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긴 복도에서 나와
바이비크는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자신을 감염시킨 사람과 만나보기 위해 감옥에 들르기로 결심한다.
앗……! 어떻게 된 일이지……?
바이비크 선생님, 괜찮으세요? 찻잔이 너무 뜨거웠나요?
으음~ 바이비크는 집에 돌아가는 게 기뻐서 손까지 떨리나 보네.
……
괜찮아~ 염국엔 '액땜'이라는 말이 있거든~
신경 쓰지 마, 이 다과회는 바이비크를 배웅하기 위해 준비한 거니까. 여기 앉아, 새로 따라 줄게.
앗, 조심하세요! 여긴 제가 먼저 치울게요.
……
바이비크……
……왜 그래?
사랑하는 딸에게
엄마, 아빠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어.
네 방은 엄마가 항상 청소하고 있어서 네가 떠난 그날과 똑같단다. 아빠는 새 안경을 맞추셨어. 저번에 눈 나빠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네 말을 역시나 흘려들었거든.
......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는 들었어. 오퍼레이터가 되고 많은 활약을 했다지. 아빠도 엄마도 네가 정말 자랑스럽단다.
참, 한참 고민했는데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널 광석병에 감염시킨 사람을 경찰과 함께 체포했단다. 재판을 거쳐 지금은 감옥에서 복역 중이야.
아가, 몇 년이 흘렀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구나. 로도스 아일랜드의 생활이 순조롭고 행복하길 바라는 아빠 엄마가.
......
(……수감된 지 1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말씀해 주시네.)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는데. 이제…… 난 아무렇지도 않은걸…… 응.)
(엄마가 찍은 사진도 들어 있네…… 풉, 아빠가 새로 샀다는 안경은 색깔이 왜 이래?)
(일부러 이런 사진을 보내셨겠지…… 헤헤.)
(이건…… 옷? 레이피어도 있네. 멋진 데다 손에도 착 감기고…… 아빠가 디자인한 게 분명해.)
전달자가 운반한 물건들로 네 방이 금방 다 차던걸. 부모님께서 집을 통째로 보내신 것 같아.
이 검은 나중에 훈련할 때 쓸 생각이야?
네, 아빠가 디자인한 거예요.
부럽네. 예전에 집에 있을 때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나보구나?
아니에요, 오키드 씨……
쑥스러워?
……오키드 씨, 자꾸 놀리면 드레스 만드는 거 안 도와드릴 거예요!
어머, 무서워라! 바이비크 도움 없이 새 옷을 어떻게 만들어?
오키드 씨 정말! 놀리지 마세요!
하하, 편지 계속 읽어. 이제 방해하지 않을게.
바이비크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또 다른 편지로 시선을 돌린다.
이건 누가 보낸 걸까요? 이름도 안 쓰여 있고…… 보내는 사람이…… '감옥'?
'착한 아가씨, 지금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난 이제 비로소 마음의 안식을 얻었고, 이 평화의 기쁨을 아가씨에게도 전하고 싶어요.'
'나는 무고한 사람을 오리지늄으로 감염시킨 사실 때문에 줄곧 괴로웠어요. 그래서 정신과 의사를 찾아 도움을 구했고,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었어요.'
'의사가 그러더군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실수를 한 번쯤은 용서해야 한다고. 그래서 난 그 기회를 나 자신에게 주었어요. 내가 저지른 실수를 용서했고, 지금 난 아주 편안해요.'
……
'의사에게 아가씨가 어떤 기분일지 물었어요. 아가씨가 계속 증오와 괴로움의 덫에 갇혀 있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착한 아가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우리는 자신을 용서하고, 타인을 용서해야 해요. 증오를 버리고 더 나아가 원수를 받아들여야 하죠. 그래야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어요.'
……?
왜 그렇게 넋이 나간 얼굴이야? 누가 보낸 건데?
그…… 범인이에요. 절 이렇게 만든…… 그 사람.
……누구? 아…… 그놈이 뭐래?
자기는…… 용서와 평안을 얻은 것 같대요.
오키드 씨…… 잘된 일이겠죠?
음……
사실 지난 몇 년은…… 매일 바쁘고 할 일도 많아서 이 일을 잊고 지냈어요. 자주 생각나지도 않았고요.
그 사람은…… 어느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의 평안을 얻었대요. 이제 더는 저를 감염시킨 일로 괴롭지 않다네요.
저도 그 일을 거의 잊었고, 그 사람도 감옥에 있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마음의 응어리를 풀었으니……
출소한 후에는 그 사람도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겠죠?
헤헤…… 잘됐어요. 이제 이 일도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럼 저는……
전……
바이비크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흐읍…… 저, 저는……
눈물이 망가진 수도꼭지마냥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왔고, 이내 그녀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 되었다.
바이비크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당황한 그녀는 황급히 눈물을 닦아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더니 그녀는 결국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바이비크, 갑자기 왜 우는 거야? 괜찮아?
아…… 왜, 왜 눈물이…… 저 왜 이러는 거죠?
여기, 손수건으로 닦아.
네, 하하…… 제,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곧 집에 간다는 생각에, 너무 기뻐서 그런 거겠죠?
훌쩍…… 오키드 씨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괜찮아. 별일도 아닌데. 얼른 가서 세수해. 따뜻한 물 가져다줄게.
자, 얼른!
네에!
전……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거지……?
바이비크, 물어봤어?
네, 다음 달에 로도스 아일랜드가 컬럼비아를 지난대요. 전 보급소에서 내리기로 했고요. 집에서 푹 쉬고 오라고 아미야 씨가 특별히 두 달 휴가도 허락해 줬어요.
오키드 씨, 이번엔 부모님을 모시고 여기저기 많이 다닐 생각이에요, 그런데 집에는 무슨 선물을 가져가면 좋을까요?
다른 나라 특산품? 로도스 아일랜드 물건? 아니면 제가 직접 뭘 만들어 볼까요?
오키드 씨, 전달자에게 미리 연락해서 보내 놓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직접 가지고 가는 게 더 좋을까요?
뭘 그렇게 서둘러? 아직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준비해도 돼.
어, 손이 너무 차가운데, 왜 그래?
아……
오키드 씨, 사실 저 좀 긴장돼요……
그 편지…… 그 편지를 받고 일주일 내내 그 내용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이번에 돌아가면 감옥에 한 번 가보려고 해요.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요.
……바이비크.
네?
그런 결심을 하다니 정말 대단해.
아니에요…… 일주일 내내 고민한 끝에 겨우 결정한 일인걸요……
그냥 한 번은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어쨌든 이건 저의…… 제가……
괜찮아…… 긴장할 필요 없어. 그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것도 과거와 마주하는 하나의 방법이니까. 좋은 생각이야. 넌 정말 용감해.
우선 가자, 집에 뭘 가져가야 할지는 나도 별로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자.
네!
릴리 씨, 물어볼 게 있는데, 다음 달에 집에 갈 예정인데 뭘 사 가는 게 좋을까요?
염국 특산품 드렁크 핀이요? 음…… 감사합니다. 생각해 볼게요.
굼 씨한테 쿠키 만드는 법을 배워 직접 구워 갔단 말이죠? 재밌겠네요. 주방에 가서 물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아, 굼 씨가 임무 중이라고요? 그렇군요……
임무 중에 찍은 사진을 가져갔단 말이죠? 가족들이 좋아하셨나요? 음, 생각해 볼게요……
모두 감사해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가족들은 물건을 사 가는 것보단 모두가 직접 만든 선물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사실 나와 관련이 있으면서, 사랑이 담긴 물건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며칠 후
새 옷 벌써 다 만들었어요? 역시 바이비크 선생님은 엄청 빠르시네요!
간단한 뜨개질 방법만 알려준 것뿐인데 선생님이라뇨.
힝……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전 이제 겨우 재단을 마쳤어요. 이래서 아빠 옷을 언제 다 만들지 모르겠어요.
초보자치고는 정말 잘하고 있어요. 분명 금방 완성할 수 있을 거예요.
며칠 전엔 집에 갈 때 뭘 가져가야 하냐고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니더니, 부모님께 옷을 만들어 드리기로 결정한 모양이네.
네, 다들 집에 갈 때 뭘 가져가는지 말해줬는데……
가족들은 우르수스 특산품 꿀 음료나 임무 중에 산 사미 특제 훈제 고기보단, 눌리고 부서진 수제 쿠키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직접 만든 물건에 더 많은 정성이 담겨서 그런가 봐요.
옷감을 재단하면서 그제야 부모님의 옷 사이즈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몸에 딱 맞는 옷이 아닌 외투를 만들 수밖에 없었죠.
외투도 좋지. 따뜻하고 세련되고. 그건 그렇고 돌아가는 건 다음 달이라면서 왜 그렇게 서둘러? 요 며칠 밤도 새우는 것 같던데.
아니에요…… 요즘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해서요.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달까요?
곧 집에 간다니까 설레서 그렇겠지. 다들 그래.
그것도 그렇지만…… 바이비크 선생님이 그 나쁜 놈을 만나야 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나쁜 놈들과는 그냥 멀리하는 게 답인 것 같은데……
그 얘기 듣고 나도 좀 걱정이 되더라고. 만나서 무슨 말을 하려고? 그 편지도 널 속이려고 쓴 거라면? 괜히 갔다가 이상한 소리만 들을지도 몰라……
모르겠어요……
아마…… 괜찮지 않을까요?
그냥 면회만 하면 되니까요. 안에는 교도관도 많고, 대화도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하잖아요.
딱히 뭘 하겠다고 가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 사람이 감옥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고 싶어요.
편지도 쓰고, 정신과 의사도 찾아갔다는 걸 보면 그 사람도 그동안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전 그 사람이 안정을 찾고 제대로 살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이런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니겠죠?
내가 너라면 제일 좋고 비싼 옷으로 차려입고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잘살고 있다고 말할 것 같은데.
바이비크, 어차피 가는 건 너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이~ 뭐하고들 있어? 밖에서 '옷'이라는 단어가 들리던데.
힙한 옷은 라바한테 많이 있지. 내가 꾸미는 걸 도와줄게, 바이비크~ 가면이 달린 그 옷을 입는 게 좋으려나~
감옥 안에 갇힌 놈, 가서 기를 꺾어줘야지!
풋.
뭔 소리야.
그래도 바이비크가 웃었잖아~
여러모로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뭘까?)
……
어라, 바이비크, 도안은 왜 또 그리는 거야?
(감옥에 있는 그 사람에게 줄 옷을 디자인해야 하는데……)
(만약 옷으로 감정을 나타낼 수 있다면, 전 그 사람에게 어떤 모양의 옷을 만들어줘야 할까요?)
(검은색? 아니면 따스한 색? 찢어야 할까? 아니면 편하게 만들어야 할까? 각 잡히게 만들까? 아니면 너덜너덜하게?)
(근데 전 왜 그 사람에게 옷을 만들어 주려고 생각했을까요? 이 실과 옷감, 바느질 한 땀 한 땀은 뭘 의미하는 걸까요?)
(……모르겠어……)
……
엄청 집중하고 있네요, 못 들었나 봐요……
바이비크?
바이비크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종이에 계속 스케치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음, 그럼 나는 좀 잘게~
흠, 사실 난 좀 걱정이야. 바이비크의 부모님이 함께 가시려나? 혼자 가는 거라면 많이 불안한데.
하지만 바이비크가 이번에 가서 무사히 아무 일도 없이 돌아온다면 이 일도 진짜 끝났다고 볼 수 있겠지.
쿠울……
바이비크 선생님, 이제 쉬세요. 크루스 씨는 벌써 잠들었어요. 오늘 얼마나 작업하신 거예요? 너무 무리하시면 안 돼요.
음……
금방 끝나요…… 손 부분에 천을 좀 더 대고……
……여기만 끝내면 되는데……
어?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재단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부모님께 드릴 옷은 벌써 다 만든 거 아니었어요? 이 옷은 누구 거예요?
이건……
바이비크가 바삐 움직이던 손을 갑자기 멈추더니 완성을 앞둔 검은색 코트를 멍하니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가지런한 옷본과 재단에 비해 바늘땀이 엉망이었다. 옷감은 거칠었으며, 마무리도 조잡스러웠다.
바이비크는 자신도 모르게 책상 위에 있던 가위를 집어 들어 옷을 잘라버리려 했다.
이건……
감옥에 있는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만든 옷이에요.
뭣, 그 사람한테 옷까지 만들어 준다고?!
음냐~ 대체 무슨 일이야~?
……와.
……정말 존경스러워. 바이비크는 이제 진짜 신경 안 쓰나 보네.
감염시킨 사람에게 옷을 선물한다니, 정말 대단해.
나라면 절대 못 했을 거야.
말을 마친 오퍼레이터는 일어나 바이비크의 어깨를 토닥였다.
나라면 이사 가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을 거야. 날 감염시킨 그 사람을 보러 가지도 않았을 거고, 하물며 옷을 만들어 주는 일은 더더욱 없었겠지.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증오하고 절대 용서하지 않았을 거야.
바이비크가 강하고 용감하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진짜 존경해.
넌 정말 강인한 사람이야.
바이비크는 무슨 말을 하려는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못 하고 웃어 보였다.
가위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지자 바이비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요…… 근데 저도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건지……
……
……아니에요, 카린.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늦었으니 이제 가서 쉴까요?
잘 가, 바이비크~
아, 크루스. 바이비크가 언제 가는지 알아? 그날 배웅해 주고 싶은데.
소소하게 다과회라도 해도 좋고.
오~ 괜찮은 생각인데~
요즘 바이비크 선생님이 저희 아빠 옷 만드는 걸 도와주고 있어요. 장소를 꾸며야 한다면 저…… 저도 도와드릴게요!
다들 준비됐어?
조심~ 잔이 뜨거워~
간식은 다 놓았고, 리본도 준비됐어요. 이제 바이비크 선생님만 오면 돼요.
다들, 내가 바이비크를 데리고 왔어!
여러분 미안해요! 짐을 챙기느라 좀 늦었……
어어……! 폭죽이 갑자기 왜 안 터지는 거지?! 잠시만요……
퍼엉!
테이블 주변에 서 있던 오퍼레이터들이 폭죽을 터뜨리자 색종이 조각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바이비크 선생님의 잠깐이지만 깜짝 송별회를 시작합니다!
어서 와~ 바이비크, 홍차야~
무사히 잘 다녀와!
늘 진지하게 생활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모두를 위해 예쁜 옷을 만들고, 외근 임무도 언제나 성실히 하는 바이비크가 고향에 잘 다녀오기를 바라며!
어, 아니, 여러분 이건 너무 거창해요!
집에 잠깐 다녀오는 것뿐인데……
바이비크,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냥 즐겨~
바이비크, 몇 년간 함께 일하면서 친자매처럼 생각했어.
가냘픈 외모와 달리 사실은 누구보다도 강인한 걸 잘 알고 있어.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아요…… 모두가 도와준 덕분인걸요.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바이비크 선생님, 이것 좀 먹어보세요. 주방에서 막 구워낸 거예요.
선생님이 이번에 집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식당 이모가 최고로 맛있게 만든 거래요!
자자~ 바이비크, 우리 짠 해야지! 근데 팽한테는 비밀이야. 분명 '찻잔은 건배하는 게 아니야'라고 할 테니까. 진짜 너무해~
바이비크, 난 너랑 나이는 비슷하지만 그렇게 용감하진 못해. 지금의 넌 로도스 아일랜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 많이 달라졌어.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
다들 고마워요……
다른 건 몰라도 널 감염시킨 사람에게 옷을 만들어 준다는 게 가장 존경스러워.
솔직히 말하면 난 절대 못 했을 거야.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왜 그랬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고……
바이비크, 이번에 가면 그 일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거야.
이런 걸 두고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고 하는 거겠지…… 납득했어.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
바이비크, 잘 다녀와!
네에! 고마워요!
고마워요, 다들……
전……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라…… 여러분 눈엔 제가 그렇게 보인다는 거겠죠?)
(그 말은 내가 좋은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라는 뜻이겠네.)
(분명 다들 그런 바이비크를 좋아하고 감동해서 이렇게 송별회를 해 주는 걸 거야.)
(다른 사람들은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를 감염시킨 사람에게 옷을 지어주겠다고 하니까.)
(어렸을 때부터 교양 있고 예의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부모님께 배웠으니 나도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는 게 맞아.)
……
(그런데 난 정말…… 기쁜 걸까?)
(……나는 정말 이런 바이비크가 마음에 드는 걸까?)
(난…… 이런 내가 좋은 걸까?)
모두의 진심 어린 미소를 앞에 두고 바이비크는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바이비크는 주위의 시끄럽던 웃음소리도, 눈부시던 조명빛도, 뜨거운 찻잔조차도 모든 것이 견디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무언가 깨부수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마자 손이 떨리면서 잔이 떨어졌고, 쨍그랑하는 소리에 바이비크는 몸을 떨었다.
그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지 못했고, 정신을 차렸을 땐 깨진 찻잔 조각과 쏟아진 차가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앗……! 어떻게 된 일이지……?
바이비크 선생님, 괜찮으세요? 찻잔이 너무 뜨거웠나요?
으음~ 바이비크는 집에 돌아가는 게 기뻐서 손까지 떨리나 보네.
(그게 아닌데……)
괜찮아~ 염국엔 '액땜'이라는 말이 있거든~
신경 쓰지 마, 이 다과회는 바이비크를 배웅하기 위해 준비한 거니까. 여기 앉아, 새로 따라 줄게.
앗, 조심하세요! 여긴 제가 먼저 치울게요.
(나…… 갑자기, 내 마음이 어떤지 알 것 같아.)
바이비크……
……왜 그래?
괜찮아요…… 제가 잔을 잘못 들었나 봐요.
계속하시죠. 혹시 제가 잔을 떨어뜨리면서 차가 튀진 않았나요?
제가 치울게요. 제 발밑으로 떨어진 거라 어디에 파편이 떨어졌는지 더 잘 보이거든요.
후…… 그래도 될까요?
바이비크 선생님이 괜찮으신 거면 됐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별일 아니에요. 갑자기 손이 좀 떨려서……
(그래도 이젠 알겠어. 난 이런 내가 싫어.)
이런 송별회를 열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 자리에는 함께 싸운 전우도 있고, 함께 옷을 만든 친구도 있죠.
지난 몇 년간은 제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다들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줘서……)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께 꼭 말씀드릴 거예요.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너무나 배려 깊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고. 저를 위해 송별회까지 열어줬다고요.
(그래…… 결심했어. 그리고 이번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럼 함선이 아직 완전히 멈추지 않았으니 다과회를 계속할까요?
바이비크, 조심히 가고 돌아가서 푹 쉬어!
조심히 다녀와~
간식이에요. 가는 길에 출출하면 드세요!
무사히 돌아와!
고마워요. 다녀올게요!
네, 신청서는 이미 승인받았어요. 예약한 접견 시간은 오늘 오후 3시부터 3시 30분이고요.
확인을 위해 신청서 접수증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확인했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네.
절차가 조금 더 남았습니다.
먼저 접견 안내서에 서명해 주세요. 방금 보여 주신 신청서 접수증을 제출했으니 곧 답변이 올 겁니다.
네.
접견인 정보 등록도 해야 하니, 여기에 실명으로 이름과 기타 정보를 기입해주세요.
네.
마지막으로 안전 수칙입니다. 꼼꼼히 읽어 보세요. 가서 수용자를 준비시키겠습니다.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후……
드디어.
5분.
10분.
20분.
차는 이미 식은 지 오래였고,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듯했다. 그때, 교도관이 대기실로 돌아왔다.
절차 확인이 모두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 안전 수칙에 서명하시고 접견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착한 아가씨, 드디어 와주셨군요!
내가 보낸 편지를 읽었나 보네요, 그렇죠? 내 말대로 자신에게 기회를 준 것이군요. 이걸로 우린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해질 수 있어요!
의사 말이 맞았어요. 난 나의 잘못을 용서하고 마음속 응어리를 풀고 나서야 비로소 평안을 얻었어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착한 아가씨…… 정말 고마워요!
바이비크가 말없이 손에 들고 있던 꾸러미를 내밀었다.
착한 아가씨, 나한테 주는 건가요?
이건…… 편지? 내가 보낸 편지인가요? 왜 돌려주는 거죠?
그는 감격한 듯 창틈을 비집고 손을 뻗어 바이비크의 떨리는 손을 잡으려 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바이비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용서하지 않아.
몸을 일으킨 바이비크는 발길을 돌려 접견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등 뒤로 죄수의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교도관이 급히 들어 왔고, 접견실에는 어수선한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바이비크는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니, 듣고 싶지도 않았다.
바이비크는 문 너머 길고 긴 복도를 걸어갔다.
밖에는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고, 바이비크는 그런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