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10안녕, 잘 있어
테레시아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박사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박사의 끝없는 기억 속에서, 테레시아는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테레시아는 아미야가 잠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미야는 박사의 배신도, 테레시아의 마지막 슬픔도 보지 못했다.
테레시아가 의장실의 마지막 자객을 말살하는 동안, 검은 왕관은 무사히 아미야의 손에 넘어갔다.
괜찮아, 아미야, 괜찮아……
다 끝났어.
테레시아는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고, 품에 안긴 아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앳되고 작은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
테레시아. 난 무수한 생명과 만 년의 시간으로 얻은 기회를 포기할 수 없어.
난 너희가 오리지늄의 계획을 돌파하게 둘 수 없어. 너희가…… 이 대지를 아름답지만 짧은 꿈으로 만들게 놔둘 수 없어.
그래서 아미야에게 상처를 준 거구나.
……
……마왕이 내 기억을 본 이상 우리가 더 길게 말해 봐야 득이 될 건 없겠지.
내가 원망스러워?
박사는 아미야에게 상처를 줬어, 그리고 켈시와 박사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게 되겠지.
이게 네가 지금 이곳의 생명들을 대하는 방식이야?
앞으로 있을 충돌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지 않을 거라고 최선을 다해 약속할게. 테레시스가 내게 한 약속이기도 해.
네가…… 죽어주기만 한다면.
……박사, 너는 지금 죄책감 때문에 내게 온 거야?
내가 한 일에 비하면, 죄책감의 무게는…… 너무 가벼워.
켈시조차 잘 모르는 그 시절, 우린 너무 많은 선택을 했어.
난 단지……
아미야가 자라고 나서도 날 기억하고 있다면, 나에 대해 묻는다면, 박사는…… 내가 어떻게 떠난 건지 사실대로 얘기해 줄 거야?
아니.
난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도울 거야.
오리지늄이 테라를 멸망시키기 전의 마지막 평안이라는 건가?
……미안. 그건 바꿀 수 없어.
너는 다 헛수고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아미야의 병을 고치고 싶어 하고 있어.
설령 머지않은 미래에 아미야의 가족, 고향, 그리고 너와 관계를 맺게 될 사람들, 모든 것이 전부 불변의 오리지늄이 되어버린다 해도.
눈앞에 있는 아이가 고통받는 걸 차마 보지 못하고 있어.
그게 박사의 진심이겠지. 너의 순수함이고, 너의 본성이야.
……
사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박사.
정말 기뻐. 켈시가 믿고 싶어 하는 박사, 우리를 믿으려고 하는 박사가 정말로 존재하고 있다는 게.
박사…… 오리지늄의 창조자…… {@nickname}. 박사는 모든 걸 무너뜨릴 독이자, 모든 것의 해독제이기도 해.
……뭐?
테레시아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 박사를 향해 두 팔을 뻗었고, 박사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박사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박사는 자신의 슬픔이 자신을 억지로 지탱해 준 이성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박사는 테레시아가 마스크 아래 감춰진 자신의 얼굴을 만지게 둘 수밖에 없었다.
울고 있구나, 박사……
맞아, 박사는 이런 사람이야. 자신의 나약함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내가 박사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단 걸 알면서도…… 여기까지 와줬어.
그래서, 난…… 여전히 박사를 믿어.
원래의 박사를 믿어.
비와 이슬, 밝은 햇살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거라고 믿어, {@nickname}.
낯익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얼굴. 테레시아는 그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여태껏 이렇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포착할 기회가 없었다.
테레시아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펴자, 눈앞의 경치가 마치 천 조각처럼 찢어졌다.
그리고 갈라진 틈에서 풀려버린 실을 천천히 뽑아내자, 남은 화면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박사의 기억이 끝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테레시아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 깊이 파고들어, 박사의 영혼을 구성하는 기억들을 한 땀 한 땀 창백하고 혼란스러운 파편의 실로 분해했다.
마치 아주 오래전 어느 날 밤, 어린 테레시아가 테레시스의 곁에서 재봉을 독학했던 때처럼.
기억은 거의 다 사라졌고, 영혼은 마지막 한 조각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 기억의 끝에는 어떤 뒷모습이 서 있었다. 테레시아는 그 뒷모습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건 박사이자, 박사가 아니었다.
테레시아, 내게 무슨 짓을 하고 있어?
마지막이긴 하지만, 갑자기 비밀로 하고 싶어졌어. 나를 너무 원망하진 말아줘, 박사.
너에게 할 말은 이거야……
“너 자신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