 차라리 죽여.

밥 주러 온 촌민

자꾸 애처럼 굴 거니?

밥 주러 온 촌민

나도 알아. 죽은 사람에게 자기 이름을 갖다 붙이는 건 좀 그래. 하지만 까놓고 말해서 그냥 이름일 뿐이잖아.

밥 주러 온 촌민

앞으로 이 마을에서 너를 방무쇠라고 부르든 방돌석이라 부르든 그게 뭐가 대수냐? 이렇게 죽네 마네 하며 소란 피울 거 없잖아?

밥 주러 온 촌민

게다가 이번에 네가 마을을 위해 희생하면 다들 널 좋게 생각할 거야. 앞으로 무슨 일이든 너희 가족을 돌봐줄 거고. 그렇게 평온하게 사는 게 뭐가 나쁘니?

방돌쇠

다른 건 모르겠고, 연자 맷돌이나 돌리며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버든비스트의 이름이라면 마음대로 지어도 될 거야.

밥 주러 온 촌민

말하는 거 하고는. 어떻게 사람을 버든비스트랑 비교하니……

밥 주러 온 촌민

뭐, 그러고 보니 사람도 버든비스트처럼 밥 먹고 일하면서 생로병사를 하는 거지. 우리라고 뭐가 다르겠어?

방돌쇠

당신들이 어떻게 살든 난 관심 없어. 하지만 난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밥 주러 온 촌민

아, 못 살겠네. 애가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 아무리 말해도 얘기가 안 통하니……


노인은 우물가에 서 있었다. 몸을 구부린 것이, 키는 우물 위 도르래와 비슷했다.

나무 도르래가 돌아갔다. 노인은 올라온 나무통을 한쪽에 내려놓고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통에 든 것은 아직 가라앉지 않은 흙탕물이었다.

마실 수는 없지만, 관개에는 쓸 만했다. 우물을 판 것도 완전히 헛수고는 아니었다.

연로한 촌민

족장님, 힘쓰는 일은 젊은이들한테 맡기시지,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노족장

내가 물을 떠 놓았으니 다들 파종이 끝나면 와서 가져가면 되잖나. 그 정도 체력은 나도 있네.

노족장

게다가 지금 같은 시기에 내가 어떻게 가만히 앉아만 있겠나……

연로한 촌민

언제부터 이렇게 나약해지셨습니까? 몇 년 전에 치도 공사를 맡기 위해 모두를 데리고 옆 마을과 다툴 때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요.

노족장

그건 다른 얘기고……

연로한 촌민

모두 마을을 위한 일이잖습니까.

노족장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단 말이지……

연로한 촌민

뭐가 편치 않다는 겁니까?

연로한 촌민

죽은 아이를 몇 번이나 조사해 봤지만 아는 사람도, 본 사람도 확실히 없잖습니까.

연로한 촌민

모레 관청 사람이 와서 호적을 조사하고 기록한 다음, 사냥꾼에게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우고 한바탕 울라고 하면 다 끝나는 건데.

연로한 촌민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단결하여 누구도 발설하지 않으면, 들킬 리가 없잖습니까?

노족장

사냥꾼은 별다른 말 없었나?

연로한 촌민

진작에 끝난 얘긴데, 무슨 말을 하겠어요? 이제 아들까지 멀쩡히 살아 돌아왔으니 더 바랄 것도 없겠죠.

노족장

……돌쇠는 좀 어떤가?

연로한 촌민

다 처리했죠. 지키는 사람도 있고 문도 단단히 잠가놨으니 도망 못 갈 겁니다.

노족장

굶지 않도록 하게.

연로한 촌민

굶을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주육네가 밥을 챙겨주고 있으니까요.

노족장

이번만 넘기고 나서 천천히 설득하면 되겠지…… 아무튼 너무 곤란하게 하지 말게. 아직은 아이니까.

노족장

하아, 모레, 모레만 되면…… 시간도 참 안 가는군……

노족장

일이 무사히 끝나야 할 텐데……


방돌쇠

……

방돌쇠

맞다, 우리 아빠는? 아빠는 왜 날 보러 안 와? 설마 아빠도 가뒀어?

밥 주러 온 촌민

네 아버지는……

밥 주러 온 촌민

그러니까…… 하아, 이걸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방돌쇠

이번 일은 대체 누가 생각해 낸 거야? 그 주사 *산촌 욕설* 야? 아니면 족장님? 우리 아빠는 또 어떻게 설득했고?

방돌쇠

서, 설마 우리 아빠 생각은 아니겠지?

밥 주러 온 촌민

그건 아니야. 네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밥 주러 온 촌민

마을 사람들은 네가 정말로 죽…… 아니, 다들 네가 돌아올 줄 몰랐어…… 게다가 하필이면 이럴 때니까 말이지.

방돌쇠

하지만 내가 돌아왔잖아!

밥 주러 온 촌민

사고는 이미 관청에 신고했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단다.

밥 주러 온 촌민

이건 마을 사람 모두의 생각이야. 족장님도 동의했고, 네 아버지도…… 동의했어.

방돌쇠

!!!

밥 주러 온 촌민

돌쇠야, 아줌마 말 좀 들어 보렴……

밥 주러 온 촌민

네가 무사히 돌아와서 다들 속으로는 기뻐하고 있어. 특히 네 아버지 말이다. 널 다시 봤을 때 얼마나 기뻤겠니……

밥 주러 온 촌민

하지만 지금 모선 마을이 어떤 상황인지 너도 봤잖아. 우리에겐 그 돈이 꼭 필요해……

밥 주러 온 촌민

우리 집 뉴뉴 기억하지? 어렸을 때 널 오빠라고 불렀잖아.

밥 주러 온 촌민

두메산골에서 태어났는데 하필이면 또 농사도 못 지을 만큼 허약하잖니. 그래서 나와 네 주육 아저씨는 돈을 모아서 어떻게든 딸을 이동도시로 보내려고 했어.

밥 주러 온 촌민

하지만 최근 2년간 돈을 모으기는커녕 집에 모아둔 식량도 거의 바닥이 났단다.

방돌쇠

나한테 그런 얘기하지 마……

밥 주러 온 촌민

네가 그래도 마음은 착한 아이잖니.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모두를 기쁘게 하는 일을 망치지 말고, 한 번만 마을을 도와주면 안 될까?

방돌쇠

이렇게 추악한 일을 하면서 부끄럽지도 않아……?

방돌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이름은 내 거고 난 동의하지 않아.

밥 주러 온 촌민

하아……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다. 나도 이제 방법이 없구나.

밥 주러 온 촌민

네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이건 이미 결정된 일이고 변하지 않을 거야.

밥 주러 온 촌민

밥은 여기 둘 테니 생각이 정리되면 꼭 챙겨 먹어.


노족장

주대치, 오늘 날씨도 좋고 해도 좋은데 서둘러 일하지 않고 뭘 그렇게 어슬렁거리나?

수심에 찬 촌민

쟁기가 망가졌어요.

수심에 찬 촌민

아까 마을 동쪽에 있는 땅을 갈 때 땅 밑에 바위에 부딪히면서 크게 금이 가서……

노족장

우리 집 창고에 가서 찾아보게. 안 쓰는 쟁기가 있을 테니 가져가서 써.

수심에 찬 촌민

……

노족장

왜, 다른 일이 또 있나?

수심에 찬 촌민

족장님, 사실 쟁기 문제가 아니에요. 아까 부딪히면서 쟁기가 헛도는 바람에 오리지늄 동력기가 타버렸어요.

수심에 찬 촌민

다 제 탓입니다. 오리지늄 쟁기가 전부터 말을 잘 안 들었거든요. 전에 이동도시의 행상인이 마을을 지날 때 수리할 수 있다고 했는데, 돈이 아까워서 그냥 뒀거든요.

노족장

내가 진작 말했잖나. 손질을 게을리하고 계속 사용하면 못 쓴다고. 역시 중요한 시기에 일을 그르쳐 버렸구먼.

노족장

……

수심에 찬 촌민

제가…… 다른 방법을 찾아 볼게요.

노족장

자네가 무슨 방법을 찾겠나. 오리지늄 동력기가 어디 땅을 파면 나오겠나?

수심에 찬 촌민

도, 도저히 안 되면 제가 직접 갈게요. 예전에 조상님들도 오리지늄 농기구 없이 황무지를 개간하셨잖아요……

노족장

자네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지?

노족장

평탄한 곳이라면 모를까, 우리 마을의 밭은 대부분 비탈길에 있네. 게다가 수토가 유실되고 흙이 쌓여서 사람은 고사하고 버든비스트도 힘에 부칠 거야.

수심에 찬 촌민

저도 압니다……

노족장

자네 숙모가 지금쯤 집에 있을 테야. 가서 주행차를 꺼내 달라고 하게.

수심에 찬 촌민

족장님, 설마……

노족장

안에 보면 내장된 오리지늄 동력 장치가 있네. 성능은 좀 떨어지겠지만, 좀 만지면 이래저래 쓸 만할 거야.

수심에 찬 촌민

그건 작업반장이 족장님 다리 불편하신 거 보고 공사 마무리할 때 특별히 이동도시에서 보내온 거잖아요……

수심에 찬 촌민

겨울이 되면 계속 쓰셔야 하고요.

수심에 찬 촌민

혹시라도 제가…… 망가뜨리면……

노족장

이미 망가져 있네.

수심에 찬 촌민

예? 어쩌다가요?

노족장

……도시 사람들 물건은 익숙하지 않아서.

노족장

벌써 3월 말이야. 춘경추수이니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지.

노족장

그 차가 없다고 겨울에 내가 못 걷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지금 파종하지 않으면 겨울을 날 식량이 없을 걸세.

수심에 찬 촌민

그래도……

노족장

잔말 말고 어서 가 보게.

노족장

하아……

노족장

어라, 누군가? 거기 누구지?

노족장

늙어서 눈까지 침침해졌나?

젊은 검객은 조금 뒤로 물러나 담장 뒤에 몸을 숨겼다.

물을 나르러 오가는 마을 사람들이 도르래를 돌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치우바이는 우물가에 있는 노인을 한번 보고는, 바닥에 뿌려진 흙탕물과 뒤섞인 발자국에 눈길을 돌렸다.

산길은 늘 이렇다. 맑은 날이면 사람이 오가며 먼지가 휘날리고, 비가 내릴 때는 온통 진흙 천지다.

치우바이는 걸음을 멈추고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물어봐도 소용없는 질문들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한 가지 확인할 일이 있었다.


그녀는 작은 마당의 문을 열었다.

어제는 사람이 많아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마당은 아주 엉망이었다.

북쪽의 담장에는 구멍이 하나 뚫려 있고 흙이 얼룩덜룩하게 붙어 있는 게, 마치 앞니가 빠진 노인을 방불케 했다. 아마 며칠 전에 내린 폭우 때문일 것이다.


집 한가운데 있는 긴 의자는 검게 번들거리는 게 상당히 오래 쓴 것 같았다.

의자에는 허리 높이만 한 목재가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사냥꾼은 어깨로 목재의 가장자리를 누르면서 칼질을 하고 있었고, 바닥에는 나무 부스러기가 가득 쌓여 있었다.

치우바이는 그게 어제 사냥꾼이 지고 돌아온 목재라는 걸 알아챘다. 반으로 잘려져 있지만, 이미 어렴풋이 네모난 모양이 잡히기 시작했다.

사냥꾼

누구?

사냥꾼

치우바이 아가씨로군…… 어제 돌아간 게 아니었나……

사냥꾼

뭔가 잊은 거라도 있나?

치우바이

이 목재로 뭘 하시려는 건가요?

사냥꾼

음?

치우바이

목재요.

사냥꾼

아, 이, 이거는…… 활일세.

사냥꾼

그렇네, 활. 활을 새로 하나 만들까 해서 말이지. 이래 봬도 모선 마을에 오기 전에는 사냥꾼이었네. 이제 다시 그 일을 시작하려고 하네.

사냥꾼

최근 2년간 계속 흉작이 이어지며 밭에서 나는 작물도 점점 줄어들었네. 그래서 가끔 황야에 가서 샌드비스트를 잡아다가 비축 식량으로 쓰려 하네.

치우바이

건조하고 탄력이 없는 호두나무로 활을 만드나요?

사냥꾼

……아가씨는 아는 것도 참 많군. 그런데 이 외진 곳에는 좋은 삼나무가 자라지 않아서 말이지. 게다가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냥용인데 뭐 어떤가.

치우바이

저는 묘비를 만드시는 줄 알았는데요.

치우바이

돌쇠의 묘비 말이죠.

사냥꾼은 손에 든 칼을 의자에 내려놓았다.

남자의 눈빛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도리어 천천히 움직이며 힘껏 손을 비비고 입꼬리를 올렸다.

사냥꾼

아가씨도 다 알고 있었군.

사냥꾼

애초에 마을을 떠나지 않은 거였군……

치우바이

제가 괜한 생각을 했길 바랐어요.

사냥꾼

아가씨는 이 마을의 상황을 모르겠지만……

치우바이

저한테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치우바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치우바이

원래는 족장님을 바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다른 일이 더 신경 쓰이더군요.

치우바이

직접 묘비를 만들어서 자기 아들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 때, 그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싶었죠.

사냥꾼

……

사냥꾼

생각지도 못했어……

치우바이

당신은 돌쇠가 3년 전에 황야에서 죽었다고 생각했겠죠.

아니……

아니야.


안 돼……

동의할 수 없어.

돌쇠가 마을에 폐를 끼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야!

게다가 돌쇠가 죽었다고 누가 그러나?

방 씨, 내 말을 좀 들어 봐. 자네도 마을 상황을 잘 알잖아.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우리도 이러고 싶겠어?

돌쇠가 정말 살아있었다면 3년이나 지났는데 진작 돌아왔겠지.

자네는 지금 혼자 남았는데, 적어도 노후는 대비해야 할 거 아니야.

그렇게 먼 얘기는 둘째치더라도, 돌쇠의 이름을 쓰면 보상금도 자네 손에 들어올 거잖아. 자네가 일부분 챙기고, 나머지를 마을에 주면 되지……

자네 부자에게 주는 보상이라 생각해.


보상금이 내 손에 먼저 들어온다.

그 돈이 있으면 많은 곳에 갈 수 있겠지.

생각만 해도 우습다. 젊었을 때 사냥꾼으로 살았고, 황야를 열심히 누비며 온갖 부상과 질병에 시달려 지금은 그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힘들게 돈을 모아서 모선 마을에 땅을 샀고 이제 겨우 정착했는데, 결국 또 떠나게 되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든 아들을 찾아와야지.

찾을 수나 있을지, 돌아올 수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냥꾼

아가씨…… 아니, 협객, 돌쇠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걱정까지 해줘서 정말 고맙네. 하지만 그 뒷일은 신경 쓰지 말게.

사냥꾼

돌쇠는 전에 마을에서 사고를 치고 이제 겨우 집으로 돌아왔어. 계속 마을 사람과 등을 돌리면 우리 부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네……

사냥꾼

게다가 모레면 관청에서 조사원이 오지. 이럴 때일수록 일이 틀어지면 안 돼. 아니면 모선 마을 전체가 휘말릴 수도 있네……

치우바이

강남에서 북쪽 변경까지, 극악무도한 악행은 저도 많이 봤습니다.

치우바이

마을을 위해 어떻게든 돈을 구하려는 당신들을 저는 간섭할 생각도, 간섭할 이유도 없어요.

사냥꾼

그렇다면 다행이네……

사냥꾼

이번 일만 지나가면 돌쇠는 적어도 남은 생의 절반은 이 마을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어……

사냥꾼

내가 바라는 건 이게 다일세.

치우바이

하지만 마을에 남는다고 무조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사냥꾼

사람들이 돌쇠를 어떻게 하진 않을 것이네……

사냥꾼

어제, 이산묘에서 족장님과 온 마을 사람들이 조상의 상 앞에서 내게 약속했지……

치우바이

그저 말뿐인 약속이지 않나요?

사냥꾼

……

치우바이

잘 아시겠지만 방돌쇠 성격에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 예전에 두 사람의 땅을 지켰던 것처럼 본인 이름도 지키겠죠.

치우바이

아니면 계속 아이를 가둬둘 건가요?

치우바이

만에 하나, 걔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난동을 부려서 계획 자체가 틀어질 위기에 처하면, 마을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할까요?

사냥꾼

……

치우바이

악행은 일단 한번 고개를 들면, 쉽게 멈출 수 없습니다.

치우바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아실 겁니다.

사냥꾼

적어도 일단 모레까지는……

치우바이

당신은 아버지로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 같군요.

사냥꾼

아가씨, 뭘 하려는 건가?

치우바이

안심하세요. 저는 당신들을 방해하거나 고발할 생각은 없어요. 그럴 생각이었다면 방돌쇠를 데려오는 게 아니라 이미 관청으로 데려갔겠죠.

치우바이

하지만 제가 데려온 이상 저는 그 아이의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제가 도리어 아이를 해친 꼴이 되니까요.

치우바이

그래서 당분간 여기 머무를 겁니다.


거친 아이

……이것들은 대체 뭐 하는 버튼이지? 다 눌러 봤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네. 전에 그 녀석은 한 번 눌러서 바로 켰는데……

조급한 아이

됐어? 됐어?

거친 아이

뭐가 그리 급해! 지금 연구하고 있잖아.

조급한 아이

카메라가 뭔지도 모르면서 독차지하기는. 줘, 나도 좀 갖고 놀게.

거친 아이

너한테 주면 또 망가뜨릴 거잖아.

조급한 아이

그 안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거 다시 보고 싶단 말이야. 저번에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꺼졌잖아.

거친 아이

빼앗지 마!

거친 아이

안녕하세요, 족장님.

노족장

……

노족장

소평, 소안, 숨기지 말고 이리 꺼내 봐라.

노족장

이건 원래 내 방에 있던 거 아니냐? 누가 멋대로 만지랬느냐?

조급한 아이

이렇게 신기한 건 처음 봐서 궁금했어요……

노족장

볼 게 뭐 있다고? 이걸 어떻게 쓰는지는 아냐?

거친 아이

아까 우리가 켰어요!

노족장

켰다고?

거친 아이

네, 여기 있는 네모난 화면에 사람이 나타났어요!

조급한 아이

영화인가?

거친 아이

무지하긴. 영화는 이동도시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영상을 영사막에 비추는 거잖아. 근데 여기 안에 있던 사람은 우리 마을에 자주 오던 전달자 누나잖아?

노족장

그 아이, 혼자 온 게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