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대면
사령탑 위, 아미야는 로고스와 아스카론과 함께 뱀파이어 생귀나르와 맨프레드에 맞선다.
4년 전
살카즈에 비해 시간은 늘 너희 개인과 국가에서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가울이라는 거인이 쓰러진 후 빅토리아와 라이타니엔은 미친 듯이 그 유해를 흡수했지. 불과 몇십 년 만에 가울의 시대가 끝나버렸으니.
너는 코르시카 1세의 전함과 대포를 본 적이 없고, 너는 링고네스의 번영과 오만함을 본 적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네 아버지의 영지는 이미 빅토리아 변경 귀족의 관할지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너는 지금 빅토리아 고급 장교의 제복을 입고, 몸에는 빅토리아가 수여한 훈장을 잔뜩 달고 있군.
너는 런디니움의 귀족들이 흔히 쓰는 표준 빅토리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가울 억양도 전혀 없이.
네가 살카즈와 협상하겠다며 내 앞에 나섰을 때, 너는 과연 스스로 '가울인'이라 칭할 자격이나 있느냐?
……섭정왕 전하, 이제 가울이라는 나라에 속하는 도시는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가울 사람이 아닌, 가울의 유민입니다.
혹자는 빅토리아, 컬럼비아, 또는 라이타니엔에 모두 흩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떠돌이 생활을 선택한 게 아니라, 우리는 애초에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곳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가울을 재건하고 싶은 것인가?
……
그렇습니다. 당신과 다른 살카즈들이 카즈델을 재건하고 싶은 것처럼.
200년 전, 가울 제국의 포병단이 카즈델의 성벽을 둘러싼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너는 자신을 살카즈와 함께 논하다니.
당시 카즈델을 향한 전쟁에는 빅토리아도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군사위원회가 런디니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캐번디시 공작의 초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너도 그놈의 최후가 어떤지 알고 있겠군.
10일 전, 스태포드 공작이 런디니움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캐번디시 공작은 스태포드 공작의 음모를 막기 위해 일어났죠.
런디니움 도시방위군도 그 전투에 참여했지만, 안타깝게도 두 공작은 서로를 향한 포격에서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물론 당신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당신의 런디니움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른 공작들이 무척 관심 있어 합니다. 앞으로 이 도시에 무엇을 하든지 간에 당신은 새로운 조력자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게 네가 살카즈와 협력하는 방식인가.
맞습니다. 보시다시피, 가울 유민회는 카즈델 군사위원회가 런디니움에서 진행하는 모든 행동을 전력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앞으로 있을 빅토리아의 혼란 속에서, 원래 가울에 속했던 몇몇 도시를 다시 가울에 되돌려 주셨으면 하는 것뿐입니다.
약속한다고 달라질까? 국가의 흥망은 보유한 도시 수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알고 있습니다, 섭정왕 전하.
하지만…… 저희는 이것보다 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제가 영 가디언 한 명을 알고 있는데, 그는 과거 가울 황제 본인의 제국 근위대 소속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알게 됐을 때 이미 60세가 넘었지만, 제국 근위대는 사황 전쟁 때 이미 자취도 없이 사라진 바람에, 그는 평생 올드 가디언이 될 수 없었죠.
그는 저에게 혈기 왕성했던 황제, 무적의 함대, 행군 길에 있었던 우스갯소리를 들려줬습니다. 수십 년 동안 그는 고집스럽게 가울어로 그 이야기를 계속 들려줬습니다.
그는 지금 런디니움 쳅 자치구의 한 비좁은 요양원에 누워 있습니다. 최근에 그를 만나러 갔을 때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였죠.
그런데도 매일 TV에 나오는 제정 양식의 건물을 보면 흐릿하던 눈빛에 생기가 돌아오고, 경련을 일으킨 두 손으로 손뼉을 치곤 합니다.
아마도 길어 봐야 5년을 못 넘길 겁니다.
가울을 직접 경험했던 마지막 세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섭정왕 전하,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살카즈에 비해 우리의 수명은 너무나 짧습니다. 우리의 기억도 …… 피를 통해 전승되지 않습니다.
그 시대를 겪은 마지막 이가 죽으면 가울에 대한 우리 기억은 제국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말 겁니다. 그때가 되면, 가울이 진정으로 소멸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꺼져가는 잿불이라도 잡는 겁니다.
발리스타 발사!
봉쇄층을 지켜라, 놈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방위군 병사들의 투지가 매우 완강하네.
놈들의 지휘관이 위에 있으니까.
병사들이…… 확실히 그 지휘관을 존경하나 봐.
지휘관님, 살카즈가 왔습니다!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들이 지금 그들과 교전 중입니다!
로도스 아일랜드를 지원해. 정면으로 최대한 적의 주의를 끌어서 박사에게 시간을 벌어줘야 해.
하이버리 구의 용병들은 대게 다 네 손에 죽은 것 같군.
전쟁이 코앞이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을 테지.
……
아스카론, 너는 카즈델에서 태어났고 카즈델에서 자랐어. 장군님은 널 시체 더미에서 안아 왔고, 전하는 네게 무기를 쥐여주어 자신과 고향을 지키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런데, 살카즈가 가장 단결해야 할 시기에 너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살카즈들과 함께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우리 정보를 빅토리아에 넘길 셈이냐? 과거…… 카즈델을 짓밟았던 이종족에게?
너는 너의 약속을 배신했고, 카즈델을 배신했다.
……카즈델은 여기서 수천 킬로미터 밖에 있다.
내전 당시 네가 바벨의 자객이 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너를 막을 수 없었다. 막을 이유도 없었고.
그땐 네가 테레시아 전하에게, 살카즈의 유일한 군주에게 충성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스카론, 지금 너는 무엇에 충성하고 있지…… 과거의 환영인가?
분명 내전은 이미 끝났고, 테레시아 전하도 우리 곁에 돌아오셨다……
……4년 전, 너희는 전하를 죽였다.
그리고 지금, 너희는 그런 불명예스러운 방식으로 전하의 죽음을 더럽히고 있다.
진짜 배신자, 과연 누굴까?
……윽!
아스카론의 공격이 맨프레드의 아츠를 찢어버렸다.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달랐다.
맨프레드는 장군에게서 검술, 군사 이론, 정치 수완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배웠다. 하지만, 아스카론은 손에 든 무기처럼 순수했다.
전장에서 아스카론은 그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눈에는 늘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목표뿐이었다.
레토……!
……
이 피는……
……!
끈적한 선홍빛이 바닥에서 빠르게 스며 나오더니, 이내 벽보다도 더 튼튼한 장벽으로 변해 레토와 아스카론을 갈라놓았다.
박사, 드론이 또 다른 살카즈 병사가 접근하는 걸 탐지했어.
아니다. 저 꿈틀대는 빨간 것은……
- 뱀파이어다.
- 자경단과 일반 오퍼레이터들은 멀리 떨어져.
- 아미야와 로고스한테 알려.
알았어, 박사.
네가 예상했던 거랑 비슷해. 저 녀석이 바로 사령탑 위로 올라갔어!
뒤틀린 집착 덕분에 녀석의 행동은 읽기 쉬운데…… 내가 저 녀석의 영향을 받는 건 아니겠지?
- 드론의 진척은?
- 우리도 서둘러야 해.
굿 뉴스야, 이 사령탑이 방벽 쪽이랑 구조가 확실히 매우 비슷해. 이미 통제 구역으로 향하는 최적의 경로를 찾았어.
방위군의 현대화 통신 수단이 살카즈가 사용하는 통신 주술보다 이용하기 더 쉬워. 원격 신호가 차단되지 않게 내가 드론의 식별 코드를 위장해놨거든.
하지만…… 드론 자체가 너무 취약해서, 공격이라도 받으면 우리의 노력이 모두 수포가 될 거야.
아미야 일행이 위층에서 위험한 놈들을 막아줬으면 좋겠는데……
……
나약하고 어리석은 리베리여.
살카즈 앞에서 자신의 목숨이 실오라기보다 더 취약하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저는 지휘관이고……
여긴 제 사령탑입니다.
저의 병사들도…… 아직 살아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병사들을 먼저 정리할 걸 그랬나 봐요.
음? 이 아츠, 이 냄새는……
아하…… 그런 거였군요. 어리석은 대체자가 왔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마왕'.
저는 당신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요, 뱀파이어.
수많은 자경단 전사들이 당신의 손에 희생됐어요. 저는 그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숨은 결코 당신의 경멸로 인해 본연의 무게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마왕'?
당신의 그…… 칠흑 같은 칼과 도끼로 저를 처단할 겁니까?
……
캐스터 소대, 스나이퍼 소대, 저랑 함께 이 피의 방어선을 찢어주세요! 시간이 없으니 목표만을 노리세요!
검은 선이 화살과 함께 짙은 핏빛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당신에게는 너무 실망했습니다.
카우투스, 당신은 전사로서의 자세만 가졌을 뿐, 통치를 위한 살육의 필요성을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군요. 당신은 테레시아보다도 연약합니다.
황당한 테레시아가…… 어리석게도 살카즈를 데리고 빅토리아를 비롯한 침략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려고 하다니요.
게다가 그녀의 가장 어리석은 결정은 당신을 후계자로 선택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계속 공격하세요!
쓸데없는 발악입니다……
비켜.
어?
피로 이루어진 파도가 아미야를 덮치려는 순간, 그것은 갑자기 가지런히도 갈라졌다.
——
그렇군요.
선봉 역할을 하는 자객 외에도 신하 한 명을 더 데려왔군요.
……우리가 아미야의 부하이지, 신하는 아니다.
밴시.
겁먹은 겁니까?
당신이…… 로도스 아일랜드란 이름의 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다고, 이 모조품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반역자에 대한 카즈델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너의 말은 항상 궤변으로 가득하구나, 뱀파이어.
런디니움에 오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로도스 아일랜드 정예 오퍼레이터의 제복을 잠시 벗었다.
나는 밴시의 주인이다.
내 말이 곧 죽음의 왕궁이다.
젊은 밴시가 손을 들었다.
짙은 색의 로브에서 주문이 가볍게 뛰어올랐다. 마치 아침 햇살을 맞으며 굴러떨어지는 이슬처럼.
내가 따르는 건 마왕의 왕관 따위가 아니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테레시아 전하의 이상이다. 너희들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녀의 죽음을 모독한다 할지라도 그녀가 우리 눈앞에서 밝힌 희망의 횃불은 끄지 못할 것이다.
여명의 찬란한 빛을 본 자가 어찌 영원한 밤 속으로 돌아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