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피어오르는 증기
1년 전, 살카즈가 군수 공장을 점령하고 깃발 교체식이 있기 전에, 공장을 떠나 자경단에 가입하기로 결심한 피스트는 할머니 캐서린과 충돌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캐서린
1년 전
1097년
4:56 P.M. 날씨/흐림
런디니움 하이버리 구, 11번 군수 공장
서둘러. 마지막 중합제는 도착했어?
뭐…… 아직이라고?!
이러면 큰일 나는데……
이 재료의 수송 담당이 누구야?
보스, 그…… 그게……
왜 우물거려?
……피스트야.
그 녀석……
피스트가 아침 일찍 나갔어. 지금쯤이면 돌아왔어야 하는데.
같이 간 사람 있나?
토미랑 패토, 그리고 데이.
걔들은 작업장도 다를 텐데, 어떻게 같은 조에 배치됐지?
사이가 좋아서 맨날 붙어 다니잖아. 피스트가 리더야.
……
무슨 문제라도 있나 보네.
사소한 일이다.
사소한 일인가.
캐서린, 오늘 무슨 날인지 알고는 있지?
잊을 리가.
열흘 전부터 계속 사인 연습을 했다. 내 사인이 너무 촌스러워 장군을 불쾌하게 할까 봐.
그럼 많이 연습해 둬. 장군은 모레 거행되는 인수인계식을 매우 중시하고 있지. 방위군의 지휘관도 온다던데.
……
담배?
……훗, 한 대 줘봐.
지금까지 너희 공장 직원들은 그대로 다 있어. 그게 왜 그런지 알겠지?
우린 성실하게 일하고 있으니까.
성실. 흥, 당연하지.
확실히 너희가 일을 잘해. 그 점에선 우리도 마찬가지야. 일하고, 돈 벌고, 살아남고.
하지만 고용주는 일을 잘하는 용병일수록 더 신뢰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둬.
물론.
너희에게 잡혀가기 전까지, 이 공업단지를 관리하는 험프리 경조차도 우리를 믿은 적이 없지.
날 성가시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캐서린.
용병의 말투는 매우 평온했다. 평소에 캐서린을 찾아와 담배 있냐고 물었을 때처럼 담담했다.
이게 그가 하는 일이다. 말 안 듣는 런디니움 근로자 몇 명을 죽이는 게 그에게 있어선 캐서린이 매일 나사를 조이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캐서린은 담뱃재를 주머니에 털었다. 담뱃재가 기계에 들어가지 않게.
몇 번이나 말했던 것 같은데.
효율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 공장에는 한 명도 빠져서는 안 돼.
솔직히 너는 정말 대단해, 캐서린. 웬만한 용병도 너만큼 배짱은 없을걸.
뭐, 너에겐 확실히 그럴 자본이 있긴 하지. 다만, 선은 넘지 마.
이런 군수 공장은 런디니움에 수백 개도 더 있어. 설령 너희 공장이 텅텅 빈다고 하더라도 섭정왕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거야.
달라질 건 없어. 모레 인수인계식에서 우린 약속한 물건을 납품할 거야. 모든 직원들도 참석할 거고.
너희들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그런 걸로 알고 있을게.
당연하지. 왜, 불이 없어? 담배를 계속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네……
역시 담배는 필요 없을 것 같네. 런디니움 담배는 기름 냄새가 나서 아직 적응이 안 되거든.
보스, 어떡하지?
(담배를 비벼 끈다)
……하역장으로 가자.
패토! 끝났어?
……나사 하나 남았어.
잘해. 이제 살카즈들이 중합제를 더 받으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더 기다려야 할 거다.
살카즈가 이렇게 중합제를 계속 들여오는데, 대체 뭘 만들려고 하는 걸까?
나도 본 적이 없어. 할머니가 조립 라인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해서. 할머니가 가장 신뢰하는 베테랑 직원만이 저 높은 선반에 올라갈 수 있거든.
그렇다는 건 이 물건이 살카즈에게 아주 중요하다는 뜻이야.
역시 무기겠지? 우리 작업장에서는 요 며칠 계속 녀석들의 자동 석궁을 만들었어.
무기일 수밖에 없지. 밖에 아직 공작의 군대가 저렇게나 많은데……
정말 살카즈 뜻대로 되어 버리면 큰일인데……
우리가 막을 수밖에 없어, 패토. 살카즈를 도와 우리 편을 상대할 순 없잖아.
이 중합제들을 파괴하는 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처벌받으면 어쩌려고?
벌이야 내가 받으면 되지. 나는 잡혀가는 게 두렵지 않아.
멈춰.
……할머니?
쟤들 잡아.
패토…… 서둘러!
엇……?
……
캐서린은 손에 닿는 아무 줄칼 하나를 잡더니 바로 던져버렸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직원 손에 있던 스패너가 땅에 떨어졌다.
아……
너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알아?
살카즈를 멈춰야 해!
바보 같은 소리!
벌써 다 계획했어. 공장에는 피해 안 줘. 나 혼자 한 짓이라고 살카즈에게 말하면 돼. 그리고……
……그리고 살카즈 손에 죽어서, 우리가 너를 영웅으로 받들면 되겠구나, 그렇지?
아니, 나 도망칠 거야. 오랫동안 계획했어……
네가 개조한 그 크롤러로? 수송 라인에 숨어서 하이버리 구를 탈출하려고?
그걸 어떻게……
내가 이 공업단지에서만 50년 넘게 살았어. 네가 생각하는 그 바보 같은 짓이 나를 속일 수 있을 것 같아?
할머니, 내 말을 들어봐.
나 수디언 구에 저항 조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들이 살카즈 손에서 많은 사람을 구했고, 심지어 섹터 여러 개도 탈환했대.
그들은 자신을 런디니움 자경단이라고 부르는데…… 나 그들을 찾아갈 거야!
……찾아간다고?
그래서, 찾은 다음에는?
어…… 뭐가?
그들에게 기술자가 부족할까? 네가 그들을 대신해서 자동화 생산 라인을 조립하게? 아니면, 차세대 크롤러라도 설계할 거야?
그게……
너는 무기도 만들 줄 모르는데. 설마 그 자경단이라는 자들에게 스패너를 들고 살카즈의 머리를 후려갈기겠다고 말할 거야?
나 지금 배우고 있어!
할머니가 얘기해 줬잖아. 젊었을 때 어떻게 증기 갑옷을 만드는 장인으로 뽑혔는지, 어떻게 밤마다 동력 파이프를 갈고 닦았는지.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우리는 런디니움의 근로자야.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가르쳐줬고, 우리 공장이 어떻게 지금의 빅토리아를 일궈냈는지도 알려줬잖아……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됐어? 인수인계식에서 우리 깃발을 내리고, 살카즈 군기로 바꾼다잖아.
그러고는 우리가 자랑하는 생산 라인에서 살카즈 무기를 만들겠지. 그 무기로 결국 우리 빅토리아를 겨냥할 거고!
할머니는 이런 나날을 견딜 수 있어?
……이런 나날?
이런 나날이 우리의 삶이고, 나와 네 부모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날이야.
네 눈앞의 이 공장을 봐봐.
직함이 자기 성씨보다 더 긴 귀족들, 무역으로 떼부자가 된 장사꾼들, 혹은 살카즈들…… 이곳의 주인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거쳐 갔는데.
하지만, 생산 라인은 아직 여기 있어. 기계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고, 우리 두 손으로 조인 리벳 하나하나가 아직 제자리에 그대로 있어.
런디니움 중심에 있는 저 궁전을 차지한 사람이 누구든 간에, 우리가 일궈낸 이 도시는 내일도, 모레도 그대로 있을 거야.
그런 게 미래인 거면 나는 필요 없어!
자유가 없는 삶이 어딜 봐서 삶이야? 기껏해야 살아있는 것뿐이지.
만약 이 공장이…… 런디니움이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런디니움을 위해 하는 일이 또 무슨 의미가 있냐고?
……
그거 알아? 피스트……
25년 전, 불빛이 밝게 비치던 밤, 네 아빠도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
……
보스, 살카즈가 곧 돌아와……
피스트, 어딜 가든 그건 네 자유야.
하지만 이제부터, 너는 다시는 이 공장에 들어올 수 없다.
자기 두 손으로 일을 끝내지 않는 직원은 실격이다.
……
피스트를 따라가고 싶은 놈들도 말리지 않겠다.
대신 이거 하나만 기억해…… 이 문을 나서면, 너희는 더 이상 우리 일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