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눈앞의 상처
감염된 빅토리아 잔병들은 끝내 리유니온을 따르지 않았다. 리유니온은 옛 제약 공장을 찾는 길에 나서기 전, 감염된 사관의 시신이 훼손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레드
내가 처음으로 감염자가 붕괴하는 것을 본 건…… 한 호수에서였다.
당시 7살이었던 난, 광산 방범대의 대장이 되는 게 가장 큰 꿈이었던 순수한 아이었다.
밤에 일찍 자지 않아도 될 뿐더러, 멋진 제복을 입고 고출력 손전등을 든 채로 온갖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으니까.
림 빌리턴에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광업에 종사했다. 우린 광맥을 파내고, 광석을 가공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감염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다.
하지만 다루는 게 오리지늄이다보니, 어떻게 해도 사고는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어른들이 집에 일찍 돌아왔다.
엄마와 이모들이 거실 구석에서 소곤거렸다. 아저씨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온 집이 숨 막히는 연기로 가득 차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담배만 뻑뻑 피워댈 뿐이었다.
나는 콜록거리면서도 거실을 마구 뛰어다녔다, 광맥 탐험가가 되어, 짙은 안개로 찬 산골짜기에서 나만의 광산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결국 아빠한테 잠이나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내 방에 끌려갈 때까지.
다음날……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났던 걸로 기억한다. 탄산음료라도 한 캔 슬쩍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날은 할머니가 거실에 앉아 계셨다. 곁에는 짐이 있었는데, 먼 길을 떠날 거라고 하셨다.
난 같이 가겠다고 칭얼거렸고, 할머니는 결국 내 떼에 못 이겨 허락하셨다. 늘 그랬듯이. 나는 할머니와 잠깐만 같이 가고, 그 뒤론 얌전히 집에 돌아가기로 약속했다.
우린 저 멀리에 소금 호수가 보일 때까지 걸었다. 그 호수는 우기에만 나타날 정도로 꽤나 얕았지만, 그 해에는 비가 굉장이 많이 온 탓에 호수의 반대편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할머니는 날 더 이상 가지 못하게 하셨다. 난 알겠다고 했다. 할머니께선 심지어 내게 맹세까지 시켰다…… 입학할 때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맹세한 이후로 처음이었다.
하지만 난 이미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몰래 할머니를 쫓아, 호숫가의 수풀 뒤까지 가서 숨었다.
할머니는 배에 오르셨다. 배 위에는 다른 사람들도 몇 명 있었는데…… 다들 몸에 이상한 돌이 자라 있었고, 한 명은 담요에 싸여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선원이 배의 시동을 걸었다.
나는 여전히 호숫가에 서 있었고, 작은 배는 천천히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상황이 좀 이해되지 않았고 머리는 멍했다. 할머니께선 가는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손을 잡고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슬슬 돌아가려고 결심한 나는, 들어가기 전에 어디서 아침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수정이 깨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오리지늄 분진이 흩날려 오는 것이 보였다. 안개와 섞인 그것은, 햇빛을 받아 괴이한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꿈만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감염이 됐다고?
아니, 그땐 운이 좋았지. 그때 뿐이었지만.
어쩌면 진짜로 꿈이었을 수도 있어…… 그저, 한여름 새벽의 환각같은.
하지만 그 뒤로 할머니를 못 보긴 했어. 가족들도 다시는 할머니 얘기를 하지 않았고.
그럼……
평소엔 굉장히 신중한 분이셨지. 어린 아이를 따라오게 두셨으면 안 됐어, 위험한 거니까.
하지만 내 생각엔…… 마치 오랜 세월 굳어진 관습처럼 죽음을 향해 걸어갈 때…… 이기적인 결정을 하나 내리신 거라고 봐.
'죽기 전에 손주를 좀 더 보고 싶다', 어쩌면 꼭 껴안아 주고 싶었었는 지도 몰라.
하, 기억났다. 생각해보니 그 학기 성적표를 보여드리지도 못했네.
내 학생 시절을 통틀어 가장 성적이 좋았던 때였는데.
앞쪽 숲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멈췄고, 흔들리는 불빛이 움직임을 멈추는 모습이 교차한 나무 그림자 너머로 보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중얼거림과 탄식,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빅토리아인 부대가 멈췄다. 레드, 경계해.
여기서 아영을 할 모양이야.
여기서? 우리쪽 캠프에서 겨우 몇백 미터밖에 안 벗어났잖아.
봐봐, 흔적을 지울 여력도 없는 모양이야. 뒤에 어디 정찰대라도 따라붙었으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나보다 한발 앞서 나가며 넝쿨들을 쳐내는 레드는,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행동은 재빨랐다.
우리는 그들이 위치한 곳으로 조금 더 다가갔다. 무성하다고는 할 수 없는 덤불 너머로 그들의 움직이는 실루엣이 보였다.
기진맥진한 병사들은 땅에 쓰러진 채 절망스러운 모습으로 머리를 낙엽 속에 박고 있었고, 방금 그 부사관은 바위 위에 앉아 자신이 유일하게 지닌 무기인 직검 한 자루를 묵묵히 닦고 있었다.
그냥, 움직일 힘이 없었을 뿐인 것 같아.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으니까. 아니면 아직도 환상 속에 살고 있거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애초에, 정말로 그저 행군하다가 '낙오'된 것일까?
이 정도로도 빅토리아인들은 운이 엄청 좋은 거야, 적어도 전우의 창칼을 직접 마주하는 대신 상냥하게 추방되었으니까.
하지만 스스로가 감염자라는 걸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겠지.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어쩌면, 그저 저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일 지도 몰라.
정말로 저 자들을 받아들이려고? 저…… '군인'들을?
우린 너무 약해, 저들도 마찬가지고.
그럼 지금은 어떡하지?
근무부터 마저 서야지. 그리고 초병한테 알려서 순찰 범위를 늘리는 거야, 이 캠프까지 포함해서.
감염자들은 함께 해야만 해.
'함께 한다', 이 얼마나 가벼운 구호인가.
물론 우리는 뭉쳐야 한다, 뭉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함께 한다'라는 말은 너무나도 단순해서, 오히려 우리가 그 속에 담긴 진정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광석병, 우리의 삶을 평등하게 뒤바꾼 병, 우리가 지녔던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평등하게 앗아간 병.
하지만, 내년에 먹을 종자마저도 세금으로 내버린 흉년의 농부와, 금고 안에 순금을 가득 채워둔 부자가 느끼는 '빼앗긴' 기분이 과연 같을 리 있을까?
우리가 소유하고 있던 것이 애초부터 달랐으니, 빼앗기고 난 뒤 남은 선택지 또한…… 다를 수밖에.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누구와, '함께 해야'만 하는 걸까?
당신, 탈룰라 씨 맞지?
리유니온의 창립자, 감염자들의 리더! 다들 탈룰라 씨 당신이 우르수스에서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하더라고!
빅토리아의 감염자들 사이에도 당신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들리는 말로는…… 전에 도시 하나를 빼앗았다고 하던데, 그거 진짜야?
감염자들의 도시라니! 그 도시는 아직 있어?
……난 리더가 아니야. 리유니온의 일원일 뿐이지.
죽이라도 좀 먹어, 곧 있으면 출발이니까.
탈룰라 씨, 그 도시에 대해 좀 얘기해줘!
……
그 일은……
괜찮아, 그게 뭐 어때서! 빅토리아까지 온 걸 보니 일이 잘 풀리진 않았나 봐?
병 없는 놈들이 우리 머리 꼭대기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거들먹거려 왔으니, 당연히 이제 와서 우리가 성공하는 꼴을 순순히 두고 보진 않겠지.
뭐 놈들한테 한 방 먹고, 귀찮은 일들 좀 겪었을 수도 있지. 뭐 어때? 너희는 리유니온이잖아!
힘내, 우린 너흴 믿으니까!
탈룰라는 고개를 숙인 채로, 눈앞의 솥을 저으며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죽을 한 그릇, 또 한 그릇 퍼올렸다.
열기가 눈앞을 가렸다.
조심해, 뜨거우니까.
다들 널 '믿는'다던데.
기분이 어때, 응?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널 희망이라 생각하잖아.
음, 그쪽은 우르수스에서 온 고참 멤버, 맞지? 무슨 얘기 하는 거야?
벨리아.
나도 안다고…… 미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흥.
가드 씨, 어젯밤에 캠프에서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며?
괜찮아, 이미 해결했으니까.
탈룰라는 그만 놔주고 가서 짐이나 챙겨. 오늘도 갈 길이 멀어.
아 그렇지, 비료도 차에 실어야 해.
그리고, 이제 더는 '너희 리유니온'이 아니야.
그렇지…… 우리 리유니온이지, 하하!
그럼 이따 봐!
가드……
별 거 아니니까, 괜찮아.
난 탈룰라가 건넨 죽을 받아들었다. 탈룰라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어떤 일들은, 아직 저들에게 알려 줄 수 없어.
알아. 너희들의 결정이니까.
리유니온은 절대로 다시 무너져선 안 돼.
난 깃발이야, 너희들이 빅토리아에서 흔들어야 할 깃발…… 받아들이겠어.
하지만 난 지금 저들을 속이고 있어. 난 아직……
네가 응당 감내해야 할 일이야.
그걸 명예로 여기든, 고문으로 여기든 관심 없어. 넌 죄인이니까. 그리고 지금 사람들한테 필요한 건 뭉치기 위한 '희망'이야.
설마 저들에게 사실은 그저 빌어먹을 '악의 화신'에게 현혹되었을 뿐이고, 체르노보그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그저 우르수스가 뒤에서 꾸민 음모라고 알릴 셈이야?
난 차라리 우리 조직을 거짓말 위에라도 쌓아올리고 싶어.
과거의 우리도 거짓말 위에 세워졌었어.
알아. 언젠간 대가를 치러야 겠지. 하지만 적어도 이번 거짓말은 감염자들을 위한 거야.
리유니온에겐 더 이상 두 번째 기회가 없어. 우리가 네 길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네 그 동생이 뭐라고 했었더라? 체르노보그에서 말이야.
“모든 감염자를 공평하게 심판할 수 있는 그날까지 기다린다.”
……
난 기다릴 거야.
그 전까진, 날 도구로서 다뤄 줘.
저기, 실례합니다……
빅토리아인? 여기엔 무슨 일이지?
무기는 없습니다. 벌써 초병들한테 조사를 받았거든요.
저…… 음식 냄새를 맡았습니다. 형제들이 벌써 나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그중 몇몇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아요.
라이터가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음, 혹시 단추는 안 필요하십니까? 황동 재질이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부디 선의를 베풀어서…… 빵이라도 좀 바꿔 주실 수 있을까요?
저도 압니다, 이걸론 부족하다는 걸! 블랙스트림 마을에 남겨둔 고급 가죽들이 많으니, 돌아가면 돈으로 바꿔서 배로 갚아드릴게요!
수염도 나지 않은 청년이 솥을 간절하게 바라보며, 한손으론 제복의 아랫단을 꽉 쥔 채로 말했다. 어쩌면 긴장해서일 수도, 어쩌면 좀 더 체면을 차리고 싶어서일 수도 있었다.
탈룰라는 죽이 가득 담긴 그릇을 그에게 내밀었다.
솥에 남은 거, 전부 가져가도 돼.
가, 감사합니다! 저…… 이거, 라이터예요! 그렇게 좋은 건 아니라서, 여러 번 눌러야 불이 붙을 거예요. 그리고 단추도……
난 라이터를 받아들며, 단추를 뜯어내려는 그의 손을 제지했다.
됐으니까, 일단 먹어.
그는 말 그대로 자신의 목구멍에 죽을 쏟아붓듯이 먹었다.
네 상사는?
모르겠습니다, 아침부터 안 보이더라고요. 아까는 상사님이 또 여기에 쳐들어왔을까 봐 걱정도 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밤에 무슨 소리 못 들으셨습니까? 그…… 포탄 소리 같은?
보고받은 거 없어.
상사님은…… 아닙니다, 다들 미쳐가고 있어요. 우리도, 그들도, 전선에 멀쩡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고생하고 있나 보네.
'고생', '고생'이라…… 상상조차 할 수 없으실 겁니다, 살카즈가 저희를 뭘로 상대하고 있는지.
놈들에겐 고속 군함도 없고, 보병 전차도 없습니다. 저희는 그 마족 놈들이 창칼과 화살로 저희의 군대에 맞서려는 야만인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틀렸습니다, 완전히 틀렸어요. 상상이 가십니까, 살카즈 캐스터 1개 대대가 일제히 아츠를 시전하는 광경이……
저희의 포병과 발리스타 진지보다 훨씬 더 끔찍합니다. 포병에게 당하면 팔다리가 뜯겨나가고, 파편이 몸을 파고들어 죽는 것이 나을 정도의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카즈는, 놈들은 전장을 말 그대로…… 라테라노 신화 속의 지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전 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의 장갑차가 핏물로 만들어진 벼락에 꿰뚫리고, 제 전우가 바로 옆에서 고름으로 변하는 모습을……
파이프 공작님께서 보낸 사람이 절 치스티비스트 우리에서 끌어낼 때만 해도 이런 건 상상조차……
……아니,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죽을 가지고 돌아가야겠어요. 감사드립니다. 솥은 곧 돌려드릴게요.
괜찮아, 아마 그쪽도 쓸 일이 있을 테니까. 이쪽에는 아직 많거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 떠날 준비를 하시는 겁니까? 그럼…… 이제는 어디로 가시나요?
여긴 아무래도 전장이기도 하고…… 주변은 다 빅토리아의 영지니까, 제 생각엔, 감염자들이 아마……
……
죄송합니다! 아마 기밀이겠죠? 제가 괜한 걸 물어봤네요,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병사는 당황하여 다급히 자리를 뜨려고 했다. 멀쩡한 손은 솥의 옆을 감싸고 부목을 댄 손으로는 솥의 밑바닥을 받쳤는데, 뜨거워서 이를 악물면서도 솥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방금 의사에게서 받은 물건이 아직 있었다.
거기! 잠깐만!
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작은 약병을 그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건 뭡니까?
가서 동향 사람들이랑 같이 쓰도록 해. 급성 증세를 가라앉히는 정도는 되니까.
블랙스트림 마을, 기억해놨어. 나중에 돈 받으러 갈게.
저…… 선생님, 이건……
가 봐.
……저희 마을이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답네.
들었어, 캠프에 있는 약물 조제가 가능한 의사들도 네가 데려온 거라는 걸.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들은 내가 봤던 정식 억제제랑 비교하면 약이라고도 못 부를 정도야.
로도스 아일랜드에도 염가 치료 계획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기업이다 보니 연구개발에 쓰이는 돈 이외에도 상업적으로 신경 쓸 것들이 워낙 많거든.
카시미어나 컬럼비아에서 얼마나 많은 눈들이 로도스 아일랜드를 지켜보고 있을지는 뭐, 하늘만이 알겠지.
그래서 나인을 설득하고 다 같이 북쪽으로 가자고 한 거구나. 병사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어, 거기에 '공방'이 있다는 것 같던데.
작디작은 제약 공방이야.
딱히 규모가 크지도 않고, 이동 플랫폼 위에 놓여져 있지도 않지. 하지만 그 조막 만한 땅덩어리는 한때 수많은 감염자들에게는 구원이었어.
나중엔 아마도 소문이 너무 많이 퍼진 탓에 들킨 것 같아. 뒷일은 말할 필요도 없고. 쫓겨난 사람들 일부가 우리에게 합류한 덕분에 우리도 알게 된 거야.
그곳은 숲 속 깊은 곳에 있어서 신경 쓸 사람도 없을 거야. 조잡한 급조 약물이라도 우리한텐 꼭 필요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곳이 한때 빅토리아 리유니온의 시작점이었다는 거야.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빅토리아 각지에 흩어져 있고, 우린 그들을 단결시켜야 해. 그들한테 알리는 거야, 도와주러 온 이들이 있다는 걸.
감염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만든 조직은 많이 봐 왔어.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우리를 돕기도 했었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항상 결국엔 사라지더라고.
로도스 아일랜드에 있던 시절에 생각했었어, 모두가 조금만 더 노력해서 더 많은 약을 만든다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체르노보그에서, 난 생각을 바꿨어.
어째서 이런 공방들은 항상 금지 당하고야 마는 걸까? 어째서 그 많은 선의와 노력들은 증오와 편견 아래에서 빛이 바래는 걸까?
어쨰서 악의가 안개처럼 자욱할 때마저도, 모든 이들은…… 심지어 감염자 스스로마저도…… 호수 위에서 죽음만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일까?
난 탈룰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신기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녀의 영혼은 이토록 오랫동안 지쳐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한때 우리의 리더였던 이 사람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지금 한 순간 흥분해서 지껄인 말들을 그녀는 진작에 했었던 것일까?
……하아. 너라면 알겠지.
광석병은 병이 맞아. 하지만…… 치료에 관한 건 일단 로도스 아일랜드에 맡겨.
우리의 적은 광석병 뿐만이 아니야. 우리의 적은 보다 직접적인 멸시와 차별이자, 광석병을 핑계로 가린 진리와 진상이야.
광석병은, 그저 이 땅의 모든 것이 추락하는 종착점에 불과해.
그저 상징을 되찾아서, 빅토리아의 감염자들이 이를 의식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기를 바랄 뿐이야.
……'함께 한다'라.
이건, 리유니온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네 생각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랑은 얘기해 봤어?
응? 물론이지, 시간이 빌 때마다 나인이랑 얘기를……
아니, 내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 텐데.
아……
조금은. 얻기도 했고…… 상냥한 대답을 말이지.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거고.
하지만 어쨌든, 우린 같은 길을 선택하지 않았어. 그래서 난…… 음……
난 지금 무언가를 더 요구할 자격이 없어.
내겐 자격이 없다.
로도스 아일랜드는 이상주의자들의 낙원이다. 나? 난 그저 눈앞만을 노려보는 사람이고.
눈앞의 이해, 눈앞의 득실……
난 베테랑 유격대원들이 하는, 리유니온이 툰드라에서 지낼 적의 나날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모든 이들의 이상을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감염자의 도시, 우리의 고향.'
당시 누군가는 그게 지척까지 다가왔다고 생각했었다. 체르노보그에서, 그 이상은 거의 실현될 뻔했다. 그저 마지막 한 걸음이 닿지 못했을 뿐.
하지만 나는 안다, 그 꿈속의 도시는 아직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게다가, 도시 하나만으로 과연 충분할까?
혹은, 도시 하나만으로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가드, 아직도 다리가 불편해요? 뒤쪽으로 가서 차에 타는 건 어때요?
조금 삔 것뿐이야.
요즘 작전에 참여한 적도 없잖아요.
며칠 전에 유격대랑 같이 그리니치 쪽의 감염자들을 이끌고 황야를 지났어.
땅이 뒤엎이고 사방에 도랑이 파져 있더라고. 내 고향의 무밭이 딱 그 꼴이었어. 물론 훨씬 작긴 하지만.
거기서 넘어졌어.
풉.
그래서 그게 뭐였는데요? 런디니움에 그런 지형이 있다곤 들어 본 적이 없거든요.
월트가 알려 주더라고. 하나하나가 우리 전부를 넣고도 남을 크기로 나 있는 그 수백 수천갈래의 도랑들은…… 전부 고속 전함의 궤도 자국이라고.
……
그래서 하루종일 죽상이었군요.
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진맥진한데 말이죠.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아요, 네?
가드 씨, 전초 소대로부터 보고가 있습니다.
루트 답사 중, 왼쪽 전방의 숲에서 무슨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접근하니까 오리지늄 환경 관측기가 울렸다고 합니다.
후방 부대에 우회하라고 전해 줘.
넵.
퍼시벌.
전 동료들과 함께 당신을 따라 갈게요. 당신이 또 넘어질까봐 걱정도 되고요.
대기에는 불온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관측기를 확인하니, 활성 오리지늄의 농도가 꽤 높았다. 좋지 않은 징조다.
다들 방호에 유의하고, 마스크 써.
나무 아래에 사람 그림자?
아니, 헤진 옷이다, 그것도 빅토리아의 군복. 갈기갈기 찢어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어딘가 눈에 익었다, 근처에 떨어져 있던 건 상사의 계급장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는 작은 오르골이 있었다. 두터운 오리지늄 분진이 쌓여 있는 그것은 아직 간신히 작동하고 있었다.
……
……감염자. 사망 확인, 최대한 빨리 여기를 떠나자.
퍼시벌의 걸음걸이가 조금 느려졌다. 그녀는 뚝뚝 끊기는 음악에 맞춰 가볍게 흥얼거렸다.
가드, 이게 무슨 노래인지 알아요?
몰라, 하지만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
……들판의 산들바람은 온기를 퍼뜨리고♪♫ 아침 햇살은 우리 고향을 비추네♬♪
함께하는 우리는, 폭풍도 겁내지 않으리♪♫ 내일은 결국 빅토리아의 것일지니♬♪
……빅토리아의 국가예요.
어릴 적에…… 아직 병에 걸리지 않았을 때, 선생님이 우리한테 이 노래를 몇 번이나 가르쳐 주셨어요.
참 오랜만에 듣네요.
전 빅토리아에서 태어났으니까 빅토리아인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이 사관은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빅토리아인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네,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적어도…… 자신이 겪게 되었을 일들을 미처 겪지 못했으니까요.
가드, 제가 자신을 리유니온이라고 자칭하는 이유는……
그저 핍박받는 게, 온종일 공짜로 일하고도 다음 날 공장에서 쫓겨나는 게, 돈을 아무리 많이 써도 가장 허름한 여관방 하나조차 잡지 못하는 게 지긋지긋해서예요.
리유니온은 저한테 알려줬거든요, 모든 걸 참아내며 묵묵히 죽는 것 외에도 다른 길이 있다는 걸. 그거면 충분해요.
이 선택의 대가가 나의 고향, 나의 조국, 내가 한때 영위했던 삶을 포기하는 게 되는 것일지라도 말이에요.
……하, 사실은 제 몸에서 첫 결정이 튀어나왔을 때 진작에 잃었던 것들이지만 말이에요. 전 그저…… 시간이 아주, 아주 오래 흐른 뒤에야 그걸 인정한 거예요.
우리,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 우르수스인, 컬럼비아인, 빅토리아인, 아니면 살카즈, 필라인, 리베리……
우리가 지금 지닌 유일한 신분은, 그저 리유니온일 뿐이에요.
……
만약 이 모든 전장을 뚫고, 모든 시체를 넘어야만…… 이 대지에게 우리의 죽음을 알리고, 우리의 죽음을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렇다면…… 뚫고 지나가 주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