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1시끄러운 하늘
고든은 비서를 보내 내스티를 찾아가, 점검을 포기하기를 요청한다. 협상을 거쳐 양측은 한 발씩 물러서기로 했고, 내스티는 고든이 준 리스트대로 점검하는 것에 동의한다. 한편, 보조 연구원 스카이는 '럭키 치스티비스트'라는 회사의 자격을 말소한다.
(살카즈어) 응결하라.
격렬한 복싱 소리가 이어졌다.
주문이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내며, 와이번의 모든 주먹을 정확하게 막아냈다. 땀에 젖은 낡은 글러브 위에는 '트리마운츠 공대'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한참 후, 와이번이 동작을 멈추었다.
후우…… 오늘은 여기까지. 스파링 상대가 돼줘서 고맙다, 내스티.
네 평소 운동량의 절반밖에 안 되는데.
이제 출발해야 할 시간인데, 사람들에게는 인사 했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마리암은 말할 것도 없고, 뮤엘시스는 지금 쉐라그에 있거든. 거기에, 인사과랑 구조과의 새로 온 두 주임은 별로 안 친해서.
그리고 저스틴이랑 퍼디낸드는, 둘이 따로 만나게 하는 게 낫겠지……
자기가 어떤 고위층의 연회에서 빠져나왔다는 얘기, 새로운 이론으로 과학계의 황제가 될 거라는 얘기…… 서로가 서로에게 청중이 될 수 있잖아.
게다가 나는 잠깐 출장 다녀오는 것뿐이야.
엔지니어링과 주임의 출장이 흔한 일은 아니지.
특별구 정부가 '프로젝트 호라이즌 아크'의 자원을 통합하고, 스텔라리아의 남은 기술을 기반으로 부유 기술 분야의 혁신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우리의 신청을 승인했다.
하지만 동시에 컬럼비아 전역의 모든 과학기술 기업에도 편의를 제공했지. 그걸 위해 아예 섹터 하나를 특별 배정할 정도로 말이다.
입주 인원 명단을 보니 주류, 담배, 아츠 유닛 및 오리지늄 제품 관리국의 관리들뿐 아니라, 메이랜더도 있던데……
덕분에 우리 계획서도 수천 개의 계획서 중 하나로 전락했지. 우리에게 섹터 전체의 기초 공정 지원을 맡긴 건, 라인 랩이라는 최초 제안자에 대한 가장 큰 예의다.
정부 관리들, 기업 대표들……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섹터는 매우 떠들썩할 거다. 하지만 내스티, 너는 이런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해.
어쩐지, 그동안 불평이 하나도 없더라니…… 사리아 총괄.
……
별깍지는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지만, 하늘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이제는 되돌릴 수 없어. 상식이 뒤집히고 나면, 주목받지 못했던 곳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리는 법이니까.
자연스럽게? 특수 대출 정책이 나온 후, 기업의 3분의 1이 '하늘 사업부'를 증설했고, 중소기업들도 이 '하늘 열풍'에 편승하려고 대가를 따지지도 않고 줄줄이 업종 전환을 하고 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본데, 나는 그런 정치 놀음엔 관심 없어.
설령 모든 흐름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해도, 라인 랩은 반드시 이 프로젝트의 최초 제안자여야만 해. 가능한 한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크리스틴이 남긴 것도 최대한 지켜낼 수 있으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는 아닐 거야.
그래, 알았다. 수고해라.
궁금한 게 있는데, 왜 크리스틴의 사무실로 옮기지 않고, 이 낡은 사무실 밖에 '컴포넌트 총괄과'라는 명패만 달아놓은 거야?
여기 있는 게 익숙해져서.
뮤엘시스도 같은 질문을 했다. 눈시울이 빨개져서 내 팔을 붙잡고, 크리스틴이 그리워서 그런 거냐고, 라인 랩에 항상 크리스틴의 자리를 남겨두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그냥 쓰던 사무실이 더 편한 거네. 여기 있는 자잘한 부분까지 다 네가 직접 확인했으니까.
예전에 내가 네 사무실을 인테리어 해줄 때도 그랬잖아. 처음부터 끝까지 내 뒤에 딱 붙어서 지켜보길래, 네 강박증이 파르비스보다 더 심한 줄 알았어.
……
내스티, 라인 랩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음…… 그래도 달라진 게 있긴 하지. 적어도 지금은 직원들이 총괄을 찾으러 올 때마다 헛걸음하는 일은 없으니.
……네가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이번 출장에 나를 선택한 이유가 그거야?
여기를 잘라. 그래, 그 각도. 그래야 핵심 줄기랑 잎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아.
테스트 합격. 스카이, 본격적으로 설치하기 전에 먼저 위치 좀 잡아줘.
다음 그룹. 감광 센서 기능 정상, 부유 자세 안정, 에너지 입출력도 문제없어. 이것도 위치 잡아줘야 돼.
아, 공구함 안에 있는 분리 세트가 필요하니, 나중에 같이 가져다줘.
그럼 전에 쓰던 전동 드라이버랑 다기능 스패너는요? 그것도 필요한가요?
상황 봐서…… 음?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저도 정말 도와드리고 싶은데요. 지금 제 단추에 가위가 걸려 있고, 양손은 나무를…… 다섯 그루나 잡고 있어서요, 이젠 진짜 손이 없어요.
미안. 내가 할게. 스카이는 어디 갔어?
부유층의 엔지니어링 점검을 나간다고 세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주임님은 들은 체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때 말해 줄 수도 있었잖아.
비서 수칙 하나. 조용히 웃으며 상사의 지시만 받는다. 대화 내용이 기밀 사항에 해당하면 자동으로 귀를 닫는다.
걱정 마세요. 아까 말씀하신 수치랑 전문 용어는 하나도 못 들었어요. 설령 들었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요.
기억났다. 넌 행정부 사람이었지, 고든의 비서잖아.
저를 기억해 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내스티 주임님.
저는 머시아라고 합니다. 그냥 머시라고 부르셔도 돼요. 고든 장관님을 대신해 점심 식사에 초대하러 왔습니다.
고든의 업무용 메일은 네가 관리하는 거지?
주임님께서 앞서 회신하신 거절 메일 16통은 장관님도 전부 확인하셨어요.
그럼 본론만 말할게, 고든이 기초 공정에는 관심이 없다는 걸 나도 알아. 고든도 내가 일 이외의 '제안'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있겠지.
음……
아, 점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혹시 마음이 바뀌신 건가요?
확실히 점심을 먹을 시간이긴 해.
내스티는 공구함을 한참 뒤적이더니, 수십 가지 진단 장비와 가지런히 정리된 부품 봉투들 밑에서 은박지로 단단히 감싼 정육면체를 꺼냈다.
머시아는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갔다. 눈앞의 이 종잡을 수 없는 라인 랩 주임이 도대체 어떤 음식 때문에 공중 레스토랑의 최고급 식사와 서비스를 거절한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내스티가 무표정으로 포장을 벗긴 순간, 프로페셔널한 비서 머시아의 완벽한 미소에는 살짝 금이 갔다.
말씀하신 점심이…… 그 벽돌인가요?
(뭉개진 발음으로) 건빵이야.
건빵이요?
머시아는 그 '벽돌'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너도 배고프지? 먹어볼래?
아, 네, 감사합니다……
(힘겹게 씹는다)
(겨우 삼킨다)
콜록, 콜록!
……
거절해도 돼.
비서 수칙 둘. 어떤 행동이 협력 관계에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에, 상사의 손님이 하는 요청은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
수칙이 몇 개나 있어?
고든 장관님께서 2cm 두께의 수첩을 주셨어요.
한 가지 미리 말씀드릴게요. 제가 가장 먼저 외운 수칙이자, 가장 중요한 수칙인데요……
어떤 난관을 마주하더라도, 상사의 지시는 무조건 최선을 다해 완수해야 한다. 변명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
먹기 힘들면 굳이 먹지 않아도 돼.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제 말은 대접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었어요.
사실 나도 수칙이 하나 있어. 아주 단순한 거지만.
무엇인가요?
나는 카즈델 출신이야. 거기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 바로, 음식은 소중하기 때문에 음식 앞에서는 누구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거지.
머시아, 지금 내 점심을 들고 있는 김에 솔직하게 말해 줘.
고든이 대체 나랑 무슨 '협상'을 하겠다는 거지?
보고하겠습니다! 저희 프로젝트의 핵심 컨셉은, '사람은 돌아도 술은 돌지 않는다'입니다. 원심력으로 중력을 대체해 무중력 우주 순항 체험과 시음 체험의 완벽한 융합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럭키 치스티비스트' 부유 회전바! 당신에게 '하늘'과 '땅'이 빙글빙글 도는 체험……!!!
그만. 광고 문구는 됐고, 우리는 공학적 관점에서의 개선에 대해 평가와 질문만 할 겁니다.
다른 테스터는? 전시품을 개선한 뒤 새로운 피드백은 없나요?
웩……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래요! 스카이 씨, 저희 재검사 통과했죠? 입주 자격 취소 안 되는 거죠?
애스펜 대표님, 공학 보고서 평가와 테스터 피드백 결과, 럭키 치스티비스트의 이 부유 회전바는 불합격이에요.
에너지 공급 불안정 같은 기술적 문제는 저희도 개선하고 싶지만, 시간이 필요해서……
이 파크의 규정대로 사흘 드렸잖아요.
하지만, 연구진이 해결책을 논의하는 데만 최소 닷새는 걸린다니까요!
'프로펠러 파라다이스'의 기업 변동 수량은 트리마운츠 중심 광장의 교차로만큼 많아요. 운전기사들이 각자 처리할 일로 바쁘다고 해서 신호등에게 사정을 봐달라고 하진 않잖아요?
그럼 다른 방법은…… 참! 저희가 고용한 테스터가 거의 100여 명이 되는데, 몽땅 해고하면 그 돈으로 연구원을 더 뽑을 수 있을 거예요!
아니, 대표님, 어제 저희한테는 분명……
입 다물어!
애스펜 대표님, 제가 '럭키 치스티비스트'의 등록 자료를 확인해 봤는데요.
원래는 어느 작은 마을의 잡화점 주인이었더군요. 은행이 하늘 사업 대출에 대한 심사 기준을 완화하긴 했지만, 현재 대표님의 전문성으로는 사업을 부유 기술 연구로 전환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테라 최초의, 그리고 단 하나뿐인 부유 섹터예요.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위상에 걸맞아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그 보고서만은 찢지 말아 주세요. 가진 돈을 몽땅 '럭키 치스티비스트'에 투자했단 말입니다. 제발요……
그래서, 그렇게 끝났어?
이틀 뒤면 또 트리마운츠의 빌딩 유리창이나 닦는 신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웩……
마음껏 토해, 우리도 잠깐이나마 하늘 생활을 체험했잖아. 다시 개척지로 돌아가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변변치 않은데…… 그땐 토하고 싶어도 토할 게 없을 거야.
……
전시회 개막 전 엔지니어링 점검을 포기하라고? 말도 안 돼.
고든 장관님께서는 지금 사이언스 파크의 모든 연구 인력이 마무리 작업에 분초를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점검 때문에 프로젝트를 중단한다면 전시회 개막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임님도 각 기업들과의 반복된 소통을 줄이면, 라인 랩의 연구에 더 전념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장관님은 늘 당신을 배려하고 계세요.
배려?
컬럼비아에 막 왔을 때, 나는 황무지에서 수 년을 떠돌았어. 개척대를 위해 집도 지었고, 수송대를 대신해 강도도 물리쳤어. 일이 손에 익기 전까지는 하루하루가 버티기 너무 힘들었지.
만약 그때 고든 같은 마음씨 착한 인간이 내가 잘 못하는 일을 전부 처리해 줬다면……
그건 분명 행운이었겠네요.
아니, 난 분명 황무지에서 죽었을 거야.
……
게다가, 우리한테 엔지니어링 점검을 포기하라는 건 고든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죠?
네가 고든이 협상할 때 쓰는 말투를 너무 똑같이 흉내 내서, 말속에 숨은 함정이랑 허점까지 다 드러났어.
나는 카우투스가 아니야. 구멍에 들어가는 건 질색이지.
말해 봐, 고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뭐지?
……장관님 말씀대로, 역시 똑똑하고 과감한 분이시네요.
그렇다면 당신도 아시겠네요. 장관님께서 이 파크의 행정 관리를 장악하고 있긴 하지만, 진정으로 여론의 향방을 좌우하는 건 라인 랩입니다.
장관님께서는 이런 중요한 시점에 실수가 나오는 걸 원치 않으세요.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각 프로젝트의 진척에 따라 이 리스트를 작성했는데, 리스트의 순서대로 점검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프로젝트 권한의 소유권을 떠나서, 점검 절차가 각 프로젝트의 진행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충돌을 최대한 미리 방지할 수 있습니다.
주임님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건, 장관님의 부담도 줄어든다는 뜻이니까요.
……
고든이 이 리스트에 어떤 꼼수를 부렸는지는 관심 없어. 서로 한 발씩 양보해, 합의가 이뤄진 걸로 치자.
리스트를 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스티 주임님. 이제 더는 방해하지 않을게요.
마지막 질문. 아까의 대화에서 너는 또 어떤 수칙을 따른 거야?
비서 수칙 열둘. 상사를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 협상할 때는 상사가 한 말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반복한다. 밖에서는 비서가 곧 상사의 절대적인 대변인이니까.
하지만, 내스티 주임님은……
뭐?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고든 장관님은 라인 랩의 엔지니어링과 주임이 얼마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인지, 몇 번이고 강조하셨어요.
오늘 혹여라도 주임님 사무실 앞에서 밤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가방에 담요까지 챙겨왔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장관님이 말씀하셨던 거랑 다릅니다. 비록 주임님은 타인의 배려를 원하지 않지만, 날카롭게 파고들어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마음 편히 여유로운 점심을 즐길 시간이 생겼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