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이 무슨 소용인가
운청평은 복수를 꿈꾸던 한 노인을 구했고, 그 칠순 노인의 사부가 되었다. '원한'인가 '포용'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이치는 또 어떻게 무공으로 말할 것인가?
고통, 뼈가 부러지는 고통.
그 일격은 그의 가슴을 정통으로 강타했었다. 그의 마지막 기억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던 것과 죽음을 앞두고도 굴복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밀려드는 극심한 수치심이었다.
그는 어디에 있지? 이미 죽은 건가? 아니면……
절벽 아래가 이렇게 부드러웠었나……?
으윽……
여기는…… 어디지?
(고개를 숙여 감싸져 있는 상처를 본다)
누군가 구해준 덕분에 아직 죽지는 않은 모양이군……
다친 노인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고, 침대에서 내려와 자신의 검을 집어 들었다.
그는 집주인의 은혜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박하고 깨끗하면서도 가지런하게 정돈된 집 안을 보아하니, 집주인은 틀림없이 성실한 사람인 듯했다.
책상 위에는 노트 한 권이 펼쳐져 있었는데, 노인은 그 필체에 매료되어 저도 모르게 다가가 책장을 넘겨 보았다.
정말 안정적인 필체로군. 붓끝에 조금의 허술함도 보이지 않아. 만약 서예가가 아니더라도, 수십 년간 연마해 온 고수임이 분명해.
……《무도를 묻다》…… “십 년 동안 천하의 무를 기록했으나, 오히려 뜻은 더욱 아득해질 뿐이로다.”
노인은 다시 책장을 넘겼고, 순간 희끗한 수염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것은 사람이 아주 정밀하게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거기엔 노인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 바로 적의 공격을 맞고 절벽으로 떨어졌던 그 대결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옆 주석에는 비겁한 공격에 대처하지 못했던 그의 실수가 날카롭게 지적돼 있었고, 심지어 묘수라고 할만한 대응책까지 제시돼 있었다. 노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가슴을 억누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노인은 벽을 짚고 빠르게 바깥으로 나섰다. 나와 보니 집 밖에는 작은 강 하나가 흐르고 있었고, 강 위에는 밧줄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 밧줄 위로 한 젊은이가 걸어 오고 있었는데, 밧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젊은이는 뒷짐을 진채로 식재료를 들고선, 마치 평범한 일상 훈련인 것처럼 익숙하게 밧줄 위를 걸어왔다. 젊은이는 노인을 발견하더니 곧바로 다가왔고, 이 집의 주인임이 분명해 보였다.
일어나셨군요, 어르신. 몸은 좀 어떠신가요?
너…… 그놈과 무슨 관계냐!
네? 뭔가 오해하신 듯합니다. 전 어르신과는 처음 뵙는 사이입니다. 산책하던 중 절벽에서 떨어진 어르신을 발견했고, 의식이 없으셔서 집으로 모셔 온 겁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나와 그놈이 싸울 때, 네 놈도 분명히 그곳에 있었잖느냐!
아, 혹시 제가 무공기록부에 기록한 초식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주제넘지만 제가 당시 상황을 그저 추측해 본 것입니다……
추측?!
어르신의 손에 있는 검에 의한 굳은살, 가늘고 긴 팔의 근육과 발달한 아킬레스건 그리고 검흔으로 어르신께서 초식을 전개할 때의 습관을 알 수 있었고, 여기에 어르신의 상처까지 고려해 대략적인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전 군대에서 오랫동안 무공을 기록했었습니다, 그냥 보잘것없는 재주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자네를 오해한 것 같구먼?
크흠…… 실례했구먼. 이 늙은이는 진수청이라 하네. 산 위 검관의 주인이지. 은인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나?
후배의 성은 운, 이름은 청평입니다. 여가를 틈타 두루 돌아다니며 수양 중입니다.
수양이라…… 다만, 젊은 사람이 탁상공론에만 빠지다 보면, 진정한 수행을 그르칠 수도 있다네. 자네가 쓴 대응책은 종이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명심해야 할 걸세.
어르신께선 자신의 검을 잘 이해하고 계시니, 지당 옳으신 말씀입니다. 당시 어르신께선 검을 휘둘렀을 때 중심이 이미 무너졌을 테고, 거기에 검 자체의 무게까지 더해졌으니, 목덜미를 찌르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의 검 끝을 정확히 급소에 떨어지게 하려면, 작은 변화 하나면 될 것 같습니다.
허! 그럼 말해 보게, 내가 뭘 바꿔야 하지?
어르신께서 쓰시는 검은 특이한 형태로, 검 끝이 일반적인 검보다 무겁습니다. 아마도 어르신께서는 이미 익숙해져서 불편함을 못 느끼셨겠지만, 검반에 검지를 걸어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터무니없는 소리! 검을 쥐는 자세를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줄 아는가?!
수년, 어쩌면 십수 년의 훈련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저는 단지 가능성을 말하는 겁니다. 실행 여부는 어르신께서 결정하시는 것이죠.
진수청은 의심스러운 기색을 하면서도,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자리를 떠났다. 잠시 뒤, 집 뒤편에서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세밀하게 검법을 연마하는 듯,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멈췄다가 오래지 않아 다시 울리고 또 멈추길 반복했다. 그러다 노인이 검을 든 채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알았지?
바꾼 건 검의 무게중심 단 한 치뿐이지만, 수많은 대결은 딱 그 한 치로 갈리는 것이니까요.
자네 나이에,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받으시게나!
이 절은 구명지은에 대한 절일세!
에……?
그리고 이 절은……
진수청은 목을 뻣뻣하게 세운 채, 마치 억지로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처럼 오랜 시간을 버티다 비통하게 한숨을 내쉬고, 마침내 다시 한번 절을 올렸다.
부디 이 늙은 검객을 제자로 받아주시오!
……예?
어르신, 굳이 저를 따라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가인지라 습해서 상처에 좋지 않은 데다가, 절 사부로 모신다는 얘기도 그만해 주십시오.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전 한낱 무공을 기록하는 사람일 뿐인데, 어찌 감히 자신을 사부라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한참 자네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린수를 잡고, 또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물과 린수는 하나이니, 눈으로 마음을 보고 있었지요……
아……
하앗!
일찍 말하지 그랬나! 다 떠올랐구먼, 내가 건져 주겠네. 젊은…… 아니지, 사부님, 몇 마리가 필요하신지요?
……
어르신…… 제 밭에 있던 잡초들은…… 어디로 간 거죠? 그리고 상처는 좀 어떠십니까?
하하하! 젊다 보니 역시 게으름 피우는 걸 좋아하더군. 고마워할 거 없네. 잡초는 모조리 다 뽑아버렸고, 물도 길어왔으니까. 내 이 늙은 몸도 아직 쓸 만하다네. 더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게나!
……
어르신, 이리 앉으세요. 저희 이야기 좀 하죠.
운청평은 말없이 걷어 올린 소매를 풀어 내리고, 잡초를 뽑으며 운동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그는 민둥민둥해진 밭에 앉아 한숨을 쉬며, 지금까지 일부러 꺼내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다……
어르신께서는…… 왜 굳이 저를 사부로 모시려는 겁니까?
하아. 쯧…… 하아! 그래, 솔직히 말하지. 무인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치욕은 참을 수 없다 했던가. 내겐 갚아야 할 원한이 있다네.
난 믿었던 제자에게 배신을 당했네. 그놈에게 내 모든 걸 전수했건만, 그 녀석은 푼돈에 굽실거리며 내 검관의 명예를 더럽히더니, 나중엔 나더러 그 땅을 자기에게 팔라고 겁박까지 하더군.
내가 20년만, 아니 10년 만이라도 젊었다면, 그놈이 감히 나를 공격할 꿈도 꾸지 못했을 텐데 말이야!
어르신께선 검술이 향상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놈이 비겁한 공격을 했든 안 했든, 그놈에게 진 것은 나 진모의 실력이 부족했던 터이니, 이는 나도 인정하는 바네!
하지만 이 원한을 갚지 못한다면, 내 어찌 이 분함을 삭히고, 강호에 발붙이고 있을 수 있겠는가?!
……결국 어르신께서 제게 배우고자 하는 건, 복수의 검이군요. 저는……
흑……
자, 얘야, 이 약엔 진통제가 들어 있으니 다 마시고 나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 병실엔 평소에 나뿐이니, 굳이 그렇게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을 필요는 없단다.
(쓴 약을 마신다)
정말 용감한 아이구나. 자, 이제 푹 자렴. 그래야 몸이 나을 수 있지.
의사 선생님…… 저희 부모님께선 강도들에게 돌아가셨어요, 그 후론 저 혼자뿐이에요……
내 듣기로는, 네가 검을 들고 부모님을 구하려다 강도에게 당해서 논두렁에 떨어졌는데도…… 종사님이 널 발견할 때까지 계속 버티고 있었다고 하던데, 참 강한 아이구나.
앞으론 제가 저를 책임져야 해요…… 제 상처에 대해서……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정말 제가 다 나을 수 있나요?
물론…… 그럴 거야.
음…… 낫고 나면, 저는 어떻게 되나요?
후우…… 그래, 말해줄게. 안심해도 돼, 네 부상은 치명상은 아니야. 회복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야.
……네.
……하지만 설령 걷게 된다 하더라도, 네 체질은 보통 사람보다 약해질 거야. 앞으로는 몸을 비 오는 날의 모래성처럼 보호해야 한단다. 보통 사람에겐 무해한 운동이나 충격조차도, 모래성을 무너뜨릴 순 있으니까 말이야.
네. 감사해요, 솔직히 말씀해 주셔서……
……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는다) (소리 없이 흐느낀다)
……모든 게 다 좋았었는데…… 그 사람들이 오기 전까진, 모두 좋았었는데……
아이는 힘없는 주먹으로 침대를 두드리며 분노를 터트렸다. 한 번 또 한 번, 붕대가 다시금 피로 물들었지만, 아이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군의관은 말이 없었다. 비참한 운명을 짊어진 이의 앞에선, 다른 사람의 그 어떤 위로도 그저 공허할 뿐일 터였다.
……아, 바깥에서 나는 소리 들리지? 종사님께서 병력을 이끌고 돌아왔단다. 네 가족을 습격한 그 강도 무리를 포로로 잡으셨다고 하더구나.
운청평은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앉기 위해 애썼다. 그 분노에 찬 눈빛을 본 군의관은, 저도 모르게 아이를 부축하여 원수들이 사형받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했다.
하지만 간신히 일어나 앉은 아이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여러 번 망설인 끝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벽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요. 보지 않을래요…… 지금, 이 고통이 제 평생 가는 거라면…… 매번 아플 때마다 그 얼굴들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전 원한을 내려놓은 게 아니라…… 복수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놓아준 거예요.
사부?
어르신? 혹시…… 제 잠꼬대가 어르신을 깨운 건가요?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 하나쯤은 있는 법이지.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네.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지만, 다가올 날은 바꿀 수 있겠죠.
뭐라 중얼거리는 겐가. 별일 없으면 난 이만 다시 자러 가겠네.
어르신께서 저를 꼭 사부라 부르시겠다면, 제가 감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제게 반드시 한 가지 약조해 주셔야 합니다……
말해보게나!
수련하는 동안에는, 어르신의 검을 잡으시면 안 됩니다.
뭣이, 검을 수련하는 데 검을 안 쓴다니?! 난 평생 검법을 가르쳐왔다네, 난……
어쨌든 지금 어르신은 제 제자입니다.
쓰읍……
수련 첫날
어르신, 허리요, 세 번째입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허리를 집어넣으며) 복수를 위해서라면……
아, 허리를 움직이니 다리 동작이 잘못되었습니다.
(관자놀이에 핏대가 튀어나오며) 참자……!
'검끝'이 떨어졌습니다. 다시 시간을 재겠습니다.
이건 그냥 막대기……
마음속에 검이 있다면, 굳이 검 모양을 따질 필요는 없지요…… 다리, 또 틀렸습니다. 다시 시간을 재겠습니다.
또?! 자네는 말은 부드럽게 하면서, 하는 건 왜 이렇게 독한 겐가! 대체 누구한테 배운 게야?!
무학의 수많은 이치라면 전부 제 선생님으로부터……
아니 내 말은, 이 괴롭히는 방식 말이야!
의과 형은 하나이며, 모든 것의 뿌리는 같습니다.
에잇! 보아하니, 자네도 그 말이 안 통하는 선생님 밑에서 고생깨나 했겠구먼!
어르신께선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겠지만, 제 선생님께선 정말 이치를 '말'로 가르치신 적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이치일수록,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선생님께선 제가, 스스로 무학 안에서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청평, 허리를 펴라. 허리의 힘을 빌려 검을 앞으로 보내야 한다.
……
또 호흡이 흐트러졌구나, 잠시 쉬었다 할 테냐?
아닙니다, 아직 계속할 수 있어요. 선생님께서 저를 훈련에 참여하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
마음속에 뭔가 의문이 있느냐?
네, 있습니다. 선생님께선 혹시 저 같은 사람이 이 연무장에 서는 것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다른 이들은 모두 큰 검과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데, 선생님께선 제게 그저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검으로 삼아 들게 하셨습니다. 다른 이들은 벌써 나무 인형을 치고 있는데, 전 아직도 고작 이 가볍고 작은 마른 나뭇가지로 이 바위를 찌르기만 하니……
물론, 당장 지금 제 손으로 들 수 있는 건 겨우 이 마른 나뭇가지 하나뿐이지만, 이건 너무 약해서 조금만 힘을 줘도 산산조각 나버립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 저더러 이 마른 나뭇가지 하나로 제 허리보다 높은 바위를 밀라고 하셔서, 전 매일 여기서 이것만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헛수고 아닌지요?
제가 고작 마른 나뭇가지 하나로 이 거대한 바위를 움직일 수 있다고, 어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미리 네게 분명히 말해줬어야 했는데. 내 너를 가르칠 때, 소홀히 한 적이 있느냐?
아니요, 한 번도 없으셨어요.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제가 해낼 수 있다고 믿으시는 건가요?
물이 바위 위를 흐르고, 바람이 산등성이를 스쳐 가는 것을 그 무엇이 막을 수 있겠느냐.
물이 바위 위를 흐르고, 바람이 산등성이를 스쳐 지나간다…… 그렇다면, 결국……
이제야 알겠어요. 물은 바위 위를 흐를 뿐, 바위와 억지로 부딪히진 않죠. 이 바위를 밀어내려면, 부드러움을 사용해야 하는 거였군요.
다리에서 허리, 허리에서 팔로…… 아.
바람이 산등성이를 스쳐 지나간다는 것은, 분명 유연하면서도 정교한 힘을 써야 한다는 뜻이겠네요.
호흡을 단전으로 가라앉히고, 약점을 관찰하고……
아! 윽…… 부딪힌 손가락이 부었잖아……
부러졌네……
또 부러졌어!
벌써 석 달이나 됐는데…… 이 마른 나뭇가지! 이…… 꽉 막힌 돌덩어리! 이…… 쓸모없는 팔! 빌어먹을 강도 놈들!
겨우 이딴 마른 나뭇가지로, 헛된 꿈을 꾸었던 거였어!
(흐느낀다)
하늘은 무심하게도 거센 비만 쏟아냈다. 차분히 눈물을 훔친 소년은, 다시 한번 마른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지난 석달 동안 꿈쩍도 안 하던 그 바위 앞으로 걸어갔다.
하반신, 허리, 손. 허리의 힘을 빌려, 검을 앞으로 보낸다……
……
하반신, 허리, 손. 민다.
……
비는 점점 더 거세졌다. 소년은 빗소리를 들으며 어느샌가 마음이 잔잔해졌음을 느꼈다. 소년은 평소처럼 자신의 내면에 집중했고, 이에 물이 그의 신발 밑창까지 차오르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빗물에 젖은 땅은 낯설게 느껴졌고, 마른 나뭇가지의 감촉도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빗속에서, 소년은 이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물은 바위 위를 흘러, 땅속을 적신다. 힘을 빌려 내질렀고, 그 힘은……
돌을 움직였다.
소년은 눈을 떴다. 거대한 돌은 조금 전 그에 의해 아주 미세하게나마 움직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끝없는 하늘, 산과 강을 집어삼킬 듯한 비를 마주하며, 바위의 하찮음에 웃음을 흘렸다.
수련 한 달 후
어르신의 기술이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군요. 내일부터는, 이 막대기 대신 어르신의 검으로 바꾸겠습니다.
처음엔 항상 검을 손질하시더니, 요 며칠 동안은 그 검을 전혀 손보지 않으시더군요. 오늘 밤에는, 그 검을 꺼내시는 게……
그럴 필요 없네. 이 막대기가 손에 익었으니 계속 이걸 쓰겠네.
하지만 결국엔 어르신의 손과 검이 같이 합을 맞추어야……
일단은 살기를 다듬고, 검술 자체에 집중하겠네…… 애초에 자네가 나더러 검에서 손을 떼라고 한 건, 이걸 의미한 게 아닌가? 내 기꺼이 다시 다듬을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네.
알겠습니다.
수련 몇 달 후
또 린수를 관찰하는군. 뭘 또 자리까지 내주는가, 난 관심 없다네.
지겨워지셨군요.
린수를 실은 물살은 변화가 무궁무진하지. 자네가 강가에서 뭘 보고 있는지 이해하고 나서부턴 나도 여기 심취하게 되어버렸는데, 뭐가 지겹겠나?
다만, 매번 몰입해 보다 보니, 저 나뭇잎 하나하나의 떨림, 강물의 잔잔한 물결 한 가닥 등등 천지 만물이 다 내 눈에 들어오게 되는 바람에, 정신이 너무 고되더군.
정말 감탄스럽군. 이렇게나 집중해서 보면서, 도리어 마음은 이렇게 차분하다니…… 사부는 역시 사부야, 난 아직 멀었어.
어르신, 저를 위해 린수 하나만 건져주시겠습니까?
그게 뭐 어렵겠나?
그리 말한 노인은 물 위를 손으로 내리치지 않고, 무릎을 꿇고 앉아 물살을 주의 깊게 살폈다. 이에 운청평은 미소를 지었다.
물을 통해 린수를 보고, 린수의 방향을 읽는다. 그 흐름을 따라 가볍게 손을 대자, 린수가 가볍게 운청평 옆에 있는 통속으로 뛰어들었다.
(손뼉을 치며) 어르신, 이 린수 한 마리가 저희의 작별 선물이 될 것 같군요. 오늘부로, 전 더는 어르신께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마음을 닦고 몸을 다스리는 것, 그 이후의 것들은 누구도 가르칠 수 없으니, 오직 스스로 걸어가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자라온 곳을 떠날 때, 제 선생님께서도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었지요.
……마음을 닦고, 몸을 다스린다라. 좋군, 좋아.
그럼, 이제 떠나겠으니, 다신 보지 말게나.
운청평은 그 말에 놀라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답했다. 노인이 운청평에게 길게 읍하는 모습에선, 어렴풋이 초연함마저 느껴졌다.
그는 활짝 웃으며, 깊은 숲속으로 사라졌다. 평소 무공 연습 소리로 가득하던 집은, 이제 텅 비어 버렸다.
집주인은 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는, 몇 안 되는 물건을 챙겨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오직 오래된 검 한 자루만이 석양 속에 기대어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