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목회를 하자
멜란사와 스튜어드에게 애완동물을 잠깐 돌봐달라 부탁을 하던 바닐라는, 어느 감염자 소녀와 블레이즈를 마추치게 된다. 이들은 임무가 끝난 뒤 치료를 받는 아이들을 함께 보러 가고, 친목회를 준비하기로 한다.
04:22 p.m. 날씨/맑음
로도스 아일랜드 5호 선실, 훈련장
하앗! 하아앗!
내려찍기! 찌르기! 휘두르기!
후…… 하……
오늘의 체력 훈련…… 후우…… 드디어 끝났네요.
- 너무 무리하지 마. 너는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해.
- ……
- 자, 스포츠 드링크.
아뇨, 후…… 괜찮습니다! 문제없어요, 박사님.
제 상태는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이 정도 훈련이라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리스캄 선배와 도베르만 교관님이 훈련 계획표를 한번 봐주셨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후하…… 후하……
어라? 왜 그러세요 박사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해 보이는데……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확실히 힘들긴 하지만, 아직 버틸 수 있어요!
아, 후…… 하…… 고맙습니다……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하지만 이 드링크, 윽, 역시 맛이 없네요.
운동 후 이걸 마시면 몸에 좋다고 도베르만 교관님이 몇 번이나 강조하셨고, 프란카 선배도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이건 몇 번을 마셔도 적응이 안 되네요.
여기서 훈련하는 오퍼레이터들은 전부 노력하고 있으니, 모두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노력해야겠죠.
아, 박사님. 저 며칠 뒤엔 블랙스틸 선배들이랑 같이 임무 나가느라 훈련장엔 못 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지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거 같은데.
역시 박사님이시네요…… 티 많이 났나요?
선배들과 함께 임무에 나가게 된 건 정말 기쁜데……
제가…… 그러니까……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는데요. 그게…… 평소에 제가 돌봐주기는 하지만, 임무를 나가게 되면 동료들한테 부탁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보통은 블랙스틸 선배들한테 부탁하곤 했는데……
리스캄 선배랑 프란카 선배가 도와주기는 하지만, 두 분은 보통 임무도 같이 나가고, 쉴 때도 같이 쉬거든요.
그러니까 두 분 중에 한 분이 안 보인다면, 두 분 모두 없다는 뜻이 되죠.
프란카 선배는 평소에 농담을 많이 하긴 하지만, 사실 굉장히 믿음직한 분이에요. 동글이, 뾰쪽이, 까망이, 튼튼이도, 모두 프란카 선배를 좋아하고요!
두 선배들이 다 안 계실 땐 간간히 제시카가 돌봐주기도 해요. 근데 제시카는… 하아… 얼마 전에 까망이 때문에 놀라서 울뻔했거든요.
- 아니 대체……
- 어떤 '동물'을 키우고 있길래 그러는 거야?
아.
우리 애들, 아직 박사님께 보여드린 적 없었나요?
동글이랑 뾰쪽이랑 까망이는 원석충이에요. 튼튼이는 미니 사르곤 사막 메탈 크랩이고요. 다들 엄~청 귀여워요!
- ......
어라? 박사님, 왜 그러세요?
박사님 그 눈빛…… 원석이 오리지늄이란 뜻이라고 설마…… 아, 안 됩니다! 저, 절대 먹으면 안 돼요! 동글이도 뾰쪽이도 까망이도 튼튼이도 먹으면 안 됩니다! 박사님이 켈시 선생님 몰래 이상한 간식을 드시고 있다는 거, 저 다 알고 있다고요!
(원래는 박사님한테 부탁하려고 했었는데, 저 표정은…… 아니야, 역시 관두는 게 좋겠어.)
골치 아프네요. 이번엔 다 같이 임무를 나가게 됐는데, 우리 애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음…… 다른 오퍼레이터들도 각자 할 일이 있을 테니, 무턱대고 부탁하는 건 좀 그렇겠죠?
- 해보지 그래?
- 예를 들면, 지나가는 오퍼레이터에게 부탁해본다든지.
에?! 그건 너무 막무가내 아닌가요?
박사님, 진심이세요?!
대체 누가 올지…… 으으, 제발 믿을만한 사람이어야 할 텐데……
- 누군가 왔다.
!
발걸음 소리가…… 가벼워! 이렇게 안정적인 리듬의 발걸음이라니, 분명히 우수한 전사일 거예요!
어라? 이 향기는?
이 향기는 아마도……
멜란사 씨!
?!
아, 네.
박사님, 바닐라 씨.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으음…… 저에게 용건이 있으신가요?
죄송해요. 모처럼 이렇게 부탁을 해주셨는데……
괜찮아요! 큰 도움이 되었는걸요.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스튜어드 씨에게 부탁한 것뿐인걸요.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앗.
(얼굴이 빨개졌어!)
하하, 멜란사는 전투 중이 아닐 땐 부끄러움을 많이 타거든.
둘 다 걱정 마. 바닐라의 애완동물을 돌보는 일은 나에게 맡겨줘.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래도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고마워요, 스튜어드 씨.
둘 다 너무 그렇게 예의 갖출 필요 없어. 특히 바닐라 씨, 그런 말은 하지 않아도 돼.
어, 어떻게 그래요! 두 분 다 저보다 훨씬 일찍 로도스 아일랜드에 입사하신 선배님이신데!
선배라 할 것까진 없는 거 같은데……
아 참, 그러고 보니 이번 임무, 멜란사 씨도 같이 가시는 건가요?
선배들에게 들은 게 없어서……
아, 네.
갑자기 결정된 사항이라, 저도 얼마 전에 들었어요.
사부님께서… 아, 그러니까 프란카 씨가 제 검술을 봐주기로 하셨는데, 마침 기회가 되어서 저도 팀에 합류하게 되었죠.
엥? 프란카 선배가요? 선배가 멜란사 씨에게 검술을 가르쳐준다고요?
네.
선배, 정말 제대로 가르쳐주고 있나요……?
물론 진지할 때는 진지하겠지만, 설마 늘 진중한 멜란사 씨에게 이상한 걸 가르치는 건……
아니 아니 아니 역시 생각할수록 걱정 되는데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프란카 씨가 농담을 좋아한다곤 하지만, 그래도 검술에 대해서 만큼은 진지하니까요!
프란카 씨 덕분에 저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요! 그리고 사부님께선 이상한 걸 가르쳐주신 적도 없습니다!
아……
……죄송해요. 잠깐 흥분했네요.
멜란사 씨는 프란카 선배랑 사이가 좋은 모양이네요.
프란카 선배가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아서 저도 안심했어요.
프란카 선배의 검술은 정말 대단하죠. 블랙스틸에 있었을 땐, 교류회에서 선배가 검술로 지는 걸 본 적이 없는걸요!
네, 사부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전 아직도 배울 게 많답니다.
아, 저… 죄송해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오늘은 정기 검사가 있어서 안셀 씨와 약속을 잡아두었거든요.
정기 검사요?
네. 광석병 검사요……
……그렇군요.
그래? 왜 그렇게 자주 해? 이틀 전에도 검사하지 않았었나?
게다가 저번에 검사받고, 의료부에서 약 새로 줬잖아?
네, 새로운 약으로 바꿨기 때문에 재검사를 하는 거예요.
걱정 마세요. 와파린 선생님께서도 증세가 제어 가능 상태라고 하셨으니.
……그럼 다행이지만.
그럼 오늘은 먼저 가 봐. 남은 일은 나한테 맡기고.
감사합니다! 멜란사 씨, 이따 검사 끝나고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차라도 한 잔 어떠세요?
에? 차… 말인가요? …네, 네! 좋아요!
그럼, 이따 뵈어요!
스튜어드 씨, 그럼 잘 부탁합니다.
……
고마워, 바닐라 씨.
네? 뭐가요?
아냐. 신경 쓰지 마.
음?
왠지…… 멜란사 씨, 변한 것 같네요. 전보다 더 잘 웃는 일이 많아진 것 같아요.
바닐라 씨도 그렇게 생각해? A4팀에 막 들어왔을 때랑 비교하면, 확실히 자신감이 많이 붙은 거 같긴 해.
자신감… 이요? 아 그러네요. 자신감인 것 같아요.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들은 제가 봤던 감염자들과는 뭔가 다른 것 같았거든요. 아마도 다들 열심히 살아가면서, 자신을 소중히 여겨서겠죠?
어떨 땐, 다들 감염자라는 사실을 까먹기까지 해요.
정말 신기하죠.
하하, 신기한가? 난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
뭐 이래저래 일이 많긴 했지만, 로도스 아일랜드는 제약회사거든. 의약품 연구와 감염자 치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여기 모인 감염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치료할 방법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잖아. 안 그래?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그러니까 우리는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서, 더욱 다른 조직들과 협력해야 한다는 거지…… 블랙스틸과의 협력 관계도 그중 하나고.
바닐라 같은 전문가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우리 오퍼레이터들이 받는 부담도 크게 줄어들 테니 감사해야 하는 건 이쪽이라고.
전문가라뇨… 전문가들은 저희 선배들이죠. 전 아직 인턴일 뿐인걸요!
리스캄 선배나 프란카 선배랑은 다르게, 저는 테스트를 통과해서 로도스 아일랜드의 교류 명단에 들어왔거든요.
테스트?
네, 테스트요. 실기랑 필기 둘 다 봤어요.
필기 붙으려고 도서실에서 1주일간 밤을 새웠었죠!
하하하…… 고생했네.
조금 의외인걸. 이렇게 들으니까, 왠지 블랙스틸 쪽이 더 협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은데?
어떻게 설명해 드려야 할지…… 사실, 광석병 때문에 블랙스틸 안에서도 많은 용병이 감염되었거든요.
용병들은 광석병을 그렇게까지 무서워하진 않아요. 어차피 평소에 하는 일도 굉장히 위험하다 보니… 저희끼리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는데…
뭐가 되었든 전부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그렇지?
네.
그래서 저희끼린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고용주 쪽에서 감염자라고 꺼리기 시작했다더라고요. 의뢰가 적어지면 돈이 안 벌릴 테니, 상부에서도 분명 골치가 아팠겠죠.
로도스 아일랜드와의 협력도 아마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거예요. 프란카 선배한테 들은 거라서 저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렇게 된 거였구나……
그래도 전 운 좋게 뽑혀서, 지금은 새로운 것도 많이 보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면서 매일매일 열심히 살고 있어요!
게다가, 식당에서 매주 한 번 무료로 나오는 디저트가 또 얼마나 맛있던지! 여기 오고 나서 살이 꽤 많이 찐 거 같아요……
살이 찌긴 뭘. 영양 밸런스만 유지한다면 많이 먹어서 나쁠 건 없지. 폭식만 하지 마. 건강이 제일 중요하니까.
아뇨 아뇨 아뇨 스튜어드 씨는 모른다니까요?!
남들한테 어떻게 보이는지는 상관없어요, 이건 제 기분 문제라고요!
그, 그런 거야?
그래 말 한번 잘했다. 잘 알고 있네? 바닐라.
아, 블레이즈 씨! ……어?
블레이즈 씨, 그 아이는……?
이 아이? 내 작은 친구에게 인사해, 이름은 도라라고 해.
그나저나 왜 또 블레이즈 씨라 부르는 거야? 존댓말 안 써도 된댔잖아, 은근히 고집 있네?
……언니, 오빠,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안녕~ 도라 아가씨, 오늘도 약 잘 먹었지?
(끄덕)
오늘은 약이 너무 쓰다면서 나한테 30분이나 책 읽어달라 그랬다니까?
요 꼬맹이 녀석~ 내가 모를 줄 알았지? 지난번에 너가 쓰다고 해서 켈시 선생님이 약 맛 바꿔줬었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
그, 그래도 맛없었어! 블레이즈 언니도 맛없다고 했잖아!
내가 마신 건 다른 거거든? 핑계 대고 그러면 혼난다 진짜?
으으으……
아, 가봐야겠다……
엥?
어? 수업 시간이야?
응. 메딕 언니가 수공예 가르쳐 준댔어. 오늘은 종이꽃 접기 배울 거야!
그럼 잘 배워서 내 것도 하나 접어줄래? 내 사탕이랑 바꾸는 거야, 어때?
에헤헤~ 한번 생각해 볼게!
언니 오빠, 바이 바이!
천천히, 천천히 다녀! 그러다 또 넘어질라!
아…… 넘어졌네.
저 꼬맹이가 진짜……
하하, 기운 넘치는 아이네요.
그치? 겉보기만 얌전하지, 사실 왈가닥도 저런 왈가닥이 없어. 말 좀 듣게 하려면 와파린 이름을 대서 겁 좀 줘야 그나마…… 에휴 됐다, 말을 말자.
그런데 둘이 같이 있으니까 그림이 좀 신선한데? 바닐라, 넌 보통 블랙스틸 사람들이랑 같이 다니지 않았어? 설마, 아미야가 드디어 협력 파트너들이랑 친목회라도 하려는 건가?
에? 어…… 아뇨……
블레이즈 씨, 그런 농담 좀 하지 말라니까!
농담하는 걸로 들렸나? 난 진심으로 열고 싶다고, 친목회. 다 같이 힐링도 하고 친목도 다지고 좋잖아.
뭐, 기회가 있겠지. 게다가, 지금도 몰래몰래 하고 있잖아? 같이 술 마시고 정신 못 차리는 오퍼레이터가 한둘이 아니던데.
그건 비공식이니까 다르지!
저번에 리스캄 선배가 말한, 악몽 같은 술자리가 바로 이거였군요……
맞다. 방금 그 아이도 로도스 아일랜드 소속인가요?
도라? 그 아인 여기 치료받으러 온 거니까, 소속이라고 할 수 있겠지?
소속이라 할 순 있겠지만, 우리랑은 조금 다른 케이스야. 전투원의 파일 자료는 특별하게 처리하고 있으니까, 후방 지원부의 파일도 아마 따로 관리하고…… 있겠지?
왠지 말투에 확신이 없어 보이는데……
그쪽 일은 잘 모르는걸.
왜, 도라가 신경 쓰여?
네, 조금은요. 제가 막 왔을 때도 봤던 것 같아서요……
어떻게?
박사님께 제 파일 자료를 드리러 갔을 때, 굉장히 귀여운 여자아이 감염자가 부모님과 함께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려 보이긴 했지만 나름 철이 들었는지, 얌전하게 낡은 인형을 꼭 안고만 있더라고요.
별로 특별할 건 없는 일이지만, 왠지 계속 신경이 쓰이다 보니…
아마 도라가 맞을 거야. 그 인형, 완전히 너덜너덜해져서 새로 사준다고 했었는데, 곧 죽어도 싫다 하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이비크에게 고쳐달라고 했었지.
역시……
그 아이…… 빅토리아 사람이지?
그럴 걸? 차트 보니까, 길거리에서 싸움에 휘말리는 바람에 오리지늄 가루를 과도하게 흡입했다 하더라고.
히비스커스가 도라한테 주사 놔줄 때 살짝 봤었지.
병실에 있는 그 아이들, 병에 걸린 원인은 제각각이지만… 처지는 다들 비슷해.
카디건이 그 아이들이랑 자주 같이 놀아주고, 안셀도 저녁 때 약 나눠주면서 자주 이야기를 들려줘서 그런지, 애들은 다들 밝아.
그래도 도라는 밝아도 너무 밝아서 탈이라고. 어른이 되면 우리 팀에 들어오겠다고 난리라니까?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블레이즈 씨 팀에 들어가겠다 그러는 건 확실히 걱정할만한 일이겠는데……
아니 왜 그 부분을 걱정하는 건데?!
사실 이런 일은 널리고 널렸어. 의료부의 치료 구역에서도 도라 같은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
확실히 흔하긴 있는 일이긴 하지… 이 망할 세상.
……
그 아이…… 심각한가요?
가족이 부유해 보이지는 않던데…… 진료비를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까놓고 얘기해서, 윗사람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돈도 못 내고 곧 죽을 것 같은 환자를 받지는 않겠지.
너무 대놓고 얘기하는 건…… 휴……
하지만 블레이즈 씨 말이 맞아. 광석병의 완치 방법이 아직 나오지 않은 이상, 치료를 한다고 해도 자원은 한정적이야.
……그러니, 감염자의 처지는 점점 더 안 좋아질 수밖에.
하지만 로도스 아일랜드는 이런 사람들을 거절한 적이 없었잖아요?!
로도스 아일랜드의 규모가 큰 편이긴 하지만, 다른 대형 단체들만큼 큰 것도 아니고요.
로도스 아일랜드에 온 이후로, 전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수많은 감염자가 여기서 치료를 받았죠.
그 환자들 중에 전장에 나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이상할 건 없지 않을까요?
그러게, A4 예비작전팀이 그렇게 만들어졌거든.
스튜어드 씨도요?
물론이지.
……
블랙스틸의 협력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까지, 전 이런 단체가 있다는 얘길 한 번도 못 들어봤어요. 감염자를 구하고…… 심지어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 그런 단체 말이에요.
그건 아니야.
네?
아닌가요?
'금전적인'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뿐이지, 보상을 아예 바라지 않는 건 아니야.
일방적인 지출이 너무 많아. 아무리 아미야가 사람이 좋다고 해도, 계속 퍼주기만 했다간 오래 못 갈 거야.
우리는 절대 무료로 치료해 주는 게 아니라고.
봐! 여기 좋은 예시가 있잖아?
아얏, 블레이즈 씨! 그렇게 치면 어깨 빠진다니까?! 진짜로!
치료비는 로도스 아일랜드를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아. 굳이 전투원이 될 필요는 없어. 전투원들은 가장 인원이 적은 편이거든.
자료를 처리하는 지원 업무나 로도스 아일랜드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한 엔지니어들, 각 지점과 연락하는 파견 인력들, 그리고 자재 조달을 하는 구매부나 청소 담당들……
하다못해 식당에서 설거지를 해도 상관없어. 로도스 아일랜드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오케이라고.
다시 들어도 정말 이상론적인 생각이라니까.
왜? 이런 게 싫어?
아니, 전혀.
(휘휘휘휘~♪)
그… 그래도! 도라 같은 어린아이가 로도스 아일랜드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아까 들었잖아? 애들은 좀 이따 종이꽃 접기 배우러 간다니까?
네?
그 종이꽃으로 친목회 파티장을 꾸밀 거야. 함선에 돌아오는 오퍼레이터 모두한테 줄 거거든.
친목회는 언제 결정한 거야?
방금. 내가 결정했어.
……
뭐 아무렴 어때? 노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게 중요한 거지. 내가 하는 일과 이 아이들이 하는 일은 겉보기엔 달라 보일 수 있어도, 로도스 아일랜드에겐 다 중요한 일이야.
솔직히, 너희 중에 로도스 아일랜드더러 악덕 기업이라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거 나 다 알고 있거든?
그건 노, 농담이었어요!
괜찮아. 나도 가끔 박사 놀려먹을 때 그런 말 하는데 뭐.
블레이즈 씨! 농담은 그만두세요……!
음…… 내 생각은 블레이즈 씨랑은 조금 달라.
우리 중 몇몇은 치료를 받기 위해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일을 하거든. 그리고 몇몇은 자기가 하려는 일이 로도스 아일랜드랑 뜻이 맞아서 하는 경우도 있고.
물론, 아미야 씨의 이념을 믿고 따르면서,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휘휘~♪)
모두가 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어. 나아가는 방향이 같아야만 함께할 수 있는 거니까.
조금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괜찮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난 지금 이대로도 좋아. 모두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이 느낌이 정말 좋거든.
바닐라 씨도 그렇잖아, 요즘 들어 더 많이 웃는 게 눈에 보이는걸.
에? 어… 그런가요?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게 많긴 하지만……
예를 들어 갑자기 자동으로 열리는 문이라던가, 길을 걷는데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메딕 로봇이라던가…… 저 진짜 놀랐거든요!
하하하. 바닐라 씨는 그런 거에 진짜 약한가 보네.
그러고 보니 아드나키엘이 그러던데. 엑시아 씨한테 만들어준 고무줄 총도 바닐라 씨가 부러뜨렸다면서?
그거 아드나키엘 씨가 만든 거였나요?!
죄, 죄송해요. 고무줄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저도 모르게 그만……
정말 죄송해요!!
괜찮아. 아드나키엘도 화는 안 났어, 말수가 좀 적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 부분은 내가 보장하지.
그래도… 흠… 만약에 그 녀석이 어디서 이상한 기계를 갖고 와서 귀찮게 굴면, 그땐 나나 멜란사한테 얘기해.
그러고 보니까 말이야, 악덕 기업이라는 말, 왠지 맞는 것 같지 않아?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또……
우리는 이 아이들한테, 뭐라 그러지…… 사전 투자를 하는 거잖아?
사전…… 투자요?
그래. 그것도 꽤 이득 보는 투자 아니야? 로도스 아일랜드는 아이들한테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어. 이 아이들한텐 우리보다 더 나은 점이 있을지도 몰라. 적어도 나 같은 경우엔, 숫자나 부호 같은 것만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하거든.
이 아이들은 커서 분명 더 대단해질 거야. 아마 나보다도 훨씬 더. 그러면 분명 내가 하지 못했던 많은 일을 해내겠지.
그렇게 보면, 우리가 이득 아니야?
대체 어떤 이득을 본다는 거야? 꼭 그러란 법도……
아 쫌! 쉿~! 꿈 정돈 꿔도 되잖아, 너무 태클 걸지 말라고.
아, 아미야네.
분명 또 임무 가란 연락이겠지. 째고 싶다…… 이번 임무는 진짜 쨀 거야!
그럼 먼저 가볼게~ 바닐라, 스튜어드, 친목회 날짜 정해지면 그때 한잔하자고!
말씀은 저렇게 하셨지만, 그래도 기운 넘쳐보이네요……
정말 친목회를 여는 걸까요? 저, 저는 술 잘 못 마시는데 어떡하죠……
에이… 너무 신경 쓰지 마. 블레이즈 씨는 항상 저런 식이니까, 억지로 먹이진 않을 거야.
그래요? 그건 그것대로 조금 실망인데……
??
아, 여기가 제 방이에요.
들어오세요.
그럼 실례할게.
와아…… 여기가 바닐라의 방이구나.
조금 어질러져 있지만, 이해해주세요.
아, 동글이랑 친구들은 이쪽이에요.
동글이? 정말 귀여운……
……이름이네.
……
바닐라. 혹시 아까 말했던 동물들 말이야… 설마 여기 있는, 이 아이들 얘기였어?
네.
제 고향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생물들이거든요. 어때요? 귀엽죠!
그, 그렇네……
(혹시 귀엽다는 단어의 기준이 나랑 다른 건가……)
아. 스튜어드 씨, 걱정 마세요. 까망이는 크지만 제일 온순한 아이거든요. 절대 위험하지 않아요!
휴…… 전장에서 매번 비슷한 아이들을 만나면 머뭇거린다고 도베르만 교관님한테 항상 혼나요.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걸요!
그, 그럴 수도 있지…… 바닐라 씨는 정말 동물을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어… 이, 이 동물들…… 음… 어… 다들 개성이 넘치네.
헤헤, 그렇죠!
동글이랑 다른 애들도 다 착하고 얌전해요. 매일 밥이랑 물만 주면 되는걸요! 돌보기도 정말 쉬워요!
아, 다만 까망이 껍데기 위에 있는 이 뿔은 누르시면 안 돼요. 누르게 되면……
……누르게 되면?
폭발해요.
포, 폭발……
……
바닐라, 방에서 이런 동물 키워도 정말 괜찮은 거야……?
네? 그럼요! 아미야 씨랑 켈시 선생님도 허락해 주셨는걸요!
이 보온 상자는 특수한 재질로 되어 있어서 오리지늄의 영향을 받지 않아요. 매우 안전하다고요!
그리고, 먹을 거라면 제가 준비해 두었어요… 여기, 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이렇게 사료가 자동으로!
에헤헤~ 신기하죠?
나는 원석충을 키우는 그쪽이 더 신기한데……
네? 방금 뭐라 하셨나요?
아냐, 아무것도.
??
맞다, 물이라면 이틀에 한 번, 조금만 주셔도 돼요. 그래야 주변이 건조해서 제 고향과 비슷한 환경이 되거든요.
알았어. 기억해 둘게.
이 원석충들이랑 메탈 크랩, 내가 봤던 것들 보단 예쁘네…… 그러고 보니 바닐라 씨 고향은 사르곤이랬지?
네. 사르곤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이죠.
어떤 곳이었어?
제 고향은… 굉장히 가난한 곳이었어요. 자원도 거의 없었죠.
마을 주변에는 모래밖에 없어서 농사도 못 지었어요.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사냥을 해야 했죠. 그래서 마을의 모든 아이는, 어려서부터 훌륭한 사냥꾼으로 키워졌어요.
바닐라 씨도?
네, 저도요.
그런데 왜 블랙스틸에 들어간 거야……?
말하기 좀 그렇지만…… 돈 때문에 들어간 거예요.
돈?
네. 블랙스틸, 블랙스틸 월드와이드는… 간단히 말하면 용병 조직이거든요.
다들 목적은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돈이 부족해서 용병이 되죠.
저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그랬구나…… 그래도 제시카 씨는 딱히 돈이 부족한 것 같지는 않던데?
제시카 선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얘기는 많이 안 하다 보니, 저도 제대로는 모르지만요.
제 고향은 정말 척박한 곳이라……
사르곤의 사막에는 정말 가끔만 비가 내려요. 오아시스의 물이 모여 작은 호수가 되면 상인들이 사막을 횡단하곤 하죠. 그러다 그 상인들이 저희 마을을 지날 때면, 가끔 들러서 물건을 팔곤 했어요.
대부분은 돈이 없어 물물교환을 했으니 '샀다'고 하기도 좀 그렇겠네요.
행상인들이 저희 마을에 들를 때면, 보통 하루 이틀 정도 머물렀어요. 밤에는 매우 춥다 보니 다들 모닥불 앞에 둘러앉곤 했답니다.
그렇게 빙 둘러앉아선 다 같이 육포를 먹거나 술을 마시면서 추위를 이겨내고, 아이들에게는 사막 보리수 열매를 간식거리로 주기도 했죠.
상인들은 아이들에게 사막 밖의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새롭고 재미있어했죠.
예를 들면 머나먼 극동에 있는 꽃향기로 가득 찬 도시의 이야기나, 부와 행복이 넘쳐나는 거대한 도시의 이야기 같은 거요……
재미있었겠네.
그렇죠? 그래도 마을을 나온 이래로, 아직 극동이 그렇게 좋은 곳인지 확인할 기회는 없었지만……
어쨌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바깥세상에 관심을 두게 된 거죠. 그리고 사막에서 평범한 사냥꾼으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보니……
……그래서, 상인을 따라 사막 근처의 작은 도시로 나오게 된 거예요.
그리고, 바깥세상은 상인들한테 듣던 것만큼 좋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고?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어요…… 음, 적어도 먹는 것은 고향보다 좋았지만요.
저는 돈이 별로 없었어요. 제 전 재산을 들고 나왔지만 아무래도 부족해서, 여관에서도 잘 수 없었죠. 너무 비쌌거든요.
어쩔 수 없이 용병이 되었지만, 후회는 없어요.
……이 얘기는 그만하죠.
제 얘기만 했네요. 스튜어드 씨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나? 나는 쉐라그 사람이야.
와아! 들어본 적 있어요, 거기는 1년 내내 눈이 온다면서요? 저는 눈이 쌓인 걸 본 적이 없어서……
하하, 로도스 아일랜드에 있다 보면 언젠간 볼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정말요? 그러면 돈 열심히 모아놔야겠네요. 신형 인체 격리형 보온기가 굉장히 비싸다고, 제시카가 그랬거든요.
하하…… 그런 것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이번에 바닐라 씨가 부탁을 해줘서, 멜란사도 굉장히 기뻐하고 있어.
표정만 봐선 잘 모르겠지? 멜란사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해.
그런가요……? 폐를 끼친 게 아니라면 다행이긴 한데……
폐는 무슨. 멜란사도 나도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바닐라 씨는 안심하고 임무 다녀오라고. 동글이랑 친구들은 내가 잘 돌봐줄게.
아, 잠시만요! 스튜어드 씨!
어? 왜?
저기……
저는 아직, 스튜어드 씨나 블레이즈 씨의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다음에 A4 예비작전팀이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 저도 불러주세요!
친목회 때 쓸 종이꽃, 저도 아이들이랑 같이 접어보고 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