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해와 뜨는 해
히비스커스는 평소처럼 체르니에게 약을 전해주러 갔다가, 그가 피아노 수업을 열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그녀는 체르니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데……
등장 오퍼레이터: 히비스커스, 체르니, 이스티나, 히비스커스 더 퓨리파이어
휴……
히비스커스 씨, 또 체르니 씨한테 약을 전하러 오신 거예요?
네.
정말 고생하고 계시네요.
에휴. 체르니 씨도 나쁜 사람은 아닌데, 제때 치료만 받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맞아요, 자신을 조금만 더 소중히 여겨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물론 그러면 또 체르니 씨답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먼저 가볼게요. 이따 혹시 점심 같이 드실래요?
좋아요.
……
체르니 씨,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세요.
어?
지금까지의 경험한 바로는, 대체로 이 시간에 그녀는 항상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 바람에 체르니 숙소의 예비 열쇠를 신청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히비스커스가 온다는 걸 기억하는 듯했다.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숙소의 자동문이 열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체르니의 숙소로 들어갔다.
아무렇게나 흩어진 악보, 각종 인스턴트 커피 봉지, 오리지늄 아츠 연구에 관한 서적과 인상을 한껏 구긴 채 그사이에 파묻힌 엘라피아.
체르니의 숙소는 대체로 이런 모습이었다.
……
대체로 이런 광경은 그가 창작 중이라는 뜻이었고, 그 기간에는 누구도 그를 방해할 수 없었다.
의료부의 상주 의사들이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도해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른 듯했다. 그의 앞쪽에는 악보가 없었고, 그도 창작으로 바쁜 것 같아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그녀는 오히려 살짝 화가 났다.
체르니 씨, 창작으로 바쁜 게 아니라면 의료부에 와서 검사를 받으셔야죠.
예외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히비스커스 씨……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럼요, 제가 맞춰서 왔겠죠. 체르니 씨가 이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요.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피아노 수업을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 음, 후방 지원부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어? 어?? 네???
응? 책상에 뭔가 놓여있는……
이건 저번 신체검사 보고서?
……
잠깐만요, 체르니 씨. 아직 검사를 안 받으셨잖아요!
……체르니 씨가 수업을 연다는 소식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릴 줄은 몰랐어.
혹시 여기가 체르니 님의 피아노 수업을 등록하는 곳인가요?
네, 이 줄에 서서 기다리시면 돼요.
앗, 줄이 이렇게나 길다니! 그러게 엄마가 일찍 좀 일어나라고 했지? 하여간, 말을 안 들어.
엄마, 난 피아노 배우기 싫어!
라이타니엔에서 오신 유명한 분이셔. 이런 기회가 날마다 오는 줄 아니?
널 위해 이러는 거잖아.
……알겠어.
아가씨, 체르니 님은 성격이 까칠하다고 들었는데 특별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아, 너무 걱정 마세요.
체르니 씨는 로도스 아일랜드에 오신 뒤로 전보다 성격이 많이 좋아지셨거든요.
네, 감사해요.
허리 펴고 똑바로 서. 표정도 좀 풀고. 들어가서 잘해야 한다.
응……
……
그런데 체르니 씨가 빅토리아에서도 유명한가 봐요?
네? 그분의 조수 아니셨나요? 정말 모르시는 거예요?
……죄송하지만 전 의사예요.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질서 유지를 위해 온 거고요.
아아, 의사셨구나. 아무래도 음악 쪽엔 조예가 깊지 않으신가 보네요.
체르니 님의 《아침 그리고 저녁》은 빅토리아의 귀족들 사이에서도 정말 유명했어요.
그렇군요.
아아, 체르니 님이 치료 때문에 로도스 아일랜드에 오셨다는 소식에 운이 좋으면 한 곡 정도 연주하는 걸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성격이 괴팍한 분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수업을 여실 줄은 몰랐네요. 혹시 그 이유를 아세요?
잘…… 모르겠어요.
체르니 씨도 기분 전환이 필요하신 게 아닐까요?
후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번에 돌아가면 뭇 부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게 될 것 같아요.
체르니 님, 왜 그러세요?!
……죄송하지만 급한 일이 생겨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앗, 잠시만요!
(나지막이) 표정이……
……제가 가서 확인해 볼 테니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히비스커스는 체르니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고 여기며 뒤를 바짝 쫓아갔다.
놀랍게도 체르니는 숙소로 돌아가지 않은 채 모퉁이를 돌아 훈련실로 향했다.
훈련실로 들어간 그는 거칠게 샌드백을 치기 시작했다.
체르니는 그녀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기운이 넘치는 듯했다.
그 귀족 녀석! 내 앞에서! 음악에 대한 얄팍한 지식을 계속해서 늘어놓고는!
그 얄팍한 지식 때문에, 자신의 아이가 얼마나 잘못된 지식을 배우게 됐는지 알긴 하는 건가?
음악이, 그럴 리가 없잖아!
아이가 음악을 싫어하는 건, 전부 부모 된 사람들의 천박함 때문이야!
그 전 사람도! 마찬가지야, 그 전전 사람도……
아, 그래도 그 사람은 괜찮았어. 자신의 아이가 조금이나마 음악의 영향을 받길 바란 것뿐이니까……
……
체르니 씨.
히비스커스 씨, 여긴 어쩐 일이시죠?
몸이 안 좋으신 줄 알았어요.
별일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화를 푸는 중이지요.
라이타니엔에 있을 때도 종종 저런 귀족들을 봐왔습니다.
자식들이 피아노의 대가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게르트루트를 통해 아이들을 제게 보냈지요.
물론 가르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만, 그들 중 대다수는 진심으로 자신의 아이가 피아니스트가 되는 걸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절 초대해 연주하게 하거나 게르트루트와 이야기하길 원했죠.
진심으로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이들도 단지 자식이 귀족의 신분에 걸맞은 음악적 소양을 갖추길 바란 것뿐이었어요.
그렇게 대부분 아이가 틀에 박히고 강압적인 수업을 받게 됩니다.
그런 부류를 만날 때마다 정말이지 참기가 어렵군요.
참, 운동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를 푸는 데 아주 효과적이군요.
체르니가 샌드백을 가리켰다.
……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순수한 건 아니에요.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애프터글로의 몇몇 이웃들도 제가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길 바랐습니다. 단지 특기로서 말이지요.
아, 몇몇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귀족에 비하면 그들은 귀엽기라도 하죠. 그래서 전 애프터글로의 분위기를 더 좋아합니다.
저를 속이는 건 괜찮지만, 음악을 대할 땐 솔직해야 하는 법입니다.
당신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귀족이 싫다면 차라리 수업을 열지 않는 건 어떤가요.
의료부에서도 체르니 씨를 걱정하고 있으니……
……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건 제가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 그렇기에 어떻게든 이 수업을 해야 합니다.
……
보호자를 상대하는 일이 힘드시다면 제가 가서 아이들만 들여보내달라고 얘기해 볼게요.
그리고 앞으로의 수업에도 보호자 동반을 금지할게요.
그렇게 되면 부담이 줄어들겠죠.
오오! 그것도 좋은 방법이군요.
그럼 그렇게 하죠.
……
체르니 씨, 신체검사 시간이에요.
체르니 씨?
히비스커스 선생님, 체르니 님을 찾으세요?
네.
체르니 님은 수업을 들으러 가셨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피아노 수업 시간이 아닌데요?
아, 저희 아이가 그러는데 요즘 체르니 님이 하이파티아 선생님의 역사 수업에 자주 가신다네요.
네? 제가 한번 가볼게요……
아, 잠시만요. 히비스커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선생님은 체르니 님의 주치의시니 발언권이 좀 있으시겠죠.
드릴 말씀이 있어요.
도와드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우선 말씀해 보세요.
잘됐네요. 저희 아이가 그러는데 체르니 님의 수업을 따라가기가 벅차다네요.
실제로 다른 보호자들도 아이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고요.
보호자 동반을 제한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수업 속도는……
……
아, 그렇다고 체르니 님더러 수업을 느리게 해달라고 부탁드리는 건 아니에요. 다만, 약간 조절해 주실 수는 없나 해서……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건가요?
네, 적어도 저희 아이는 그렇게 생각한다네요.
……
제가 가서 얘기해 볼게요.
다행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제 수업도 오늘부로 끝이에요.
다음 수업에는 하이파티아 선생님이 돌아오실 테니까, 다들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이스티나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스티나 선생님!
……
저기 이스티나 씨,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제가 되려 묻고 싶은 질문인걸요.
며칠 전, 체르니 씨가 갑자기 역사 교실로 찾아오셨어요.
처음엔 하이파티아 선생님도 장난인 줄 아셨대요. 근데 체르니 씨가 진지하게 수업을 들으며 필기까지 열심히 하시더래요.
원래 교실은 모든 학생을 받아주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저희도 딱히 별말은 안 했어요.
그렇구나, 감사해요.
흠…… 역시 그런 거였군.
학생의 질문에는 부정이 아니라 답을 이끌어 내는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거였어.
중요한 건 곧바로 이해시키는 게 아니라 이해할 수 있게 방향을 열어주는 거지.
이번에도 정말 값진 수업이었어.
체르니 씨, 언제부터 이렇게 공부에 열정적이셨죠?
그게 아니라 수업을 하는 방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수업이란 게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전에는 학생을 가르치는 게 에벤홀츠와 크라이데를 가르치는 것처럼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제 연주를 듣고 그 속에 담긴 오묘하고도 깊은 뜻을 깨닫는다면, 자연스레 실력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틀렸습니다.
그걸 해내는 이들은 많지 않았죠.
……그게 오히려 정상 아닌가요.
그 점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아주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아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할 때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더군요.
가끔은 물어볼 가치도 없는 질문이란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질문들은 기초가 부족하다는 것과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수업을 들으신 거예요?
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 역시 심오한 일이라는 걸 깊이 깨달았습니다!
정말…… 이 일에 진심이시네요.
당연하지요.
그런데…… 이유가 뭔가요?
무슨 말씀이시죠?
아. 죄송합니다만, 히비스커스 씨.
수업에 가야 해서 그런데, 신체검사를 좀 미뤄도 될까요?
……알겠어요.
체르니 씨가 피아노 수업을 시작한 지 제법 되었죠?
네.
여러 환자분들이 자녀를 수업에 보냈고, 심지어는 직접 신청한 사람도 있었어요. 물론 저희 동료 중에서 수업을 신청한 사람도 있었고요.
지금 와서 보니까 체르니 씨의 영향력이 정말 크지 뭐예요.
네.
히비스커스 씨, 왜 그러세요? 영 집중을 못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체르니 씨는 왜 피아노 수업을 시작하신 건가요?
음악적 수준이 절정에 다다랐으니 학생을 몇 명 받아 육성하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닐까요?
음악적 수준이 절정에…… 다다랐다고요?
그렇지 않나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체르니 씨의 곡을 알고 있잖아요.
듣기로는 라이타니엔의 쌍둥이 여황조차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던데요.
게다가 히비스커스 씨도 전에 얘기해주셨잖아요. 애프터글로에서 있었던 일과 체르니 씨가 위치킹의 여음과 싸웠던 일 말이에요.
그런 일을 겪고도 살아남았는데, 뭘 위해 나아가며 뭘 더 추구하겠어요?
제가 체르니 씨였어도 똑같이 수업으로 돈을 벌고 평온한 나날을 보낼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체르니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럼 어떤 사람일 것 같은데요?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음악의 끝을 추구할 사람……
그런 사람을 존중하기에 저희도 예외를 두는 거잖아요, 아닌가요?
하긴,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 의료부로 끌고 와서 치료했겠죠.
그런 사람이 지금은……
들어오세요.
선생님, 여기 계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왜 그러세요?
우리 아이가 오늘 체르니 님이 수업에 안 오셨다고 하는데, 혹시 어디가 편찮으신 건 아니죠?
……
잠시만요, 제가 확인해 볼게요.
체르니 씨, 체르니 씨!
……
실례지만 좀 들어갈게요.
히비스커스는 방문을 열자 들려오는 소리에 하마터면 잠식될 뻔했다. 그녀가 문을 열기 전까지도 그 소리는 한참 동안을 방안을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건 체르니의 곡이 아니었다. 그녀 같은 문외한에게도 서투름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학생들의 연주인 듯했다.
그 연주들은 무질서하게 얽히고설켜 안 그래도 어지러운 방을 한층 더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늘 엉망인 방을 보며 한 소리 하던 히비스커스였지만, 지금 이 순간 제일 걱정되는 건 방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사람이었다.
체르니 씨?!
체르니 씨!!!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지난 신체검사 수치는 전부 안정적이었는데……
음? 으음…… 몇 시지?
어? 이런, 수업에 늦었군!
체르니 씨?!
아, 히비스커스 씨.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늦잠을 잔 모양입니다.
수업을 재촉하러 오신 겁니까?
……아뇨, 체르니 씨가 무사하신지 확인하러 온 거예요.
아,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시죠. 마음에 드는 학생을 길러내기 전까지 죽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어젯밤엔 뭘 하신 거예요, 체르니 씨?
아아, 이 음악을 들어보세요. 제 학생들의 작품입니다.
아이들 각각의 개성을 찾아내, 각자에게 딱 맞는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암…… 그러고 보니 요즘 확실히 잠이 부족하긴 한 모양입니다.
……
질문이 하나 있어요.
음?
제가 아는 체르니 씨는 늘 음악적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음악가세요.
그런데 지금은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계시죠.
솔직히 전 두려워요.
왜 그러시죠?
꼭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계시니까요.
미래를 추구하기는커녕 후계자만 찾길 원하시잖아요.
의사인 저는 누구보다 광석병의 고통을 잘 알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 긍정적으로 맞서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에 온 이상 저희를 믿고 함께 역경을 극복하셔야죠!
잠깐, 누가 삶의 욕망을 포기했다는 겁니까? 저 말입니까?
네?
삶의 의지를 잃은 제가 어떻게든 후계자를 찾은 후,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생각하신 겁니까?
……네.
그렇게 보였습니까?
죄송해요.
……
한 가지만큼은 부정할 수 없겠군요, 히비스커스 씨.
애프터글로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때, 전 머나먼 타지에서 더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감동적인 음악을 선사하는 장면을 상상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제 신체검사 보고서를 본 후, 그렇게 멀리 갈 수 없다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깨달았지요.
전 제 운명을 탓하지 않습니다. 광석병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죽게 될 테니까요.
죽기 전에 음악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했으니 다른 사람에 비해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불만인 건 사실입니다.
전 더 먼 곳으로 나아가 더 많은 것을 듣고, 오랫동안 창작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수업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 말은 삶의 의지를 잃어서가 아니라 계속 살아가기 위해 수업을 하신다는 뜻인가요?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조리 있게 설명하기가 어렵군요.
잠시 침묵하던 체르니가 창가로 다가가 먼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이렇게 설명하지요.
이 대지의 다른 분야도 그러하겠지만, 음악도 영원히 오를 수 없는 정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제 숙명은 죽는 순간까지 그 산을 오르는 것입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광석병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산에서 내려와야 하는 순간이 올 겁니다.
하지만 그건 운명이니, 마냥 슬픈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학생들은 제가 걸어온 길을 따라 제가 다다랐던 곳까지 올라올 겁니다. 그리고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하겠지요.
그것이 바로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제 선생님과 선생님의 선생님께서 그랬던 것처럼요.
그들은…… 아니, 저희는 학생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지팡이를 짚고 산에서 내려올 때, 음악을 정복하기 위해 신나게 여정을 시작한 아이들 또한……
저희이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이 일몰이자 일출인 태양처럼 말이죠.
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걸 좀 봐주시겠습니까. 며칠 동안 이걸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네?
체르니가 어지럽게 놓여 있는 서류 더미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히비스커스에게 건넸다.
'연구비 신청서'라는 제목이 히비스커스의 눈길을 끌었다.
……이건?
라이타니엔 사람, 특히 제게는 음악과 오리지늄 아츠를 결합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타국 사람들에게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닌 것 같더군요.
그래서 진지하게 그 가능성을 분석해 보니 굉장히 장래성이 있는 분야라고 판단하였고, 연구비 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
……이건 말도 안 돼요.
네?
겉으로는 활기차 보이긴 해도, 체르니 씨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건강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시잖아요.
정말로 좋은 학생을 길러내고 싶다면,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몸을 소중히 하셔야죠.
……제가 지금껏 들은 것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의학적 조언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서류는 저한테 주셔도 돼요.
그리고 어서 수업하러 가세요.
아, 그건 어려울 것 같군요. 히비스커스 씨, 학생들에게 수업을 한 시간 늦추겠다고 전해주시겠습니까?
뭘 하시려고요?
이런 꼴로 학생들을 만날 수는 없잖습니까.
우선 세수를 좀 하고, 못다 한 손 관리까지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휴…… 네, 그렇게 전달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