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8-9만남, 늘 이별이 함께하는
알리나는 자신을 데리러 온 탈룰라의 등에 업히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지원군까지 해치웠다고? 역시 탈룰라야……!
감염자들은?
모두 무사히 도착했어, 미리 찾아놨던 임시 거점이 도움이 됐어.
인원수는 확인했고?
물론, 언니인지 누나인지 누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우는 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후우, 언제나처럼 그렇군.
……
탈룰라! 남아 있는 감시팀을 발견했다. 계속 도주 중인 것 같다.
어디로 도망쳤지?
동쪽. 우리가 예전에 쫓아냈던 사람들을 찾아낼지도 모르겠군.
……탈룰라?!
잠, 잠깐만! 탈룰라, 어디 가는 거야!?
달리고……
또 달렸다.
부츠에 얼음물이 스며들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눈밭 위로 발이 푹푹 빠진다.
썰매를 끌고 갈 걸 그랬다.
스노우모빌도 있었는데.
눈을 전부 녹이며……
진흙 속을 달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얼마나 달렸을까.
찬바람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통증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달리고, 또 달렸다.
눈은 왜 아직도 끝나지 않는 걸까.
겨울은 왜 끝나지 않는 걸까.
대지는 왜 끝없이 넓은 걸까.
뚝.
탈룰라가 발걸음을 멈췄다.
뚝.
눈물이 그녀의 눈가에서 흘려내렸다.
지금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탈룰라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리나는 그렇게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빈 바구니를 쥐고 있는 손, 붉게 물든 그녀의 옷.
그녀를 감싸고 있던 초목과 진흙도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눈은 그렇게 계속 내렸다.
……
아…… 아아……
……
탈룰……라?
알리나……!!!
네게……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마, 말하지 마! 알리나…… 말하면 안 돼!
내, 내가 지혈해 줄게……! 내가 도와줄 테니까……!
이제…… 피는 흐르지 않아…… 그냥……
그럼…… 가자! 메딕 불러서 수혈해달라 할 테니까!
괜찮아…… 그보다…… 바꿔온 물건이……
괘,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나랑 가자…… 내가 데려가 줄게!
드라코는 엘라피아를 업었다.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가볍고 작은 사슴이 이렇게나 무거웠다니, 너무 무거워서…… 마치 대지처럼 느껴졌다.
이제 더는……
안돼!
누가 그런 거야? ……도대체 누가……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감시팀인가……?! 아니면 마을 사람들?! 망할 놈들…… 내가…… 모두 불태워 버릴 거야…… 내가……
잠깐, 설마…… 우리에게 쫓겨난 감염자들인가……!
더러운 것들…… 아니, 아니지, 방패병이 그들에게 식량을 나눠줬더라면……
탈룰라……!
응…… 듣고 있어…… 듣고 있다고!
너한테 안 알려줄 거야……!
왜?! 어째서?! 내가 네 복수 하나 못할 것 같아?!
그러면 안 돼…… 네가 했던 말, 벌써 까먹은 거야?
복수를 위해 싸우겠다는 거야? 탈룰라, 넌 이미 선택했잖아, 네가 가야 할 길을……
그런데 나 때문에…… 그 길을 포기하겠다고……? 난 인정할 수 없어……
절대로…… 누군가를 미워하지 마.
무, 무슨 말이야! 내,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어떻게!!!
네가 말했잖아……! 누구든 미워하지 않을 거라고……! 그랬다가는…… 널 저주하는 그자에게…… 먹히고 말 거야……
……아츠가 없어도…… 그가 만든 무언가에게…… 조종당하지 않을 거라고.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그…… 그래. 하지만…… 하지만…… 그…… 그자들은……
……너도 알고 있잖아.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또…… 왜 그랬는지……
네 스스로 말했듯이…… 네가 마주할 상대…… 적들이 아니야……
아, 알았으니까 그만 말해…… 알리나…… 이제 그만……!
아니…… 탈룰라…… 네가…… 한 말을 난 다 기억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네가 무너뜨려야 할 사람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고, 그들을 이렇게 만든…… 우르수스야……
우르수스…… 그리고 이런…… 세상……
아, 알았으니까…… 말하지 마, 알리나!!
탈룰라…… 네가 유일하게 미워할 수 있는 건…… 저들이 저지른 일이야, 그 일만 미워해야 해……
누구도 미워해서는…… 안 돼.
내 말이…… 맞지? 우리의 삶이…… 의미가 있었을까? 헉…… 난 모르겠어.
우리가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저주가 무엇인지는…… 잘 알아.
네 분노는…… 황야를 태워버릴 수 있겠지…… 그래도 넌 미워해서는 안 돼……
……
알리나……
탈룰라, 네가 걱정돼. 혹시 내가 없으면 옐레나에게 일깨워 달라고 해…… 이건 모두……
알리나, 이야기 그만해! 내 곁엔…… 네가 있어야 해. 옐레나도, 사샤와 이노도, 너희 모두 없어서는 안 돼……
너희 중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아……!
아, 탈룰라…… 하지만 우리 모두는……
만남은…… 이별을 위해 존재하는걸.
백발의 드라코는 끝없이 펼쳐진 눈밭에서 힘겹게 발길을 옮겼다. 엘라피아의 소녀는 그녀에게 업힌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이따금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눈꽃이 엘라피아의 뿔을 타고 떨어졌다. 탈룰라가 지나간 자리에는 눈으로 뒤덮인 나무들이 소리 없이 타올랐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내디딘 땅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녀 앞에 펼쳐진 끝없는 설원에서, 그녀의 등에 업힌 알리나만이 유일하게 따뜻한 존재였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탈룰라의 등줄기를 타고 심장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약해져 갔다.
그녀는 소리 지르고 싶었다. 울고 싶었다. 또 모든 감정을 가슴속에서 쥐어짜내고 싶었다. 그래야 이미 일어난 모든 일을 몸에서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탈룰라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탈룰라……
다 왔어, 알리나…… 이제 다 왔어!
눈 감지 마…… 제발 눈 좀 떠봐!
아직 멀었잖아……
거짓말하지…… 않아도 돼.
눈발이 점점 굵어진다.
탈룰……라……?
듣고 있어, 알리나. 말해, 말하라고.
……눈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따뜻하네.
미안해……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를…… 미처 다 적지 못했어.
괜찮아, 알리나! 그런 건 상관없어.
아이들…… 특히…… 이노는…… 네가……
듣고 있어! 알리나…… 나 듣고 있어!
이것만…… 그 애한테…… 말해줘……
더워…… 탈룰라……
……나 죽고 싶지 않아…… 나 아직…… 네 동생을……
……
탈룰라…… 꼭…… 살아…… 남……
거기까지였다.
탈룰라는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탈룰라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탈룰라가 기억해야 할 모든 것은 눈과 함께 녹아버렸다.
그녀에겐 불길밖에 남지 않았다. 알리나를 제외한, 그녀의 등 뒤에 있던 모든 것이 불길 속에 사라졌다.
온 세상을 뒤덮은 눈 속에서, 탈룰라는 친구와의 이별을 향해 걸어갔다.
탈룰라! 드디어 돌아왔구나. 통신도 안 받고, 어떻게 된……
……이건…… 네 등에 업혀 있는 건……
헉, 숨을 쉬고 있지 않아! 메딕, 어서 살펴봐! 탈룰라, 잠깐 기다려……
……탈룰라?
(어라, 왜 계속 앞으로만 가는 거지…… 어디로 가려는 거야?!)
탈룰라, 네가 아무리 지휘관이라고 해도, 멋대로 부대를 이탈하는 건 심각한……
잠깐.
옐레나……?
……
그냥 내버려 둬.
(저 소녀를 알아……?)
(아니. 그냥…… 마을 선생님 중 한 명 같은데.)
(아, 그 선생님 말인가. 아이들이 훌륭한 교사 한 명을 또 잃었군.)
(하지만 탈룰라가 왜……)
(……누구나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은 일은 있기 마련이니까……)
(이 일은 탈룰라만이 알겠지.)
수많은 사람의 시선 속에서 드라코는 엘라피아를 업고 주둔지를 걸어 나왔다. 그녀들의 그림자는 천천히 흐릿해지더니,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저 탈룰라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