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ST-2장례식
아미르의 장남의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그로 인해 한 감염자가 희생되었다. 레인보우 팀은 그의 묘 앞에서 친구를 추모했다.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은 롱스프링 마을은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사르곤어) ……그렇게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자신이 떠나온 대지로 돌아갔다.
(사르곤어)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고통만을 남기나니, 운명은 실로 불공평하기 때문이라.
(사르곤어) 하지만 탄식하지 말지어다. 이제 그는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워졌으니.
(사르곤어) 그를 위해 노래하리라. 길고 긴 여정 끝에 마침내 대지로 돌아간 그를 위하여.
(사르곤어) 그를 사랑하는 이와 그 친족이여, 눈물을 거둘지어다……
(사르곤어) 그의 죽음은 이 대지가 베푸는 유일한 자비요 우리는 만물의 상속자이니.
(사르곤어) ……모두 먼지로 돌아갈지어다.
(사르곤어) ……모두 자연으로 돌아갈지어다.
(사르곤어) ……우리도 언젠가 돌아갈지어다.
죽은 나무가 드리운 그늘 아래, 투박하게 깎아낸 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울퉁불퉁한 표면에 새겨진 문장 몇 개가 눈에 들어온다.
'사랑하는 우리 친구, 미아로우, 여기 잠들다.'
'그는 감염자이자, 의사였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
괜찮아?
……모르겠어.
그 나이 든 도마뱀 영감이 말하길, 이 나라에서는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만 장례식을 치른다더군.
일반인은 애도는커녕 제대로 된 무덤도 없이 가족들이 황무지에 묻는다고 하고.
거대한 플랫폼에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그 움직이는 도시에 사는 자들은 누가 죽으면 화장한다더군. 공간이 부족해서 매장이라는 사치를 부릴 수가 없다고 말이야.
그럼 일반 정착지에는 묘지가 있느냐, 그것도 매우 드물다네. 이 세계에는 '재앙'이란 게 너무 흔하고 자주 일어나서 각자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차니, 누군가가 죽고 나면 모든 기억이 지워지고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고.
사르곤에는 종교가 거의 없어. 그러다 보니 내세를 믿는 사람은 없다시피 하고. 그저 죽은 이는 대지로 돌아가 다시 대지의 일부가 된다고 믿는다더군.
그런 점에서는 참 꾸밈없고 정직한 문화야. 마음에 들어.
그럼 미아로우의 무덤도 언젠가 잊혀지겠네.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가 미아로우를 위해 장례식을 치렀잖아. 그게 중요하지.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 참 받아들이기 힘드네.
뭐?
그런 모습을 보고 나니, 미아로우가 그렇게 죽어야 했다는 게 납득이 안 돼.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어, 알렉산드르.
만약 미아로우가 없었다면 우린 이곳에서 더 힘든 시간을 보냈을 테고.
계속 생각해 봤어. 우리가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면 어땠을까? 협상할 때 조금 더 단호하게 나가서 감염자들과 함께 가겠다고 했더라면?
만약 우리가……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는 건 좋지 않다고 본다.
미아로우 스스로 선택한 거다. 네 탓이 아니야.
그리고 피케일은 자기 의무를 다하려고 했을 뿐이지. 이곳의 문화적 배경과 체제 속에서 자란 귀족으로서, 감염자를 지키려 한 피케일의 행동은 분명 숭고한 일이고.
로도스 아일랜드 녀석들이 하는 말로 봐서는, 미아로우의 광석병은 분명 심각한 수준이었을 거다.
미아로우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항상 어깨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을 테고.
그런 상태로 이만큼 오래 살았던 것 자체가 기적이야.
그게 이 세계 사람들의 삶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하지만 우리가 정말 옳은 일을 한 걸까?
우리는 감염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실제로 그들을 돕는 거라고 굳게 믿었어.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우린 저 감염자들과 함께 지냈지.
그럼에도 정작 감염자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어. 광석병이란 그저 전염성이 있을 뿐인, 우리가 잘 아는 치명적이고 치료할 수 없는 암이나 마찬가지겠거니 했지.
하지만 이건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재난이야.
우린 이 병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그런데도 감염자를 구하려고 했다고.
네 잘못이 아닌 걸 자책하지 마라, 코언.
그런 건 무의미해.
네 기분은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한 일까지 부정하진 마.
내가 할 일 없이 지붕 위에서 지냈을 때 기억나나? 그땐 남아도는 시간이 많았지.
그래서 지붕에 앉아 미아로우의 진료소와 그 주변에 사는 이들을 지켜봤다.
다른 세계에서 온 방문객으로서 흥미를 가지고 말이야.
그러다 보니 난 그리 민감한 사람이 아닌데도, 끔찍하고 잔혹한 모습을 많이 봤어.
어느 날 밤엔, 마을 주민 하나가 어둠을 틈타 다른 사람 집에서 자루를 들고 나가더군.
삼베로 포장한, 사람 키만 한 자루였지.
……
그자는 자루를 손수레에 싣고 마을 가장자리를 따라 바위 사막으로 향하더군. 그리고는 남쪽 외곽 너머로 사라졌고.
그런 모습을 몇 번이고 봤어. 지난 3주 동안 두 번은 봤을 거다. 분명 내가 보지 못한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테고.
그런 이야기는 한 번도 안 했잖아.
말할 생각도, 이유도 없었으니까.
네 말이 맞아. 우리는 외부인이다. 이 나라 사람이 아니지. 심지어 이 세상 사람도 아니야.
이곳 주민들에게는 우리는 이방인이지. 이들의 역사와 문화, 삶, 그 속을 관통하는 슬픔과 기쁨 등 배워나갈 게 산더미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많으니까.
그러니 내가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비난할 권리는 내게 없다. 이곳 사람들의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니까.
그게 이곳 사람들의 방식이고.
그런데 어느 날 밤, 문득 궁금해지더군. 난 길을 따라 외곽으로 향해 사람들이 자루를 묻어뒀으리라 생각되는 바위로 갔지.
그리고 그 주변 모래 속에서 뭔가 반짝이는 걸 발견했다. 바위 사이에서 먼지가 솟아올라 바람을 타고 흩어지고 있었고.
그 먼지는 정말 밝았어. 밤의 어둠 속에서, 아무런 빛을 받지 않고도 빛나고 있었지.
물론 그 자루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먼지가 뭔지도 어느 정도는 추측했고.
그리고 지금은 우리 모두 알게 됐지.
삼베 자루가 나온 그 집 문 앞에선 원래 늙은 부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이후로, 그 늙은 부인은 다신 나타나지 않았지.
쾨츠도 매일 마을 사람들이랑 같이 있었으니 분명 알고 있을 거야.
하아……
전에 그런 말을 했지? 다들 화학전 훈련이라도 받은 것처럼 행동한다고. 코와 입을 잘 가린다고 말이야. 참 어설픈 변명이었군그래. 물론 통하긴 했다만.
마을 주민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 이유를 직접 봤으니까.
우리가 정말로 옳은 일을 했느냐고 물었지?
답은 간단해. 우린 마을 주민을 도왔다. 우리의 도덕관과 양심이 시키는 대로.
노화, 질병, 죽음은 피할 수 없어. 이 세계에서도, 우리 세계에서도.
만약 이곳에 광석병이 없었더라도, 사람들은 똑같이 고통받았을 거다.
질병이 없다면 전쟁, 세금, 그리고 자연재해가 가난한 이들을 짓밟았을 테지. 너나 나나 익히 봐왔잖아, '더 안전한' 세계에는 더 많은 위험이 존재한다는 걸.
이곳의 아미르와 이 마을을 봐, 이 사람들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지?
이런 봉건 사회는 우리가 있던 지구에선 진작에 사라졌지만, 여기 사람들에겐 이게 현실이야.
우리 기준에 이쪽 사람들은 문명화된 세계에 살고 있는 게 아닌 건 맞다.
난 살면서 빌어먹을 놈들을 많이 봐왔어, 코언. 이게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지.
이 세계는 그런 내가 봐도 형편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것도 못 할 거라는 생각은 버려.
우리의 선행에서 등을 돌리지 마. 마음속에 있는 도덕과 양심을 따르는 일은 절대 잘못되지 않았으니까.
하아……
네 말이 맞아, 알렉산드르.
방금 말은 잊어 줘. 너무 피곤해서 그랬나 봐.
제대로 잠을 잔 지 너무 오래되긴 했지.
다들 피곤하기도 하고.
누가 온다.
……
……
……미안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전부 내 탓이다.
내가 어리석고 충동적이었어.
키 큰 리프로바의 손에는 금빛 인장이 쥐어져 있었다. 리프로바는 인장을 꽉 움켜쥐고는, 자신의 의지를 인장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견고한 팔 갑옷 위에 기묘한 푸른 무늬가 나타났고, 금빛을 내던 인장도 그녀의 손에서 녹아 흘러내려 투박하게 다듬어진 비석 위에 뿌려졌다.
오리지늄 아츠……
아버지께서 아미르님께 받은 훈장이다. 아버지는 아미르 휘하의 전사 중 가장 강한 사람이었고, 롱스프링 마을은 아버지가 세운 공로로 하사받은 마을이었지.
우리 아버지께선 강하고, 선하며, 공정한 분이셨다.
늘 그런 분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툴라 가문은 광부들이 흘린 피와 그들의 뼈 위에 만들어졌다.
수년 동안, 아버지는 광산에서 오리지늄을 채굴해 부유해졌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광석병이 퍼졌다. 처음에는 광부만 감염됐지만…… 결국에는 마을 전체에 퍼졌어.
지표면 근처에 있던 오리지늄을 모두 채굴하자, 아버지께선 채석장을 폐쇄하셨다. 그 이후로 아무도 채굴하지 못하게 하셨고.
아버지께선 감염자 구역을 만들고는 그곳에 사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병사를 보내셨다. 감염자 시체 더미 위에 앉아 돈만 거머쥐는 삶은 차마 살아갈 수 없으셨던 거야.
아버지께선 항상 우리 남매가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셨다.
드러지가 컬럼비아에서 공부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사악해지더군.
그리고 그런 드러지를 아버지께서 집에서 쫓아내고 나서야, 나는 드러지가 더 이상 내 오라버니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나 역시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난 아버지의 위업이나 유산을 물려받을 자격이 없어.
그럴 면목도 없다.
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롱스프링도, 그 주민들도 지키지 못했어. 드러지를 죽이지도 못한 채 놈을 놓쳐버리기까지 했지.
드러지 같은 놈한테 붙은 놈들은 대체 뭐하는 놈들이지?
나도 그들에 대해 잘은 모른다. 그들이 볼보트 코친스키라는 이름의 어느 컬럼비아 단체라는 것만 알고 있는 정도지.
컬럼비아인들과 교류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네만……
그들은 탐욕스럽고 악한 자들이다. 마을 사람들이 삶은 안중에도 없었고,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을에서 더 많은 광산물을 들고 나올 수 있을지 밖에 생각하지 않았지.
많이 듣던 얘기로군.
……흥.
아버지는 항상 내가 전사가 되면, 혼자서도 고향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전사는 다른 전사를 이길 수 있지만, 폭력만으로는 진정한 악을 물리칠 수 없다고.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신 '진정한 악'이 뭔지 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드러지가 그 악이라고 생각했을 뿐.
……하지만 이제 깨달았다. 드러지는 악의 일부일 뿐이었어. 그리고 고작 그 일부에 난 지고 말았다.
죽을 때까지 맞서 싸워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는 법이지.
앞으로는 어쩔 생각이지?
모르겠군. 드러지는 도망쳤고, 그놈이 데리고 있던 용병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놈이 괴물을 두고 달아났어. 롱스프링은 더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그렇다 해도, 당분간은 내 저택을 지켜야 한다. 생존자들이 아직 그곳에 머물고 있으니까.
그 저택에 몇 명까지 수용할 수 있지?
저택 지하실에 대피소가 있다. 많은 민간인을 수용할 수 있지만, 물과 식량이 부족해.
미안하다. 너희에게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저, 지금까지 롱스프링 사람들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러 왔다.
천만에.
그럼 난…… 난 할 일이 있으니, 먼저 실례하지.
……
피케일은 좋은 녀석이야. 그 빌어먹을 드러지 자식이 피케일의 친오빠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기 있었구나, 코언.
나중에 다시 올까?
아니. 우리도 마침 가려고 했어.
감염자가 이걸 줬어. 미아로우 선생이 남긴…… 물건이야. 이 안에 담겨 있어.
감염자들과 이야기해 보니까 이건 너희에게 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
열어봐.
그래도 될까?
당연하지. 우리 모두의 친구였잖아.
뭐가 들어있어??
지도. 그리고 책.
사르곤어로 적힌 '컬럼비아 도시 여행 안내서'야.
지도는…… 꽤 오래된 거 같은데. 어디 보자……
아…… 여긴 티카론토네. 컬럼비아 국경에 있는 도시지. 전에 가본 적 있어.
이 종이 다발은 돈인가?
컬럼비아 수표…… 미아로우 선생한텐 저축한 돈이 꽤 있었나 보네.
미아로우는 언젠가 이곳을 떠나 컬럼비아라는 곳에 가고 싶다고 했어.
'진짜 의사가 되기 위해서.'
비록 주어진 시간은 짧았지만, 미래를 꿈꾸고 계획했던 거야.
잠깐, 쪽지가 있어. 어디 보자.
음……
뭐라고 써 있어?
……읽을까?
그래.
“이 쪽지를 읽고 있는 분에게, 뒷정리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돈은 다른 사람에게 주세요. 전 분명 앞으로 쓸 일이 없을 테니까요.”
“상자는 버리지 말아 주세요. 어머니의 유품이라서요.”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미아로우”
……모르겠어…… 이걸 마주한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해야……
미아로우는 강한 사람이었어.
꿈이란 감염자에게 있어 사치야. 귀중하고, 깨지기 쉬운 보석과 같지.
컬럼비아도 도시 내 감염자는 지정된 지역에 몰려있어. 평생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보통 광석병에 걸렸다는 건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야…… 집행이 유예됐을 뿐인 사형 선고지.
감염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꿈과 생활 방식, 궁극적으로는 삶 자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돼.
그런 잔인한 현실 앞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고.
뭐가 미아로우의 신념을 붙들어 준 걸까?
미아로우는 더 나은 삶을 살 자격이 있었다. 그런 죽음을 맞이해서도 안 됐고.
잠깐, 어디 가?
피케일을 찾으러.
왜?
이야기 좀 하려고. 계획이 있어.