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붉게 물든 벨벳

AD-ST-1사주된 죽음

사이드 스토리브릿지2025-11-13

랭크우드의 촬영 섹터에서 《미스 듀폰의 죽음》의 마지막 주 촬영이 진행되는 가운데, 전달자를 연기한 루시안이 실수로 듀폰 경을 '살해'하게 된다. 하지만 상대 배우의 몸에서 흘러나온 건 사전에 준비한 피 주머니가 아니었다.

등장 오퍼레이터: 티피, 미스 크리스틴


그는 시든 꽃잎으로 엮은 잠자리를 떠났다.



그건 풍년의 징조라고, 세상은 속삭였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밤의 품속을 방랑했고,



누군가는 모닥불 앞에서 술잔을 나눴으며,



누군가는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이야기의 갈림길에서 길을 잃었다.

나팔을 불려는 입술을 막아라, 그는 말했다.



불멸을 목도할 눈을 가려라, 그는 말했다.



새끼 파울비스트를 부추겨



고통의 열매를 쪼아먹게 하고,



갓난아이를 내몰아



기쁜 죽음에 닿게 한다.

잡초는 언제나 제 길을 찾아낸다.



눈물과 거짓, 그리고 망상 덕분에



그는 시든 꽃잎으로 엮은 잠자리를 떠났다.



흩날리는 먼지 속에 자신의 묘비명을 새기며,



그는 언젠가 사람들에게 경배받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말 많은 용병

어떻게 됐어? 미스 듀폰은 아직도 방에 틀어박혀서 안 나오려고 해?

걱정하는 메이드

벌써 사흘째예요. 식사도 잘 안 하시고. 계속 이러시면……

말 많은 용병

이렇게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는데.

말 많은 용병

듀폰가의 고아, 한때 빅토리아에서 가장 고귀했던 혈통의 후계자잖아. 게다가 그 기품과 지성이라면, 그 셋 중 누구를 배우자로 선택해도 지나치지 않아.

걱정하는 메이드

그러니 저렇게 괴로워하시는 거죠.

걱정하는 메이드

록펠러 가문의 세 형제는 꼭 찍어낸 것처럼 똑같이 준수한 외모를 지녔지만, 성격과 하는 일은 완전 달라요.

걱정하는 메이드

슬기로운 학자, 용감한 군인, 낭만적인 시인이 한꺼번에 구애해 온다면, 남은 인생을 누구와 함께해야 할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걱정하는 메이드

게다가 미스 듀폰께서 어떤 록펠러를 선택하시든, 다른 두 록펠러에게는 큰 상처가 될 테니까요.

걱정하는 메이드

아이고, 세상에!

말 많은 용병

아이고…… 세상에! 난 빨리 좀 결정했으면 좋겠어. 다음 달에 결혼식을 올리면 제일 좋고. 거액의 재산을 소유한 록펠러 가문이니, 분명 우리도 좀 챙겨주겠지!

걱정하는 메이드

당신도 참……

???

컷!

걱정하는 메이드

감독님?


스티븐

하아…… 연기가 왜 이렇게 딱딱한지.

스티븐

(작은 목소리로) 애초에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장면이었으니, 그냥 다 잘라내고 상징적인 인서트나 몇 개 넣을까……

스티븐

(작은 목소리로) 감독 일에 열심히 간섭 중인 우리 제작자님께서, 이런 별거 아닌 것에 딴지를 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스티븐

둘은 가봐. 시나리오 '조정'이 있을 거니까…… 이따 정식 촬영 때는 안 와도 돼.

말 많은 용병

또 '조정'이야? 우리 감독은 정말 변덕이 심하네.

걱정하는 메이드

쉿……

스티븐

자자, 여러분, 아직 휴식 시간이 아니라고. 조용…… 조용!

스티븐

두 달 내내 이어진 강행군에 모두 지쳤다는 거 알아. 이제 이동 섹터는 도심부를 떠났으니 카지노도 상점가도 없고, 셀프바에 남은 음료도 죽도록 맛없겠지……

스티븐

하지만! 좋든 나쁘든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어. 시간은 소중하잖아. 내 필름도 마찬가지고.

스티븐

《미스 듀폰의 죽음》은 요즘 랭크우드에서 보기 드문 지난 세대 배경의 비극적인 소재야. 한 귀족 여인의 황당한 혼사를 통해 컬럼비아 세대교체의 진통을 담아냈지……

스티븐

최종 상영 때 그냥 돈세탁용 쓰레기처럼 보이지 않길 바란다고!

스티븐

리허설을 계속하지.

스티븐

《미스 듀폰의 죽음》, 저택 발코니, 3번 신…… 멜라니, 마이클, 두 사람 차례야.


멜라니

……

마이클

멜라니 씨, 왜 그러시죠?

멜라니

아가, 내가 왜 이러는 것 같니?

마이클

아, 잊고 있었네요. 제작팀의 베테랑이신 당신을 제가 스탠바이 상태로 1분이나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됐는데요.

멜라니

내가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거니?

마이클

아니요, 그럴 리가요. 당신은 한때 그 마리안 씨와 함께 이름을 날렸던, 랭크우드에서 최고 인기의 여배우였으니까요……

멜라니

경력, 신분, 규칙…… 마음속으로는 이런 걸 얼마든지 비웃어도 되지만, 현장에서는 반드시 존중해야 해.

마이클

사과드리겠습니다.

스티븐

그럼 두 사람, 이제 시작해도 될까?

스티븐

마이클, 1인 3역은 엄청난 도전이야. 다시는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지금은 용감한 군인인 둘째 록펠러 역이니, 헷갈리지 말고.

스티븐

너는 미스 듀폰의 거처에 와서 형이 선물한 꽃을 버렸고, 동생이 보낸 러브레터를 찢어버렸어.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의 방으로 달려가 마음을 표현하는 거야!

스티븐

모두 조용…… 레디, 액션!

마이클

날 믿어주시오, 사랑하는 그대여. 난 다른 두 록펠러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고 있소!

멜라니

록펠러, 달콤한 말이라면 이미 질리도록 들었어요.

멜라니

만약 제가 듀폰가의 후계자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우리의 결혼이 당신에게 더 많은 부를 가져다주지도, 록펠러 가문의 사교계 진출이 더 수월해지게 하지도 못했다면, 그래도 당신은 저를……

마이클

아니, 이건 한 남자의 전략적 발언이나 헤픈 고백이 아니오.

마이클

그대도 알다시피, 나는 형님만큼 박학다식하지도, 아우만큼 눈치가 빠르지도 않소. 나는 그저 내 마음을 전하고 있을 뿐이오.

멜라니

그걸, 어떻게 증명하실 건가요?

마이클

나는 방금 전장에서 돌아왔소. 죽음을 무릅쓰고 말이오.

마이클

그거 아시오? 포탄이 내 옆에서 터져, 내 육체와 의식이 하늘로 떠올랐을 때, 내 생명이 거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했을 때……

마이클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대의 얼굴, 오직 그대의 미소뿐이었소!

멜라니

……

마이클

……

멜라니

……

마이클

(작은 목소리로) 멜라니 씨, 다음 대사를……

멜라니

징그러워 죽겠네.

마이클

……네?

멜라니

어떤 군인이 전장의 참상을 얘기하면서 윙크를 해?! 네 그 끈적이는 말투는 파리조차도 바닥에 달라붙어 움직일 수 없겠어!

멜라니

네가 두 달 동안 이 섹터의 여자란 여자는 싹 다 한 번씩 건드렸다는 걸 알아. 하지만 마이클, 네 사생활을 카메라 안에까지 가져오진 마……

멜라니

모두가 다 네 그 요란하게 움직이는 귀와 붉은 꼬리에 넘어갈 멍청한 금발 계집애는 아니니까.


마리온

그, 금발의 멍청한……

스티븐

마, 마리온, 언제 왔어?

마리온

감독, 배우들이 리허설할 때 스타일리스트가 현장에서 의상 체크를 하는 게 무슨 문제라도 돼?

마리온

아니면, 감독도 제작팀 내부에 떠도는 소문을 믿기라도 하는 거야?

스티븐

아, 아니, 아니야.

스티븐

그럼 계속…… 마이클, 최대한 등장인물 설정에 맞춰서 연기해야지. 안 그러면 진정성이 없어 보여.

스티븐

둘째 록펠러의 고백에 진정성이 없으면, 미스 듀폰이 정말 힘든 결정을 해야 한다는 걸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없잖아.

스티븐

두 사람은 잠시 쉬어. 다음 순서를 먼저 확인할 테니까.

스티븐

애브너?

애브너

왜?

스티븐

다음 장면은 좀 더 분위기 있는 장면으로 연결할 거야.

애브너

알겠어. 어제 정한 대로 하면 되잖아.

스티븐

그렇다면 그 금속 선반에서 조금 떨어져 줄래? 튀어나온 나사에 렌즈가 긁힐 것 같잖아.

스티븐

네가 랭크우드 최우수 촬영상 수상자라고 믿어야 할까, 아니면 전문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카메라맨이라고 믿어야 할까?

애브너

둘 다야, 됐냐?

스티븐

너한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애브너

그리 심각하게 굴지 말고, 친구여.

스티븐

……


스티븐

미스 듀폰과 둘째 록펠러의 대화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카메라 앵글도 발코니에서 멀어진다……

스티븐

계단 아래로 이동하면서 초상화, 골동품 꽃병을 훑고, 와인색 커튼이 달린 로비를 비춘다.

스티븐

바로 이때, 로비의 문이 열린다.

스티븐

바깥의 비바람 소리가 이 고요한 저택에 들이닥치고, 카메라가 쫓아가자 앵글에는 희미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난다……

우아하고 신비로운 생물

야옹~

스티븐

검은 그림자?!

스티븐

으아악, 뭐야 이건? 유령이야? 소품이야? 내 환각이야? 아니면 누군가의 *랭크우드 촬영장 은어* 애완동물이야?

스티븐

이런 정체 모를 녀석이 촬영장에 들어오면, 어떤 재난이 닥쳐오는지 몰라서 그래?!

우아하고 신비로운 생물

……


스티븐

얼른 잡아, 애브너! 바닥의 촬영 레일을 건드리지 못하게 막아!

애브너

내 손에 든 거 안 보여? 이 빌어먹을 카메라를 부숴도 되는 거면, 바로 그렇게 해줄게!

애브너

마리온, 네 쪽으로 갔어.

마리온

뭐, 내 손은 놀고 있다는 거야?! 옷에 주름이라도 지면, 대신 제작자한테 혼나주게?

마리온

못 날뛰게 얼른 잡아!

우아하고 신비로운 생물

야옹……

우아하고 신비로운 생물은 바닥에 깔린 케이블과 정밀 기자재를 지나다니며 스튜디오를 누볐다. 살랑거리는 두 개의 꼬리에,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마리온

티피, 배경 작업은 그만! 그리고 소품팀 인턴도……

티피

얘한테도 이름이 있는데 말이야. 모. 이. 라.

모이라

괜찮아, 티피.

티피

몰리, 넌 사람이 너무 좋은 게 문제야. 다들 너를 무시하잖아!

마리온

아무튼, 둘 다 저 녀석 좀 잡아!

모이라

머, 멈췄다.

티피

와…… 내가 어젯밤에 공포영화에서 본 그 괴물보다 더 신기하게 생겼네!

티피

배경 작업할 때 네 모습 좀 참고해도 될까?

우아하고 신비로운 생물

야옹……

우아하고 신비로운 생물은 소품 상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 약간 불쾌한 듯 눈앞에 있는 두 소녀를 바라보았다.

모이라는 엉겁결에 허리를 굽히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 짙푸른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그녀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순간, 그 생물은 스튜디오에서 자취를 감췄다.

모이라

……

스티븐

드디어……

마리온

뭐 하는 거야? 왜 그냥 눈앞에서 사라지게 내버려둔 건데?

마이클

그만해, 마리온.

멜라니

어머, 마리온, 네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나 같은데, 왜 엉뚱한 데 화풀이하는 걸까?

마리온

당신……

???

너희, 싸움은 밖에 나가서 해. 섹터 밖까지 나가주면 더 좋고.

???

거기라면 직업 정신이고 뭐고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스티븐

그레타.

그레타

자자, 계속합시다.

스티븐

나는 또 우리 제작자님께서 촬영 진도가 늦어졌다고 원망할 줄 알았는데.

그레타

난 그렇게 가혹한 사람이 아니야, 스티븐. 더군다나 방금 그 레이디가 나타났다는 건, 우리의 촬영이 엄청난 서프라이즈를 맞이한다는 뜻이니까.

스티븐

레이디…… 라니?

스티븐

그 말은…… 방금 그 녀석의 정체를 안다는 건가?

그레타

물론.

그레타

내가 직접 초대한 손님의 동반자야…… 그녀가 여기 나타났다는 건, 그 손님이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지……

그레타

다음 장면에서 '전달자' 역을 맡아줄 사람.

그레타

내 말이 맞지……?

그레타

루시안.

루시안

……말한 대로다.

루시안

미스 크리스틴은 자유분방한 친구라, 아무도 그녀의 의지와 행동에 간섭할 수 없지.

루시안

그러니까, 내가 대신 모두에게 사과하겠다.

마이클

잠깐, 이렇게 갑자기 배우를 교체해도 되나요? 하물며 이런 정체도 알 수 없는 기생오라비 같은……

그레타

그냥 단역에 불과할 뿐.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잘생긴 마이클.

마이클

……

스티븐

이건 그레타랑 이미 합의된 일이야.

마이클

알겠어요.

그레타

루시안, 드디어 결정해 줘서 너무나 기뻐. 영화는 연극과 많이 달라서,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었을 거야.

그레타

솔직히 이 의상은 당신에게 너무나 잘 어울려. 그때 초대하길 잘했어. 당신이라면 반드시 랭크우드의 찬란한 별이 될 거야.

루시안

그러길 바라지.

스티븐

자, 여러분, 시간이 많이 지체됐어. 모두 스탠바이 됐으니까, 리허설을 계속하자고.

스티븐

루시안, 대사는 숙지했겠지?

루시안

물론.

스티븐

좋아…… 《미스 듀폰의 죽음》, 저택 로비, 4번 신, 레디, 액션.


스티븐

둘째 록펠러가 발코니에서 미스 듀폰에게 진심을 고백할 때 멀리서 온 한 젊은 전달자가 로비의 문을 연다.

루시안

안녕하십니까.

스티븐

전달자를 맞이한 건 미스 듀폰의 오빠, 수심이 가득해 보이는 듀폰 경……

루시안

……

스티븐

세상에, 듀폰 경은 어디 갔어?

스티븐

달. 튼!!!


스티븐

달튼 이 *랭크우드 촬영장 은어*가 또 어디서 술 처마시고 있는 거 아냐?

스티븐

코디네이터? 셸리?

???

여, 여기 있습니다.

셸리

후…… 시, 시간에 맞춰서 다행이네요…… 달튼 씨 오셨어요…… 제가 찾아왔습니다!

달튼

(술 취한 눈빛)

달튼

(거침없는 트림)

셸리

대기실에서 인원 확인할 때 달튼 씨가 없어진 걸 발견했어요.

셸리

그래서 푸드트럭, 셀프바, 야외 세트장 휴게소, 술이 있는 곳을 전부 찾았는데…… 결국 길가의 풀숲에서 찾았어요.

달튼

칼…… 칼을…… 찾았어!

셸리

칼을 찾고 계셨대요. 전달자가 듀폰 경을 죽일 때 쓰는 중요한 소품이 없으면, 듀폰 경이 '죽을 수 없다'고……

셸리

도대체 주정뱅이더러 소품을 찾아오라고 한 게 누굽니까? 모이라, 당신네 소품팀장은?

모이라

저, 저는 몰라요……

스티븐

그만해, 찾았으면 됐어.

스티븐

의상! 빨리 의상 다시 정리해 줘!

스티븐

달튼, 무엇을 연기해야 하는지는 기억하고 있어?

달튼

물론이지…… 시체잖아, 하하하. 내가 제일 잘 하는 거.

멜라니

칠칠치 못하긴.

달튼

딸꾹, 뭐라고?

멜라니

미안하지만, 당신 같은 인간은 정말 싫어.

멜라니

달튼, 당시 개척 영화가 엄청난 붐을 일으켰을 때, 당신은 랭크우드 모든 제작자들의 섭외 1순위였고, 수많은 영화 팬들의 우상이었어.

멜라니

계속 그렇게 밑바닥에서 썩어갈 셈이야?

달튼

네, 네가 뭘 알아?

멜라니

당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아. 다만, 적어도 신인 앞에서 체통은 지켰어야지.

멜라니

……이건 랭크우드의 룰이기도 하고.

멜라니

오늘 당신의 상대역은 영화 카메라 앞에 처음 서는 신인이야.

달튼

……

달튼

알겠어, 알겠다니까.


달튼

딸꾹…… 이름이?

루시안

루시안. 팬텀이라고 불러도 되고.

달튼

뭐든.

루시안

……

달튼

미안하구먼, 젊은 친구. 오늘 첫 촬영일 줄은 몰랐어. 하지만 나는 대선배니까 걱정하지 말게. 취하긴 했어도 충분히 리드할 수 있다고.

달튼

잘 들어. 나는 네가 가져온 소식에 너무 절망한 나머지 널 죽이려 할 거야…… 딸꾹……

달튼

우리 둘이서 다투는 와중에 네가 이 칼을 빼앗아 나한테 휘둘러…… 자, 아주 가볍고, 찌르면 들어가는 가짜 칼이야. 피 주머니는 내 가슴팍 주머니에 넣었으니까, 살짝만 눌러도 바로 터질 거고.

달튼

참, 절대 '칼을 빼앗는 타이밍' 같은 디테일에 신경 쓰지 마. 그러면 역할에 몰입하지 못하니까, 알겠나?

루시안

듀폰 경, 이미 공문을 세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루시안

문제가 없다면 사람들을 모아주시겠습니까? 저는 사람들 앞에서 낭독해야 합니다.

달튼

어?

눈앞의 젊은이와 눈을 마주친 달튼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고, 올라오는 트림을 억지로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건 촬영장에 처음 온 신인이 아니라, 저 멀리 빅토리아에서 온 전달자였다. 눈은 피곤해 보였지만 굉장히 맑았다.

스튜디오가 전체가 고요해졌다. 감독이 액션을 외치지 않았지만, 달튼은 몰입하는 상대의 눈빛을 느꼈고, 애브너의 카메라도 이미 이쪽을 향해 있었다……

'타고난 연기자', 달튼은 생각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달튼

아니, 이 빅토리아 황실의 공문을 공개하게 둘 순 없지.

달튼

사람들에게 '듀폰가의 핏줄'이 모두 거짓이라는 게 알려지게 되면, 내 여동생은 어느 록펠러와도 이뤄질 수 없으니까!

달튼

그들의 부, 미래에 내 것이 될 재산, 그리고 내 남은 인생은 구멍 뚫린 풍선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 거야!

달튼

그냥 돌아서서 떠나는 게 어때? 여기 온 적이 없는 걸로 하지…… 돈은 주지, 얼마든지 주겠어!

루시안

저에게 그런 요구를 할 권리는 없습니다.

달튼

일개 전달자 따위가! 이건 너랑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루시안

진실.

달튼

뭐?

루시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확실히 저와 무관합니다. 하지만 저는 진실을 전하러 왔습니다, 선생님.

루시안

제가 그냥 떠난다고 해도, '듀폰가'의 진실은 영원히 당신의 문을 두드릴 겁니다.

루시안

저는 당신의 불운을 가져갈 수 없고, 그저 불운이 왔음을 선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원하든 말든.

루시안

이게 바로 제 슬픈 숙명입니다!

달튼

……

달튼은 젊은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과 슬픔을 봤다고 확신했다.

그의 취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대사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사는 이미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고통? 슬픔?”

“가소롭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분노에 휩싸인 달튼은 소매에서 칼을 꺼내 눈앞의 젊은이를 향해 휘둘렀다……

[CG: 62_i01_1]
[CG: 62_i01_1]

듀폰 경과 젊은 전달자가 날카로운 칼을 두고 다퉜다. 다음 순간, 칼은 상대의 손에 넘어갔고, 두 사람은 마치 수도 없이 연습했던 것처럼 호흡이 척척 맞았다.

[CG: 62_i01_1]
달튼

고통?

달튼

슬픔?

달튼

가소롭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달튼

곧 내 손에 들어올 그 모든 것을 망칠 수는 없어!

[CG: 62_i01_1]
루시안

말했잖습니까, 저는 진실을 전달하러 왔을 뿐이라고!

루시안

빅토리아의 귀족 저택, 가울의 전쟁 유적, 라테라노의 대성당, 이베리아의 해안선……

루시안

전달자로서 저는 테라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무언의 부고를 전달했고, 수많은 터무니없는 비극을 목격했습니다. '듀폰가'도 그중 하나일 뿐입니다.

루시안

제가 비극을 위해 방문한 건 아니었지만, 진실은 언제나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루시안

이것이야말로 제 슬픈 숙명입니다!

[CG: 62_i01_1]
달튼

닥쳐!

[CG: 62_i01_1]

궁지에 몰린 듀폰 경은 맞은편의 사내에게 달려들었고, 몸싸움 속에서 전달자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젊은 전달자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더니, 이내 다시 칼을 움켜쥐었다. 다음 순간, 듀폰 경은 날카로운 칼끝이 자신의 가슴에 닿았음을 알아차렸다……

[CG: 62_i01_2]

이 젊은이는 분명 숙명의 무게를 느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쓰러진 시체, 붉은 피, 장미 꽃잎, 비바람 소리.

루시안

……


스티븐

컷.

스티븐

애브너, 다 찍었지? 이거 본편에 그대로 써도 될 거 같은데!

애브너

맞아!

그레타

(박수를 친다)

마이클

잠깐만요 감독님, 저 사람 정말 영화 처음 찍는 거 맞아요?

스티븐

그레타 말로는 전에 한 유랑극단에 있었다고 했어.

마이클

연극배우였네……

스티븐

그것보다, 나는 달튼 때문에 더 놀랐어. 이렇게 호소력 짙은 연기는 도대체 얼마 만인지……

스티븐

달튼, 그만 일어나. 촬영 끝났어! 오늘 한잔할 생각이면 내가 끝까지 어울려 주지. 하하하……

스티븐

다, 달튼?

스티븐

이상한데, 왜 아직 안 일어나고 있는 거지? 셸리, 얼른 가봐!

공기가 얼어붙었다.

달튼은 계단 앞에 누운 채 셸리가 올 때까지도 일어나지 않았다.

[CG: 62_i13]

양복 속 피 주머니는 이미 다 흘러나왔지만, 그의 가슴에서 번지는 핏자국은 계속 커지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든 셸리는 온몸을 떨며 바닥에 흐르는 핏자국을 향해 손을 뻗었다……

미지근하고, 끈적이는, 금속 냄새가 났다.

셸리

이건…… 진짜 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