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1불타버린 조각1
성실함에 관한 이야기
탈룰라 씨.
……좀처럼 보기 드문 표정이로군. 무슨 일이지?
우리, 정했습니다.
여기 남기로 했습니다.
아,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중 일부만 여기에 남을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르수스를 떠날 생각이고요.
어쨌든 우린 더는 남하하지 않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마음대로 해.
이유는 안 물어보는 건가요?
우리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고, 또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와 준 건 당신이었죠……
그래서 내게 복종하고, 목숨을 걸고 우르수스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일은 없어, 절대. 그런 건 원칙에 어긋나는 거니까.
하하…… 네, 당신은 이런 사람이었죠.
난 너희의 지도자가 아냐. 사방이 시신으로 가득하고 불행한 기억만 담긴 곳이라고 해도 툰드라는 너희가 되찾아야 할 땅이다.
너흰 강해, 너희가 이 모든 걸 이겨낼 방법을 찾을 거라 믿는다.
필요하다면 내가 배웅해 주겠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훗, 그러고 보니 저도 한때는 여러분의 동료였는데. 앞으로 새로운 동료들에게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네요.
너무 나쁘게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탈룰라, 모닥불 피웠어!
알았어, 금방 갈게!
그럼 오늘 저녁이 마지막으로 함께 하는 식사가 되는 건가?
조금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여기 와서 이야기를 할 겁니다, 모두 다요.
그래.
……탈룰라 씨.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당신의 편에 설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는 겁니까? 더는 배신당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는 거죠?
아……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죠. 당신은 현명하고 강한 데다 많은 걸 알고 있으니까요.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린다 해도 멈추지 않겠죠, 그렇죠?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그래도 그렇게 무섭게 말하진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하하, 오해하지 마십시오. 한두 번 좌절했다고 쫄 겁쟁이는 아니니까요……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모두가…… 당신처럼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을 거라고요.
사실 저만 해도 어차피 죽을 목숨, 며칠 더 살더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당신들을 따르기로 한 거거든요……
배불리 먹고 나니 의외로 저 같은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들도 배만 부르면 된다고 생각한 거겠죠……
강인함과 선의, 모두 보기 드문 것이니까.
네, 그렇죠.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만요.
이렇게 계속 싸우다 보면 더 나빠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귀족과 권력가들이 우리를 몰살시키고, 죄 없는 사람들과 아이들을 끌어들이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전…… 전 괜찮지만,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면 두렵습니다.
나 혼자만 배부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죠…… 혼자서 배부를 수 있는 일이라면 제게도 이런저런 방법이 있답니다. 이를테면……
팔아버리는 겁니다.
우리가 중요시하는 걸 말이죠.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하찮은 감염자 한 명을 풀어줘서 나머지 반역자들을 해결해 버린다면 이보다 남는 장사는 없겠죠.
……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여기를 더더욱 떠나선 안 된다고요.
탈룰라 씨, 모든 사람을 데려갈 순 없는 거겠죠?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이렇게 됐으니 계속 남하하면 당신이 말한 아름다운 걸 얻기도 전에…… 엇, 그럼 툰드라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툰드라에 남은 감염자들은……
툰드라뿐만이 아닐 겁니다…… 이 기회에 여길 떠나려는 사람이 넓고 넓은 세상에 깔렸을 겁니다.
다른 곳에서 고통받은 동료들을 찾고, 다른 곳을 돌아보다 보면…… 감염자들이 발붙일 만한 곳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훗……
그렇게 생각한다니…… 기쁘군.
어…… 혹시 제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 건가요? 그게 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 그나저나…… 결정적인 순간에 이탈한다면 저희를 탈영병으로 오해하진 않을까요? 이런 일은 잘 몰라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훗,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다.
탈룰라든, 유격대든 상관없어. 모두 그저 '이름'에 불과할 뿐이니까.
그 이름 아래 너희들이 지닌…… 생각, 정신, 저항의 뜻을 담은 숭고한 불꽃을 세상에 퍼뜨린 걸 자책할 필요는 없어.
알겠습니다!
솔직히 완벽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탈룰라 씨가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입니다.
안심해도 돼.
자…… 사냥꾼들이 헛수고하게 할 수는 없지, 너희들의 함정 설치 실력은 솔직히 놀라울 정도였어.
이렇게 밥을 먹을 수 있는 날들을 소중히 여길 겁니다. 탈룰라, 저흰 이 세상 끝까지 갈 겁니다.
어이! 다들 어서 와, 식사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