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랩소디
이남의 편지를 받고 아카후알라로 돌아오게 된 유넥티스는 고향을 도와 '건축'에 참여한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켜만 보겠다고 말했던 대제사장도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주마마, 돌아왔구나.
네 편지는 읽었어. 그런데 파디샤가 두린족을 발견한 일 같은 건 가비알을 불러서 해결하는 편이 더 좋지 않아?
그렇게까지 심각한 일은 아냐. 적어도 지금은.
내가 두린족이 만든 술을 들고 궁전에 갔었거든, 첩자들 때문에 생겼던 파디샤의 의심병을 그 덕분에 겨우겨우 없앨 수 있었지. 지금은 그냥 아카후알라에 술 잘 만들고 잘 마시는 주정뱅이 한 무리가 늘었다고만 생각하더라.
그렇다면 해결된 게 아니냐?
대제사장도 왔구나.
내가 폭발로 날아갔다고 해서 안 돌아온 적이 있기나 했던가?
또 날아갔었어?
대제사장 할아범, 일단 말 좀 끊지 마.
들었니? 이남, 말 끊지 말거라! 문제는 이미 해결되지 않았느냐?
자기가 먼저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 하지 않았어?
……됐다.
파디샤는 술을 마시고 엄청 좋아했어. 문제는 너무 즐거운 나머지 붓을 들어 “아카후알라에 건물을 지어라. 지금같이 '무인구역'처럼 있다면 행성 전체에도 부끄럽지 않겠느냐.”라고 해 버린 거야.
두린족은 지금 자기네 새 마을을 짓는 데 급급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거든. 그래서 지금 설계를 부탁할 사람들은 너희뿐이야. 어때, 할 수 있겠어?
주마마?
호수 쪽에 엄청 아름답게 생긴 철 구조물이 있어……
아, 호수에 있는 강철 모래성을 말하는 거구나.
저건 저번에 스티치가 돌아와서 지은 뉴 쎄루에르차 모형이야. 두린족들 모두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 지금은 저걸 토대로 새로운 마을을 짓고 있지.
……대단해.
확실히 대단하긴 하지. 그러니까 저들의 이웃으로서, 우린 더더욱 네 도움이 필요해.
티아카우들은 뭐라고 했어?
“크게!”랑 “높게!” 말곤 별말 안 하던데.
크게 짓자는 쪽과 높게 짓자는 쪽끼리 싸우더라고.
그래서 결론은?
결론이 안 났어.
그러니까 주마마, 티아카우의 마을이 두린족의 마을과 경쟁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전부 너한테 달렸어.
너도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많은 신문물을 배우고 왔을 거 아냐? 로도스 아일랜드에 다녀온 이후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던데.
나는 어떤가?
너? 넌 지금이 제일 좋아. 너도 할 생각 있으면 와서 도와줘, 근데 뭐 다들 네 도움은 기대도 안 했으니까 딱히 안 도와줘도 상관은 없지만.
아가씨, 이 녀석 말하는 것 좀 보게나!
아가씨? 주마마? 오퍼레이터 유넥티스?
유넥티스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뚫어져라 호수의 '뉴 쎄루에르차'를 바라볼 뿐. 그녀가 일종의 감상에 젖은 것인지, 마음속의 두근거림을 진정시키고 있는 것인지, 그것과 '경쟁'할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모두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흥. 기대 안 한 거면 안 한 거지. 그럼 나도 이번엔 신경 안 쓰겠네! 자네들끼리 알아서 하게나, 나중에 망쳐도 날 찾아오지 말고!
며칠 후
대제사장? 왜 여기 있어? 주마마를 도와서 새 마을을 설계하려던 거 아니었어?
말했지 않나, 이번엔 아가씨 혼자서 하게 두고 난 신경 안 쓸 거라고. 자네 기억력이 나쁘구먼!
당신 속이 좁은 거겠지.
자기가 뱉은 말을 지키는 거라네.
그나저나 며칠이나 지났는데, 주마마는 어디에 있나?
걱정되면 직접 가 보면 될 거 아냐.
무슨 말인가? 아가씨가 날 대제사장 할아범이라고 부르는 만큼, 나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지!
그럼 주마마가 무슨 마을을 만들 생각인지는 알아?
……
어, 어떤 걸까나?
풉.
이남, 현재 아카후알라에 있는 자원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공사는 어느 정도지?
……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니 식은땀부터 나네. 일단 묻겠는데, 넌 어느 정도를 원해?
엄청 커야 해.
또?
엄청 높아야 해.
또?
……돌아가서 좀 더 생각해 볼게.
자네도 답을 못들은 거나 마찬가지잖나!
아무튼 크고 높아야 한다. 그게 주마마가 말한 거야.
난 이미 자재 수집을 시작했어. 너도 뭐라도 돕는 게 어때?
난 신경 안 쓰겠다니깐 글쎄.
(웃음) 그럼 말고.
며칠 후
좋은 아침.
대제사장? 좋은 아침. 목욕하러 온 거야?
아니, 그냥 뭐 좀 물어보려고 왔다. 최근에 아가씨가 널 찾아오지 않았느냐?
주마마 말이야? 확실히 온 적 있어.
상태가 어땠느냐? 이남이 주마마의 설계를 보고 비현실적이라고 하진 않았나? 그래서 아가씨가 초점 없는 두 눈동자로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다든가?
그러진 않았는데……
그럼 왜 널 찾아온 게냐?
크로크, 물어볼 게 있어. 두린족은 기술 수준이 이렇게나 높은데, 왜 이동도시를 짓지 않는 거야?
이동도시? 《기담괴론》에 나오는 밑에 바퀴가 달려서 여기저기 이동하고, 적을 만나면 인간형 로봇으로 변신하는 그 괴물 말하는 거야?
그래그래, 바로 그거.
잠깐 생각 좀 해 보고…… 그러게, 왜 그럴까?
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지하의 철로가 너무 좁아서?
모두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게 핵심적인 이유는 아닐 것 같은데…… 좀 더 생각해 볼게…… 설마 돈이 안 돼서? 아니, 도시가 변신한다니 얼마나 멋져. 모두 그런 데에 돈을 안 쓸 리는 없고……
분명 변신하는 타이밍에 모두가 도시 안에 있어서 변신 장면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까 그런 걸 거야.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그래 맞아는 무슨, 지하에 있으니까 재앙이 안 오는 게 아니냐?
재앙?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지상에서 돌아온 사람이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너희 두린족과 티아카우족은 엉뚱하다는 면에선 정말 막상막하구나……
잠깐, 아가씨는 이동도시를 지을 생각인 겐가?! 날 내버려 두고!
이남한테 들었는데, 대제사장이 먼저 주마마를 돕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며?
크흠! 그건 자네와 상관없는 일이네!
만약 정말로 이동도시를 지을 생각이라면 할 일이 너무나도 많지 않나. 저렇게 방 안에만 있는다고 이동도시가 저절로 나타나진 않을 텐데.
형, 요즘 전자동 기계톱을 너무 오래 쓴 것 같지 않아? 신체 단련 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유지, 전에는 나더러 잊지 말고 휴식을 취하라더니만…… 잠깐, 저게 뭐야, 뭔데 갑자기 '기계툽' 밑에서 나타난 거지?
'기계톱'이야……
아니, 대제사장이다!
유지, 방금 너 나보다도 더 횡설수설했던 거 알아? 어떻게 그 두 단어를 헷갈릴 수 있는 거냐?
날 따라 해 봐, '기' '계' '툽'…… '대' '제' '사' '장'……
내 말은……
아마 날 말하는 거겠지.
우왓, 정말로 대제사장이 나타나다니. 오랜만이야.
오랜만이다. 듣자하니 어제 아가씨가 너흴 불렀다고?
그래……
아닌데!
아니라고?
우린 주마마를 본 적도 없어.
그럼 어제 너희는 대체 누구 좋으라고 나무를 벤 거냐?
어……
날 속일 생각하지 마라. 너희가 주마마와 수상쩍게 접선한 걸 목격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어제 주마마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했느냐?
우오오오오오! '이동두시'라니!
일단 먼저 나무를 베어야 해.
나무 베기라면 우리가 할 수 있어. 무슨 나무가 필요한데?
굵을수록, 무거운 걸 잘 견디는 녀석일수록 더 좋아.
그리고 이번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 특히나 두린족한테는 절대.
왜?
음…… 별로 기뻐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이 얘기는 아무래도 내가 두린족한테 직접 말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흥, 역시 내 예상대로인가. 그녀는 분명 이동도시를 지을 생각이다.
하지만 무게를 잘 견디는 목재는 대체 뭐지? 설마 이동도시를 나무로 짓겠다는 게냐?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구먼.
게다가 이번 일이 두린족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그 녀석들은 애초에 이동도시를 지을 생각조차 없지 않나.
잠깐…… 이남이 그랬었지, 아가씨의 설계를 가지고 두린족의 마을과 경쟁을 시키겠다고.
이동도시라면 당연히 지상에 고정된 건축물보다는 훨씬 대단한 물건이겠지만, 티아카우들이 만들어 낸 물건이라면 외관상으로는 스티치 그 꼬맹이가 만든 것에도 비교 못 할 정도로 밀릴 거야……
설마 아가씨는 호수 옆에 있는 그 모형을 이동 플랫폼 위에 옮겨놓을 생각은 아니겠지…… 아니 설마, 그건 미친 짓이야. 아무리 아가씨라도 그 정도는 아니겠지……
하지만 그걸 정말로 해 버린다면……
아니야, 내가 말려야 해. 이러다간 정말로 큰일 나겠어!
(하품) 설계도 그리는 데 너무 몰두해서 내가 이상한 환각이라도 보고 있는 건가……
누가 환각이라는 거냐, 꼬맹아!
아카후알라로 돌아간 거 아니었어?
무슨 상관인가. 신경 쓰는 게 많으면 대머리가 된다네.
이동도시를 짓는다고? 그 열대우림에서?
설계도는? 보여 줘 봐.
여기.
(작은 목소리로) 아가씨, 부디 날 탓하지 말게. 아가씨가 예전에 그렸던 연습작을 좀 가져왔어. 이것도 모두가 좋으라고 하는 거니까.
꽤 표준적이잖아, 언제 이런 걸 배운 거지……
……응?
한 가지 물어보겠는데, 여기 있는 이 굵은 파이프는 뭐야?
게다가 주먹처럼 생긴 이 물건은 또 뭐고?
그건 대포 포신과 기계 팔이고, 여기 양쪽 부분은 미사일 발사대라네.
……
거주 구역은 어딨어? 사람은 어디에 살게 할 생각이야?
대포 밑과 창고, 그리고 조종실. 대포가 잔뜩 있으니까, 주로 그 밑에 살게 할 생각일 거네.
……진심으로 물은 건 아닌데.
나도 자네 마음 알아.
그나마 그녀가 상업 시설과 교통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려를 했다는 사실에 그만 감동해서 눈물이 다 날 것 같네……
그건 일단 제쳐 두게, 스티치. 아무튼, 상황이 이렇게 돼서 자네한테 허락을 구하러 온 거야.
그냥 아예 아가씨가 자네 설계를 베끼도록 해 주면 안 되나?
그러니까, 유넥티스로 하여금 내 설계와 똑같은 마을 하나를 또 짓게 하자는 거지, 심지어 그걸 이동도시 위에 구현해서?
허락하기 힘든 일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스티치……
그래, 좋아.
뭐?
내 디자인에는 원래 아카후알라 스타일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었어. 설계 당시에도 두린족과 티아카우가 함께 생활할 것을 고려했었으니까.
유넥티스만 좋다면 마음대로 하라고 해. 난 유넥티스가 어떤 방식으로 내 설계를 이동도시 위에 구현할지 꽤 궁금하거든.
(작은 목소리로) 난 자네가 실제로 보고 쓰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네.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네. 분명 이동도시를 짓겠다고 했으면서 왜 마지막에 나온 결과물은 슈퍼 전투 요새가 된 거야?
가자, 주마마. 가서 뭐 좀 사오자고.
……돌아갈래.
주마마, 이건 네가 계속 꿈꿔왔던 이동도시를 짓는 첫걸음이잖나. 그런데 왜 별로 기뻐 보이지 않는 겐가?
……
처음엔 나도 기뻤어. 이렇게 하면 내 꿈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내가 틀렸어.
내 기억 속에서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던 그 장면, 아니, 내가 원했던 건…… 내 눈앞을 천천히 지나가는 거대한 강철 피조물이었어.
강철로 만들어진 벽은 폭포만큼이나 높고, 금속의 반짝임은 햇빛보다도 눈이 부시지. 그것이 움직이면 오랜 세월을 살아온 고목조차 한낱 톱밥으로 변해 버릴 거야……
그건 절대적인 힘, 절대적인 강력함을 갖고 있어야 해. 이렇게나…… 평범한 게 아니야.
알겠다. 이 사람이 추구하고 있는 건 아름다움이 아니라 힘이야.
바로 그거라네.
하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봤을 땐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는데.
응? 주마마는 그저 로도스 아일랜드에 있는 로봇이랑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냐. 언니 동생 하는 게 얼마나 귀여운지.
가볍게 부른 건 아니란 느낌인데……
스티치, 신체검사 시간이다! 내가 들어갈까 아니면 스스로 기어나올래?
가가가가가비알?!
내가 스스로 나갈 테니까 오오오오지 마!
며칠 후
아무튼, 아가씨가 두린족 마을을 본떠서 마을 하나를 만들 걸세. 그리고 그 마을을 이동도시 위에 옮길 생각이지.
……
하아, 어차피 두린족의 문제는 조만간 탄로 날 거였으니, 내친김에 일을 한 번에 해치우는 것도 나쁘진 않아. 하지만 너무 눈에 띈단 말이지.
이걸 어떻게든 포장할 생각을 해 보자. 거기에 파디샤에게 위기감을 줘서 우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면 더 좋고……
이남, 내가 한마디 하겠네. 아미르라는 자리만 놓고 보면 아무리 가비알이라도 자네 만큼은 못할 것 같네.
그건 칭찬으로 들을게.
그나저나 넌 어떻게 그렇게나 자세히 아는 거야? 결국 그새를 못 참고 그녀를 보러 간 건가?
헛소리하지 말게. 이건 모두 내가 조사해서 나온 것들일세.
어쨌든 주마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된 이상, 이제부턴 그녀의 뒤처리를 잘 해줘야겠네. 대제사장, 너도 용건이 없으면 이만 먼저 돌아가.
흥, 내가 자네한테 도움을 청하려고 온 줄 알아? 틀렸어, 난 오히려 자넬 돕기 위해서 온 걸세.
따라오게.
광맥? 이런 데도 알아?
예전에 내가 여기 살았었네. 나중엔 이곳에 지질적인 변화가 생겨서 결국 이렇게 동굴이 되어버렸지만.
어쩐지 주마마가 항상 구경도 못했던 금속 재료들을 어디선가 가져오더라니.
거대 못난이도 바로 여기서 탄생했지. 나중에는 아가씨가 아카후알라를 떠나기로 결심하면서부터 이곳도 자연스럽게 쓰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왜 날 여기로 데려온 거야?
내가 생각한 방법은 이것이네. 자네가 '우연히' 이 광맥을 발견하고, 이곳을 파디샤에게 넘기는 거지. 이 정도면 이동도시 건설 허가를 받아 낼 수 있을 걸세.
그러면 너만 손해가 막심한 거 아냐? 내 원래 계획은 이동도시를 두린족의 양조장으로 위장시키는 거였는데, 그 파디샤라면 분명 두 팔 벌려 환영할 거야.
……
됐네, 나도 화내지 않겠어.
그래도 감사하게 생각해. 지금이야 못 쓴다지만, 나중에는 분명 쓸 일이 있겠지.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물어보게.
나도 나름 특이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봐왔는데, 너도 그들 못지않게 비밀이 많은 것 같거든.
그런데 어째서 어느 날 갑자기 주마마 곁에 나타나서는,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 생활해 온데다가, 심지어 요즘엔 주마마의 뒷바라지까지 하고 있어?
어째서?
그건 보통 주마마가 자신에게 물어봤던 것인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으니 막상 대제사장은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주마마가 이 열대 우림에서 가장 먼저 너트를 잡은 사람이라서?
아니면 자신도 사실은 뼛속부터 기계광이라서?
아니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고독하게 지낸 탓에, 같이 즐겁게 지낼 재밌는 사람이 필요해서?
……
왜냐하면, 거대 못난이를 연구할 당시 아가씨가 내게 말했거든……
“할아범. 우리가 이 기계를 다 만들고 나면, 할아범이 이걸 조종하는 거야. 어때?”
그 이야기 마음에 드는걸.
나도 마찬가지일세.
그럼 넌 더더욱 그녀를 위해서라도 설계를 손봐 줘야 하는 거 아냐?
하, 이미 신경 끄겠다고 말을 꺼냈는데 어떻게 다시 주워담으란 말이냐. 게다가 아가씨도 이젠 홀로서기를 해 볼 때가 됐어.
혹시 화난 게 다 연기였던 거야?
쓸데없는 소리……
그래서 연기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그야 당연히……
자넨 정말 못돼먹었네. 하긴, 그러니까 아미르에 어울리는 인재겠지.
알았어, 농담은 그만할게. 난 그저 진심으로 네가 주마마를 도와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이제 곧 시공에 들어갈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봐서, 이번 한 번만 봐주도록 하겠네.
없어?
없어. 방 안엔 없는 모양이군.
유지랑 유타는? 그 녀석들이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이웃들 말하는 걸 들어 보니, 걔네도 아침 일찍 나갔다던데.
어이, 자네. 주마마랑 유지, 유타가 어디 갔는지 혹시 아나?
주마마…… 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할 생각인 거지?
내 기억상 여기는……
대제사장 할아범, 그리고 이남? 여긴 어쩐 일이야?
그야 당연히 네가 걱정돼서…… 크흠, 크흠!
그나저나 방호복은 왜 입고 있는 게냐? 그리고 너희가 올라온 방향에 있는 저건 대체……
쎄루에르차의 폐허야.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겐가?
연기가 완전히 걷히자, 대제사장은 유넥티스 뒤에 있는 차에 쌓인 내용물을 보았다.
쎄루에르차의 폐허에 가서…… 쓰레기를 주워온 게야?
대제사장 할아범, 이건 쓰레기 같은 게 아냐! 봐, 이건 두린족의 문틀이라고, 내가 폐허 아래에서 겨우겨우 꺼내온 거야!
그리고 여기 이건 그레이트 아쿠아핏 미끄럼틀의 일부분이야. 미끄럼틀 전부를 뜯어올 수는 없어서, 가장 디자인이 뛰어난 아랫부분만 잘라서 가져왔지……
그게 쓰레기 줍는 거랑 뭐가 다르냐! 난 네가 스티치가 설계한 뉴 쎄루에르차를 이동 플랫폼 위에 옮겨 놓으려는 줄로만 알았지!
응? 내가 왜? 처음부터 경쟁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두린족이랑 똑같은 걸 만들면 어떻게 경쟁이 되겠어?
모방한 걸 보고 두린족들이 화낼까 봐 걱정한 게 아니었나?
그야 난 지금 쎄루에르차의 폐허에 있잖아. 여긴 이미 폐허가 됐지만, 예전엔 두린족들의 집이었으니까.
근데 나중에 디컬처한테 물어보니까 마음대로 가져가도 괜찮다고 하더라고.
그럼 유지랑 유타한테 나무를 베게 한 건……
이 보물들을 싣고 오려면 튼튼한 카트가 필요했으니까.
설마 처음부터 이동도시를 지을 생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
(웃음을 참으며) 주마마, 일단 돌아가서 네 계획을 천천히 소개해 줄 수 있을까?
그럴 필요는 없어. 대제사장 할아범도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냐? 확실히 난 이동도시를 지을 생각이야.
정말로?
정말로.
흥, 이남, 이제 어떡할 거냐.
어떡하다니? 난 별말 안 했는데…… 푸흡.
됐다, 저 못된 아미르는 신경 끄고. 아가씨, 이동도시는 어떻게 지을 계획인가? 여기서 주운 물건들로 만들 겐가?
그래, 하지만 할아범이 방금 본 저것들은 사실 그리 중요한 건 아냐. 정말로 중요한 건 바로……
모델 R3-E3 어시스턴트 로봇 0332, 도착했습니다.
모델 R3-E3 어시스턴트 로봇 0719, 도착했습니다.
모델 R3-E3 어시스턴트 로봇 0086,
도도돗도도……
아가씨…… 친구를 구하려고 갔던 거구먼.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대제사장 할아범, 구상은 전부 끝났어. 티아카우에게 지어 줄 이동도시가 상대보다 반드시 앞서야 하는 이상, 그걸 위해선 정말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필요해.
설계 능력만 따지면, 내가 스티치한테 밀리는 게 사실이지.
그래서 난 살아 있는 도시를 만들기로 했어.
그걸 위해서 먼저 이 친구들을 고치는 거야. 바로 이 친구들이 내 도시를 구성하는 최소 유닛이 될 테니까.
이 로봇들을 네 도시의 최소 유닛으로? 그다음엔?
세 로봇이 합쳐져서 비교적 큰 유닛이 되고, 다섯 개의 비교적 큰 유닛이 합쳐서 하나의 거대한 유닛이 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유닛과 유닛이 계속 합쳐져서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이동도시만큼 커지는 거지!
그때가 되면 도시의 어느 부분에 말을 걸어도 대답을 들을 수 있을걸. 이동도시와 거기 사는 주민이 서로 친구가 되는 거야!
저기, 네 이동도시에……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 사는 거냐?
안심해, 대제사장 할아범. 그것도 당연히 생각해 뒀으니까. 봐, 이게 내 설계도야.
대체 어디부터 딴죽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구먼. 문제가 겹치고 겹쳤어.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그 전에, 이 외관은 대체 뭔지 말해 주지 않으련?!
네 이동도시는 완성되면 이런 모습인 게냐? 둥근 지붕에, 세 개의 바퀴, 의료 기기까지……
이동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Lancet-2라고?!
그야 언니는 엄청 귀여우니깐.
대제사장 할아범, 설계도의 마지막 페이지를 봐 줘.
나도 다 생각을 해 뒀어. 이동도시의 중앙 제어 센터에는 슈퍼 컴퓨팅 증폭기를 설치해서 온 이동도시에 있는 기계 친구들의 행동을 제어할 거야.
특별히 포트도 동그랗게 설계해서 나중에 Lancet-2 언니를 초대하면 이 자리에 앉힐 생각……
그럼 나는?!
이 이동도시를 설계할 때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한 게야? 내가 네 걱정을 얼마나 했는데!
아 몰라몰라, 이제 진짜로 신경 안 쓸 거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여행이나 떠나버릴 거니까……
대제사장 할아범 방은 여기 있잖아.
이 구석진 곳은 대체 뭔가, 하나도 안 멋있잖아! 하다못해 그 동그란 증폭기랑도 비교조차 안 되잖느냐! 게다가 언뜻 보면 내부가 난장판인 창고 같은 곳인데……
그 창고는 내 침실이야.
우린 이웃이 될 거야. 그러면 할아범도 생각이 날 때마다 날 찾아올 수 있잖아.
순간 대제사장의 말문이 막히자, 이남이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대제사장, 이제 어떡할래? 주마마를 도와줄 거야?
대제사장은 마침내 모든 감정을 정리하고 평소의 태도를 회복했다. 심지어는 그 우스꽝스러운 안경까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들어 올렸다.
당연히 도와주지.
그 도움의 첫걸음으로 일단 널 로도스 아일랜드에 데려다 주마.
왜?
그야 물론 네 설계도의 주인공……
그 커피조차 못 마시게 하는 로봇한테 이런 걸 정말로 원하는지 물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