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내가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오래된 신농의 조각상 앞에서, 슈와 어느 젊은 농업천사 학생은 그 전설 속의 인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개 평범한 인간이 대체 어떻게 역사에 길이 남을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등장 오퍼레이터: , 완칭


넌 누구야……?

어디서 왔어?

……

그런 건 따로 없어.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걸……

설마, 넌 이야기 속에 나오는 신선이니?

경칩.

봄이 되자 며칠 내내 비 내리던 날씨가 드디어 개었다.

광장 중앙에는 연극 무대 같기도 하고 제전 같기도 한, 네모 반듯한 단상이 있었다. 단상 위엔 어떤 조각상이 묵묵히 서 있었다.

조각상은 고풍스러운 복장을 한 여성의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이목구비가 잘 보이지 않아 그 조각상이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새파란 모종을 조각상 앞에 바치곤, 공손히 절을 했다.

화생

신농님, 부디……

화생

올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화생

선생님?

한참 찾았잖아. 내가 준비하라고 한 토양 샘플은…… 여기서 뭐 하는 거니?

화생

그게……

소년은 방금 막 바친 “공물”을 가리려고 몸을 기울였다.

……

화생

이틀 뒤면 모내기하는 날이잖아요. 올해는 제가 처음으로 따로 실험용 밭을 맡는 해고요. 사실 정말 자신 없거든요…… 그래서 뭔 사고라도 나진 않을까, 잘 못하진 않을까 걱정이에요.

화생

천사부 선배님이 이럴 땐 다들 여기 와서 절한다고 하실래…… 전 또 새로 입학한 학생이니까 신농님께서 특별히 더 돌봐주시진 않을까 하고……

이 철없는 녀석들이 어린애들한테 뭘 가르치고 있는 건지……

사고가 일어나면 농사를 포기하기라도 할 거야?

화생

……

며칠 연속으로 비바람이 몰아쳤고, 말이 없는 조각상은 마치 밭에서 고된 하루를 보낸 사람처럼 흙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여성은 그 앞으로 다가가 조각상을 살살 닦았다.

“신농”은 여기서 한평생 열심히 농사를 지었을 뿐인데, 언제부턴가 너희가 신선으로 모셨지. 그러고는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신농에게 도와달라고 하다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거나 넘어갈 수 없는 고비가 생겨야만 신농을 찾는 건가.

화생

선생님…… “신농”이란 분이 정말 있었던 건가요?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화생

천 년 전에 역법을 제정하시고 24 절기를 나누시고…… 위험이 가득한 토지에 이렇게나 큰 밭을 개간하셨잖습니까.

화생

이게 정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 잘 상상이 가지 않아서요……

네가 믿든 믿지 않든, 하늘의 계절은 계속 돌고, 발아래의 토지는 계속 바뀌는 법이야. 속일 수 없는 일이지.

누군가가 그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생겨난 거야.

화생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었을까요……?

신농은…… 그냥 고지식한 바보야.


소박한 농민

높은 곳에서 본 이 대지는 어떤 모습이야?

허당기 있는 소녀

응……?

소박한 농민

예전에 넌 몸이 산보다 더 커서,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도 어깨에 닿지 않을 정도였다고 했잖아. 그런 네가 본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어?

허당기 있는 소녀

너희 눈에 끊임없이 이어진 산 줄기는 내 눈엔 그냥 울긋불긋 솟아 있는 비탈 같고, 너희 눈에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커다란 나무는 내 눈엔 그냥 길바닥에 난 새싹 같아 보였지.

메마른 산과 말라버린 물은, 만 년 내내 이와 같으리니.

소박한 농민

그럼 땅에 난 화초와 나무들도 잘 보이지 않고, 파울비스트들이 우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겠다 그렇지?

소박한 농민

그건 좀 쓸쓸하겠네……

허당기 있는 소녀

내가 안 무서워?

소박한 농민

무섭다니? 우리랑 똑같이 생겼잖아. 무슨 요괴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허당기 있는 소녀

나랑 너희는 그래도 달라. 내 수명은 너희의 수천수백 배인걸. 내가 화나서 손 한 번 휘두르면 너희는 전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고.

소박한 농민

풉……

허당기 있는 소녀

잘도 웃는구나……

소박한 농민

나도 그런 신화를 들은 적은 있는데, 그런 이야기 속에 나오는 신선들은 다 외롭고 심심해서 인간 세계에 오는 거잖아.

소박한 농민

만약 너무 외로워서 못 견딜 것 같지 않았다면, 왜 굳이 사람 모습으로 나타났어? 정말로 날 흔적도 없이 없애버린다면, 이렇게 대화할 사람도 없어지지 않겠어?

허당기 있는 소녀

그런 게 아니라……

허당기 있는 소녀

……

소박한 농민

하, 그런 힘을 가졌으면서 왜 다 죽이려는 거야?

소박한 농민

내가 만약에 그런 커다란 몸을 갖고 있었으면, 사람들이 몸에 농작물도 심고 과일도 심게 만들었을 거야! 그러고 보니, 넌 농작물을 더 잘 자라게 만들 수도 있지 않아?

허당기 있는 소녀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지금 당장도 할 수 있다고…… 바로 이렇게.

소녀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땅에서 푸른빛을 띠던 수수가 순식간에 자라나 곡식이 한가득 맺혔다.

허당기 있는 소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여기 설원도 논밭으로 만들 수 있는걸.

소박한 농민

……

농민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소박한 농민

그런 거 하면 피곤해져?

허당기 있는 소녀

별거 아니야. 너희처럼 느릿느릿 심는 거 보다야 쉽지.

소박한 농민

그럼 우리가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

허당기 있는 소녀

너희한테 뭘 바라겠어? 그냥 기분이 좋아서 한 번 해본 거야.

소박한 농민

그럼……

소박한 농민

아니다…… 역시 이런 건 안 하는 게 좋겠어.

소박한 농민

눈앞의 일만 생각해선 안 되지. 넌 지금 기분이 좋아서 우릴 도와준 거지, 언젠가 기분이 나빠지면 여기를 떠나 버릴지도 모르니까.

소박한 농민

지금 다들 네 신성한 힘에 기대고 있지만, 나중에 네가 떠나게 됐을 땐 여기 농작물도 다 없어지지 않겠어?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농사도 못 짓게 돼서 또 굶게 되겠지.

소박한 농민

착실하게 농사지어 사는 게 마음은 더 편할 거 같네.

허당기 있는 소녀

……지금까지 만나온 다른 사람들은, 내 능력을 조금만 보여줘도 다들 은덕을 베풀어 달라 난리였지.

허당기 있는 소녀

너 같은 사람은 만난 적 없어. 하지만 죽을 때까지 일한다 해도 땅을 얼마나 개간하겠어?

소박한 농민

밭을 얼마나 갈든, 그냥 있는 힘껏 해보면 되지. 내가 못한 일은 다른 사람이 또 이어받을 테니까.

허당기 있는 소녀

모순 아니야? 아까는 눈앞의 일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더니, 지금은 있는 힘껏 해보면 된다고 하다니.

소박한 농민

모순이려나? 사람은 신선처럼 마음먹은 대로 뭐든 할 수 없잖아. 그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어느 정도 미련을 두고 살아가는 거지. 평범하게, 마음 편하게……

허당기 있는 소녀

마음이 편하다고?

소박한 농민

자…… 이거 받아.

허당기 있는 소녀

이게 뭐야?

소박한 농민

난 너희 신선들이 농사짓는 법을 배울 순 없지만, 너한테 우리 인간들이 농사짓는 법을 알려줄 수는 있어. 좀 느리긴 한데, 그래도 쓸만하다고.

소박한 농민

네가 사람들이 농사짓는 법을 배우게 되면, 그땐 어쩌면 “사람”의 마음도 느껴볼 수 있을지 모르지.

“사람”으로 사는 거, 힘들어?

당연히 힘들지! 여기 내 손 동상 걸린 것 좀 봐봐…… 난 아직 이렇게나 젊은데, 비가 오면 벌써부터 허리가 아프다니까?

난 넌 그림 같은 풍경에 사계절 내내 봄 같은 장소로도 데려가 줄 수 있어. 네가 그렇게 고생 안 해도 거기 있는 음식은 한평생, 아니 열 평생 동안 먹어도 다 못 먹을걸?

하하, 이럴 줄 알았다니까! 너, 역시 외로운 게 무서워서 같이 놀 사람이 필요했구나?

……

그래도, 됐어.

날 못 믿어?

당연히 믿지. 여기 대지가 이렇게나 큰데, 분명 내가 안 가본 좋은 곳이 얼마나 많겠어…… 근데 무서워. 그런 곳을 가보게 된다면,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아질까 봐.

인간의 일생은 너무 짧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농작물들을 잘 심을 수 있으면, 난 그걸로 만족해.

……

그래도, 같이 노는 건 나쁘진 않을 것 같아. 다만……

다만 약속해 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소박한 농민

흐흥……♪

허당기 있는 소녀

기분 좋아 보인다?

소박한 농민

당연하지!

소박한 농민

봐 봐, 여기 시험 삼아 심은 씨앗이 잘 자랐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농작물이 하나 더 늘었네.

소박한 농민

몇 년 더 지나면 여기 황무지를 개간하고, 남는 식량을 마을 사람들한테 공급할 수 있을 거야.

허당기 있는 소녀

네가 말한 그 사람들…… 다 아는 사람들이야?

소박한 농민

아니…… 몰라.

허당기 있는 소녀

근데 왜 신경 써?

소박한 농민

으음…… 서로 배려하고,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당연한 거 아냐?

허당기 있는 소녀

넌 여기서 고생해서 자급자족하는데, 그 사람들이 너 도와준 적 있어?

소박한 농민

지금 당장은 도와주지 못해도, 나중에 언젠가는……

허당기 있는 소녀

그러니까 네가 그 사람들한테 양식을 나눠주는 건, 나중에 보답을 받기 위해서네?

소박한 농민

꼭 그렇다기보단…… 아이 참! 너 때문에 자꾸 헷갈리잖아.

허당기 있는 소녀

……나도 헷갈리는걸.

소박한 농민

선현들이 썼던 책을 봤던 적이 있거든. 거기에 “세상 만물을 사랑하라”란 말이 적혀 있었어. 뭐 대충 사람이란 모름지기 주변 사람들, 그리고 모든 꽃과 풀과 나무를 사랑해야 한단 뜻이지.

소박한 농민

내가 말솜씨가 없어서 잘 설명은 안 되는데, 아무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꽃과 풀과 나무가 예뻐 보이면 더 심고 싶어지고, 배고픈 느낌이 싫으면 남들도 그런 걸 못 느끼게 하고 싶은 그런 느낌이랄까.

소박한 농민

뭐…… 너야 신선이니까 배고픈 게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지. 엄청 괴롭거든……

허당기 있는 소녀

그게 무슨 느낌인데?

소박한 농민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처럼 배가 아픈 거야. 온몸에 힘이 없고, 앉아도 누워도 소용없고, 마음까지 허전한 그런 느낌이랄까.

소박한 농민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괴로운 일이 하루에 전부 네게 쏟아지는 것처럼 말이야.

허당기 있는 소녀

……그건 또 무슨 느낌인데?

소박한 농민

예를 들어서…… 네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세상을 떠났어. 그리고 넌 그 사람들이 다신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허당기 있는 소녀

……

소박한 농민

……

허당기 있는 소녀

그래도 잘 모르겠는데……

소박한 농민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넌 이렇게나 오래 내 곁에 있었잖아.

소박한 농민

그래, 네가 곁에 있는 동안 난 너무 좋았어. 같이 얘기할 상대도 있으니까 일하는 것도 덜 힘들고.

소박한 농민

근데 어느 날 갑자기 네가 사라져 버린 거야, 그럼 난 되게 마음이 아플 거 아냐. 그래서 네가 좀 더 내 곁에 있게 할 방법을 생각하게 되겠지.

허당기 있는 소녀

……

소박한 농민

아니 꼭 네가 여기 남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고…… 전에 네가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 그런 게 생각나서.

넌 지금, 기쁘단 감정을 느낄 수 있니?


화생

“신농”님을 바보라 부르시다니……

이곳에 있는 나이 많은 농부들이 농작물을 수확할 때 절대 고개를 들지 말라고 하는 것, 들어본 적 있어?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농작물을 벨 기운이 있는데, 고개를 들면 끝이 보이지 않는 농경지 때문에 걸어갈 힘도 없어진다고 해.

인생은 겨우 수십 년이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틈은 없어, 지금 앞에 주어진 것만 하기도 벅찬 법이니까.

하지만 네가 한 가지 일에 전념한다면, 언젠가 자기도 모르게 이미 멀리 왔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신농이 세상을 떠나던 때, 대황성의 농작지가 얼마나 됐을 것 같아?

화생

지금의 절반 정도 아닐까요? 아니면 3분의 1 정도?

저기 남쪽에 산비탈 보이지? 그때 개간한 농작지는 저 산 바로 밑까지였어.

화생

겨우…… 그만큼이었나요?

그땐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빴어. 이런 오리지늄 장치도 없었고. 쟁기 하나 제대로 만들기도 무척 힘들었으니까.

산에 있는 암석들도, 북쪽에 있는 동토도 전혀 파낼 수 없었어. 그래서 남쪽에 있는 산비탈에서 북쪽에 있는 신농 조각상까지, 그때 대황성은 겨우 그 정도 크기밖에 안 됐지.

화생

그건 어디 적혀 있는 기록이에요? 어떻게 그리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건가요?

어디에 기록됐던 건지는…… 잊어버렸어.

화생

책에 적힌 바에 따르면, 말년에 신농께선 계속 북쪽으로 농작지를 개간하고자 했고, “신곡”을 찾으러 북쪽으로 가던 중 병사했다고 하죠.

화생

그런데 대체 왜 신농 조각상은 남쪽을 향하고 있는 건가요?

신농은 그저 자기 동포들이 추위에 안 떨고 안 굶게 하기 위해 한평생을 여기서 일했어. 아마 마지막까지 마음에 두고 있던 것도 고향 사람들이었겠지.

결국 마지막엔, 자기 고향을 바라보고 있었겠지.

화생

그러고 보니, 선생님께선 왜 농업천사가 되셨나요?

……어렸을 때 배가 고프다는 걸 한 번 느껴본 적이 있거든. 그때 이후로 결심했지, 더 많은 사람이 이런 느낌을 받지 않게 하겠다고.

화생

선생님께서도 굶주림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으셨군요……

그래…… 이미 아주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화생

신농님이랑 똑같네요……

대황성엔 아직도 많은 농부들과 농업천사들이 있어. 다들 많든 적든, 비슷한 이유가 있겠지.

해는 점점 높이 떠올랐다. 불어오는 바람에 온기가 더해지며 사람도 따뜻해졌다.

구름이 바람에 떠내려 가자, 한 줄기 햇살이 조각상의 흐릿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화생

……

화생

갑자기 든 생각입니다만, 염국에는 수많은 신화나 전설이 있죠. “신농”, “산을 파는 사람”, “염”……

화생

지금도 저희는 이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인지 신화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신농님께선 어쩌면, “한 사람”이 아니었던 게 아닐까요?

화생

신농께선 다른 이들이 신농님을 기억하지 않길 바라셨지만,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이 신농님과 같은 일을 하길 바라셨기에 굳이 이름과 용모를 숨기셨던 건 아닐까요?

화생

다만 그렇게 되면 신농님을 한 명의 사람으로서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겠네요……

만약 정말로 그런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대황성의 모습을 보곤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기억하는지 신경 썼을까?

어쩌면 그냥 부끄러워서 이름이랑 모습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지.


연로한 여성

후우……

자꾸 얌전히 안 돌아가면, 며칠 동안 밥 먹을 때 고기는 코빼기도 없을 줄 알아.

연로한 여성

슈…… 노인을 그렇게 괴롭히면 쓰나.

그러면 좀 노인처럼 행동하는 건 어때? 이 날씨에 얇은 옷 하나만 걸치고 눈을 보러 나가다니, 참 대단하네. 오늘은 소한인걸.

연로한 여성

알지, 정말 조금도 안 틀리고 매번 이 계절이 되면 허리가 아파오는걸…… 내가 어떻게 누워 있겠어.

연로한 여성

올겨울이 이렇게 추우니, 내년 봄에 얼어붙은 땅에서 제대로 꽃이 피긴 하려나 모르겠네……

그건 지금 네가 걱정할 일이 아냐. 자꾸 그렇게 몸을 챙기지 않으면 내년의 봄을 맞이할 수 없을지도 몰라.

연로한 여성

그럼 안 되지…… 내년 봄에 또 한 번 북쪽으로 가려고 했는걸. 저번 동북쪽에 있는 숲에서 길을 잃었으니, 이번엔 서쪽 길로 가야겠어.

……날 화나게 하려고 작정을 했구나.

네가 땅에 묻히면, 여기에 조각상을 세우게 할 거야. 네가 계속 바라온 북쪽을 대신 지켜봐 주도록 말이야.

연로한 여성

그럼 더할 나위 없겠네.

연로한 여성

대신 절대 지금 모습으로 만들지는 마, 못생겨 죽겠으니까.

연로한 여성

옷도 네 동생이 보내준 옷으로 만들어 줘, 난 그게 좋더라.

연로한 여성

내 정신 좀 봐, 그러고 보니 못 본 지 벌써 몇 년은 됐네. 마지막으로 한번 볼 수 있으려나……

연로한 여성

시간이 참 빨라…… 널 만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십 년이 지나버렸네.

이 몇십 년 동안, 대황성의 농작지는 두 배나 커졌어. 매년 수확량도 2배 이상으로 늘어났고…… 다들 널 “신농”이라 부르고 있어. 이젠 만족해야지.

연로한 여성

늘 욕심을 부리는 게 사람이야.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연로한 여성

일 년 동안 벼로 이모작을 하고, 이모작을 하면 또 삼모작을 하고 싶어지는 법이고, 밭이 백 묘 생기면 바로 또 이백 묘가 생겼으면 좋겠고……

연로한 여성

언젠가 내가 여기 앉았을 때, 대황성의 끄트머리가 어딘지 한눈에 다 안 들어오는 날이 오면, 네가 전에 말했던 그림 같은 풍경에 사계절 내내 봄 같은 장소에 가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네.

좋아. 병이 다 나으면 내년 봄에 바로 데려가 줄게.

연로한 여성

또 거짓말하네…… 너 거짓말할 때마다 눈을 세게 깜빡이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

연로한 여성

슈……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잖아.

당연하지. 얘기했었잖아. 널 만나기 전부터 난 이미 익숙했다고.

생로병사는 만물의 법칙이니까……

난……

연로한 여성

이제, 느껴졌어?

뭐라고?

연로한 여성

마치 '사람'처럼……

연로한 여성

아주 작은 일에도 기쁘고, 알고 있는 결말이었지만 슬프고, 또 기대하고, 아쉽고……

연로한 여성

네 마음이 느껴져…… 사람은 바로 이런 공통된 감정 때문에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거야.

넌 나한테 그거 하나 알려주는 데 평생을 바쳤구나…… 좋은 선생님은 못 되겠네.

연로한 여성

그래서 내가 가고 나면, 나 대신 여기 있을 거니?

연로한 여성

난 네가 여기서 수호신 노릇 하는 거 싫어. 그냥 사람으로서 여기 살았으면 해.

연로한 여성

우리가 갈고닦은 농사 기술을 젊은 사람들한테 알려줘. 넌 똑똑하니까 나보단 잘 가르칠 거야……

……

사람들은 자기 동포들이 배불리 먹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이 추운 설원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 있었다는 걸 기억할 거야.

연로한 여성

왜 한 사람이야, 신선도 하나 있었는데. 사람 모습을 하고 내 곁에 이렇게나 오래 같이 있어주면서까지 말이야.

연로한 여성

그래도 괜찮아. 넌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으니, 사람들은 네가 몰래 인간 세상에 온 신선인지 모를 거야.

연로한 여성

난 못 보겠지만 언젠가 대황성도 네가 말하는 그런 장소가 될 수 있겠지…… 그땐 많은 사람들이 너와 함께 그 풍경을 보게 될 테고, 너도 외롭지 않게 될 거야.

연로한 여성

내년에 저쪽 산비탈에 꽃이 피면, 화환을 만들어 줄래?


화생

선생님,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전 먼저 가서 모내기에 쓸 물건을 준비하겠습니다.

화생

올해 성과가 어떻게 되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래, 가 봐.

봐, 다들 널 기억하잖아.

명성에 관심 없던 네 모습은, 오히려 천 년 넘게 사람들 기억 속에 남게 됐어…… 참 뭐라고 해야 할지.

파울비스트가 물어온 한 떨기의 작은 꽃이 조각상의 갓 위로 떨어졌다.

마치 둥지를 지을 좋은 장소를 찾았다는 듯이, 파울비스트가 하나둘 물어온 꽃잎들은 금세 수북이 쌓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 꽃잎이 갓의 챙 위를 가득 채웠다.

그가 떠난 후, 꽃은 흐드러지게 피었구나. 오는 길은 없음을 기억할 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