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라그의 휴가
쉐라그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결심한 엘레나는 어떤 가이드와 함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하루를 보냈다. 이후 관측소로 돌아왔을 땐, 한 손님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등장 오퍼레이터: 아스테시아, 뮤엘시스, 아스트젠 더 라이트체이서, 스노우헌터
또 자정이 넘었네, 에휴…… 쉐라간드 관련 보고서의 마무리를 서둘러야겠어.
설마 '베헤모스' 같은 단어가 내 글에 나타나는 날이 올 줄이야……
음……?
아, 뮤엘시스 주임님, 어떻게 오셨어요?
역시 엘레나였네! 이 시간까지 여기에 남아 있을 만한 사람은 거의 너뿐이니까 말이야.
관측소로 돌아온 뒤로, 거의 한 달째 각종 보고서만 줄창 쓰고 있다며?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일 필요는 없어.
데이터 정리만 해도 한참 걸렸어요. 게다가 실험실에서 일부 리소스를 재현해 보지 않으면……
됐어 됐어. 네가 이틀 정도 일을 쉬엄쉬엄한다고 해서, 과학이 저절로 퇴보하진 않아.
그나저나, 내일부터 관측소에서 연구원들에게 배정한 휴가 기간이잖아.
내가 기억하기론, 넌 쉐라그에 남는다고 신청했지?
네……
너 설마……
그렇게 보지 마세요, 주임님! 무슨 뜻인지 알아요. 몰래 일하진 않을게요.
재앙 전에는 줄곧 관측소에만 남아 있다 보니, 밖에 나가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재앙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 번 내려가서 둘러보긴 했는데, 주임님도 아시잖아요, 그 여정이 그리…… 쉽진 않더라고요.
그렇긴 해, 아하하……
그래서 이번 휴가엔 쉐라그를 좀 제대로 둘러보려고요.
그렇다면 난 안심이지.
나도 너한테 알려줄 게 있어서 온 거야. 쉐라그에 남아 휴가를 보내는 연구원들에겐, 휴가 첫날에 현지 자원봉사자가 와서 환경에 익숙해질 수 있게끔 가이드를 해줄 거라고.
내일 아침 일찍 네 자원봉사자가 와서 널 기다릴 테니까, 까먹으면 안 돼. 그러니 지금은 어서 가서 쉬어. 늦잠 자서 일정에 지장이 가면 큰일이잖아.
알겠어요…… 그런데 몇백 자만 더 쓰면 마무리될 거 같아서요, 금방 끝낼게요!
하아, 알겠어. 네 고집은 정말 못 당하겠다.
내일 재밌게 놀아, 엘레나. 치즈 퐁듀 먹는 거 꼭 잊지 말고.
당연하죠,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먹을 거예요.
……
넌……
왜 그래? 못 알아보겠어?
젊은 사냥꾼이 몸에 붙은 눈송이를 털어내자, 왼쪽 어깨에 엎드려 있던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가 흥분하며 엘레나를 향해 울었다.
(작은 목소리로) 괜찮아,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 엘레나가 좀 바보 같긴 해도, 고작 며칠 만에 우리를 잊을 정도는 아니야.
다 들렸거든! 조안나!
……됐어. 어제 주임님이 휴가 첫날에 현지 자원봉사자가 동행해서 안내를 도와준다고 했는데, 설마……
응, 그게 바로 나야.
요 며칠 동안 너희 쪽 사람이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여기저기 붙이고 다녔거든. 동생들 데리러 가다가 보곤 바로 신청했지.
자원봉사자 모집하는 언니가 날 엄청 맘에 들어 하던데. 척 봐도 완전 '진짜 현지인'이라면서 말이야.
뭐, 그 복장으로는 확실히 그러겠네……
음…… 그럼, 우리 엔야부터 먼저 만나러 갈까?
엔야 님은 성녀님이니까, 평소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못하잖아. 게다가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만주원에서 떠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 설마 나를 못 믿는 거야?
아니 아니, 못 믿는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럼 됐네. 어디 가고 싶은지 말만 해, 내가 데려다줄 테니까.
……생각 좀 해볼게.
지금 내려가면 산 아래 도착할 때쯤엔 거의 점심때잖아, 난 아직 아침도 못 먹었다고.
추천해 줄 만한 치즈 퐁듀 식당 있어?
치즈 퐁듀? 웬 치즈 퐁듀……
뭐? 설마 치즈 퐁듀도 모르는 거야?
너 쉐라그 사람 맞아?
내가 아니면, 네가 쉐라그 사람이겠어?
치즈 퐁듀를 누가 몰라. 근데 그건 도시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이상한 음식이야. 우리 집 바베큐랑 훈제 소시지랑은 비교도 안 될걸?
하지만 컬럼비아 여행 가이드엔, 치즈 퐁듀가 각국의 꼭 먹어봐야 할 미식 랭킹 10위 안에 들어가 있던데?
너희 컬럼비아 사람들이 맛에 대해 뭘 알겠어. 쉐라그에서 제일 맛있는 건, 바로 산에서 잡은 야생의 맛이야.
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인데?
지금 사냥을 나가기엔 늦은 데다가, 우리 집에 비축한 것도 그리 충분하진 않아.
하지만 산에 사는 사냥꾼들은 사냥한 걸 어느 정도 비축해 두니까, 지금 그 사람들을 찾아가면 딱 점심을 얻어먹을 수도 있겠네.
다들 열정적이고 경건한 좋은 사람들이니까, 걱정하진 마.
내 치즈 퐁듀……
에이, 치즈 퐁듀는 언제든 먹을 수 있잖아!
시내는 이따 저녁에 가기로 하고, 지금은 일단 날 따라와.
잠깐……
?
……천천히 걷겠다고 약속해, 그러면 따라갈게!
드디어 산 아래에 도착했네. 엘레나, 빨리 이쪽 좀 봐봐.
응?
……
난 너랑 눈싸움하러 온 거 아니거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건 쉐라그의 전통이야. 눈을 이마에 문지름으로써 쉐라간드께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기를 기도하는 거라고.
방금 네가 한 게 문지르는 거라고 생각해?
뜻만 통하면 됐지 뭐, 우리 쉐라그 사람들은 그런 허례허식 같은 걸 싫어하거든.
거짓말하지 마, 장경각에 있는 그 많은 책 중에 예의를 가르치는 책이 없을 리가 없잖아……
아! 오른쪽 이마를 아직 안 문질렀네!
조안나……
헤헤!
거기 서!
우와아악!
꽉 잡아, 엘레나. 썰매에서 떨어져도 난 책임 못 져.
쉐라간드께 안전을 지켜주길 기도했던 건, 우리 둘이 이 낡은 나무 썰매를 타고 숲속을 질주해야 해서였구나……
(고롱고롱)
거기에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 한 마리까지 함께!
뭐가 낡은 나무라는 거야? 이 쉐라그 썰매를 타고 싶어도 못 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속도 좀 더 올릴게. 걱정하지 마, 조금만 지나면 재밌어지니까 말이야!
으아악!
후우……
재앙 이후로 이렇게 좋은 날씨는 꽤 오랜만이네.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도 기분이 좋은가 봐.
(고롱고롱)
……어? 엘레나? 왜 아직도 못 따라오고 있어?
……
네가 뛰어가는 게…… 파울비스트가 날아가는 것보다 빠른데, 내가 어떻게, 따라갈 수…… 콜록콜록……
겨우 이 정도로? 우리 예전엔 성산도 같이 올랐었잖아.
그땐…… 엔, 엔야가 중간중간 날 기다려줬잖아, 너는! 콜록콜록콜록……
나는 밥을 먹으러 가던 거지, 등산하러 온 게 아니야……
그럼 좀 앉아서 쉬어, 기다려 줄 테니까. 그럼 되지?
콜록, 그래서, 이제, 얼마나 더 가야……
거의 다, 거의 다 왔어.
이 산을 넘고, 30분만 더 올라가면, 인가가 보일 거야.
……
으악!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는 예전 성산에서처럼 엘레나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 대수롭지 않은 행동이 한 과학자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결정타가 될 줄은,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아…… 리, 리,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
조안나와 그녀의 작은 애완동물은 그 자리에서 서서, 어리둥절한 채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엘레나는 그냥 그렇게 그들 앞에서 쓰러졌고, 아무런 반응조차 없었다.
너, 너너너 사고 쳤어!!!
네가 라인 랩 연구원을 죽였다고!
(고롱고롱)
그래…… 네 말이 맞아! 엘레나는 죽지 않아. 우린 더 큰 어려움도 버텨냈다고. 쟤는 쉐라간드도 만난 적 있는 사람이잖아!
엘레나! 괜찮아? 제발 죽지 마!
네가 죽으면……
……
움직였다!
콜록, 콜록……
식은땀을 잔뜩 흘리네. 기침으로 나온 건 전부 거품인 데다가, 입술도 파래졌어……
어쩌지 어쩌지…… 컬럼비아 사람들은 왜 이렇게 몸이 약한 거야, 쉐라그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겪는 건 본 적도 없는데……
……안 되겠다, 널 구해줄 사람을 찾아봐야겠어!
그녀는 몸을 숙여 엘레나의 옷을 확 잡아당겨 들어 올리더니, 엘레나를 어깨에 메고, 양쪽 팔로 엘레나의 손발을 고정했다.
영차…… 영차……
엘레나, 버텨야 해!
……
이렇게 메고 뛰어갈 바엔, 차라리 나한테 화살이나 한 발 쏴줘, 아마 그게 더 빠를 것 같으니까……
콜록…… 진짜 죽을 것 같아……
있는 힘을 다해 그 말을 내뱉은 후, 그녀는 눈을 감았다……
“자, 지니. 네가 아빠가 해주는 별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이제는 잘 시간이야.”
“응? 밖으로 별을 보러 가고 싶다고? 아직은 너무 어려서 안 돼. 조금 더 크면, 그때 우리 같이 제일 높은 산에 올라가서 모든 별을 다 보고 오자, 알겠지?”
“그러지 말고. 이번엔 아빠랑 엄마가 절대 거짓말 안 할게. 언젠가 넌 하늘 가득한 별빛과 함께 미소 지으며 잠들 수 있을 거야.”
“네 이름은 '뭇별의 근원'이니까……”
깼다!
……
여긴 어디지……
산 위 진료소야. 여기 계신 의사 선생님이 널 구해주셨어.
……감 ……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탕약으로는 그저 증상을 완화하는 정도일 뿐이니,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해요.
의사 선생님, 얘는 대체 무슨 병인 거예요?
쉐라그 산은 너무 높아서, 많은 외지인이 적응하기 힘들어하죠.
보통의 상황에서는 아마 참을 수 있었겠지만, 엘레나 양이 여기에 왔을 땐 이미 과도한 운동으로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어요. 그래서 증세가 심해진 거 같군요.
……
……
진짜 미안!!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 우리 같이 엘레나한테 사과하자!
(고롱고롱)
알았어, 괜찮아.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건 아니까.
일단 몸 좀 일으킬게……
병상에서 내려오던 그 순간, 엘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휘청거렸고, 조안나는 엘레나의 손 쪽으로 재빨리 다가가 부축해 주었다.
쉐라간드 신이시여, 너 무리해서 움직이지 마!
괜찮다니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금방 회복될 테니까요.
……선생님이 산에다 진료소를 차리셔서 다행이에요. 하마터면 설산에서 그대로 목숨을 잃을 줄 알았거든요.
이 산엔 사냥꾼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산에 내려가기가 불편하거든요. 그래서 만주원에 의사를 파견해 달라 요청했었죠.
마침 장경각에서 의술을 배우고 있던 저를, 아드소 장로님께서 여기로 보내셨죠. 그것도 벌써 10여 년이 되었네요.
하지만 요 몇 년 동안 카란 무역이 도시에 병원을 세운 후로는, 사람들이 조금 번거롭더라도 시내에 들어가서 진료받으려고 하더군요. 덕분에 이곳이 훨씬 한가해졌죠.
의사 선생님, 그럼 저는……
아, 미아. 바빠서 깜빡했네요.
며칠 전에 위장약을 다른 거로 바꿨는데, 효과는 있나요?
전혀요, 배가 여전히 아파요……
그럼 안 되는데, 혹시 도시에 가서 진료 받아보셨어요?
도시 사람은 못 믿겠는걸요…… 그 사람들이 처방한 화학 약품을 먹은 뒤 오히려 또 다른 문제가 생긴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흠, 우선 앉아계시면, 제가 책 좀 뒤져보고 방법을 찾아볼게요.
……어쩌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제가 들고 다니는 기기 중에 초음파 영상기가 하나 있어요. 그걸 쓰면 장기 검사까지는 어떻게든 가능할 거예요
근데, 그것도 도시 사람들이 쓰는 방법 아닌가요?
그게 뭐 어때서? 사용한다고 해서 손해 볼 것도 없잖아.
아뇨…… 이런 물건은 처음 봐서요, 그냥 안 할래요……
엘레나, 우리 같이 설득해 보자……
아니에요.
엘레나?
이건 도시 사람들이 쓰는 방법 같은 게 아니에요.
이건 그분께서 축복을 내려주신 법기거든요.
말을 끝내고 나서, 그 말을 한 엘레나 자신 역시 놀랐다…… 그건 분명 자신이 예전부터 가장 혐오하던 신비학에서나 사용할 법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
이건……
쉐라간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요.
저는 예전에 성녀님과 함께 다녔고, 바로 이 기기를 사용하고 나서야, 그분의 진정한 모습을 직접 뵐 수 있었죠.
다들 알다시피, 그분께선 좀처럼 현신하지 않으세요. 이 기기가 그분을 감지할 수 있었다는 건, 바꿔 말하면 그분의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겠죠……
……
그녀는 시선을 옆에 있는 사냥꾼에게 돌리며, 눈썹을 찡끗했다.
……맞는 말이야.
우리 둘 다 성녀님의 시종이거든. 성녀님이 쉐라간드를 뵙고자 했을 때, 우리도 당연히 그 자리에 함께 있었어.
맞아요 맞아요, 성녀님께서……
성녀님이 돌아오실 때, 분명 누군가 두 명의 시종이 계속 곁에 있었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 있어요. 그중 한 명이 외지인이라던데……
그럼…… 당신들은 어디서 그분을 뵌 거죠? 그분께서 또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그분께선……
(작은 목소리로) 그분께서 뭐라 하셨더라?
……
“나의 성전을 구하지 말고, 나의 마음을 구하라.”
저희는 그분이 있는…… 이 대지의 신비 앞에서 모두 어리석고 무지하죠.
만약 자신의 상식을 거스르는 금단의 땅에 발을 내디딜 용기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어리석음이 아닐까요.
알겠습니다……
저는 당신들을 믿을게요. 제가 어떻게 협조하면 될까요?
외투 먼저 벗어주시고, 저는 이만 가서 준비하도록 할게요.
……
휴…… 고마워요. 덕분에 저 사람 담낭에 결석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제 검사까지 받았는데도 병원에서 치료받으려 하진 않더라고요.
다음번에 미아가 약을 받으러 올 때, 제가 다시 설득해 볼게요.
이건 약물로 쉽게 치료되는 병이 아니다 보니, 방금 최선을 다해서 어떻게든 설득하지 못한 게 조금 후회되네요……
……미아는 영리한 사람이에요. 그녀가 그 '법기'에 관한 이야기를 정말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결국은 무슨 병인지 알기 위해 검사받는 데 동의했죠. 지금은 이 정도가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일 거예요.
사람은 똑똑할수록 아집에 빠지기 쉬워지죠. 그런 사람들 마음속의 선입견은, 일반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깊게 뿌리박혀 있고요.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야, 어느 누가 그런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겠어요?
……의사 선생님께선 이와 비슷한 일을 많이 겪으셨나요?
네, 저도 예전엔 카란 무역에서 들어온 새 기기들을 그리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쓰임을 보고 나니, 오늘처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지금은 오히려 반대로, 많은 사람이 저에게 선입견을 품고, 모든 오래된 옛날 것들은 다 사기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대해선 제가 어찌할 도리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언젠가 그 사람들이 이 오래된 것들의 장점을 이해하게 된다면, 동시에 자신의 편협함을 깨닫게 되겠죠, 하하.
……
자, 제가 미아를 대신해서 두 분께 감사를 표해야겠네요. 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괜찮으시면 저녁이라도 함께 드시고 가시겠어요?
잠깐만, 저녁이라고요? 뭐가 있는데요?
음…… 여기엔 채소 몇 가지랑 훈제 소시지 두 개가 남아있네요……
좋아! 들었지, 엘레나? 우리가 먹을 복이 있나 봐!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진료소 밖을 걷고 있던 엘레나의 귓가에, 조안나와 의사가 식사하며 나누는 대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건…… 쉐라그의 별하늘……
그녀가 손을 비비자, 막 내뱉은 하얀 입김은 순식간에 산바람에 의해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녀는 천천히 앞을 향해, 손에 거의 닿을 듯한 별하늘을 향해 걸어 나갔다.
엘레나, 좋은 소식이 있어! 방금 내가 끈질기게 졸랐더니, 의사 선생님이 남은 소시지 반 개도 구워 먹으라고 허락하셨지 뭐야!
조금 있다가 마저 다 먹고 나면, 그다음에 내가 널 관측소까지 데려다줄게. 다 못 먹은 것까지 전부 챙겨줄 테니까.
엘레나? 혹시 또 몸이 안 좋은 거야? 왜 말이 없어?
……아, 걱정하지 마. 그냥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생각할 거? 이 하늘 말하는 거야? 계속 쳐다보고 있던 것 같던데.
응…… 어떤 장비의 도움도 없이, 이토록 선명한 별하늘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어서 말이야.
나는 어릴 때부터 봐와서 그런가, 딱히 신기하다고는 못 느끼겠는데.
조안나, 사실 우리 우르비카 가문은 점성학을 연구해 왔어.
지금은 부모님과 사이가 틀어졌지만, 어릴 적엔 부모님께서 자주 날 데리고 망원경으로 별을 보러 갔었거든.
근데 내가 밤에 혼자 커튼을 열고, 맨눈으로 보는 별은 그렇게 선명하진 않더라고. 부모님께 물어봐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못 하셨지. 그저 우리가 있는 도시에서는 산이나 야외에서 보는 것만큼 선명하게 볼 수 없다고만 하셨어.
그때부터 이 문제는 내 마음에 씨앗처럼 심어졌어. 아무런 답도 얻지 못하는 내 어리석음 때문에 너무 분했거든……
나중에 내가 좀 크고 나서야, 도서관에서 '대기난류', '광공해' 같은 단어를 알게 되었고, 그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어.
……나는 별에 대한 지식은 잘 모르지만, 가끔은 좀 바보 같아도 좋지 않아?
이번 일처럼 말이야. 네가 자신을 바보 같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어쩌면 영원히 도서관에서 답을 찾아보지 않았을 테니 말이야.
……
네 말이 맞아.
엘레나, 네 부모님이 왜 별을 보는 걸 좋아했는지 네게 말해준 적은 있어? 그 무슨, 점성학이라는 거 말이야.
왜 좋아했냐니? 가업을 잇는 데에 좋고 싫고가 따로 있나?
우리 집안도 사냥과 조각을 이어오고 있긴 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면, 선조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켜오지는 않았을 거 같거든……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선조들이 했던 말을 하나 나한테 알려주신 적이 있어.
“아름다움과 모르는 것.” 아름다움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바라보게 하고, 모르는 것은 사람들이 더 깊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이게 부모님이 처음 별하늘을 바라본 이유일 수도 있겠네……
음…… 어려운 이야기네. 언뜻 들으면 수도사들이 《쉐라간드》를 읊조리는 것처럼 들리긴 하는데, 뭐 나쁜 말은 아닌 것 같아.
이야기를 너무 오래 했나 봐, 이제 산에서 내려가야겠어. 내가 구운 소시지를 포장해 줄게.
좋아.
……고마워, 조안나.
헤이, 엘레나, 오늘 재밌게 놀았어?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돌아왔네.
마지막에 가선 확실히 재밌긴 했는데, 중간중간에 우여곡절이 좀 있었지, 아하하……
방금 안내원이 나한테 오늘 너를 찾는 손님이 있었다고 말해줬어. 이전부터 편지를 보냈는데 지지부진 계속 답장을 받지 못했다고, 오늘은 뭐가 됐든 널 만나야겠다고 했대.
응접실에 가보지 그래?
손님? 나를 찾는……?
지금 바로 가볼게.
잠깐, 이 냄새는…… 야생 훈제 소시지?!
너도 이걸 좋아해? 오늘 내 가이드 친구가 말하길, 너희 쉐라그 사람들은 이걸 치즈 퐁듀보다 더 맛있게 생각한다고 하던데.
아, 그건 아마 풍습이 달라서 그럴 거야. 난 어릴 때 집이 가난해서, 훈제 소시지를 한 번 먹는 것만으로도 한참이나 행복했는데, 지금 와선 치즈 퐁듀가 더 맛있는 거 같긴 해.
그래서 그런데 엘레나…… 혹시 괜찮으면 하나 남겨줄 수 있을까?
그런 거였구나…… 나 아직 배고프지 않아서 손님부터 만나러 갈 테니까, 먹고 싶으면 먼저 먹어도 돼.
……역시, 언니일 거라고 생각했어.
지니……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언니……
재앙 이후로, 네 소식을 알고 싶어서 계속 여기로 편지를 보냈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쉐라그와 빅토리아가 전쟁을 벌였다는 소식을 듣게되는 바람에, 더 걱정이 돼서……
응응…… 얼마 전까지도 국외에서 들어온 편지는 모두 잠시 보류됐었거든, 최근에서야 차례대로 발송한다더라.
너 다친 데는 없어? 아픈 곳은? 요즘은 다 괜찮아?
으음…… 최근에 좀 많은 일이 있었어, 어쩌면 나도 조금 변했을지도 몰라……
근데 난 괜찮아, 최근에 나한테 일어난 일들은 모두 좋았거든……
걱정 끼쳐서 미안해, 언니.
그럼 다행이야…… 응.
컬럼비아에서 네가 좋아하는 커피콩을 좀 가져왔어. 우리가 트리마운츠에서 자주 가던 아침 식사 가게에서 사용하던 거랑 같은 종류야.
아, 그리고 핸드밀 그라인더도 하나 가져왔어. 좀 늦긴 했는데, 그래도 네가 지금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싶어! 쉐라그에 오고 나서, 너무 오랫동안 좋은 커피를 못 마셨거든.
후훗, 그럼 잠깐만 기다려봐.
그나저나, 언니는 컬럼비아에서 온 거야? 평소엔 로도스 아일랜드에 있는 거 아니었어?
최근 로도스 아일랜드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거든. 이건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하고……
아무튼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일이 생긴 후에, 난 집으로 잠시 돌아갔어. 하필 쉐라그에 재앙이 발생했을 때,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내가 며칠 더 집에 머물면서 아버지와 교대로 어머니를 돌봤지.
……
그때 네가 쉐라그에 있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말하려고 했는데, 몇 마디 하자마자 아버지가 표정이 굳어지셔서는, 이 악물고 네 이름은 언급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그랬겠지.
그런데 이후 며칠 동안, 아버지가 나 몰래 각기 다른 여러 종류의 신문을 사시더라고.
근데 그 사람, 신문 같은 거 잘 안 읽잖아?
그때는 모든 신문에 쉐라그 소식이 실렸었거든……
아버지는 신문을 들고 어머니에게 찾아가선, 신문을 넘기면서 이야기하셨어…… 이야기를 다 마치고 나서 두 분은 한참이나 서로를 안고 있었고, 아버지는 눈이 붉어진 채로 방을 나오시더라.
……
어쩌면 나이 때문일까…… 지니, 실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너에 대해 알고 싶어 하셔.
언니, 알겠지만 난…… 그 사람들은……
난 부모님을 대신해서 중재하려는 게 아니야, 지니. 너도 알다시피 난 네 편이고, 부모님이 네게 어떤 일을 했는지도 알고 있어.
하지만 언젠가 부모님이 네 소식을 물어보는 날이 온다면, 나는 알려주고 싶어. 그래도 괜찮을까?
물론 괜찮지.
엄마는…… 괜찮아?
다행히 어머니는 좀 심한 감기에 걸렸던 것뿐이셔서, 내가 떠날 때는 이미 말끔히 나으신 상태였어.
어머니는 자기가 병에 걸려 쇠약해진 모습은 절대 못 받아들이시잖아, 열이 내린 그날부터는 다시 그 오래된 돌 조각상 같은 표정을 지으시더라니까.
흥…… 그래도 언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오히려 안심되긴 하네.
언니, 혹시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점성학 노트 아직 있어?
응, 왜?
……그게 좀 보고 싶어서.
근데 넌 점성학을 엄청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실은 나…… 쉐라그 재앙의 진상을 연구할 때, 쉐라그 사람들이 말하는 '신'을 봤어.
처음에만 해도 난 '신'이란 존재가 그냥 너무 허무맹랑하게 느껴져서, 나와 동행하는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웠어. 분명 오리지늄 광맥이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었거든.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진 말이야.…… 아무리 믿고 싶지 않다고 해도, 기기에선 분명히 생체 신호가 전해져왔으니까.
순간 머릿속에서 '베헤모스' 같은 단어가 떠오르면서, 난 문득 깨달았어. 내가 하고 있던 그 연구들이, 어쩌면 가업으로 이어지던 점성학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 구제 불능인 우르비카 씨……
아빠의 생각을 조금 이해하게 됐어.
지니, 너의 길을 부정할 필요는 없어……
아니, 아니야, 언니.
난 이제 겨우 숨겨진 진실의 한 조각을 밝혔고, 절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야.
과학은 미지를 탐험하는 최고의 도구이고, 내가 반드시 스스로 가야 할 길이라고 난 여전히 믿어.
선조들이 어쩌면 잘못된 길을 걸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연구가 전혀 가치 없다는 소린 아니야.
다만…… 그들은 쉐라그의 별하늘을 미처 보지 못했을 뿐이고, 이젠 우리가 이 미완성의 탐험을 이어가야 할 차례인 거야.
……
알겠어.
지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해. 난 항상 널 응원할 거야.
……
어떻게……
왜 그리 놀랐어? 혹시 내가 오면 안 되는 거야?
……주임님이 현지 자원봉사자는 첫날만 동행한다고 말했는데.
그야 난 그저 외지에서 온 내 친구를 환대하고 싶은 거니까, 굳이 그쪽 규칙을 따를 필요는 없지.
네 생각은 어때,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
(고롱고롱)
확실히 그렇긴 하네……
그럼 오늘은 두 가지만 약속해 주면, 널 따라가도록 할게.
바로 들어줄게, 얼마든지 말해봐.
첫째, 다시는 설산에서 함부로 뛰어다니지 마!
둘째…… 오늘은 바로 산에서 내려가서, 치즈 퐁듀를 먹으러 가자.
내가 말했잖아, 그거……
아니, 내가 반드시 직접 먹어봐야 맛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거든.
하아, 어쩔 수 없네……
그럼, 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