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터처블
블루포이즌은 안전가옥 건설 임무에 참여할 예정이며, 임무 장소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그녀의 고향이다. 그곳이라면 그녀가 '독극물'이라는 낙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더 걸려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하지만 냄새가 너무 좋은걸요.
디저트를 만들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고요. 오븐 안의 반죽이 부풀면서 황금빛을 띠고, 점점 푹신한 케이크가 되는 모습은 정말……
글라우쿠스 씨, 원래 상상이 제일 달콤한 법이랍니다.
전 그래도 입에서 맛볼 수 있는 게 더 좋은걸요. 오늘은 무슨 맛이에요?
음…… 새로운 레시피예요. 생크림에 각종 베리류 잼을 섞었어요. 열대의 맛이 나도록 말이에요.
아, 이 잼 색깔은 여전히 놀랍네요. 패션 센스는 그렇게 좋으면서 디저트는 왜 이렇게 되어 버리는 거죠?
네? 산뜻한 색은 입맛을 돌게 해준다고 들었는데요.
산뜻한 색에 대한 정의가 다른 사람과는 다른가 봐요.
그래도 다 먹을 거잖아요.
맛있으니까요.
정말 아쉽네요. 자칭 디저트 애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어떤 맛을 놓치고 있는지 영원히 모르겠죠?
누구나 당신 같은 체질은 아니니까요.
케이크에 독을 넣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아, 이 시간의 휴게실은…… 보통 시끄러워야 정상인데, 저희가 들어오고 나서 왠지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로도스 아일랜드의 동료들은 저를 따돌리지 않아요. 전 충분히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다만 '독극물'과 어울리는 가장 좋은 방식은 멀리 떨어지는 거예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뿐이고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말이죠, 휴게실을 독차지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아요. 외근 전에 잔뜩 즐기자고요.
사르곤의 황야에서는 케이크를 즐길 기회가 없긴 하겠죠.
이번 임무도 순조롭게 끝났으면 좋겠네요.
남의 일처럼 말하지 말고요. 당신은 유격대 대장이잖아요. 안전가옥을 짓는 간단한 임무지만 방심은 금물이에요.
인적이 드문 곳이라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요. 뭐라고 했더라……
커툰.
맞다. 커툰 밸리. 가본 적 있어요?
아뇨.
음, 그럼 이따가 케이크 먹으면서 임무 보고서나 좀 봐둘까요? 우선 보급 포인트부터 확인하고……
아, 다 구워진 것 같아요.
이제 크림을 올리면……
아드나키엘, 케이크 구울 거면 나도 불렀어야지!
아.
엠브리엘 씨?
미안. 케이크 냄새가 나길래 착각을……
엠브리엘 씨도 먹을래요? 막 구운 거예요.
아니, 난……
……
(꿀꺽)
블루포이즌의 솜씨라면…… 도전할 가치가 있긴 하지.
괜찮으시다면 드셔보세요. 여기 차도 있어요.
뭐, 딱히 할 일도 없고…… 여기서 시간 좀 때워 볼까.
이 케이크는 말이야, 우선 마음의 준비 좀 하게 해줘.
엠브리엘 씨,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만약 독이 걱정되는 거라면……
아니, 아니, 그것보다는……
잼 색깔이…… 조금 이상하지 않아?
후……
맛 괜찮죠?
예전에 굼이, 블루포이즌이 만든 요리는 라테라노 디저트 가게 절반은 문 닫게 할 정도로, 상상 이상으로 맛있다고 했었어.
그런 이류 디저트 가게는 케이크에 설탕을 마구 붓잖아. 맛의 균형이라는 걸 애초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디저트의 '달콤함'은 진저리 날 정도의 달콤함이 아닌데 말이야!
……라테라노 출신인 엠브리엘 씨가 칭찬해 주시니…… 정말 영광이에요.
더 긍지를 가져도 좋아. 이 디저트 전문가님의 칭찬은 엄청난 가치가 있으니까.
하아, 엠브리엘 씨처럼 더 많은 사람이 블루포이즌 씨의 솜씨를 맛봤으면 좋겠네요.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를 매번 혼자 독차지하니까 조금 죄책감이 생긴다니까요.
나는 맛있는 디저트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 수 있는 타입이니까.
……역시 엠브리엘 씨도 불안하셨군요?
만약 정말 걱정된다면 의료부에 제 독 전용 해독제가 있어요. 제 입으로 말하니 부끄럽지만…… 필요하다면……
아니야, 미안해! 그런 뜻이 아니었어!
조심하세요, 가방이!
이건……
……
아하하…… 이 해독제는 예전에 미리 받아둔 거야. 며칠 뒤면 같이 외근 나가니까……
그러고 보니 엠브리엘 씨도 이번 임무의 유격대원 중 한 명이군요.
맞아. 나중에 같이 싸워야 하니까. 그냥 만약을 위해…… 정말 만일을 위해 겸사겸사 준비해 둔 것뿐이야……
미안!
아니에요, 그러지 마세요. 저도 모두를 위해 해독제를 준비해둔걸요. '독극물'로서의 제 책임이죠.
만약 모두가 저의 존재로 불안하고 두려워한다면…… 그건 오히려 제가 사과해야 할 일이에요.
블루포이즌……
저기, 한 조각 더 먹어도 될까?
엠브리엘 씨?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케이크를 억지로 먹는 라테라노 사람은 없어. 한 조각만 더 줘.
……조금 새롭게 보이는데요. 엠브리엘 씨, 자 여기요.
고마워.
나도 언젠가 글라우쿠스 너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싶어. 나도 너처럼 동료를 완벽하게 믿어야 할 텐데 말이야.
아, 저는 단지 이 사람의 독이 통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에요.
콜록 콜록!!
진정하세요, 자, 해독제도 마시고!
콜록! 아, 아니 괜찮아. 차…… 차 좀……
정말 괜찮아요? 이건 와파린 선생님이 특별히 제조해 주신 거예요. 주스 맛이죠.
정말 괜찮아!
풋…… 하하하하하!
엠브리엘 씨, 정말 감사해요.
만악……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다면……
푸하…… 살았다! 뭐라고?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엠브리엘 씨도 오셨으니 케이크 먹으면서 임무 브리핑이나 확인해 볼까요?
아, 바로 시작하는 거야? 좀 더 게으름 피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뭐, 좋아. 케이크의 보답으로 조금 더 일하지 뭐.
커툰 밸리, 사르곤 경내 광활한 정글에 있으며, 예로부터 아미르들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은 곳이다.
이 역시 로도스 아일랜드가 이곳에 안전가옥을 지으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기도 하다.
커툰이 이처럼 특별한 곳이 된 원인은 다양하다. 자료에 따르면 이곳의 광물은 결코 부족하지 않으며, 과거에는 아미르들이 자신의 세력 범위를 이곳까지 확장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부 알 수 없는 이유로 실패하고 말았다.
구체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지만…… 현지 가이드의 말로는 이 땅의 원주민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라고요.
그 원주민들이 이번 우리 임무에서 가장 불확실한 요소예요. 가이드 말로는 그들과의 의사소통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뭔가 매우 무서운 능력이 있다면서 경고했어요.
정보에 일관성도 없고, 발생한 현상의 묘사만 존재하지만, 분석한 바에 따르면 유독성 화합물에서 비롯되는 것일 가능성도……
흠, 뭔가 성가신 것 같은데.
걱정 마세요. 임무 난이도 등급도 그리 높지 않고,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
블루포이즌 씨?
아무것도 아니에요. 계속하세요.
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우리는 여기에 안전가옥을 짓고, 그곳을 재앙 관측소와 임시 의료 거점으로도 사용할 거예요. 현지 직원이 배치되면 우리 일도 끝나는 거고요.
응, 표준 절차네.
그러니까 만약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몇 달 뒤에는 본함에 돌아와서 케이크를 구울 수 있다는 거죠.
야! '만약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이라니!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괜히 찝찝하다고!
생각보다 신경질적인 분이셨군요……
그것보다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아까 말했던 원주민은…… 어떤 종족이야?
자료에는 적혀 있지 않은데, 듣기로는 종족 특성이 명확하지 않다고도 하고……
아누라.
저랑 같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그곳의 원주민이 저희 일족이니까요.
커툰은 제 고향이에요.
그, 그걸…… 왜 이제야 말해요!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요!
딱히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어려서부터 이베리아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곳에는 가본 적이 없거든요.
커툰에 관한 건 저도 할머니의 이야기로만 들어봤어요.
커툰, 그곳은 우리 고향이다.
그곳은 유일하게 우리가 이단으로 취급받지 않는 곳이다.
그곳은 유일하게 우리가 진정으로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유일하게 우리가 '독극물'로 낙인찍히지 않는 곳이다.
어떤 곳인데?
글쎄요,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그곳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주셨는데 너무 아름답게만 들려서…… 거의 신화나 전설 같달까요.
우리 가족은 100년 전에 사르곤에서 이베리아로 이주했어요. '이주'라는 단어는 미화된 거고, 사실은 더 끔찍했죠.
우리는 실험체로 이베리아에 팔려 간 거니까요. 아누라는 선천적으로 독에 내성이 있다고들 하죠. 아주 불행한 재능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봐요.
음모와 독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조합이니까요. 그렇죠?
블루포이즌, 말하기 싫으면 그만해도 돼.
괜찮아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저는 그런 실험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 재난 이후, 이베리아는 자기 일만으로도 벅차서 우리 같은 외지인을 관리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거든요.
잔인한 과거는 가족 중에서도 나이 많은 분들의 이야기일 뿐이에요. 커툰은 그 이야기 중에서도 훨씬 더 오래된 역사일 뿐이고요.
“아주 오랜 옛날, 우리가 아직 커툰에 있을 때……” 할머니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고는 했어요. 여러분도 이런 옛날이야기 들어보셨죠?
“아주 오랜 옛날, 에기르인들이 아직 바다 밑에서 살고 있을 때……”
“아주 오랜 옛날, 라테라노가 아직 세워지지 않았을 때……”
후후…… 아무래도 옛날이야기는 모두 비슷하게 시작되나 보네요.
웃음이 안 나오네.
커툰에 대한 아름다운 전설은 우리 가족이 한 세대, 또 한 세대를 이어 나갈 수 있게 지탱해 줬어요.
그곳은 낙원이에요. 그곳에서는 아무도 '독극물'이라고 우리를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죠.
할머니는 항상 말씀하셨어요. 지금의 고립된 환경도, 조심하며 지내야 하는 생활도 모두 한때의 시련에 불과하다고요. 우리가 커툰에 돌아가기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야 제게 몰래 알려줬어요. 할머니조차…… 우리 가족 중 나이가 가장 많았던 분조차도 커툰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고 말이죠. 참 웃긴 이야기죠?
우리가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듣던 이야기는 할머니의 상상과 전해져오는 이야기들을 엮은 엉터리에 불과했던 거죠.
심지어 커툰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시더라고요.
다행히 이제라도 알게 됐네요.
그러게요. 생각지도 못한 계기긴 하네요.
나쁘지 않네! 이번 기회에 고향에 가보자고! 비록 고향이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경험상 별로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전설 속의 커툰과 현실의 커툰은 많이 다를지도 모르니까요.
(불안) 역시 로도스 아일랜드에서의 나날이 더 즐겁잖아요. 그렇죠?
그곳은 유일하게 우리가 '독극물'로 낙인찍히지 않는 곳이다.
블루포이즌 씨?
……
네, 아마도요.
하지만 만약 그곳에서만이 제가……
박사님?
- 케이크 냄새가 나네.
- 간식 좀 먹으러 왔어.
후우, 놀라라. 나 땡땡이치고 있던 거 아니야!
박사님, 블루포이즌 씨가 막 구운 케이크에요. 드셔보실래요?
하…… 하지만……
- 블루포이즌, 먹어도 될까?
괘…… 괜찮으시다면…… 여기 해독제도 있으니까요……
아니지, 박사님은 특별하시니까, 역시 켈시 선생님을 모셔와야……
- (우물우물)
- 이거 맛있다.
- (우물우물우물)
- 새콤달콤한 베리에 상큼한 바나나, 게다가 견과류의 식감까지. 맛있네.
정말…… 정말 괜찮으신가요?
오늘 연속으로 두 사람이나 블루포이즌 씨 케이크를 먹었네요. 기록 경신이에요.
그러게요. 신기록이네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블루포이즌 씨. 당신은 이미 우리의 동료니까요.
엠브리엘 씨, 글라우쿠스 씨…… 고마워요.
박사님도 고마워요.
만약 제가 정말……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 말은 잊어주세요.
작전 회의에서 뵐게요, 박사님.
- 블루포이즌 유격대, 이번 임무 내용은 충분히 숙지했겠지?
네. 충분히 숙지했어요.
하지만 다시 한번 제가 대장직에서 물러날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저는 한 팀을 이끌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아시다시피 제 독이 모두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고……
- 네가 가장 적합한 인선이야.
- 난 너를 믿어.
……그런가요?
맞아요. 잘 부탁해요, 대장.
게다가 해독제도 미리 준비해 뒀잖아.
심지어 사과 맛이야.
……하하, 맞아요.
- 그럼 이번 임무를 맡겨도 될까, 블루포이즌 대장?
최선을 다할게요, 박사님.
그럼 우리는 먼저 가볼게요.
네. 이따가 봐요.
박사님, 서류 정리를 도와드릴게요.
(앗, 손이…… 닿았나?!)
박사님, 죄송해요! 박사님께 손이 닿았나 봐요!
이쪽으로 오세요. 바로 의료부로 가서 소독을……! 아니면…… 아니면……
- 괜찮아.
- 내가 확인해 봤는데 이 정도는 문제없어.
하지만!
- 블루포이즌, 긴장하지 마.
…… 전…… 저는 '독극물'이니까…… 저와의 접촉은 위험해요……
- 너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일원이야.
그래도 정말 괜찮으세요?
- 물론이지.
……후우.
그럼 가지고 계신 문서 중에서 신청서 하나만 취소할게요.
전에 부서 이전 신청을 냈었거든요. 이번 임무 후에 커툰 안전가옥 주재 오퍼레이터로 전근하고 싶다는 내용의 신청서였죠.
어릴 때 할머니는 우리 고향인 커툰이 유일하게 우리가 '독극물'로 낙인찍히지 않는 곳이라고 하셨거든요. 저도 계속 그렇게 생각해왔고요……
하지만 제가 누구인지 결정할 수 있는 건 저뿐이에요. 그렇죠?
저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일원이에요. 저는 여기 생활이 너무 좋아요.
그러니까 그 신청서를 몰래 취소해도 될까요?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기 전에 말이에요.
박사님, 작은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
새로운 디저트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요. 나중에 시간 날 때 드시러 오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