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천년의 한탄

천년의 한탄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인연이 있던 상촉의 도시에 재방문하자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 니엔. 그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곳을 추억하기로 하는데……

등장 오퍼레이터: 니엔, , 라바, 저스티스 나이트


상촉, 507년, 대한, 소량의 눈


주검사

오, 왔군.

헬파이어

약속이니까요.

주검사

꼬박 100일이 걸렸네.

헬파이어

오늘 길에 눈이 내려 발이 좀 묶였어요. 안 그랬으면 더 일찍 도착했을 거예요.

주검사

그래도 이렇게 빨리 왔다는 건, 내가 말한 물건을 가져왔단 거겠지?

헬파이어

가져왔어요. 상촉에서 가장 매운 고추에요.

주검사

괜찮아 보이는군. 요즘 계속 눈이 내려서 이렇게 신선한 걸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제법이야.

헬파이어

선생님은 오랜 세월 은거를 하셨는데도, 인간사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

주검사

음? 말에 뼈가 있군.

헬파이어

……상촉은 산세가 험하지만, 눈보라를 피할 곳 정도는 찾을 수 있어요.

헬파이어

세 개의 산, 열여덟 개의 봉우리를 넘는 동안, 저는 모든 농가와 객잔을 찾아가 일일이 맛을……

주검사

긴말 필요 없고, 부엌은 저쪽에 있다. 재료랑 도구 모두 안에 있으니 요리나 만들어 와.

헬파이어

네……

헬파이어

선생님, 한번 맛 좀 보세요.

주검사

응? 겨우 수주육편 하나뿐인가?

헬파이어

지금 상촉에 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거예요.

주검사

재밌군. 그럼 어디 한번 맛보마.

주검사

……

헬파이어

어떠세요……?

주검사

음, 평범해. 고기의 두께를 균일하게 자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형태까지 동일하다니…… 칼 솜씨는 아주 훌륭해. 하지만……

주검사

쯧, 깊은 맛이 없어.

헬파이어

네……?

주검사

네가 찾았다는 '상촉에서 가장 매운 고추'가 겨우 이 정도라면, 검은 줄 수 없다.

헬파이어

선생님……!

헬파이어

선생님 그 검은 제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 아닌, 백성을 구하기 위해 부탁드린 겁니다! 그러니……

주검사

무엇을 위한 것이든, 고추가 맛이 없으면 검은 가져갈 수 없다.

주검사

가봐. 오늘은 흥이 다 떨어졌으니까.

헬파이어

……기다려 주십시오.

검객은 단도를 뽑아 망설임 없이 손목을 그었고, 붉은 피가 국에 뚝뚝 떨어졌다.

헬파이어

이걸 맛보시죠…… 아직도 깊은 맛이 없습니까?

주검사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주검사

가져가.

헬파이어

이건……!

주검사

상촉에서 가장 매운 고추라면, 상촉에서 가장 좋은 검으로 값을 치뤄야 공평하지.

헬파이어

감사합니다, 선생님!

주검사

감사는 됐어. 약속했던 것이고, 이건 거래일 뿐이니까.

헬파이어

……

주검사

아직 뭐가 남은 건가?

헬파이어

너무 흔쾌히 검을 주시는 것 같아서요. 검을 어디에 쓰려는 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으시는 겁니까?

주검사

그걸로 장작을 패든 저당을 잡히든 관심 없어. 100일 뒤에 돌려주기만 하면 돼.

헬파이어

제가 실수로 부러뜨리기라도 하면……

주검사

이 검을 부러뜨릴 수 있는 물건이 있으면 내 눈앞에 갖고 와. 오히려 내가 보고 싶군.

헬파이어

그럼 만약에……

주검사

그렇게 걱정된다면 그냥 지금 돌려주던가.

헬파이어

아니요…… 군자는 한 입으로 두말 하지 않습니다. 100일 뒤에 꼭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주검사

됐다. 검도 받았으니 내 눈앞에 그만 얼쩡거리고, 얼른 산을 내려가.

헬파이어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주검사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검은 삿갓”

좋은 검에…… 멋진 검술이군.

헬파이어

……

헬파이어

윽…… 하아…… 하아……

???

훌륭해, 아주 훌륭해…… 보고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야……

헬파이어

장님이 네 제자 '검은 삿갓'의 검보다 빠른 게 믿기지 않는 거야, 아니면 네 검보다 날카로운 검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거야?

헬파이어

크루시…… 네가 졌어……

크루시

흐응, 그래?

헬파이어

네 검보다 강한 검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신의 운철' 제조법을 넘겨주겠다고 했었지? 이젠 네가 약속을 지킬 차례야.

크루시

하, 그렇게 말하긴 했었지만…… 궁금한 걸, 그렇게 희대의 명검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제조법이 필요하지?

헬파이어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상촉의 백성들이니까.

헬파이어

재앙이 국경을 넘어오면서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고,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상촉은 이제 재건을 해야 돼. '신의 운철'이 있다면 백성들은 더욱 빠르게 비바람을 피할 곳을 마련할 수 있을 거야.

헬파이어

크루시, 우리 사이의 은원은 한낱 해묵은 지난 일일 뿐이다. 그리고, 아무리 원한이 크다고 해도 백성들에 대한 것보단 크지 않아. 승부는 이미 났고, 인정과 도리를 따져봐도 넌 마땅히……

크루시

하하하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대단한 의협십이군. 하지만……

크루시

……넌 너무 순진해. 애초에 '신의 운철' 같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어.

헬파이어

뭐라고?!

크루시

그리고 그 검, 촬강봉에 사는 붉은 뿔과 눈동자를 가진 주검사가 준 거지?

헬파이어

그걸 어떻게……

크루시

흥, 이 대염에서 나랑 우열을 겨룰 수 있는 주검사는 그 사람뿐이니까.

헬파이어

크루시, 그럼 이 모든 건 설마……

크루시

맞아. 지난 10년 동안, 난 단 하루도 빠짐없이 녀석이 직접 만든 검을 손에 넣을 방법을 찾고 있었지.

크루시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 내 도공 기술은 이미 궁극의 경지에 올랐는데, 왜 녀석에게 지는 건가?! 그래서 녀석이 대체 어떤 기술을 쓰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밝히고 싶었어.

크루시

그런데 이제 네가 그 검을 가져다주었으니, 감사할 따름이야.

크루시

얌전히 그 검을 내게 넘겨. 그럼 보내주지.

헬파이어

뭐, 됐다……

헬파이어

처음부터 끝까지 날 기만한 데에 대해선 너에게 따지지 않을 거야. 어차피 '신의 운철'도 없다니, 더 이상 너랑 얽히고 싶지도 않아.

헬파이어

다만 이 검은 나도 빌려온 거라, 약속대로 돌려줘야 해. 그러니 절대 네가 가져가게 두지 않을 거야.

크루시

어리석은 녀석…… 여봐라!

크루시

네 검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 많은 사람을 상대할 순 없을 걸? 공격하라!

헬파이어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크루시

아직도 고집을 부릴 건가? 그럼 날 원망하진 마라.

크루시

활을 쏴라……

???

쯧, 정말 한심하구나, 크루시. 내 검이 그렇게 좋으면 나한테 말하지, 왜 쓸데없이 애를 잡고 그래?

???

패배만 인정하면 검 따위 얼마든지 줄 수 있어. 그것도 검자루에 내 친필 사인까지 더해서 말이야.

크루시

니엔 훼이한! 네가 여긴 어떻게?!

니엔 훼이한

간만에 10년이나 한가롭게 지냈어. 대체 누가 날 이렇게 그리워 하나 했는데, 역시나 너였구나.

헬파이어

선생님……

니엔 훼이한

너도 참 고지식하구나, 고작 검 한 자루잖아. 달라고 하면 그냥 냉큼 주고 말지, 왜 몸을 상하게 하는 거야?

헬파이어

말씀드렸잖아요. 군자는 한 입으로 두말 하지 않는다고요……

니엔 훼이한

그래, 너 답구나.

니엔 훼이한

하지만, 이제 내가 온 이상, 검이든 사람이든 감히 꿈도 꾸지 말아라.

크루시

다, 당장 저 둘을 잡아!

니엔 훼이한

하늘엔 용광로가 있고……

니엔 훼이한

벌써 끝이야? 아직 숨겨 놓은 비장의 수가 있다면 다 꺼내 봐.

크루시

……여전히 깔보는 듯한 재수 없는 말투구나. 10년 전 너한테 진 그날 맹세했지, 네 그 오만함에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말이야.

니엔 훼이한

어쩔 수 없잖아. 동종업자가 너무 경쟁력이 없어서 의욕조차 안 생기는걸.

크루시

흥…… 니엔 훼이한, 콧대가 아주 하늘을 찌르는구나. 넌 그동안 네 주조 기술이 세계 최고인 줄 알고 발전할 생각도 안 했겠지.

크루시

그러니 보여주마. 네가 게으름 피우고 있던 10년 동안 갈고 닦아온 내 주조 실력을!

크루시

나와라, 마키나 비스트!

마키나 비스트

(울부짖는 소리) 삐…… 삐빅……

마키나 비스트

(분노의 포효) 삐빅……!

라바

자…… 잠깐만!!!

니엔

뭐야? 이제 곧 클라이맥스인데.


라바

왜 네 영화는 전부 거대한 괴수가 나타나는 걸로 끝나는 거야?!

니엔

응? 그야 당연히 멋있으니까.

라바

그리고, 이거 염국 무협영화 아니었어?!

니엔

그런 사소한데 얽매이지 마. 액션, 미스터리, SF…… 이런 상업적인 요소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잖아.

라바

네가 글을 쓰기 전에 위스퍼레인 씨한테 문학 고문을 맡겼어야 했어……

라바

게다가 악역 연기를 클로저한테 시키려 하다니. 걔가 지금 너랑 놀 시간이 어디 있어?

라바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건 처음부터 너한테 따지고 싶었어. 분명 주인공은 나라고 했잖아, 왜 중요한 순간엔 전부 네가 나서는 건데?

니엔

그렇게 쪼잔하게 굴지 마. 클라이맥스에서 희생하는 장면은 네 걸로 남겨놨으니까.

라바

나 죽기까지 하는 거야?!

니엔

캐릭터, 캐릭터가 죽는 거야.

라바

……영화 이름은 정했어? 《위험한 검객》? 아니면 《검의 전설》?

니엔

《무정검 vs 머신비스트》

라바

영화 배포할 때 제발 배급사에 로도스 아일랜드란 이름만은 쓰지 마. 파트너사에서 우리의 안목을 의심할 거야.

니엔

시끄럽게 떠드는 건 평론가들이겠지. 그런데 너, 컬럼비아 랭크우드가 매년 이런 영화로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알아?

라바

……

니엔

납득됐어?

라바

그냥 포기했어……

라바

처음부터 내 소중한 점심시간을 너랑 얘기하는데 쓰는 게 아니었어.

라바

오후에 훈련이 있어서 먼저 갈게.

니엔

그거 끝나면 결말 들으러 와.

라바

됐거든!

라바

……

라바

참, 근데 있잖아……

라바

이 이야기, 대체 어디까지 진실인 거야?

니엔

음? 그건 왜?

라바

전반적인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터무니없는 얘기가 분명한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부 세세한 부분들은 또 완전히 허구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니엔

그래? 그럼 네 생각에 어떤 게 진실인 것 같아?

라바

그 검객, 진짜 장님이야?

니엔

궁금해?

라바

말해줄 거야?

니엔

'진실'이든 아니든, 뭔가를 듣는 순간부터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에 불과해. '이야기'의 진위를 따지는 건 모순 아닌가?

라바

됐다. 그냥 네가 지어낸 허구겠지. 내가 그걸 뭐 하러 신경 써……

라바

간다.

니엔

야 야, 계속해서 감독직을 맡아야지!

라바

네가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쓰기 전까진 절대 안해!

니엔

하아, 역시 내 예술 세계를 관객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건 시기상조인가……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이해하게 될 거야.

니엔

그보다 전반부의 준비 작업량이 너무 많아 라바 없이 나 혼자서는 힘들텐데……


사람이 나이가 들면 쉽게 감상적으로 변한다는 말, 사실 전에는 믿지 않았었어.

상촉에 갔다 오더니 감회가 새롭나 봐?

니엔

어때, 네가 보기에도 꽤 감동적인 시나리오지?

네 삼류 시나리오를 평가하는데 낭비할 시간 따윈 없어…… 설마 밤새도록 나를 괴롭힌 이유가, 단지 이걸 보게 하려던 거였어?

자, 다 읽었으니. 이젠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나가.

니엔

……

……뭐 또 남았어?

니엔

네가 콘티랑 신 컨셉맵을 그려줬으면 좋겠어.

꿈 깨!

네가 잘 때 그 삼류 영화 필름을 싹 다 불태워버릴 거야.

니엔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거로 쪼잔하게 굴다니.

……

몇 년이나 됐지?

니엔

뭐가?

모르는 척하지 말고.

니엔

뭐야,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건지 파악한 것 같은 말투잖아?

니엔

의도를 이렇게 쉽게 들켜버리다니, 작가로서는 큰 충격인데.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알고 지냈기 때문이지, '언니'.

나중에 사세대에 가면 네가 대체 어떤 흑역사를 남긴 것인지 꼭 사건 기록을 조회해 봐야겠어.

니엔

분명 궁금해 하면서도 애써 관심 없는 척하는 건, 너랑 라바가 정말 똑 닮았구나.

미리 말해두겠는데, 난 네 허접한 시나리오에는 요만큼도 관심이 없어. 다만 에둘러 각본으로 남길 정도로 잊히지 않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야.

니엔

그래. 그럼 천천히 얘기하게 차나 한잔 끓여와 봐.

……사실 그대로 말해줘야 해. 지어내지 말고.

니엔

하하…… 언제 적 일인지는 나도 정확히 기억나진 않아. 그저 아직 이동도시가 없을 때였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야.

니엔

눈이 오는 날이었어.

니엔

어느 해였던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난 결국 그 능묘에서 사는 게 지겨워져서 지상으로 올라와 숨이라도 돌리려고 했어.

니엔

근데 어딜 가든 거기서 거기더라. 능묘에 들어가기 전이랑 달라진 게 거의 없었어.

니엔

그땐 인간이란 참 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어. 설령 백만 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전장을 누빈다고 해봤자 수십 년밖에 안 되는 인생으로 대체 뭘 할 수 있겠어?

니엔

나도 그냥 빈둥거리면서 시간을 보냈지. 하지만 사세대는 그렇게 편하게 지내는 날 내버려 둘 수 없었는지, 재앙을 겪은 상촉의 어느 도시의 재건을 돕는 임무를 주더라고.

사세대는 너의 뭘 믿고 그런 일을 맡겼을까.

니엔

어쩌면 능력 때문이지 않을까? 일단 내 전문 분야잖아.

일은 열심히 했고?

니엔

그럴 리가.

당당하기도 해라……

니엔

뭐, 완전히 놀기만 한 건 아니지만 상촉 지형이 워낙 험해야지. 열심히 한다고 해도 집 두세 채를 짓는 것만 해도 적지 않은 노력을 들여야 했으니까.

니엔

하지만 사세대는 '작은 재앙 정도는 견딜 수 있는 도시'를 원했어. 꼭 일부러 트집을 잡는 것 같았다니까?

니엔

그래서 난 기분에 내키는 대로, 자잘한 일을 도와주거나 조언 정도만 해줬을 뿐이었어.

니엔

상촉 음식이 입맛에 맞아서 며칠 더 머물러도 상관없었거든.

니엔

그런데……

니엔

하루는 한 소년이 나를 찾아와서, 검 한 자루를 만들어 달라고 간청하더라.

니엔

나도 상촉에 있을 때 그리 조용히만 있었던 것 아니었던 터라, 아마 소문을 듣고 찾아왔던 거겠지. 다만 생각 못했던 게, 그 소년은…… 광석병으로 두 눈 모두 보이지 않았다는 거지.


니엔

며칠 째 이곳에서 버티고 있다니. 대체 용건이 뭐야……

소년 검객

선생님께서 검 한 자루만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어떤 대가라도 지불할게요.

니엔

말은 잘하네. 네가 대체 뭘 지불할 수 있는데? 그리고 검은 어디 쓰려고?

소년 검객

사람들을 구하고 원수를 갚기 위해서예요.

니엔

쯧…… 귀찮게.


니엔

무슨 질문을 하든 똑같은 말만 반복하더라. '사람들을 구하고 원수를 갚고 싶어요'라고. 뭐 걔 목적이 뭐든 나랑 상관없는 얘기였지만……

니엔

계속 달라붙어서 귀찮게 하길래 아무 검이나 만들어서 줬어. 그리고 그 검의 가격은 어차피 뭘 해도 지불할 수 없을테니 빌려주는 대신 100일 뒤에 돌려달라고 했지.

니엔

3개월 정도 지나자 난 그 일을 잊어버렸어. 그리고 어느 날 한 노인이 날 찾아왔어.

니엔

마을에서 객잔을 운영하는 노인이었어.

니엔

노인이 나한테 무슨 꾸러미를 줬는데, 열어보니까 부서진 검이 있었어.


니엔

이건 뭐지?

노인

어떤 아이가 내게 돈을 주면서 부탁했었네. 꼭 오늘까지 이걸 촬강봉에 사는 주검사에게 전해달라고.

노인

에고…… 꽃샘추위가 왔나 했더니 그새 또 눈이 내리는구먼. 산길이 험해졌어……

니엔

부탁했다고? 왜 그 아이가 직접 오지 않은 거지?

니엔

음…… 설마 검이 부러져서 나를 볼 면목이 없었던 건가?

노인

그 아이는 아마 죽었을 게야……


그 아이, 왜 죽었는데?

니엔

나도 몰라.

모른다니? 그 노인한테서 못 들은 거야?

니엔

그 노인은 그냥 소년의 부탁대로 정해진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 가서 검을 가져온 것뿐이래. 거기 도착했을 땐 이미 그곳은 불타버린 폐허만 남아 있었고.

니엔

불이 얼마나 오래 탔는지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폐허의 중앙에는 부러진 검만 놓여 있었대.

……난 왠지 또 네가 지어낸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아.

니엔

진짜 너무하네. 넌 언니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조차 없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어?

니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안 물어봤어. 관심이 없었으니까.

니엔

난 그 부러진 검을 녹여 강철 조각을 만들었고, 노인한테 도시에 있는 공인들한테 전해 주라고 했어.

니엔

그들이 그 강철 조각을 통해 뭔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당시의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렇다면 나도 사세대한테 말할 거리가 생길 거잖아.

니엔

한군데 계속 머무르니 지루해졌고, 이후 상촉을 떠났지.

니엔

그때 난 사람들이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조언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야 사람들도 상촉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란 걸 깨닫고 다른 살 곳을 찾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을 거야.

니엔

그 후로 50년이 지나서야 나는 상촉에 다시 돌아왔어.

니엔

험준한 산 사이로 도시가 보이더라.

니엔

세 개의 산과 열여덟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인 험난한 산길이 있는데, 사람들이 잔도를 이용하여 그것들을 모조리 이어놓았더라고. 결국 험준한 상봉우리 사이에서 가장 높은 것은 사람들이 지은 탑이었어.

니엔

나는 당연히 다 내 덕이라고 생각했어. 내 조언이 없었다면 그 사람들이 그 기술에 도달하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조차 없었으니까.

니엔

그런데 그 장대한 광경을 보고 있자니, 사실상 그런 생각은 추호도 떠오르지 않았어.

의외네,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다 나오다니.

니엔

어쩌면 그때부터 생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건지도 몰라.

니엔

인간이란, 참으로 흥미로운 존재야.

……끝?

니엔

응.

니엔

아, 근데 굳이 말하자면 소소한 뒷이야기가 남아 있긴 해……


니엔

주인장, 있어?

객잔 주인

어서오세요. 아무데나 편히 앉으세요!

니엔

'흥성 객잔'…… 이 가게가 전부터 이런 이름이었나?

객잔 주인

손님께서는 모르시나 본데, 소문에 의하면, 50년 전 상촉은 큰 재앙을 겪었었대요.

객잔 주인

저희 할아버지께서 신으로부터 신의 운철을 구해오셨는데, 그 신의 운철 덕분에 공인들이 지금과 같은 상촉의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어요.

객잔 주인

할아버지는 그 일을 기리기 위해 가게 이름을 '흥성'으로 바꾸셨고요.

니엔

재밌는 이야기네. 혹시 할아버지가 그 이야기의 앞부분도 얘기해 줬어?

니엔

예를 들면, 장님 검객이나 부러진 검 같은 거?

객잔 주인

하하, 손님 농담도 참. 신이니 신의 운철이니 이런 건 전설일 뿐이잖아요. 검객이니, 부러진 검이니 하는 얘기는 또 어디의 설화인가요?

객잔 주인

50년 전 일이 궁금하신 거라면, 찻집에 있는 이야기꾼을 찾아가 보세요. 엉터리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바가지를 쓸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고요.

니엔

그러니까, 벌써 50년이나 지난 일이네.

니엔

뭐, 됐어. 그냥 내가 잠깐 바보 같은 생각을 한 거야…… 주인장, 여기 수주육편이나 하나 줘, 좀 많이 맵게 해서!

객잔 주인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니엔

진짜……

니엔

기껏해야 검 한 자루였을 뿐인데……


후회하는 것처럼 들린다?

니엔

조금은.

그 아이에게 더 좋은 검으로 줄 걸 하고 후회하는 거야, 아니면 왜 죽었는지 스스로 확인하러 가지 않은 걸 후회하는 거야?

니엔

조금 더 일찍 바깥으로 나오지 않은 게 후회돼.

니엔

햇빛 한 점 없는 어두컴컴한 능묘 안에 몇 년씩 있은 건 시간 낭비였어.

니엔

우리한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잖아.

……무슨 얘기를 해도, 결국은 이 화제로 돌아오는구나.

니엔

너무 쌀쌀맞게 굴지 마. 이건 우리 가족이라면 누구라도 마주해야 하는 가장 큰 문제잖아?

피곤해서 잘래. 그니까 얼른 나가.

니엔

넌 또 언제부터 잠들 수 있었던 거야?

……

니엔

인정해, 동생아. 우린 여전히 꿈속에서 살고 있어. 꿈속이 너무 즐거워서 그것들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조차 잊은 채 말이야.

니엔

하지만 언젠가는 깨어나야만 해.

마음대로 해. 그래서 넌 이제 어떡할 건데? 꿈과 함께 죽기라도 할 생각이야?

니엔

일단 이 꿈을 더욱 오래 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하지만 어떤 방법을 쓰던 결국 꿈에서 깨어야만 한다면, 그때는 차라리 대형 폭죽을 사용해서 내 손으로 이 꿈을 산산조각 내버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