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8그녀의 그림자
자기 내면의 공포를 이겨 낸 리드는 오리지늄 아츠를 통해 동료를 치료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에블라나가 전쟁에 대해 연설함과 동시에, 리드 또한 자신의 꿈을 동료에게 이야기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리드, 리드 더 플레임 섀도우
그녀는 이 모든 것이 끝을 맞이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드라코의 불길이 영원히 꺼지지 않더라도.
그녀는 가슴에서 고통스러운 분노의 불길이 솟아 나와 주어진 껍데기와 신분을 모두 불태우고, 자신을 족쇄로부터 해방시키는 상상도 해 보았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불길을 만져 보려던 순간, 문득 자신이 그동안 한 번이라도 이 불길을 제어해 본 적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잘했어, 로흐시니.
넌 나의 진심 어린 칭찬을 바라고 있었잖아. 이 정도면 되겠지?
그게 아니면…… 벌써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되찾고, 날 대신해 '리더'가 될 준비를 끝마친 거야?
너한테 그런 기회를 줄 수 있어. 게다가 네 불길이라면, 분명 날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겠지.
너는…… 내게 손을 내밀 거야?
……
불길은 타오르고, 그녀의 그림자가 살짝 일렁인다.
하지만 리드는 시선을 옮겼다.
멀지 않은 곳, 막 깨어난 캐리언은 깔고 있던 낡은 앞치마 위에서 몸을 일으켰고, 모란은 흥얼거리며 그녀의 상처 부위를 씻겨 주고 있었다.
……언니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언니가 이곳에서 본 건 뭐야?
모닥불은 그날 밤에도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 핀은 새롭게 사업을 시작할 장소를 찾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으며, 셀몬은 무기에 철사를 보강하고 있었다.
다들 셀몬을 장난삼아 리더라고 부르긴 했지만, 한편으론 자신들을 이곳까지 이끌어 준 것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를 건넸다.
난 빅토리아가 게일 왕에게 칭호를 내린 뒤, 그 의식 석진 위에 왕성을 지었다고 들었어.
그리고 그곳은…… 이전에 타라인들이 살던 고향이었지.
그녀는 아주 오래전 명절의 겨울밤을 떠올렸다.
그들은 벽난로 앞에서 새 외투를 똑같이 맞춰 입고, 함께 미소 짓는 사진을 남겼다.
그것은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작고 따스한 불이었다.
그래서…… 아니야.
내가 그림자라는 사실은 별로 신경 안 써.
난 언니의 그림자가 아닌, 사람들의 이상 속 '리더'의 그림자니까.
다들 도망갈 길이 필요했고, 자신들의 삶을 되찾길 원했어. 그리고 내가 마침 그곳에 있었고, 자연스레 날 필요로 한 거야.
언니, 내가 왜 언니랑 싸워서 이겨야만 하는 거야?
죽는 게 두렵지 않다고요? 그런 말 하지 마요, 캐리언. 죽는 걸 두려워하는 게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우린 아직 다른 타라인들을 돕지 못했잖아요. 우리랑 똑같이 타라인들을 구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더블린들의 손에 죽는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너, 예전에 비해 말을 훨씬 잘하게 된 것 같아.
아직 소염제는 남아 있어서 다행이네……
스읍……
아팠어요? 미안해요……
아, 리드 씨, 돌아오셨네요.
여기에 숨어 있으면, 오리지늄 아츠에 조종당하는 망자들과 마주칠 일은 없을 거야.
주변을 탐색하셨던 거예요? 다행이에요.
저도 여기서 더 머물다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캐리언의 상처…… 상태가 좋지 않네요.
……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은데……
……하하. 처음에 너를 의사로 착각했던 게 생각나네. 나중에야 너도 우리랑 똑같이 상처투성이였다는 걸 알게 됐지만.
내 상처, 많이 심해?
아니, 그렇지 않아…… 충분히 치유 가능한 상처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그냥, 너희들은 내 불이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아요.
……
그녀는 눈앞에 있는 부상 당한 타라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드라코의 분노가 담긴 불길이 그녀의 핏속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과거에 한 붉은 용이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피를 흘린 적이 있었는데, 단 한 방울의 피가 온 벌판을 불태웠다.
그녀가 끓어오르는 숨을 삼키자, 억눌린 불길이 그녀를 태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로써 상처를 치유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이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것이다.
……그녀의 손에는 불꽃은커녕, 약간의 불빛마저도 일지 않았다.
다만 모든 사람이 어떤 느낌을 느꼈다…… 마치 생명이 흐르는, 아침에 일어나 처음 눈을 떴을 때와 같은 부드러움 말이다.
후우……
표정이 좋네요…… 좀 나아지셨나요?
응…… 리드, 너 설마 진짜 의사야? 생각해 보니 진짜 의사도 너처럼은 못할 것 같은데.
아니……
난 그저, 내 불길을 찾아냈을 뿐이야.
좋은 꿈 꾸길 바라, 캐리언.
빅토리아 군인이 아닌 자가, 이 고속 전함에 타게 되는 일이 생기리라곤 생각도 못 했군.
그건 빅토리아의 깃발이 내려갔을 때 이미 알고 있었어야지.
네게 적의는 없다, 타라인. 난 단지 너희들의 군사적 소양과, 너희들이 따르는 리더에 대해 궁금할 뿐이야.
어렵게 찾아온 공작의 손님이니만큼, 내세울 만한 게 드라코라는 혈통뿐이 아니었으면 좋겠군.
너는 뼛속까지 우리에 대한 멸시로 가득 차 있구나, 빅토리아인.
저분이 무대에 올라 연설을 시작하면 네 녀석도 깨닫게 될 거다. 저분이야말로 이 전함에 타고 있는 모든 세력들의 주인이란 것을.
아직도 헷갈리는데, 그래서 너흰 더블린이 맞는 거야? 입은 옷이 더블린 같진 않은데.
뭐, 너희의 정체 같은 건 상관없겠지. 너희가 빅토리아인의 손에서 내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난 너희를 따라가고 싶어.
……미안, 네 동료까지 구할 순 없었어.
아냐…… 괜찮아. 내가 그 녀석 몫까지 다른 사람들을 더 살리면 되니까.
……그래.
그러고 보니 리드 씨, 그 사람들은 이제 저희를 쫓는 걸 포기한 것 같지 않나요?
그래, 추격하던 부대가 너무 갑자기 사라지긴 했지만…… 어찌 됐든 우리에겐 좋은 일이지.
지금쯤이면 더블린의 군대가 모두 집결했을 거야.
……타라인들은 곧바로 빅토리아 전역을 향해 목소리를 내겠지.
병사들이여.
내가 이끄는 더블린 부대는 빅토리아 각지에서 집결해, 이곳에서 공작 각하의 부대와 합류할 것이다. 그리고 우린 그들과 힘을 합쳐, 생존을 위한 전쟁을 벌일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더블린이란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거나, 우리의 투쟁이 무얼 위한 것인지 몰랐던 자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이곳에서 힘을 기르며, 언제든 전장에 나설 준비를 해야만 한다. 다만, 우리들의 투쟁은 이미 10년간 수 차례 계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지금 이 순간에도, 타라인들을 대표하여 피를 흘리고 있는 이들이 있다.
타라인들이 그동안 겪어 왔던 것을 학대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기엔 아마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난 그들의 터전이 잿더미가 되고, 도시가 폐허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타라인들은 자신들이 먹을 식량조차 모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처형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병사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며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나는 타라인들이 우리에게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았다. 게다가 그들은 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이나 우리의 도움을 기다려 왔다.
그들은 힘을 가진 동포들에게…… 또한 도덕적인 이웃들에게, 그리고 포악한 자들과 함께 어울리기 싫어하는 빅토리아 사람들에게 간청하였다.
그들은, 우리가 진지하게 마주해 주길 원했다.
지금, 우리 중 일부는 자신이 타라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고, 우리가 대체 누구에게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자들도 있을 것이다.
타라인, 타라인. 당신과 오래 있다 보니 이 단어를 쓰는 게 습관이 됐네요.
리드 씨가 했던 얘기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봤어요. 리드 씨께선 제가 근무했던 공장에 보호 장치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점점 광석병에 감염되어 서서히 죽어간 거라고 하셨잖아요.
하지만 타라인들을 위험한 곳에서 일하게 한 공장의 사장도, 직원들이랑 똑같은 타라인이었어요.
리드 씨처럼 빅토리아 억양을 잘 구사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 사람들은 저희랑 같은 지역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저희랑 대화하는 사이에 자신들의 사투리가 드러나게 될까 봐 굉장히 두려워했죠……
타라인이란 대체 뭘까요? 그리고 저희가 구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나도 많이 생각해 봤던 주제야. 혹시 내 생각이 궁금해?
그래, 리드.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으니까, 네 얘기를 듣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음…… 지금의 나라면, '타라인'이란 수백 년 후에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 끝끝내 얻어낼 이름이라고 생각해.
과거에 빅토리아인들은 긴 시간에 걸쳐 '타라'라는 이름을 지워 버렸어. 하지만 너희도 분명, 자신이 어떤 기억과 연결된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었을 거야.
빅토리아인들은 우릴 타라인이라 부르지 않아. 그들은 우리를 '상스러운 억양을 쓰는 교양 없는 촌놈, 일도 안 하고 놀러 다니는 무뢰한, 출신이 나쁜 열등한 자들'이라고들 부르지……
또 많은 이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그들은 우리의 성씨를 핑계 삼아 뻔뻔하게도 우리의 재산, 땅, 권리…… 심지어는 가족의 목숨까지 빼앗았다.
어쩌면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지, 너희들은 어째서 고유의 언어나 전통을 포기하지 않느냐고. 어찌하여 빅토리아인과 동화되지 않고, 기념일에도 다른 노래를 부르냐고 말이야.
타라인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기 전까지는,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자신도 타라인이지만 강인한 의지와 야심을 통해 부를 얻었고, 충분한 교육을 받아 상류 사회에 진입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자신의 문화를 버리고, 자신의 가정을 배신해야만 비로소 빅토리아인들로부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현실인가.
우리 중에도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영재들이 많았지만, 그 성취가 향하는 방향은 결국 자신을 빅토리아 사람으로 탈바꿈시키는 것뿐이었다.
웰링턴 공작, 당신은 분명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지……
당신에게 타라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
다만, 빅토리아는 우리의 이름을 빼앗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지만, 그들은 정말 타라의 존재를 잊었을까?
만일 그랬다면 타라 왕조가 멸망한 지 2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게일 왕의 후손이자, 운 좋게 살아남은 드라코 중 한 명인 나는 어째서……
……어째서 내 부모님이 아슬란의 자객에게 암살당해 피바다 속에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지?
저들은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우리들이 이름을 되찾고, 그로 인해 자신들의 거짓이 폭로되는 것을.
지금 난, 그대들에게 이 모든 걸 상기시키고자 이곳에 선 것이다.
그러니까 리드 씨의 말은, 아주 오래전에 빅토리아의 귀족이 타라에 왔고, 그가 모든 타라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만들었다는 건가요?
그래, 역사책에는 대강 그렇게 나와 있었어.
타라에 관한 이야기는 꾸며낸 것도 많긴 하지만, 개중에는 진실인 것도 있었거든.
빅토리아는 게일 왕을 강제로 타라 지역의 군주로 만들었고, 게일 왕을 협박하여 수많은 빅토리아 귀족들을 요직에 앉히게끔 했지. 타라 지역에 대한 불공평한 대우는 공문서 조항에도 쓰여 있어.
그때부터 타라인들의 억양은 낮아진 신분이나 지위와 연결되어 버렸어. 그로 인해 빅토리아인들은 타라인들을 멍청하고, 상스럽고, 교양 없다며 비난하기 시작한 거야.
그렇다고 해서, 누가 그런 타라인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가? 수백 년 동안, 우리는 결국 제대로 된 가르침조차 받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타라인들은 고향 땅에서 점차 빠져나와 이동 도시를 쫓아 빅토리아 곳곳을 떠돌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결코 빅토리아인과 동등한 선택권을 가질 수는 없었지.
명문 귀족들의 파티나 고등 교육 기관에, 우리들을 위한 자리가 하나라도 있었을까? 우리들 중에 일 없이 한가한 이가 있다면, 그것은 빅토리아인들이 우리들이 일할 권리를 빼앗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타라인'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겪어 온 차별은 교묘히 모습을 숨겼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우리가 막다른 골목까지 몰리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난 많은 것을 알고 있어. 타라의 역사, 후대의 사람들이 지어낸 역사, 그리고 타라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전설까지.
그리고 우리가 겪어 온 차별에 대한 진실과, 거짓 꿈에 대해서도 말해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구태여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너희들은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을 거야.
두말하면 입만 아프지. 우리도 더는 이렇게 못 살아!
맞아, 그러니까 설령 우리가 자신이 타라인이라는 사실은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어.
나는 소등종이 울리는 곳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어둠 속을 헤쳐 나가기 위한 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우리들이 맞서야 할 것은, 우리에게 떠넘겨진 불행뿐이야.
그러니까 우린 타라인들의 생존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어.
우리는 지금 오크 그로브 카운티에 멈춰 있다. 과거에 이곳은 타라인들의 구역이었지만, 지금은 포악한 자들이 일으킨 화재에 전부 잿더미가 된 상태다.
시력이 뛰어난 자라면, 아마 저쪽에 재앙으로 파괴된 타라의 왕성도 볼 수 있겠지. 이 모든 게 타라인들의 몸에 남은 흉터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타라의 과거 영토를 되찾거나, 역사의 잔재들을 재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신대륙의 방랑자들이며, 내가 너희들을 이끌 곳은 바로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질서로 향하는 길이다.
이 전함의 다음 목적지는 런디니움 항구다.
우리는 빅토리아가 가진 왕관을 빼앗기 위해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빅토리아에게 빼앗겼던 우리의 운명을 되찾고, 그 운명을 손에 쥐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불행한 일들이 빅토리아가 타라에게 강요한 통치와 노역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았지. 그렇기에 우리들은 빅토리아가 저지른 모든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그들 스스로 부정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물론 이번 전쟁은 런디니움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대들은, 전쟁이 길어진다고 해서 두려워하고만 있을 것인가?
불길은 이미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일어난 불길은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낡아빠진 질서들을 불태우고, 우리들의 몸에 채워진 썩은 족쇄들 또한 전부 불태워 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가오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나는 그대들에게 간청한다.
나는 그대들이 타라와 빅토리아, 지역이나 출신을 가리지 않고 오직 명예와 정의, 그리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대만을 위해서 싸웠으면 한다.
타라인이 빅토리아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글로 쓸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그 누구도 우릴 막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리드 씨, 저희는 대체 무엇과 맞서 싸워야 하는 거죠? “타라인의 삶을 위해”라는 말은 조금 애매한 것 같아요.
음…… 예전의 난, 늘 생명이란 한없이 나약한 거라고 생각했어.
이 땅에는 우리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것들이 수없이 많아. 그리고 우린 모든 노력을 동원해서 필사적으로 그에 맞서고 있는 것에 불과해.
물론 이 싸움의 최후에, 웃는 자는 없을 거야.
사람들의 목숨에 너무 신경 쓴다 해도, 언제 어디에서나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갑작스러운 죽음과 희생들에, 나는 과연 어떻게 직면해야 할까?
하지만 생명이라는 것은 굉장히 무거운 것이야. 나도 그걸 피해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우리가 죽음을 이길 수는 없어도…… 우리의 삶에 존엄성을 부여할 수는 있어.
난…… 타라인에게도 추운 밤에 몸을 녹일 따뜻한 불이 있어야 하고, 노래를 부를 때에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언젠가는 타라인들도 도망칠 필요 없이, 자신의 가족이나 연인과 이별하지 않아도 될 날이 분명히 올 거라고 생각해.
난 모든 타라인들에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해.
그리고 그동안 우리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들과 함께, 그곳에서 재회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바람이 갈대를 스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리드는 자신의 안에서 요동치는 불꽃에 타오르는 고통을 느꼈다.
그녀도 그것이 머나먼 꿈에 불과하단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그 누구도 그러한 미래를 맞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더블린의 불길이 이 땅을 덮칠 거야.
그 불길은…… 분명 매우 잔혹하겠지. 수없이 많은 생명들마저 이 불길을 타오르게 하기 위한 연료에 불과해.
하지만 그런 미래가 온다고 해도 생명의 무게는 변하지 않을 거야.
……가자. 우리도, 그중 하나니까.
맞다, 내가 어제 집에서 온 편지를 받았거든.
다행히 가족들은 다 잘 살아 있대. 만일 이 싸움이 끝난다면, 우리 가족들의 생활이 한층 나아진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는걸, 후후.
모란, 왜 또 말이 없어.
미안해요, 잠시……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다면 노래를 불러보는 건 어때?
좋지, 간만에 쫓기지 않는 평화로운 날이잖아.
……
벽난로의 불꽃 옆에서 나는 편안하게 잠에 드네, 꿈속에서 꿀과 단술과 수프를 보았다네♪
리드. 우리가 더블린이랑 같이 움직이게 되면, 넌 어떻게 할 거야?
걱정하지 마.
우리가 타라인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이상, 나도 그녀와 다를 게 없어.
그날이 오면, 나도 그녀를 만나러 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