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9종지부
중상을 입은 테레시아는 마지막 힘을 다해 아미야에게 '문명의 존속'을 넘겨주었지만, 이때 테레시아의 눈앞에 박사가 나타나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아미야
아미야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검은 거품 속에서 잠든 일이었다.
테레시아는 아미야를 감싸고 있는 거품을 부드럽게 껴안았다.
이미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절망의 사막에는 아주 많은 공포의 그림자가 있었고, 끊임없이 희망을 찾는 인형을 쫓고 있었지.
검은 옷을 입은 그림자는 제일 제일 오래된, 절망과 슬픔의 메아리였어.
그림자에게 한 번 잡히면 다신 도망칠 수 없었지.
사막에서 인형은 엄청난 금은보화로 장식한 국왕을 만났어. 왕은 인형에게 원래 왔던 길로 돌아가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부를 주겠다고 약속했지.
국왕은 인형을 멈추려 했지만, 그래도 인형은 매혹적인 보석을 버리고 계속 전진했어.
하지만 이내……
검은 옷을 입은 그림자가 인형을 쫓아왔지. 그림자는 끊임없이 인형을 향해 달려들었어……
“쿵, 쿵, 쿵”……
인형은 바늘과 실로 만든 창을 뽑아 검은 그림자와 싸울 수밖에 없었어. 결국엔 그림자들의 발톱을 막아내고 앞으로 도망쳤지……
그러다 눈물이 모여 만들어진 큰 강가에 도착했어. 하지만 그곳엔 배도, 강 위에 떠 있는 부평초도 없어서, 인형은 헤엄쳐 건너갈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눈물이 몸에 묻자 인형의 몸은 점점 무거워졌고, 강바닥으로 가라앉게 되어……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
이게 이야기의 결말이라고? 아미야는 믿지 않았다.
혹시 테레시아가 잘못 읽어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미야는 애타는 마음으로 테레시아가 결말을 바꿔주길 바랐다……
테레시아 씨……
……응.
그 인형을…… 구할 순 없나요?
인형을 구하고 싶니?
네…… 정말 정말 구하고 싶어요……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아미야의 시선을 가리고 있던 거품이 걷히고 있었다.
테레시아의 모습이 점차 또렷해졌다……
눈에 들어온 풍경 속, 아미야는 땅바닥에 누운 검은 옷을 입은 그림자들에게서 검붉은 빛이 배어 나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들은…… 누구지? 언제 온 거지? 왜 바닥에 누워있지?
아미야는 테레시아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려 애를 썼다……
아미야에 눈에는 붉게 물들어버린 하얀 옷이 보였다. 그리고…… 눈꼬리가 붉어진 테레시아가 보였다.
테레시아 씨는 괜찮은 걸까?
아미야는 테레시아의 몸에 난 상처들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미야, 괜찮아.
난 여기 있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악당들은 모두 쓰러트렸어.
테레시아 씨, 무슨 일이에요?
아미야는 테레시아의 얼굴에 묻은 피로를 닦아내어 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미안, 나한텐 그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힘이 없나 봐.
하지만, 아미야라면 바꿀 수 있을 거야……
아미야는 이제 험난한 길을 걷게 될 거야. 눈물로 만들어진 강을 건너려 했던 인형처럼.
내가 아미야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오직 이 검은 왕관을 아미야에게 주는 것뿐이야.
만 년의 시간 동안 나의 종족은 역사의 제한 때문에 이 왕관을 잘못 사용해 왔었지.
왕관은 오염되고 구속됐지만, 이래서는 안 됐어.
저주를 깨부수고 싶다면, 운명을 깨부숴야 해…… 네 도움이 필요해.
결말을 바꾸고 싶니?
아미야는 “네”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이렇게라도 하면 테레시아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테레시아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내게 남은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왕관의 권한을 아미야에게 옮기기엔 충분해.
끝없는 정보가 아미야의 생각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대부분의 구역을 봉인해 뒀어.
……
아미야…… 미안해. 이렇게 무거운 왕관을 아미야가 쓰게 만들어서.
나는…… 아미야와 함께 할 날이 오래 있을 줄 알았어. 네가 다 클 때까지, 네가 용감하게 부모님이 떠났다는 사실을 마주할 그날까지, 아미야가 스스로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그날까지……
나를 대신해서 계속 나아갈 의향이 있는지 대답해 줄 그날까지……
그런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은 거 같아. 아미야.
내가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해서……
미안해, 아미야……
아미야는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입을 열 수도, 팔다리를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검은 칼날이 그녀의 가슴을 꿰뚫었다.
본래라면 고통을 느껴야 했지만, 그 검이 남긴 것은……
따뜻함, 기대로 가득한 따뜻함이었다.
아미야, 그것은 희망이자, 고통이야.
당혹스럽고, 망설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켈시가 영원히 곁에 있어 줄 거야.
켈시는 아미야의 탐구를 돕고, 존속의 비밀에 다시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줄 거야.
너라면 해낼 수 있겠지, 아미야……
왜냐면 넌 항상 나를 놀라게 할 만큼 강인한 아이였으니까.
후우……
정말 피곤하네.
고마워 아미야. 그동안 내게 즐거움을 줘서.
지금은 잠시만 쉬고 있으렴, 잘자……
안심하고 푹 자.
항상 네 곁에 있을게.
……
테레시아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미야!
테레시아는 고개를 들어 찾아온 사람을 보지 않았다.
왕관이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모였지만, 그녀의 숨결은 점점 약해져 갔다.
……박사. 여기 올 필요는 없었잖아.
……
느껴졌어…… 박사의 마음이. 박사의 과거가 보였어.
다른 곳에서 내가 죽는 걸 기다릴 수도 있었잖아. 이번엔 내가 도망치지도, 물러나지도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잖아.
아미야를 찾으러 온 거야? 아니면……
테레시아는 더 이상 그 사람의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 사람의 뒤에 있는 어둠 속에서, 자객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와 테레시아를 향했다.
이게 너의 대답이었구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