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숙명

정원에 들풀이 자라

미니 스토리브릿지2023-08-22

오랫동안 마을을 떠났던 방돌쇠를 마을 사람들은 극도로 경계했고, 소년을 치키기 위해 치우바이는 마을에 남기로 한다. 그리고 족장으로부터 과거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치우바이


분노한 촌민

방돌쇠! 대들보에서 뭐 하는 거야? 당장 내려와!

분노한 촌민

다른 데서 까부는 건 그렇다 쳐도 여기는 '이산묘'라고!

방돌쇠

싫어!

방돌쇠

마을이 이렇게나 큰데 꼭 이깟 절간을 우리 집 '삼무삼'으로 옮겨야 해? 이건 우리를 괴롭히는 거잖아. 주육, 차라리 당신네 집 땅으로 옮기지 그래?

분노한 촌민

어린놈이 뭘 안다고 그래? 이산묘는 천 년 넘은 모선 마을의 기맥을 지키는 곳이다. 터를 잡는 것도 다 법도가 있는 거라고.

분노한 촌민

마을 전체가 합의한 일인데 어디서 네 멋대로 구는 거야!

방돌쇠

웃기시네!

방돌쇠

예전에 '삼무삼'은 잡초조차 안 자라는 불모지였지. 왜 그때는 풍수지리가 좋다고 안 했는데? 왜, 우리 아빠가 오랫동안 공들여 땅을 일궈놓으니까, 이젠 풍수가 좋아졌나 봐?

방돌쇠

솔직히 우리 집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성씨가 다르니까 우리를 괴롭히려는 거잖아. 꿈도 꾸지 마!

방돌쇠

아빠는 몰라도 이 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방돌쇠

다 쓰러져 가는 절에서 풍작을 기원하려고? 이 몸이 오늘 절간을 박살 내서 다들 농사지을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 줄 테다!

분노한 촌민

안 돼……


치우바이

집에 오자마자 사람들이 찾아오는 경우는 빚을 잔뜩 진 노름꾼밖에 못 봤는데.

방돌쇠

……

치우바이

하지만 네가 한 말 중에 사실이 있긴 했네. 마을 사람들이 정말로 너를 싫어하는구나.

방돌쇠

그래서 돌아오기 싫다고 했잖아.

치우바이

근데 대체 이유가 뭐지?

작은 마당에 사람이 가득 들어섰다. 마을 사람들은 말도 걸지 않고 그저 치우바이와 방돌쇠를 둘러쌌다. 마치 두 사람이 신기한 짐승이라도 되는 듯, 절대 도망가지 못하게.

???

쿨럭, 쿨럭…… 좀 비켜 주게……

???

다들 왜 여기 모여 있나? 돌쇠 돌잔치 때도 이렇게 시끌벅적하지 않았는데……

한 남자가 사람들 속에서 비집고 나왔다. 남자는 마르고 키가 컸으며,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남자는 꽤 큰 목재를 등에 지고 있었고, 등은 허리에 찬 활처럼 굽어 있었다.

방돌쇠를 본 남자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시선을 피하더니 천천히 돌아섰다.

방돌쇠

아빠……

긴장한 촌민

사냥꾼……

긴장한 촌민

잊어버리진 않았겠지……

사냥꾼

내가 한 말은 절대 잊지 않아.

사냥꾼

그래도 3년 만에 돌아왔는데 일단 밥이라도 먹여야 하지 않겠나?

사냥꾼

다들 우선 밭으로 돌아가게. 우리 부자가 이따 확실하게 설명해 주지.

사냥꾼

안 그래도 밭일이 밀렸는데, 며칠만 더 지나면 춘분도 다 지나가겠군……

사냥꾼

……

방돌쇠

……

치우바이

오는 내내 종알거리더니, 아버지를 만나니까 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됐어?

방돌쇠

아빠…… 있었구나.

사냥꾼은 창백해진 입술을 쓱 닦고는 아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곧장 돌아서서 집에 들어가 지고 있던 목재를 벽에 세워두었다.

소년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고 치우바이는 칼자루로 소년을 툭 밀었다.

사냥꾼

아가씨, 앉게나. 아이를 데려오느라 고생이 많았군. 물이라도 따라주겠네.

치우바이

괜찮아요. 오랜만에 만났으니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치우바이

저는 마을이나 구경하고 올게요.

방돌쇠

내가 안내……

치우바이

너는 얌전히 여기 있어.


???

아가씨, 아가씨, 기다려 주게.

상냥한 노인

주육한테 들었는데, 늠름하고 씩씩한 여걸이 방돌쇠를 데려왔다길래 보러 왔네.

상냥한 노인

아가씨 옷차림을 보니 아마도……

치우바이

치우바이라고 합니다. 일개 강호인일 뿐입니다.

상냥한 노인

모선 마을은 주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마을이야. 이 늙은이 이름은 주순, 마을의 촌장이자 족장이지.

노족장

이 마을은 염국 서북쪽의 두메산골에 박혀 있어서 외지인이 거의 오지 않네.

치우바이

걱정하지 마세요. 전 그저 강호를 떠도는 사람이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노족장

내 말을 오해했군……

치우바이

우연히 저 아이를 만났는데, 혼자 있길래 길을 좀 돌아서 집에 데려다줬을 뿐이에요.

노족장

참으로 의협심이 강한 아가씨로군……

노족장

그래도 멀리서 온 손님인데 우리 마을은 가난해서 대접할 만한 게 없네…… 아가씨, 괜찮다면……

두 사람으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곳에는 우물이 있었다.

그러나 우물 위에 놓여 있던 나무통이 뭔가에 부딪혔는지, 도르래가 헛돌면서 나무통이 빠르게 우물 안으로 떨어졌다.

순간, 한 자루의 검이 손잡이에 끼면서 헛돌던 도르래는 멈췄다.

그리고 치우바이는 다시 나무통을 건져 올렸다.

치우바이

놀란 새끼 버든비스트가 부딪혔나 보네요……

노족장

주대치네 새끼 버든비스트인가……

노족장

어미 버든비스트가 난산으로 죽고 새끼만 남았거든. 어미가 없으니 새끼 때부터 성질을 길들이고 있었는데, 뭔가 자극받아서 뛰쳐나왔나 보군……

치우바이

다치지는 않았어요. 물을 마시다가 사레에 들려서 기절한 것 같아요.

노족장

저기, 아가씨는 어떻게 순식간에 우물까지 간 겐가? 내가 헛것을 보는 줄 알았구먼……

노족장

이게, 무공이라는 건가?

노족장

……

치우바이

우물이 흙탕물투성이네요.

노족장

아…… 지난주에 연거푸 폭우가 내린 바람에 진흙과 침전물이 아직 가라앉지 않아서 그렇네.

노족장

하아, 2년 전에는 가뭄이 크게 들어서 작물이 반 이상 말라 죽었지.

치우바이

그래서 마을에 우물이 이렇게 많은 거군요……

노족장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어떨 때는 비 한 방울도 안 내려주고, 또 어떨 때는 죽어라 퍼붓고.

노족장

아가씨는 어디에서 왔는가?

치우바이

옥문…… 쪽에서요.

노족장

아가씨 말에 강제 억양이 있는데……

치우바이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노족장

어쩐지…… 옥문 방향이면 북쪽으로 들어왔겠군. 남쪽으로 더 가면 토석류에 파괴된 치도가 보일 게야.

치우바이

참 어려운 시기네요.

목쉰 신음을 두 번 내더니 새끼 버든비스트가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여검객이 손을 놓자 버든비스트는 순식간에 길모퉁이로 사라졌고, 눈앞에는 시든 회화나무만 보였다.

벌써 3월 말인데 서북쪽에 있는 이 작은 마을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것 같다.

노족장

어려운 시기긴 하지. 아까 혼자 있는 돌쇠를 만났다고 했는데, 그 아이가 밖에서 고생을 많이 했겠구먼……

노족장

아가씨, 궁금한 게 있는데, 돌쇠 녀석은…… 바깥에서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건가?

치우바이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라 혼자 황야에서 길을 잃었더군요.

노족장

저 아이는 어려서부터 아주 유난이었지……

치우바이

족장님, 돌쇠에 대해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치우바이

마을 사람들이 왠지 돌쇠를 적대시하는 것 같던데……


사냥꾼

……

방돌쇠

……

한참 동안 침묵하던 남자는 방에 들어가더니, 잠시 뒤 짐승 가죽과 뼈 한 묶음을 들고나왔다.

사냥꾼

받아라.

방돌쇠

아빠, 이건 왜?

사냥꾼

집에 남은 게 이것밖에 없다. 막 봄이 돼서 황야에 짐승도 별로 없지만, 어느 정도 값어치는 될 테야. 다 가져가서 그 여인한테 보상해라.

방돌쇠

……

사냥꾼

왜, 부족하냐?

사냥꾼

더 줄 것도 없구나. 아니면 내가 가서 빌어보마…… 말은 잘 안 통할 것 같다만.

방돌쇠

그 여자는 빚쟁이가 아니야!

사냥꾼

네가 뭘 훔쳤거나 망가뜨린 게 아니면, 왜 이 멀리까지 널 데려온 거냐?

방돌쇠

……

방돌쇠

아빠 눈에는 내가 나쁜 짓만 하는 것처럼 보여?

사냥꾼

네가 한 나쁜 짓이 적지가 않으니……


당황한 촌민

세상에! 문이랑 대들보가…… 반은 주저앉았네……

당황한 촌민

수백 년 동안 이곳에서 우리를 지켜준 이산묘가 이렇게 무너지다니…… 불경이다, 불경이야!

분노한 촌민

아이고, 그래도 조상님의 상은 무사해서 다행이야. 용서는 나중에 구하고, 우선 범인부터 잡아 오자고.

당황한 촌민

맞다, 방돌쇠는? 왜 갑자기 안 보이지?

분노한 촌민

폭발할 때 녀석도 다쳤는지 피를 흘리며 절뚝절뚝 마을 밖으로 도망쳤어. 이렇게 많은 폭약을, 제길……

당황한 촌민

뭐?!

당황한 촌민

고작 땅 문제잖아, 잘 상의하면 될 것을. 이제 이걸 어쩌나……

분노한 촌민

됐어, 족장님께나 알려. 난 사냥꾼 집에 가 볼게……

당황한 촌민

방돌쇠가 마을 밖으로 도망쳤다며?

분노한 촌민

그렇게 심하게 다쳤으니 찾으라고 알려야 할 거 아니야!


치우바이

본인이 만든 폭약으로 절을 폭발시켰다고요?

치우바이

3년 전이면 겨우 11, 12살 아닌가요?

노족장

녀석의 아비는 원래 사냥꾼이었네. 가끔 수제 폭약을 만들어서 짐승의 둥지를 막곤 했지. 걔는 어려서부터 재능도 있고 대담하기까지 했으니, 아마 어깨너머로 몰래 배웠을 걸세.

치우바이

그건 저도 겪어봐서 압니다…… 정말 그 아이가 저지를 법한 일이네요.

치우바이

마을 입구에 있는 절이죠? 올 때 봤는 데 아주 특별하더군요. 안에 누구를 모신 건가요?

노족장

우리 모선 마을의 조상들일세.

노족장

그때…… 정확히 언제인지는 이 늙은이도 잘 모르겠지만, 대대로 전해진 이야기가 있지. 아마 몇백 년, 천 년쯤 됐으려나?

노족장

아무튼 그때는 사방이 다 산이어서 길도 없고 파울비스트도 날아들어 오지 못했네.

노족장

그런데 조상이 혼자서 호미 한 자루로 땅을 일구고 산을 파헤치면서 조금씩 지금의 마을이 생겨났지.

노족장

여기까지 오면서 아가씨도 봤겠지만, 주변 몇십 리는 온통 불모지뿐이잖나. 그런데 이런 궁핍한 산골에 마침 재앙도 피할 수 있고 작물도 키울 수 있는 땅이 생겨난 덕분에 백여 명 되는 우리가 먹고 살아가고 있는 걸세.

치우바이

호미 한 자루로 하늘로부터 살길을 찾으셨군요.

노족장

절 이름을 '이산묘'라고 지은 건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고, 그분의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서네.

노족장

이 절은 수백 년 동안 모선 마을을 안전하게 지켜줬지.

노족장

나무와 흙으로 된 낡은 집이 날씨나 수확에 영향 줄 수 없다는 것쯤은 다들 잘 아네.

노족장

단지 모선 마을 사람들은 대대로 이렇게 살아왔고,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면서 그저 평온하길 바라는 거지……


방돌쇠

아빠, 화낼 거면 그냥 화내.

방돌쇠

계속 쳐다보니까 더 무섭잖아.

사냥꾼

……키가 컸구나, 많이는 아니지만.

사냥꾼

요 몇 년 동안 바깥에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지?

방돌쇠

왜 하필 그 얘기를……

사냥꾼

살아있으면 됐다, 그거면 됐어…… 그냥, 걱정돼서……

사냥꾼

어떻게 돌아온 거냐?

방돌쇠

치도를 따라 걸어서 왔어. 가끔 카라반을 만나서 버든비스트나 차를 얻어 타기도 했고.

사냥꾼

오는 데 며칠 걸리더냐?

방돌쇠

한 달 정도.

사냥꾼

그렇게 멀리까지 갔느냐……

방돌쇠

아빠……

방돌쇠

그동안 아빤……

사냥꾼

밥은 먹고 살았다.

사냥꾼

요 몇 년간 어찌 된 일인지 수확이 갈수록 나빠졌어. 처음에는 해충 때문에, 그 뒤로는 가뭄이 들어서 비도 한 방울 안 떨어지고 우물을 파도 물이 나오질 않더구나.

사냥꾼

올해 춘분이 되어서 파종해야 하는 시기가 왔는데, 하필이면 또 연거푸 폭우가 내렸으니……

사냥꾼

이 땅이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하늘이 이곳만 가만두질 않는 건지……

사냥꾼

아니면 이산묘에 모신 조상들이 더는 마을을 지켜주고 싶지 않은 건지……

방돌쇠

내가 그 망할 절간을 날려버려서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사냥꾼

그런 뜻이 아니다……

방돌쇠

무능한 놈들만 그렇게 생각해.

방돌쇠

아빠가 예전에 말했잖아. “농사는 손에 든 도구와 물과 땅을 돌보는 능력으로 하는 거다.”라고.

방돌쇠

절간에 있는 조각상이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우리 대신 밀이라도 베어준대?

사냥꾼

그런 이치가 아니다…… 너는 좀 더 침착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찌 됐든 우리가 먼저 잘못했으니……

방돌쇠

아빠, 마을 사람들은 아빠를 겁쟁이라고 생각해서 괴롭히는 거라고!

방돌쇠

무슨 산이 밭을 조금씩 갉아먹는다는 둥, 토석류가 언젠가는 절간을 묻어버릴 거라는 둥, 계속 핑계만 대고 있잖아. 옮기고 싶으면 옮기고 싶다고 말하면 될 거 아니야. 그런데 왜 주육네 경사진 땅으로 안 옮기는데? 그쪽은 땅도 넓고 농사도 안 지으면서.

방돌쇠

마을 사람들은 우리 성씨가 다르다고 괜히 괴롭히는 거야!

사냥꾼

하아, 그 얘기는 그만하자꾸나……


치우바이

그랬군요. 그래서 방돌쇠를 본 마을 사람 반응이 유별났던 거네요.

노족장

……

노족장

다는 아닐세.

노족장

우리는 그 아이가……

노족장

그때 돌쇠는 절을 폭발시키고 다친 몸으로 황야로…… 도망쳤거든.

치우바이

당신들은, 찾으러 가지 않은 건가요?

노족장

찾아봤지.

노족장

밤새 사람들을 모아 며칠 동안 주변 십여 리를 다 찾아봤지만 못 찾았네.

노족장

강남은 마을 어디나 봄 경치가 아름답다지?

노족장

하지만 우리 이 산골짜기는 눈에 띄는 색이라곤 회색빛이 도는 누런색일 뿐, 그나마 겨울은 온통 하얀색이야. 사람이 사는 곳은 무슨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전부 가려졌지.

노족장

아직도 야수들이 점령한 곳도 적지 않네. 애당초 길이 험한 데다 가끔은 도망쳐 온 유랑 도적들도 만나게 되고……

노족장

그 어린 녀석이 크게 다치기까지 했으니……

치우바이

지금은 펄펄 뛰어다니는 걸 보니 생명력은 강한 것 같네요.

노족장

무사하면 됐어. 그럼 됐네.

치우바이

족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노족장

말해보게, 아가씨.

치우바이

저는 우연히 방돌쇠를 만나 집까지 데려다준 겁니다. 원래는 마을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되겠지만.

치우바이

아이를 데려온 이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족장

……그렇지.

치우바이

제가 사람을 잘 본다고 자부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와 한동안 지내보니 어느 정도는 보이더군요.

치우바이

조금은 짓궂고 제멋대로 굴기는 하지만, 나쁜 아이는 아닙니다……

치우바이

아이를 너무 매정하게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노족장

하아, 아가씨가 무슨 말씀을 하나 했네……

노족장

안심하게. 우리 모선 마을이 가난하긴 해도 다들 경우 있는 사람들이야.

노족장

원망이라…… 정말 따지고 든다면 누가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나? 이 산을 원망해야 하겠나, 하늘을 원망해야 하겠나, 아니면……

노족장

겨우 열 살 남짓한 아이를 원망해야 하겠나?

노족장

아가씨가 말한 것처럼 지금은 어려운 시기일세. 절을 옮긴 건 단지 마을의 생활이 나아지길 바라서였고.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때 사람들의 생각이 확실히 짧았던 거 같네.

노족장

애초에 내가 사냥꾼 일가에 먼저 미안함을 느꼈으니……

치우바이

족장님은 현명하신 분이네요.

치우바이

저한테 해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방돌쇠가 잘못한 건 사실이니까요. 3년 동안 밖에서 고생을 많이 했을 거예요. 그런데도 아직 철이 안 들었으면 혼낼 부분은 혼내야죠.

치우바이

실수도 해 보고 고생도 해 보고, 배우고 경험도 해 봐야 조금이라도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으니까요.

노족장

아가씨는 뭔가 삶을 깨달은 사람 같군.

치우바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치우바이

족장님께 말씀드리고 나니 마음이 놓이네요.

노족장

그래……


방돌쇠

절간은 내가 폭발시켰어. 3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나를 원망한다면 얼마든지 찾아오라고 해.

방돌쇠

지금이라도 똑같이 폭발시킬 거니까.

사냥꾼

그래, 폭발시켜라. 네 마음대로 다 부숴라!

사냥꾼

3년 전에도 능력이 대단했으니 지금은 더 대단하겠지.

사냥꾼

그래서, 여긴 왜 돌아온 거냐? 다시 무너뜨리고 또 도망가려는 거냐?

방돌쇠

……

방돌쇠

알았어, 이제 말 안 할게.

사냥꾼

에휴……

방돌쇠

아빠, 이 목재는 왜 가져 왔어?

사냥꾼

……

사냥꾼

……관을 짜려고.

사냥꾼

나도 이제 몸이 예전 같지 않구나. 관을 짜려고 모아둔 재료는 저번에 이산묘를 수리하느라 다 갖다 썼다.

사냥꾼

네 생사도 모르는데, 내 몸 하나 뉠 곳은 만들어 놔야지.

방돌쇠

그런 재수 없는 소리는 하지 마……

사냥꾼

그때 난 꼬박 한 달 동안 너를 찾아다녔다……

방돌쇠

나는 다쳐서 치도 근처까지 가서 기절했어……

사냥꾼

그래도 똑똑하구나.

방돌쇠

그러다 토산물을 거래하는 카라반이 나를 발견했고 나를 여물과 함께 버든비스트에 태웠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이동도시였어.

사냥꾼

맹수가 아닌 좋은 사람을 만나서 참 다행이구나.

사냥꾼

상처가 다 나은 후에는 어떻게 지냈니?

방돌쇠

나, 나는 꼭 성공해서 돌아오고 싶었어.

방돌쇠

아빠, 내가 이동도시에서 뭘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사냥꾼

네가 정말 뭐라도 해냈다면, 검객에게 잡혀 집까지 오진 않았겠지?

방돌쇠

……

사냥꾼

내가 전에도 말했잖느냐, 모선 마을처럼 작은 곳에서조차 얌전히 있을 수 없는 네가, 큰 마을이나 이동도시에 가봤자 고생할 게 뻔하다고. 목숨만 붙어 있어도 천운이야.

방돌쇠

……

사냥꾼

이 아비는 이동도시에 안 가봐서 모르겠다만, 나중에 네가 들려주고 싶을 때 얘기해라.

방돌쇠

……알았어.

사냥꾼

이번에도 또 소란 피울 거냐?

방돌쇠

남들이 우리를 안 건드리면 나도 가만있을게.

사냥꾼

고집은 여전하구나……

사냥꾼

네가 사라진 뒤 족장님이 온 마을 사람을 동원해서 며칠 동안 함께 널 찾아다녔다.

사냥꾼

나 혼자 여기 살고 있지만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다. '삼무삼'에도 지금까지 잘 농사짓고 있잖느냐?

방돌쇠

그건 사람들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는 거겠지……

사냥꾼

이 아비랑 약속 하나만 해다오……

사냥꾼

얌전히 지내라…… 소란은 그만 피우고……

방돌쇠

……

방돌쇠

약속할게.


방돌쇠

이제 떠날 거야? 강남으로?

치우바이

나도 가야 할 곳이 있어. 널 데려다주느라 내 일정도 상당히 지연됐거든.

방돌쇠

조금 더 늦어진다고 큰일 나는 거 아니잖아. 날도 어두워졌는데 며칠 더 쉬다 가. 나한테 무공도 좀 가르쳐주고!

치우바이

여기까지 오면서 아직 나한테 덜 혼났구나?

방돌쇠

……

방돌쇠

아빠, 우리……

사냥꾼

아가씨, 아들을 데려다줘서 고맙네. 집에 뭐 줄 것도 없고……

치우바이

아닙니다.

사냥꾼

급한 거 같으니 아가씨를 붙잡지는 않겠네.

치우바이

방돌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헤어지기 전에 몇 가지 전해둘 게 있어.

치우바이

강호는 위험한 곳이야. 볼꼴 못 볼 꼴 다 본 것 같은데, 집에 왔으면 이제 얌전히 있어. 사고는 그만 치고.

방돌쇠

쳇, 어디서 지내든 난 성공할 수 있어. 언젠가 누나도 강남에서 이 협객 방돌쇠의 명성을 듣게 될 거야.

치우바이

네가 나쁜 짓을 하고 다닌다는 소리만 안 들었으면 좋겠네.

치우바이

또 사고 치면 나처럼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진 못할 수도 있어.

방돌쇠

말이, 잘 통한다고……? 흥, 알았으니까 그만 가.

방돌쇠

맞다, 협객들이 작별할 때 자주 하는 말해 주면 안 돼? 왜 무협 소설에 자주 나오는 거 있잖아……

방돌쇠

“강호에서, 다시 만나세.”

치우바이

강호에서, 다시 만나세.


노족장

아가씨, 내가 배웅해 주겠네.

치우바이

괜찮아요.

노족장

아닐세.

노족장

마을 길을 정비 안 한 지 오래되어서 울퉁불퉁하니, 마을 입구까지 바래다주겠네.

치우바이는 빠르게 걸었고 노인도 서둘러 뒤따랐다. 두 사람은 더는 대화하지 않았다.

땅거미가 서서히 내려앉았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강호인들은 늘 밤길을 재촉한다.

마을 입구에 새로 세워진 무덤은 잔뜩 움츠러든 듯, 땅거미 속세 섞여서 잘 보이지 않았다.


노족장

주사, 다들 모였나?

구경나온 촌민

족장님, 지금 세고 있어요……

구경나온 촌민

대원은 오늘 밭일하다가 쟁기에 발을 다쳐서 못 오고, 다른 사람은 다 왔습니다.

방돌쇠

아빠, 마을 사람이 다 왔네. 뭔가 시끌벅적한데?

방돌쇠

우리는 주 씨가 아니라면서 전에 절간에서 마을 회의할 때는 우릴 부르지도 않았잖아.

사냥꾼

하아……

사냥꾼

하지만 오늘 일은 우리와 관련이 있으니……

방돌쇠

……

3년 후, 방돌쇠는 다시 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폭약을 가져온 게 아니라 곁에 많이 늙어버린 아버지가 있었다.

당시 방돌쇠가 폭파해 무너뜨린 벽은 다시 쌓아졌고, 한가운데 산을 개척하는 선조들의 조각상도 수리되었다. 하지만, 조각상은 대충 수리된 턱에 조금은 우스워 보였고, 이에 방돌쇠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바닥은 일부 부서져 있었고 천장의 너덜너덜해진 대들보에는 벌레들이 겹겹이 둥지를 틀어 오래된 목재와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날이 너무 어두워서일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절이 낡은 모습에서 새로워진 건지, 아니면 새롭게 지었다가 다시 낡아진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노족장

……

노족장

이렇게 됐네.

노족장

아까 방돌쇠가 모두에게 사과도 했고, 당시엔 이 아이도 너무 어렸지. 그리고 3년 동안 사냥꾼도 이산묘의 재건을 위해 온 힘을 다했으니, 이번 일은 이대로 넘기세.

구경나온 촌민

족장님,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죠.

방돌쇠

……

노족장

사냥꾼, 자네가 우리 모선 마을에 온 지 얼마나 됐지?

사냥꾼

올해가 지나면 21년입니다.

노족장

자네 가족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성이 다르지만, 우리 마을 여자와 결혼했네. 오랜 세월 함께 지냈으니 이미 우리 가족이나 마찬가지지.

노족장

예전에 있었던 마찰이나 오해는 이제 다 지나간 일이네.

노족장

오늘부터 우리 종족은 정식으로 자네 식구를 받아들이겠네. 조상님들도 자네 부자의 평안과 유복을 빌어주실 거네.

노족장

원한다면 방돌쇠의 성을 주 씨로 바꿔도 좋네.

방돌쇠

뭐?!

방돌쇠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방돌쇠

싫어. 나는 지금 성이 좋아. 멀쩡한 성을 왜 바꿔?

방돌쇠

족장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해.

노족장

아무튼…… 우리는 한 가족이니 어려움도 함께 헤쳐 나가야 하네.

노족장

오늘 마을 사람을 모두 모이라고 한 건 한 가지 발표할 일이 있기 때문일세.

노족장

돌쇠야, 이 마을을 위해…… 한 번만 죽은 사람이 되어주면 안 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