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인션트 포지 - 새해 인사
니엔에게서 도시를 되찾아오기 위해, 용문은 로도스 아일랜드와 손을 잡고 위험한 도박을 하게 된다. 전투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직전…… 감독에 의해 이야기는 끊기고 만다.
제3막
새해 인사
내 창으로 내 방패를 찌른다.
내 방패로 내 창을 막는다.
그럼, 왼손과 오른손이 싸우면 어떻게 되지?
글쎄.
누가 이기면 또 어쩔 건데?
딱히 뭐 어쩔 것도 없지만.
음…… 그래도 역시 자주 쓰는 손이 유리하지 않을까?
4:21 a.m. 날씨/흐림
용문 교외 구역
근위국이 제21번 구역의 통제권을 잃은지 3일째 되는 날
첸 총경님, 여기 계셨군요.
이곳에선 적에게 점령된 지역이 한눈에 보이거든.
변경에서 방어선을 구축해 니엔의 공세를 막기로 하다니, 웨이 장관님께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셨네요.
그래도 설마, 그 방어선의 반대편도 용문인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어처구니가 없군.
니엔은 바로 저곳에 있어요.
저 동네엔 내가 즐겨 가던 가게가 있다.
내 친구 몇 명도 다 저쪽에 사는데…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이 도시가 설마, 단 한 명의 적 때문에 이렇게 열세에 몰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우리가 병사 하나를 배출해내는 시간과 그녀가 전사 하나를 만들어내는 시간만 비교해도, 사실 결과는 뻔했지.
라바 - 로도스 아일랜드의 정예 오퍼레이터. 아츠 마스터이자 재해 전문가.
그녀는 아츠를 이용해, 당연하다는듯이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고있다.
라바 씨! 무사하셨군요!
미안하다. 니엔과 섣불리 접촉해서는 안 됐는데.
그런 말은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퍼레이터들에게나 해라. 우리는 널 보조하기 위해 이미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으니.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네 지식과 기술이지, 우리 애들 사기나 떨어지게 하는 말 따위가 아니야.
'사기'가 뭐? 파악도 안 되는 적을 상대하겠답시고 병력들 사기만 북돋왔다가는 개죽음만 당할 뿐이다.
도시를 탈환하려면,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혀온 수수께끼에 직면해야만 해.
바로 '그녀의 약점'을 말이다.
그건 네 임무가 아니었나.
뜻밖의 좋은 소식은, '니엔'이 교류가 가능할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인격을 가졌다는 거야.
나쁜 소식은, 성격이 완전 개차반이라는 거고.
더 쓸모 있는 정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 그것뿐이라고 하진 않겠지.
당연하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역사 문헌을 뒤져 간신히 실마리를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그 정보가 진짜인지를 확인하려면, 결국은 피를 봐야겠지만.
라바 씨가 단독 행동할 필요는 없어요. 니엔은 위험해요, 만약 당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피를 흘리는 건, 나만으로 충분하다.
첸 총경님, 긴급 연락입니다.
니엔의 소재가 파악됐습니다. 현재 방어선으로 접근 중입니다.
……각 부대는 그녀를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도록 조심해라. 그리고, 일부 열성 시민들 한테도 제멋대로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해둬라. 이건 애들 장난이 아냐.
하지만 니엔이 데려온 병력이 많지도 않은데……
녀석에게 숫자는 의미가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발을 묶는 정도다.
니엔에게 약점이 있다고 했었지?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그녀의 약점은… 폭죽이다.
……폭죽?
니엔의 정체조차 제대로 밝혀낸 기록이 없는데, 약점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런데, 내가 염국에 갔을 때 새로 발견한 게 있다.
모든 풍습에는 그 기원과 전설이 있지. 어떤 것들은 근대에 만들어져 진상을 알기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일부 학설에서는, 현대 오리지늄 화약 기술의 기원이 무언가를 기원하는 풍습에서 비롯된 폭죽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그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잖아요. 평안을 기원하고, 악귀를 물리치는……
그 전설에서, 악귀란 뭘 가리킬까?
그건……
잠깐, 근위국은 그보다 십만 배는 더한 화력도 준비할 수 있다. 정말 폭죽이 약점이라면 니엔은 우리에게 위협조차 안 됐을 텐데, 앞뒤가 안 맞잖아.
"소리와 불빛을 무서워한다."
만약 니엔의 능력이 정말 '제련'이라면, 폭죽 자체는 그녀에게 별 위협이 되지 않을 거야.
그녀는…… 스스로를 대장장이라 칭했어. 소리와 불빛은 애초에 그녀의 일부, 적어도 그녀의 몸에 투영된 어떤 존재의 일부라는 거지.
어떤 존재요?
오리지늄 아츠를 사용하지 않는, 그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 세운 가설이야.
그녀가 자기 자신을 무서워한다는 뜻인가? 어이가 없군……
처음엔 그저 전설이라 생각했지만…… 적어도 시험해볼 가치는 있어.
어쨌든, 니엔이 거대한 소리와 화염 아츠 앞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였던 건 확실해.
……그럴 지도 모르지. 어차피 이젠, 네 가설에 대해 토론할 시간도 없다.
이젠 모든 가능성을 시도해볼 수밖에 없다. 니엔이 이미 코앞까지 쳐들어왔으니.
그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정리하지.
첫째, 그녀는 강하다. 혹여 그녀를 물리친다 해도, 아군의 피해는 엄청날 거야.
……그런 일은 근위국에서 막을 거다.
그러니까 정면충돌은 최대한 피해. 적어도 니엔은 살육을 즐기지는 않는 모양이니까.
둘째, 그녀의 능력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듯하다. 장기전이 되면 수세에 몰리는 건 우리야.
셋째, 왜인지는 몰라도, 니엔은 현대 문물에 강한 흥미를 보인다.
……이게 곧 있을 전투에 무슨 도움이 되지?
성격도 결국은 본능의 위장과 노출에 불과한 법. 사냥꾼이 되려면 덫을 놓을 때도 짐승의 본능을 이용해야지.
마지막으로, 니엔의 검과 방패를 조심해라. 우리의 힘으론 분석되지 않는 물건이니까.
검과 방패라, 알겠다.
니엔의 약점은 내가 간파해낼 테니, 근위국과 아미야는 최대한 기회를 만들어줘.
나도 나서야겠군. 리유니온의 허상으로 용문을 가지고 논 대가는 직접 치르게 해주지.
하지만 근위국의 지휘는……
웨이 장관님과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가 현장 지휘를 맡으면 되잖아.
그럼 저도 첸 총경님과 함께 움직일게요.
아미야……
괜찮아요, 제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습니다.
로도스 아일랜드와 근위국의 모두가 분투하고 계시니,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니엔의 걸음을 늦추는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아미야, 서둘러라.
네, 금방 갈게요!
성벽 한 번 참~ 높게도 지어놨네~
어~이~ 거기 위에 쫄병들~ 내 말 들려~?
뭐 이렇게 반응이 없어? 완전히 무시하는구먼.
흠…… 벽면이 엄청 미끄럽네, 두드려볼까… 이거 합금 같은데… 벽돌이랑 기와로 쌓아올린 것보다 좋잖아?
검으로 치면 날 다 나가겠는데? 잘 만들었네, 마음에 들어……
에라 모르겠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니, 니엔이 용문의 성벽을 베어버리다니?
그 오퍼레이터가 '검'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저게 '검'인 줄은 몰랐을 거다.
뭐야. 휴식시간을 3일이나 줬는데, 겨우 이 정도야?
거 참~ 라바 때문에 잔뜩 기대했는데, 내가 너무 과대평가했나?
오늘은 그 이상한 요술 안 쓰나?
적진에 홀로 쳐들어와놓고 무사히 빠져나갈 거라곤 생각하지 마라.
나는 그냥 너희 정도는 나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아니, 아니지… 너희 정도는 내가 나설 필요도 없다고 하는 게 맞겠지?
어 그렇지! 그게 맞네!
……
첸 총경님, 포위당했어요!
이런 것쯤은, 쪽수만 많을 뿐이야!
이게 무슨……
아~ 맞다 맞다, 말해주는 걸 깜빡했네.
사흘 동안 너무 심심해서, '리유니온'에 대해 좀 더 알아봤거든?
참나, 알고보니까 똑같은 놈들끼리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었더만.
광석병이 뭐가 대단한지는 몰라도, 이번에 제대로 알았어. 어쩐지… 기록 보고 잘 만들었는데도 뭔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더라고.
그래, 이게 부족한 거였어.
첸 총경님! 조심하세요!
쳇!
……
말도 안 돼…… 설마 환상들이 아츠를 사용하다니?
내가 마음만 먹으면,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것 쯤은 일도 아니야. 어때, 한번 시험해볼래?
아, 아니다. 귀찮을 것 같아.
그래도 감염자 인형 몇 개 만들어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야. 만드는 과정을 하나만 더 늘리면 되거든.
당신…… 그건 그렇게 농담하듯 내뱉어도 되는 말이 아니에요……
감염자에 대한 당신의 태도…… 정말 불쾌하군요!
태도? 나한테 감염자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데? 너희도 평소에 원석충한테 마음 써주고 그러진 않잖아?
쏴라!
에이~ 화살에 힘이 너무 부족해.
지금부터, 한 걸음씩, 멈추지 않고 걸어갈 거다…… 너희 본진에 도착하면, 그땐 싹 다 부숴버릴 테니까……
어디 한번 열심히 막아보라고.
스노우상트.
으아아아 죄송해요 고의가 아니었……
아니지, 나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다, 당신은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 라바다.
기반시설 구역의 구조도가 필요하다. 지하쪽 구조도는 어디서 찾지?
어어…… 그건 엔지니어링부 기밀인데다 절차도 복잡한데…… 어디에 쓰시려고요?
요란한 폭죽 하나가 필요해서 말이야.
포, 폭죽이요?
니엔을 상대하려면, 인간이 이뤄낸 발전을 이용해야지.
니니니니엔요……? 역시 거, 거인이었나요? 그래서 폭탄을 사용하나요? 아아아아니면 도시 방어포를?
아니, 그렇게 무식하게 큰 물건은 발사 각도가 제한적이야…… 도시 방어포를 도시에다 대고 쏠 수는 없잖아……
……아니지, 잠깐…… 도시 방어포라……
도시 방어포……
라바 씨?
도시 방어포…… 폭죽이랑 별로 다를 것도 없잖아?
아뇨! 엄청나게 다른데요! 정말!
둘 다 오리지늄 가공에 기초해서…… 폭발의 추진력으로…… 공중에서……
그러니까 그게 폭죽이잖아!
왜 하필 폭죽이어야 하는데요?
어쩌면…… 하지만 도시 중심부에 피해가 얼마나 갈지……
라, 라바 씨? 별일 아닌 듯 중얼거리셔도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구요?
……괜찮아, 내가 알아서 판단한다. 날 믿어.
그, 그럼 저는 일단 결재를 올리러……
그럼 너무 늦습니다. 선조치 후보고로 부탁드려요.
막강한 적이 코앞에 닥쳤는데, 절차 따위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되죠.
감사합니다.
하, 하지만 각 부서의 문서를 다시 인쇄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릴 텐데……
아, 아니다!
차라리 제가 구조도를 간단히 그려드릴게요.
뭐?
잠깐만요, 어디 그릴 만한 게……
……장관님, 여기 구조가 직접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간단합니까?
그럴 리가요. 지면에 설계된 전력 시스템과 오리지늄 엔진만 해도 상당히 방대한걸요.
하지만 스노우상트가 저렇게 말한다면, 정말로 그려낼 수 있을 겁니다.
새로 근무하게 된 곳이니까, 빨리 적응하려고 찾을 수 있는 모든 구조도를 꺼내 통째로 외워뒀거든요!
거, 걱정 마세요, 외워놓은 걸 그리는 것뿐인데요 뭐. 이쯤이야 가뿐해요!
이쯤…… 이라고?
리유니온들…… 정말 끝이 없군요……
너희는 먼저 가서 다음 길목에 대열을 편성하도록.
적어도 이 인형 병사들은 막아내야 해.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나는 안 막아?
의욕도 넘쳐보이는데 왜 안 덤벼? 어서 덤벼보라고!
(저 방패, 역시 뭔가 이상해……)
첸 총경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나 원, 쓸만한 무기도 있으면서 굳이 그런 고철 덩어리나 쓰다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그리고 거기, 넌 네 힘도 제대로 자제 못하는 거 같은데, 그러지 말고 그냥 시원하게 한번 보여주는 게 어때?
도발에 넘어가지 마라!
네!
뭐야, 요즘 애들은 냉정하네. 이게 요즘 말하는… 그 뭐야, 개인의 개성을 억누르는 현대사회의 모습, 뭐 그런 건가?
전력을 다할 줄도 모르는 꼬맹이들과 싸우려니 재미가 없군. 그래. 너흰 내 방패랑 검이 궁금하지도 않아? 자, 어디 들어와 보라고.
……그럼 사양 않고 부숴주지!
……! 니엔의 방패가 부서졌어요!
그래그래, 정말 축하해.
……
미안해서 어떡하지, 방패 새로 또 만들었지롱.
쳇, 역시……
첸 팀장님! 적이 계속해서 방어선을 공격해옵니다, 더는 버티기 힘듭니다!
……근위국 전원 후퇴하라! 게이트를 닫고 방어시설을 가동한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라!
라바가 대책을 마련했길 바라야겠군.
뭐야, 도망가는 거야?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저 건물인가?
높게도 지어놨네 정말.
높아봤자 쓸모도 없는데 말이지.
돌아왔다. 인원 배치는 끝났나?
다른 부서 대원은 모두 근위국 건물에서 대피했고, 각 소대는 계획대로 이곳을 포위 중입니다.
포위망에 조그만 빈틈도 허용해선 안 된다. 손실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실례합니다, 라바 씨는 어디 계시나요?
스노우상트 씨에게 상면도를 받고는 어딘가로 사라졌습니다……
……
라바 씨를 믿도록 하죠.
믿을 수밖에 없는 거겠지.
니엔이 방어 시스템을 돌파! 게이트가 뚫렸다!
아직 모니터링 할 수 있어? 니엔이 어디로 가는지 파악해야 해!
싸우지 않으면 이 건물을 통째로 무너뜨린다고 해봤자 우리만 손해다.
하지만 라바 씨 말대로, 니엔과 그 능력의 실체를 알지 못하면 유효한 공격이 불가능해요……
니엔을 해치우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지.
라바 씨!
해치울 방법은 찾았나.
도시 방어포의 코어를 폭발시킨다. 내가 니엔을 그곳까지 유인하지.
어떻게 유인하겠다는 거지?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던데.
니엔의 성격을 잘 알았나보군.
……어쨌든, 이제부턴 내게 맡겨줘.
왜 아무도 없지? 이상하네.
난이도를 갑자기 너무 올렸나? 녀석들, 약해 빠져가지고.
음?
누가 있는데? 어디냐?
여기다.
아이고, 내가 저번에 너무 호되게 손봐줬나 싶어 걱정했는데,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야, 라바.
지팡이에 힘을 모아 땅을 살짝 내려친 정도로 그렇게 깊은 구멍이 생길 정도면……
내가 요 며칠 쭉 지켜봤는데, 너 사실 이 중에서도 꽤 강한 편이지?
……이곳은 도시의 핵심구역이다.
알아. 나도 사흘 동안 현대 문물을 열심히 공부했거든. 도시 간 네트워크는 정말 편리해 보이더라, 언젠가 대륙 전체에 보급되면 좋겠더라고.
습득이 꽤 빠르군.
이 정도야 보통이지.
매번 깰 때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네 형제자매들은 기다려주지 않나 보지?
……
나중에 다시 곰곰이 생각해봤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그렇게까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더라고. 저번엔 그냥 떠본 거였지?
눈치챘나.
그럼 네 언니는? 언니는 어디 있어?
그걸 네가 어떻게……
……그건 네 알 바 아니지 않나.
아~ 그렇구나, 알겠다.
정말 부럽네. 서로 죽고 죽이는 일 없이 평범하게 상대를 기억할 수 있다니.
불꽃이 막 꽃처럼 피어나네? 화났어?
죽고…… 죽인다고?
역시 넌……
열두 명.
나까지 열두 명이야.
나와 열한 명의 형제자매들은, 네가 가늠할 수도 없는 오랜 세월 동안 서로 죽고 죽여왔어.
정말 멍청한 짓이지. 왼손과 오른손이 싸워봤자 무슨 결과가 있겠어? 자기가 자기 걸 빼앗아봤자 뭐가 더 늘어나고 줄어드는 건 없잖아?
전부 헛짓거리지.
형제들과 사이가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또 날 떠보는 거야?
글쎄.
……
말없이 공격해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군.
그래도 말이야…… 일이 매번 네 뜻대로 흘러갈 거라곤 생각하지 말라고!
큭! 지금 뭐 하는…… 여길 붕괴시킬 셈이야?
윽.
나 혼자서 널 쓰러뜨리지 못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
뭔 놈의 혓바닥이 그리 길어? 그냥 바로 '결론'부터 말하라고. 숨겨둔 패가 더 있다는 거잖아?
귀찮아 죽겠네. 캄캄하지만 않았으면, 그냥 공성추 하나 만들어 던져서 끝내버리는 건데.
안 그러는 게 좋을걸.
그게 무슨……
잠깐, 이게 뭐야? 이 코어는? 이건 용광로…… 아니, 병기인가? 공성병기?
이 에너지를…… 너희가 만들었다고?
현대 문물에 대해 공부를 덜 한 모양인데, 그래도 이 구조는 익숙하지?
널 위해 준비한 초대형 도시 방어포 폭죽이다. 한번 당겨볼래?
이 정도로 날 어쩔 수는 없을걸.
……지금은 어때?
너……
너 정말 똑똑하구나? 폭발 공간을 압축시키려 하다니.
내가 의식을 잃기 전까진 너도 도망 못가.
네가 이 정도 규모의 폭발을 네 주변 공간에서 일어나게 묶어버린다면, 우리도 풍선처럼 터져버릴 거야.
잊었나? 폭발원은 이 도시 방어포와 오리지늄 구동 코어만 있는 게 아니야. 나도 그중 하나지.
호오~ 그러셔? 그럼 날아간 뒤에 다시 아츠를 사용하면 되겠네. 그렇게 하면 폭죽이랑 별반 다를 것도 없잖아?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겁 나기 시작했지?
그럼 너는? 넌 폭발하면 무사할 거 같아? 뻔히 보이는구만 뭘.
네가 네 무덤 판 거야. 너 그러다 죽는다.
아닐 수도 있지.
근데 난 그거 가지고 안 죽어.
조금의 상처라도 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애 쓴다 애 써…… 이번엔 칭찬해 주도록 하지.
이제 내가 물을 차례다. 너희는 대체 뭘 하려는 거냐?
기억조차 나지 않는 먼 옛날부터, 우리는 서로 죽고 죽여왔어.
내가 무언가를 기억할 때쯤엔, 서로를 죽고 죽이다 지쳐버렸지.
그래서 도시를 습격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이 땅 위에서 한번 살아보자고 고군분투를 해야 생명이 안 끊기는 거라고.
비참하고 구질구질한 사연 늘어놓는다고 용서받을 거라 생각하진 마라.
뭐…… 사실 별로 비참하지도 않았어.
그러다 언제인가, 우리는 인간들한테서 재미있는 놀이를 배웠지. 그때부턴, 죽이는 대신 그 놀이를 하곤 했어.
가위바위보인가 뭐 였나 하는 놀이었는데……
……
큭! 야 임마! 너 진짜 나랑 같이 죽을 셈이야?!
아깐 절대 안 죽는다며?
아니 그건 그냥 해본 말이지.
예상대로라면, 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테니……
한 번 승부해볼 가치는 있지.
아, 그러셔?
그럼 거꾸로 셋을 센 뒤, 같이 여기를 폭파시키는 건 어때?
셋……
폭발 확인! 예비 도시 방어포 코어 2호 반응 소멸!
라바 씨는 확인 됐나요?!
아, 아뇨. 폭발로 인한 연기가 너무 짙어서, 저희로선……
잠깐!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무언가가 연기 속에서 날아오릅니다!
아하하하! 꽤 하잖아! 이 정도 폭발은 정말 오랜만인걸! 매일 엎치락뒤치락하던 그 빌어먹을 꼬맹이가 생각날 정도야!
윽……
이, 이 손 놔!
윽, 그렇다고 진짜 집어 던지냐!
네가 놓으라며?
로도스 아일랜드의 라바와 목표를 발견했습니다!
포위해라.
방금은 무슨 짓을…… 왜 날 구했지?
난 저 소리가 진짜 싫거든, 그런데 나도 모르게 달려드는 널 구해버렸지 뭐야. 참나, 너도 참 질기다. 어떻게 그런 순간에까지 나한테 덤벼드냐?
근데 이번엔 나도 힘을 너무 많이 썼어. 아~ 이제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
야 이거 안 되겠다, 못 움직이겠네. 네 맘대로 해라.
기왕 할 거면, 단숨에 보내줘.
너……
아 어서! 얌전히 누워서 죽여달라는데, 이제 와서 뭘 망설여?
(갑자기 이렇게 얌전히 투항이라니, 영문을 모르겠군……)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인지는 몰라도, 널 죽이진 않아.
이제와서 널 죽인다고 나아지는 게 없거든. 널 로도스 아일랜드로 데려갈 거다. 묻고 싶은 것도 많으니.
아니.
지금 날 죽여야 해. 아니면 옆에 저 녀석들에게 부탁하던가. 어차피 쟤네들은 그러려고 데려온 거잖아?
쏴라!
잠깐!
크윽, 하아…… 드디어 해방인가……
라바, 진실을 알고 싶다고 했지? 그럼 잘 들어, 내가 이 도시를 습격한 이유는……
용문의……
산초가 정말이지, 너무너무…… 맛이 없어서야……
……
못 들었나? 그럼 아쉽지만…… 안녕이다……
만나서…… 반가웠어……
조심하세요, 아직 힘이 남아있을지도 몰라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제기랄……
우릴 완전히 가지고 놀았군.
뭐지?
니엔의 몸이 사라지다니?!
폭발 에너지로 자신의 허상을 만들어냈어. 우리는……
니엔을 놓쳤다.
이만한 노력과 희생을 쏟아부었는데, 결국 놓쳐버렸어!
어… 음… 역시 이렇게 도망쳐버리면 너무 재미없겠지?
어?
더 재밌는 생각이 나서 말이지. 왜, 아까 내가 이 도시 전체로 거대 괴수를 만들 수 있다고 한 말 기억해?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죠?
도시가 떠오르고 있다…… 무슨 속셈이냐?!
내가 요 며칠동안 그냥 쉬기만 한 줄 알아? 그럴리 없지, 마음에 들 만한 괴수를 만들고 있었다고.
그나저나 라바, 이제 너도 슬슬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할걸? 수준 차이가 너무 난다고.
어디 이 괴물을 한번 때려눕혀봐라. 그럼 너희에게도 이것의 광기를 저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주지.
좋아…… 이름은 현극거병 정도가 좋겠다. 도시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를 정제해 만든 괴물이라 그런가, 이제야 좀 후끈 달아오르는구만.
이 정도도 못 처리하면…… 다른 녀석에게 처리되는 건 시간문제야. 내 형제자매들은 진짜 인정사정 안 봐준다고.
어떡하냐 라바?
이제 샤브샤브도 못 먹게 생겨서?
"변화무쌍한 진동이, 사방팔방에서 몰아치니……"
잠깐, 잠깐! 갑자기 무슨 주문을 외고 있어! 이건 좀 아니지!
왜?
그럼 내가 어떻게 마무리하라고?
또 왜? 최종 보스는 나잖아, 이 정도는 해줘야 관객이 만족하지!
안 돼!!
……아 진짜 제발! 그리고 왜 중간부터 자꾸 이상한 대사가 늘어나는 건데?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잖아. 좀비 떼가 용문을 공격하는 장면은 또 왜 이렇게 바꿔놨어?
글쎄 한번 믿어보라니까? 컬럼비아에선 이렇게 써서 돈 좀 쓸어모으는 졸작들이 매년 백 편은 더 나온다니까?
그래도 이건 이미 졸작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인데…… 후반부턴 아예 네 원맨쇼잖아? 다른 사람은?
알게 뭐야 내가 주인공인데?
아니 그렇게 따지면 나도 주인공이지! 그리고 내가 감독이라며?!
거 참 되게 떽떽거리네…… 라바, 우린 친구잖아? 설마 감독 됐다고 지금 권력 남용하는 거야?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럼 폭죽은? 왜 하필 폭죽인데?
아, 그건 내가 진짜로 폭죽 소리를 싫어하거든. 안 좋은 기억이 많다보니.
어제도 스팟 녀석 때문에 놀라서 탄산음료를 몸에 다 쏟아버렸다니까.
그럼 마지막에 거대 괴물은 왜 튀어나오는데? 특수효과에 쓸 예산이 어디있다고?
왜? 멋있기만 하구만.
안.멋.있.거.든!
쯧쯧쯧…… 라바야, 잘 생각을 해봐. 우리가 무슨 영화 찍으려고 했었지?
거대 괴물, 사회와 이성과는 동떨어진 순수한 야성…… 현대 도시인에게 가장 부족한 건 바로 본능이라는 이 외침이야말로, 도시파의 낭만 아니겠어?!
그리고 말이야, 네가 고른 배우들 라인업도 다 별로야. 다들 너무 뻣뻣하잖아.
내 눈에는 이 사람들이 괜찮아 보이는데…… 봐봐, 이 파일에 적힌 사람들 말이야, 이름이 뭐더라? 블레이즈…… 그리고 이쪽은, 엠퍼러?
앗! 여기 에프이터란 사람은 영화배우잖아! 이런 사람들 냅두고 뭐 하러 굳이 용문 사람들을 배우로 쓰는 건데? 왜? 뭐 현실주의자라도 되시나?
잠깐, 처음엔 그냥 네 느낌대로 따라왔는데, 지금 자세히 보니까 여기 제한된 권한 접근 기록도 있네……?
절대 언니…… 그 의사가 알면 안 돼! 안 그럼 우린 다 끝장이라고!
그 의사를 대체 왜 그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 그럼 결말은 이렇게 바꾸는 걸로……
시간이 별로 안 남았어. 아직도 인간 육성에 집착하나? 정말 우리를 막아낼 만큼 인간을 키워낼 수 있다고 생각해?
……잠깐. 니엔, 뭐하는 거야?
호흡도 거칠고, 의식도 불안정해…… 대체 뭘 본 거지?
……이상하군, 설마 그들이 그런 걸 만들어 낸 건가……
응? 나한테 물어본 거야?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그저 예~전에 염국에 놀러 갔다가, 재밌는 소문 하나 퍼뜨린 게 다라고.
뭐, 기껏해야 인간 몇 명이 약점을 알았다고 못 싸우겠다 그거야? 그러게 누가 너더러 그런 트라우마같은 거 가지래?
하? 폭죽? 고작 폭죽 따위에 졌다고?
하하하하! 아~ 아깝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진짜 최고의 필력을 발휘해서 그 굴욕적인 장면을 다 기록해뒀을 텐데……
고생했다 그거지, 좋아.
……용문.
난 이 도시가 좋아. 생동감 넘치는 도시에서 무질서한 발악을 볼 수 있다니, 여기만큼 최고의 먹잇감이 가득한 곳이 또 있겠어?
그래도, 다음은 네 차례가 아냐.
매번 깨어났다 잠드는 이 굴레도 이젠 지긋지긋해.
이 땅 위의 불씨를 모두 꺼버릴 시간이다.
——ANCIENT FORGE 2——
——COMING SOON——
......
잠깐잠깐잠깐잠깐!!
왜 또!
그건 또 누구야? 인간을 왜 먹는데? 후속편은 왜 나오고?
거대한 식인 괴물과 나약한 인간의 분투…… 잘 팔릴 것 같지 않아?
그, 그건 그렇지만……
'불씨', '학살', '굴레' 같은 단어 좀 써주고, 온갖 고생과 원한 가득한 스토리에다가, 어두운 화면에 흔들리는 카메라 연출 촤~악 깔아주고, 거기에 피 튀기는 연출 따~악 박아넣으면, 완성!
딱 봐도 팔릴 거 같지 않아? 테라에서 제일 잘 팔리는 상업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아니, 처음엔 분명 '새해 기념 단편'이라며?
게다가 그건 네 여동생이잖아! 어떻게 할 짓이 없어서 여동생을 팔아먹냐…… 난 협조 못해!
괜찮다니까. 내 샤브샤브에 아이스크림 넣고, 내 고추장까지 몰래 다 쏟아버린 녀석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너희 자매는 진짜 이해가 안 간다……
상관없어, 나도 너희 자매 잘 모르니까. 넌 대체 걜 좋아하는 거야, 싫어하는 거야?
으으!! 이 얘긴 그만하자. 가서 대사나 전부 뜯어고쳐야겠어!
그리고, 아미야가 발견하기 전에 그 파일 제자리에 돌려놔! 대체 그건 어디에서 들고 온 거야?
전에 한번 슬쩍 보고 베껴놨지. 너도 알잖아, 내 능력 되게 편리한 거.
이번엔 진짜 내 말 들어. 안 그러면…… 무서워서 상상도 하기 싫다.
꼭이다! 이따가 나 돌아올 때까지 원래대로 돌려놔!
알았으니까 얼른 가 봐. 다음 각본도 기대할게, 감독!
흠.
어떻게 된 거지, 어째 다들 이걸 무서워하는 것 같네?
"접근제한 기록을 일반 오퍼레이터에게 보여줘선 안 된다."
그 여자 말투랑 별로 안 비슷하네, 다음에 성대모사 연습 좀 해야겠어. 그래도 접근제한 기록 하나를 통째로 복제하다니, 이번엔 너무 나간 거 아니야?
이거 원래 기밀이구나. 어쩐지 재밌더라.
에휴, 모르겠다. 다들 명도 짧으면서 신경 쓸 일이 뭐 그렇게 많아?
라바가 제법 신경 써서 용문을 꽤 괜찮게 써줬는데, 각본 어떤 거 같아? 그래도 역시 용문이 거대 로봇으로 변해서 쾅~ 펑~ 퍽~ 하는 게 더 통쾌하지 않나?
그건 감독이랑 직접 상의해야지. 만약에 진짜로 도시 하나를 거대 로봇으로 바꿀 수 있게 되면, 나한테도 꼭 보여주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안 그럼 진작에 로봇 타고 날아다녔을 거다.
라바가 착한 거야 잘 아는데, 그래도 기왕 하는 거면 역시 조금 고생하더라도 크게 한 번 터뜨려주는 게 낫지 않아?
그렇잖아, 내가 이렇게나 열심인데… 혹시 알아? 컬럼비아에 있는 영화사들이 이 각본 보고 진짜 꽂혀서……
근데……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이 각본 말이야, 정보량이 너무 많지 않아? B급 감성도 좀 과한 거 같고.
감독이 별 말 안 하면 그걸로 된 거지. 더군다나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지어낸 얘기인지는, 너 정도밖에 모를걸?
에? 어디까지가 지어낸 얘기인데?
이야기란 게 원래,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점점 와전되기 마련이거든.
흔히 말하는 옛날 이야기잖아, 원래 무섭고 허황될수록 재밌는 법이라고. 옛날 이야기나 영화나 별반 다를 거 없어.
옛날 이야기라……
옛날 이야기나 각본이나 결국엔 거기서 거기야. 라바도 짐작하고 있을걸?
에휴…… 하여튼 너희는 늘 종잡을 수가 없다니까, 저번에도 그랬고.
응?
저번엔 말이야, 켈시가 알려주기 전까지 난 그 사람이 왔었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구. 알았으면 가서 싸인 받았을 텐데, 으아아아~
아…… 그 바닷가 걔네들? 밴드한다는?
알고 있었네, 난 너희 동족끼리는 서로 관심 없어하는 줄 알았는데.
누가 그래?!! 명예훼손으로 고소해버릴 테다!
누구긴 누구야, 우리 켈시 선생님이시지.
본인이 직접 그러디?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랑 라바도 그 밴드 노래 되게 좋아해! 뭐, 몇 집이 가장 명반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좀 갈리지만.
그래도 그 여자들 처음에 딱 보고, 그 음악 선율이 귀에 들어오는 순간 바로 정체가 뭔지 알겠더라. 자유롭게 사는 거, 참 좋지. 어쨌든 바닷속에 있는 다른 녀석들보단……
뭐 그렇긴 한데, 너 그 여자가 로도스 아일랜드에 왔던 건 어떻게 알았어?
아.
선내의 감시 시스템이 힘으로 뜯겨나간 흔적이 있던데.
하, 하하하, 난 아니다? 내가 고작 신기술이 궁금하다고 그런 장난을 칠 리가 없잖아! 암! 절대 안 그러지! 나 이래봬도 나름 상식이란 게 있는 몸이라고!
야! 고치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기록을 보고 싶으면 좀 더 똑똑한 방법을 쓰란 말이야!
맨날 빈둥거리면서 이런 짓이나 하고 다닐 시간에 열심히 일을 했어봐라,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염국 마오차이도 진작에 식당 메뉴에 추가됐을걸?
빈둥거리다니! 《시티 디펜스: 용문 아마겟돈》을 참고해 역사적 고증을 진행한 것뿐이라고. 게다가 무엇보다……
……무엇보다?
《시티 디펜스: 용문 아마겟돈》이란 이름, 너무 촌스럽지 않아?
요즘 오퍼레이터들이 장비 데이터를 등록할 때 네이밍이 어째 죄다 라테라노 스타일이다 했더니, 너희가 유행시킨 거였냐!
차라리 한술 더 떠서 《에인션트 포지》라고 하지 그래!
그래 말 나온 김에 네가 여기 적힌 사람들 좀 우리 영화에 캐스팅해줄래? 이건 중대사항이라고.
와…… 진짜 너무 했다, 진심으로 이렇게 고른 거야? 될 리가 없잖아!
노력하는 척이라도 좀 해주면 덧나냐! 로도스 아일랜드의 새해 특선 영화잖아, 흔치 않은 기회라고!
아니 글쎄 캐스팅 명단이 이 꼬라지인데 뭔 노력을 해달란 거야? 양심이란 게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쳇, 관둬라 그럼! 어쨌든 한 사람의 우수한 영화 마니아로서, 내 표현력과 메시지는 이미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해졌을 테니! 암! 분명 전해졌을 거야!
아, 그러면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추가하면 어때? 놀라지 않을까? 아니다… 라바가 너무 당황하려나?
걱정 마. 라바도 옛날 같은 꼬맹이가 아니니까. 라바가 성장했다는 건 이제 다들 알잖아?
……꼬마? 너희 나이 차이 별로 안 나지 않나? 살카즈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지만, 그래도 내 눈은 못 속이지.
크, 크흠! 어쨌든! 라바는 이제 로도스 아일랜드의 중추라고! 모두의 신임을 받는 오퍼레이터이기도 하고!
그건 그렇지.
그 녀석이 원하던 대로, 멋진 일을 해내는 멋진 전사가 됐어.
그치 그치?
그럼 더 걱정할 게 뭐가 있어? 조금 더 알게 돼도 상관없잖아?
난 누구처럼 신비주의자가 될 생각은 없어, 할 말은 하고 살 거라고!
게다가 어차피 언젠가는 다 알게 될 일이잖아. 나도 그 정도 생각은 하고 말하는 거야.
흐음……
언젠가는 알게 된다니……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래도 그렇지, 왜 라바부터인데?
그야 내가 라바를 엄청 좋아하니까.
라바의 노력, 사고방식, 발전…… 로도스 아일랜드는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한단 말이지.
이미 인간답지 않게 무지막지하게 강한 녀석들보단, 차근차근 발전해나가는 녀석에게 아무래도 마음이 더 가잖아?
그러니까 여기 머무르면서, 인간에게 적의를 별로 품지 않은 형제자매들한테도 로도스 아일랜드를 추천해줬지.
뭐… 뭐라고 했는데? 테라에서 가장 놀고먹기 좋은 이동함선이라고?
맞아! 로도스 아일랜드의 엄청난 포용력으로, 별의별 맛이 사이좋게 어우러진다고!
아니 무슨……
그리고 조금이긴 하지만, 즐거움을 주는 곳이기도 하지.
사이좋게 지내다 갑자기 싸우기도 하고, 진탕 퍼마시다 같이 해 뜨는 걸 보기도 하고.
너도 잘 알잖아, 나한테 '내일'이란 건 상당히 아슬아슬한 존재란 거.
그래서, 로도스 아일랜드가 정말 마음에 들어.
어…… 음…… 으으……
얼굴이라도 붉히면서 칭찬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갑자기 솔직해졌다고 놀리기라도 해야 하나?
그냥 새해 덕담이었다고 생각해! 그나저나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라바 씨?
새해…… 그거…… 말인데요…… 스탭들이랑 촬영 장비도 이미 전부……
……
조금만 더 시간을 줘, 어쩌면 좀 늦어질 지도 몰라. 어떤 엉망진창인 주연 때문에……
네? 갑자기 또 왜……
휴…… 새로 나온 각본 봤냐……
그럼…… 이제 어떡하죠?
……상관없어. 애드리브로 때우지 뭐.
……참나, 빙빙 돌려가면서 나한테 대체 뭘 말하려 하는 건지. 무슨 생각하는지 뻔히 다 보이는데……
뭔가 남기고 싶었으면 굳이 이렇게 소란 피우지 좀 말라고…… 애초에 나도 널 위해……
"용문의 산초는 너무 맛이 없다"……라니.
그 곧 죽어도 솔직하지 못한 성격은 여전하네.
훗, 정말이지…… 엉망진창인 악역이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