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다
밀림 깊은 곳에 신선이 은거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그 신선은…… 천사부의 선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완칭은 실험 중 마주친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신선 찾기’의 길을 나서게 된다.
밀림 깊은 곳에 신선이 은거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신선은 가는 곳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구름과 안개가 끼게 하는 신기한 재주가 있다고 한다.
구름 속의 일은, 거짓과 진실이 혼재되어 있어, 그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다.
진실을 추구하는 마음만이 길을 인도할 수 있을 뿐.
후우…… 후우…… 안개가 점점 짙어지네.
여기는 어째 낯이 좀 익은데, 방금 지나왔던 길 아닌가?
드론은 여전히 신호가 없는 데다가, 근처에 딱히 길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 산에 웬 꼬마가? 안녕……
잠깐만, 난 그냥 길을 물으려고……
꼬마야, 안 쫓을 테니까 도망가지 마. 산에 안개가 자욱해서 위험하단 말이야.
……
……나더러 따라오라는 거야?
여긴…… 내가 산으로 들어왔던 길이잖아. 반나절이나 돌아다녔는데, 여기서 얼마 가지도 못하고 있었구나……
……
아, 안녕.
너, 빨리 산에서 내려가, 이 길을 따라서 쭉 내려가면 돼.
난 산에서 내려가려는 게 아니야. 꼬마야, 이 산에 경작지가 있는 밀림이 있다던데, 혹시 그곳이 어디인지 아니? 산속 안개가 걷히지 않아서, 길을 분간하기 너무 어려워서 그래.
……
그런 곳은 본 적 없어. 분명 이상한 소문을 들은 거 같은데, 어휴, 여행객들이 다 그렇지 뭐.
아니…… 그냥 소문은 아니야. 그래, 그 경작지를 찍은 사진도 있어, 잘 한번 봐봐, 정말 본 적 없어?
못 봤어. 아무거나 믿어선 안 돼. 내 말 듣고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떠나도록 해.
자세히 보지도 않고선…… 뭐 이 사진은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찍힌 거 같으니, 너한테 물을 만한 건 아니긴 하지. 귀찮게 해서 미안, 이건 내가 직접 찾아볼게.
그런 곳이 진짜로 있다면 더 수상하지 않아? 물, 전기도 안 들어오고 인적도 드문데, 누가 그런 곳에서 살겠어? 곰곰이 생각해 봐……
꼬마야, 알았으니 얼른 돌아가 봐,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으니까 조심하고.
에잇, 끝까지 산으로 가려나 보네…… 이 사람, 말을 통 듣질 않는군.
거기는 이상한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 경험이 풍부한…… 어라, 어디 갔지?
또 안개가 꼈네.
기상 데이터에서 여긴 1년 중 열에 아홉은 안개가 낀다 했었지. 느긋하게 안개가 걷히는 걸 기다릴 시간이 없어, 다시 부딪혀보자.
드론은…… 아직도 신호가 없나. 가시거리는 더 줄어들었고, 정말 이상하네, 아니면 정말 그 꼬마 말처럼……
하하, 아니다. 과학을 믿어야지.
아, 이 길은…… 방금까지 있었나?
여기는…… 어디지? 아직도 방금 그 산 중턱인 건가? 쓰읍…… 춥네.
잠깐만, 이 숲은……
식물의 분포와 지형의 생김새가 사진 속 그 숲과 똑같아. 그 앞에 있는 저 공터는 틀림없이……
바로 그 밭이야……!
옅은 안개가 낀 밀림 속에 개간된 밭이 있었다. 밭 가장자리엔 덩그러니 콩 몇 개가 심어져 있었고, 드문드문 잡초가 나 있었다. 그 주변 일대는 눈이 거의 쌓이지 않은 상태였다.
화생은 즉시 웅크려 앉아 천사의를 꺼내 콩의 데이터를 측정한 뒤, 자신이 재배에 실패한 것들과 비교해 보았다.
콩꼬투리 끝자락의 높이는 완벽했으며, 그늘진 산비탈에서 자라서 추위에 강했다. 틀림없이 그 대선배의 작품이었다.
화생은 흥분해서 펄쩍 뛰어올랐고, 이내 그의 시선이 밭을 지나 안갯속 유일한 오두막 하나에 닿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 희미한 윤곽을 향해 달려갔다……
달려갔다……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지만, 다시금 걸어갔다……
……어? 질동이, 소나무 분재, 호미.
아, 다시 돌아왔잖아. 질동이, 소나무 분재, 호미.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질동이, 소나무 분재, 호미.
전혀 앞으로 가지 않았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오두막과의 거리가 조금도 좁혀지지가 않아……
저쪽으로 돌아서 가보자……
……
이상하네, 이번엔 나무 위로 넘어가 볼까?
으아아아악……
화생은 한참이나 시도했지만, 끝내 눈앞에 보이는 오두막으로 가지 못했다. 그는 시무룩해서 밭 주변에 잠시 앉아있다가, 밭 안의 잡초가 신경 쓰였는지 한바탕 정리하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야 보기 좀 편하네. 그런데 정말 습한 날씨군. 손이 호미에 끈적하게 달라붙을 정도야.
하아, 난 정말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좀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엣헴.
어라, 꼬마야, 또 너야? 이렇게 늦었는데 집에 안 돌아가면 엄마 아빠가 걱정하시지 않니?
신선에게 뭔가 부탁하러 온 거면 잘못 찾아왔으니까, 헛수고 그만해.
……
아…… 너 사실은 그 대선배를 알고 있는 거구나!
난 신선에게 뭔가 부탁하러 온 게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가르침을 구하러 온 거지. 그분은 내가 한 번도 만나 뵌 적 없는 농업천사 대선배인데, 그분에게 꼭 물어봐야 할 중요한 일이 있거든……
정말 중요한 거야, 날 오랫동안 괴롭혀온 일이지.
그분은 벌써 몇 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어.
음……
그러면 넌 왜 날 이렇게 빨리 쫓아내고 싶어하는 거야? 생각해 보니까, 방금 산 중턱에서도 나보고 빨리 내려가라고 했잖아……
그런 거 아니야! 난, 난 단지 네가 헛걸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래!
헛걸음? 헛걸음이라기엔 대선배의 실험 결과가 모두 여기 있는 걸.
대선배가 너한테 무슨 말을 전해달라고 했어?
너…… 생긴 거랑 다르게 바보는 아닌가 보네.
좋아, 그분이 네게…… 음……
응?
그니까, 그……
어린아이는 손으로 힘껏 원을 그리며, 밭에서부터 산 아래까지를 가리켰다.
구하려는 사람은 지난날과 다를 바 없다. 이 말 이해할 수 있지?
(밭, 원을 그리고, 지난날과 다를 바 없다.)
그 논문의 저자가…… 세계 곳곳을 유람하고 있다고요?! …… 그럼 그분과 연락할 방법을 아는 사람은 있나요?
하하, 그 사람하고 연락하려고? 너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도 그 사람은 이미 우리 같은 '세속적인 소란'을 싫어했었어. 잘도 논문을 완성할 때까지 참았다가 멀리 떠났지 뭐야. 참 대단하셔!
그 후부턴 감감무소식이야.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라.
왜 그래, 무슨 과제 때문이야? 꼭 그 사람이어야 돼?
네. 기계로 수확할 수 있고, 그늘을 좋아해 추위에도 견딜 수 있는 '하이팟 2호'를 재배하려 하는데, 지금은 무슨 짓을 해도 이상적인 수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어요. 벌써 반년 동안이나 정체된 상태라서……
분명 제가 놓친 부분이 있을 거예요.
색다른 방법으로 해 봐봐. 데이터베이스에 가서……
농업 관련 기사는 이미 모조리 찾아봤는데, 그 대선배와 연관된 건 찾지 못했어요.
아니, 내 말은, 각지의 신비한 소문을 찾아보면, 의외의 수확이 있을지도 몰라……
음, 진한 차는 입에 쓰긴 해도 정신을 차리게 해주니까. 약이라 생각하고 마셔야겠다.
후우…… 계속해 보자. 신기한 소문이 워낙 많다 보니,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다 어지러워…… 어디까지 봤더라?
《물속 괴물의 물싸움》, 《일곱 빛깔 구름의 색이 하나 빠진 일》, 《마른 우물 속의 볶음면 냄새》…… 다 관련 없는 것들이네.
《경극을 하는 클라우드비스트》? 소만에게 보내봐야겠다.
《안갯속 길을 알려주는 신선》…… 나온 날짜를 보니 그 논문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거네.
잠깐, 이 현장 사진은!?
화생은 모니터 앞으로 다가가 멀리서 찍은 사진을 최대한 크게 확대하여 사진 속 중앙에 있는 그 밭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구름과 안개 사이로 땅에서 자라고 있는 작물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것들을 찬찬히 살펴보던 화생의 눈이 점점 커졌다.
선, 선생님! 저……
안갯속 길을 알려주는 신선.
소문은 어느 산 정상에 흩어지지 않는 구름이 덮여있는 걸 본 사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아무도 신선의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그 짙은 안갯속으로 들어가면 길을 알려주었고,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진실과 거짓, 허와 실이 뒤섞인 가운데, 신선의 점지가 눈앞을 환해지게 한다.
신선의 점지라…… 어쩐지.
(밭, 원을 그리고, 지난날과 다를 바 없다.)
이번엔 정말 이해했어!
내가 한 말을 전했다고?
전, 전하긴 했는데요.
꺼지라고 확실히 말한 거야?
비슷한 느낌으로 하긴 했어요, 하하……
근데 저 녀석이 왜 아직도 있냐고! 게다가 보란 듯이 내 밭에서 땅을 갈고 있잖아!
……땅을 가는 데 사용한 휴대용 기계랑 옷에 있는 은색 문양을 보건대, 저 사람, 신선님처럼 천사부에서 온 거 맞죠?
흥.
진작부터 아셨겠지만, 저 사람의 의문을 풀기 위해선 신선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 사람이 하도 예의가 바르다 보니, 저도 예의를 갖춰서 이렇게 손으로 원을 그리고 나가라는 표시를 했는데…… 아 설마 저 사람, 제 손짓을 신선님이 땅을 갈라고 했다는 뜻으로 이해한 걸까요?
내……!
잘 들어. 이번엔 한 글자도 바꾸지 말고, 저 녀석에게 똑똑히 말해……
네 과제 따위 내가 알 게 뭐야!
자기 연구는 스스로 머리 굴려서 하지그래?
머리가 비었으면 가서 호두라도 먹고 채워! 당장 꺼져!
——전 농업천사(《콩의 대량 수확 기술에 관한 새로운 방향과 전망》저자)
……
왔어? 으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화생은 다급히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문득 정신이 확 들었다. 밭을 가는 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정작 대선배의 점지 뒤에 숨겨진 의미는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때의 그는 마치 숙제를 잊어버린 걸 선생님에게 들킨 학생처럼, 간절히 천사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크흠…… 신선님께서……
네 과제는 내가 알…… 그……
과제? 역시 대선배는 내가 왜 왔는지 진작부터 알고 계셨구나. 근데 난 아직 아까 알려준 것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연구가 단순히 일하기 위함이 아닌 건 알고 있어. 더욱 깊이 생각해 봐야겠지.
(“네 과제 따위 내가 알 게 뭐야”, “머리가 비었으면 가서 호두라도 먹고 채워”, 이런 말을 어떻게 내뱉으란 말이야?!)
사람은 홀로 서는 걸 중히 여겨야 한다고 하셨어. 그…… 그리고 밭에만 있지 말고, 이제 곧 떠나야 할 때야. 영양을 보충하러.
영양.
아니 아니, 거기서 중요한 부분은 떠나라는 앞부분이라고.
떠나라, 영양을 보충하러.
아……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이해했어, 바로 출발할게!
뭐? 정말 간다고? 이렇게 가버린다고?
응, 질질 끌어선 안 되지, 지금 바로 출발하려고!
밤의 장막과 구름이 산 정상을 뒤덮었고, 밀림은 아무런 소리 없이 고요해졌다.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진.
이내 물을 휘젓고 뿌리는 소리가 나더니, 구름과 안갯속에서 독특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음…… (킁킁, 킁킁)…… 음……
무슨 소리지…… 이건 또 무슨 냄새야……
이건…… 아아아악!!! 아아아아아!!!
저 사람…… 저 사람 물을 긷고 돌아왔어. 그리고 비료를 물에 녹여서 밭에 거름을 주고 있잖아!
왜 저러는…… 아, 설마 내가 영양이라고 말해서?
무슨 영양?
아니아니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튼, 조금은 제 탓이 있긴 한데…… 신선님, 저 사람을 어떻게 훈계하실지 생각하셨나요? 이번에는 제가 반드시, 토씨 한 글자도 다르지 않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됐어.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이거나 쟤한테 갖다 줘.
이건 신선님 밭 안의……
좋은 아침, 또 오느라 고생이네. 대선배가 이번에는 무슨 지침을 내려줬어?
이건…… 콩 씨앗 세 알이잖아?
땅에 있는 콩과 손안에 있는 씨앗, 그리고 주변 밭을 보던 화생의 당혹스러운 미간이 서서히 펴졌다.
……눈앞을 환해지게 한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선배의 뜻, 이제 겨우 모두 이해했어!
처음에 내가 무심코 밭의 잡초를 뽑아버린 게 시작이었어. 이후 대선배는 내가 직접 땅을 갈고 거름을 뿌리도록 지도해 주셨지.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지금 이 3개의 씨앗을 심기 위함이었던 거고.
선배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라고 나를 격려하신 거야!
대선배의 가르침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3개의 씨앗은 저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열심히 심어볼게요!
응? 안개가 또 짙어졌네? 어, 어쨌든, 포기하지 않을게요, 선배.
화생은 의기양양한 채로 땅에 앉아 도구 가방을 열더니 휴대용 토양 검사기, 드론, 실험 노트, 라벨지, 작은 비커 등의 물건들을 꺼내 바닥에 펼쳐 놓았다.
모든 준비 작업을 마친 화생은 땅에서 흙을 한 움큼 집고 코에 대어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마음속으로 '안녕'이라고 말했다.
1일 후
대선배, 드디어 파종을 마쳤어요. 오늘은 각 항목의 데이터를 보고드릴게요.
참, 오늘 안개가 짙고 날씨가 습하니까 관절 조심하세요. 제가 몸 따뜻하시라고 생강차를 끓였는데, 여기에 둘게요.
2일 후
대선배, 파종한 지 오늘로 이틀째에요. 데이터 보고드릴게요.
참, 제가 대황성의 잡곡으로 꼬마와 선배에게 드릴 죽을 끓였어요. 율무는 푹 끓여내서 흐물흐물하고, 설탕도 넣지 않았으니 마음껏 드셔도 돼요. 이에 씹히지도 않고 혈당에도 영향이 없답니다.
6일 후
선배, 씨앗이 발아할 수 있을지는 아마 내일이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미 반년 동안 계속 실패했으니까, 이번에 바로 성공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지만요……
아마 제 연구의 방향이 계속 잘못되어서겠죠. 그래서 그런지, 제 씨앗은 햇빛을 너무 많이 필요로 하는데다, 새싹도 그리 크게 자라지 않아 기계론 도저히 수확할 수 없더라고요.
실은, 선배가 어떻게 심었는지 듣고 싶어서 온 거예요. 선배의 밭에 있는 몇몇 식물들을 봤는데, 높이가 정말 이상적이었거든요. 개체 수만 조금 더 많았어도 종자를 좀 가져갈 수 있어서 좋았을 텐데……
음, 선배 뜻은 많이 생각해 봤자 좋을 것 없다는 건가요? 네, 집중해서 다음 작업을 잘 해내 볼게요.
응?
후…… 신선님이 하신 말씀을 한 글자도 안 틀리고 말해줄게……
“머릿속에 농사짓는 거 말고 뭐가 들어있긴 하냐? 바람을 마시고 이슬을 먹으려거든 사람 말고 아예 풀이 되지그래?!”
응?
못 알아들을까 봐 걱정되니까, 내가 좀 더 보충해서 말해줄게. 혹시 너 중요한 걸 잊어버리지 않았어?
데이터 말하는 거야? 잠깐 확인해볼게.
아니, 데이터는 내려두고…… 됐다, 그냥 알려줄게. 너 처음에 일 시작할 때는 분명 신선님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줬었잖아……
아, 이런……
아니 그만, 내 말은 너 요 며칠 밥을 먹긴 했냐는 거지.
앗차, 그러네!
7일 후
대두 씨앗은 이미 정상적인 발아기에 들어섰어요. 싹이 틀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요.
8일 후
……
9일 후
……
요 며칠 갑자기 말이 없어졌네.
싹이 트지 않는 씨앗을 주시다니, 신선님도 참 심술궂으시네요.
학계에서는 그 녀석처럼 성실한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곤 하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녀석이 보지 못하는 게 있어……
눈앞의 벽 말이야.
그래놓고 신선님 뭘 그렇게 서성이고 계세요, 보는 제가 눈이 다 아플 지경인데. 정 그렇게 걱정되시면, 제가 대신 나가서 봐 드릴까요?
됐어. 벽에 부딪치고 나면, 그 녀석도 돌아가겠지.
……
그래도 이대로 부딪쳐서 내 밭에서 죽게 내버려둘 순 없으니, 한번 가서 보긴 해야겠다.
화생은 아무것도 없는 밭에 누워, 손바닥을 땅에 댄 채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오두막이 점점 더 멀어지더니, 이내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오두막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것들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울타리가 사라지고, 숲도 사라졌다. 그의 시야에 남아있는 건 이제 이 밭과 머리 위 하늘뿐이었다.
하늘을 등지고 땅을 마주하는 것,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화생은 문득 밭에서 아주 작은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펑!
갑작스러운 나무문을 걷어차는 소리에 화생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누운 채로 얼굴을 옆으로 돌린 그는, 안갯속에서 낯선 젊은 남자가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화생은 당혹스러움에 눈을 가늘게 떴다.
심고 심고 또 심더니만, 아직도 심고 있구나!
예전에 선생님께서 내게 두 번째 씨앗을 심으라고 하셨을 때, 난 싹이 나지 못할 것을 알아채고 방향을 바꾸기로 했지.
씨앗을 심은 지 이렇게 오래되었건만, 고작 그깟 것 하나 알아채지 못하고, 내가 나서서 일일이 설명까지 해줘야 한다니……
내 밭에 콩이 몇 개밖에 없어 아쉽다고? 그런 생각보단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왜 이것밖에 없는지 고민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
벽에 직접 부딪치기 전까진 돌아보지 않는다니. 그딴 태도로는 어떤 연구를 하든 간에 모두 다 처 망해버릴 거다……
그가 내뱉던 특유의 독설은 화생 주변의 밭을 보고 나서 돌연 뚝 멈췄다.
화생은 그 말도 안 되게 젊어 보이는…… 수십 일 동안 화생에게 '대선배'로 불렸던 사람을 바라보았다.
반면, 그 사람은 화생 주변의 꾸불꾸불하고 생기 있는, 확실하게 새싹이 나온 그 콩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생이 하늘을 바라보자 안개가 걷히고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대…… 음, 선배, 저는 풀이 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어요……
뭐?! 그건 네 꽉 막힌 고집을 욕한 거지, 진짜 너보고 풀이 되라는 뜻이 아니잖아!
하지만, 열심히 들어보면, 들리는 것만 같아요……
씨앗 속의 새싹과 뿌리가 껍질을 뚫고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요.
그건 그냥 네가 굶주리다 못해 어지러워서 그런 거고! 환청이란 거다! 얼른 일어나!
아니에요, 정말 들을 수 있……
신선이 그의 얼굴을 탁탁 때렸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그만 자라고! 이 물소야!
콩 한 묶음이 화생의 얼굴을 탁탁 때렸다.
아니, 어떻게 콩을 수확하면서 잠들 수가 있는 거야! 얼른 일어나!
기계가 얼굴을 밟고 지나가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했어! 바보 물소야!
소만? 나…… 잤던 거야?
'하이팟 3호'의 첫 수확을 보러 오라며 날 불렀으면서, 자기는 게으름이나 피우고 말이야.
기계로 콩 수확하는 건 재미없어. 어쨌든 다 봤으니까 나랑 같이 보들이 찾아서 놀러 가자!
네가 저번에 보낸 《경극을 하는 클라우드비스트》를 보들이에게 보여줬거든. 보들이가 경극은 싫지만, 록 음악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대.
같이 들으러 갈래? 보들이가 정말 좋아할 거야!
안돼, 수확 작업이 끝나면 곧바로 데이터 분석해야 한단 말이야.
재미없긴. 그럼 난 슈 언니한테 가서, 네가 몰래 밭에서 잤다고 일러야지.
그래도 안 갈 거야.
소녀가 그를 향해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곧 사라졌다.
화생은 콩밭에서 일어났다. 수확기가 밭에서 순조롭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기계의 굉음 속에 콩 꼬투리가 익어가는 듯한 소리가 섞여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