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위
오늘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달에 나선 엑시아, 하지만 멀지 않은 곳의 옥상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호, 어디 보자…… 다섯, 아니 여섯인가? 자, 시간 없어. 다 같이 덤벼!
용문 골목, 오늘도 엑시아는 평소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달에 나선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의 옥상 위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흠, 엘은 여전히 노는 걸 좋아하는구나. 총을 다루는 실력도 점점 더 좋아지고 있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렇게 보고만 있자니 나도 총이 좀 그리워지는걸.
로도스 아일랜드에 가서 총 모양의 아츠 스태프라도 맞출까? 아니야…… 르무엔이 보면 비웃을 게 뻔해.
게다가 그렇게 하면 내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뭐 딱히 그리운 건 아닌데……
다만, 그립지 않다고 해서 잊었다는 뜻은 아니야.
시간이 지나도 세상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달려져 있잖아. 그 점에 대해선 네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그것도 그럴 것이, 너희들의 감수성은 우리와는 전혀 다르니까.
가끔 궁금해, 100년을 단위로 변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혹시 사소한 감정들은 막 무의미해지고 그런 거야?
알잖아, 난 그런 거에 무관심하다는 거.
아, 역시 모스티마였군요.
이스?
잘 지내셨나요?
엠퍼러가 나한테 볼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뇨. 최근에는 무슨 큰일이 없어요. 저 역시 지나는 길에 우연히 익숙한 기운이 느껴져 와 본 것뿐입니다.
저쪽은…… 엑시아? 그렇군요, 업무 중인가요?
맞아. 겸사겸사 이 녀석과 바람 쐬면서 이야기 중이었어.
아, 즐거워 보이는 게 정말 부럽네요.
넌 어때?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답니다.
너도 고생이 많아.
별말씀을요. 그저 평생 바쁠 팔자일 뿐입니다.
참, 이렇게 만난 김에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요즘 이 녀석이 자꾸 툴툴거리던 데, 자물쇠의 부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 한 번 봐줄 수 있을까?
아, 저번 서우인에 제게 보관하셨을 때부터 좀 오래된 것 같아 문제가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었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제가 고쳐드리죠.
다른 하나는 수리할 필요 없나요?
괜찮아, 녀석이 자물쇠 안에 있는 데다 그저 열쇠일 뿐이야. 날 귀찮게 하진 않아.
모스티마가 허리춤의 회색 아츠 스태프를 툭툭 치더니, 갈색 아츠 스태프를 꺼내 이스에게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또 보네요.
……아, 확실히 기분이 별로인가 보네요. 절 상대하지 않으려는 걸 보니.
늘 있는 일이잖아.
그러고 보니 모스티마…… 그동안 묻지 않았는데 갑자기 궁금하네요. 자물쇠와 열쇠는 어디서 구한 겁니까?
내 손에 들어오기 전에는 카즈델 근처에 있었다고 들었어.
카즈델 근처…… 그렇군요.
그쪽 일 줄은 몰랐습니다.
자세한 것까지 네게 말해줘도 상관없지만 설명하는 게 귀찮으니 그냥 관둘래.
설명이라…… 그 리베리 아가씨에 대해 말인가요?
맞아. 본 적 있어?
예전에 서우인 때 한 번 본 적 있습니다.
귀찮은 상대지?
으음……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모스티마와 이스 근처에 화살 한 대가 날아와 꽂혔다.
봐.
아무래도 제가 그다지 반갑지 않은가 보군요.
아냐, 그냥 나한테 삐져서 그래. 또 궁금한 게 있어?
자세히 생각해 보면 말이지, 너와 엠퍼러 덕분에 펭귄 로지스틱스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 뒤로는 함께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
녀석에 대한 문제라면 언제든지 물어봐도 돼.
……다른 조각을 찾으러 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녀석의 조각으로 남아 있는 건 이제 이것 하나뿐이야.
설령 더 있다고 해도 녀석도, 나도 별 관심 없어. 지금 이대로도 좋으니까.
알다시피, 녀석이 진심으로 싫어했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변하진 않았을 거야.
그렇군요, 확실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네요.
우리 같은 존재들은 대부분 이런 선택을 내리죠.
사실 나도 물어본 적 있어.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냐고.
언제였더라…… 맞아,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 시험 때였지.
……왜죠?
음…… 꽤 재미있는 조직이라서 오랜만에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달까?
어쩌면 박사를 놀라게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하지만 결국 뭔가를 감지한 듯 녀석이 나오는 걸 포기하더라고.
하아, 로도스 아일랜드는 확실히 재미있는 조직이야. 이스, 너도 시간 될 때 한 번 둘러봐.
시간이 나면 그러겠습니다.
그 시간이 언제 나는데?
글쎄요? 엠퍼러가 기분이 안 좋은 날이면 시간이 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라는 건 정말 신기하네요.
깊은 잠에 빠진 뒤에도 죽이 척척 맞는 주인을 만날 수 있다니.
그건 그래.
비록 녀석이 가져다주는 힘보다 성가신 일이 더 많기도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개의치 않잖아요?
확실히 그렇기는 해.
그럼 오늘 대화는 이쯤 하죠.
스태프 수리를 마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응, 잘 가.
왜 이렇게 화가 난 거야?
네 덕분에.
참으로 영광스러운걸.
대체 어떤 녀석이야? 엠퍼러가 대단한 건 알았지만 펭귄 로지스틱스에 저런 녀석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어.
거기다 스태프를 맡기다니, 심지어 녀석은 스태프에 대해 꽤 익숙해 보이더군.
녀석을 말을 해줘도 되는 사람이야.
믿을 수 없는 녀석이었으면 아까 화살 한 발로 끝나지는 않았을 거야.
궁금해? 알려줄 수도 있는데.
……됐어. 늙은이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어.
그건 다시 말해서, 네 입에서 들으면 안 된다는 말이지.
그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아?
내 책임은 널 감시하는 것뿐, 다른 건 관심 없어.
정말로?
……
아, 그러니까 날 감시하는 임무를 용감하게 도맡았지만 여전히 알지 못하는 문제는 산더미인 데다, 날 이리저리 따라다니며 사서 고생하는 거겠지.
나에 대해서 잘 아네.
내가 말했지, 카즈델 사건은 네 책임이 아니라고.
네가 현장에 있다고 내가 방아쇠를 당길 필요가 없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어.
상황이 이렇게 변해도 넌 신경 안 쓰잖아, 아닌가?
맞아, 너도 점점 날 알아가고 있구나.
내가 선택한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네, 알겠습니다~ 참, 어제 공증소 사람이 왔던데, 새로운 임무야?
당분간은 없어, 정기 보고일 뿐이니까. 하지만……
응? 직책이 또 바뀐 거야?
맞아, 하아……
기분 안 좋구나, 어서 말해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난 너무 즐거울 것 같은데~
……외팔이 전기톱맨.
음…… 걔네들, 최근에 용문의 쓰레기 영화라도 봤나?
그 영화는 내가 가져다준 거야. 쯧, 이럴 줄 알았으면 예술영화를 보여주는 건데.
하. 하. 하. 다음에는 총과 장미라고 불리는 거 아냐?
그래도 외팔이 전기톱맨보다는 나아.
됐어, 이만 가자.
온종일 엑시아를 쫓아다닐 줄 알았는데……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너보다 더 한가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날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는 거야?
칭찬 아니거든.
내가 칭찬이라고 생각하면 된 거야.
뭐, 원래 하루종일 쫓아다닐 생각은 없었어. 그냥 의례적으로 잠깐 보러 온 것뿐이니까. 내가 그런 게 처음도 아니라는 걸 너도 모르진 않을 텐데?
알아. 네가 엑시아와 적극적으로 접촉하지 않는 건 내게 다행이긴 하지만……
지난번 서우인 때 내가 엑시아랑 이야기를 나눈 뒤로 너 이 문제를 계속 걱정하는 것 같던데.
엑시아와 만나서 뭔가 알려줄까 봐 아직도 걱정되는 거야?
네가 그러겠다고 마음먹는 이상, 널 막을 순 없겠지. 그러니 이 일에 대한 네 생각이라도 알아야겠어.
으음…… 좋아.
네 눈빛을 보니 오늘 대답을 듣지 못하면 놔주지 않을 것 같으니……
알면 됐어.
너한텐 논리보다는 강경한 수단이 더 먹히거든.
……상대가 자신을 완전히 신경 쓰지 않게 할 방법이 뭐라고 생각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사라지는 거.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일단 한번 나타난 이상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으니까.
방법은 상대가 새로운 삶, 새로운 환경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나도 처음엔 엑시아가 라테라노를 떠나 여기로 올 줄 몰랐어.
그래서 그녀가 펭귄 로지스틱스에 들어왔다는 엠퍼러의 이야기에도 무척 놀랐었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때부터 서우인까지 난 엑시아를 만난 적 없어.
서우인 때는…… 그냥 축제라서 그랬다 치고.
엑시아는 널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실제로 날 찾지도 않았어.
그 사건은 엑시아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우리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고.
내가 그 사실을 엑시아에게 알려줘도 될까? 말해봐, 외팔이 전기톱맨.
제발 그 이름 진지하게 부르지 좀 마.
아쉽지만 그건 최고 기밀이라 엑시아에게 말해줘선 안 돼.
봐봐, 난 엑시아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도 알려주지 못하는데, 그녀 앞에 나타난다고 한들 뭘 할 수 있겠어?
뜬구름 잡는 말로 엑시아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이쪽 일에 말려들게 하라고?
넌 엑시아가 널 무시하길 바라는 건가?
네가 원하는 것도 그거 아냐?
말했다시피, 공적으로는 엑시아가 너와 관련된 일에 관심을 두는 걸 원치 않지만 사적으로는 관심 없어.
사실상 엑시아가 날 무시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바란다고는 하고 싶지 않아.
당시 내가 망설임 없이 총을 들었던 것처럼 난 라테라노와의 관계를 단번에 잘라버렸어.
난 다만 이미 일어난 일은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자는 거야.
넌 확실히 그런 타입이지.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넌 잃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내 그런 점을 싫어하지.
하지만 난 오히려 궁금해. 이미 잃어버린 것에 매달린들 또 뭐 어쩌겠어?
네가 잃어버린 것과 앞으로 잃게 될 것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난 다음에는?
너랑 철학 문제로 토론하자는 게 아냐.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왜 엑시아는 보러 오는 거지?
왜일 것 같아?
모르겠어. 엑시아에게 들키려고 이런 일을 저지를 만큼 네가 한심한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너 설마 싸구려 연애소설 같은 거 읽다 온 거 아니지? 적당히 보라고.
너……!
참, 르무엔이 말 안 해 준 거야? 왜 같은 핏줄도 아닌데 엘의 이름을 르무엔과 비슷한 르무엘로 지었는지?
르무엔은 일할 때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아.
하긴.
사실 아주 간단해. 르무엔이 그 집에 갔을 땐 아직 엘이 태어나기 전이었거든. 르무엔이 하루빨리 가족에 녹아들 수 있도록 그녀의 부모님이 그렇게 이름을 지으셨대.
물론 부모님이 엘 못지않게 유쾌한 분들이라, 이름 짓기 귀찮아서 그렇게 지었다고 해도 왠지 납득이 될 것도 같지만 말야.
어쨌든 르무엔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에게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어.
그래서 동생 르무엘을 더 아끼는 거고.
그게 지금 네가 하는 일이랑 무슨 상관인 거지?
난 이렇게 생각해, 외팔이 전기톱맨.
르무엘이 라테라노를 떠나는 것에 르무엔이 동의한 건, 날 찾고 싶다는 엘의 의견 때문만은 아니었어.
르무엔은 현명한 사람이야. 만약 이번 일이 엘에게 집착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면 절대 엘이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거야.
오히려 그 일이 엘과 아무런 관련도 없었기 때문에 날 찾아내는 일이 엘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집착이 아니었던 거야……
그랬기에 엘은 용문에 올 수 있었고, 또 펭귄 로지스틱스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지.
사실 르무엔이 진정으로 바랐던 건, 엘이 세상으로 나와 자신의 삶을 찾는 것이었을 거야.
그리고 엘을 돌보는 일을 간접적으로 내게 맡겼지.
그런데 넌 인사도 없이 떠났잖아?
바로 내가 인사도 없이 떠났기 때문이지.
멀리서 지켜만 보는 건 돌보는 게 아니야.
난 엘 때문에 펭귄 로지스틱스를 떠난 게 아냐. 그렇게 해야 했기 때문인 거지, 안 그래?
……
그러니까 네 말은 르무엔이 네가 그렇게 해 주길 바랄 것 같아서 떠났다는 건가?
글쎄.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그래야만 할 이유를 찾아주려고 했던 걸지도 몰라.
의외로군, 자신을 위해 이렇게 감성적인 이유를 찾아내다니.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일이 많은 것일 뿐, 난 그리 매정한 사람은 아니라고.
죄책감, 그리움, 슬픔…… 한때 내 마음에도 그런 감정이 존재했었지. 다만 그걸 조금씩 덜어낸 것뿐이야.
만약 너나 르무엔한테서 절교 같은 말을 들으면 나도 무척 괴로울 거야.
얼마나?
글쎄, 그래도 한 일주일 정도는 괴롭지 않을까?
무척 길기도 하군.
굳이 따지면 나도 두 사람과 함께 자랐어. 그러니 내 곁에 온 엘을 돌봐주는 게 당연하잖아.
그러니까, 계속 이렇게 지낼 생각이라는 거야?
아마도? 엘은 지금의 동료들과 무척 잘 지내고 있거든.
어디서 우연히 만나도, 그저 우연일 뿐이니 안심해도 좋아.
확실히……
말은 이렇게 했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그녀에게는 확실히 불공평해. 그렇게 말할 자격이 내겐 없지만……
그럴지도. 하지만 이 모든 게 내가 자물쇠와 열쇠의 주인이 된 순간부터 더는 공정하다고 할 수 없게 됐어.
엘과 만나야 할 일이 있다면 피하지 않을 거야. 어쩔 수 없이 말해줘야 할 일이 있다면 내가 직접 말해줄 거야.
현실적으로……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내게는 나만의 임무가 있어. 르무엘도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무척 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응, 이제 가자. 이 이야기는 엘이 운 나쁘게 우리 일에 휘말리게 됐을 때 다시 하는 게 좋겠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