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9영웅의 엔딩
비나는 왕관을 훔친 자를 떠나 보냈고, 그녀에게 진위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해준다. 이야기 주인공인 비나는 전쟁 승리 후, 왕좌에 앉아 있던 알리스테어 2세로부터 대관을 거절하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비나 빅토리아
도시 방위군 임시 감금실1098년 12월 25일 8:32 P.M.
후우…… 드디어 2구역 청소가 끝났네. 이제 남은 건 4구역인가. 어때요, 당직 업무도 편하지 않죠? 잠깐 쉴까요?
제 청소 속도는 당신보다 느리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제가 감염자라고 해서 굳이 배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헤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그냥 당신은 많은 일을 겪었으니까 역시 정신적으로 피곤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는 거죠.
……저는 분명…… 훗, 왕관 건은 이미 많이 생각해 봤어요.
일시적인 충동이겠죠.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당신만이 아닐 거예요.
그나저나, 하룻밤 사이에 다들 감염자를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 같네요.
그건 우리가 런디니움에 있기 때문이죠. 의회와 의장님이 반포한 정책 덕분에, 적어도 사람들이 공포와 혐오를 직접 드러내지는 않아요.
컬럼비아 친구 말로는 다른 곳은 여전하다고 합니다만.
……뭐 아무튼, 청소를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니면 또 대장에게 벌 받을 뻔했어요.
저야말로 제 행동을 제한하지 않는 당신들에게 고마워해야 하겠죠.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저도 마음이 놓입니다.
그래도 뭐, 의회의 처벌에 관해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을 거예요. 런디니움에는 감금 장소가 그렇게 많은데, 왜 굳이 도시 방위군의 독방을 골랐겠어요?
다들 전우이자 옛 친구고, 당신을 챙겨 줄 수 있어서 그런 거겠죠? 걱정 마세요. 며칠 지나 관심이 식으면 대충 이유를 붙여서 집에 갈 수 있게 될 거라니까요.
괜히 의장실 가서 항의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전혀 상황을 모르는 거예요. 비나 대장의 됨됨이는 우리가 잘 알잖아요?
……
응? 어디 불편한가요? 먼저 쉬실래요?
당신은…… 의장님이 저를 풀어 줄 거라고 생각하나요?
훗, 당분간은 여기서 마음 편히 지내시죠. 지금 바깥은 엄청 시끄러워요.
대장이 당신에게 라디오와 신문을 주지 않는 것도, 그걸 알면 괜한 생각을 할까 봐 걱정해서 그런 거예요.
……
아 그래, 어떻게 해도 긴장된다고 하신다면 술 때문에 자주 독방 신세 지는 제 형제가 여기 좋은 걸 숨겨놨죠.
지금 가져올게요.
다이앤은 쓴웃음을 지으며 바깥의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하지만 배관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외에는, 도시 방위군이 훈련하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이곳으로 보내진 후, 외부와의 모든 연결이 대부분 끊겨버렸다.
……엘리시오 님은 잘 지내고 계시려나.
미리 말해야 했는데. 지금쯤 걱정하고 계시겠지……
그래. 그 사람은 네가 처분을 피할 수 있도록 지인들을 모조리 찾아다니고 있다.
의장님……
다행히 저들은 너를 범죄자처럼 취급하지는 않는군.
이것도 당신 지시인가요?
아니, 다들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 네가 이런 판결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너 때문에 많은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너나 내 친구…… 그리고 우리 공통의 전우, 게다가 너를 모르는 시민들도.
……
……다이앤 씨, 그놈이 숨겨 둔 고급술을 몰래 가져왔어요.
그는 힘차게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읍!
병사는 다이앤과 비나 앞에 도착하기 직전에 억지로 몸을 제어해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는 입에 넣은 술을 뱉지도 삼키지도 못했다.
그는 들고 있던 병을 숨기고 비나에게 경례할 수밖에 없었다.
윽……
숨기지 않아도 된다, 파텔.
분명 병영 내부에서 술은 금지되어 있다고 혼 씨가 그랬는데.
꿀꺽…… 켁, 콜록콜록……
네, 비나 대장! 그런데 이건 저기…… 그……
혼 씨에겐 말하지 않겠다. 대신 너도 내가 다이앤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 줘.
그리고 술은 두고 가라. 다이앤에게 주려던 거지?
윽…… 알겠습니다. 비나 대장, 굳이 다이앤 씨를 찾아오신 건 앞으로의 처우 때문이죠?
그래.
봐요!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다이앤 씨!
그럼 나는 4구역을 청소하러나 가 볼까. 오늘은 하루 종일 열심히 일만 해서, 아무것도 못 봤네~
파텔이 두고 간 술, 마셔 보겠나? 향이 좋군.
다이앤이 조금 풀이 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젓는다.
그럼 내가 먼저 조금 마셔도 될까? 하, 공작들이랑 회의하느라 목이 말라서 말이야.
의장님, 당신이 저를 여기로 보내신 건 정말로……
옛 친구가 옆에 있으면 조금이라도 네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는 않잖아?
……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네가 상상하는 만큼 의지가 강하지 않아. 지금까지의 내 생활은 너나 대부분의 런디니움 사람과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지.
다이앤, 나는 분명 망설였다.
즉 의장님이 오신 것은, 제 처벌에 대해 결론이 나왔기 때문인가요?
후우…… 의회의 결정을 직접 전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너에게 이별을 고해야 하니까. 전 연합군 제6종대 제10보병단 중위 다이앤 웨버,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전쟁 영웅이여.
고향을 위해 힘써 준 모든 노력에 감사한다.
의회입니까…… 알겠습니다, 의장님. 언제죠?
내일이다.
알겠습니다.
후회한 적 있나?
당신은요?
가장 후회하는 건, 전쟁이 끝났을 때 바로 이 옷을 벗어 던지고 노포트 구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겠지.
하핫, 당신이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압니다. 시즈가 우리 고향을 버리지 않듯이, 런디니움 의장도 빅토리아를 포기하지 못하죠.
……하.
저도 후회는 없습니다. 비나, 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상관없다.
우리는 몇 번이나 만났고 몇 번이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습니다. 하지만 오늘이 진정한 친구가 된 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비나, 제가 떠나기 전에 한잔 같이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혼자 성왕궁 서쪽 회당에 들어갔을 때, 모두가 안에서 나오는 사람이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웅은 마지막에 왕관을 쓰고 왕이 된다.”
베이커 거리의 그 오래된 서점에 있는 모든 동화책에도 반드시 이런 이야기가 있죠. 그 가게는 제가 입대하기 전에 가장 좋아했던 곳입니다.
역사의 목격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어요, 비나.
하지만 나는 너를,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원래라면 훌륭한 군주가 됐겠죠.
그건 내가 런디니움을 좋게 만들려는 사람이기 때문인가? 공개 처형된 그 국왕도 런디니움을 좋게 만들려고, 빅토리아를 좋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기대에 어긋나는 일도 있는 법이다.
때로는 자신의 올바름이 타인의 관점에선 틀릴 때도 있다. 나도 최근에야 간신히 그 사실을 깨달았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나도 답을 찾는 중이다, 다이앤.
내가 신뢰하는 어떤 사람이 그러더군.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내가 믿는 정의를 관철하도록 노력하라고.
아직 배우는 중이다…… 하지만 이 길이 이토록 고독할 줄이야.
취하셨군요…… 비나.
비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검을 뽑아 다이앤에게 건넸다.
아직 '왕의 숨결'을 기억하나?
기억합니다. 당신에게서 받은 검이죠.
그 전투 후에 이 검은 완전히 예리함을 잃었지. 그래서 장인들이 서둘러 밤낮으로 다시 벼려낸 다음 내게 보냈어.
이 새로운 검은 더 많고 무거운 기대를 짊어지고 있지……
다이앤, 이 검은 내게 무엇이 올바른 방향인지 매일같이 묻고 있어.
……빅토리아가 영원히 올바른 길을 걷게 하는 건 나도 의회도 아니라 너희다. 자신의 힘으로 우리 고향을 되찾은 모두야.
……비나, 마지막으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때 성왕궁 서쪽 회당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죠?
……무슨 얘기를 듣고 싶나.
베이커 거리의 오래된 서점에 전해지는 영웅 이야기인가? 아니면 재미없을 만큼 현실적인 진상?
하하.
다이앤은 힘차게 술을 들이켜고 차가운 검을 쓰다듬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예전 검이 더 좋았습니다…… 그 검을 쥐고 적을 쓰러트렸을 때는 빅토리아와 가장 친밀해진 순간이라고 느꼈습니다.
입대하기 전에 평범하게 생활했을 때는 이렇게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게다가 저에게는 이제 전쟁이 없는 평범한 생활을 차분히 음미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닌가요?
비나, 죄송합니다. 남은 술은 당신에게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이게 꼭 필요해요……
(흐느껴 울며) 이제 와서 죽음이 두렵다니. 저는 어떻게 된 걸까요.
(흐느껴 울며) 비나, 제가 완전히 취해버리기 전에 마지막 동화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눈물이 칼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뚝. 뚝.
다이앤…… 예전 이야기는 잘 알지 않나. 그 동화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너도 몸소 경험했어.
하지만 동화의 엔딩은 모를 수도 있겠군.
그날 나는 성왕궁 서쪽 회당에 들어가 살카즈 깃발을 뽑고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알현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
“알렉산드리나 비나 빅토리아.”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 사용되지 않았던 그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았지……
“내 아버지, 알리스테어 2세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알렉산드리나, 드디어 돌아왔느냐.
빅토리아의 딸이여, 내 곁으로 오거라.
비나는 국왕의 얼굴을 뚜렷하게 볼 수가 없었다.
금빛 가면이 금발과 하나로 섞여, 늠름하다는 것 이외에는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가 바로, 빅토리아.
나의 딸아. 너는 나를, 빅토리아를 두려워하느냐?
비나, 신하에게는 어떠한 두려움도 보여서는 안 된다. 네 선생에게도 그리 배웠을 터.
당신은 이미 죽었을 텐데.
26년 전, 놈들이 당신을 교수대에 매달아……
가소롭군, 감히 누가 빅토리아를 죽일 수 있는가!
그 탐욕스러운 콘도르윙들은 내 몸에서 살을 뜯어먹고 자신을 살찌우려고 했다.
그자들은 공포 때문에 자신의 왕을 죽이려고 획책하였으며, 아슬란의 영토에서 음식과 영양분을 빼앗기 쉽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자는 없다. 공작이든, 붉은 용이든. 우리가 바로 빅토리아의 심장이다!
그러니까, 이게 바로 왕의 안식처에 당신의 조각상이 완성되지 않았던 이유인가……
공작들은 당신을 매장하지 않았고, 당신은 계속 여기 있었다는 얘기인가.
그놈들은 나를 이 알현실에 가두기만 했을 뿐, 내 왕좌를 노릴 용기는 티끌만큼도 없었지. 하, 나약하기 그지없는 도둑놈들.
그놈들은 나의 백성을, 나의 증기 기사를, 우리를 두려워한다, 비나.
딸아, 말해 보거라. 나의 백성이 여전히 나를 그리워하느냐? 나의 기사가 여전히 우리의 왕궁을 지키고 있느냐?
……빅토리아인은 이미 국왕이 없는 일상에 적응했다. 그리고 당신의 기사는, 모두 죽었다.
빅토리아인의 손에.
……
그러면 너는 어떠하냐, 비나?
나는…… 이미 당신의 모습을 거의 다 잊었지.
그러하다면 여기로 와서, 내 가면을 벗기고 잘 보거라…… 네가 보는 것은 너 자신뿐이다. 알렉산드리나, 우리에게는 왕실의 피가 흐르고 있다.
……
미안하구나, 비나. 나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사실은 평온하고 강대한 빅토리아를 네 손에 넘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배신으로 인해, 20년 남짓 그저 이 왕좌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지.
하나 드디어 너를 만났다. 비나, 나의 지팡이를 받고, 나의 왕관을 쓰고……
우리의 백성에게 선언해라. 그들의 왕이 돌아왔다고.
우리 국토의 모든 어긋난 것들을 숙청하고, 왕실을 거역한 모든 겁쟁이를 벌하도록 해라. 영광은 불멸, 빅토리아는 이래야 하느니!
국왕의 지팡이가 왕좌에 무겁게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끝없이 울렸다.
……핏줄은 우리 힘의 근원이 아니야.
이 얼마나 그리운 말인가. 내 아버지 앞에서 내가 늘어놓던 망언 같구나.
하, 너는 아직 너무나도 미숙하다, 딸아. 많이 늦었지만 너에게 가르쳐 주도록 하마…… '왕권이란 무엇인가'를.
다만 반론할 권한도 주겠다.
알렉산드리나, 내 곁으로 와서 귀를 기울여라.
아니, 당신은 이미 죽었어, 폐하. 지금 이것들은 전부 제국의 영광에 도취된 잔향에 불과해.
내게 어떤 권력도 줄 필요 없어. 당신에게 내 신념의 굳건함을 증명할 필요도 없어.
……나는 그저 당신이 편안히 잠들길 바랄 뿐이야. 아버지.
비나는 해머를 움켜쥐고 계단을 올라 제국의 마지막 여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