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T-2봄의 제전
잔잔한 첼로 연주 속에서 에벤홀츠는 오랫동안 묻혀 있던 옛일이 떠오른다.
폐하와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은…… 이것밖에 남지 않았습니까?
그 두 여자의 방식이 워낙 잔인해서. 이게 최선이었지.
그래도, 폐하께서 남기신 선율을 이렇게 마구잡이로……
그럼 어떻게 하라고?
좀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중해? 날마다 동료가 죽임을 당하는데, 그런 말이 나오는 거야? 이게 마지막 기회라고!
폐하의 피와 선율이 합쳐 폐하의 힘을 전부 재현할 수 없다고 해도, 적어도……
나…… 몇 살이었을까? 두 살? 세 살?
나는 황폐해진 건물 한가운데 서서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날 데려온 자로부터 나의 부모님은 사형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당시 나는 사형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앞으로 이곳이 나의 집이며, 내가 위대한 계획 일부가 될 거라며, 운이 좋으면 내가 라이타니엔의 다음 지배자가 될 거라고 했다.
모르겠다. 당최 무슨 말인지.
나는 그저 어렴풋이 내 방에, 오전이면 햇빛이 드는 그 방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말씀드렸잖아요. 인간을 속세의 음의 그릇으로 삼는 게 성공할 리가 없다고……
그걸 알고 있었으면서,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는 왜 반대하지 않았나? 이제 와서 사람이 죽으니까 그딴 무책임한 말을 꺼내는 거야? 이미 늦었어!
아니, 저는……
미리 말해두는데, 이건 낭비가 아니야.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저들 중에서 한 명이라도 살아남으면, 우린 이런 시골 촌구석에서 도둑처럼 숨어서 지낼 필요가 없어!
빅토리아, 우르수스, 카시미어에…… 우리의 계획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널렸어! 성공하기만 하면, 우린 그들의 군대를 빌려, 그 두 여자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
어느 날, 이곳에 온 뒤로 계속 우리를 돌봐주던 누나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그 누나가 사라진 후, 우리한테 먹을 걸 갖다주지만, 우리와 함께 살지 않는 사람들이 다투게 되었다.
그들이 뭣 때문에 다투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우리에게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러주던 그 누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란 것만 알고 있었다.
노래는 이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하늘은 맑고 푸르며
산들바람이 흥얼거리네
강물은 잔잔하게 흐르고
가슴속엔 희망이 가득 찼네
뒤에 노래가 더 있는 것 같았지만, 그 누나는 부른 적이 없었다.
이번엔 어때? 듣고 있어? 이번엔 어땠냐고?
죽었습니다……
죽으면 뭐 어때? 그래도 발전하고 있잖나!
다음번엔 수술실을 더 먼 곳으로 옮기고, 방음이 잘 되는 자재로 인테리어를 하면…… 반드시 성공할 거야!
계절은 추워졌다가, 다시 따뜻해졌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사라질 때마다, 그들은 시끄럽게 다퉜다.
나중에 그들의 싸움은 점점 잦아들었지만, 우리의 식사도 점점 더 나빠졌다. 다행히 밥을 먹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었기에, 그나마 배는 채울 수 있었다.
아마 사람은 이런 것일 거다. 우연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
그들이 갖고 있던 물건도 마찬가지다.
어느 할머니의 지팡이, 어느 청년의 오르골, 어느 아저씨가 아끼는 아츠 유닛과 오리지늄 주사위처럼……
하지만, 어떤 것들은 남는다. 이를테면 그 누나가 즐겨 부르던 노래처럼.
한 아이가 그 노래를 외웠고 종일 흥얼거렸다.
우리…… 우리는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요?!
폐하의 핏줄은 지켜왔지만, 결국…… 우리 손에 죽었잖아요……
정신 차려, 이건 필요한 대가야! 폐하의 핏줄에 어울리는 힘을 계승하기 위해서 반드시 치러야 할 희생이라고!
그래도 속세의 음에 대해 점점 많이 알아가고 있잖아. 곧 성공할 거야!
하지만, 죽은 사람들은……
아니, 이런 미친 실험은 이제 그만하죠…… 우리가 신분을 숨기고 남은 몇 명을 잘 교육하면, 그들이 폐하처럼 될지도 모르잖아요……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속세의 음은 무조건 필요해!
그 뒤로 또 1년이 지났다. 아니, 어쩌면 2년이 지났을지도…… 이미 알 수 없었다.
남은 것은 나와 그 아이뿐이었다.
그들이 방에 올 때마다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때마다 그 아이는 내게 괜찮을 거라고 위로해 주었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이 떠나면 그 아이는 내게 그 노래를 불러주었다.
“가슴속엔 희망이 가득 찼네”
너희도 여기서 오래 지냈는데, 아무리 아이라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잘 알 거다.
너희는 폐하가 남긴 마지막 핏줄이니까, 나도 너무 심하게 대하고 싶지는 않다. 결정해, 다음에 누가 할지.
이번엔 저희 기술도 많이 개선됐습니다…… 어쩌면, 이번엔 성공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실험을 받는 사람은…… 엄청난 캐스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어리석지 않았다.
귀족 차림을 한 그 사람은 전에도 몇 번 그렇게 말했지만, 이 방을 나간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다리를 떨면서 옆에 있는 아이를 슬쩍 쳐다봤다. 그 아이도 입술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사라지기 싫었고, 그 아이가 사라지는 것도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내 눈빛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고개를 돌리더니 떨면서 나를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할게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뒤로 나는 텅 빈 방에서 혼자 두 달 동안 지냈다.
그리고 어느 비 오는 날 밤, 그 아이가 실려 왔다. 두 눈은 꼭 감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지만, 그래도 살아있었다.
나는 정말로 기적이 일어난 줄 알았다. 하지만, 며칠 안 가 다시 방에서 실려 나가더니, 다른 사람들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떠나기 전까지도 그는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슴속엔 희망이 가득 찼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두 사람을 따라가면서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수많은 방을 보았고, 방 안에는 각양각색의 장치와 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우리는 작은 방 안에 들어섰고, 방 안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고탑 캐스터 복장을 한 사람이 나를 침대에 눕혔다. 하얀색 마스크와 장갑을 낀 그 여자는 매우 기괴해 보였다.
그 여자는 내 얼굴에 마스크를 씌웠고, 그 뒤론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눈을 떴다.
깨어나자마자 내 머릿속은 용암이 들끓는 것 같았고, 두 눈은 불에 타는 느낌이 들었다.
통증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며칠? 몇 주? 아니면, 몇 달?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서 통증도 서서히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가끔 심하게 발작을 일으키지만, 이내 회복되는 두통으로 바뀌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실려 나가기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나에게 아부하고, 음식을 더 주고, 나를 마당에서 마구 뛰어다니게 했다.
심지어 내게 수업까지 해주면서, 읽기, 쓰기, 그리고 오리지늄 아츠까지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그 아저씨의 아츠 유닛과 오리지늄 주사위를 정중히 건네주며, 이것들은 폐하의 소장품이었다며,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내가 아츠에 대한 재능을 보일 때마다 낯간지러운 칭찬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이런 날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 아이는…… 여기까지가 아닐까요?
지금으로선 우리가 이 아이를 한계까지 몰아붙인다고 해도, 기껏해야 여황의 목소리 한 사람을 상대할 정도야.
아니면, 전에 그 아이처럼 '속세의 음'의 에너지 흐름을 좀 조절해 볼까……
이젠 그만하시죠.
두려울 게 뭐 있어, 이번에 우리가 또 개선하면……
안 됩니다!!
감히 어디서 말대꾸냐?!
그 많은 '속세의 음' 중에서 연주할 수 있는 건 이제 이 아이밖에 없습니다. 폐하의 피를 이어받은 열다섯 명이 이제 단 한 명만 남았다고요.
이 아이만 잘 키워내면, 우리가 타국으로 망명해 관직이라도 얻어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가장 중요한 건 폐하의 피가 계속 전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도 전에 그 아이처럼 망가뜨린다면, 우리는 이제 자살하여 폐하께 사죄하는 수밖에 없어요!!
……
이튿날, 두 사람도 사라졌다.
자살을 했을 리는 없고, 그들이 늘 입에 달던 여황의 목소리가 나타난 것이었다.
나는 텅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었고, 밖에서 들리는 살벌한 비명에 오히려 속이 더 후련했다.
그들이 '폐하의 핏줄'을 가장 즐겨 말하지를 않았는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곧 일어난다. 저주받은 핏줄은 곧 끊길 것이다.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아무래도 여황의 목소리겠지.
여황의 목소리는 나를 쳐다보며, 무기를 내려놓지도, 나를 공격하지도 않았다.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얼 망설이고 있는 걸까?
나는 아츠 유닛을 잡고 여황의 목소리를 겨냥했다. 그러자 오리지늄 주사위가 내 곁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돌진해왔고, 들고 있던 금속 관악기로 내 머리를 내리쳤다.
그때의 그 한 방을 기점으로 내 짧았던 인생은 두 동강 났다.
우르티카 백작은 자신이 어떻게 수갑이 채워진 의자에 올라앉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따금씩 발작하는 두통만 그의 머릿속엔 아직 위치킹이 남긴 마지막 선율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백작 대리인은 혐오감을 담은 어조로 그건 '말할 수 없는 인물'의 유물이라며, 이제는 백작과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떻게 그것과 하나가 되었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게 떠올랐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