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T-1임관
의식이 끝나고, 교황의 의뢰를 받은 페데리코는 라테라노에서 출발해 황야에 숨겨진 수도원으로 출발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이그제큐터 디 엑스 포에데레
흔히 라테라노를 낙원이라고들 한다.
이곳은 자유롭고 즐거우며 질서 정연하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몇 안 되는 깨끗한 땅이다.
아이야, 너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느냐?
우리의 신성한 도시가 어떻게 세워졌고, 어떻게 유지되었으며,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왜 라테라노는 유일무이하고, 이 세상의 이상향, 천년 낙원이라 칭송받는지.
아이야, 너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만약 이 땅에 전쟁의 불길이 번져 모든 평화가 하루아침에 불타 버린다면……
이 세상은 과연 낙원이 단 하나뿐인 것을 허용할까?
비상사태입니다.
다시 경고합니다.
비상사태입니다.
……위기 등급을…… 평가 중입니다……
위기 등급: 최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자동으로 실행합니다.
시뮬레이션에 실패했습니다.
긴급 대응 시스템을 실행합니다.
적정 인원 명단을 출력 중입니다……
......
교황님, 사람들이 모두 도착했습니다.
고생했네.
정말 결정하셨습니까? 역대 교황을 제외하고는 이런 식으로 성도가 서임되는 전례는 없었습니다. 이번 결정이 다소 위험한 건 아닌지……
자네 말대로 나는 모든 경전을 다 뒤져보았고 우리 천년의 기록을 모두 살펴봤지만, 확실히 이와 유사한 기록은 없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이건 걱정할 만한 일이 아니니까.
오히려 고민해야 할 건 내가 받은 저 경고 메시지다.
그 경고 메시지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신지?
자네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리할 수 없군.
우리 머리 위에 빛나는 이 신앙이 내게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 어떤 위기이고, 어떻게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난 그저 여러 이름이 적힌 명부를 봤을 뿐이고……
그 위에 적힌 첫 번째 사람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지.
그래서 그 애송이에게 성도 칭호를 주신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칭호를 다른 것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까? 아무래도 '성도'는…… 너무 특별하고 무겁습니다. 어쨌거나 이건 애초에 라테라노를 세운 성인들만이 받을 수 있는 직함이잖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내게도 그런 칭호가 있었군.
그, 그건 얘기가 다릅니다! 당신은 교황님이시잖습니까!
교황님께선 지금 적지 않은 권한을 넘기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제부터 그자는 많은 일에 참여할 수 있고, 심지어 의사 결정에 관여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너무 긴장하지 마라, 조반니. 때론 우리도 작은 모험을 해야할 필요가 있으니.
참, 내가 받은 그 명부에 이름이 한 명만 있는 게 아니었다고 방금 말했었나?
네? 설마 그 사람들 모두 성도로 서임하려는 건 아니시겠죠……?!
말도 안 됩니다…… 제 말은, 이건 규칙에 어긋납니다!
조반니, 섣불리 판단하지 마라. 일단 우린 이들을 다 찾아야 해.
그리고, 내가 이 명부에서 익숙한 이름도 여럿 봤다. 이 명부에 또 누가 있었는지 아나?
전혀 모르겠는데요.
흠, 자네조차 맞힐 수 없다니. 그럼 이 신비감을 좀 더 오래 유지해야겠군.
조반니.
이번 의식이 끝나면 이 친구들을 방문하러 가야겠구나.
흠…… 여기에 왜 이렇게 풍선이 많지?
저기 앞에 있는 거리에서 애플파이 던지기 대회를 하는 것 같네. 바닥에 온통 애플파이야. 아무래도 돌아가야겠다…… 그런데 오늘 무슨 좋은 날인가?
글쎄! 무슨 의식 같은데. 자세한 건 나도 모르지만.
어쨌든 행사가 있으면 우린 즐기면 되잖아. 뭐 언제는 이렇게 살지 않았어? 뭘 그리 고민해!
그런데, 이 풍선들을 몸에 묶으면 공중에 뜰 수 있으려나?
꿈 깨, 네 체중에서 10킬로 더 빼도 못 뜰걸!
에이, 설마! 코트를 벗고 다시 시도해 볼게. 오늘 별로 춥지도 않으니까……
저기 봐! 풍선이 또 있어!
……안 되겠다! 옷 좀 들어 줘. 어떻게든 시험해 봐야겠어!
야, 너! 조심해!
우와와와……! 지, 진짜 떴어!
엄청 높이 떴네……! 그, 그런데 왜 자꾸 올라가고 있지?
안 돼! 나, 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거 같아!
좀 지나가겠습니다.
저기요, 형씨! 그냥 지나치지 말고…… 좀 도와줘!
네?
사람 살려! 나, 나 좀 내려줘!
알겠습니다.
으아앗!
아이고 내 엉덩이…… 어쨌든 고마워, 형씨.
맞다, 내 풍선……
앗! 풍선이 다 터졌네! 형씨, 그래도 이건 좀 과했다!
현장 상황에 따라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하아, 두 개라도 좀 남겨주지.
그만 해. 어쨌든 저 사람이 너를 내려줬잖아! 거기 잘생긴 오빠, 이런 사람은 그냥 무시해!
그런데 오빠, 그 옷은 어디서 맞췄어? 꽤 멋있는데.
저도 잘 모릅니다.
어? 몰라? 선물로 받은 건가?
어디 제복 같은데? 뭔가 눈에 익어……
어디서 일하길래 이렇게 멋진 제복을 준대? 나도 알려줘, 원서나 넣어보게!
……표준 제복이 맞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의향이 있으면 교황청에 이력서를 넣어보세요.
“……그들은 산크타를 이끌고 도시를 건설하였으니, 그 도시를 라테라노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재난이 다시 들이닥칠 때, 산크타는 새로운 계시를 받을 것이며, 사람들을 이끄는 새로운 인도자가 나타날 것이니.”
“부디 세상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산크타의 이 불멸의 낙원이 영원히 우뚝 솟아있게 해주시길.”
저도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저도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저도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자, 의식은 여기까지.
고개를 들라, 내 아이야.
……아니,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호칭을 바꿔 불러야겠군.
고개를 들고 내 옆으로 오거라. 라테라노가 세워진 지 천년이래, 최초로 교황이 아닌 몸으로 뽑힌 자…… 성도, 페데리코 잘로여.
……
별로 흥미가 없어 보이는구나? 설마 밖에 있는 풍선이 취향이 아닌 건가?
잘 모르겠습니다.
어?
성도의 구체적인 직책이 뭡니까? 들이닥칠 '재난'은 또 뭡니까? 이 일에 즉시 조치해야 합니까?
'재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상황에 따라 작전을 짤 수 있으니까요.
합리적 의심이야. 하지만 나도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구나, 내 아이야.
내가 받은 경고는 직접적이지만 난해하기도 하다.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으니.
어느 시대나 갖가지 곡절과 시련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최대한 모든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고. 확실한 건, 그게 너를 선택했다는 것은 네가 그 미지의 재난에 대처할 능력이 있다는 증명이라는 것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직 서두를 필요 없다. 우리에겐 시간이 좀 남아있으니.
지금은 이 자리에 더 어울리는 대화나 하는 게 어떨까. 이를테면…… 페데리코, 그 옷이 너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구나.
몇몇 추기경들은 이 제복의 재단과 색깔 때문에 결투마저 벌였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 보여.
그건 추기경의 업무 범주가 아니잖습니까.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라. 누구나 관심사가 있고 다들 그걸 위해 열정을 쏟고 싶은 마음이니까.
너의 업무 이력은 봤다, 페데리코. 네가 훌륭한 집행자임을 나는 알 수 있다. 아주 훌륭해.
너는 다른 사람들처럼 계율에 얽매여 많은 행위를 금기시하지 않는다. 맞지?
필요에 따라 금기도 깨야 합니다.
물론 너의 이런 생각에 반대하진 않는다.
일에 대한 네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이 있기 때문에 너도 항상 임무를 잘 완수해 왔지. 조금 지나칠 때가 있긴 하지만.
음, 사실 어떤 임무가 있는데, 원래는 내가 직접 가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급한 일이 생겨서 말이야…… 아무래도 새로운 적임자가 생긴 것 같군.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임무 상황이 복잡하고, 어쩌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고, 네가 지금까지 해온 임무랑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라면 잘 처리할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난 그걸 보고 싶구나…… 그분이 너를 선택한 이유를 말이야.
페데리코, 나를 대신해 한 번 다녀오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집행자 페데리코, 임무를 확인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뭘 보고 있나, 아르투리아?
꽃을 보고 있었어요.
수도원 전체를 통틀어 여기만 꽃이 있잖아요. 운 좋게도 개화기를 맞춰서 왔네요. 이런 아름다운 광경, 안 보면 손해인걸요.
……클레망이 그 말을 들으면 엄청 기뻐하겠군.
사람들이 클레망이 가꾸는 꽃을 보러 오지 않은 지도 한참 된 것 같아. 원래는 이 수도원엔 곳곳에 꽃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지금은 자네 앞의 이 꽃들만 남았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이 꽃에 어떤 아름다운 꽃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전엔 그랬었지.
그럼, 지금은요?
……어쩌면 지금도 있을지도 모르지. 다만 지금은 내 눈이 침침해져서 더는 순수하게 꽃놀이를 즐길 수 없군. 아르투리아, 난 너무 늙었어. 이곳에서 너무 오래 살았지.
마치 자네의 악기 소리가 상처를 치유할 순 있지만 노화를 막을 수 없듯이, 꽃은 그 누구의 배도 채울 수 없지.
일이 다 뜻대로 될 수 없다는 걸 내가 모르는 건 아닐세. 다만, 우리가 라테라노에 구원 요청을 보낸 그날부터 오늘의 이 결과가 정해진 것일지도 모르겠어.
이제……
남은 건 고과뿐일세.
음, 고과라. 듣기만 해도 뭔가 혀가 떫어질 것 같은 느낌이네요. 하지만 저는 그런 느낌이 싫지만은 않아요.
제 경험상, 척박한 땅에는 감미로운 열매가 나올 수 없으니까요.
척박한 땅이라…… 그래, 얼마나 척박한 땅인가.
하지만 이 척박한 땅이 우리의 터전이니.
나는 우리가 더 좋고 더 안정된 삶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네.
우리에겐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요새가 있고, 우리의 신앙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으며, 평온한 삶에 대한 우리의 동경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뛰어넘었지.
남은 일은 그저 분쟁을 멀리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뿐이었거늘.
하지만, 지금은……
노인의 앙상한 얼굴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힘을 모아 축 늘어진 피부밑에서 그를 억누르고 있는 무언가를 힘겹게 찢어버릴 것처럼. 그러나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은 기침 소리와 거친 숨소리로 대체됐다.
그 뒤로 몇 년이 흘렀지? 50년, 60년…… 더 오래됐나?
바다에는 재난이 일어났고, 우리는 재판소의 요구를 거절하고 이베리아를 떠나 여러 세대에 걸쳐 이곳에서 살아왔어…… 나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또 그들이 묻히는 걸 지켜보았지.
하지만 지금은 사는 것조차 어렵네.
사는 게 수월했던 적은 없죠.
그래, 그렇지……
저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게. 나는 이제 그들이 어디 사람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네.
이베라이아에서 온 건가, 라테라노에서 온 건가?
우린 너무 오래 걸었어. 너무 멀리까지 온 거야……
……
아르투리아.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라테라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나?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건 당신 자신뿐이에요, 스테파노 토레그로사 주교님.
나는 아직도 그러길 바라고 있네.
그렇다면 분명 맞겠죠.
……자네 말이 다 맞네, 아르투리아.
더 이상 내 생각을 떠볼 필요도 없어.
오해예요. 저는 절대 주교님의 사적인 생각을 들춰볼 생각은 없어요.
자네에게 여기 머물도록 허락한 것도, 이곳은 악의가 없는 모든 사람을 거절하지 않기 때문이지.
하지만 아르투리아, 나는 자네가 뭘 원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네.
만약 제가 정말로 원하는 게 없다면요?
……
아무래도 믿지 않는 것 같군요.
그럼 이렇게 말씀드리죠. 제게 신경 쓰지 마세요. 저는 이곳의 그 어떤 일에도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요. 물론 주교님의 그 어떤 결정도 방해하지 않을 거고요.
저는 그저 이곳의 이야기에 마음이 끌려 걸음을 멈춘 여행자예요. 그리고 완벽한 결말을 볼 수 있길 바랄 뿐이고요.
제가 이 광륜에 맹세라도 할까요?
자넨 교활한 사람이군, 아르투리아.
……하지만, 난 자네가 한 말을 믿겠네.
노인은 다시 침묵했다.
사람은 늙으면 모두 이렇게 마르고 쭈글쭈글해지는 걸까? 한때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양으로 다듬어졌던 얼굴의 윤곽마저도 이제는 시들어 버려 생기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맑았던 눈동자는 점차 탁해져 그늘이 씌워졌고, 그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마치 이곳의 흘러간 수십 년 세월이 보이는 듯했다.
원래라면 더 자상하고 더 온화하며 더 라테라노 사람처럼 생긴 얼굴이었는데 말이다.
지난 몇십 년간 신성한 도시는 우리에게 아무 응답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했지.
신앙은 나에게 우애를 가르쳐 주었지, 우리의 형제자매, 우리의 충실한 친구를 버리라고 가르친 적은 없었네.
하지만 소수를 버리고 대다수의 행복을 택해야 한다면……
내가 만약 독실한 신자라면 그건 염치없는 배신이다.
설마 이렇게 생각하고 계셨나요?
……그 질문엔 대답할 수 없네, 아르투리아.
만약 신앙이 신앙 자체를 배신했다면, 신자들은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여기 놔둘게.
나중에 젊은 녀석들 몇 명 불러. 최대한 빨리 가공하면 이번 겨울은 날 수 있을 거야.
알았어, 이따가 사람 부를게!
다행이다. 이 고기들이 있으면 좀 더 버틸 수 있겠네……
……미안해.
날씨가 추워져서 사냥감을 찾기가 쉽지 않아. 이번 수확이 생각보다 적어.
아니야. 그런 말 하지 마!
당신들 덕분에 아이들이 그나마 고기 맛이라도 볼 수 있는 건데…… 미안하다니, 그런 말은 더 이상 하지 마.
하하, 내가 말이 헛나왔군. 아무튼 저녁에 아이들한테 맛있는 거 만들어줘.
그러고 싶지만, 하아, 아껴 먹어야 하니까.
참, 왜 하이먼이 안 보이지? 설마 다친 거 아니야?
……걱정 마. 아무 일 없으니까.
정말이지?
정말 다쳤다면 그건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니야. 자칫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나한테 절대 숨기면 안 돼!
알았어, 정말 일이 있으면 꼭 도움을 청할게.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가볼게.
……아, 제럴드, 잠시만!
왜?
……요즘 다들 라테라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나쁜 뜻이 있이서 그런 건 아니야. 그냥 가끔 짜증 날 때가 있어서 그래.
누가 심한 말을 해도 마음에 두지 마……
……
알았어.
어, 아…… 그럼 됐어……
……
라이문트, 고생했다.
가자, 뒷일은 우리가 나설 자리가 아니야. 그런데 하이먼은 아직도 안 돌아왔어?
오늘은 모습조차 보이지 않던데? 아까 데이빗이 찾으러 나갔어. 이따 나도 찾아볼게.
그리고, 경로를 찾을 탐색대도 보냈어. 저녁에 돌아오면 아마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잘했어, 계속 준비해.
……잠깐, 보스!
우리, 정말 이대로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돼?!
진정해, 라이문트.
우리에겐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걸 너도 잘 알잖아.
정말 이대로 타협할 수밖에 없어?
그럼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한 건 뭔데? 애초에 우리가 쟤네랑 다른 게 뭔데? 우리는 그저……
라이문트!
이제 그만, 함부로 말하지 마.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
네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건 알아, 라이문트.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더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면 빨리 만나고 와.
식사.
개인의 생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음식을 씹고 삼키는 것.
이것은 모든 생명 활동의 기본이며, 모든 생물의 원초적인 본능이다.
씹고, 삼키고, 흡수한다.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세상에 이보다 더 당당한 욕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래는 너를 좀 더 설득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네
너는 너무 쇠약해졌어. 많은 것들은 우리가 쇠약할 때 우리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판단을 왜곡하며, 생각의 인도를 따를 수 없게 만들지.
……
이제 내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거야?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선교사의 목소리는 어떤 수상하고 기괴한 소리와 어우러져 이 드넓은 지하에서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음식을 먹는 소리였다.
자양분이 될 만한 모든 것을 갈기갈기 씹고 식도로 흘려 넣어 뱃속으로 삼키는 소리였다.
본래의 형태를 잃은 한 생명이 어둠 속에서 점점 성장해가고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요즘은 맑은 날도 적어졌어.
이 건물은 마치 고립된 외딴섬 같아. 꽤 오랫동안 버텼지만, 그것도 곧 한계를 맞이할 거야.
봐, 벽은 균열투성이라 강한 바람은 막을 수 없어.
음, 연료도 얼마 남지 않았군. 방한 물자가 없으면 아마 이번 겨울에는 많은 사람이 추위에 시달리겠는걸.
물론 우리도 완전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근처에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오리지늄 광맥이 있잖아, 그렇지?
거기서 에너지로 사용할 만한 오리지늄을 채굴할 수 있어. 그동안 너희들은 그렇게 해왔잖아?
하지만 그만큼 위험이 따르겠지. 물론, 사람들도 그 위험성을 잘 알 거고. 광석병이 모든 사람을 계속 위협하고 있으니까……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누가 좋다고 그런 위험을 무릅쓸까? 이 외딴섬에서 광석병에 걸린다는 건 거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지.
너희들은 고향을 떠나 머나먼 이곳까지 와서, 그 하찮은 보금자리를 위해 가장 위험한 일도 자진해서 맡았잖아.
너희들은 이미 이 수도원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어.
……
역시, 아직도 내 말이 안 들리는 거야?
……
인정할 수밖에 없네……
난 지금, 확실히 슬픔을 느꼈어.
누구 계세요? 저기……
우와!
왜 바닥에 유리 조각이 흩어져 있지……
포르투나? 마침 잘 왔네요.
이쪽으로 와서 이 창틀을 좀 잡아줄 수 있을까요? 오늘 바람이 너무 강해서 창문 유리가 또 깨졌어요. 일단 구멍부터 막아야 해요.
앗, 네, 맡겨주세요!
이 창문은 엊그제 수리하지 않았나요? 왜 또 깨졌죠? 전에 스테파노 할아버지의 포교를 들을 때 확실히 추워서 이가 떨린 기억이 나긴 하는데……
제가 테이프를 가져올까요?
테이프로는 안 될 것 같아요. 미안해요, 이번에는 너무 심하게 깨져서 유리 조각을 다 붙일 수 없어요……
클레망 아저씨의 잘못도 아닌데, 왜 저한테 사과하세요?
이제 어떡하죠? 뭐라도 찾아와서 막아야 하나요? 바람이 너무 차가워요…… 아니면, 제가 천이라도 찾아올까요?
천을 낭비할 순 없어요. 날도 추워졌는데 그걸로 옷을 만드는 게 더 낫죠.
얼마 전에 제럴드가 빈집을 헐었는데, 아마 남은 목판이 있을 거예요. 나중에 제가 가져올게요……
자, 창틀은 이러면 됐고. 수고했어요, 포르투나.
그러고 보니, 포르투나, 여긴 무슨 일로 왔어요?
아, 맞다! 먹을 거라도 없나 해서요. 다 피나 탓이에요. 피나 때문에 늦어서 점심을 놓쳤거든요……
뭐가 다 내 탓이야?
피나!
너는 왜 왔어?
내가 안 왔으면, 네가 뒤에서 이렇게 내 험담을 하는 줄도 몰랐겠지!
험담 아니야,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 걸. 네가 나를 붙잡고 설교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지각할 일은 없었잖아?
그건 다 네가 바보라서 그렇지. 남에게 속은 줄도 모르고!
내가 진즉에 말했지? 그 르무엔이라는 여자를 조심하라고! 그 여자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신경 써주는 척하고 있지만, 속으로 무슨 생각하는지 누가 알아……
포르, 너 요즘 계속 넋이 나가 있던데, 설마 그 여자한테 넘어간 거 아니야?
아니야! 누구한테 무슨 말 들은 적도 없고, 넋이 나간 적도 없어!
……아니, 있어.
포르, 우린 다 산크타잖아. 넌 나를 속일 수 없어.
……
피나, 르무엔도 산크타야. 넌 르무엔이 악의가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으면서 왜 계속 안 믿는 거야?
왜 너는 라테라노 사람들을 그렇게 미워해? 우리도…… 우리도 원래대로라면 라테라노 사람이잖아?
스테파노 할아버지도 곧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왜 라테라노에서 온 사자를 붙잡아 두는 거야?
왜 우리는 돌아가면 안 되는데?
라이문트 쪽은 우리랑 같이 갈 수 없으니까! 이거면 이유가 충분하지 않아?
설마 걔네들을 버리라는 거야? 난 못해!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럼 무슨 뜻인데?!
거기까지! 그만 떠드세요!
주교님이 그렇게 결정하신 데는 그럴 만한 도리가 있을 거예요. 둘 다…… 그만 하세요.
……
……
저는 목판을 찾아와 창문을 막을 테니, 두 사람은…… 일단 진정부터 하세요.
……피나, 넌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포르, 나도 알아.
하지만……
아니야, 됐어. 아까는 내가 너무 흥분했다. 나, 나도 네가 그런 뜻이 아니란 거 알아.
……나도 잘못했어.
그런데 너는 항상 이 총을 들고 있네. 이 총은 너희 아버지께서 주신 거잖아? 이미 쓸 수 없는 거 아니었어?
응, 맞아. 어디 부품이 망가진 것 같은데, 난 총을 다룰 줄도 모르고……
게다가 이거는 쓰려고 갖고 다니는 게 아니야.
난 그냥 액세서리 정도로 쓰는 줄 알았는데.
반은 맞아.
이렇게 총을 잡고 있으면 된대. 일종의…… 기도랄까.
아빠가 총을 줄 때 그렇게 말했어. 그게 산크타의 습관이래.
……나는 이런 습관이 있는 줄도 몰랐어.
우리 외할머니의 총은 골짜기에서 잃어버렸거든.
……슬퍼하지 마, 피나. 내 총을 빌려줄게.
내가 나중에 이 총을 고치면 우리 함께 총 쓰는 법을 배워보자. 수리한 후에 우리 같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배워 보자.
일단 지금은 같이 기도하자.
저번에 남은 목판이…… 분명 여기 어디에 있을 텐데.
찾았다. 역시 여기에 있었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남으면 바깥쪽 창문도 좀 손을 봐야겠어.
……그리고 연료는……
얼마 안 남았네. 하아.
음?
누굽니까?!
……
……아무도 없나?
잘못 본 건가……
여기 지형은 참 특이하네. 사막에 속하는 건가? 게다가 아래쪽에는 협곡도 있고.
발밑을 조심해.
고마워. 네가 이렇게 신사적인 줄 몰랐네, 리켈레.
됐어. 네가 그렇게 칭찬할 때는 좋은 일이 생기지 않으니까.
옹졸하긴. 이번엔 네가 손해 보는 일 없게 할게.
목적지는 이동 수도원…… 음, 저 앞에 있는 저건가?
응, 틀림없을 거야.
어떻게 할까? 이대로 정문까지 가서 노크해야 하나?
그런데 응답해 줄 사람이라도 있을까?
페데리코, 네 생각은 어때?
더 가까이 가봅시다.
알았어. 음, 미리 임무 정보라도 확인해야 하나?
목표물은 이미 확인됐습니다. 이베리아와 라테라노가 1011년에 공동 출자해 건조한 이동식 대형 종합 시설, 공식 명칭은 '암브로시우스 수도원'.
이 수도원은 원래 이베리아에 속해 있었으나, 61년 전 항로를 이탈하면서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전, 라테라노는 이 수도원으로부터 구원 요청을 연락받았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특사 2명을 보냈죠.
여기까진 어려운 내용이 아니야.
그런데 도대체 어쩌다가 우리 두 특사는 연락이 끊기고, 너희 둘 같은 전투원을 보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걸까?
제가 받은 임무는 연락이 끊긴 추기경 보좌관 르무엔과 만국 전달자 오렌 아르지올라스를 찾아서 두 사람의 신변 안전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수도원 내부의 정상적인 운영을 보장하고 사상자의 발생을 피하는 것입니다.
교황님의 뜻은…… 너무 과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거겠지?
……
솔직히 오렌이 어떻게 되든 나는 관심 없어. 내가 이 팀에 신청한 건 르무엔 때문이야.
당신의 사적인 감정은 임무와는 무관합니다.
현재로서는 목표물의 상태가 불분명하고, 건물 내 주민들이 적의가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습니다.
어, 그래서? 먼저 잠입해 조사라도 하게?
아니요.
제 생각은 정면 돌파해서 속전속결로 끝내는 것입니다.
만약 두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을 경우, 제 임무는 그들의 유골을 라테라노로 송환하는 것으로 변경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