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8-11눈꽃, 까맣게 영토를 물들인
황제의 근위병도, 어둠과 공포로는 패트리어트를 뒤흔들지는 못했다. 탈룰라는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짊어진 그림자는 끊임없이 그녀의 의지를 삼키려 했다.
크윽…… 꺼져…… 버려!
엄청난 잠재력이구나!
스으으으……!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해야 할 지경이야!
그런데 아쉽게도…… 군모를 쓰는 걸 깜빡해서 말이야.
하악, 하악……
더는 버텨봤자 소용없다.
우리는 우르수스의 근위병에 불과하다. 네 부대는 이대로 유지해도 좋다, 감염자를 지키는 자로서 계속 살아가거라. 상호이익을 취하는 게 합리적이겠지.
근위병? ……누구를 지킨다고 근위병이라는 거지?
나라마다 근위병이라 자칭하는 사람들이 있지. 지켜야 할 것들이 많으니, 근위병이라 자칭하는 사람들도 많을 수밖에.
그들 대부분은 부패하고 무능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지키는 것으로 인해 더 뛰어나게 되었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것은 바로 우르수스의 미래다.
그런 핑계로 네놈들의 악행을 덮을 수 있을 것 같아?
너희들이 저지른 악행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 사이몬크 시를 호수 속에 가라앉게 만들고, 엘라피아 마을 사람들을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지.
난 너희들이 저지른 모든 죄를 세상에 낱낱이 밝힐 수 있다!
그런 주제에 나라의 의지를 들먹거려? 너희의 어리석음은 앞으로 현실에 부딪혀 산산이 조각날 거다!
……
결국, 모든 나라는 가장 게으르고 가장 멍청한 이들을 채찍으로 때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우리는 채찍이 아니라 칼날을 사용하지만.
나무에서 영양소만 빨아먹을 뿐 아무런 쓸모도 없는 가지를 잘라내는 게 악행이라면, 우리는 악행을 저지른 게 맞다.
우리의 '죄업'을 '폭로'하겠다고? 하지만 너는 우리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할 거다, 게다가 계속해서 생각을 바꾸게 되겠지.
우리가 다가가면 넌 물러설 텐가?
탈룰라……!
가까이 오지 마! 전사들을 지켜!
우르수스는 선행과 악행을 모두 일궈왔다. 우리의 악행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의 선행이 일군 결과도 마주해야 할 거다.
우리의 모든 것을 말이다.
어떤 나라도 선악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 점에 관해서는 언급할 가치도 없지.
……지금의 너에게 그의 지혜를 이해하고, 그의 안목을 갖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그가 말한대로 이루어진다면 네 제안을 따르마.
하지만 지금의 네겐 잠재력과 재능 외엔 아무것도 없다.
제국은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와이번.
잠깐. 와이번…… 아니……
하필이면 지금……
36…… 【암호】!
……웬디고……
근위병 두 명으로 날 죽이려 한 거냐. 우리와 적이 되려 했다면, 적어도 셋은 데려왔어야지.
대위님!
방패를 밀어라! 전진!
패트리어트… 잠깐, 우리는……
이 자리에 있는 근위병, 다른 곳에서 내 딸과 싸우고 있는 근위병까지 합치면 모두 다섯이로군.
근위병은 동요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대답해라! 네놈들은 자신의 실력에 대해 얼마나 자신 있느냐?
우리는 당신과 적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웬디고…… 제국군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전설적인 존재……
이동도시의 시민은 당신을 잊었을지 몰라도, 우리는 지난 세대 사람들이 하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웬디고여!
……
허……
……그녀의 편에 섰다니, 설원의 병사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군요.
……
감염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었군요.
내가 감염자를 위해 싸우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틀렸습니다, 웬디고. 그 계획은 실패할 게 뻔합니다.
이 나라에는 수많은 감염자가 있다.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환상이 진실이 될 순 없습니다.
그것을 환상이라고 부르기 전에, 우르수스의 실패와 승리를 얼마나 경험해봤지?
예, 제 세대가 보고 겪은 것은 확실히 많지 않죠.
그래서…… 저희와 함께해 주기를 요청드리는 겁니다. 우르수스의 대위 불드록카스티, 저희와 함께하시죠. 우르수스에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무슨……
선황의 휘하에서 백 년 이상을 싸워온 당신이라면, 당시 우르수스의 강함을 분명 기억 하실 테죠.
그 얼마나 번영하고 위대한 시대였습니까?
종족의 구분 없이 우르수스라는 이름 아래 그 미래를 위해 우리는 함께 싸웠죠. 수많은 적을 우리의 칼날과 포화 속에서 쓰러뜨리며 우리는 승승장구했습니다.
모두들 그 시대로 돌아가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가 되어 공공의 적에게 맞섰던 그 시절을 모두 그리워하고 있죠.
탐욕스러운 제국으로부터 그들이 약탈했던 땅을 되찾고, 우르수스의 빛 아래 유린당했던 사람들에게 존엄을 되찾아 줄 겁니다. 저희는 소멸이 아닌 재건을 위해 세상을 정복하는 겁니다.
저희가 이 땅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할 겁니다.
과거의 영광을 저희가 재연할 겁니다. 모두 하나가 되어 미래의 혼란에 맞설 겁니다. 설원에서 쓸쓸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요.
그 말은 고개도 들지 못할 만큼 핍박받는 우르수스 사람들에게나 하시지!
모두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려운 시대 속에서 우르수스의 시민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질서의 부재, 힘의 불균형, 훼손된 가치관 모두 잘못되었다.
이러한 잘못이 지금의 우르수스를 무너뜨렸다. 문제의 원인을 우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제대로 바로잡을 수도 있는 거다.
……헛소리!
못 믿겠거든 너희 지휘관에게 물어봐도 좋다.
이 자식……!
불드록카스티, 저흰 우르수스를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습니다.
틀렸다. 지금의 지휘관은 내가 아니다.
리더는 탈룰라다. 그러니 너희들을 믿는지는 그녀에게 묻도록 해라.
……
난 너희들의 아버지 세대와 싸웠다. 너희들은 힘이 넘치고, 전술도 그들에게 뒤지지 않지.
하지만 너흰 그때의 우르수스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 차 있어. 그것 역시 너희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은 그 시대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모든 게 우르수스와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당신을 부르는 이름에도 당신의 의지가 담겨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황제가 생각한 우르수스에 감염자의 자리는 존재하는가?
그런 '하사' 받은 자리 따윈, 너희의 환상처럼 찰나에 불과하다!!
탈룰라…… 스으으으……
……네 말이 맞다.
너희들이 도와준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겠군.
그게…… 무슨 말이지?
칼날은 절대 약속 따위를 하지 않지. 무기는 약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감염자가 우르수스에 반드시 있어야 할 힘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우르수스의 영광을 상징해야 한다, 우르수스에 반기를 든 감염자는 멸망되어야 마땅해. 우르수스를 위해 싸우는 걸 영광으로 여겨야 할 거다.
탈룰라의 귀로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요란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너희의 이야기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너희에게 동조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만이다.
그런 권력을 이미 누리고 있다고 여기는 건가? 제멋대로 구는 걸 더 나은 시대를 위한 봉사라고 여기는 건가? 대체 뭘 믿고 영광을 운운하는 거지?
웬디고여, 소수를 위한 전쟁을 다수가 응원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근거는 뭡니까? 감염자를 위해 싸우는 당신들의 무엇이 정의라는 겁니까?
현명한 답변을 들려주시리라 믿습니다.
……정의와 사람 수가 무슨 상관이지?
근위병, 한 가지만 묻겠다. 당시 폐하를 섬기던 자가 얼마였지? 많았나, 적었나?
……후우우우……
폐하의 죽음이 너희들과 관련 있는 건가?
만약 제가, 저희와는 무관하다고 대답한다면……
……후우우우……
아무래도 우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는 것 같군요.
어쨌든 내가 모시던 폐하는 돌아가셨다. 우르수스마저 그의 손에 떨어진 이상, 지금 내가 따를 것은 하나뿐이다.
……이 여자의 이념이지.
패트리어트가 탈룰라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탈룰라가 그의 가족인 것처럼…… 아니, 그가 그녀를 잃게 되는 그날까지 계속 그의 가족이 될 것만 같이 느껴졌다.
스으으으……
왜 하필 저 여자입니까?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 말대로 탄탄대로가 펼쳐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감염자를 선택했다.
군인은 국가의 통치가 아니라 국가와 신념을 위해 싸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제국을 무너뜨리고 정의라는 이름의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거다.
저희 역시 정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감염자와 연대하고자 하는 겁니다.
대체 왜 저희를 거부하시는 겁니까?
지금의 '리유니온'이 단결과 혁신보다 옳다고 여기시는 겁니까? 더 효율적이라서? 아니면 우르수스 시민에 대한 피해가 적기 때문입니까?
아니. 전쟁이 이미 시작된 이상 그 끝을 보고 싶을 뿐이다.
내가 모셨던 인자하신 폐하조차 감염자를 인정하진 않으셨지. 비슷한 약속 같은 건 내겐 거짓말로밖에 들리지 않거든.
너희가 감염자를 하나로 끌어안을 수 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저흰 당신이 그 중심에 서 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들을 정말 끌어안을 생각이라면 나 같은 건 애당초 필요하지도 않을 거다.
이제 됐다, 근위병들이여.
네가 말한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더 나은 선택' 같은 건 믿지 않는다. 내다볼 줄 안다고 하는 자들 역시 운명의 장난에 아직 놀아나지 않은 것뿐이지.
너희들도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다. 세팅선 협곡에서 전사한 이십 여 명의 근위병처럼 북툰드라에서 이민족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게 동료들의 손에 죽는 것보다 낫다는 걸.
근위병, 나는 제국의 배신자다. 우리 사이에 화해의 가능성은 없다.
선언은 그저 선언일 뿐입니다.
웬디고께선 그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뒤에 있는 자들은 어떨까요? 탈룰라를 믿을까요?
저들이 강한 힘을 가진 우상이 아니라 당신의 힘과 정직함을 숭배한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실 생각인가요?
저들을 지켜줄 수 있는 강하지만 사악한 우상과, 누구든 유린할 수 있는 숭고한 우상 중에서 누가 더 나을까요?
내가 존경했던 사람을 전자에 비유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현실이란 북서 툰드라의 눈보라보다 더 차갑죠, 웬디고. 힘을 잃어버리면…… 당신들은 유린당하게 될 겁니다. 게다가 그 첫 상대가 당신들의 적은 결코 아닐 겁니다.
그들은 카셰이를 모를지도 모르지만, 공작과 그의 딸이 차기 공작이 될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 곁에 있는 상대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당신에게 맞설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갖추고 있죠. 어쩌면 당신보다 더 교활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여자를 칭찬하고 있는 건가?
아, 아닙니다! 웬디고…… 우르수스인이 된 시간이 길지 않아서 잘 모르시나 본데, 전 카셰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잘못된 지식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그 역시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아이가 설원에서 보여준 행적은 아이가 늙은 뱀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
스으으으…… 후우우우……
……이미 들어서 알곤 있었지만 젊은이들을 아끼시는군요. 아낀다는 것보다는 좀 더 진지한 감정으로.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면, 그들의 젊음에서 노쇠함과 죽음을 목격할 때까지 계속 존경할 것이다.
가거라.
불드록카스티……
떠나라, 당장.
우리 전사를 다치게 한 죄는 잠시 추궁하지 않겠다, 지금 너희를 죽이면 근위병들이 네놈들의 시신을 치울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어느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거다.
……파멸하는 쪽이 우리가 되더라도 말이다.
……후우, 웬디고…… 더는 말하기 곤란하군요.
우리의 경고는 말로만 끝나지 않을 겁니다, 불드록카스티.
이제 우리도 당신들을 위해 애도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적이 되었을 때, 너희를 대신 애도해 주마.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겁니다, 웬디고. 절대……
그만 가보겠습니다, '패트리어트'. 오늘 결과는 무척 유감스럽군요.
그리고 탈룰라…… 달라진 널 기대하고 있으마.
저들을 이끌기에 너만한 인물이 없지.
아빠……!
옐레나!
하아, 하아…… 우리가…… 녀석을 물리쳤어…… 눈의 악마 소대와 같이…… 하아……
우리가 한 놈을 물리쳤어……! 그런데, 저 녀석은…… 스스로 물러선 거야?
모두 합쳐…… 다섯 명뿐이야? 나 혼자서는…… 소대를 보호하기조차……
잘했다, 내 딸.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다.
……당연하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모두들……
탈룰라? 방패병 오빠들은…… 어떻게 된 거야?
……대위님…… 저들이 한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허무맹랑한 발자취를 구하는 것, 미래와 역사를 동일시하고 신분이 미래의 모든 것을 결정할 거라는 생각 모두 자만이다.
탈룰라에 대해선 내가 장담한다. 모두가 그녀를 받아들일 때까지는 비밀을 지켜주길 바란다.
탈룰라가 어떤 사람인지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
하지만 저들이 말한 게…… 정말입니까?
너희들……
너희들 무슨 생각하는 거야? 너희들이 그랬잖아, 신분으로 그 사람을 결정하는 건……
맞아.
탈룰라……
……
난 한때 귀족의 손에 길러진 '후계자'였다.
대답은 된 것 같군. 질문 있나?
리더여.
패트리어트, 저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만 돌아가죠…… 파우스트와 석궁병이 아직 훈련 중인데, 참가하실 거죠?
네가 날 실망시키지 않는 이상, 끝까지 네 편이 되어 주마.
네.
탈룰라…… 아버지는 널 인정하고 계셔.
네가 똑같은 일을 겪도록 하지 않을 거야, 옐레나.
쳇, 넌……
사탕 좀 줘봐.
자. 설마 네가 이걸 달라고 할 줄이야.
훗. 돌아가지.
전사들, 모두 철수한다. 혹시 더 알고 싶은 게 있다면, 내가 모든 걸……
……
전사들……?
……
탈룰라……
……무슨 속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