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버려진 사람
다마즈티와 에블라나의 전투가 봉쇄 구역에서 폭발을 일으켰고, 글래스고는 봉쇄 구역의 사람들을 모아 철수한다. 베어드는 혼란 속에 실종되고 검을 쥔 시즈가 리더가 된다.
따라오는 사람이 생각보다 더 많아.
너희를 따라가면 살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거야.
나도 알아.
다들 우리를 믿어서 내 뒤에 서기로 한 게 아니야. 그저…… 갈 곳이 없는 것뿐이지.
발자국 소리는 아주 설득력 있는 신호야. 우리와 합류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다른 사람의 망설임이 줄어들 테니까. 우리가……
……우리의 귀한 폐하께서 봉쇄벽에 도착할 때면 더 많은 사람이 널 위해 탄알과 포화를 막아줄 거라고?
카도르, 도착하면 내가 가장 앞에 설 거야.
……잠깐, 하늘을 봐. 저건 뭐지?
살카즈의 비행선이야…… 이륙했어.
저건 우리의……
아니야, 저건……
소란스럽던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들 위를 뒤덮은 비행선을 바라보았다.
모든 사람의 동공에 기이한 빛을 반짝이며 천천히 떨어지는 보라색 불길이 비추었다.
차가운 보라색 불꽃은 대지와 충돌했고, 사방으로 튄 불꽃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도망치는 사람들 몸에 기어올랐다.
불길은 막을 수 없는 기세로 퍼져갔고, 꺼뜨릴 수 없는 보라색 불길은 순식간에 당황하며 도망치는 사람을 삼켜버렸다.
그들은 울부짖으며 불길 속에 쓰러졌다.
다음 순간 망령들의 몸이 불길 속에서 다시 일어섰고, 그들의 눈에서는 갈망의 보라색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정적.
현장의 모든 사람은 이 '기적'을 보았다.
이것도…… 마족 놈들의 수단인가?
놈들은 우리한테 마음 놓고 죽을 기회도 주지 않는구나……
머리 위 하늘에 가득한 보라색 불비는 사신처럼 지면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사람들 사이에서 공포의 분위기가 빠르게 퍼져갔고, 조용하던 대열이 다시 떠들썩해졌다.
불길에 다가가지 마! 어서! 더 서둘러!
……거리에 있는 집들이 불타고 있어.
시즈…… 봤어?
뭘?
저 보라색 불은…… 절대 살카즈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죽음에서 부활하는 전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그건 드라코야.
더블린의 리더이자 탐욕의 붉은 용…… 그 여자가 온 거야. 그 여자의 불길이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거라고.
그 여자는 더는 자신의 야망을 숨기려 하지 않아, 시즈.
……그 여자가 누구든 신경 안 써.
내가 신경 쓰는 건 우리가 뛰어야 한다는 거야.
조심해!
그렇게 오래 살아놓고도 인내심이 뭔지는 못 배운 모양이군.
나랑 전쟁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은데 내 불길은 왜 또 그렇게 두려워해?
섭정왕한테 절대복종하기로 한 뒤로 본인이 자랑스러워하던 지혜는 버리기로 한 건가?
재미있는 능력이구나, 드라코. 네 불길은…… 참 흥미로워.
이미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이 몸은 우리의 수많은 조각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겠구나.
우리는 그저 널 위해 작은 경고를 한 것뿐이야. 너는 우리의 안중에도 없어.
네 영혼은 너무 천박하고 메말랐어. 넌 심지어 네 눈 속의 권력을 갈망하는 불길조차 숨기려고 하지 않지.
지금 우리와 대화하는 젊은 밴시와 비교해보면, 심지어 너한테는 질문할 흥미조차 없어.
난 그 어떤 것도 감출 필요가 없어. 내 불길은 언젠가 날 위해 모든 걸 태워버릴 거니까. 지금처럼 말이지.
다마즈티가 내 불길 속에서 내게 굴복할 장면이 벌써 기대되는걸.
어린 드라코, 네 발밑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나?
난 저들을 인도할 거고, 저들은 날 칭송할 거야.
이건 내 책임이야. 넌 이해하지 못하겠지, 오랜 방랑자여.
아주 오래전, 이 발밑의 국가가 지금처럼 우스운 꼴이 아니었을 때, 그때 우리는 빅토리아 남쪽에서 드라코를 만났었어. 지금의 너처럼 어렸지.
전쟁터에서 죽기 전에 그자도 “난 저들을 인도할 거고, 저들은 날 칭송할 거다.”라면서 너와 비슷한 말을 했었어.
안타깝게도 그 후계자는 결국 제국의 허망한 빛에 굴복했지. 그해 아슬란과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하며 화친을 택한 자든 너든 마찬가지야.
전쟁터에서 싸운 네 조상들과 비교했을 때 넌 어떤 것 같아?
넌 우리 종족이 받은 고난을 평가할 자격이 없어.
나도 타라의 역사를 만든 붉은 용을 평가할 자격이 없고.
오늘날의 사실은, 네가 말한 그 아름다운 기억이 아주 오래전에 타라인 곁을 떠났다는 거야.
드라코의 선왕들은 나보다 더 고상하지 않아. 우리가 바라는 건 '공평'일 뿐이야.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선택을 했고,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너, 장생자, 넌 끝 없는 네 삶을 자랑하며 다양한 지식을 뽐내고 있어.
……
하지만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재산은 네 삶에 그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지. 그러니 넌 얼마나 슬플까?
'관찰'과 '탐색', 그것뿐…… 이게 아마 네 길고 긴 삶의 전부일 거야. 안 그래?
우리는 서로 상대를 중요한 손님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이 따분한 논쟁을 빨리 끝내는 게 어때?
……
고마워, 드라코. 넌 고역이었던 이번 일을 좀 재미있게 해줬어.
넌 날 기억하게 될 거야, 다마즈티.
네 그 길고 복잡한 기억에 나만의 에피소드가 있게 될 거야.
……
바깥의 불이……
지금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얼른 물건 챙겨서 따라가야…… 모건?
너, 비나한테 그렇게 말한 거 후회하는 거지?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갑자기 그런 말이…… 사실 난 비나를 탓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거든.
나한텐 이 악몽이 끝났다고, 모든 게 좋아질 거라고 말해줄 사람이 너무 필요했어. 예전에는 그 사람이 늘 비나였으니까.
하아, 이 비디오 기억해? 네가 매클래런한테서 큰돈을 주고 산 거야.
나한테 이게 절판된 거라며 엄청난 소장 가치가 있다고 속였거든.
매클래런 말도 맞아. 네가 사 온 뒤로 비나랑 같이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서 몇 번을 봤더라? 10번? 20번?
이렇게 하자, 그거 챙겨. 여기를 떠나서 새로운 거점을 찾으면 다시 함께 21번째로 보는 거야. 그럼 굳이 다른 말은 필요 없을걸.
……비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그렇지?
그저…… 노포트 구가 변했을 뿐이야.
비디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모건, 내가 아직 알리지 않은 사람이 있어.
넌 먼저 가서 비나한테 나도 금방 쫓아가겠다고 전해줘.
노포트 구 거리의 가로등은 이미 모두 꺼졌고, 도시에 퍼진 보라색 불길이 베어드의 길을 비추고 있다.
불타버린 수많은 사람의 형체가 생기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모두 가만히 '리더'의 부름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하늘이 공중에 떠 있는 비행선을 감췄고, 하늘로 돌진하는 보라색 불길은 그것의 그림자를 들춰낼 수 없었다.
제기랄, 저 사람들…… 저것들은 대체 뭘 보는 거지?
얼른 매클래런을 찾아서 비나와 합류해야겠어. 여긴 너무 위험해. 매클래런 집이 이쪽이었는데……
너무 어둡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손전등을 챙겨 올걸.
예전이었다면 매클래런의 네온 간판이 밤새 꺼지지 않았을 텐데.
……저 망할 불타버린 '것'들이 공포 영화에 나오는 괴물들처럼 갑자기 움직이면 안 되는데.
왼쪽에서 세 번째…… 왼쪽에서 세 번째…… 하나, 둘, 셋…… 찾았다!
매클래런! 매클래런!
옆집이 이미 불타고 있어! 얼른 철수해야 해!
어둠 속에서 베어드의 목소리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목재가 불타오르는 소리만 들렸다.
베어드는 긴장하며 틈 사이로 귀를 댔다. 텅 빈 집 안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이가 덜덜 떨리는 소리와 헐떡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매클래런! 천만다행이다, 살아 있었구나!
맞다, 모건이 그랬지…… 귀가 안 들린다고.
펜을 찾아야…… 주머니에 펜이 있어!
“지금 바깥 상황이 아주 나빠. 당장 철수해야 해.”
“나 베어드야, 나무판자를 떼.”
쪽지 좀 보라고, *빅토리아 욕설*, 대체 본 거야, 만 거야!
시간이 없어. 그냥 들어가야겠다……
매클래런, 긴장하지 마. 창문에 못질을 너무 단단히 해서 내가……
베어드는 그녀의 버터플라이 나이프로 나무판자 틈을 팠다. 그리고 칼자루로 썩은 나무를 뜯으려고 했다.
거의 다 됐어, 조금만 기다려!
(작은 소리로) 저리 가……
뭐라고? 잘 안 들려. 나무판자가 그리 튼튼한 건 아니네. 조금만 더 버텨!
(작은 소리로)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 멀리 떨어지라고……
뭐라고? 제기랄, 불이 뭐 이리 빨리 퍼지는 거야?
더 서둘러야 해, 더 빨리……
이제 마지막 나무판자 2개만 남았어! 매클래런, 나 보여?
“어서 입구로 와”, 불길이 곧 이쪽으로 올 거야, 서둘러야 한다고!
얼른 봐! 글씨를 더 크게 써야 하나?!
(작은 소리로) 저리 가…… 나한테서 떨어져……
저쪽으로 비켜. 마지막 나무판자를 부술 거야.
오지 마!!!
은색 빛이 지나가며 베어드는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얼굴을 만지자 미끄러운 액체가 번졌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매클래런……
익숙한 비디오룸 사장이 문 뒤에 서 있다.
남자의 목 부분에는 귀에서 흘러내린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고, 귓바퀴에 있는 검은색 오리지늄 결정은 꽤나 커져 있었다. 모건 말이 맞았다. 그는 완전히 귀가 먹은 것이다.
아까 그는 하나 남은 등불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느라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밖에 서 있는 사람이 베어드인 걸 보고 이렇게 겁을 먹으며 손에 든 칼을 휘두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누가 문을 열었든 남자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문밖의 재앙은 그의 두 귀와 거의 모든 재산을 빼앗아 갔다. 마지막 식량을 지키기 위해, 그는 칼을 들고 자나 깨나 약해빠진 나무판자 뒤를 지켜야만 했다.
이건 내 거야…… 난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매클래런……
나 살고 싶어. 부탁이야…… 난 그냥 살고 싶을 뿐이야. 다른 건 다 너희한테 줬잖아……
왜 또 날 찾아온 거야?
(작은 소리로) 이건 내 거라고……
매클래런, 날 봐. 나 베어드야. 내가 살아남게 도와줄게.
칼은 천천히 내려놓고 손을 나한테 줘.
“칼 내려놔”, 보여?
곧 불이 번질 거야. 우리 진짜 시간 없다고.
그래, 그렇지. 내가 천천히 다가갈 테니까 긴장하지 마!
베어드는 마침내 익숙했던 비디오룸 사장의 온몸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방안을 밝히는 것은 등불이 아니라 그녀들과 수많은 세월을 함께한 작은 영사기라는 걸 알았다.
이제 내가 손을 잡고 일으켜 줄 거야.
(작은 소리로) 난 살아남을 거야……
그럼, 우리 모두 그럴 거야.
베어드의 손이 쇠약해진 팔에 닿았다. 부드러운 근육 아래에서 느껴지는 오리지늄 결정의 촉감으로 그녀는 순간 두려워졌다.
괜찮아. 우리는 모두 살아남을 거야. 넌 새로운 비디오룸을 갖게 될 거고, 나도 새로운 복싱장을 갖게 될 거야.
(작은 소리로) 난 살아남을 거라고……
이제 긴장 풀어…… 내가 칼을 치울 거야. 안전하니까 이제 이런 거 필요 없어……
고마워…… 정말 고마워……
베어드는 천천히 매클래런이 품에 쥐고 있는 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품속에 불룩 튀어나온 것은 매클래런의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일 것이다.
베어드는 매클래런의 칼을 가져갔다. 온몸을 벌벌 떠는 남자의 근육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처음으로 긴장이 풀렸다.
남자의 혼탁한 눈동자에 공포가 아닌 또 다른 감정이 떠올랐다. 베어드는 그가 자신을 알아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품에 있던 물건이 결국 떨어져 버렸다. 그건 빈 통조림이었다. 안에는 이미 음식이 없었다.
이제…… 갈 수 있겠다.
(작은 소리로) 그건 내 거야……
마침내 한시름 놓은 베어드는 허리를 숙여 매클래런 대신 빈 통조림을 주웠다.
하지만 이건 비었는데……
갑자기 베어드의 허리에 찌르는 통증이 느껴졌다. 분명히 손에 쥐고 있던 칼인데 지금 본인의 몸 안에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매클래런이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이건 내 거야! 내 거라고!
이건 아무도 못 가져가……
(작은 소리로) 난 살아남을 거야. 음식을 나한테 남겨주겠다고 약속했잖아……
난…… 윽……
비틀거리며 베어드와 부딪힌 매클래런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빈 통조림을 빼앗아 갔다.
(작은 소리로) 난 살아남을 거야. 내 몸은 내가 지킬 거야……
원래 매클래런의 것이었던 칼이 지금은 베어드의 몸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금 그는 다급하게 새로운 무기를 찾고 있었다.
남자는 베어드의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칼날에 그의 광기 어린 두 눈이 비쳤다.
버터플라이 나이프는 베어드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
아주 오래전에 글래스고 소녀들이 대부분 아직 아이일 때, 베어드가 중고 시장에서 아주 저렴한 값을 주고 산 뒤로 한 번도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이 버터플라이 나이프는 베어드와 함께 여러 전투와 축하를 경험했다. 비싼 것도 아니고 베어드가 특별히 아낀 것도 아니지만, 그저 습관처럼 자연스러운 존재였다.
매클래런은 빼앗을 힘도 없었다. 아까 칼로 찌르면서 모든 힘을 다 쓴 것 같다.
그런데 베어드는 어찌 된 일인지 본인도 반격할 힘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매클래런이 숨을 돌리더니 젖 먹던 힘을 다해 또다시 잡아당겼다. 하마터면 칼날이 본인 목을 찌를 뻔했다.
조심해! 그러다…… 다칠라.
베어드는 거의 팔을 들 수 없었고, 손에 쥐고 있던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놓아버렸다.
무기를 빼앗고 통조림을 품에 안은 남자는 비틀거리며 바깥의 불기둥 속으로 사라졌다.
……
하하, 하하.
윽…… 너무 아파. 한나한테 치료해 달라고 해야겠어…… 그동안 밖에서 상처를 부드럽게 치료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는데.
쿨럭……
제길, 왜…… 똑바로 못 서겠지……
매클래런, 하, 진짜 너무하네. 티켓값 외상한 적도 없을 텐데.
……음, 분명 없을 거야.
빨리…… 애들이랑 합류해야 해. 비나는…… 늘 걱정이 많으니까.
이게 우리를 따라오려는 마지막 사람들일 거야.
불길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어!
우리도 서둘러야겠어, 박사.
- 아미야, 뛸 수 있겠어?
……네, 전 괜찮아요.
드디어 왔구나. 어서, 지금……
비행선이 하늘로 떠오르니 대공작도 가만히 있지 못하겠나 보군.
- 저건 윈더미어 공작의 부대인가, 델핀?
모르겠어. 신경 쓸 겨를도 없고.
이제 가야 해, 시즈!
공작들과 살카즈의 승부가 날 때까지 기다려선 안 된다고……
안 돼, 베어드가 아직 안 따라왔어!
조금만 더 기다리자. 2분, 아니, 1분이라도 좋아. 베어드는 달리기가 빠르잖아.
거리에 점점 많아지는 산송장들 봤어? 우리가 운 좋게 폭격이나 불을 피한다고 해도 저것들이 우리 목숨을 앗아갈 거라고.
우리는 이제 시간이 없어, 시즈!
모건, 베어드는 지금 어디 있지?
베어드는 비디오룸 사장을 찾으러 갔어. 이쪽이랑 반대 방향이야……
너한테 네 백성과 네 패거리 중에 누가 더 중요해?
언젠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할 거야.
어디 가, 카도르?
난 그저 글래스고의 불량배라 전하처럼 심사숙고하지 않아도 되거든.
베어드는 내 동료니까 당연히 내가 책임져야지.
갑자기 궁금해지네. 전하가 나한테 큰소리치며 약속한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저 사람들 앞에 서 있을지 말이야.
……그러길 바라지.
카도르는 주위에서 침묵하는 인파를 헤치고 고개를 돌려 봉쇄 구역 안으로 걸어갔다.
모건, 잡아당기지 마! 비나, 뭐라고 말 좀 해 봐!
……
한나, 얼른 좀 봐봐. 저 사람 매클래런 아니야? 대열 맨 마지막에 있는 사람 중에…… 매클래런이 방금 따라왔어!
카도르의 발걸음도 멈춰 섰다.
사람들 맨 끝에서 바들바들 떠는 남자는 조심스럽게 둘러보더니 곧 다시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매클래런……
저 녀석이야! 베어드가 따라왔어!
저 녀석 손에……
그럼 베어드도 주변에 있어야 하는 거잖아. 둘이 같이 안 왔나?…… 잠깐, 저 버터플라이 나이프는 베어드 건데 왜 매클래런이 들고 있는 거지?
모건은 답을 떠올렸다.
비디오룸 사장 손에 있는 버터플라이 나이프의 핏자국을 보고 깨달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기 전 비나의 눈빛은 그 가장 무서운 추측이 맞는다는 걸 알렸다.
바로 눈물이 차올랐지만 모건은 닦을 손이 없었다.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려는 인드라를 반드시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모건, 대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날 붙잡는 건데?! 나한테 맞고 싶냐!
……
(작은 소리로) 비나, 너도…… 봤지……
(작은 소리로) 베어드는……
힘, 비나는 살아오면서 지금 이 순간처럼 힘을 갈망한 적이 없었다.
보잘것없는 힘, 방대한 힘, 분노의 힘, 슬픔의 힘.
뭐든 상관없었다.
눈앞의 모든 걸 부숴버릴 수만 있다면. 눈앞의 모든 걸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주 조금일 지라도……
되돌아가서…… 아직 제대로 회포를 풀지 못한 친구를 찾을 여유가 있을 만큼 조금의 힘이라도.
조금일 지라도……
왕의 숨결은 너무 무거워서 휘두를 수가 없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전하…… 계속 앞으로 안 갑니까?
전하, 우릴 데리고 떠나실 거죠?
……
……
전하라고 부르지 마. 난 너희의 전하가 아니야.
난 그저…… 아니, 됐어.
인드라, 네 위치를 지켜!
바로 벽을 부술 거야.
비나, 너도 베어드를 버리는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베어드야. 우리 모두 녀석을 한 번 버렸었잖아!
나도 알아.
베어드가 다시는 우리와 헤어지기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우리 모두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럼 우리가 왜 노포트 구로 돌아왔는지 기억해?
고향 땅을 밟는 그 순간부터 우리가 돌아온 의미는 그냥 집에 돌아온 게 아니었을지도 몰라……
모건, 한나를 놔줘. 글래스고에 자신을 가져.
우리 글래스고에 겁쟁이는 없으니까.
어렸을 때 우리가 어떻게 싸웠는지 기억해?
비나……
글래스고를 위해!
글래스고를 위해!
……
나쁜 놈들…… 베어드, 기다려……
글래스고를 위해!!
노포트 사람의 출구를 가로막는 높은 담벼락이 바로 앞에 있다. 평소와 다른 것은 그들을 겨누던 살카즈의 화살과 화포가 이제는 없다는 것이다.
온갖 고통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코앞까지 다가온 자유를 더는 참지 못했고, 필사적으로 두 손을 높이 들어 앞으로 밀었다.
시즈는 다시 왕의 숨결을 들어 올렸지만 그 쇠막대기는 여전히 아무런 빛도 내지 않았다.
시즈는 검을 휘둘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쩌면 수많은 손에 동시에 밀려서 앞쪽의 높은 담벼락이 쓰러진 것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