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7편지
렌킨, 우리 도착했어. 그 우-카 접경지에 있는 농장에, 그 리유니온이 있다는 곳에, 그 따스하고…… 평등한 이상이 살아있는 곳에.
등장 오퍼레이터: 레드
우-카 접경지, 황무지 농장
와…… 또 맑은 날씨네요. 한평생 이렇게 따뜻한 겨울은 몇 번 본 적이 없는데요.
너무 좋네요…… 심어 놓은 밀이 겨울을 무사히 나고, 재앙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년엔 우리도 완전히 자급자족할 수 있겠네요!
내 경험상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다네……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할머니! 전에는 우리가 갈 곳도 없이 황무지에서 죽는 줄 알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농장도 있고, 집도 있고, 따뜻한 죽도 있잖아요!!!
어, 저건……
탈룰라 씨랑 나인 씨네요!
……
탈룰라 씨, 잡초를 제거하고 있나요?
탈룰라, 너한테 말을 거는 사람이 있는데.
아……
응, 맞아. 왜, 뭐가 잘못됐나?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더군. 게다가 잡초가 너무 자라서 밀이 잘 자라는지 안 보이기도 하고.
아니에요, 잘하셨어요. 잡초를 제거해야 밀이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아 겨울을 날 수 있거든요……
정말 똑똑하시네요!
풉.
……
이렇게 많이 뽑았는데도 밀을 전혀 망가뜨리지 않은 걸 보니, 제가 도울 필요는 없겠네요.
이건 그쪽이 나보다 경험이 훨씬 더 많잖아. 제이컵은 요즘 어때?
다 여러분 덕분이에요. 새로 받은 약이 정말 효과가 좋아요! 이제는 한밤중에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다 침대에서 떨어지는 일도 없답니다.
너도 조심해.
네, 알아요. 그래도 이렇게 그이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상상 이상으로 행복한 일이더라고요.
정말 고마워요, 리유니온!
……감사할 필요 없어.
벌써 2년이나 됐는데, 너는 아직도 감사를 받아들일 줄 모르네.
이쯤이면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저들이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니니까.
확실히 그렇긴 하네. 저 사람들이 '리유니온'이라는 깃발 아래에 하나로 뭉친 시점에서, 감사했어야 하는 대상은 본인들이어야 했을 테니까.
폐허에서 다시 삶을 일구는 능력과 용기가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잖아.
다들 그걸 깨달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전에, 너는 넋 놓다가 들켰을 때 좀 더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법부터 배워.
난 그냥…… 훼이지에가 다음엔 언제쯤 돌아올지 생각 중이었어.
설마 걱정하는 건 아니겠지?
돌아올 때마다 새로운 소식을 조금이라도 가져오니까.
우리가 있는 이 분쟁 지역은 재앙정보전달자의 관리 밖에 있는 데다, 일반 전달자는 거의 지나가지도 않아. 우리가 지난 2년 동안 조금씩 소식망을 구축해 왔지만, 아직 완전하진 않지.
그래서…… 훼이지에가 좀 더 진실에 가까운 소식을 가져오길 기다리는 거야.
무슨 소식을 듣고 싶은 건데?
뭐든지…… 나는 우르수스에 대해 알고 싶어. 지금 이 순간,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가 서쪽에서 봤던 그 광경들을 믿지 않는구나.
넌 믿어?
위에 있는 사람이 약간의 자비만 베풀어도 대부분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어, 부당함을 겪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하고, 저항을 잊게 하기에도 충분하지.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는 광산으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은 적이 없잖아. 서쪽이든, 더 먼 곳이든.
어쩌면 그 사람들이 우리의 존재를 모르거나, 이곳까지 올 수 없는 걸지도 모르지.
게다가, 우리는 이곳에 아직 안정적인 거처를 마련하지도 못했잖아.
그렇다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우리한테 실망하진 않았잖아.
……하지만 그들은 실망해야 했어, 나인.
탈룰라는 고개를 돌려 높이 걸려 있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 빛을 직시하며, 눈이 시리고 아릴 때까지.
물론 우리의 농장도 이제는 거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졌다지만, 단 한 번의 예고 없는 재앙만으로도 모든 게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어.
처음 몇 달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그런 시련을 겪었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곳에 도착해 지금의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됐지만.
그래도 이 평화는 영원한 게 아니야. 난 사실 이곳저곳 전전하면서 우리를 떠날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규모가 점점 커졌지.
게다가, 그건 억압받는 사람들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우리를 선택한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고 남았기 때문이야. 원래라면 실망해야 했지만.
우리는 선의를 보였을 뿐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한결같은 신뢰로 보답했어.
삶의 고통 때문에 수도 없이 무너진 사람들이었을 텐데, 어떻게 이 척박한 땅에서 황금보다 더 귀한 감정을 다시 내놓을 수 있었던 걸까?
나는 그럴 수 없어…… 그 일들이 있은 뒤로, 그런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어.
……
그래서 생각해 봤어…… 만약 이게 만물이 흘러가는 이치라면? 그렇다면 이 순박한 사람들이 믿는 진리도 사실 별거 아니야.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는 것뿐이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우린 앞으로도 실패할 거야, 나인. 하지만 이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틀렸어. 난 애초에 실패를 두려워한 적이 없어.
하지만 우리와 동행하는 사람들 중엔 있잖아. 누구나 너처럼 원대한 이상을 품고 사는 건 아니야. 대부분 사람은 그저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니까.
나인, 새로운 억제제 생산 라인이 완성됐는데, 지금 바로 가동할까?
벨리아.
응?
만약, 내가 이곳을 포기하고 디에티 그라이퍼부르크로 간다고 하면 넌 어떻게 하겠어?
물어볼 필요가 있나? 당연히 함께 가야지.
다른 사람들은?
똑같지. 우리는 리유니온이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
하지만 모두가 다 떠날 수 있는 건 아니야. 이제 모두 각자의 역할대로 일한 지 꽤 됐으니까. 전투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함께 가고, 나머지는 후방에 남는 게 좋을 것 같아.
맞는 말이야.
훗……
나인, 저 사람 말처럼…… 우리는 아마 준비가 된 것 같아……
이제 눈부신 겉모습 뒤에 숨은 추악함을 마주할 준비를 하자. 만약 그 추악함이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렸던 거고, 가지와 줄기가 단단히 엉켜서 단번에 뽑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두 번, 세 번에 걸쳐 뽑아내면 되니까…… 누군가 살아 있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
이제 우리는 손을 맞잡아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았어. 만약 그 족쇄를 부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주저 없이 실행해야 해.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단결시켜, 본래 채워져서는 안 될 모든 족쇄를 부숴 버리는 거야……
우리는 그 적절한 때만 기다리면 돼.
탈룰라, 나인.
급한 일이야.
왜 그래? 네가 이렇게 긴장한 모습은 흔치 않은데.
농장 근처에서 난민 무리를 만났는데, 크라이니 세베르에서 도망쳐 나온 광부들이야. '리유니온'이라는 이름을 찾아왔다고 했어.
신원을 확인해 봤는데, 무기도 없고 모두 감염자라 일단 초소에서 대기하게 했어. 추후 어떻게 처리할지는 너희가 결정해야 해.
크라이니 세베르? 지금까지 그쪽 소식은 거의 듣지 못했는데, 도망쳐 나왔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철통같이 소식을 봉쇄했던 그 크라이니 세베르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면 알겠지.
고마워…… 우리를 받아줘서 정말 고마워…… 좋은 사람들이군…… 너희가 바로 그 '리유니온'인가?
정말 상상도 못 했어…… 렌킨이 한 말이 사실이었다니…… 세상에……
일단 진정해, 우리가 바로 리유니온이야. 우리는 고통받는 모든 동포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우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알려줄래?
우리는……
크라이니 세베르에서…… 학살을 당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