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8-3머리, 불길을 즈려밟고 치켜든
탈룰라의 목숨을 인질 삼아 두 사람을 협박하는 '불사의 검은 뱀'. 하지만 그는 탈룰라가 죽어도 전쟁은 여전히 발발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제법이군.
정말 제법이야……
이건 뭐지? 참룡검도, 마왕의 검도 날 쓰러뜨리지 못했는데 어째서…… 아츠가…… 내 힘이 사라지고 있는 거지?
불꽃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 여전히 뜨거웠지만 몇 분 전보다는 화력이 약해진 상태였다.
피로 물든 첸의 손은 쉬지 않고 떨렸고, 첸의 눈꺼풀은 얼어붙은 것처럼 거의 깜빡이지 않았다.
……
기쁜가?
즐거운가?
승리에 한발 다가섰는데도 왜 그런 표정인 거지?
승리가 바로 너희 눈앞에 있어…… 그렇지 않나?
으윽……
아츠가 풀렸어…… 이제 말을 할 수 있겠네.
아미야, 방심하지 마. 우리 체력도……
날 이 몸에서 쫓아내고 싶은 건가?
그럼 그렇게 해보시지.
지금 누굴 보고 비웃는 거야?
마왕, 마왕이여…… 넌 어째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냐?
그녀의 몸에서 날 쫓아내는 걸 너희, 아니 네가……
할 수 있을 텐데?
……
그녀와 나를 심판하는 게 다를 건 또 뭐지? 이 모든 건 내가 저지른 죄 아니던가?
대답해라, 마왕.
당신 말이 맞아요, 카셰이.
탈룰라가 절대 원하지 않았다면 그 일들을…… 당신은 결코 할 수 없었겠죠.
……
당신에게 속하는 그 생각들은…… 설령 왜곡된 것이라 해도, 모두…… 탈룰라 본인에게서 나온 것들이에요.
너!
당신은 탈룰라 씨의 육체를 해치려는 건가요?
뭐 하는 거야?! 검 내려놔!
누군가가 네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 본 적 있나, 나의 '동생'아?
드라코의 육체라 해도 이 검의 예리함은 견디지 못할 거다.
난 그녀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할 수 없어.
그렇다면, 탈룰라는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개수작 부리지 마!
그녀 마음속의 절망, 벗어날 수 없는 치욕이 아주 짙지는 않을까, 그녀가……
……
자결할 만큼?
카셰이! 당신이 탈룰라 씨에게 한 짓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거예요!
당신이 그녀의 그림자이든, 그녀가 깨어나는 걸 막는 장애물이든, 그것도 아니면 그녀의 다른 모습이든…… 탈룰라가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든 간에, 당신이 맞을 리 없어요.
난 그녀를 '교육'하고 있을 뿐이야.
내 실패의 원인은 아직 내게 남아 있는 의지 때문이다. 너희도 의지가 없는 사람을 만나면 알게 되겠지. 고통이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말이야.
마치 그 불쌍하게 그녀의 희생양이 된 우르수스 전사들이 고작 그녀의 발 아래 깔려 튼튼한 길이 되어버린 것처럼.
감염자들, 불쌍하기 그지없는 감염자들…… 세상에서 인정하지 않는 가치를 발휘해야 하는 감염자들은…… 지금도 버려지고 있다.
나 역시 그녀를 떠받치는 존재에 불과해. 내가 널 죽이면…… '동생'인 네게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다.
우릴 검은 뱀으로 불러도 좋다, 아니면 탈룰라라고 불러도 되고.
첸 훼이지에야, 첸 훼이지에…… 탈룰라와 나 역시 다양한 형태의 부녀지간 중 하나일 뿐이다.
어쩌면 웨이 옌우가 나와 비슷하겠군.
감히 그따위 소리를 입에 올리다니! 자신의 '딸'을 희생한다고? 넌 그와 전혀 닮지 않았어!
아, 안 돼요…… 그러면……
이미 늦었다, 마왕. 내 비밀을 너희들은 알아내지 못할 거다.
카셰이, 당신이 첸 씨를 죽이려는 건 탈룰라를 완전히 죽이기 위해서죠!
이젠 그럴 수 없을 거예요. 우리가 불러낸 탈룰라의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충분히 맴돌았으니, 탈룰라도 더는 참지 않을 거예요.
탈룰라 씨! 기억해 내세요…… 자신이 누구인지 반드시 기억해 내세요!
당신이라면…… 어떤 희생이든 그들을 위해 가장 먼저 몸을 내던질 테니까요!
프로스트노바와 파우스트를 떠올려 보세요…… 당신을 믿는 전사들과 자신을 떠올려 보세요!
이렇게 우리에게 목숨을 넘길 생각인가요?…… 누군가에게 함부로 조종당하던 육신이 죽는 걸 원치 않을 텐데요!
후회한다면, 그래서 죄책감을 느낀다면 저주의 매개체나 태초의 악에 당한 피해자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그 무게를 짊어지세요……!
죽고 싶더라도 설원을 바꾸려 했던, 감염자의 운명을 바꾸려 했던 그 탈룰라로 죽어야 해요!
탈룰라 씨, 전 알아요!
당신이 성공을 위해 감염자와 싸운 게 아니란 걸 알아요…… 실패해도 상관없어요! 당신이 그렇게 한 건, 그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그러니,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모습의 세상을 마주하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우리는 계속 걸어갈 거잖아요!
당신은 그렇게 확고한 의지를 지닌 사람이에요……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 모두 그랬죠!
탈룰라, 뱀의 꼭두각시가 되는 게 좋은 거야?
정말 이렇게 끝낼 셈이야? 내가 알던 탈룰라가 정말 맞는 거야?
네가 그러고도…… 감염자의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겠어?
……나에겐 어울리지 않아.
윽!
설마…… 이건…… 탈룰라 씨……!
백발의 드라코가 '아버지'에게 반항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감염자들의 리더……?
난 한 번도 리더였던 적이 없어.
그가 자신에게 가르친 것은 전부 그의 음모였지만, 음모는 노골적인 표현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았지만 끝내 자신을 막진 못했다.
그녀는 그녀가 참을 수 없는 일들을 증오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증오했다.
난 실패했어. 난 당신의 함정에 빠졌어. 더 역겨운 것은 이 모든 것이 내가 한 짓이라는 거야.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내 동료를 비웃어선 안 돼.
감히 너 따위가…… 죽어서도 고개 숙이지 않는 내 동포를 비웃다니!!
나와 당신 사이의 차이점은, 당신의 그 ‘사랑’에 있어…… 기껏해야 희생에 불과한 그 사랑……
불드록카스티 선생님, 옐레나, 이노, 사샤, 과묵한 류드밀라, 상냥한 알렉스, 알리나……
내가 어떻게 그들을 비웃을 수 있겠어?
힘겹게 살아가는 감염자 동료들을 어떻게 비웃을 수 있겠냐고!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해. 난 더 이상 당신이 아니야, 카셰이. 나는 당신과 달라…… 난 검은 뱀이 아니야.
카셰이를 닮았을지도 모르지만…… 난 검은 뱀이 아니야.
당신의 저주를 오늘 반드시 끝내 주겠어.
……내 원한 때문에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어. 내 원한을 이용해 더는 날 부추기려 하지 마.
훗, 카셰이…… 당신이 짊어진 그 수많은 세대의 원한과 이야기들은…… 내 세대에서 끝날 거야.
당신은 씨앗이자, 덩굴이고, 커다란 나무이기도 해…… 하지만 상관없어, 카셰이.
난 불이니까.
"네게 모든 걸 가르쳤다"? 아니, 아니야, 카셰이. 대지와 설원, 빛을 좇는 사람들, 그것들이 내게 가르쳐 준 거야. 당신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겠지.
내 힘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저 멀리 있어. 당신 때문에 그들을 잃었지만…… 더는 내 감정을 조종할 수 없을 거야.
내 불이 당신과 나를 불태울 거니까.
내 동료들, 노예 취급받던 동료들의 모든 불길이 당신과 당신의 가지를 모조리 태워버릴 거거든.
가, 감히…… 네가 반기를 들어? 네가 어떻게 내게 그럴……
……내 송곳니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음모가 실패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자신이 탈룰라를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알고 화가 난 건가?
통제? 탈룰라가 나다…… 내가 바로 탈룰라라고!
그거야 당연하지, 카셰이…… 드라코의 딸이 너 같은 파충류처럼 음침할 리 없잖아!
체, 첸 씨? 그런 말은…… 피디아 족 오퍼레이터들한텐 하시면 안 돼요!
아, 나도 한때 뱀 상사 밑에서 일한 적 있었지. 솔직한 사람이었으니까…… 괜찮을 거야.
하지만 카셰이, 네가 실패한 원인은 단 하나야. 네겐 그럴 자격이 없기 때문이지.
내 언니의 몸을 차지할 자격도, 전쟁을 일으킬 자격도, 심지어 네가 경험한 것들을 겪을 자격조차 네겐 없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탈룰라의 몸에서…… 당장 사라져!
내가 떠나고 나서…… 너희들끼리 코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안 돼요!
내가 여기서 목숨을 끊으면 모든 게 변함없이 흘러갈 텐데, 어떻게 우르수스를 막겠다는 거지?……
……설마 그녀가 당신의……
혼종 마왕…… 아직도 내 감정을 쫓고 있나?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너에겐 그걸 말할 자격이 없다!
하아……
흥, 하지만 네 말도 맞다.
그만두도록 하지.
어차피 새로운 체르노보그와 꼭두각시가, 그리고 새로운 탈룰라가 탄생할 테니까.
인정하지. 이번만큼은 자신들의 승리를 마음껏 축하해도 좋아.
상관없어…… 이젠 상관없다. 기억해라, 탈룰라.
"이 세상의 끝에서도 나는 존재할 것이다."
백발의 드라코가 맥없이 땅에 무릎을 꿇었다.
……끝난 건가요?
……
움직이지 마!
아직 확신할 수 없어, 이것도 늙은 뱀의 함정은 아닌지…… 탈룰라가 정말로 머릿속에서 그를 제거했는지, 탈룰라가 자신이 한 일들을 정말 후회하는지 알 수 없다고……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어…… 우린 이 도시를 멈춰야 해.
도시를 멈추고 싶으면 그거 내놔 이 토끼야!
어라……? W 씨? 대체 어디에서……
아 됐으니까 비밀 열쇠 좀! 꾸물거릴 시간 없어! 이 쇳덩어리를 멈추지 않으면 모두 끝장이라고!
전…… 적을 믿을 수 없어요. 로도스 아일랜드 동료를 해친 적은 믿을 수 없다고요.
어떻게 해야 날 믿을래? 이렇게 하자, 내 마음을 읽어봐.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겠지만, 지금이라면 잠깐 정도는 괜찮아.
아, 참! 그리고…… 날 안 믿는다고 해도 상관없어. 나도 너 안 믿거든. 하지만 테레시아의 후계자가 이런 순간에 멍청한 짓을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
열쇠만 내게 넘겨주면 도시가 멈추고 나서 날 죽여도 돼. 네게 죽임을 당하도록 서 있지만은 않겠지만 그래도 특별히 기회는 줄게.
원래 생색 잘 안 내는 편인데, 진짜 이런 기회 나 아무한테나 안 준다?
살인광의 말 같은 건 믿을 수 없어.
그렇다면 넌 너 자신도 못 믿겠네.
맞아.
W 씨, 제가 믿을 수 있는 말을 더 들려주세요.
어? 그, 그러니까 그게……
앗.
"아미야, 이 세상이……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
아미야, 내게 꿈은 손이 닿지 않는 아득한 존재야. 후우, 매일 이것저것 하느라 정말 피곤해.
그래도 내겐 꿈이 있어. 이곳에서 아무리 많은 힘을 쏟아 부어도, 의미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그런 꿈이야.
밤에 잠잘 때 엄마 아빠가 곁에 있으면, 아미야도 즐겁잖아?
그래, 그래. 아, 나도 알아. 갈등이 생길 수도 있겠지, 그치?
낮에는 가구를 넘어뜨리고 밤에는 편식하는 일로 짜증을 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켈시한텐 성질부리지 마,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니까. 다 알아, 옳지 옳지……
그래, 어찌 됐든 우리한텐 엄마 아빠가 계셔서 안심할 수 있어.
어둠 속에서 엄마 아빠는 등불 같아. 구석에 숨어 있는 시커먼 괴물과 창밖에서 침을 흘리고 있는 야수를 쫓아주니까.
엄마 아빠가 더 보고싶어? 휴, 난……
옳지 옳지…… 아미야, 괜찮아. 내가 여기 있잖아.
괜찮을 거야, 아미야. 엄마 아빠도 분명 그렇게 생각하실 거야. 평소에 마음이 복잡할 때라도 아이를 볼 때면 부모님들은 많은 걸 생각하시거든.
어쩔 땐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해. 왜냐하면…… 삶은 우리가 죽고 나서도 계속될 수 있거든. 다른 게 아니라, 누군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힘이 되는 거야.
아이들이 부모를 잃게 되는 것도, 부모가 아이를 잃게 되는 것도 원치 않아.
다른 사람의 목숨을 마음대로 빼앗아 가는 일이 이 세상에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어. 무엇인가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빼앗아 가고, 우리가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빼앗아 가고 있어……
그런 일은 심지어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기도 해. 어떤 말 때문에, 혹은 어떤 생각 때문에…… 그들 사이는 증오로 가득 차게 돼.
다쳐서 흘린 피로는 땅을 비옥하게 가꿀 수 없어. 해마다 쌓이는 아픔으로는 달콤한 열매가 맺히지 않아.
아미야, 우린 약한 존재야. 우리의 눈물이 흙으로 흘러 들어가도 씨앗은 그곳에 싹을 틔우지 않아.
그래서, 난 아주 아주 먼 꿈을 꿔.
이 세상 사람들이 이별과 상실로 더는 울지 않았으면 해, 우리의 밤하늘이 슬픔과 공허함으로 가득 차지 않았으면 좋겠어.
언젠가는…… 우리가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편안히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응, 모두가 말이야. 우리 역시 그중 일부고.
설령 그 미래가 오지 않더라도 이 세상이 암흑 속에 잠기더라도 똑같아. 아미야, 우리가 이곳에 사는 건 한 가지 답을 위해서가 아니야.
지금도 로도스 아일랜드는 자신의 항로 위에서 유유히 떠돌고 있지. 모든 게 평소대로 운행될 거야, 우리가 종착지에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말이야.
잘 자.
토끼, 아니…… 아미야!
이번에야말로 내가 의장을 위해 뭐라도 다시 할 수 있게 해줘!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뭐라도 할 수 있게 기회를 줘!
이번 한 번만 부탁할게!
아미야의 손에 들린 검은색 장검이 천천히 재로 변해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알겠어요. W 씨, 이번에는 당신을 믿을게요.
……이 세상이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요.
당신을 믿을게요, W 씨.
카우투스 소녀가 살카즈에게 상자를 건넸다.
……고마워.
할아범, 죽기 전 소원이 뭔지는 나도 아는데, 이 빌어먹을 도시는 내가 멈춰 주겠어……
……? 어디에 암호를 입력하는 거지?
잠깐만…… 뭐야? 이 열쇠는……
(우르수스어) 경고, 해당 권한이 없습니다. 비밀 열쇠는 작동 시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권한이 없다는 건 또 뭔 소리야?
……뭐라고요?
이게 열쇠는 맞는데…… 쓸모가 없다고 들었어. 권한이 제한적이라고 하던데, 시장에게조차 권한이 없다면 대체 누가 이걸 멈출 수 있는 거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람이…… 속았다는 건가요……?
하지만 이동도시 코어에는 분명 긴급 제동 열쇠가 있을 거예요! 그, 그러니까…… 열쇠가 이미 다…… 타버렸다면……
……아냐. 아니야! 설먀, 미샤의……?!
설마…… 안 돼……
엉뚱한 생각하지 마.
열쇠는 내게 있으니까.
어?!
이 용 뿔 달린 기집애가 진짜……
후우…… 열쇠 줄 거야, 말 거야?
네가 그 사악한 계획을 끝까지 밀고 나갈 작정이라면……
받아.
헤헤, 캐치.
역시 너는…… 여전히 시원시원하구나. 네가 살짝 좋아지기 시작했어.
말만 번지르르한 살카즈가……
그걸 그대로 제어판 위에 놓으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될 거다.
암호는 나도 알아.
아미야, 꽉 잡아.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니까!
뭐라고 했더라? 음…… (우르수스어) "모든 국민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맞아…… 그 암호야.
이 열쇠는 어디서 난 거야?
아…… 열쇠는 원래 제동실 벽에 걸려 있었다. 암호만 알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었지. 단지 그 누구도……
……이런 황당한 전개와 이런 잔혹한 속임수를 생각하지 못했을 뿐.
유격대를 따돌리고, 근위국을 속이기 위해…… 이 비밀 열쇠들은 그들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었어.
난 그들의 대형 이동도시에 대한 무지함을 이용했고, 스컬슈레더와 패트리어트의 믿음을 이용했어, 그건…… 그들이 마지막으로 날 믿어준 것이었는데.
(우르수스어) 모든 국민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5:42p.m.
쇳덩어리는 내키지 않는 듯 굉음을 내더니, 파멸로 향하는 발걸음을 늦추었다.
드디어, 체르노보그의 코어는 용문의 함포 사정거리 바깥에서 멈추게 되었다.
생각만큼 위험하지는 않았네, 이걸 멈출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해야겠지.
휴우~
……탈룰라, 너 열쇠를 부수지 않은 거야?
……
야, 왜 말을 못 해? 벙어리야?
……탈룰라는 원하지 않았으니까.
카셰이는 탈룰라를 꼬드겨 열쇠를 망가뜨리라고 부추겼지만 결국 실패했어.
왜냐면…… 아무리 해도 지워지지 않는, 혹은 아츠에도 흔들리지 않는 양심이 있었기 때문이야.
어쩌면 탈룰라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걸지도 몰라. 한순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모든 사람을 없애 버릴 생각을 했다 해도, 그 길을 끊을 생각은 해본 적 없었을 거야.
감염자들이 적어도 발버둥치면서라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말이야.
……일어나.
……
적당히 해, 이미 충분히 실망했으니까. 어서 일어나라고, 탈룰라!
일어서, 탈룰라!
뭘 마주하고 있는 거지? 진심이든 거짓이든, 혹은 너 스스로든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렸든 스스로 알고 있다고 했잖아.
썩어빠진 세상이 네 적이라고.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거야, 탈룰라?
아니, 넌 나보다 더 잘 알겠지……
감염자, 아니…… 감염자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놓인 높은 벽을 부수고, 추악한 살인과 끔찍한 노역을 없애기 위해……
감염자들과 함께 수년을 싸운 너라면, 당연히 나보다 더 잘 알아야 하잖아!
이 세상에 맞서봤자 승산이 전혀 없다는 걸.
이길 수 있는 기회가 네겐 조금도 없을 거야…… 그들이 널 짓밟고, 멸시하고, 혐오하고, 속일 테니까!
네가 일어서기만 해도 놈들은 널 가장 더러운 곳으로 끌고 가 가장 더러운 수법으로 상대하겠지!
작은 실수 하나에도 넌 쓰러질 거야, 하지만 네가 상대해야 할 적은 끝이 없겠지. 목숨을 걸고 그들에 맞서 싸우는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네 적들은 물러서지 않을 거다.
네게 허락된 결말은 하나뿐이야.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넌 쓰러지고 짓밟히게 될 거야.
네가 한 발짝만 잘못 내디뎌도, 그 한 발짝은 그들이 너를 해칠 핑곗거리가 될 거다…… 널 해칠 합당한 구실이 되겠지.
그들은 피비린내를 맡은 야수처럼 달려들어 네 살을 찢고, 네 혀와 눈을 뽑으려 들 거야. 네 존엄을 짓밟는 소리를 목청 터지게 외치겠지.
하지만 인간은 모두 실수하기 마련이야. 그러니 넌 쓰러지게 될 거야.
……하지만 넌 그래선 안 돼. 나보단 네가 잘 알잖아, 탈룰라. 넌 절대로 쓰러질 수 없어……!
놈들이 네 겉모습을 샅샅이 살피며, 그 속에서 온갖 약점을 끄집어내려고 한다고 해도 말이야.
네 모든 걸 비웃고 경멸해도, 널 쓰레기라는 둥 욕망의 찌꺼기라는 둥 떠들어 대도……
넌 쓰러져선 안 돼.
……우리는 서로 다른 도시에서 서로 알지 못하는 모습으로 자랐어. 과거는 다시 오지 않아.
우리에게는 각자 주어진 일이 있어.
하지만 지금, 난 그 일을 해내지 못했어…… 너 역시.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어.
우리에겐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기 때문이지, 그 일엔 끝이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러니 나보다 잘 알아야 해.
너 역시 머나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걸 말이야, 탈룰라.
와우~! 대단한데.
(W를 째려본다.)
응? 어머, 그만할게……
경관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전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너, 언제부터 그렇게 말발이 세진 거야?
알리나한테 너를 보여줬어야 했는데.
드디어 입을 열었네.
……그 전에, 널 먼저 체포 해야겠어.
누가 나를 심판하게 되는 거지?
아직 정해진 건 없어. 우르수스와 용문…… 모두 널 심판할 자격은 없으니까.
가족들의 보호 아래 치욕 속에서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수준까지 떨어진 것 같진 않은데.
그런 게 아냐, 탈룰라. 이 세상에는 널 공정하게 심판할 곳이 아직 없기 때문이야.
감염자를 심판할 만한 곳도, 아직은 존재하지 않지.
그게 네 꿈이야?
출신, 소속, 병에 상관없이 모두가 공정하게 심판받을 수 있는 곳을 세우는 게?
그건 꿈이 아니야. 내가 해야 할 일이지.
……
오랜만이네.
오랜만이야, 언니.
아무래도 내가 언니를 구한 것 같아.
하지만 나도 당하고만 있진 않을 거야, 설령 그게…… 지금이라도.
난 아직 죽을 용기가 없어.
……만회할 수 있을 거야.
아무것도 되돌릴 순 없어. 추운 겨울에 수많은 사람의 모든 것을 내가 무너뜨렸어. 되돌릴 수 있는 자격 같은 건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아.
다만 아직은…… 죽을 수 없을 뿐이야.
난 죽을 수 없어, 내가 죽으면 끝이니까. 내가 죽으면 놈들의 뜻대로 될 거야. 나만 기억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죽게 되겠지.
그래도 살아갈 거지?
……
어쩌면 내겐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 여기서 죽거나, 그것도 쉽게 죽을 자격도 내겐 없을 거야.
……그래도 이 세상을 되돌릴 순 없어. 과거에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일어나지 않은 일은 계속 일어나게 되겠지. 떨어지는 빗물이 땅을 적시듯, 죽어버린 모든 게 다시 살아나지는 못할 거야.
……그래서 난 살 거야, 그들을 위해 죽을 자격이 생길 때까지 살아 있을 거야.
……
어릴 때 함께 놀던 거 생각나? 얼굴은 3점, 가슴은 5점, 허리는 2점이었는데.
웨이 옌우가 우리한테 그걸 왜 가르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
그거 때문에 내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한테 두들겨 맞았잖아.
그건 언니가 베아트릭스를 지키려다 그런 거잖아. 진짜 엄청 맞았었는데.
그래도 너한테 얻어맞는 일은 없었어.
지금이라면 눈 감고도 언니 정도는 상대할 수 있어.
그럼 어디 덤벼봐. 뭐…… 제법 강해지긴 했더라.
검은 내려놔. 그거 들고 있으니까 솔직히 좀 웃긴 거 알지?
그럼 맨손으로 싸워주지. 그나저나, 이 적소에는 협객에 대한 어떤 판타지가 담겨 있는 거야?
"미식, 미주, 미경, 미인, 미선, 미담", 설마 꼬맹이때 읽었던 그 이상한 무협소설에서 따온 건 아니지?
아아 쫌! 그만해!
너 설마, 아직도 그런 소설 보니?
……다시는 말 못 하게 콱 패버릴까보다.
훗……
어쨌든, 고마워.
감사 인사는 저 친구한테나 해, 나 말고.
언니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저 용감한 토끼랑, 함께 싸우는 감염자들이야.
아미야는 자신의 선한 신념을 따라 용암과 화염이 치솟는 이곳까지 찾아와 언니를 구해줬어.
그 전에…… 우선은 우리 둘 문제부터 해결하자.
우리에게 남은 건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렇지 않아, 탈룰라. 미래는 아직도 무궁무진해.
아, 저 사람들은……
걱정하지 마 토끼야. 누구에게나 박살 내야 할 과거는 있는 법이니까.
W 씨, 전 궁금해요…… 코어를 멈추는 제동 암호를 어떻게 아는 거죠?
누구에게나 비밀 소식통이라는 게 있잖아? 그 질문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은데…… 그럼 날 죽이겠지?
하지만 방금 날 믿어줬으니까 특별히 대답해 줄게…… 네가 화내지 않는다면 말이야.
미샤군요.
아니, 알렉스야. 아아, 스컬슈레더라 해야 하나.
그 녀석 아버지가 죽기 전에 그 녀석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들었어. 아버지도 바보는 아니었던 거지, 리유니온이 뭘 하려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나봐.
그런데 그걸 막을 힘은 없었던 거지. 우르수스가 자기 동료들을 죽이는 걸 막지 못했던 것처럼…… 자기 아들 딸이 죽는 걸 막지 못했던 것처럼…… 에휴.
다만…… 그땐 누구도 몰랐어. 나만 해도 최근에야 알게 됐으니까…… 카셰이 그 사기꾼 녀석이 우리 모두를 속였다는 걸.
나, 패트리어트 영감, 프로스트노바, 파우스트, 메피스토, 스컬슈레더, 크라운슬레이어…… 모두가 속았지.
미샤는 원래 죽을 필요가 없었어. 난 그저 체르노보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미샤를 해친 것뿐이었는데…… 나중에는 체르노보그를 멈추지 못하게 되었고, 죽인 걸 후회했지.
그때 난 내 멍청함 때문에 모든 사람을 망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 탈룰라는 양심이 남아있었나봐.
맞아, 그건 내 잘못이야. 그래도 용서해 달라고 빌진 않을 거야. 그때의 나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 모두가 상식에 맞게 행동했다면 이 세상은 일찌감치 사라졌을 거야.
하지만 미샤는 이미 죽었어요, 그 잘못을 결코 되돌릴 수는 없어요.
W 씨, 앞으로 그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제가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요.
제게 약속해주세요. 아니면 당신을 로도스 아일랜드에 가둘 거예요.
당신이 많은 사람을 구하려 했다지만…… 그들 한 사람의 목숨도 모두 소중하니까요.
흠……
어라? 아무래도 탈룰라 체력이 거의 간당간당한가 본데? 그러게 자기 몸을 제멋대로 쓰게 되는 아츠를 시전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니까.
아, 쓰러졌다.
……토끼야.
네?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음, 뭐랄까?
넌…… 그 여자를 좀 닮은 것 같아.
……누구요?
잘 있어, 아미야.
하하, 다신 나 같은 사람 안 만나길 진심으로 바랄게. 만나서 뭐 같았고, 다신 만나지 말자. 로도스 아일랜드의 토끼야.
앗, W 씨!
멈췄다…… 체르노보그가 멈췄다!
좋았어! 로도스 아일랜드, 수고했다!
적들이 후퇴하는 건가……? 적들이 혼란에 빠졌어!
쫓아갈까?
놈들이 사방으로 달아나고 있어……
!
녀석들도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걸 눈치챈 거야!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우리가 해냈어!
하하하!! 감염자들의 승리야! 이게 모두 너희 덕분이다, 로도스 아일랜드!
꺅……!
고양이, 너 정말 대단하잖아! 우리가 해냈다!
만세!! 로도스 아일랜드의 필라인!
아…… 하하…… 아하하……!
에이스, 스카우트, 내가 해낸 것 같아.
알 것 같아, 내겐 가족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 세상에는…… 아직 좋은 사람도 있어. 그리고…… 상냥한 사람들도 많고.
정말 따뜻해. 정말 너무 따뜻해.
따뜻한 일들을…… 잊지 못할 거야. 아니 잊으면 안 돼. 괴로워도…… 기억하려고 노력할 거야.
- 드디어 도착했다!
때마침 잘 왔군. 아미야가 해냈어. 그런데……
앗, 박사님!
다시 만나게 되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런!
- 아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