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
비질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묻어 두었던 먼지투성이 과거를 떠올린다.
카르네발레의 소란 속에서도 암류는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혼수상태에 빠진 레온투초에겐 그저 상관없는 일이었다.
레온투초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묻어 두었던 먼지투성이 과거를 떠올렸다.
떠올린 옛일의 주인공은 친구이자 스승이던 라비니아도, 좋은 친구였던 드미트리도, 아버지 베르나르도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언행으로 그에게 모범이 되었던 카라치 장관이나, 한 발의 총성으로 온 도시를 깨웠던 루비오 장관 또한 마찬가지로 아니었다.
그 주인공은 그저 한 노인이었다.
그가 기억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한 노인.
그때, 그레이홀은 새 이동도시를 짓기로 한 결의안이 막 통과된 참이었다.
그때, 라비니아는 아직 볼시니에 오지 않았었고, 그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패밀리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때, 시라쿠사는 우기가 한창이었다.
그럼 선고하겠습니다. 엔초 무죄.
무죄?! 그 녀석이 내 여동생 줄리아의 성대를 망가뜨렸다고! 심지어 줄리아는 지금까지도 혼수상태인데!
그자가 범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당연히 그 녀석이 모든 증거를 없앴겠지!
게다가 그 녀석이 나까지 때렸다니까!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당신이 먼저 시비를 걸고 분란을 일으켰더군요. 그의 행위는 정당방위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엔초 씨는 당신의 분노를 이해하므로, 이번 일에 대해서 당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판사님, 댁 말은 지금, 잘못은 내가 한 거고 도리어 그 자식이 날 용서했다는 거야?
어찌 됐건, 넌 줄리아의 오빠니까 내 형인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우리 잘 지내보는 게 좋지 않겠냐, 엔니오.
너, 너 이 뻔뻔한 자식…… 난 네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그저 줄리아가 계속 네놈과 함께하고 싶다며 하도 애원해서 어쩔 수 없이 동의했던 건데.
그 결과로, 결국 네놈이 줄리아를 벙어리로 만들었지!
내가 말했지,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줄리아가 집으로 도망쳐와선 다 털어놨다고!
줄리아의 남자친구로서, 그 일은 나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해.
걱정하지 마. 내가 줄리아를 집으로 데려오면, 우리 패밀리의 형제들에게 함께 범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할 테니까!
아니, 절대로 네가 줄리아를 데려가게 그냥 두지 않을 거야.
선생님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누굴 좀 마중 왔지.
아직 오늘 재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끝내.
바로 줄리아를 데리러 가야 하니까.
……그렇다면……
잠깐.
레온투초?! 벨로네의 도련님이 여긴 어쩐 일로……
원인이 어찌 됐든, 줄리아는 집으로 도망간 거야.
깨어나기 전까지 줄리아는 안정을 취해야 해.
아무리 엔초가 남자친구라 해도, 병문안 외엔 받아줄 수 없어.
절대로 저 녀석이 우리 집 대문을 넘게 하지 않을 거야!
엔니오, 너무 우쭐거리진 말라고.
레온투초 도련님의 말만 아니었으면, 네 디저트 가게는 내일 분명 폐허가 됐을 테니까!
너 이 자식……
엔니오 씨,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엔초 씨, 레온투초 도련님의 의견에 동의하시죠?
……벨로네의 도련님 말씀인데, 당연히 따라야지.
재판이 끝나면, 바로 줄리아에게 병문안을 가겠어.
그럼, 이 사건에 관한 오늘 재판은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존경하는 레온투초 도련님.
안녕, 존경하는 루쏘 판사.
라비니아가 당신을 많이 그리워하더군.
그러고 보니 그 아이가 제게 보낸 편지를 받았었습니다. 벨로네 패밀리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군요.
……
도련님께선 오늘 재판의 결과에 불만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엔초가 범인이잖아, 누가 봐도 알 수 있어.
무슨 뜻인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이미 그자가 증거를 모두 없애버렸죠.
엔초의 배후에는 여러 패밀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요.
이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
라비니아는 당신이 악을 증오하는 사람이라 했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레온투초 도련님.
사람 또한 변하기 마련이지요.
그럼, 하실 말씀 끝나셨으면 전 이만 먼저 일어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엔니오가 단단히 화나 있을 테니, 어서 가서 좀 달래줘야겠군요.
좋을 대로.
그레이홀에서 새 이동도시를 건설하겠다고 공표한 이후, 볼시니 전체가 완전히 난장판이 됐어요.
방금 본 것처럼, 법원은 이미 본연의 기능을 잃은 지 오래죠.
볼시니에 있는 많은 판사 중에서도, 루쏘 씨 정도면 아직 재판을 맡을 의지가 있으니 매우 용기 있는 편이에요.
……그렇군.
그럼, 언제쯤 돌아올 예정인가요?
엔초가 지금 상황에 이렇게 대놓고 자기 여자친구를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커플 사이의 치정문제'라는 건 말도 안 되는 변명일 뿐이야.
아까 보니 그 녀석 꽤 조바심이 나 있더군.
……당신은 줄리아가 알아선 안 되는 일을 알게 된 거라고 추측하는군요?
만약 그렇다면 엔초는 그녀를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최근 엔초가 몸담은 스트라치 패밀리 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너도 쭉 그들을 손봐주고 싶어하지 않았어?
……우리 레온 도련님은 정의의 사도가 될 생각이 없나 보군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제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알려 드리죠.
응?
볼시니의 일반인들 사이에 떠도는 전설과도 같은 소문이 하나 있습니다.
요 몇 년 동안, 법정에 섰던 많은 패밀리 멤버들이 비명횡사했었죠.
일반인들은 그들이 천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이들의 사인이 약간 석연찮긴 하지만, 모두 그저 상대 패밀리에게 암살당한 것뿐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제삼자가 개입했을 가능성은 없는 거야?
만약 그러려면 그 사람은 흔적을 남기지 않음과 동시에, 모든 패밀리 간의 관계까지 훤히 꿰뚫고 있어야 해요.
적어도 볼시니에는 그럴만한 인물이 없지요.
……그럴지도.
저놈들이 움직일 준비를 하는군. 일단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쳇, 벨로네의 도련님까지 자리에 있을 줄이야.
괜찮아, 적어도 내가 줄리아를 만날 수 있게 됐잖아.
너랑 줄리아 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별거 아냐, 사소한 오해가 있었을 뿐. 넌 먼저 돌아가, 나는 줄리아한테 가볼 테니.
보스에겐 내가 직접 해명하겠다고 전해 줘.
안다니 다행이군.
후……
어떻게든 그 전에 줄리아를 만나야 할 텐데……
일행을 먼저 보내다니…… 흥미로운데.
줄리아를 만나면, 꼭……
어이, 비켜.
저건…… 이베리아인의 복장?!
……
끄윽…...
죽어라.
저 자식, 바로 죽이려고?! 쯧, 내가……
안돼!
하지만……
이 자는 산채로 데리고 간다.
나한테 맡겨.
……알았다.
……드미트리, 아무래도 네 예상이 틀린 것 같아.
윽……
어떻게 된 거지……?
그래, 내가 막 줄리아를 찾아가려는데…… 공원에서, 갑자기 웬 이상한 복장을 한 놈들이 나타나서는……
맞아! 나, 나 맞고 기절했었지!
그럼 여기는 대체…… 설마 누군가 날 구한 건가?
넌 여기서 죽을 거다.
너, 너흰 대체 누구냐?
나는 스트라치 패밀리의 사람이다. 너희가 감히 날 죽이겠다고?!
스트라치 패밀리?
너는 살루초 패밀리와 결탁해서, 스트라치 패밀리가 준비한 오리지늄 무기를 몰래 내다 팔았더군.
너희 보스가 너를 찾는 이유도, 이 일을 추궁하기 위해서 아닌가?
서, 설마 줄리아가 깨어난 거야?!
불쌍한 줄리아, 고작 저딴 녀석과 살루초 사이의 거래를 목격했다는 이유로 성대가 망가지다니.
걔가 날 고발하려고 했다고.
나도 줄리아를 죽이고 싶지 않아, 여전히 사랑하니까.
감히 그 더러운 주둥이로 줄리아를 사랑한다는 말을 담아?!
너 엔니오냐?! 엔니오 맞지!
아, 이제야 알겠다. 재판 때문에 화가 나서 나를 겁주려고 연기하는 거군, 맞지?
……아니, 넌 여기서 죽을 거야.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거야?
충분히 알고 있어.
……이만 끝내시죠.
미친…… 미쳤어. 너희 전부 미쳤다고!
……?!
판사에겐 타인의 죄를 판결할 권리가 있지만, 직접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어.
더구나 내가 방금 들은 내용에 의하면…… 엔초의 죄는 다시 심판할 여지가 있어 보이네.
내 말이 맞지, 루쏘 씨.
……
……
쯧, 이 틈에……
가도 좋다고 한 적 없어, 엔초.
윽……
항상 저를 놀라게 하시는군요, 레온투초 도련님.
당신이야말로, 루쏘 씨.
겉으로 보이는 유들유들함도 이미 충분히 놀라웠지만.
설마 뒤에서 이렇게 법을 무시할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어.
행동만 놓고 보면, 판사라고 불릴 자격이 전혀 없군.
하지만 레온투초 도련님, 이 시라쿠사에서, 패밀리 멤버들에 대한 판결이 법에 따라 결정된 적이 언제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아무도 증거를 신경 쓰지 않죠.
결과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없고요.
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거야.
그건 도련님만 그럴 뿐이죠. 전 그런 일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습니다.
한 개의 죄로는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열 개, 백 개는 어떻습니까?
패밀리 멤버들은 보통 자신들의 삶이 파란만장했다고 허세 가득하게 자랑하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과연 그 파란만장한 삶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고, 얼마나 많은 일반인의 시체가 쌓여갔을까요?
그들에게 정말…… 죽을 죄가 없습니까?
판사님 말대로라면, 모든 패밀리 멤버들은 죽어 마땅하겠군.
그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
미안하군.
난 당신이 엔초를 죽이게 두지 않을 거야.
그 누구에게도 멋대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뺏을 권리가 없으니까.
법을 무시하는 심판자의 존재는…… 미래에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나아갈 길을 잃게 할 거야.
미래요? 주변을 한번 둘러보시죠, 레온투초 도련님.
이 시라쿠사에 미래란 없습니다!
아니, 있어. 지금은 그저 시칠리아 부인과 열두 패밀리, 그리고 이 쏟아지는 폭우에 잠시 가려져 있을 뿐이야.
……
아무리 라비니아가 도련님께 영향을 줄 수 있다 한들, 도련님이 패밀리의 후계자로서 자라면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바꾸진 못할 겁니다.
체계적인 폭력,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오만함, 꾸며낸 위선.
그렇지만 레온투초 도련님, 도련님은 확실히 다르십니다.
당신은 진심으로 공정함이 존재한다고 여기시죠.
한 패밀리의 후계자께서 법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이 자리에 서 계시고요.
아십니까, 이건 정말……
저희에 대한 가장 큰 모욕입니다.
쯧, 일단 엔초를 데리고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겠어.
젠장, 어디 간 거야?!
미안, 레온투초 도련님.
여기 남아있어 봐야 죽을 테고, 그렇다고 당신과 함께 패밀리에게 돌아가자니 마찬가지로 죽으러 가는 거라고.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시라쿠사 비속어*, 판사 놈이 정말 미쳤어.
감히 패밀리 멤버를 건드리다니.
만약 레온투초 도련님이 나서지 않았다면, 난 분명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야.
아무튼 미안하게 됐어, 레온투초 도련님.
그 망할 판사의 마수에서 구해준 건 고맙지만, 당신도 내가 배신한 일을 이미 알아 버렸잖아.
당신을 따라 돌아가는 건, 죽으러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그런데, 이제부턴 어떻게 해야 하지?
살루초 패밀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야 하나?
걔네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진 않은데…… 맞다!
잘 생각해보니까, 루쏘 이 빌어먹을 판사 놈의 진짜 모습이 제법 큰 이슈가 되겠는데.
일반인들 주제에 감히 패밀리의 눈앞에서 그 멤버를 죽이려 하다니.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지!
그래, 분명 살루초 패밀리 중에서도 그놈들한테 당한 사람이 있을 거야.
확실히 이 정보엔 살루초 패밀리가 흥미를 보이겠군.
……
……레온투초 도련님.
긴장하지 마, 엔니오.
내가 널 찾아온 건 복수하기 위해서도, 루쏘 씨에 대해 물어보려는 것도 아니야.
그냥 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거야.
……말씀하세요.
어째서 루쏘 씨를 믿기로 한 거지?
도련님은 존경받아 마땅한 패밀리의 보스임을 전 알고 있어요.
저도 당연히 도련님을 믿고 싶죠.
하지만…… 도련님은 저와 너무 멀리 떨어진 세계에 계세요.
도련님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들, 그 결과를 저는 볼 수 없고, 제 여동생도 볼 수 없죠.
예전에 패밀리가 복수를 어떤 식으로 하는지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쪽 손, 한쪽 다리, 한쪽 귀 같은 것을 상대의 문 앞에 보낸다 하더군요.
만약 공정함이 그런 식으로밖에 실현될 수 없다면, 적어도……
제가 두 눈으로 직접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련님과 처음 만나고 난 후, 루쏘 씨는 저를 데리고 어느 사람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 사람들은…… 저와 같은 사람들이었죠.
저는 지금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나도 보러 갈 수 있을까?
도련님은…… 마음대로 하시죠.
레온투초가 엔니오를 따라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을 땐 이미 몇몇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슬프고 괴로워 보였고, 심지어 어떤 사람의 몸에는 장애도 있었다.
그들은 엔니오를 따라온 레온투초를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저 책상을 옮기고, 둥그렇게 의자를 배치하곤 하나둘 자리 잡았을 뿐. 엔니오도 따라 앉았다.
레온투초는 입구에 서서 묵묵히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저부터 할게요.
제 여동생은 패밀리 멤버인 남자친구가 몰래 다른 패밀리와 암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바람에 성대가 망가졌습니다.
나는 딸을 내버려두면 집에서 몇 번이나 자결하려고 들어서 묶어둘 수밖에 없어요. 이 지경인데도 가해자는 뉘우치기는커녕 내게서 딸아이를 데려가려 하더군요.
내 동생은……
피해자들은 각자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일어난 비극을 쏟아냈다.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어떤 이는 분노하고, 어떤 이는 눈물을 쏟아내며, 어떤 이는 아픔을 억누르지 못했다.
하지만 반드시 누군가가 마치 자신이 겪은 일인 것처럼 그들을 위로했다.
우리의 가족, 친구 혹은 자기 자신, 우리는 모두 패밀리의 공정하지 못한 대우 탓에 죽거나, 중상을 입거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얻었습니다.
비통하고 화가 차오르는데도 우린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루쏘 씨께서 우리에게 희망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절망하고 있을 때, 루쏘 씨가 우리에게 말씀하셨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법에 실망할 것이 아니라, 법을 짓밟는 악당들을 증오해야 한다고.
루쏘 씨는 우리를 위해 그가 법을 대신해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루쏘 씨는 우리를 대신해서 죄인에게 벌을 내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은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분노는 고귀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패밀리 멤버들은 벌 받아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
나야.
당신에게 전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조금 전, 살루초에서 갑자기 사람 몇 명을 법원으로 보냈습니다.
뭐?
저희 정보원에 의하면, 그 전에 엔초가 살루초의 거점에 나타났었다고 합니다.
……쳇.
당신은 법원으로 갈 생각이죠?
응.
제가 굳이 이 사실을 당신에게 알린 건, 혹여나 당신이 충동적으로 행동할까 걱정되어서입니다.
그러니, 이젠 제게 이유를 알려주세요, 레온.
살루초와 연관된 이상, 이건 이제 당신 혼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한 패밀리의 후계자입니다, 레온.
……내가 앞으로도 후계자로서의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서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루쏘 님, 저를 찾으셨습니까?
네, 요즘 패밀리 간의 움직임이 점점 격렬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법원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휴가를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진심이십니까?
네, 모두에게 전달해주세요. 지금 아직 자리에 계신 분들은 귀가하셔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무슨 볼일이 더 남으셨습니까?
아주 많지.
……레온투초 도련님.
레온투초 앞의 노인은 처음 보았을 때처럼 온화하지도, 어젯밤처럼 격앙되어 있지도 않았다.
지금 레온투초의 눈에 비친 노인의 모습에선, 그저 피곤함만이 남아있었다.
내가 밉지 않아?
제가 왜 도련님을 미워합니까?
지금 살루초 패밀리가 당신을 찾아오고 있어.
만약 그때 내가 그 자식을 놓아주지 않았다면……
굳이 엔초 녀석이 아니었더라도, 결국엔 또 다른 엔초가 나왔을 겁니다.
그의 박쥐 같은 행동은 이 나라가 답이 없다는 걸 재차 증명한 것에 불과하지요.
저희는 모두 이런 것에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레온투초 도련님.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걸 누릴 수 있는데,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 자리까지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얼마 전 엔니오를 따라서 패밀리에게 당한 피해자들로 구성된…… 모임에 다녀왔어.
저도 그 모임의 일원입니다.
육십여 년을 굳게 지켜온 신념에 대한 보답이, 고작 집 앞에 놓인, 제 아내의 피투성이 손이었다는 걸 확인한 그 순간……
저 또한 그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글쎄, 내가 보기엔……
마치 당신이 그들을 대신해 칼을 뽑아든 것 같군.
법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패밀리 때문에 절망에 빠진 피해자들이 최후의 보루인 법에게서까지 버림받는 걸 막기 위해……
그들에게 피비린내 나는 약속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지.
법을 지켜야 할 자가 직접 법의 경계선을 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어.
나는 당신이 처음부터 지금 일어난 모든 일을 의도했다고 생각하진 않아.
그들이 저를 말려들게 한 것인지, 제가 모두를 위해 칼을 뽑아든 것인지는 이 시라쿠사에서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레온투초 도련님.
도련님은 대체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저를 찾아오신 건, 제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러 오신 건가요……
아니면 저를 도와주시려는 건가요?
영감탱이, 너에게 살해당한 패밀리의 복수를 하러 왔다!
엔초, 박쥐처럼 이리 붙고 저리 붙고 하는 걸 보니까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구나.
(작은 목소리로) 레온투초 도련님……?!
……존경하는 레온투초 도련님, 이건 당신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전 지금 살루초 패밀리를 대표하여, 암암리에 수많은 패밀리 멤버를 살해한 이 악당을 단죄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저희 사이에 있는 오해는 추후 다시 이야기하시죠.
……
그러니까 지금, 살루초가 네 뒷배다. 이 말이지.
그, 그렇다면요?!
오히려 잘됐어.
대체 무슨 짓을 하시려는 겁니까……!
드미트리
분부가 있으십니까, 도련님?
이 사람들을 모두 제압해. 그리고 나 대신 살루초 패밀리에 가서 안부를 전하도록. 말이 좀 통하는 사람을 보내달라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도대체 뭘 하시려는 겁니까, 레온투초 도련님?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주겠어.
첫 번째는 엔초의 사건을 다시 재판하는 거야. 이번에는 나와 살루초 패밀리의 멤버 모두 그 자리에 참석할 거야.
그 재판의 안전은 내가 보장하지.
두 번째는 이곳을 떠나는 거야.
법에 대한 존중을 담아 성문 입구까지는 지켜주겠지만, 그 이후의 당신 생명과 안전은 보장해줄 수 없어.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이지.
그리고 첫 번째 선택을 할 경우, 당신이 내린 판결 그대로 집행되리라는 것도 보장하지.
그렇다면, 당연히 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만 된다면, 이 재판이 끝나고 제가 바로 죽는다 해도 소원이 없을 것 같군요.
죽을 일은 없어, 그랬다간 내가 라비니아를 볼 면목이 없어질 테니.
그리고 하나 더, 당신이 날 대신해 전해줄 말이 있어……
나중에 라비니아가 볼시니에 온다면, 벨로네는 전과 같이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일 거라는 것.
그럼, 재판을 준비하자.
……
제겐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잖아요. 선생님도 마찬가지고요.
그때 말했다면 충격만 받았을 거야.
루쏘 씨는 죽기 전에 네게 사실을 고백하려고 했었어.
하지만 내가 말렸지. 나중에 내가 직접 네게 말해주겠다고.
정말 좋은 시기를 고르셨군요.
내가 깨어난 후에 카르네발레에서 벌어진 일들 때문에 충격을 받을까 봐 네가 걱정하는 거 다 알아.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 라비니아.
봐, 역사는 늘 반복돼.
그 당시 볼시니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지.
패밀리 간의 싸움이다 보니, 아무도 일반인의 생사에 관심이 없었어. 바로 그것 때문에 루쏘 씨가 칼을 빼 든 거였고.
지금 뉴 볼시니는 아직 부족한 점도 있지, 하지만 《신도시 관리법》의 시행이 탁월한 효과를 보고 있어.
물론 우리가 주의하지 못한 곳에서 하마터면 에이레네가 어리석은 행동을 할 뻔했지만……
다행히 그것도 하마터면으로 끝났지.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전 안심이에요.
우리 둘 다 이미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걸 알고 있잖아.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조금 더 노력하는 것…… 그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